마법에 걸린 전화기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13
에리히 캐스트너 지음, 발터 트리어 그림 / 시공주니어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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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시를 사랑하는 시 50



내 손은 무지개

― 마법에 걸린 전화기

 에리히 캐스트너 글

 발터 트리어 그림

 김서정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1995.5.27.



  내 손은 무지개입니다. 그래서 내 손을 가만히 바라보면, 내 손에서 조그마한 무지개가 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무지개가 안 보인다고요? 그렇다면, 내 손을 제대로 안 보았다는 뜻입니다. 찬찬히 마음을 기울여서 다시 들여다보셔요. 내 손에서 피어나는 무지개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내 손은 무지개입니다. 그래서 내 손을 움직이면, 내 손에서 조그미한 무지개가 이곳저곳으로 퍼지는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지개를 못 느끼겠다고요? 그렇다면, 내 손을 제대로 안 썼다는 뜻입니다. 즐겁고 신나게 손을 써 보셔요.


  내 손은 무지개입니다. 그래서 내 손을 뻗으면, 내 손에 닿는 네 손에 두근두근 따순 기운이 흐릅니다. 내 손에 닿는 나무와 풀과 꽃은 기쁨이 넘쳐서 노래합니다. 내 손에 닿는 흙은 기름진 숨결을 얻어 새롭게 깨어납니다.



.. 그런데 엄마가 집을 나서기가 무섭게 / 빨간 머리 그레테가 소리를 질렀어. / “너희들, 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놀이가 뭔지 아니? / 나랑 같이 전화기 있는 데로 가 보자.” ..  (마법에 걸린 전화기)



  내 손은 무지개이기 때문에 빛납니다. 낮에도 빛나고 밤에도 빛납니다. 꽃송이를 쓰다듬으면서 빛나고, 꽃잎을 어루만지면서 빛납니다. 내 손은 무지개이기 때문에 환합니다. 풀잎을 뜯으면서 빛나고, 풀줄기를 스치면서 환합니다. 내 손은 무지개이기 때문에 따스합니다. 밥을 지으면서 따스하고, 밥을 먹으면서 따스합니다. 내 손은 무지개이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빙그레 웃으면서 아름답고, 기쁘게 노래하면서 아름답습니다.



.. 아돌프는 프리츠를 실컷 두들겨 패면서 / 그게 굉장히 재미있는 놀이라고 생각했어. / 프리츠가 윗도리를 벗으면서 / “이제 그만 하시지!” 하고 말할 때까지는 ..  (권투 챔피언)



  무지개를 잡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우리 보금자리에 있으면 됩니다. 무지개를 보려면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우리 살림터에 있으면 됩니다. 무지개를 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두 눈을 바라보면서 우리 손을 느끼면 됩니다.


  어느 먼 곳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곳에 있으면서 기쁩니다. 어느 한때에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늘 이곳에서 즐겁습니다.


  에리히 캐스트너 님이 쓴 재미난 이야기를 동시처럼 묶은 《마법에 걸린 전화기》(시공주니어,1995)를 읽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전화기는 마법에 걸립니다. 마법에 걸린 전화기를 손에 쥐면, 전화를 거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마법에 걸립니다. 그러면 마법은 무엇일까요? 새로움을 짓는 숨결입니다. 마법은 누가 일으킬까요? 새로움을 짓고 싶은 사람이 일으킵니다.



.. 풍선이란 아주 사랑스럽고 / 세상에서 가장 예쁜 거지. / 첫째, 언제나 동그랗고. / 둘째, 대개는 알록달록해. // 셋째, 얼마나 멋지게 나는데! ..  (하늘을 나는 우르줄라)



  아이가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는 처음 태어날 적부터 노래를 알았을까요, 아니면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노래를 물려주었을까요. 노래를 부르는 아이는 맑게 웃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아이는 밝게 뛰놉니다. 아마 어버이도, 아이한테 노래를 물려준 어버이도, 아이한테 찬찬히 노래를 물려주면서 맑게 웃었을 테고, 아이한테 노래를 물려주는 동안 이녁이 어릴 적에 뛰놀던 이야기를 그렸을 테지요.


  아이가 춤을 춥니다. 아이는 처음 태어날 무렵부터 춤을 알았을까요, 아니면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춤을 물려주었을까요. 춤을 추는 아이는 곱게 웃습니다. 춤을 추는 아이는 기쁘게 뛰놉니다. 아마 어버이도, 아이한테 춤을 물려준 어버이도, 아이한테 신나게 춤을 물려주면서 곱게 웃었을 테고, 아이한테 춤을 물려주는 동안 이녁이 어릴 적에 동무들과 놀던 이야기를 그렸을 테지요.


  아이는 웃으면서 자라고, 어른은 웃으면서 큽니다. 아이는 노래하면서 자라고, 어른은 노래하면서 큽니다. 웃음과 노래는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이야기를 일으킵니다. 웃음과 노래를 함께 누리는 아이와 어른은 언제나 이야기꾼입니다.



.. 페터는 늘 그래. 가장 튼튼한 대들보도 / 구부릴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지. / 그런데 가장 나쁜 것은, / 자기가 한 거짓말을 믿는다는 거야 ..  (떡에 얽힌 사건)



  동시집이라 할 《마법에 걸린 전화기》는 부드럽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맑게 웃는 하루가 언제 태어나는가 하고 부드럽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곱게 노래하는 삶은 어디에서 태어나는가 하고 보드라이 이야기합니다.


  지구별 한쪽에서 나무가 자라 숲이 우거집니다. 숲이 우거진 곳에서 푸른 바람이 붑니다. 푸른 바람은 구름과 함께 지구별 다른 한쪽으로 갑니다.


  지구별 다른 한쪽에서 나무가 자라 숲이 짙푸릅니다. 숲이 짙푸른 곳에서 푸른 바람이 붑니다. 푸른 바람은 달이랑 별이랑 함께 지구별 또 다른 한쪽으로 갑니다.



.. 불쌍한 클라우스, 부모님이 / 네 귀를 보면 뭐라고 하시겠니? / 아, 그 귀 때문에 또 무슨 일이 생길지! / 겨울에는 귀가 동상에 걸릴 거야. // 이제 너한테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겠구나. / 뾰족한 돌을 던지면 안 된다고? / 아냐, 네가 마침내 깨달아야 할 것은 / 동물을 괴롭히는 건 절대로 권할 일이 아니라는 거지 ..  (못되게 굴면 좋을 게 없다)



  내 손에서 피어난 무지개는 네 손에서 새롭게 자랍니다. 네 손에서 자란 무지개는 내 손에서 다시금 자랍니다. 무지개 꼬리 한쪽은 내 손에 있고, 다른 한쪽은 네 손에 있습니다. 우리 손에 무지개가 있으니, 우리는 늘 어깨동무를 하면서 놉니다. 우리 손에서 자라는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우리 노래를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껏 부르면서 달립니다.


  노래하는 아이들이 달리는 소리를 듣고 지구별이 웃습니다. 춤추는 아이들이 깔깔 웃는 소리를 듣고 지구별이 웃습니다. 지구별은 푸르게 웃습니다. 지구별은 하얗게 웃습니다. 지구별은 파랗게 웃습니다. 이 웃음은 다시 사람들을 살찌우는 숨결이 됩니다. 사람들을 살찌운 숨결은 새로운 웃음과 노래를 낳고, 새로운 웃음과 노래는 다시금 지구별을 사랑스레 어루만집니다. 4348.1.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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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장 쓰기 오늘의 사상신서 155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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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오덕을 읽는다



삶을 지을 때에 글을 쓴다

― 우리 문장 쓰기

 이오덕 글

 한길사 펴냄, 1992.3.30.



※ 책풀이 ※

1992년에 처음 나온 《우리 문장 쓰기》는 《우리 글 바로쓰기》를 1권과 2권을 펴낸 다음에 선보인 책이다. 《우리 문장 쓰기》에서는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글에 담는 길을 밝힌다. 여러 갈래로 나눌 수 있는 글이란 무엇인지 밝히고, 갈래에 따라 글을 어떻게 쓸 때에 제대로 ‘한국사람이 쓴 글’이 될 만한지 알려준다. 제아무리 손재주로 꾸민다고 해 보았자 글이 될 수 없고, 손수 짓는 삶에 따라 즐거움과 기쁨을 담으려고 할 때에 참다우면서 아름다운 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이 책 한 권으로 들려준다.



..



  내가 하는 말은 모두 내 마음입니다. 내가 하는 말마다 그때그때 어떤 마음인지 환하게 드러납니다. 마음을 즐겁게 가누는 사람은 언제나 즐겁게 말을 하고, 마음을 맑게 가다듬는 사람은 언제나 맑게 말을 합니다.


  거칠게 말을 한다면, 마음이 거칠다는 뜻입니다. 짜증을 섞어서 말을 한다면, 마음이 짜증으로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거친 말이든 짜증 섞인 말이든 나쁘지 않습니다. 좋지도 않으나 나쁘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때그때 내 마음이 말로 드러날 뿐입니다. 그러니 나는 내 말을 찬찬히 살피면서 그때그때 어떤 마음인지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읽을 수 있을 적에 비로소 말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말은 언제나 마음을 나타내기 마련이니,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홀가분하게 나타낼 수 있습니다. 기쁨을 나타내고 슬픔을 나타내지요. 놀라움을 나타내고 아쉬움을 나타내지요. 서러움을 나타내다가는 쓸쓸함을 나타내고, 반가움을 나타내다가는 사랑을 나타내요.


  어떤 마음이든 나타낼 수 있는 말입니다. 어떤 마음이든 나타내는 말이기에 내 삶은 날마다 새롭게 빛납니다. 말 한 마디를 하면서 마음을 살피고, 말 두 마디를 하면서 마음을 북돋우며, 말 세 마디를 하면서 마음을 가꿉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글을 함부로 쓰지 말고(꼭 할 말만 쓰고), 깨끗한 말로 쓰는 일이다 … 농민도 어민도 노동자도 상인도 공무원도 교원도, 누구나 써야 한다. 마치 말을 누구나 하듯이, 모든 사람이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야 말이 살아나고 글이 살아난다. 사람이 살아나고 문학이 살아난다 … 대관절 ‘문학 문장’, 곧 문학이 될 수 있는 글이 따로 있을 수 있는가 … 글은 말보다 어렵게 써도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쉽게, 더 친절하게 써야 한다 … 될 수 있는 대로 중국글자말을 쓰지 말고 우리 말로 써야 한다 … 중국글자를 섞어서 쓴 글은 반민주의 글이다. 그리고 쉬운 우리 말이 있는데 그런 말을 안 쓰고 어려운 말, 보통 사람들이 잘 안 쓰는 말, 유식한 중국글자말이나 일본글에서 나온 말, 쓰지 않아도 되는 서양말을 쓴 글은 모두 반민주의 글일 수밖에 없다 ..  (14, 16, 18, 32, 198쪽)



  더 좋다 싶은 말을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잘못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지 않아도 됩니다. 글을 쓰다가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틀릴 수 있습니다. 말을 하다가 혀가 꼬일 수 있으며, 때로는 헛말이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아, 내가 이런 말을 이런 마음으로 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슬기롭게 갈고닦으면 됩니다.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새파랗게 눈부신 하늘이기에 새파랗구나 하고 느낍니다. 매캐한 하늘이기에 매캐하구나 하고 느낍니다. 구름을 볼 수 있고, 해를 볼 수 있으며, 하늘을 가르는 새를 볼 수 있어요. 무엇이든 내가 스스로 보는 대로 느끼고, 이 느낌을 고스란히 말과 글에 담습니다.


  냇물을 바라보면서 냇물 빛깔과 냄새를 헤아립니다. 냇물에서 사는 물고기를 느끼고, 냇물에 있는 돌멩이와 모래를 느낍니다. 냇물이 흐를 적에 반짝이는 물결을 느끼고, 냇가에 찾아와 물을 쪼는 멧새가 몸을 터는 몸짓을 느낍니다.


  요모조모 짜맞추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면서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틀이나 저런 짜임새를 살펴서 글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마음을 나타내도록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됩니다. 우리는 늘 우리 마음을 꾸밈없이 아끼고 사랑하면서 말과 글을 사랑하면 됩니다.


  그러니, 문예창작을 배워야 문학을 하지 않아요. 시론을 배우거나 이론을 익혀야 시나 소설을 쓰지 않아요. 대학교를 다닌 사람이 문학을 하지 않습니다. 문학을 바라는 사람이 문학을 합니다. 문학을 꿈꾸는 사람이 문학을 해요. 노래를 꿈꾸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꿈꾸는 사람이 춤을 춥니다. 흙을 꿈꾸는 사람이 흙을 짓고, 삶을 꿈꾸는 사람이 삶을 짓습니다.



.. 사물을 보는 그대로 나타내도록 해야지, 요란한 글 때문에 사물이 흐리게 보이도록 해서는 안 된다 … 좋은 글은 일하면서 살아가는 백성들에게도 쉽게 읽히는 작품, 그래서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 글의 마지막 심판자는 백성들이다. 책과 학문과 추상논리와 관념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과 사실 속에서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닌 가장 소박한 느낌과 생각이 글의 가치를 매기게 되어야 한다 … 살아 있는 말이란 어떤 말인가? 사물과 사실을 바로 보여주고 바로 느끼게 하는 말, 바로 가슴에 와닿는 말, 진실이 차 있는 말이다 … 말이 없으면 글도 없다. 글은 없어도 견딜 수 있지만, 말이 없으면 사람이 살아갈 수 없다 … 말은 생각(의식)에서 나왔다. 생각은 삶에서 나왔고, 삶은 바로 살아 있는 목숨이다 ..  (24, 25, 40쪽)



  나무 한 그루를 심습니다. 씨앗을 심을 수 있고, 어린나무를 얻어서 심을 수 있습니다. 크게 자란 나무에서 가지 하나를 꺾어서 심을 수 있습니다. 벼락을 맞고 쓰러진 나무를 안쓰러이 여겨 작은 가지 하나를 잘라서 심을 수 있어요. 어떻게 심든 모두 나무입니다. 어떻게 심든 모두 아름답게 자라는 나무입니다.


  나무는 백 해를 살고 오백 해를 살며 즈믄 해를 사는 동안 우람하게 큽니다. 나무 한 그루는 열 그루로 퍼지고, 열 그루는 백 그루로 퍼집니다. 모든 숲은 나무 한 그루에서 비롯합니다. 지구별 푸른 숨결은 씨앗 한 톨에서 비롯합니다.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보듬는 사랑은 바로 말 한 마디에서 태어납니다. 내가 나를 아끼고, 내가 너를 아끼며, 내가 우리를 아끼는 따사로운 마음에서 말이 태어납니다. 이 따사로운 마음과 말은 따사로운 숨결이 되고, 어느새 따사로운 노래로 퍼집니다.


  아이와 나누는 자장노래가 아이한테 놀이노래로 거듭납니다. 놀이노래는 놀면서 부르는 노래이면서 언제 어디에서나 기쁜 내 마음을 드러내는 노래로 달라집니다. 자장노래는 놀이노래이면서 기쁨노래이고 삶노래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셔요. 내 말 한 마디가 노래로 거듭나서 퍼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내가 하는 말 한 마디가 이웃과 동무한테 맑은 웃음과 노래로 스며들 수 있으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말 한 마디로 사랑을 짓고, 글 한 줄로 꿈을 지으면, 우리 삶은 얼마나 맑고 밝을까요.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까닭을 생각합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니까 말을 하고 글을 써요. 서로 돌보고 보살피니까 말을 하고 글을 써요. 내 사랑이 내 말로 나타나고, 네 사랑이 네 말로 드러나요. 우리는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말을 나누고, 우리는 언제나 활짝 웃고 노래하면서 말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 글이 지배하는 사회는 그 글을 독차지하는 관리들과 지식인들과 돈 가진 이들이 움직이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글을 모르면 사회에 나가 활동할 수가 없고, 여행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사람 노릇을 제대로 못한다 … 가정에서 살아 있는 말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더 철저한 글말을 배우게 된다. 교과서만 읽고 쓰고 외우게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살아 있는 말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다 … 우리가 남의 나라 글을 따라서 쓰고, 그렇게 쓰는 글을 따라서 말을 하게 된다면, 그 말이 다시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우리의 삶을 움직인다 … 글이 이렇게 오염이 되고, 말이 글 따라 병들었는데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우리들 생각이 병들고 삶이 변질된 것을 어찌 깨닫겠는가 ..  (41, 42, 44, 45쪽)



  이오덕 님이 쓴 《우리 문장 쓰기》(한길사,1992)를 읽습니다. 이오덕 님은 두툼한 책 한 권을 써서 우리들한테 ‘우리 마음을 담아서 나누는 글이란 무엇인가’ 하는 실마리를 밝히려 합니다. 글을 쓰는 즐거움과 보람이 얼마나 큰 사랑인가를 넌지시 보여주려 합니다. 글을 써서 나누는 기쁨과 뜻이 얼마나 예쁜 노래인가를 찬찬히 알려주려 합니다.


  《우리 문장 쓰기》는 ‘이렇게 써야 바로 쓴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문장 쓰기》는 ‘이렇게 써야 말과 글이 산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문장 쓰기》는 ‘우리 마음 쓰기’를 이야기하고, ‘우리 생각 밝히기’를 이야기하며, ‘우리 사랑 나누기’를 이야기합니다.


  《우리 문장 쓰기》는 ‘이렇게 해야 글을 잘 쓴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문장 쓰기》는 ‘이렇게 해야 삶을 잘 가꾼다’는 이야기입니다. 내 말과 글을 가꾸면서 내 넋을 가꾸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내 말과 글을 가꾸면서 내 넋을 가꿀 때에 내 삶을 어떻게 가꿀 수 있는지 찬찬히 밝힙니다.


  마음이 있으니 글을 쓰지요. 생각이 있으니 글을 쓰고 싶지요. 사랑이 있으니 글을 써서 책을 엮은 뒤 널리 나누다가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지요. 말은 언제나 넋이 되고, 넋은 고스란히 삶이 됩니다. 말을 가꾸는 일이란 넋을 가꾸는 일이요, 넋을 가꾸는 일은 삶을 가꾸는 일입니다. 거꾸로, 삶을 가꾸는 일은 넋을 가꾸는 일이면서, 넋을 가꾸는 일은 말을 가꾸는 일이 됩니다.



.. 말을 살리는 글을 어떻게 하면 쓸 수 있는가? 한자말·일본말·서양말 같은, 밖에서 들어온 말을 안 쓰고, 쉬운 말과 순수한 우리 말을 찾아 쓰면 된다. 글을 모르는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쓰면 된다 … 우리가 하는 말은 농사일에 쓰이는 말이 많고, 사람과 자연의 모습과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이 중심으로 되어 있다 … 말이 이렇게 풍성하니 그 말을 적어 보이는 글자가 또 거기에 걸맞게 창조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배달글은 세종대왕이 지었다기보다 풍성한 말을 가진 우리 온 겨레가 지어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 같다 … 이야기하기에 알맞는 말, 노래하기에 알맞는 말이기에 영어같이 ‘과거완료’나 ‘과거진행완료’ 따위의 때매김이 소용없는 것은 당연하다 ..  (51, 52, 53쪽)



  토박이말을 살려야 하니까 토박이말을 쓰지 않습니다. 영어를 쓰지 말아야 하니까 영어를 쓰지 말아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넋을 홀가분하게 살찌우거나 살려서 기쁘게 노래하고 싶기에 말을 깊이 생각하고 널리 헤아리면서 말을 합니다. 나는 내 얼을 아름답게 보듬거나 살가이 보살피고 싶기에 차근차근 생각을 짓고 삶을 일구어 글을 씁니다.


  밭을 가꾸면서 글을 씁니다. 아기를 돌보면서 글을 씁니다. 밥을 지으면서 글을 씁니다. 옷을 기우면서 글을 씁니다. 빨래를 하면서 글을 씁니다. 나무를 베거나 장작을 패면서 글을 씁니다. 길을 걸으면서 글을 씁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 글을 씁니다.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귀여겨들어요. 그러고 나서 글을 써요. 나비와 새가 날갯짓하면서 하늘을 가르는 모습을 지켜봐요. 그러고 나서 글을 써요. 소나기가 내리고 무지개가 뜨는 마을에서 이웃과 오순도순 어우러져요. 그러고 나서 글을 써요.


  우리가 쓰는 글은 얼마나 고운가요. 우리가 주고받는 글은 얼마나 알찬가요. 우리가 빚어서 책으로 엮는 글은 얼마나 따스한가요. 우리가 읽는 글은 얼마나 값진가요. 글줄마다 이야기가 흐르고 노래가 감돕니다. 글월마다 꿈이 깃들고 사랑이 피어납니다.


  손수 씨앗을 심어 보셔요. 씨앗 한 톨이 어떻게 깨어나서 자라는지 바라보셔요. 깨어난 씨앗 한 톨이 흙을 어떻게 바꾸고, 둘레를 어떻게 바꾸는지 살펴보셔요. 씨앗 한 톨이 자라서 줄기가 오르고 잎이 오르는 동안, 둘레에 어떤 바람이 흐르는지 헤아리셔요. 씨앗 한 톨이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적에 어떤 기운이 감도는지 느끼셔요. 말 한 마디는 씨앗입니다. 말씨가 생각을 짓습니다. 글 한 줄은 씨앗입니다. 글씨가 이야기를 짓습니다.



..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고받는 말을 되찾을 수 있을까? 살아 있는 우리들의 말, 인간의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길은 단 하나뿐이다. 삶을 찾아 가지는 것이다. 기계가 되지 말고,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 체험과 행동은 없고 책만 읽어서 이른바 ‘상상’이란 것으로 적어 놓은 말들이 살아 있는 겨레의 말이 될 수 있는가? 없다 … 오늘날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삶이다. 잃어버린 삶을 도로 찾아 가지는 일이다. 삶을 찾아 가지려고 하는 노력이 그 어떤 노력보다도 앞서야 하고, 그 노력을 바탕으로 해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쓴 글을 다듬기도 해야 비로소 제대로 글이 씌어질 것이다 …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중국글을 우리 글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일본글 틀에 잡히게 되어도 그것을 깨달을 줄 모르고, 영어 틀에 빠져 있는 줄도 모른다 ..  (54, 55, 66, 80쪽)



  글을 쓰는 사람은 삶을 씁니다. 글쓰기는 늘 삶쓰기입니다. 삶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고, 삶이 있기에 글을 쓸 기운이 납니다.


  글은 머리로 지어서 쓰지 못합니다. 때때로 머리로 글을 지으려 하는 사람이 있지만, 억지를 부려서 머리로 글을 쓰면, 이 글은 제대로 살지 못합니다. 삶이라고 하는 숨결이 없는 글은 힘도 기운도 사랑도 꿈도 없습니다. 삶이라고 하는 숨결을 담아서 쓰는 글일 때에 비로소 참다운 힘과 착한 기운과 맑은 사랑과 밝은 꿈이 깃듭니다.


  왜 그러할까요? 왜 머리로 짓는 글은 제대로 살지 못할까요? 머리로 짓는 글, 이른바 이론과 학문이나 지식으로 짓는 글은 아무것도 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료와 농약과 항생제는 흙을 살리지 않습니다. 비료와 농약과 항생제는 흙을 망가뜨리거나 괴롭히면서 곡식과 열매를 땅에서 더 뽑아내는 구실을 합니다. 그러니, 이런 것으로는 흙을 못 살리고 못 가꾸고 못 북돋웁니다.


  풀 한 포기에 바치는 사랑스러운 손길은 흙을 가꿉니다. 흙을 가꾸려는 손길을 받고 자란 풀포기는 겨울이 되어 시들 적에 흙으로 돌아갑니다. 나무가 떨구는 가랑잎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풀줄기와 나뭇잎은 흙을 되살리면서 흙이 됩니다.


  우리가 쓰는 글은 풀줄기나 나뭇잎과 같이 마음을 살리거나 살찌우는 밑거름이 될 수 있어야 싱그럽습니다. 살아가는 결 그대로 글을 쓰고, 사랑하는 마음씨 그대로 글을 쓰며, 꿈꾸는 무늬 그대로 글을 씁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은 따로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은 삶을 바라보고 느끼면서 가꾸면 됩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은 학교를 다니거나 책을 많이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은 하루하루 기쁨으로 맞아들이면서 즐거움으로 노래할 수 있으면 됩니다. 살림을 다스리고 하루를 노래할 때에 비로소 글을 씁니다. 밥을 짓고 옷을 지으며 집을 짓는 삶이 그대로 글입니다.



.. 우리가 일본글을 배우지 않고 일본글에 빠지지 않았다면 진작 중국글자체에서도 벗어나 있었을 것이다 … 자기가 쓰고 싶은 절실한 생각이나 이야기를 자기 말로 아무 형식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쓰게 되었을 때 그 결과가 저절로 어떤 글의 맵시를 갖추게 된다면 그때는 그것을 가지고 문체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눈으로 살펴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일을 해 보고 몸으로 겪어 볼 필요도 있다. 그래야 마굿간에서 여물을 먹고 있는 소 한 마리도 제대로 볼 수 있고, 도랑에 버려진 농약병 이야기도 진실 그대로 꾸밀 수 있을 것이다 … 글을 쓸 때는 아주 결심을 단단히 해서 커다란 자기혁명을 한다는 몸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런 몸가짐을 가지고 쓰는 글 속에 새로운 자기가 태어나게 해야 한다 … 서로 삶과 마음을 나누는 편지 쓰기를 하면 좋겠다 ..  (94, 157∼158, 179, 188, 477쪽)



  삶을 지을 줄 알 때에 비로소 글을 짓습니다. 군사독재 서슬이 퍼렇던 지난날 제도권 학교교육에서 억지로 시키던 ‘글짓기’가 아닌, “삶을 짓다”와 같은 “글을 짓다”일 적에 수수하면서 고운 글이 태어납니다.


  글은 짓습니다. ‘독후감 숙제 따위 글짓기’가 아닌, ‘삶을 노래하는 글짓기’입니다. 이오덕 님은 ‘글쓰기’라는 낱말을 따로 빚어서 쓰셨어요. ‘글짓기’라는 낱말이 나쁘지 않으나, 군사독재 총칼을 내세운 앞잡이와 꼭둑각시 때문에 아이들이 아프고 다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낱말에 새로운 숨결을 담아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를 바랐기에, ‘글스기’라는 낱말을 빚었어요.


  그런데 오늘날 학교교육이나 사회를 보면, 낱말은 ‘글짓기 → 글쓰기’처럼 바뀌었으나, 속내는 예전과 똑같습니다. 삶을 쓰려고 하는 글쓰기가 아닌, 억지로 짜맞추거나 이론이나 지식으로 얽어매는 글쓰기입니다.


  글은 허울로 쓰지 않습니다. 글은 껍데기가 아닙니다. 글은 속내요, 알맹이입니다. 글짓기라는 이름이든 글쓰기라는 이름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삶을 드러내고 사랑을 밝히며 꿈으로 나아가는 숨결을 담을 수 있는 글이면 됩니다.


  이리하며, ‘삶말’과 ‘삶글’이라는 낱말이 새롭게 태어나요. 삶을 그리는 말이기에 삶말이면서, 삶을 짓는 말이기에 삶말입니다. 삶을 노래하는 글이기에 삶글이요, 삶을 꿈꾸는 글이기에 삶글입니다.


  밥 한 그릇을 나누는 삶입니다. 나무를 심고 풀을 뜯는 삶입니다. 바람을 쐬고 햇볕을 쬐는 삶입니다. 냇물을 마시고 들을 돌보는 삶입니다. 아기를 낳고 키우는 삶입니다. 아이와 함께 뛰노는 삶입니다. 옷을 지어 함께 입고, 이불을 빨아 함께 덮는 삶입니다. 삶을 노래합니다. 삶노래이지요. 삶을 이야기합니다. 삶이야기입니다.



.. 원고료 수입이 많다 보니 삶의 현장에 나가 일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래서 늘 방안에서 제멋대로 장난처럼 글재주 놀이를 하기 쉽기 때문 … 일과 놀이가 따로 나누어진 오늘날 사회에서는 사람의 표현조차 순수한 자기 표현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사회의 요구에 따라 한갓 직업으로써 하는 표현활동이 되어 있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고, 따라서 표현이 어떤 틀에 박히고, 기계로 찍혀 나오듯하여 표현하는 사람 자신의 마음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되어 있기가 예사다 … 자기를 정직하게 쓰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기뻐질 터인데, 이렇게 겉모양만 괴상하게 꾸며 보이는 글을 무슨 보람으로 쓸까 … 글과 사람은 따로 볼 수 없고, 따로 보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글과 사람이 다른 것처럼 보는 것은 우리가 글을 바로 보지 못했거나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  (243, 318, 355, 425쪽)



  글을 쓰는 사람이 늘기를 빌어요. 삶을 쓰는 사람이 늘기를 빌어요. 글을 노래하는 사람이 늘기를 빌어요. 삶을 노래하는 사람이 늘기를 빌어요. 글을 슬기롭게 읽어서 생각을 슬기롭게 밝히는 사람이 늘기를 빌어요. 삶을 슬기롭게 읽어서 마음을 슬기롭게 밝히는 사람이 늘기를 빌어요.


  글만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삶을 잘 가꾸면서 추스를 적에 글을 잘 가꾸면서 추스릅니다. 글만 멋지게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겉보기로 번드레하게 보일는지 모르나, 겉을 꾸미는 사람은 이내 시듭니다. 겉을 내세우려는 사람은 속이 곪습니다.


  사람은 쭉정이가 아닌 알맹이를 먹습니다. 사람은 밥알을 먹지, 쌀겨를 먹지 않습니다. 쌀겨를 가루로 빻아서 먹을 수 있겠지요. 쌀알과 쌀겨를 통째로 먹을 만하겠지요. 그러면, 달걀 껍데기와 달걀이 있을 적에, 껍데기만 먹으면 될까요, 달걀을 먹으면 될까요.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란 없습니다. 껍데기는 무엇인가 하면, 알맹이를 감싸는 옷입니다. 알맹이를 감싸는 옷은 옷대로 잘 가꾸면서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알맹이를 감싸는 옷만 헤아리다가 정작 알맹이는 돌보지 못하거나 가꾸지 못하면 어떻게 될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문장 쓰기》는 바로 ‘알맹이’를 밝히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껍데기를 꾸미거나 치레하는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들려줍니다.



.. ‘사색’은 아주 깊은 생각이고 ‘생각’은 얕은 것이라 여긴다면 잘못이다. 사람들이 모두 어려운 말을 쓰고 싶어하는 버릇이 들어서 자꾸 그렇게 쓰다 보니 그만 쉬운 말은 뜻이 얕고 어려운 말은 고상하게 여기게 되는데, 이런 잘못된 버릇은 글을 쓰는 사람부터 깨뜨려 나가야 하겠다 … 꼭둑각시로 자라난 사람은 그 자식을 또 꼭둑각시로 만들고 싶어 한다. 이 나쁜 되풀이를 그만두도록 일깨우는 것이 글쓰기가 아닌가 … 어른들이 그릇된 교육으로 아이들의 삶을 파괴하고 그 심성을 병들게 하지만 않는다면, 모든 아이들은 마치 산과 들에서 자라나는 풀과 나무같이 바르고 싱싱하게 자라날 것이다 … 교회에서나 절에서 아이들에게 교리를 외우게 하고 예수님, 부처님을 넣어서 글짓기를 시키는 어른들의 신앙이란 것이 참으로 어리석고 거짓된 습관에서 하는 짓이라고 본다 … 땅에 떨어진 씨앗이 싹을 트고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고 잎을 피우고 하여 반드시 일정한 날과 달을 보낸 다음 꽃을 피울 만한 속 기운이 찬 때라야 비로소 피어난다 ..  (488, 541, 549, 558, 568쪽)



  어떤 글을 쓰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겉을 치레하는 글을 쓰는 사람은 겉을 치레하는 삶으로 나아갈밖에 없습니다. 겉만 매만지는 글을 쓰는 삶은 겉만 매만지는 삶으로 흐를밖에 없습니다.


  눈을 감고 바라보아요. 내 이웃과 동무를 마음으로 바라보아요. 눈으로도 바라보되, 마음으로도 함께 바라보아요. 내 이웃과 동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겉모습만 살피지 말고, 내 이웃과 동무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열고, 어떤 마음으로 삶을 누리며, 어떤 마음으로 이 땅에 서는지 차근차근 바라보아요.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썰미를 기를 적에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길이 될 적에 글을 빛낼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매를 갈고닦을 적에 글이 아름다운 씨앗 한 톨로 이 땅에 드리울 수 있습니다.


  씨앗 한 톨을 심으려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으려고 글을 씁니다. 꿈이라는 씨앗을 심으려고 글을 씁니다. 삶이라는 씨앗을 심으려고 글을 씁니다. 글을 수수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글을 착하고 참답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글을 따스하고 너그럽게 쓸 수 있는 사람이 빙그레 웃으면서 노래합니다. 4348.1.1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이오덕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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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마을 고양이마을 3 - 완결
카나코 나나마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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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52



바닷바람이 분다

― 항구마을 고양이마을 3

 나나마키 카나코 글·그림

 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3.2.15.



  바닷바람이 붑니다. 바다에서 바람이 붑니다. 바닷바람은 바닷내음을 안고 붑니다. 바닷가를 거쳐 들로 불고, 들을 지나 멧골로 불며, 멧골을 지나 뭍으로 깊숙하게 파고듭니다.


  바닷바람이 바닷가를 지나,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고흥이나 강진이나 해남이나 통영이나 남해를 지나 전주나 대전쯤, 대구나 문경쯤, 수원이나 춘천이나 서울쯤 분다면, 바닷내음은 거의 가신다고 할 만합니다. 고흥을 거쳐 서울까지 흐르는 바람에는 바닷내음이 하나도 안 남는다고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서울에서도 바닷바람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이 바람은 바다에서 태어나 이곳으로 왔으니까요. 그리고, 바닷바람은 뭍으로 들어와서 고요히 잠든 뒤, 뭍바람이 되어 바다로 붑니다. 뭍에서 다시 태어난 바람은 바다로 흘러들면서 너른 바다에 뭍내음을 퍼뜨립니다.





- “저 윈도우에 있는 사진집. 거기 찍힌 항구마을이 저 고양이의 고향이래.” “그걸 어떻게 알아?” “그것 말고도 많이 알아. 이름은 루. 신분은 길고양이. 어제 여기서 얘기를 나눴거든. 저, 사람 모습을 한 고양이랑.” (10쪽)

- “그런데 어느 날 평소처럼 문을 나간 후 난 그길로 돌아가지 않았지.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문을 통과하는 순간 ‘아아, 이걸로 끝이구나.’ 싶더라고.” (17쪽)



  사랑이 흐릅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사랑이 흘러 저곳으로 갑니다. 나한테서 태어난 사랑이 흘러 너한테 가고, 너한테서 태어난 사랑은 흘러 나한테 옵니다. 바람이 불기에 사랑이 흐를 수 있고, 바람이 불면서 사랑은 한결 푸르게 젖습니다. 바람이 부는 동안 사랑이 따사롭게 피어나고, 바람이 멎으면서 사랑은 고요히 잠들면서 새로 깨어날 때를 기다립니다.


  씨앗 한 톨은 바람을 먹으면서 자랍니다. 씨앗 한 톨은 흙 품에 안겨서 바람을 꿈꾸면서 잡니다. 씨앗 한 톨은 바람을 기다리면서 겨울을 나고, 씨앗 한 톨은 바람이 알려주는 봄노래를 들으면서 기쁘게 깨어납니다.




- “고양이는 절 ‘여섯 번째 마녀’라고 불렀어요. 전 고양이와 그 마을에[ 대한 애정을 그 책에 담았습니다. 당신 곁에 있는 마녀는 고양이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나요?” (25쪽)

- “왜, 왜 고양이문을 싫다고만 생각했을까. 그건 ‘언제든 나갈 수 있는 문’이 아니라, ‘언제든 돌아오라’는 문이었는데.” (35쪽)



  나나마키 카나코 님이 빚은 만화책 《항구마을 고양이마을》(대원씨아이,2013) 셋째 권을 읽습니다. 고양이마을에서 살다가 다른 고장으로 떠난 뒤 고양이마을을 애타게 그리는 고양이가 나옵니다. 고양이마을에서 살다가 그만 숨을 거두었는데 좀처럼 다른 곳, 이를테면 저승으로 떠나지 못한 채 마을에서 맴도는 슬픈 넋이 나옵니다.


  저마다 가슴에 이야기를 한 자락씩 품으며 삽니다. 서로서로 가슴에 이야기를 한 타래씩 묻으며 삽니다. 털어놓지 않는 이야기는 쌓이고 쌓여 앙금이 됩니다. 꺼내지 않거나 드러내지 않은 이야기는 켜켜이 쌓여 응어리가 됩니다.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을까요? 아니면, 이야기를 나눌 뜻이 없을까요? 이야기를 나눌 이웃이 너무 멀리 있나요? 아니면, 이야기를 나눌 이웃한테 아직 안 찾아갔을까요?





- “난 사람하고 있는 게 싫어서, 줄곧 이 공원에서 혼자 살아왔지만, 정말은 너무 외로웠어. 하지만 이젠 내가 원해도 날 볼 수 있는 사람조차 없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 슬퍼서, 견딜 수가 없을 정도로 슬퍼서, ‘다음 세상’에 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대로는 도저히 여길 떠날 수가 없었어.” (69∼70쪽)

- “인간들은 참 묘하다니까, 나 같은 것에 소원을 다 빌고, 정작 행복으로 가는 힘은 본인이 이미 갖고 있으면서 말야. 난 그저 늘 지켜보기만 할 뿐이라구. 뭐, 상대가 멋대로 날 숭배해 주는 건 나쁘지 않지만.” (89쪽)



  숲에서 꽃이 한 송이 핍니다. 사람들은 꽃을 보며 곱다고 하는데, 오늘날에는 막상 숲으로 찾아가서 꽃을 보려고 하지 않기 일쑤입니다. 숲이 있는 자리를 밀어서 없앤 뒤,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퍼부어서 도시로 만든 뒤, 꽃이 없어서 쓸쓸한 곳에 꽃집을 들이고 꽃그릇을 곳곳에 둡니다.


  처음부터 꽃이 꽃답게 피고 지는 터전을 망가뜨리지 않으면 언제나 꽃내음을 맡습니다. 숲에서 피고 지는 꽃을 구경하는 데에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숲에서 피고 지는 꽃은 씨앗을 조금 받아서 어디에나 뿌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꽃내음이 아니라 돈내음에 이끌립니다. 돈이 될 만한 일을 찾으면서 숲을 무너뜨린 뒤, 다시 돈으로 꽃을 사들입니다.


  가만히 보면, 냇물을 망가뜨린 뒤 댐을 지어서 수돗물을 마시는 오늘날 도시사람입니다. 냇물이나 우물물을 깨끗하고 정갈하게 마시려고 하지 않아요. 물을 망가뜨려서 냇물을 못 마시게 하면서 스스로 삶을 망가뜨리는 줄 모릅니다.




- “인간들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도달할 수 있는 존재라고, 역시 난 생각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소하지만, 그래도 인간이 우리를 사랑해 주고 필요로 해 준다면, 우리야말로 아주 많이 행복한 존재가 아닐까? 난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안 그래? 고양이?” (101쪽)



  사랑은 늘 이곳에 있습니다. 사랑은 저 먼 데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선 이곳에서 찾으면 되는 사랑입니다. 마음속에서 피는 꽃을 느껴서 피우면 됩니다. 마음자리에 씨앗 한 톨 심어서 꽃으로 피어나도록 하면 됩니다.


  손수 심는 씨앗 한 톨이 곱게 자랍니다. 꽃이 스스로 터뜨려서 퍼지는 씨앗이 곱게 자랍니다. 온누리는 꽃누리입니다. 오이도 토마토도 능금도 모두 꽃이 피기에 맺는 열매입니다. 쌀도 벼꽃이 핀 뒤에 얻고, 밀도 밀꽃이 핀 뒤에 얻습니다.


  이 땅에서 흐르는 꽃을 바라보면서 사랑을 노래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즐겁게 마주하는 꽃 한 송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바람은 꽃내음을 싣고 멀리멀리 아리땁게 흐릅니다. 4348.1.1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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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소리 8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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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53



내가 걷고 싶은 길은

― 순백의 소리 8

 라가와 마리모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12.25.



  내가 걷고 싶은 길은 아름다운 길입니다. 내가 걷고 싶은 길은 사랑스러운 길입니다. 내가 걷고 싶은 길은 꿈과 같은 길입니다. 그러니, 내가 걷고 싶은 길은 나한테 즐거우면서 내 이웃과 동무 모두한테 즐겁습니다.


  네가 걸을 길은 내가 걷는 길처럼 너한테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꿈과 같은 길이리라 생각합니다. 나와 너는 같은 마음이요 같은 숨결일 테니까요. 나도 너도 저마다 아름답게 걷는 길에서 다 함께 사랑을 키우고, 다 함께 사랑을 키우기에, 날마다 새롭게 꿈을 짓습니다.



- “관객의 반응도 굉장했는데! 점수를 무슨 기준으로 매기는 거람?” “그기다. 세츠에게, 점수를 매기기가 어려웠을 기라.” (36∼37쪽)

- ‘내는, 할배가 아이다! 어떻게 연주하면 좋았다는 거지?’ (48쪽)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길을 걷습니다. 파랗게 눈부신 하늘이면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두 눈에 담고, 하얗게 구름이 낀 하늘이면 하얗게 구름이 낀 하늘을 마음에 담으며, 구름 사이로 햇발이 퍼지는 하늘이면 구름 사이로 햇발이 퍼지는 하늘을 가슴에 담습니다. 어떤 하늘이든 내 몸에 담으면서 걷습니다. 높다란 건물이 줄지어 선 도시라 하더라도, 걸리적거리는 것이 하나도 없는 시골이라 하더라도, 늘 한결같이 하늘을 보면서 걷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과 숨결을 받고, 하늘에서 퍼지는 소리를 바람과 함께 받습니다.


  내가 걷는 길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길가에 돋는 풀포기한테 이야기가 있고, 풀포기에서 줄기가 올라 꽃이 피면 꽃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무가 자라니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고, 나무가 자라기에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서 새들이 일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무가 한 그루 두 그루 모여 숲을 이루니, 숲이 빚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걷다가 쉬면서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자전거를 달리니 이야기가 자랍니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조그맣게 집을 지어 보금자리로 삼으니 이야기가 거듭납니다.



- “심사위원에게는, 명인 마츠고로 씨의 소리건, 네 본래의 소리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거야. 필요한 것은, 소리 내부에 흐르는 ‘하나의 큰 줄기’. 너는 그 줄기를 갑자기 바꿔 버렸지. 표현이 달라지면 듣는 사람은 당황하게 돼. 그것도 옛 주법과 새로운 주법의 양 극단을 오갔으니.” (70쪽)

- ‘하지만, 사와무라 세츠가 이대로 끝날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가 더 많은 청중에 의해 갈고닦이면, 과연 어떻게 될까?’ (78쪽)





  라가와 마리모 님이 빚은 만화책 《순백의 소리》(학산문화사,2014) 여덟째 권을 읽습니다. 샤미센으로 빚는 이야기는 어디에서 어디로 흐를까 하고 생각합니다. 샤미센을 켤 적에 줄이 똥똥 떨리면서 내는 소리는 어디에서 태어나 어느 곳으로 퍼지는지 곰곰이 헤아립니다.


  더 나은 소리가 있을까요. 더 낮은 소리가 있을까요. 더 빼어난 소리가 있을까요. 더 아름다운 소리가 있을까요.


  갈고닦는 소리는 무엇일까요. 가다듬는 소리는 무엇일까요. 노래가 되는 소리는 어디에 있고, 꿈처럼 빛나는 소리는 누가 빚을까요.



- ‘저 작고 오래된 무대. 나란히 붙어 있는, 연주자며 노래꾼의 이름. 얼마나 많은 연주자가, 관객이, 여기서.’ (104쪽)

- “너는, 왜 여기 올 결심을 한 거냐?” “저는, 샤미센으로 먹고살기로 결심했으니까요.” (120∼121쪽)





  샤미센으로 살고 싶은 아이는 샤미센이 아이 몸과 마음을 고루 싣습니다. 아이 넋이 샤미센을 거쳐 새롭게 태어납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샤미센을 동아리에서 켜는 아이는 틈틈이 샤미센을 켜면서 아이 생각을 한 올 두 올 싣습니다.


  온몸을 실은 노래가 흐릅니다. 온마음을 담은 노래가 흐릅니다. 모든 꿈이 깃든 노래가 흐르고, 모든 사랑이 피어나는 노래가 흐릅니다.


  돈을 벌려고 샤미센을 켜는 사람이 있고, 할배한테서 물려받은 샤미센을 켜는 아이가 있습니다. 노래가 그저 좋아 샤미센을 켜는 사람이 있고, 어버이한테 물려받은 솜씨를 키워 아주 멋지게 살고 싶은 아이가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노래를 짓습니다. 다 다른 아이가 다 다른 생각으로 다 다른 꿈을 짓습니다.



- ‘뒷배가 없다는 것은, 속박도 없다는 뜻이다.’ (169쪽)

- “인자 학교 안 온다.” “뭐? 안 오다니, 전학 가?” “아니, 그만둘 끼다.” “어, 어째서? 학교는 중요하잖아! 장래 같은 걸 생각하면.” “나는, 샤미센이 있으면 된다. 쭉 그걸 켤 끼다. 이것만 있으면 된다. 내 안에서 학교는 늘 어렵고, 이게 아이다 싶었다.” (174∼175쪽)



  샤미센은 악기이면서 말입니다. 샤미센은 노래이면서 이야기입니다. 샤미센은 연장이면서 징검다리입니다. 샤미센은 넋이면서 마음입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직 모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직 모릅니다. 그러나 꼭 한 가지를 알아요. ‘샤미센을 켜는 동안 마음이 차분’하고 ‘샤미센을 듣는 동안 마음이 자라’는 줄 압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샤미센을 켜는 길을 걷고, 다른 한 사람은 샤미센을 듣는 자리에 섭니다. 모두 이웃이면서 따사로운 동무입니다. 4348.1.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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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의 호랑지빠귀
카사이 스이 글.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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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51



나무가 있어야 새가 찾아온다

― 달밤의 호랑지빠귀

 카사이 수이 글·그림

 대원씨아이 펴냄, 2012.11.15.



  우리 집 네 사람이 지내는 시골집에는 온갖 새가 아주 많이 드나듭니다. 우리 집 네 사람은 하루 내내 온갖 새노래를 듣습니다. 새가 노래하니 새노래입니다. 마당에도, 마당에 있는 나무에도, 뒤꼍에도, 뒤꼍에 있는 나무에도 온갖 새가 마음껏 드나듭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아니 예전에는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는데, 새는 으레 나뭇가지에 앉는 모습을 늘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러려니 하고 여겼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뭇가지가 있어야, 나무가 있어야, 나무가 곳곳에 있어야, 새가 나무를 믿고 기대면서 깃들 수 있는데, 이러한 얼거리를 예전에는 미처 못 느낀 채 멀거니 새를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집 네 사람이 깃든 시골집에 새가 날마다 수없이 찾아올 수 있는 까닭은, 우리 집을 둘러싸고 마당과 뒤꼍에 제법 잘 자란 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없다면 새는 우리 집에 찾아올 수 없습니다.





- “마녀가 원래 저런가?” “상냥한 척해서 애들을 납치하는 거야.” “납치하는 건 고양이 아냐?” (9쪽)

- “굉장해. 비가 그쳤어. 있지, 지금 이거 마법? 마법이야?” (24쪽)



  볼일을 보러 시골집을 떠나 시외버스를 타고 도시로 가다 보면, 여러 가지 모습을 구경합니다. 고속도로 둘레에 높다랗게 ‘소리막이 울타리’를 쌓은 모습도 구경합니다. 시골에서는 그냥 쇳덩이를 세우지만, 도시에서는 ‘경관’이나 ‘미관’ 때문에 ‘유리 울타리’를 세웁니다.


  유리 울타리가 어떤 구실을 하는지 예전에는 잘 몰랐으나, 시골에서 살며 새를 늘 마주하면서 차근차근 깨닫습니다. 고속도로 둘레에 소리막이 울타리를 세우려면 그냥 ‘쇠붙이 울타리’를 세워야지, 유리 울타리를 세우면 안 되는 줄 요즘에야 알아차립니다. 왜냐하면, 새는 유리를 못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꽤 많은 새가 유리 울타리에 머리를 처박고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는다고 합니다. 신나게 날다가 유리 울타리인 줄 모르고 머리를 박는다고 합니다.




- “바다! 바다가 있어. 바다!” “그리고 덥지. 항상 여름인 나라야. 무이네라는 리조트도 있단다. 최근에는 꽤나 개발이 됐다는구나.” “근대화?” “라기보다는 관광지화겠지. 베트남은 쭉 프랑스의 식민지였어. 그래서 지금도 프랑스 빵을 먹는단다. 한 개를 통째로 샌드위치로 만들기도 하고.” (78∼79쪽)

- “있는 일, 없는 일을 떠벌리고 다른 사람을 폄하하며 안심한들, 거짓이든 엉터리든 몇 번씩 반복해 봤자 한낱 거짓이야. ‘진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하단다.” (142쪽)



  카사이 수이 님이 빚은 만화책 《달밤의 호랑지빠귀》(대원씨아이,2012)를 읽습니다. 짤막한 만화를 여럿 묶은 책입니다. 달밤에 노래를 부르는 호랑지빠귀 이야기가 흐르고, 한낮에 물고기를 잡는 물총새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새 둘레에서 저마다 사이좋게 어우러지는 사람들 이야기가 흐릅니다.


  새가 노래하고, 사람이 노래합니다. 어른이 노래하고, 아이가 노래합니다. 아기가 노래하고 할매와 할배가 노래합니다. 다 함께 노래를 해요. 서로서로 웃고 춤추면서 노래를 합니다.





- “선생님이신가요? 훌륭한 직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사람에 따라 다르죠. 전 매일 거짓말만 늘어놓고 있을 뿐이거든요.” (149쪽)

- “천애고아에 노숙자인 녀석은 세상에 널렸어요, 성인 하인츠 님. 그럼 어떡할 셈인데요? 데려와서 평생 돌봐 줄 건가요? 딱 봐도 영감님 쪽이 먼저 죽을 게 뻔하다구요.” “그런 건 알고 있어.” (196쪽)



  사람이 사는 마을에 새가 찾아와야, 사람들이 노래를 새롭게 깨닫습니다. 사람이 사는 마을에 새가 찾아오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만 노래를 잊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는 마을에 나무가 없으면 새가 찾아오지 못하는데다가, 나무가 없고 새가 안 오는 줄 사람들이 못 깨닫기까지 합니다.


  나무가 우거진 마을에 새가 기쁘게 찾아와서 노래를 하고, 새가 노래를 하는 마을에서 사람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함께 노래를 합니다. 노래를 하는 마을은 아름답습니다. 노래가 흐르는 마을은 사랑스럽습니다. 노래가 넘치는 마을에는 법이나 제도나 규칙 따위가 없어도 평화롭습니다.


  그러니까, 노래가 없으면서 법과 제도와 규칙만 있는 마을은 으스스합니다. 노래가 없으면서 대통령과 시장과 군수와 판사와 의사만 있는 마을은 메마르고 거칩니다.





- “결국 언젠가는 모두 죽잖아? 나도 언젠가는 죽어, 형처럼. 아저씨 같은 사람은 순식간에 죽어 버리는 주제에, 어째서, 왜 이런 말을.” “그래, 누구나 언젠가는 세상을 떠난다. 평생 함께 같은 건 없어.” (204∼205쪽)



  나무와 함께 살아야 사람이 사람답습니다. 나무를 심고 아껴야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나무를 바라보고 돌보면서 날마다 쓰다듬을 수 있어야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누구나 나무를 아낄 수 있기를 빌어요. 어른이라면 아이와 함께 나무를 심을 수 있기를 빌어요. 나무 심을 마땅한 땅이 없다면, 나무 심을 마땅한 땅을 마련해요. 어떻게든 나무가 우리 삶터에서 씩씩하게 줄기를 뻗을 수 있도록, 나무가 자랄 땅을 마련해요.


  나무와 함께 노래해요. 나무에 앉아서 기쁘게 노래하는 새와 동무가 되어요. 4348.1.1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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