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보는 풍경 1
정송희 글.그림 / 새만화책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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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73



내가 손수 심어서 피우는 꽃

― 옥상에서 보는 풍경 1

 정송희 글·그림

 새만화책, 2009.1.15.



  정송희 님이 선보인 만화책 《옥상에서 보는 풍경》(새만화책,2009)은 정송희 님이 보낸 어린 나날 이야기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정송희 님 어린 나날을 고스란히 밝혀서 그린 만화입니다. 이 책에 ‘1’라는 숫자가 붙은 만큼 뒷이야기가 곧 나올 듯했는데, 2009년에 첫 권이 나온 뒤 여섯 해가 되도록 다음 권은 나오지 못합니다. 정송희 님은 다른 만화도 꾸준히 그리시는 듯한데, 아무래도 ‘내 이야기’를 그리기가 훨씬 어려울까요.


  만화에 담는 이야기는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가 스스로 겪은 이야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가 스스로 겪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내가 스스로 겪은 이야기는 ‘한 번 그리면 끝’이라고 여길는지 모르지만, 내 이야기만 만화로 그리더라도 끝없이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을 만합니다. 왜냐하면, 어릴 적에 즐기는 놀이 하나를 놓고도 수많은 이야기가 있어요. 날마다 즐긴 놀이는 날마다 새롭게 맞아들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겪지 않은 이야기는 ‘취재’를 해야 합니다. 머릿속으로 그린 이야기를 그리더라도, 이 이야기를 그리려면 여러모로 깊고 넓게 살펴서 더 배워야 하고, 다른 책도 많이 읽어야 하며, 여러 사람한테서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 “흙으로 된 걸 어떻게 먹냐?” ‘그걸 누가 모르나. 적어도 예쁘게 만들었으니, 맛있게 먹는 시늉이라도 하면 좋지 않은가. 심심해 죽겠단 사람이 그거 하나 못 해? 나는 가짜를 진짜처럼 먹는 법을 오빠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10쪽)

- ‘공기놀이는 잘 하는 사람이랑 잘 못하는 사람이 한 조가 돼야 재밌나 보다.’ (31쪽)

- ‘광주 집에는 마당이 없어서 메리처럼 큰 개는 살기 힘들단다. 엄마는 새벽부터 밤까지 개미처럼 바쁘다. 나는 도움은커녕 방해만 된단다.’ (35쪽)





  내 이야기를 그리는 만화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내가 손수 심어서 피우는 꽃이라고 할 만합니다. 내가 기쁘게 가꾸어 피운 꽃을 이웃한테 보여주려고 하는 이야기가 바로 ‘내 이야기’인 셈입니다. 그러니, 《옥상에서 보는 풍경》은 정송희 님이 손수 가꾼 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만화라는 틀로 담아서 새롭게 들려주는 작고 수수한 삶입니다.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모든 수수한 이웃이 저마다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어떤 사랑과 꿈을 가꾸었는가 하는 실마리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정송희 님은 어릴 적에 무엇을 보았을까요? 한숨 짓는 어머니를 보고, 고단한 어머니를 보며, 한숨과 고단함이 잇달아 흐르지만 웃음과 느긋함을 잃지 않는 어머니를 봅니다. 어느 모로 보면 무뚝뚝하지만 살가운 마음이 넘치는 아버지를 봅니다. 조잘조잘 시끄러운 듯해도 사랑스러운 언니를 봅니다. 하나뿐인 오빠를 봅니다. 그리고, 시골에서 즐기는 온갖 놀이를 보고, 도시로 살림집을 옮기고 나서 늘 따분하게 흐르는 하루를 봅니다.


  《옥상에서 보는 풍경》을 보면, 그린이 정송희 님이 혼잣말로 읊는 대목이 자주 나옵니다. 나이가 들고 나서 옛날을 돌아보니 하나씩 떠오르는 ‘혼잣말 같은 이야기’일 수 있으나, 이 모든 혼잣말 같은 이야기는 바로 정송희 님 스스로 어릴 적에 그 자리에 느낀 이야기이지 싶습니다. 오랫동안 가슴에 남은 이야기입니다. 사진을 찍지 않았어도 사진처럼 가슴에 아로새긴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정송희 님이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한테 물려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 “기역, 니은, 디귿.” “저건 뭐다냐?” “몰라.” “거기, 왜 안 따라하냐?” “그게, 뭔지 몰라서라.” “모르니까 따라해야제!” ‘말문이 막혔다. 점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있는데, 이렇게 재미없다는 게 신기했다.’ (43∼44쪽)

- ‘집에 있을 땐 심심해 죽겠더니, 학교에 가니까 집에 오고 싶었다.’ (45쪽)

- ‘셋째 언니는 우리들의 자랑거리다. 그리고 착하다.’ (57쪽)





  재미있다 싶은 놀이를 많이 하며 보낸 어린 나날이 되어야, 만화로 그릴 만한 이야기가 많지 않습니다. 재미있다 싶은 놀이는 거의 못 하면서 따분하게 보낸 어린 나날이라 하더라도, 만화로 그릴 만한 이야기는 많습니다.


  어릴 적에 올려다본 하늘 이야기를 얼마든지 그릴 수 있습니다. 어릴 적에 혼자 맡은 꽃내음 이야기를 얼마든지 그릴 수 있습니다. 어릴 적에 천천히 걷던 길을 가만히 그릴 수 있습니다. 어릴 적에 먹던 밥과 오늘 먹는 밥을 가만히 헤아리면서 이야기 하나를 그릴 수 있습니다.



- “우리 집도 슈퍼 하면 좋겠다.” “왜?” “맞아, 그럼 좋겠다.” “너, 과자 맘껏 먹고 싶어서 그러제?” “어, 그럴 수도 있구마잉!” “저, 능청!” “그게 아녀. 슈퍼 아줌마는 편해 보이는데, 엄마는 여인숙 한다고 만날 이불 빨고, 청소하고, 쉴 틈이 없잖냐!” “원메, 참말로 기특하네!” “오!” (63쪽)

- “나도 처녀 적에, 제비 다리 고쳐 준 적이 있었제.” “제비가 뭐라도 가져왔다요?” “그건 모르겠다. 암튼, 이듬해 봄에 그 제비가 다시 오긴 했제. 그 제비를 다시 보니까 그저 좋더구만, 내 맘이.” (66∼67쪽)

-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너처럼 힘든 일에 처한 사람을 도우면 되제.” “도움은 아줌마한테서 받았는데, 왜 다른 사람한테 은혜를 갚는다요?” “세상일이란 게 그렇다잉.” (85쪽)





  과자 한 봉지를 먹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네 사람이 과자 한 봉지를 먹으면서 이야기잔치를 펼칩니다. 과자 한 봉지쯤이라면 곧 바닥이 날 테지요. 그러나, 서로 한 조각씩 천천히 씹으면서 까르르 웃을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아쉬워 누구 한 사람이 심부름을 다녀올 수 있고, 밭둑에서 쑥을 뜯어 쑥부침개를 부칠 수 있습니다. 슬슬 밥을 차릴 수 있으며, 마당에 놓은 평상에 드러누워 봄볕을 먹을 수 있어요. 봄이니 들마실을 하면서 유채잎을 뜯거나 봄나물을 캘 수 있습니다.


  과자 한 봉지를 사러 함께 나들이를 다녀오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조잘조잘 떠들면서 나들이를 갑니다. 과자는 두 봉지나 세 봉지를 살 수 있지만, 한 봉지만 살 수 있습니다. 고작 과자 한 봉지라 하지만, 과자 한 봉지를 사러 일부러 제법 먼 조그마한 가게까지 갈 수 있어요. 과자를 사려는 뜻보다, 마음 맞는 동무랑 천천히 나들이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려는 뜻입니다. 이리하여, 어릴 적에 겪은 이런 ‘과자 사러 다녀온 이야기’를 얼마든지 만화로도 그릴 수 있고 글로도 쓸 수 있어요.



- ‘짝꿍은 마치 내가 없는 듯, 혼자서 계속 먹는다. 이 모든 게 내겐 매우 낯설다. 엄마는 먹을 게 있으면 항상 나눠 먹었다.’ (89쪽)

- ‘또 여인숙이 문제인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다른 사람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주산을 잘하던 셋째 언니는 얼마 전 은행에 취직했다. 셋째 언니는 남들이 집에서 나가는 시간보다 30분에서 1시간 일찍 나간다. 아침에 여인숙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여인숙이 뭐길래.’ (123쪽)

- ‘여름방학이 되면 할머니 집에 내려갔다. 들판과 냇가에서 하루 종일 놀다 보면, 어느새 자그만 마을에 어둠이 깔리고, 하늘은 붉은 석양으로 물들어 있었다. 우리 식구도 시골에서 살면 참 좋을 텐데.’ (140쪽)





  한국 만화에서 크게 모자란 대목은 ‘수수한 맛’입니다. 한국 만화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대목은 ‘투박한 사랑’입니다. 한국 만화에서 자꾸 도드라지는 아쉬운 대목은 ‘작은 삶’입니다.


  군사독재가 있었고, 군사쿠테타가 있었으며, 끔찍한 학살이 있었습니다. 거짓부렁으로 가득한 신문과 방송과 책이 있으며, 무시무시한 입시지옥이 있으며, 끝없는 경제개발과 새마을운동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수렁에서도 아이들은 웃고 뛰놉니다. 아무리 학원과 학교 사이에서 쳇바퀴를 돌더라도, 아이들은 언제나 작은 놀잇감 하나로도 신나게 웃고 떠듭니다.


  다시 말하자면, 정치와 사회와 경제가 사람들을 짓누르거나 억누르더라도, 작고 수수한 사람들은 오순도순 어깨동무를 하면서 웃음꽃을 피웁니다. 웃음꽃은 언제나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가 되는 웃음꽃이 있기에 삶을 짓습니다.


  어느 역사 현장에 있어야만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습니다. 고무줄놀이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딱지치기와 구슬치기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가랑잎이 구르는 소리를 듣고 까르르 웃은 하루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주고받을 이야기가 아주 많습니다.



- ‘평소에는 손 하나 스치지 않던 사촌오빠가 내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고 돌아섰다. 아버지는 도시의 비싼 생활비 때문에 하루 종일 밖에 나가서 일하는 주연이 엄마, 그로 인해 방치된 아이들을 생각하라고 했단다. 일주일 만에 사촌오빠네는 도시 살림을 뚝딱 정리했다. 주연이도 떠나게 된 셈이지만, 우리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아마 도시에서 즐겁게 논 적이 없어서일 거다.’ (142쪽)



  꽃이 핍니다. 내가 심은 꽃이 피고, 내가 안 심은 꽃이 핍니다. 내가 심은 꽃은 어느새 지더니 새롭게 씨앗을 맺어 둘레에 퍼집니다. 한 번 심은 꽃은 스스로 씨앗을 퍼뜨리며 씩씩한 어미꽃이 됩니다. 어쩌면 온누리 들과 숲을 가득 채우는 수많은 꽃은 맨 처음에 누군가 심은 씨앗이 퍼진 아이들일 수 있습니다. 작은 손길 하나로 심은 사랑이 오랫동안 천천히 퍼지면서 지구별을 아름답게 가꾼다고 할 만합니다.


  조그마한 만화책에 담은 조그마한 이야기가 꽃처럼 핍니다. 네 이야기가 피고, 내 이야기가 핍니다. 우리 이야기가 활짝 핍니다. 봄바람을 맞으면서 피고, 봄볕을 먹으면서 핍니다. 사이좋게 피어나는 이야기는 두고두고 아름다운 숨결이 되어 이 땅에서 새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한테 예쁜 이야기밥이 됩니다. 4348.3.17.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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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새기다
나카노 시즈카 지음, 나기호 옮김 / 애니북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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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85



별을 헤아리는 사람

― 별을 새기다

 나카노 시즈카 글·그림

 나기호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06.1.10.



  별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별을 볼 수 있습니다. 별을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은 별을 볼 수 없습니다. 문득 생각하면 말놀이 같은데, 가만히 돌아보면 말놀이가 아닙니다. 별을 못 보는 사람은 처음부터 별을 헤아릴 마음이 없습니다. 별을 보는 사람은 언제나 별을 헤아릴 마음으로 지냅니다.


  시골에 가야 보는 별이 아닙니다.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보는 별입니다. 시골에서만 쏟아지는 별이 아닙니다.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쏟아지듯이 볼 수 있는 별입니다.


  불을 끄면 별이 한결 잘 보이겠지요. 그러나, 불 때문에 별이 더 보이거나 덜 보이지 않습니다. 내 마음 때문에 별을 보고, 내 마음 때문에 별을 못 봅니다. 별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늘과 마주해야 별이 내 가슴으로 쏟아집니다. 별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하늘조차 올려다보지 않으니, 내 가슴에 들어올 별은 하나도 없습니다.



- ‘언제나 이런 식으로 날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걸 보면 지긋지긋해진다. 치료를 해 주고 있는 건지, 그냥 괴롭히고 있을 뿐인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7쪽)

- ‘아무리 설교를 한들, 어떤 녀석에게 말을 한들, 이 녀석들은 초콜릿 먹는 걸 멈추지 않을 것이다.’ (9쪽)





  바쁜 삶에 어떻게 별을 보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별을 못 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부터 바빴고, 우리는 언제부터 별을 못 보았을까요?


  가만히 따져 보셔요. 우리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단 지는 기껏해야 서른 해쯤 될락 말락 합니다. 새마을운동을 독재정권이 밀어붙인 뒤부터 비로소 ‘바쁘다’는 말이 불거졌고, 도시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돈을 벌 일자리를 찾으면서 바야흐로 ‘바쁘다’는 말이 퍼졌습니다.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이 도시에 몰려서 사니, 도시사람은 너나없이 바쁩니다. 어른도 바쁘고 아이도 바빠요. 어른은 돈을 버느라 바쁘고, 아이는 학교와 학원에 얽매이느라 바쁩니다. 바쁜 어른은, 번 돈을 쓰느라 다시 바쁩니다. 놀러다니거나 술을 마시느라 바쁘고, 인터넷과 스포츠와 게임과 텔레비전과 영화 같은 문화생활을 누린다든지 여행을 하느라 바쁩니다. 아이들도 게임을 하랴 시험공부에 매달리랴 이래저래 참으로 바쁩니다.



- ‘찬찬히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은 너무나 지당했다. 짐승이든 귀신이든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기 바빴던 내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22쪽)

- ‘셋이 화음을 맞추기엔 조금 어려움이 따르지만, 꼭 잘할 수 있을 거야. ‘도’만 같이 잇어 준다면, 이대로 영원히 평온한 생활을 할 수 있어.’ (45쪽)




  나카노 시즈카 님이 빚은 만화책 《별을 새기다》(애니북스,2006)를 읽습니다. 어쩜 이렇게 ‘톤’으로 하나하나 알뜰히 만화를 빚었을까 싶어 놀랍습니다. 오늘날처럼 바쁜 사회에서 이런 만화를 하나 선보이자면 얼마나 손을 많이 써야 할까요. 바쁜 사람들이 이 만화를 느긋하게 넘기면서 차근차근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요? 바쁜 도시사람이 이 만화를 차분하게 읽으면서 하나하나 별자리를 읽거나 헤아릴 틈이 있을까요?



- “무엇보다 오로라가 가장 보고 싶어! 직접 눈앞에 펼쳐지는 오로라는 장관이겠지?” “당연하지! 어찌나 눈이 많이 오는지 파묻힐 지경이라니까! 수백 마리의 야생 순록이 설원을 가로질러 내달리고, 오로라는 매일 별이 가득한 하늘에 커튼처럼 펄럭여 보일 거야!” (101쪽)

- ‘형의 몸은 칠흑 같은 암흑으로 빠져들고 있다. 형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둠을 받아들여 자신의 별로 승화시키는 이 의식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151쪽)



  지구도 별입니다. 해도 별입니다. 달도 별입니다. 온누리에 가득한 별은 모두 별입니다. 지구에서 사는 모든 사람은 참말 ‘사람’입니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 없습니다. 다 같이 사람이요, 다 다르게 사람입니다. 함께 삶을 짓는 사람이요, 함께 사랑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별을 헤아리는 사람은 삶을 헤아립니다. 별 흐름을 읽으면서 삶 흐름을 읽습니다. 별자리를 헤아리면서 삶자리를 헤아리고, 별노래를 부르면서 삶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니까, 별을 아는 사람은 삶을 압니다. 별을 제대로 바라보는 사람은 삶을 제대로 바라봅니다. 학문으로 파고드는 별읽기라면 아무것도 몰라요. 이와 같지요. 학문으로 파고드는 삶읽기라면, 이때에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 “널 괴롭히던 녀석들은 네가 약하기 때문에 상처를 입힌 것이 아니라, 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기운이 두려워서 그런 거야.” (154쪽)

- “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그림을 새겨 넣을 필요가 없어. 원래부터 너만의 문양을 지니고 있으니까!” (156쪽)



  내 별은 내 가슴에 있습니다. 네 별은 네 가슴에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가슴에 별을 품습니다. 나는 내 별을 내 가슴에서 꺼내어 내 온몸에 새깁니다. 너는 네 별을 네 가슴에서 꺼내어 네 온몸에 새겨요.


  내 별이 빛나고, 네 별이 빛납니다. 내 별이 춤추고, 네 별이 춤춥니다. 우리는 함께 손을 맞잡고 별춤을 추면서 별노래를 부릅니다. 언제나 고운 별빛으로 흐드러지고, 늘 사랑스러운 별내음을 맡으면서 하루를 짓습니다.


  만화책 《별을 새기다》를 가만히 새깁니다. 아픈 아이들이 나오고, 노래하는 아이들이 나오며, 초콜릿을 먹는 아이들이 나옵니다. 웃는 아이와 우는 아이가 나옵니다. 모두 별빛처럼 초롱초롱 해맑은 눈망울로 우리를 바라봅니다. 4348.3.17.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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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58
임동확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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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81



시와 꽃님

― 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

 임동확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05.11.25.



  매화꽃이 가득 핀 나무 옆에 서면 매화꽃내음이 훅 퍼집니다. 온몸으로 매화꽃내음이 스며듭니다. 동백꽃이 잔뜩 핀 나무 곁에 서면 동백꽃내음이 확 퍼집니다. 온몸으로 동백꽃내음이 감겨듭니다. 꽃내음은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집니다. 봄에 피어나는 수많은 꽃은 겨울을 고요히 잠들다 일어난 모든 숨결을 살살 간질입니다. 봄꽃이 봄노래를 부르고, 봄바람이 봄노래를 실어 나르며, 봄볕이 봄노래를 듣고 더 기쁘게 웃습니다.



.. 불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보다 다시 그 순간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우릴 더 초조하게 만든다. 단 한순간에 영원히 정지한 불꽃, 그때 이후 늘 한결같은 그 불꽃이 ..  (불꽃에게 바치는 송가)



  뒤꼍에서 함께 쑥을 뜯은 큰아이가 손바닥을 펼칩니다. 쑥을 뜯느라 손바닥과 손가락에 쑥내음이 듬뿍 배었다고 말합니다. 그래, 네 손에 쑥내가 배었구나. 그러면 네 아버지 손에도 쑥내가 배었을 테지? 우리 손에도 몸에도 마음에도 눈에도 귀에도 가슴에도 온통 쑥내가 배었어. 오늘은 이 쑥으로 쑥국을 끓였으니, 쑥국을 기쁘게 먹으면 몸 구석구석으로 쑥물이 고루 퍼진단다.



.. 다 옳다, 흠도 손댈 곳도 없다 / 경주 남산에 무더기로 목 없이 서 있는 / 석불도 석불은 석불이다 ..  (온몸을 들어올려)



  임동확 님이 쓴 시집 《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실천문학사,2005)를 읽습니다. 시를 읽는 동안 봄꽃과 봄풀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아이들과 함께 새로 맞이한 봄을 그리고, 올해에 새롭게 맞이한 봄은 지난해와 어떻게 다른가를 그리며, 올해에 새로 누리는 봄은 앞으로 찾아올 수많은 봄하고 어떻게 다를까 하고 가만히 그립니다.


  내 그림은 먼저 마음에 그립니다. 마음에 그린 그림은 어느새 눈을 거쳐 머릿속으로 스미고, 머릿속으로 스민 그림은 가슴을 지나 온몸으로 퍼집니다.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얼굴을 비빕니다. 물 묻은 손으로 얼굴을 비비는데 찬물이 찬기운을 짜르르 퍼뜨리면서도 상큼하고 시원한 기운을 함께 퍼뜨립니다. 그야말로 봄내요 봄기운입니다. 설거지를 마쳤어도 쑥내는 손에서 안 가십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아이들을 재우는 잠자리에서도 쑥내는 안 가셔요. 이불깃을 여미는 손에도 쑥내가 퍼지고, 아이들이 덮은 이불에도 쑥내가 흐릅니다.



.. 미루고 미루다가 / 연세대 구내 안경점에서 돋보기를 맞추고 / 잠시 기다리는 동안 / 여직 다 읽지 못한 세상과 책, / 그리고 부르다 만 노래와 / 여전히 미로일 뿐인 사랑의 길을 생각한다 ..  (노안)



  사람한테는 몇 가지 몸이 있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합니다. 내 몸은 눈으로 보는 몸만 있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때때로 우리 아이들을 마음으로 쓰다듬을 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도 제 어버이를 마음으로 어루만져 주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고 두 손을 가슴에 포개면서 잠이 들 때에 조용히 꿈을 꿉니다. 이 아이들과 누리는 삶을 꿈꾸고, 내가 이 아이들한테서 받는 사랑을 꿈꿉니다. 함께 짓는 삶을 꿈꾸고, 함께 가꾸면서 온누리로 퍼뜨리는 이야기를 꿈꿉니다.



.. 어느새 커튼 자락에 숨어 있는 청개구리 한 마리 / 파리채로 등 떠밀어 서둘러 밖으로 내보낸다 ..  (파리채와 더불어)



  꽃님은 어디에서나 꽃님입니다. 별님은 언제나 별님입니다. 오줌그릇을 비우러 뒤꼍을 다녀오면서 별빛을 바라봅니다. 바야흐로 저녁에도 포근하게 스미는 바람결을 천천히 느낍니다. 우리 집 나무한테 인사를 하고, 이튿날에도 다 함께 즐겁게 놀자는 마음을 남기면서 마루로 올라섭니다.



.. 저도 모르게 왼손이 편하고 좋아 / 왼손으로 밥 먹고 글씨를 쓰다가 / 오른손은 늘 바르고 옳으니 / 오른손만 사용하라며 어릴 때부터 / 엄마한테 사랑의 회초리 맞고 자란 / 내 귀여운 왼손잡이 애인은 이제 / 왼손 오른손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 양손잡이가 되어 있지요 ..  (내 애인은 왼손잡이)



  내 님은 언제나 내 님입니다. 내 마음속에서 숨쉬는 하느님은 늘 내 하느님입니다. 아이들 마음속에도 하느님이 있고, 곁님 마음속에도 하느님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마음속에 하느님을 품습니다. 이 하느님은 봄이 되면 꽃이 피어나는 바람을 타고 꽃님으로 거듭납니다. 이 하느님은 여름이 되면 하얀 꽃이 지고 빨간 열매를 매다는 딸기처럼 새님이 됩니다. 이 하느님은 가을이 되면 논자락을 누렇게 덮으면서 물결치는 샛노란 나락처럼 고운 들님이 됩니다. 이 하느님은 겨울이 되면 더욱 새파란 하늘빛처럼 싱그럽게 춤추다가 고요히 잠드는 꿈님이 되어요.


  시 한 줄에 담는 이야기는 꽃님이면서 새님이요 들님이면서 꿈님입니다. 시 한 줄로 나누는 이야기는 삶이면서 사랑이고 노래입니다. 시집 《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는 우리한테 어떤 삶과 사랑과 노래를 들려주려 할까요. 우리는 저마다 먼먼 옛날에도 이곳에 있었을 텐데, 어떤 넋을 품은 숨결로 서로 이웃이 되어 삶을 지었을까요. 쑥내가 물씬 풍기는 손으로 시집을 잘 읽고 조용히 덮습니다. 4348.3.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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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닷 Photo닷 2015.3 - Vol.16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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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203



저마다 사진에 담는 말

― 사진잡지 《포토닷》 16호

 포토닷 펴냄, 2015.3.1.



  사진잡지 《포토닷》 16호(2015.3.)를 읽습니다. 《포토닷》 16호는 새로운 해에 새롭게 찾아온 봄날을 엽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잡지 삼월호는 봄날을 열고, 잡지 유월호는 여름을 열며, 잡지 구월호는 가을을 엽니다. 한 해를 열두 달로 나누면, 석 달마다 새로운 철이 돌아오고, 석 달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자랍니다.


  “최근 지속적으로 불거지고 있는 수상작에 대한 사진 조작과 합성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월드프레스포토 재단은 올해도 새로운 규정을 마련했다. 지난해부터 최종 수상작에 대한 디지털 검증을 공식 선정과정에 포함시킨 데 이어 올해는 아예 카메라에 저장된 그대로의 원본 파일을 제출할 것을 의무 규정으로 정한 것이다(21쪽/이철승).” 같은 이야기를 가만히 읽습니다. 사진공모전에서 필름을 내야 한다면, 사진을 이리저리 만질 수 없었을 테지요. 그러나, 원판 필름이나 원본 파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찍히는 사람’과 몰래 이야기를 꾸밀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꾸며서 찍은 사진을 ‘꾸미지 않은 사진’하고 어떻게 가릴 수 있을까요? 꾸며서 찍은 사진과 꾸미지 않은 사진은 누가 알아볼 수 있을까요? 꾸미지 않기에 사진다운 사진이 되고, 꾸미기에 사진답지 않은 사진이 될까요?


  “사진을 전공할 때부터 작가로서의 자신을 사진가라기보다는 Visual Storyteller라고 생각했다. 어떤 매체를 사용하고 어떤 표현양식을 가지는가보다는 내가 어떤 얘기를 풀어내고자 하는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며(31쪽/차주용).” 같은 이야기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요즈음은 ‘사진가’보다 ‘예술가’가 많습니다. 요즈음은 ‘사진기를 손에 쥔 예술가’가 대단히 많습니다. 그런데, 사진기를 쥔 예술가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립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아니면서 사진밭을 기웃거리고, 사진을 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사진밭에서 일거리를 찾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울타리(경계)를 허무는 모습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울타리가 없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어느 모로 본다면 제자리를 모르는 모습입니다. 제철을 모르고 제길을 모르는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사진을 안 꾸며야 하지도 않으나, 사진을 꾸며야 하지도 않습니다. 사진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사진은 ‘찍어야’ 할 뿐입니다. 사진은 ‘찍’되, 이야기를 찍어야 합니다.


  ‘만듦사진’은 좋은 사진도 나쁜 사진도 아닙니다. 만듦사진은 그저 만든 사진일 뿐입니다. 만들든 안 만들든,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패션사진이나 상업사진은 거의 모두 ‘만들’거나 ‘꾸며’서 찍지만, 이 사진을 모두 ‘사진’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달리, 이야기를 담으려 하지 않고 손짓만 하거나 포토샵으로 매만지기만 한다면 사진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때에는 손짓이나 포토샵질이 되겠지요.


  다시 말하자면, 예술은 그저 예술입니다. 문화는 그저 문화입니다. 삶은 그저 삶입니다. 사진도 언제나 그저 사진이기에, 사진은 예술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고, 예술도 사진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특별한 모델이 있거나 찾으려 하지 않으며, 내게는 모두가 훌륭한 피사체다 … 나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환경과 꿈을 공유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56, 63쪽/니콜라 앙리).”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니콜라 앙리라고 하는 분은 ‘이야기를 엮으’려고 오랫동안 살피고 생각한 끝에 한 장을 찍는다고 합니다. 이녁이 찍는 사진은 이야기를 드러내려고 수없이 만지고 살피며 ‘어떤 모습을 꾸미는 몸짓’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면 이녁이 하는 일은 사진일까요, 아닐까요. 예술일까요, 아닐까요. 삶일까요, 아닐까요. 이야기일까요, 아닐까요.


  “작가나 작품의 스타성에 의존하는 대형 사진전시를 보다 보면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저 작품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치부하는 것 같아서다(77쪽/이소민).” 같은 이야기를 찬찬히 되읽습니다. 대형 사진전시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부풀리는 사진전시는 으레 ‘스타성’에 기울면서 돈벌이에 많이 치우치다 보니, 어느새 ‘사진으로 이야기를 나누려는 기쁨’을 소홀히 하기 일쑤입니다. 대형 사진전시를 하더라도 ‘사진으로 이웃과 나누는 이야기’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대형 사진전시를 나무라는 말은 불거지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돈을 버는 일이 나쁠 수 없어요. 돈만 생각하니까 쓸쓸할 뿐입니다. 기쁘게 벌어서 즐겁게 나누는 돈이 아니라, 그저 쌓기만 하는 돈이 된다면 씁쓸할 뿐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 한 장으로 삶을 노래하는 기쁨을 나눌 수 있다고 느낍니다. 사진을 읽는 사람은 사진 한 장으로 사랑을 노래하는 즐거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참을 촬영하고 있는데 한 모녀가 옆에서 핸드폰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촬영해 달라고 했다. 이들을 찍어 준 후 내 카메라를 들어 보였더니 포즈를 취해 준다. 시간이 지나면 한몸이 과거와 미래로 나뉘겠지만, 현재는 둘로 나뉘어 외양의 아름다운 순간을 드러내고 있다. 어머니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딸의 신체는 분명 어머니의 부분이었으니 말이다(80쪽/남택운).”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사진이 흐릅니다. 네 사진을 내가 찍고, 내 사진을 네가 찍습니다. 낯선 사람이 찍어 달라는 사진을 한 장 찍어 주면서, 낯선 사람이 오늘까지 살아온 나날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이들이 걸어온 길과 오늘 선 자리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두 헤아립니다.


  “우리가 고민해 봐야 할 것은 과연 증명사진을 통해 한 개인의 성품이나 인상을 원하는 대로 보여주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또한 각 직업군이나 기업마다 그에 적합한 사진 스타일이 존재할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104쪽/이기원).” 같은 이야기를 읽다가 책을 살짝 덮습니다. 증명사진이 한 사람을 오롯이 보여줄 수 없다면, 다른 모든 사진도 한 사람을 오롯이 드러낼 수 없습니다. 사진관에서 찍는 증명사진뿐 아니라, 전문 사진가 여러 사람이 찍는 사진도 ‘한 사람 삶을 오롯이 밝히지 못한다’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우리는 새롭게 한 마디를 할 수 있습니다. 사진 한 장이 한 사람을 모두 보여줄 수 없지만, 사진 한 장이 한 사람을 모두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한 사람한테 깃든 숨결과 넋과 사랑과 꿈을 사진 한 장으로 찍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사진 한 장으로 한 사람을 모두 담아서 드러낼 수 있습니다.


  “누네마티는 여정 내내 혹여 아이들의 학교에서 모국어(위구르어)를 더 이상 교육받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었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서북공정을 위해 많은 한족들을 신장자치구와 티베트 등으로 이주시켰다. 학교에서는 아직까지 민족어와 북경어를 함께 가르치지만 머지않아 북경오로만 교육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언제부턴가 나돌고 있다고 한다(116쪽/이경택).” 같은 이야기는 먼 나라에서 터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곁에서도 터지는 이야기입니다. 일제강점기에만 겪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사람들은 고장말을 잊거나 잃습니다. 학교교육이 널리 뿌리를 내리면서, 모든 마을에서 다 같은 교과서만 바라보아야 하니, 서울 표준말이 아니고는 말을 익히지 못해요. 이제 한국에서 부산말이나 광주말을 따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시골에서도 시골말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교과서와 책과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이 ‘다 다르던 말’을 ‘다 같은 말’로 바꾸어 놓습니다.


  다 다른 말이 다 같은 말로 바뀌면 어떻게 될까요? 모두 틀에 박힌 말이 될 테지요. 모두 틀에 박힌 말이 되면, 우리 삶은 어떻게 흐를까요? 모두 틀에 박힌 삶으로 흐를 테지요. 모두 틀에 박힌 삶으로 바뀌면 사진은 어떻게 될까요?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은 다를 테지만, 사진기에서 나오는 사진은 모두 틀에 박히고 말 테지요.



  “사진이론을 많이 익힌 사람은 사진이론에 맞추어 사진을 찍거나 읽습니다. 사진역사를 많이 살핀 사람은 사진역사에 맞추어 사진을 찍거나 읽습니다. 이론이나 역사를 따로 안 살피거나 거의 모르는 사람은 이론이나 역사에 맞추어 사진을 찍거나 읽는 일이 드뭅니다 … 아주 많은 사람들은 어느 사진 한 장이 어떤 사진기로 찍었는지 거의 모르거나 아예 안 살핍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 이름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회사 사진기로 얻은 사진인가?’는 사진읽기에서 대수롭지 않고 ‘누가 찍은 사진인가?’도 사진읽기에서 대수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 어떤 사진을 찍든, 사진에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야기를 담기에 사진찍기요, 이야기를 느껴서 나누기에 사진읽기입니다(125∼126쪽/최종규).” 같은 이야기를 찬찬히 곱씹습니다. 이론이나 역사를 가르치기에 사진을 더 잘 알 수 있지 않습니다. 이론이나 역사를 가르치면 이론이나 역사를 더 잘 알 뿐입니다. 실기를 많이 가르치면 실기를 더 잘 알 뿐입니다. 답사를 자주 다니면 답사를 잘 알 뿐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면서 배워야 할까요? 우리는 무엇을 나누면서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요?


  우리는 삶을 보여주고 나누면서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사진에 담는 이야기는 언제 어디에서나 늘 삶입니다. 사진에 담는 삶이라는 이야기는 언제 어디에서나 늘 사랑입니다. 삶을 알고 사랑을 아낄 때에 비로소 사진을 알고 아낄 수 있습니다. 삶을 느끼고 마주하면서 따사로이 바라볼 수 있을 때에 바야흐로 사진을 제대로 느끼고 마주하면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책을 읽어야 똑똑해지지 않듯이, 더 많은 이론과 역사를 익혀야 사진을 잘 찍거나 잘 읽지 않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르면서 아름다운 삶과 사랑을 기쁘게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진을 찍거나 읽는 몸짓은 언제나 우리 삶과 사랑으로 그대로 나타납니다. 저마다 사진에 담는 말이란, 저마다 제 삶에 심는 사랑씨앗 한 톨입니다. 4348.3.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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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차 웅진 세계그림책 7
다이앤 딜론, 레오 딜론 그림,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글, 이상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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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89



작은아이가 달리는 길

― 작은 기차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글

 레오 딜론·다이앤 딜론 그림

 이상희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 2001.12.22.



  우리 집 다섯 살 작은아이는 ‘양말 옷걸이’를 으레 기차로 여겨 갖고 놉니다. 두 아이가 아직 태어나기 앞서 ‘양말 빨래를 널 적에 쓰려고 장만한 옷걸이’는 먼저 큰아이가 태어난 뒤 옷걸이보다 장난감 구실을 했습니다. 이러다가 큰아이는 다른 놀잇감을 찾으면서 ‘양말 옷걸이’를 내려놓았고, 어느새 양말 옷걸이에 양말을 꿰며 집일을 거드는 살림순이가 되었어요. 이즈음부터 작은아이는 양말 옷걸이를 제 놀잇감으로 삼는데, 처음에는 그저 흔들면서 놀다가, 두 다리로 서고 씩씩하게 걷고 달릴 수 있는 때부터 이 옷걸이를 자동차라느니 기차라느니 비행기라느니 외치면서 놉니다.



.. 작은 기차 두 대가 철길을 달려요. 작은 기차 두 대가 서쪽으로 가요 ..  (2쪽)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님이 글을 쓰고, 레오 딜론·다이앤 딜론 님이 그림을 그린 《작은 기차》(웅진주니어,2001)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큰아이는 기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이 그림책을 그저 시큰둥하게 지나갔습니다. 그렇구나 하고 이 그림책을 치웠는데, 작은아이가 태어나 무럭무럭 자라면서 기차와 자동차에 흠뻑 빠지며 놀기에, 문득 이 그림책을 건네니, 작은아이는 눈을 반짝반짝 빛냅니다.


  옷걸이를 기차로 삼고, 나뭇가지와 돌멩이와 끈도 모두 기차로 삼는 아이라면, 그림책 《작은 기차》는 더없이 사랑스러우면서 재미있다고 할 만합니다. 언제나 스스로 요모조모 조각을 이어서 기차 장난감을 새로 빚을 줄 아는 아이라면, 《작은 기차》라는 그림책은 그지없이 애틋하면서 신나리라 느낍니다.


  작은아이가 큰아이더러 그림책을 읽어 달라고 말합니다. 두 아이가 그림책 하나를 갖고 놉니다. 두 아이가 다른 놀이에 빠져서 그림책을 방바닥에 그대로 두고 다른 데로 갑니다. 가만히 그림책을 집어들어 새삼스레 펼칩니다. 새롭고 날씬한 기차 하나하고, 오래되고 투박한 기차 하나가 나란히 나옵니다. 새롭게 날씬한 기차는 기찻길을 달립니다. 오래되고 투박한 기차는 ‘아이가 사는 집’을 구석구석 달립니다.



.. 칙칙폭폭, 칙칙폭폭, 작은 기차 두 대는 서쪽으로 가는 강을 건너요 ..  (13쪽)





  두 기차는 스스로 달립니다. 하나는 기찻길을 따라 달립니다. 다른 하나는 기찻길이 아닌 온 집안을 달립니다. 하나는 그저 기찻길을 따라 달리며 둘레를 구경하지만, 다른 하나는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모두 돌아다니면서 온 집안을 샅샅이 살핍니다.


  커다란 기차는 집안을 달리지 못합니다. 작은 기차는 드넓은 들과 숲과 골짜기와 바다를 달리지 못합니다. 커다란 기차는 들과 숲과 골짜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작은 기차는 아기자기한 살림과 부엌과 마루와 씻는방을 골고루 이야기해 줍니다. 두 기차는 서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이가 잠든 밤에 가만히 속삭이듯이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 눈이 내려 하얗게 땅을 덮었어요. 서쪽으로 가는 작은 기차 두 대도 눈에 덮였지요 ..  (18쪽)





  바람이 불며 구름이 흐릅니다. 바람이 멎고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랗습니다. 때때로 비행기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두 줄기나 한 줄기 자국을 남깁니다. 파랗게 빛나는 하늘에는 해님이 있습니다. 온누리를 골고루 따뜻하게 보듬는 해님입니다. 봄을 맞이한 들판에는 따뜻한 볕을 먹고 싱그럽게 파란 바람을 마시는 작은 싹이 올망졸망 돋습니다. 나무마다 겨울눈을 틔우려고 온힘을 내고, 일찌감치 꽃과 잎을 틔운 나무는 이러한 나무대로, 아직 꽃이나 잎을 틔우려면 한참 남은 나무는 이러한 나무대로, 조용히 두 팔을 벌리고 서서 볕과 바람을 맞이합니다.


  따사로운 해님은 작은 기차를 어루만집니다. 너그러운 해님은 커다랗고 날씬한 기차를 보듬습니다. 두 기차는 즐겁게 봄바람을 가릅니다. 두 기차는 신나게 봄볕을 먹으면서 어디로든 나들이를 갑니다. 아이는 새근새근 잠을 자면서 푸르고 싱그럽게 꿈을 꿉니다. 이제 집안을 한 바퀴 다 돈 작은 기차는 아이 곁에서 가만히 쉬면서 아이가 있는 꿈나라로 찾아가서 함께 놀겠지요. 4348.3.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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