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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새 - 타카하시 루미코 걸작 단편집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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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22



내 삶은 내가 짓는다

― 운명의 새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9.25.



  마당으로 멧새가 찾아와서 노래를 부를 적에, 마음을 기울여야 이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에 멧새가 살포시 내려앉아서 짝을 부를 적에, 눈길을 두어야 이 몸짓을 알아봅니다. 마당에 있어도 새를 못 느낄 수 있고, 새가 코앞을 스치고 지나가도 못 알아챌 수 있습니다.


  잎이 모두 진 나무에 조그마한 겨울눈이 단단히 맺습니다. 나무 곁에 서서 찬찬히 바라보는 사람은 겨울눈을 알아봅니다. 추운 바람이 불면 풀이 죄 시들지만, 볕이 포근히 내리쬐는 날이 이어지면 어느새 조그마한 풀싹이 봉긋봉긋 고개를 내밉니다. 흙이 있는 곳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사람은 작은 가을풀이나 겨울풀을 알아봅니다.


  바라보려 할 적에 바라봅니다. 바라보려 하기에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차립니다. 바라보려 하지 않을 적에는 바라보지 못합니다. 바라보려 하지 않기에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 도무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 “어멈은 굳이 안 배워도 음식 잘하잖니?” “정말요? 아버님. 고맙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을 간병하던 동안, 음식에 통 신경을 못 쓰다 보니 솜씨가 많이 떨어진 것 같거든요.” (5∼6쪽)

-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엔 사랑이 없었다.’ (42쪽)



  타카하시 루미코 님이 그린 만화책 《운명의 새》(학산문화사,2014)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빚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둘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운명의 새》에 나오고, 이웃이나 동무를 《운명의 새》에 나오며,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나 같은 사람이 《운명의 새》에 나옵니다.


  곰곰이 읽고 다시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우리 가슴을 건드리거나 움직이거나 울리는 만화는 ‘어디 먼 데 있는 딴 나라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을 따스하게 보듬거나 어루만지거나 쓰다듬는 만화는 ‘뚱딴지 같거나 뜬금이 없다 싶은 별나라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곱게 피어나는 이야기는 우리 둘레 어디에나 있습니다. 우리 둘레 어디에 있든 나 스스로 이웃과 동무를 바라보고 마주하며 사랑할 수 있으면, 곱게 피어나는 이야기를 늘 누립니다. 살가이 흐르는 이야기는 나한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내 삶을 스스로 아끼고 돌보면서 가꿀 수 있으면, 살가이 흐르는 이야기를 누리면서 기쁘게 웃습니다.





- ‘사람의 운명이 보인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을 구하지 못했을 때. 자기의 무력함과 마주해야 한다는 쓰디쓴 기분을. 그래서 요즘은 아예 포기하고 산다. 그래.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78쪽)

- ‘행복하게 살고 있었구나. 정말 다행이다. 분명 너는 자기 힘으로 운명의 새를 쫓아 보냈겠지. 어쩐지 구원을 받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나는 이제 망설이지 않고 내 힘을 남들을 위해 써야지. 후회하지 않도록.’ (98쪽)



  내 삶은 내가 짓습니다. 내 이야기는 내가 씁니다. 내 사랑은 내가 가꿉니다. 내 보금자리는 내가 돌보고, 내 아이는 내가 가르치며, 내 어버이는 내가 섬깁니다. 내 밥은 내가 챙겨서 먹고, 내 몸은 내가 스스로 보듬으면서 다스립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운명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 삶길은 스스로 열어서 스스로 걷습니다. 하늘이 시킨 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휩쓸리는 사람은 더러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갈 적에 웃음이 나올까 생각해 봅니다. 스스로 살고 싶은 대로 살 적에 웃음이 나올 테지요. 어떤 일이나 놀이를 할 적에 노래를 부를까 헤아려 봅니다. 스스로 즐겁게 일하거나 놀이를 하면 노래가 터져나옵니다.





- “처음에 우리 집의 불은 진짜 우연이었어요, 밤에 폐휴지를 내놓으려고 나가는데, 마을 회보의 우리 집 기사가 눈에 들어왔죠. 무척 행복해 보였어요. 하지만 사실 남편은 출장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매주 금요일이면 다른 여자한테 가서 자고 와요. 전, 그걸 알고 있었죠.” (128∼129쪽)

- “그 사람은 이제 날 떠날지도 몰라.” “저, 그렇게 걱정이 되면 집에 가 보셔야죠. 전 알 수가 없네요. 사랑하는 아내를 내버려두고 밤마다 술이나 마시다니.” (140쪽)



  만화책 《운명의 새》에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이제껏 삶을 깊이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고, 뒤늦게 삶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날마다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사람이 있고, 날마다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물결에 휩쓸리는 사람이 있으면, 물결을 헤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못 보는 모습을 보는 사람이 있고, 둘레에서 이러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길을 걷습니다. 더 나은 길이나 덜 좋은 길은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 골라서 스스로 가는 길입니다.





- “부엌살림은 어멈에게 맡기기로 했으니까, 난 상관없다. 그래도 버섯된장국을 할 때는, 두부나 무 정도는 더 넣으면 좋겠다 싶지만.” (175쪽)



  지난해에 심은 복숭아나무 가운데 한 그루가 우리 집 뒤꼍에서 제법 크게 자랐습니다. 보름쯤 앞서 가을잎을 모두 떨구었고, 이제 겨울눈이 앙증맞게 납니다. 복숭아나무 앙상한 가지에 맺힌 겨울눈을 살며시 쓰다듬으면서 이듬해 봄을 살그마니 그립니다. 어떤 잎이 새로 날는지 설레고, 어떤 꽃이 새로 필는지 두근거립니다. 우리 집 복숭아꽃을 마주할 수 있으면, 우리 집 아이들은 날마다 복숭아꽃을 보러 뒤꼍으로 올 테며, 복숭아꽃이 나누어 주는 냄새를 맡으려고 뒤꼍에서 놀 테지요.


  무화과나무 둘레에는 어린 무화과나무가 조그맣게 싹을 틔워서 올라옵니다. 후박나무 둘레에는 어린 후박나무가 자그맣게 싹을 틔워서 올라옵니다. 커다란 나무 둘레에는 으레 어린나무가 자랍니다. 어린나무는 큰나무 둘레에서 포근하게 사랑을 받습니다. 다만, 이 어린나무가 모두 우람하게 크지는 못합니다.


  앞으로 백 해가 흐르고 삼백 해가 흐르면, 우리 집 나무는 모두 우람하게 자라리라 생각합니다. 집보다 훨씬 큰 나무가 될 테고, 어쩌면 삼백 해쯤 뒤에 이 집에서 살 아이들은 우람하게 자란 나무를 베어 새롭게 집 한 채 지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뒷날 아이들은 다시금 나무를 심어 삼백 해를 돌보면서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어요.


  나는 내 어버이한테서 나무나 숲이나 땅이나 집을 물려받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나무와 숲과 땅과 집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손수 가꿀 수 있는 보금자리를 물려주고 싶고, 이 보금자리를 아이들이 다시 새 아이들한테 물려주면서 두고두고 아름답게 보듬을 수 있기를 빕니다. 까만 밤을 초롱초롱 빛내며 채우는 별을 올려다보면서 비손합니다. 내가 손구 일굴 삶을 찬찬히 그립니다. 4347.11.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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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 구보 씨의 하루 - 일상용품의 비밀스러운 삶
존 라이언.앨런 테인 더닝 지음, 고문영 옮김 / 그물코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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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68



신문·방송 끊어야 나라를 바꾼다

―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

 존 라이언·앨런 테인 더닝 글

 고문영 옮김

 그물코 펴냄, 2002.3.5



  이야기책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그물코,2002)는 지구별 사람들이 하루 동안 무슨 일을 하면서 지내는가를 돌아보면서 ‘쓰레기’를 건드립니다. 지구별 사람들이 지구별을 아끼거나 사랑하는지, 아니면 지구별 사람들 스스로 지구별을 망가뜨리거나 어지럽히는지 살핍니다.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는 커피·신문·티셔츠·신발·자전거와 자동차·컴퓨터·햄버거·감자 튀김·콜라 이렇게 아홉 가지와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날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마주할 만하다 싶은 아홉 가지가 지구별을 어떻게 흔드는지 차근차근 짚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고 도시에서 일하거나 노는 여느 사람들이 하루에 쓴다고 하는 ‘지구 자원 54킬로그램’과 얽힌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서 보여줍니다. 한 사람이 지구 자원을 날마다 54킬로그램씩 쓴다면, 지구별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54킬로그램에 이르는 지구 자원은 날마다 새로운 쓰레기로 거듭날까요, 아니면 이러한 숫자를 깨거나 바꿀 수 있을까요.



.. 송아지가 먹은 500그램의 사료는 100그램 정도의 살코기 조직으로 변한다 … 미국의 가축들은 미국 내 옥수수 생산량의 60퍼센트를 소비하며, 그것은 전세계 옥수수 생산량의 25퍼센트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 1999년에 한국에서는 부족해서 수입된 물량을 포함해서 옥수수는 75퍼센트를, 콩은 70퍼센트를, 밀은 50퍼센트를 사료용으로 소비했다 … 햄버거용 고기 100 그램을 생산하려면 2천 리터 이상의 물이 필요하다 … 또한 100그램 정도의 고기가 든 햄버거를 먹었기 때문에 구보 씨 역시 그 무게의 다섯 배에 달하는 표토의 상실에 기여하게 되었다 ..  (95∼99쪽)



  예부터 어느 나라나 겨레에서든 ‘쓰레기’란 없습니다. 쓰레기란 예부터 있을 수 없습니다. 쓰고 남는다든지, 쓰다가 더 못 쓸 만한 마병이 된다면, 이러한 것은 모두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를테면 불쏘시개나 거름이 됩니다.


  도시가 생기면서 쓰레기가 함께 생깁니다. 도시가 커지면서 쓰레기가 함께 늘어납니다. 도시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면서 쓰레기도 함께 북적거립니다. 더욱이,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넘치고 넘치다 보니 집을 짓거나 길을 내거나 건물을 올릴 터가 모자라, 넘치는 쓰레기를 둘 길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생기는 쓰레기를 도시에서 건사하지 못합니다. 도시는 시골에서 밥과 옷과 집을 얻어야 하는데, 시골에서 얻은 밥과 옷과 집을 쓰레기로 바꾸어 시골로 보냅니다.


  도시에서는 스스로 전기를 만들지 못합니다. 시골에 세운 커다란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어, 다른 시골에 송전탑을 엄청나게 때려박아서 도시로 전기를 끌어들입니다. 도시에서는 물건을 손수 만들지 못합니다. 시골에 지은 수많은 공장에서 온갖 물건을 만들어, 다른 시골에 깐 고속도로를 거쳐 도시로 온갖 물건을 실어 나릅니다.


  도시가 있으니 쓰레기가 있습니다. 도시 때문에 쓰레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도시사람이 늘고 시골사람이 줄면서, 시골에서는 농약과 비닐과 비료 따위를 마구마구 퍼붓습니다. 쓰레기나라 도시는 쓰레기나라 시골을 만들기까지 합니다.



.. 이웃들과 신문을 같이 구독하라 … 직장 또는 모임에서 동료들과 공동으로 신문을 구독해서 돌려읽어라 … 신문을 도서관에서 읽어라 … 신문을 매일 읽지 않는다면 정기 구독하지 말아라 … 소비자로서 신문사들이 재생 용지를 사용하도록 압력을 넣어라 … 신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고와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읽는 대신 주변 사람들과 세상에 더 관심을 기울여라 ..  (35쪽)



  도시에서는 ‘음식물쓰레기’입니다. 살림집이나 밥집에서 밥을 지으면서 나오는 찌꺼기를 둘 흙땅이 없기 때문에, 도시에서는 모두 ‘음식물쓰레기’입니다. 도시에서는 흙땅도 없지만, 소나 돼지나 개를 흙마당이나 흙땅에서 키우지 못하니, 밥찌꺼기라든지 남은 밥을 집짐승한테 주지 못합니다. 도시에서 개를 키우는 이들 가운데 개한테 ‘남은 밥’을 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게다가, 도시에서 키우는 개가 누는 똥오줌은 어떻게 하는가요. 사람이 누는 똥오줌조차 거름으로 삼지 못하는 얼거리이니, 도시는 온통 쓰레기밭입니다.


  그러고 보면, 도시에서는 신문과 방송도 쓰레기입니다. 날마다 새로 찍는다는 종이신문은 어떤 이야기를 담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날마다 수십만이나 수백만 부씩 찍는다는 신문은 ‘사람을 살리거나 사랑하거나 아끼는 이야기’를 다루는가요? 아니면 지저분한 정치다툼 이야기를 다루는가요? 더욱이, 신문은 ‘기사’보다 ‘광고’가 훨씬 많습니다. 광고가 훨씬 많은 신문에 나오는 광고는 ‘물건을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써서 더 많이 쓰레기를 만들라’는 길만 밝힙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흐르는 방송은 신문과 엇비슷합니다. 방송도 광고투성이입니다. 방송에 나오는 광고는 신문 못지않게 ‘소비 사회’를 부추깁니다. 더 쓰고 더 사고 더 버리고 다시 쓰고 다시 버리라는 말을 끝없이 외치는 방송 광고입니다. 도시에 살며 신문과 방송을 가까이하면 가까이할수록, 쓰레기를 더 만들고 쓰레기를 더 버리면서 아름다운 삶과는 등지고 맙니다.


  가만히 보면, 시골사람은 신문을 거의 안 읽습니다. 아니, 시골에서 신문을 받아서 읽는 여느 살림집은 아예 없다고 할 만합니다. 아니, 시골에 있는 작은 마을까지 신문을 날라다 주지도 않아요. 그도 그럴 까닭이, 신문을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도시 이야기’뿐입니다. 도시에 있는 정치·경제·사회·교육·문화·예술·스포츠 따위를 다루는 신문입니다. 시골에 있는 숲이나 들이나 바다나 멧골이나 나무나 풀이나 꽃이나 흙이나 햇볕이나 빗물을 다루는 신문은 없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시골 이야기는 굳이 신문으로 안 다룰 만합니다. 시골에서는 눈을 들어 둘레를 바라보면 모두 ‘아름다운 숨결’이니까요.


  요새는 시골 할매와 할배도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새소식을 보지만, 이 두 가지 빼고 시골사람이 볼 만한 방송도 없는데다가, 한창 바쁜 일철에는 아무것도 안 봅니다. 신문도 방송도 오직 도시사람 입맛에 맞추어 도시 물질문명을 키워서 쓰레기를 신나게 만드는 데에 얽매입니다.



.. 건물이 아니라 당신의 몸을 따뜻하게(또는 차게) 만드는 데 애써라 … 좋은 동료는 친한 사람들이 대형 자동차를 몰도록 권하지 않는다 … 구보 씨는 세계를 자신의 힘만으로 바꿀 수 없지만, 오늘 그가 자전거를 타고 사무실에 출근한 것처럼 구보 씨가 하는 자그마한 일들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  (46, 77, 124쪽)



  신문과 방송을 끊어야 나라가 삽니다. 쓰레기 광고를 잔뜩 싣거나 다루는 신문과 방송을 없애야 나라가 삽니다.


  신문을 덮어야 이웃과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방송을 꺼야 동무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손수 짓고 길어올린 이야기를 나눌 노릇입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남들이 떠드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삶터에서 손수 가꾸고 지은 꿈과 사랑을 주고받을 노릇입니다.



.. 문제는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물건을 소비할 때 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다. 먼저 물건들의 이면에 깔려 있는 삶의 과정들을 상상해 보라. 이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적게 소비하게 될 것이다 ..  (129쪽)



  자동차를 타는 일이 나쁘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몰아야 할 적에 즐겁게 몰면 됩니다. 쳇바퀴를 도는 톱니바퀴가 되듯이 자동차를 몰면, 자동차로서도 안 좋고 나한테도 안 좋습니다.


  콜라나 감자튀김이 좋거나 나쁠 구석은 없습니다. 먹고 싶을 적에 즐겁게 먹으면 됩니다. 이러면서, 마실거리나 먹을거리를 손수 이 땅에서 씨앗을 심어 기른 뒤 부엌에서 손수 지지고 볶고 무치고 삶아서 오순도순 한솥밥을 누리면 됩니다.


  도시사람도 텃밭을 일구어야 합니다. 도시사람도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도시사람도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아파트로 가는 삶이 아니라, 도시에서도 ‘마당과 텃밭 있는 집’을 짓거나 얻어서 살겠다는 생각을 키워야 합니다. 내 집을 내가 손수 짓겠다는 꿈을 키워야 합니다. 내 삶을 내가 가꾸겠다는 사랑을 북돋아야 합니다.


  밭 한 뙈기를 일구지 않으면서 유기농이나 무농약이나 생채식을 누리겠다고 말하면, 그예 쓰레기만 늘어납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지 않으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면, 그저 쓰레기만 만듭니다.


  광고를 안 싣는 신문이나 방송이라면 볼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교육이나 문화나 예술이나 스포츠 따위를 하나도 안 다루는 신문이나 방송이라면 즐길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안 다루면 무엇을 다루어야 할까요? 아주 쉽지요. 삶을 다루고, 사랑을 다루며, 꿈을 다루어야 합니다. 텃밭을 다루고, 나무를 다루며, 마당을 다루어야 합니다. 이웃과 동무를 다루고, 마을을 다루며, 숲과 골짜기와 바다를 다루어야 합니다. 목숨을 다루고, 풀벌레와 새를 다루며, 하늘과 구름과 땅과 해를 다루어야 합니다. 넋과 얼과 마음과 생각을 다루어야 합니다. 다루어야 할 이야기는 다루지 않는 오늘날 지구별 신문과 방송이니, 이런 신문과 방송을 하루 빨리 끊고 없애며 걷어치워야, 보금자리도 마을도 나라도 지구별도 제대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4337.3.10.4347.11.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환경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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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것을 좋아하는 임금님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97
안노 미츠마사 글, 그림 | 송해정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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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60



작은 사랑도 큰 사랑도 모두 같다

― 커다란 것을 좋아하는 임금님

 안노 미쓰마사 글·그림

 송해정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1999.8.10.



  우리 집 큰아이는 ‘큰 것’을 좋아합니다. 큰아이라서 큰 것을 좋아한다기보다, 둘레 어른처럼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거나, 어른하고 똑같이 움직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집 큰아이는 다섯 살 적부터 ‘어른이 쓰는 큰 젓가락’을 씁니다. 아이 스스로 큰 젓가락을 쓰겠노라 외쳤습니다. 아이를 말릴 수 없으니 큰 젓가락을 쓰라 했고, 아이는 아이한테 아직 무거울 만큼 큰 젓가락을 씩씩하게 놀리면서 손힘과 아귀힘을 늘립니다. 이제 여느 어른 못지않게, 때로는 여느 어른보다 야무지게 젓가락질을 합니다.



.. 옛날 어느 나라에 커다란 것을 좋아하는 임금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커다란 것만 좋아하는 임금님은 지붕보다 더 높은 침대에서 잠을 잤습니다 ..  (2쪽)



  아이들은 밥이나 주전부리를 먹을 적에 ‘큰 것’을 집기도 하지만, 굳이 큰 것을 안 집기도 합니다. 어쩌다가 큰 것을 집어 보아도 먹기에 안 좋은 줄 알아차립니다. 아이들은 ‘작은 것’을 집어야 집기에도 수월하고 먹기에도 한결 나은 줄 깨닫습니다. 게다가 아주 조금 남은 먹을거리를 둘레에 나누어 줍니다. 한 줌이나 한 조각조차 아닌 조그마한 조각을 나누어 주지요.


  아이들은 주머니에 10원이 있어도 이 쇠돈을 동냥꾼한테 건넵니다. 아주 즐거우면서 씩씩하게 건넵니다. 돈이 크고 적고를 떠나, 이 돈이 도움이 되리라 믿으면서 건넵니다.


  10원 한 푼은 작다면 작다고 할 테지만, 열 사람 10원이 모이고 백 사람 10원이 모이며 만 사람과 십만 사람 10원이 모이면 안 작습니다. 작은 10원이 모이고 모여서 어마어마하게 큰 숲과 바다를 이룹니다.




.. “그렇게 작은 집게로 이를 뽑는 건 싫어!” 임금님은 더욱더 크게 울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결국 수많은 대장장이들이 모여 무지무지하게 커다란 집게를 만들었습니다 ..  (10쪽)



  안노 미쓰마사 님이 빚은 그림책 《커다란 것을 좋아하는 임금님》(시공주니어,1999)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곧잘 ‘큰 것’을 노리는 우리 집 큰아이는 이 그림책을 재미나게 읽습니다. 임금님이라는 사람이 큰 것만 생각하다가 마지막에 조그마한 튤립꽃 한 송이를 얻는 모습을 보면서 덤덤합니다. 아하 그렇구나 하고 지나칩니다.


  일곱 살 아이는 큰 것을 노려도 혼자 차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고작 이십 킬로그램을 조금 넘는 몸무게로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쓴다든지, 설거지를 거든다든지, 걸레질을 함께 한다든지, 빨래터 물이끼를 막대솔로 걷는다든지, 짐을 나른다든지, 마늘을 빻거나 풀무침을 섞는다든지 …… 온갖 일과 심부름을 하고 싶습니다. 옷가지를 잘 개고, 동생이 옷을 입기 힘들어 하면 양말과 신까지 발에 꿰어 줍니다. 몸뚱이는 작아도 마음은 너르며 고운 아이입니다.


  그런데, 그림책에 나오는 임금님이라는 사람은, 몸뚱이는 크지만 마음은 조그맣습니다. 좁쌀보다 작고 깨알보다 작으며 풀씨보다 작습니다. 흙알보다 작을 테며, 이웃이나 동무는 조금도 헤아리지 못합니다.  




.. 임금님은 또 대단한 것을 생각해 냈습니다. 정원을 파서 넓은 연못을 만들고, 파낸 흙으로 커다란 화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 임금님은 커다란 낚싯바늘에 커다란 찌를 매단 아주 커다란 낚싯대를 연못에 드리우고, 일주일 내내 물고기가 잡히기를 기다렸습니다 ..  (19∼20쪽)



  임금님이 큰 것을 누리려 할 적에, 다른 사람은 무엇을 누릴 수 있을까요? 임금님이 큰 것을 누리도록 하려고 심부름꾼이 잔뜩 달라붙어야 합니다. 임금님이 큰 것을 누리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쉬지 못합니다.


  그림책을 보다가 자꾸 어느 대통령이 떠오릅니다. 4대강사업을 벌인 대통령이 떠오릅니다. 평화의댐 성금을 모아 가로챈 어느 대통령이 떠오릅니다. 새마을운동을 벌이며 시골을 와르르 무너뜨린 어느 대통령이 떠오릅니다. 평화가 아닌 전쟁을 외친 어느 대통령이 떠오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리에 서는 사람이 할 일은 ‘크지’ 않습니다. 큰 일은 안 해도 됩니다. 게다가, 큰 일이 따로 있지도 않습니다. 손수 흙을 일구어 손수 밥을 얻고 손수 집을 지으면서 손수 아이를 보살피고 가르치면 됩니다. 세금이란 아예 없이 두레와 품앗이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조그마한’ 마을과 보금자리를 사람들 스스로 이루도록 함께 땀을 흘리면 됩니다.



.. ‘화분이 크니까 틀림없이 아주아주 커다란 튤립이 필 거야.’ 임금님은 이렇게 생각하며 날마다 꽃이 피기를 기다렸습니다 ..  (24쪽)



  작은 사랑이나 큰 사랑은 따로 없습니다. 사랑이면 모두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작으니까 모자라지 않아요. 저 사랑은 크니까 훌륭하지 않아요. 사랑은 모두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두 따스합니다. 그리고, 사랑이 어린 노래는 모두 즐겁습니다. 사랑이 어린 이야기는 모두 기쁩니다. 사랑이 어린 웃음은 모두 해맑습니다.


  몸뚱이가 작은 아이들 손을 잡고 사랑노래를 불러요. 몸뚱이가 큰 어른들은 이웃을 한껏 아끼고 돌보는 마음을 키워요. 아이와 어른이 나란히 아름다운 숨결이 되도록 이 지구별에서 사랑을 꿈꾸어요. 4347.11.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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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쓸 적에 '-들(복수형)'을 잘못 쓰는 보기를 살피느라

한창 골머리를 앓는데,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서 전화가 온다.

전화를 건 출판사 책지기님은

목소리에 들뜨고 설레는 기운이 서린다.

무슨 일일까?


문화체육관광부와 이런저런 곳에서(어떤 곳인지 나는 잘 모르니)

무슨무슨 책을 뽑아서 지원사업을 하는 듯한데(이 또한 나는 잘 모르니)

이번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 

이 지원사업에 뽑혔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마당을 쓴다.

늦가을 비가 내리는 마당은

초피나무 노란 가랑잎이 그득하다.

빗물과 잎을 쓰레받기에 담아

나무 둘레에 뿌린다.


한참 일을 마치고 땀을 식히면서

인터넷을 뒤적이니

알라딘서재 이웃님(다락방 님)도 이 지원사업에

이녁 책이 뽑혔다는 글이 보인다.

이웃님 책도 꾸준히 사랑받으면서 읽히기를 바라고,

내 책도 한결같이 사랑받으면서 읽히기를 꿈꾼다.


내 책,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 앞으로도 한결같이 사랑받으면서 읽혀서,

이 책이 읽히면서 버는 글삯으로

이곳 전남 고흥에 연 '사진책도서관'이 한결 튼튼히 뿌리내릴 수 있기를...

두 손을 모아 빈다.


'한국말(우리말)'을 다루는 책이 잘 안 읽히는 한국 사회에서

아무쪼록 이 책들이 두루 사랑받기를 다시금 빌면서...

'-들'을 바르게 쓰는 이야기를 얼른 갈무리해야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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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8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8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극곰 2014-11-28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숲노래 2014-11-28 15:0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순오기 2014-11-28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잘됐네요. 축하드립니다~~^^

숲노래 2014-11-28 22:00   좋아요 0 | URL
넵, 고맙습니다~~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 사계절 1318 문고 1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유혜자 옮김 / 사계절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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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20



걸상이 좁아도 함께 앉아요

―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

 미리암 프레슬리 글

 유혜자 옮김

 사계절 펴냄, 1997.3.2.



  아이들이 얼마나 어여쁜가 알고 싶다면 아이들과 지내면 됩니다. 하루 내내 아이들과 마주하면서 지내면 이 아이들이 얼마나 어여쁜지 알 수 있습니다. 아침에 밥을 먹여 학교로 보낸 뒤, 낮이나 저녁에 다시 아이들을 만나서 공부를 시키다가 저녁에 밥을 먹이고 재우는 나날이 아니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와 복닥이면서 모든 일을 함께 누릴 수 있으면, 아이들이 저마다 얼마나 어여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많은 어버이는 아이들을 보육시설이나 교육시설에 맡깁니다. 아이들이 아주 반짝반짝 빛나는 나이에 그만 아이들하고 가까이 지내지 못하는 어버이입니다. 어버이는 아이들이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는지 알아보지 못하는 채 학교에 맡길 뿐입니다. 아이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어버이가 손수 가르치지 못하는 오늘날 얼거리입니다. 아이들이 물려받고 싶은 것을 어버이가 손수 일구어 물려주지 못하는 오늘날 틀거리입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입시지식을 배웁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무엇을 물려받을까요? 입시지옥을 물려받습니다.



.. “네 엄마한테는 아주 힘든 고비가 많았어. 그런데 그 고비를 잘 넘기지 못한 거야.” 도대체 그것이 무슨 고비였는지 이모는 내게 한 번도 말해 주지 않았다. “고통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면 왜 날 그렇게 학대한 거죠?” … 난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몇 걸음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고 그 아저씨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어머니를 한번 생각해 봐요! 평생 아저씨를 씻기고 먹였을 거 아니에요! 아저씨는 분명히 입맛도 아주 까다로운 아들이었을 거예요.” ..  (15. 25쪽)



  사랑을 가르칠 수 있어야 비로소 ‘학교’라는 이름이 어울립니다. 사랑을 배울 수 있어야 비로소 ‘배움터’라 할 수 있습니다. 학교라는 곳을 처음 세운 사람은, 아이들을 길들이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의무교육이 된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가 아이들을 길들이기만 합니다. 학교를 처음 세운 사람은 아이들이 저마다 꿈과 사랑을 물려받아서 키울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초등과 중등과 고등 모두 입시지식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대학 교육조차 삶과 등집니다. 대학 교육에서 사랑이나 꿈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회사원이나 노동자가 되는 길을 가르치는 학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도시사람만 낳는 학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속품이나 톱니바퀴를 만드는 학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기르는 학교여야 합니다. 사랑을 가르치는 학교여야 합니다. 꿈을 스스로 찾도록 북돋우는 학교여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아이와 어른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함께 웃고 노래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 “소시지 한 조각 줄까?” 주인 여자가 물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고개만 끄덕였다. “어떤 것을 제일 좋아하지?” 주인 여자가 다시 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말인가? 왜 그냥 아무거나 주지 않는 걸까? 주인 여자가 날 놀리려는 걸까? 소시지를 주겠다는 말은 진심이 아니었을까? 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 기숙사에서는 물건들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꽤 많다. 조심하지 않으면 돈이나 사탕 같은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수채물감이라든가 편지지처럼 누구의 것인지 금방 알 수 없는 물건들도 그렇게 되기 일쑤다. 그래서 우리는 연필에 각자 표시해 두곤 한다. 또 어떤 것들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 게 있다. 예를 들면 엘리자벳의 인형이나 내 담요 같은 것들이다. 남들이 그것을 가져다가 뭘 하겠는가 ..  (30∼31, 95쪽)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를 초등학교에 넣지 않으면 벌금을 물립니다. 의무교육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의무교육이라는 학교에서는 몽땅 대학바라기 입시지도만 해요. 시골에서는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 보내거나 회사에 보내려고만 해요. 이런 학교에 아이를 안 넣겠다고 하면 법에 따라 벌금을 물려요.


  오늘날 같은 학교는 폭력입니다. 교과서를 척 펼쳐서 교과서 지식을 외우지 않으면 ‘문제 아이’나 ‘낙오자’라고 손가락질을 하니, 이런 오늘날 학교는 폭력입니다. 게다가, 얼마 앞서까지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두들겨패거나 거친 말로 짓밟았습니다. 참말 얼마 앞서까지 학교는 ‘돈을 거두는 세무소’ 노릇을 했습니다. 고작 얼마 앞서까지 학교는 방위성금과 새마을운동과 동원행사 소모품 구실을 했습니다. 웅변대회와 충효작문 따위로 아이들을 꽁꽁 틀어막은 학교입니다. 1970년대까지는 교실마다 박정희 육영수 두 사람 사진을 붙여서 거수경례를 시켰고, 1980년대에는 전두환 사진을 붙여서 거수경례를 시켰습니다. 북녘에서 김일성 사진을 붙여서 거수경례를 시킨다고 뭐라 할 일이 없습니다. 남녘도 똑같으니까요.


  아이들은 왜 머리카락을 기르면 안 될까요. 어른들은 왜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회사나 공장을 다녀야 할까요. 아이들은 왜 똑같은 옷을 맞춰서 입고 똑같은 신발과 똑같은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할까요. 어른들은 왜 똑같은 서양옷을 갖춰 입어야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요. 다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모두 똑같은 틀에 갇히고, 학교를 마친 뒤 회사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판박이에 소모품밖에 안 되는 사회입니다.



.. 나도 도마뱀이 되어 따뜻한 돌 위에 누워 햇빛을 쬐고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 더구나 숲 속의 빈 터 같은 곳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리라 …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모든 것이 싫었다. 방도 기숙사도 싫었고, 특히 엘리자벳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이제까지 꾹 참아 오기만 했던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그 애는 도대체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단지 자기는 부모가 있고 가끔 소포를 받는다는 것 때문에? 나보다 반 뼘쯤 더 크다는 이유 때문에? ..  (116, 143쪽)



  미리암 프레슬리 님이 쓴 청소년문학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사계절,1997)를 읽습니다. 이 작품에는,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르고 어머니만 아는데 어머니는 아이를 모질게 때리기만 할 뿐 ‘한 번’도 사랑한 일이 없어 탁아시설에 온 아이가 나옵니다. 아이는 덤덤히 말합니다. 참말 어머니한테서 사랑받은 일이 없다고 합니다. 참말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럴밖에 없습니다. 사랑이 아닌 학대만 받았으니, 학대는 알아도 사랑은 모릅니다. 학대만 받았기에 누가 저를 괴롭히려고 하면, 이러한 짓도 ‘학대’인 줄 곧바로 깨닫습니다. 다만, 누가 저를 따순 눈길로 바라보거나 따순 손길을 내밀면 어쩔 줄 모릅니다. 이것이 ‘사랑’인 줄 아직 모르기 때문입니다.



.. “너네 엄마가 너한테 잘해 준 적이 정말 한 번도 없었다고?” 레나가 못 믿겠다는 투로 물었다. 그걸 왜 자꾸만 물어 보는 걸까? 나는 화를 내며 대답했다. “정말 그랬다니까. 아무한테도 잘 대해 주지 않았지. 내 생각에 엄마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어. 로우 이모까지도. 자기 친언니인데도 말이야. 이모한테는 특히 더 못되게 굴었어. 이제 더 말하고 싶지 않아.”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셨던 모양이구나.” … 나는 사감을 바라보았다. 사감이 언제나 기숙사에만 있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생각났다. 내가 오기 훨씬 전에 이곳에 온 사감은 내가 떠나고 나도 언젠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여기에 남아 있을 것이다. 사감은 절대 떠나지 않으리라. 절대로. 해마다 있던 아이들이 떠나고, 해마다 새로운 아이들이 오지만 사감은 언제나 이곳에 있을 것이다 ..  (160∼161, 183쪽)



  평화를 누린 적이 없는 사람은 평화를 모릅니다. 그래서, 평화를 모르니 전쟁무기와 군대를 갖추어서 ‘평화를 지키자’고 바보스러운 말을 내뱉습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으로 가는 길이고, 군대도 전쟁으로 가는 길입니다. 더욱이 군대는 독재정치와 맞닿습니다. 지구별 모든 독재정치는 군대를 앞세워 쿠테타를 일으킵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이요, 군대는 독재입니다. 경찰도 군대와 마찬가지예요. 군대와 경찰을 거느리는 나라는 독재로 사람들을 짓밟는 얼거리입니다.


  평등을 누린 적이 없는 사람은 평등을 모릅니다. 그래서, 평등을 모르니 신분과 학력과 재산과 얼굴 따위로 푸대접을 합니다. 신분과 학력과 재산과 얼굴 따위로 계급과 등급을 짭니다. 돈이 있대서 대단하지 않습니다. 이름이 있대서 훌륭하지 않습니다. 힘이 있대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책을 많이 읽었대서 똑똑하지 않습니다. 학교를 오래 다녔대서 슬기롭지 않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훌륭할 뿐이고, 슬기로운 사람이 슬기로울 뿐입니다. 마음에 사랑을 품는 사람이 사랑스럽고, 꿈을 바라보며 걷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 곧이어 시골길이 나왔다. 창밖으로 들판과 초원이 스쳐 지나갔고, 감자를 캐고 있는 아낙들과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농부들도 보였다. 그렇게 많은 농부들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리고 시골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도 전에는 미처 몰랐다 … 제대로 곰곰이 생각을 모으면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다던 로우 이모의 말은 틀린 말이었다. 이곳에서 내가 본 것들은 전혀 모르던 것이기 때문에 도저히 상상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 나는 우어반 사감에게 수화기를 넘겨주었다. 로우 이모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통화가 길었다. 우어반 사감은 열심히 듣다가 간간이 웃었다. 로우 이모가 웃을 때 안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침내 통화를 끝낸 우어반 사감이 말햇다. “좋아, 가도 돼. 친구 한 명도 함께 갈 수 있지. 그 친구가 누구인지 내가 한번 맞혀 볼까?” ..  (211, 234쪽)



  걸상이 넓을 때에 함께 앉지 않습니다. 걸상이 좁아도 함께 앉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앉고 싶은 사람은 좁은 걸상에도 함께 앉거든요. 함께 앉고 싶은 사람은 아예 걸상을 치우고 땅바닥이나 풀밭에 함께 앉거나 드러눕습니다. 함께 앉기 싫으니 혼자 앉습니다. 함께 앉을 생각이 없으니 아예 걸상을 없애고 모두 서야 하는 얼거리로 만듭니다.


  청소년문학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는 대단한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지 않습니다. 사랑 하나를 들려주고, 꿈 하나를 들려주며, 어깨동무하는 두 사람이 얼마나 즐겁게 삶을 짓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좁은 걸상에 함께 앉아요. 좁은 걸상에 함께 앉고 보면, ‘좁은 걸상’이 아니라 ‘그냥 걸상’인 줄 이내 알아차릴 수 있고, 시나브로 ‘함께 누리는 즐거운 사랑’인 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함께 웃을 때에 즐겁습니다. 함께 즐거울 때에 노래가 흐릅니다. 함께 노래할 적에 오늘 하루가 아름답습니다. 4347.11.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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