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잔 인생 한입 3
라즈웰 호소키 지음, 김동욱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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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82



바람 한 줄기를 마시며

― 술 한 잔 인생 한 입 3

 라즈웰 호소키 글·그림

 김동욱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2.8.30.



  나는 어릴 적부터 냄새를 잘 못 맡았습니다. 나는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아주 어린 날부터 코가 나빴습니다. 코가 나쁘니 냄새를 잘 못 맡고, 냄새를 잘 못 맡으니 맛을 잘 못 느꼈으며, 숨조차 쉬기 어려웠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탓도 있을 테지만, 내가 어릴 적 뛰놀던 곳에는 언제나 큰짐차 배기가스와 흙먼지가 뒹굴었고, 수많은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이 가득했으며, 집과 학교 사이에 있던 연탄공장에서 늘 탄가루로 날렸습니다. 국민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에서도 늘 공장(이라기보다 공단)을 옆에 낀 삶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나고 자랐으니, 아마 내 몸은 ‘냄새’를 받아들이기 몹시 싫어했겠구나 싶어요. 내 몸은 스스로 지키려고 냄새를 손사래쳤을 수 있습니다.



- “이런 대가족에 남자는 너 하나라. 날 왜 불렀는지 알 것 같다.” (14쪽)

- ‘역시 3000엔짜리로 사 갈까. 화창한 봄날에 모처럼 한잔 하는데 쩨쩨하게 그런 빈티 나는 술이나 마실 수야 없지.’ (37쪽)



  코는 늘 안 좋았으나, 때때로 코가 확 트이는 때가 있습니다. 매캐하거나 갑갑한 곳이 아닌, 싱그러운 풀과 나무가 있는 데에 닿으면 코가 확 트입니다. 버스나 전철을 타고 움직이더라도 이러한 기운을 코가 느낍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잠들었어도 ‘아, 바야흐로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곳에서 벗어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바람이 맑은 곳으로 접어들면, 내 코는 언제 그렇게 막히고 괴로웠는가 싶도록 확 트인 채 하늘바람을 넉넉히 받아들입니다. 매캐한 바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앞서, 내 몸에 깃들거나 쌓인 모든 앙금을 갈아치우려고 해요. 새로운 기운이 감돌고, 기쁜 숨결이 춤출 수 있도록 바람 한 줄기를 고맙게 마십니다.



- “그래도 기왕 돈 내고 들어온 건데,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봐야지, 아깝잖아요.” “카스미 씬 왜 그렇게 쩨쩨해? 그냥 잔디에서 마음껏 뒹굴대다 가는 요금이라 생각하면 되잖아.” (84쪽)



  라즈웰 호소키 님이 빚은 만화책 《술 한 잔 인생 한 입》(AK커뮤니케이션즈,2012) 셋째 권을 가만히 살펴봅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아저씨는 도시에서 여느 회사를 다니는 여느 일꾼입니다. 날마다 ‘술 한 잔’을 한다고 하는데, 곰곰이 들여다보면 ‘한 잔’이 아니라 ‘석 잔’쯤이라 할 테고, 석 잔조차 아닌 ‘서른 잔’이라고 할 만큼 술을 마십니다. 무어라고 할까요, 살아가는 기쁨이 술이라고 할까요. 술이 있기에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 지내고, 술이 있으니 하루하루 일터에 나가며, 술이 있는 동안 다른 모든 일을 잊고 느긋하게 잠드는 이야기입니다.



- “나한테는 말이야, 스키야키는 전야제 같은 거라고. 스키야키는 술이 잘 안 들어가잖아. 금방 배도 부르고. 그렇지만, 다음날 남은 건 또 술안주로 딱이거든.” (187쪽)



  바람 한 줄기가 붑니다. 바람 한 줄기는 들판을 가득 채운 나락에 깃들어, 우리가 먹는 밥이 됩니다. 바람 한 줄기는 너른 바다를 가로지르면서, 우리가 먹는 물고기마다 스밉니다. 바람 한 줄기는 능금밭과 딸기밭을 지나며, 우리가 즐기는 능금과 딸기에 서립니다.


  우리는 술을 빌어 바람을 마십니다. 밥을 빌어 바람을 먹습니다. 고기와 열매를 빌어 바람을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늘 다른 목숨을 먹으면서 내 목숨을 잇습니다. 다른 목숨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다른 목숨을 살린 숨결이요 바람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흐르는 바람이 뭇목숨을 살리고, 뭇목숨을 살리는 바람이 이 목숨과 저 목숨 사이를 잇습니다. 모든 술맛과 물맛과 밥맛이란 바람맛입니다. 바람 한 줄기를 먹으면서 오늘 하루가 흐릅니다. 4348.3.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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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베르에게 마흔두 번째 누이가 생긴다고요 일공일삼 15
크리스티안 뒤셴 지음, 윤미숙 그림, 심지원 옮김 / 비룡소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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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85



어떤 말을 하고 싶니

― 베베르에게 마흔두 번째 누이가 생긴다고요?

 크리스티안 뒤셴 글

 윤미숙 그림

 심지원 옮김

 비룡소 펴냄, 2001.11.30.



  내가 하는 말은 모두 내 마음입니다. 내 마음은 말이라는 옷을 입고 내 둘레로 퍼집니다. 내가 하는 말은 이야기를 담고 살붙이와 이웃한테 천천히 퍼지고, 이렇게 퍼진 말은 지구별을 두루 한 바퀴를 돌고 나서 나한테 돌아옵니다.


  네가 하는 말은 모두 네 마음입니다. 네 마음은 말이라는 옷을 입고 네 둘레로 퍼져요. 네가 하는 말은 이야기를 싣고 네 살붙이와 이웃한테 가만히 퍼지며, 이렇게 퍼진 말은 지구별을 샅샅이 한 바퀴를 돌고 나서 너한테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나한테 하는 말입니다. 네 말은 네가 너한테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면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은 모두 우리 스스로 읊는 말인 셈입니다.



.. 베베르의 아빠는 언제나 쾌활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상상력을 가지고 있답니다. 또 그토록 반짝이는 눈을 가진다는 건 흔치 않아요. 아빠는 세상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남들과 똑같이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을 비웃곤 하죠. 또 아빠는 말 태워 주기, 칠면조처럼 달리기, 거꾸로 사다리 태워 주기 등 온갖 엉뚱한 놀이를 하기도 합니다 … 엄마를 일찍 여의기는 했지만, 베베르는 전혀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매우 슬프기는 했지만요. 하지만 베베르에게는 엄마를 대신해 주기에 충분한 누나들이 많이 있습니다 ..  (8, 11쪽)



  가는 말이 고울 적에 오는 말이 곱습니다. 내가 스스로 고운 말을 하면, 내 마음은 언제나 곱습니다. 가는 말이 거칠 적에 오는 말이 거칩니다. 내가 스스로 거친 말을 하면, 내 마음은 언제나 거칠어요.


  다만, 고운 말을 하기에 마음이 꼭 사랑스럽지는 않습니다. 거친 말을 하니까 마음이 꼭 안 사랑스럽지는 않습니다. 마음에 미움이 가득한 채 말만 곱게 하는 사람이 있고, 마음에 사랑이 가득한 채 말만 거칠어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겉치레로 말하는 사람은 언제나 겉치레 말을 돌려받습니다. 속마음을 따스히 가꾸며 말하는 사람은 언제나 속마음이 따스한 말을 돌려받아요.


  이것을 해 주기에 이것을 받는 얼거리가 아닙니다. 내가 나한테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기에 내가 스스로 사랑을 거둡니다. 내가 나한테 기쁨이라는 씨앗을 심으니 내가 스스로 기쁨을 거두어요.



.. 플라비 아줌마는 베베르의 집에 있는 나이프, 냅킨, 냄비, 화분, 국자, 소금 그릇 등 물건들의 엄청난 수를 알게 될 때마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플라비 아줌마는 이 집을 베베르와 함께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또, 수백 개의 불필요한 물건들, 단추 모음이나 가지각색 병들의 수를 베베르와 같이 세면서 놀 수 있다면 좋아했을 거예요 … “플라비 아줌마는 또 이렇게 말했어. ‘골목길의 꽃들은 꼭 정원에서 도망쳐 나온 것 같고 벽의 칠은 다 떨어져 나갔지. 한 번은 참새 백 마리가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것도 보았단다.” ..  (32, 41쪽)



   크리스티안 뒤셴 님이 쓴 어린이문학 《베베르에게 마흔두 번째 누이가 생긴다고요?》(비룡소,2001)를 읽습니다. 마흔한째 아이입니다. 베베르를 낳은 아버지는 막내 베베르를 낳기 앞서 마흔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나이로는 할아버지이지만, 베베르한테는 언제나 아버지라고 합니다.


  베베르는 아버지가 다섯째로 혼인을 해서 새로운 어머니를 맞아들이는 모습이 반갑지 않다고 합니다. 새로운 어머니하고 말을 안 섞기로 합니다. 제 밑으로 새로운 동생이 찾아오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커다란 집안에 아이가 하나 더 생기는 일은 달갑지 않다고 합니다.


  베베르네 누나한테 동생은 어떤 숨결이었을까요. 베베르네 누나들은 동생이 생길 적에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어떤 누나는 베베르한테 거의 할머니뻘이 될 텐데, 서로 어떤 사이가 되어 지낼까요.



.. 플라비 아줌마는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플라비 아줌마와 살게 된 이래 처음으로 베베르는 자기가 아줌마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누군가가 자기 집에 들어와서, 바로 옆에 앉아 식사를 하고, 바로 옆을 지나다니고, 함께 살고 있는데 어떻게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를 수가 있을까? 플라비 아줌마에게 말을 걸었더라면 좀더 많은 걸 알고 있을 텐데’ ..  (61, 64쪽)



  서로 마주보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로 이름을 부르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집에 살기에 따순 마음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할 테지만, 한집에 살면서 얼굴조차 마주보지 않는 사이가 있습니다. 이웃집에 살기에 넉넉한 마음이 되어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할 테지만, 이웃집에 살면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채 지내기도 합니다.


  말을 섞지 않고도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말을 나누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고,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며, 서로 마음을 기울여서 만나지 않으면,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삶을 짓지 못합니다. 우리는 남남이 아니니까요. 우리는 한솥밥을 먹는 사이요, 똑같은 하늘숨을 마시는 사이인걸요.



.. 며칠 전부터 베베르는 이야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베베르의 말에 따르면, “나중에 사람들이 옛날이야기를 찾으려고 할 때, 꼭 보고 싶어할” 그런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베베르는 고양이의 이야기를 쓰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베베르는 리본으로 묶인 책 몇 권을 만들었고, 그것을 엄마에게 선물할 것입니다 ..  (93쪽)



  《베베르에게 마흔두 번째 누이가 생긴다고요?》에 나오는 베베르한테 동생이 생길까요? 베베르는 동생을 맞이하고 싶지 않을까요, 아니면 마음속으로는 저한테 ‘많디많은 누나’ 말고 ‘사랑스러운 동생’이 있어서 동생한테 이것저것 알려주고 보여주면서 기쁘게 웃고 싶을까요. 베베르는 ‘죽은 어머니’만 그리면서 살고 싶을까요, 아니면 오늘 이곳에서 ‘어머니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 사랑을 속삭이고 싶을까요.


  내가 손을 내밀어 사랑이 싹틉니다. 내가 따스한 말 한 마디를 심으면서 사랑이 자랍니다. 내가 기쁜 꿈을 심으면서 사랑이 퍼집니다.


  사랑은 주거니 받거니 할 때에 바야흐로 사랑입니다. 말은 사랑처럼 주거니 받거니 할 때에 참으로 말입니다. 주면 줄수록 커지면서 환하게 빛나는 사랑입니다. 나누면 나눌수록 재미나고 기쁘며 신나는 말입니다. 이리하여, 예부터 이야기는 ‘이야기꽃’이라고 합니다. 4348.3.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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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형 이야기 생각하는 숲 13
모리스 샌닥 글.그림, 서남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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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은 별점으로 치자면 10점을 주고 싶으나

번역 때문에 8점을 준다. 어린이와 함께 읽는 그림책이라면

어린이와 함께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번역답게' 한국말을 생각해서 옮길 노릇이니까.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88



언제 어디에서나 한마음

― 나의 형 이야기

 모리스 샌닥 글·그림

 서남희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13.9.25.



  아이한테는 어버이가 있습니다. 어버이한테는 아이와 짝님이 있습니다. 어버이도 어릴 적에 어버이가 있습니다. 한집에 홀로 자라는 아이가 있고, 한집에 여럿이 어울려서 자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한솥밥을 먹는 살붙이가 있고, 이웃과 동무가 있습니다. 함께 자라거나 지내는 사람 가운데 둘로 가를 수 없다 싶도록 가까운 사이가 있습니다. 둘은 서로 다른 넋이면서도 늘 하나처럼 움직이는 숨결입니다. 둘은 서로 다르게 자라면서도 언제나 마음으로 깊고 넓게 헤아리면서 지냅니다.


  그저 끌리는 마음이라면 ‘좋아함’입니다. 끌리는 마음을 넘어서 고요하고 차분하게 아끼고 보살필 수 있는 마음이라면 ‘사랑’입니다. ‘좋아함’일 때에는 옆에 없으면 안절부절 못하기 마련이지만, ‘사랑’일 때에는 아무리 멀리 오랫동안 떨어졌어도 마음으로 고즈넉하게 만납니다. 사랑을 품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기쁘면서 따스합니다. ‘좋아함’은 혼자서 애를 태우며 끝나지만, ‘사랑’은 둘레에 따스한 기운을 퍼뜨리면서 아름다운 꿈으로 나아갑니다.



.. 으스스한 겨울밤, 화려한 빛을 내뿜으며 새 별이 돋아났어요! 눈부신 빛살은 달빛을 가리고 이글이글 하늘을 불태우다 쿵! 단단한 지구를 두 동강 냈어요 ..  (8쪽)




  2012년에 숨을 거둔 모리스 샌닥(모리스 센닥, Maurice Sendak) 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그림책 《나의 형 이야기》(시공주니어,2013)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을 한국말로 옮기며 ‘나의 형’으로 적지만, 제대로 옮기려면 ‘우리 형’으로 적어야 합니다. 외국말에서는 ‘my brother’처럼 적을는지 모르나, 한국말에서는 ‘나의’가 아닌 ‘우리’입니다. 우리 어머니요, 우리 할머니요, 우리 누이요, 우리 언니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번역이 여러모로 어수선합니다. 8쪽에서 “화려한 빛”이라 하다가 이내 “눈부신 빛살”이라 하는데, ‘화려(華麗)한’이라는 한자말은 한국말로 ‘눈부시다’를 가리킵니다. 하나는 한국말이고 하나는 한자말입니다. ‘순식간(瞬息間)에(10쪽)’ 같은 낱말을 쓸 수도 있을 테지만, 이 그림책은 어린이가 읽을 책입니다. 한국말 ‘갑자기’로 적어야 올바르리라 느낍니다. 12쪽에 나오는 “가이는 가파른 공중에서 빙빙 돌았어요. 하늘의 초승달은 한 바퀴씩 돌 때마다”도 앞뒤가 안 맞습니다. ‘공중(空中)’은 ‘하늘’을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하늘의 초승달”처럼 적는 말마디도 어설픈데, 이 글월은 “가이는 가파른 하늘에서 빙빙 돌았어요. 초승달은 한 바퀴씩 돌 때마다”처럼 손질해야지 싶습니다. “곰의 굴속으로 쿵 떨어지자(14쪽)”도 어딘가 어설픕니다. ‘굴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굴’로 들어갑니다. 하늘에서 쿵 떨어진다면 “곰이 사는 굴로 쿵 떨어지자”나 “곰 굴로 쿵 떨어지자”로 고쳐쓸 노릇입니다. 우리는 ‘토끼 굴’이나 ‘여우 굴’이라 할 뿐, 사이에 ‘-의’를 넣지 않습니다. 제비가 사는 집은 ‘제비집’이지 ‘제비의 집’이 아닙니다.


  “2월에 오리라. 내 눈유령의 기일이. 잭의 코는 얼어붙은 공기 속을 떠도네. 차디찬 영원 속에서 5년을(18쪽)” 같은 글월을 어린이한테 어떻게 읽혀야 할는지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기일(忌日)’ 같은 한자말을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이런 낱말을 어떻게 알려주어야 할까요? “잭의 코” 같은 말마디도 어설프고, “공기(空氣) 속을 떠도네”도 어설픕니다. 우리는 ‘하늘 속’에 있지도 않고 ‘공기 속’이나 ‘바람 속’에 있지 않습니다. ‘속’이라는 낱말을 제대로 써야 합니다. 영어에서 ‘in’이 나온대서 모조리 ‘속’을 넣어서 옮기면 엉뚱한 말이 되고 말아요. “2월에 오리라. 내 눈유령이 떠난 날이. 잭은 코가 얼어붙은 채 바람과 떠도네. 언제나 차디찬 곳에서 5년을”처럼 고쳐씁니다.



.. 가이는 가파른 공중에서 빙빙 돌았어요. 하늘의 초승달은 한 바퀴씩 돌 때마다 세상을 지나쳐 뚝뚝 떨어지다 보드라운 보헤미아 땅으로 떨어졌어요 ..  (12쪽)




  “가이는 성실히 큰 곰의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22쪽)”와 “보드라이 바뀐 공기 속에서 가이는 초원의 새의 엄숙한 노래에 귀 기울였어요(22쪽)” 같은 말마디도 어설픕니다. 밥을 먹으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다. ‘목구멍 속’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가이는 기꺼이 큰 곰 목구멍으로 들어가”로 바로잡을 노릇입니다. 가이는 큰 곰한테 잡아먹히겠다고 다짐했으니, ‘기꺼이’ 들어간다고 옮겨야 올바를 테지요. 다음 글월은 “가이는 보드라이 바뀐 바람을 타고, 들에서 새가 고요히 부르는 노래에 귀 기울였어요”로 손질합니다. 임자말(가이)은 맨 앞에 넣어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도 나오는 “공기 속에서”는 “바람을 타고”로 옮겨야 올바르겠다고 느낍니다. 또는 “바람과 함께”쯤 되리라 느낍니다. ‘-의’를 잇달아 넣은 “초원의 새의 엄숙한 노래” 같은 말마디는 차마 번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말마디는 도무지 아이들한테 읽힐 수도 들려줄 수도 없습니다. 모리스 샌닥 님이 이렇게 엉터리라 할 만한 글을 썼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책을 끝맺는 대목에서 “우린 꿈속에서 보게 될 거야(30쪽)” 같은 말마디가 나오는데, “우리는 꿈에서 볼 수 있어”로 고쳐씁니다.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준말은 되도록 안 써야 옳습니다. 입으로는 준말처럼 말하더라도 글로 적을 때에는 온말을 살려서 적어야지요. 그리고, 우리는 ‘꿈에서’ 봅니다. 이 대목도 다른 자리와 똑같습니다. 영어로 ‘in’을 썼어도, 한국말에서는 아무렇게나 ‘속’이나 ‘안’을 붙이지 않습니다. 꿈에서 보고, 삶에서 누립니다. ‘꿈 속’이나 ‘삶 속’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습니다.



.. 가이는 신비로운 꽃들 속에 깊이 숨겨진 잭의 코와, 뿌리가 된 발가락들을 보았어요. 그 코를 깍, 깨물었지요. 진짜로 형인가 보려고요 ..  (28쪽)




  아무튼, “우리 형 이야기”를 읽으면, 모리스 샌닥 님과 어린 날부터 함께 보낸 형 이야기가 조용히 흐릅니다. 둘이 어떤 사이였고, 어떤 마음이었으며, 어떤 꿈을 바라보는 사랑이었는가 하는 이야기가 찬찬히 흐릅니다. 몸으로 둘을 가르더라도, 마음으로 둘을 가를 수 없는 이야기가 차분히 흐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한마음으로 따사롭고 넉넉하게 사랑을 꽃피우던 이야기가 고요히 흐릅니다.



.. 이제 잭은 동생의 팔에 안겨 편안하게 잠들었어요. 가이는 속삭였어요. “잘 자. 우린 꿈속에서 보게 될 거야.” ..  (30쪽)



  형 잭과 동생 가이는 서로서로 따스하게 안습니다. 형과 동생은 서로서로 포근하게 어루만집니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하나였던 몸과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둘은 처음에 하나였고, 새롭게 둘로 나뉘어 지은 삶을 가만히 마무리짓습니다. 하나에서 둘로 나온 삶은 다시 하나로 돌아가면서 고요한 곳으로 나아갑니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갑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갑니다. 첫 발자국을 떼면서 새 발자국을 내딛습니다. 하나에서 새로운 하나로 갑니다.


  한 사람이 저만치 멀리 앞서 가서 기다리지 않습니다. 늘 곁에서 함께 갑니다. 한 사람이 저 뒤에서 힘겹게 따라오지 않습니다. 언제나 나란히 어깨동무를 합니다. 삶은 한결같이 사랑입니다. 삶은 꾸준하게 흐르는 노래입니다. 푸르게 우거진 숲에서 파랗게 눈부신 바람을 탑니다. 고요하면서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이 있는 자리로 갑니다. 밤이면서 낮이고, 빛이면서 어둠이며, 소리도 모습도 없으나 노상 노래와 춤으로 어우러진 곳으로 손을 맞잡고 나아갑니다. 4348.3.15.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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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지 않은 내 동생 한울림 그림책 컬렉션 1
하마다 케이코 지음, 김숙희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87



사이좋은 두 사람은

― 귀엽지 않은 내 동생

 하마다 케이코 글·그림

 김숙희 옮김

 한울림어린이 펴냄, 2007.2.21.



  마당에 천막을 칩니다. 바람이 조용하고 봄볕이 따스한 날에는 마당에 천막을 치기 좋습니다. 봄에는 볕이 잘 드는 곳을 따라 천막을 칩니다. 여름에는 나무그늘에 천막을 치지요. 이렇게 천막을 치면 우리 집 두 아이는 어느새 이곳으로 살살 들어옵니다. 다른 데에서도 놀다가도, 집에서 놀다가도, 마당에 친 천막에 온통 사로잡힙니다.


  마당에 천막을 치면서 즐겁습니다. 나는 춤을 추면서 천막을 칩니다. 이 멋진 하루에 이 멋진 천막을 칠 수 있는 마당이 고맙습니다. 집집마다 마당이 있어야 한다고 새삼스레 생각하고, 집집마다 아이들이 마당을 신나게 뛰놀면서 싱그럽게 바람을 마셔야 한다고 다시금 생각합니다.


  부엌에서 부침개를 부칩니다. 집 둘레에서 뜯은 풀을 잔뜩 넣은 부침개입니다. 천막에서 노는 두 아이한테 부침개를 부쳐서 주어야지요. 꽃무늬 새긴 접시에 부침개를 놓고 가위로 썰어서 젓가락을 얹은 뒤에 주어야지요.



.. 내가 참을 수 없는 건, 마호의 교실이 옆 반이란 사실. 쉬는 시간만 되면 "뛰어온다 ..  (4쪽)





  작은아이는 아직 많이 어리기도 하지만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면서 밥을 먹습니다. 자근자근 찬찬히 씹어서 먹으라 해도 몇 번 안 씹고 꿀꺽 삼키기 일쑤입니다. 제대로 안 씹고 삼킨 밥이나 부침개는 고스란히 똥으로 나옵니다. 네가 눈 똥이 이렇다고 보여주어도 씨익 웃기만 하고, 다음에도 또 제대로 안 씹고 삼키려 합니다. 큰아이도 동생한테 빨리 먹지 말고 씹으라고 말을 하는데, 동생은 누나 말을 으레 한귀로 흘립니다.


  둘이 달리기를 하면 큰아이가 훨씬 앞서서 달립니다. 그러면 작은아이가 울면서 누나를 부릅니다. 누나가 멈추거나 뒤돌아오면 갑자기 활짝 웃으면서 누나를 앞지르려 합니다. 작은아이는 누나처럼 잘 달리고 싶으나 작은 몸과 짧은 다리로는 빨리 못 달려서 울음부터 터뜨리고 봅니다.


  날마다 되풀이하는 놀이인데, 앞으로 한 해가 흐르고 두 해가 흐르면 차츰 달라지리라 느껴요. 앞으로 늘 꾸준하면서 새롭게 달라지리라 느껴요. 두 아이는 저마다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랄 테고, 둘이 사이좋게 어울려 놀던 어린 날을 되새기면서 새로운 기운으로 기쁘게 지을 삶을 꿈꿀 수 있으리라 느껴요.



.. 더 참을 수 없는 건, 집에서도 같은 방을 쓴다는 사실 ..  (12쪽)





  하마다 케이코 님이 빚은 그림책 《귀엽지 않은 내 동생》(한울림어린이,2007)을 읽습니다. 이 그림책을 처음 본 우리 집 큰아이는 “왜 귀엽지 않은 내 동생이래?” 하고 묻습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제 동생을 보며 ‘귀엽지 않다’고 여기는 일이 없습니다. 동생이 떼를 쓰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울어도 늘 귀엽게 마주하고 토닥이며 달래도 보듬습니다. 이 아이가 보기로 동생이 안 귀여울 수 없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동생이 하는 짓’은 하나같이 귀엽습니다. 오빠를 찾아 옆 교실로 달려온다든지, 오빠가 그린 그림이 멋있다고 동무들한테 자랑한다든지, 교장선생님 옷자락을 붙잡고 오빠가 얼마나 멋있는지 조잘조잘 수다를 떤다든지, 모든 몸짓이 귀엽지요.





.. 내가 낫자 동생이 독감에 걸렸다. “감기가 옮았구나. 둘은 사이가 너무 좋으니까!” 엄마가 말했다. 사이가 좋다니,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  (20∼21쪽)



  그림책에 나오는 ‘오빠’는 늘 달라붙으면서 요모조모 묻고 궁금해 하는 동생이 성가실 수 있습니다. 이제 동생 말고 다른 동무를 사귀면서 놀고 싶은데, 자꾸 동생이 달라붙어서 동생하고만 놀아야 하나 하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동생을 데리고 다른 동무하고 놀아도 돼요. 동생이 아주 많이 어리지도 않고, 고작 한 살 어리니까요. 한 살 나이란 대수롭지 않아요. 한 살 나이는 어마어마하게 벌어졌다고 느낄 수 있지만, 동생은 무엇이든 새로운 곳(학교)에서 오빠하고 모든 새로움을 누리면서 기쁘게 웃으려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곱게 받아들이면서 차근차근 알려주면 동생은 더욱 기쁘게 배우고 따르면서 함께 어울리겠지요.


  아마 다른 동무들은 ‘그림책에 나오는 오빠’를 부러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가이 굴고, 이렇게 달라붙으면서, 이렇게 온마음을 듬뿍 드러내어 사랑스러운 동생을 두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 나는 동생이 좋아하는 책을 읽어 주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서 마음에 안 드는 책이지만……. 며칠이 지나서 동생이 나았다 ..  (30∼31쪽)





  ‘사이가 좋다’는 말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사이좋은’ 두 사람은 어떠한 삶일는지 생각해 봅니다. 온누리 모든 사랑은 바로 마음으로 나눕니다. 온누리 모든 꿈은 바로 마음으로 이룹니다. 마음이 따뜻할 때에 사랑이 피어납니다.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봄에 바야흐로 꽃이 피어나듯이, 우리 스스로 마음을 따뜻하게 돌볼 적에 사랑이 피어납니다.


  마음이 너그러울 적에 꿈을 이룹니다. 봄볕이 온누리를 골골샅샅 두루 비추면서 모든 숨결을 아끼고 돌보려 하듯이, 우리 스스로 마음을 넓게 열어 이웃과 동무를 넉넉히 안을 적에 모든 꿈을 이루어요.


  사랑이 될 때에 삶입니다. 꿈을 이룰 때에 삶입니다. 사랑과 꿈이 어우러지는 기쁜 웃음과 노래일 때에 삶입니다. 사이좋은 두 사람은 바로 사랑과 꿈을 함께 짓고 이루면서 나누는 곁님이요 길동무입니다. 《귀엽지 않은 내 동생》이라고 짐짓 말하지만, “귀여운 내 동생”이라 말하면 쑥스럽거나 부끄럽기 때문이지 싶어요. 그러나, 쑥스러워 할 일도 부끄러워 할 일도 아니에요. 사랑과 꿈은 언제나 아름답기만 합니다. 4348.3.14.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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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찰을 전하는 아이 푸른숲 역사 동화 1
한윤섭 지음,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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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84



역사를 다루는 ‘동화’와 ‘이야기’

― 서찰을 전하는 아이

 한윤섭 글

 백대승 그림

 푸른숲주니어 펴냄, 2011.10.31.



  한윤섭 님이 쓴 《서찰을 전하는 아이》(푸른숲주니어,2011)를 읽습니다. 이 책은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던 조선 사회 가운데 봇짐장수가 바라보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양반이나 임금이나 지식인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도 아니고, 농민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여러 신분과 계급을 이루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쪽 물건을 저쪽으로 잇고, 저쪽 물건을 이쪽으로 잇는 사람 이야기가 천천히 흐릅니다.


  봇짐장수는 조선 사회에서 무엇을 바라보았을까요. 봇짐장수가 봇짐에 넣어 이쪽과 저쪽을 이은 글월에는 어떤 생각이 깃들었을까요. 글월을 주고받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품으면서 어떤 뜻을 펼치려 할까요.



.. “피노리에서 잡히지 않았어도 아마 다른 곳에서 잡혔겠지. 내 운이 다한 것뿐이다.” “좋은 세상 만들겠다고 하셨잖아요! 양반 천민 없는 평등하고 살기 좋은 세상, 행복한 세상을 만드셔야지요.” “그 말이 듣기 좋구나. 아이야, 고맙다. 이제 가거라.” “장군님을 만나러 오는 동안 처음으로 행복했어요.” “그래, 나도 널 만나서 행복하구나.” ..  (155쪽)



  글월을 나르던 봇짐장수는 그만 길에서 죽습니다. 봇짐장수가 건사하는 아이가 제 아버지가 못 다한 일을 마무리지으려 합니다. 아이는 거칠고 고단한 길을 걷고 걸어서 비로소 뜻을 이룹니다. 그런데, 봇짐장수 아이가 건넨 글월을 받은 ‘전봉준’은 글월에 적힌 이야기를 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함께 일하는 동무(동지)를 믿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말했다고 적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을 안 믿으면 누구를 믿을까요? 그러나, 함께 일하는 사람 가운데 거짓쟁이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 눈길이 닿지 않도록 조용히 글월을 띄우고 받’지요. 함께 일하는 동무를 믿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을 제대로 다스리라는 뜻으로 글월을 주고받아요.



.. “아버지, 산에는 왜 다녀온 건가요?” “스님이 눈이 침침해져 책을 못 보신다는 소식을 듣고, 안경을 드리러 온 것이다.” “정말 안경을 드리러 온 것뿐이에요?” 내가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하자, 아버지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그래, 네 짐작이 맞다. 또 다른 할 일이 있어서 온 것이다. 스님의 서찰을 어떤 분에게 전해야 하는 일이다.” ..  (16쪽)



  한윤섭 님이 쓴 책은 《서찰을 전하는 아이》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글월(서찰)’은 아주 커다란 고빗사위라고 할 만합니다. 아이가 목숨과 똑같이 여기면서 건사한 글월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아닌 아이 아버지가 이 글월을 건넸을 적에도 늘 목숨을 걸고 건넸을 테지요. 다시 말하자면, 글월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목숨을 겁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만 대수로이 여길 대목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한윤섭 님은 바로 이 대목, 아이가 전봉준한테 글월을 건네서 전봉준이 글월에 따라 움직이는 얼거리를 더 깊게 차근차근 다루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저 한 줄로 “내가 나와 함께한 동지도 믿지 못한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155쪽)” 하고 적으며 끝낼 만한 이야기책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글월을 띄운 스님도, 글월을 건네는 봇짐장수도 ‘함께하는 동지’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사람은 믿고 다른 한 사람은 못 믿은 셈인데, 이렇게 어영부영 끝을 맺는다면, 이 책을 읽을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거나 생각할까 아리송합니다.


  역사를 다룬 동화라고 해서 ‘역사에 기록된 대로 끝을 맺어’야 하지 않습니다. 역사를 다룬 동화이든 생활을 다룬 동화이든, ‘생각’을 넓혀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전봉준이 거짓쟁이(배신자)를 시골로 돌려보내고 새로운 뜻을 품으며 동학혁명을 다시 일으키는 얼거리’로 이 이야기를 끝맺을 수 있습니다. 거짓쟁이 한 사람은 찾아내어 시골로 돌려보냈으나, 다른 거짓쟁이가 또 있다는 얼거리로 이야기를 짤 수 있습니다.



.. “나이가 열셋이면 나와 동갑이다. 동갑이면 다른 사람들은 친구라고 한다. 다음에 만나거든 그때는 친구로 지내자.” 그 말에 놀라 내가 말했다. “도련님은 양반입니다.” “아니다, 나도 친구가 생겨서 좋다. 이제 차츰 세상도 그렇게 바뀔 거라고 하더라.” … “이 세상이 어찌 되려고 관군이 일본군과 합세해 조선 사람을 그렇게 죽인다는 말이냐?” 주막 아주머니의 말에 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주막 아주머니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주막 아주머니가 손사래를 쳤다 ..  (100, 124쪽)



  《서찰을 전하는 아이》를 더 살펴보면, 이 책을 이루는 뼈대는 ‘걸어서 삼천리강산을 돌아다니는 봇짐장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봇짐장수가 이 땅을 두루 밟고 돌아다니면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으며 ‘무엇을 생각하는’가 하는 대목은 거의 안 드러납니다. 어느 철에 돌아다니고, 철마다 어떤 날씨요 들빛이며 마을살이인가 하는 모습을 하나도 안 그립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오직 ‘주막’ 언저리입니다. 주막에서 하룻밤 묵는 이야기만 잇달아 나옵니다.


  봇짐장수가 주막에서 잠을 자기도 했을 테지만, 주막 아닌 데에서 한뎃잠도 으레 잤을 테고, 여느 시골집에서도 잠을 잤을 테지요. 봇짐장수 삶이 이 책에 제대로 드러나지도 못했고, 옛날에는 모두 시골 흙길이었을 테고, 숲도 우거졌을 텐데, 숲길과 시골길을 걸어서 다니면서 ‘아이가 삶을 새롭게 읽고 생각하는 이야기’도 한 줄조차 담지 못합니다.



.. “알고 싶은 것이 글자 두 자라고 했으니, 한 자에 한 냥을 쳐서, 나에게 두 냥을 주면 알려주겠다. 결정은 네 몫이다.” 두 냥을 달라니 노인은 도둑이 분명했다. 두 냥이면 이틀 동안 편히 자고, 밥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 “네가 여기 이렇게 온 것도 그분이 이끄신 거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나 스스로 온 것이다. 춘천으로 가지 않고 아버지가 전하지 못한 서찰을 전달하러 내 발로 온 것이었다 ..  (43, 73쪽)



  아무래도 ‘동학혁명 역사’를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얽매인 탓이지 싶습니다. 역사동화이니 역사를 다루면 되지만, 역사는 ‘한문 지식을 익힌 지식인이 적은 책에 적힌 이야기’만 역사이지 않습니다. 사람들 입과 입으로 오르내리면서 흐르는 이야기도 역사입니다. ‘기록된 역사’를 다루어야 한다면, 아이들이 굳이 이 책을 읽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기록된 역사’를 잘 갈무리한 다른 책을 읽으면 돼요. 굳이 ‘역사동화’라는 이야기를 쓰는 까닭은 ‘기록되지 않은 역사’와 ‘기록되지 않은 삶’을 새롭게 살피고 살려서, 이를 아름다운 꿈과 사랑으로 들려주면서 아이들한테 마음밥으로 삼도록 할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학 짜임새’로 본다면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나쁘지 않습니다. 여러모로 훌륭하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봇짐장수 삶이 거의 드러나지 못했고, 1800년대 끝자락 시골사람 삶이 하나도 나타나지 못했으며, 그무렵 삼천리강산 숲과 들이 어떠한가를 그리지 못했으며, 열세 살 아이가 누리면서 느낀 넋을 제대로 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1800년대 끝자락을 살던 ‘양반 아닌 사람이 쓰던 말씨’를 거의 못 살렸습니다. 이 책을 보면 ‘행복’이라는 한자말이 끝에서 자꾸 나오는데, 이런 한자말은 요새나 쓰는 한자말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기쁨’이라는 한국말을 썼을 테지요. 역사를 다루는 동화라면, ‘오늘날 쓰는 말투’가 아니라 ‘예전에 살던 사람이 쓰던 말투’도 잘 헤아려서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4348.3.13.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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