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플레이소녀 1
요시즈키 쿠미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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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75



꿈을 품은 아이가 달린다

― 플레이 플레이 소녀 1

 요시즈키 쿠미치 그림

 하시모토 히로시·와타나베 켄사쿠 글

 서울문화사 펴냄, 2015.2.27.



  꿈을 품은 아이는 달립니다. 꿈을 품지 않은 아이는 달리지 않습니다. 꿈을 노래하는 아이는 달립니다. 꿈을 노래하지 않는 아이는 달리지 않습니다. 꿈이 있을 때에 달리고, 꿈이 없을 때에는 안 달립니다. 무엇보다, 꿈을 품으면 기쁘게 웃고 놀먄사 삶을 새롭게 짓습니다. 꿈을 안 품으면 기쁨이 없고 웃음이 없을 뿐 아니라, 삶을 새롭게 지을 생각조차 없습니다.


  꿈을 품기에 돈도 벌 수 있습니다. 꿈을 품지 않고 돈만 번다면, 돈은 나한테 오되 다른 모든 것은 나를 떠납니다. 꿈을 품으면서 돈을 번다면, 돈도 나한테 올 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도 나한테 옵니다. 왜냐하면, 돈을 벌 생각을 하면 돈을 벌 뿐이고, 꿈을 이룰 생각을 하면 꿈을 이루는 길에서 돈도 벌기 때문입니다.



- ‘4월. 벚꽃이 져 버린 날. 나는 100권째의 벚꽃문고를 펼쳤다.’ (3쪽)

- ‘그런가? 나 같은 별 볼 일 없는 애랑은 역시 맺어지기 힘들까.’ (17쪽)





  생각이 삶을 짓습니다. 생각하는 대로 삶을 짓습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삶을 짓고, 생각이 없는 사람은 언제나 삶을 안 짓습니다.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생각대로 삶을 지어요. 그래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내 생각을 이루는 길로 나아가려 합니다.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은 어느 길로 갈는지 모릅니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꿈도 없고, 꿈도 없으면 어떤 일이나 놀이를 누릴 때에 즐겁거나 기쁜지 알 수 없어요. 생각을 하면 꿈이 있기에, 이 꿈을 이루는 길을 스스로 찾기 마련이며, 내 길을 스스로 찾아서 걷는 동안 나한테 즐겁거나 기쁜 일과 놀이를 스스로 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웃으면서 노는 모습을 바라보셔요. 장난감이 많아야 웃으면서 놀지 않아요. 동무가 많아야 재미있게 놀지 않아요. 과자나 사탕이나 초콜릿을 배터지게 먹어야 신나게 놀지 않아요.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스스로 놀이를 지으면 맨손으로도 웃으면서 놀지요. 홀가분한 마음을 가꾸면서 스스로 놀이를 찾으면 조약돌 하나로도 노래하면서 놀아요.


  생각이 꿈으로 되고, 꿈은 몸짓으로 드러나며, 몸짓은 일과 놀이로 흐르고, 일과 놀이는 어느새 삶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삶이 됩니다. 어떤 삶을 짓고 싶은가 하는 대목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즐겁게 나아갈 수 있으면 됩니다.



- “‘어떤 불후의 명곡보다도 마음에 와 닿는 외침이 있다. 인생을 뒤흔드는 말이 있다.’ 이 책에는 그렇게 적혀 있어요. 명곡이 영원히 사랑받듯이 대대로 이어져 온 응원단의 형태나 정신도 영혼의 절규를 표현하는 불멸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31쪽)

- “그나저나 대단하네. 버, 벚꽃문고는 단순한 로맨스소설인 줄 알았는데 명언의 보고였구나!” “맞아! 난 마음에 드는 구절은 거의 암기하고 있어.” (34쪽)






  하시모토 히로시 님과 와타나베 켄사쿠 님이 쓴 글에, 요시즈키 쿠미치 님이 그림을 그린 《플레이 플레이 소녀》(서울문화사,2015)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여린 아이는 아직 꿈이 없습니다. 그러나 꿈을 가슴에 품고 싶습니다. 아직 꿈이 없으나 꿈을 품고 싶어서 생각을 합니다. 어떤 꿈을 품으면 즐거울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가지를 생각한 뒤, 아이 스스로 품은 꿈을 이루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하고 두리번두리번 살피고 찾습니다. 스스로 생각한 길에 따라 꿈을 품고, 이 꿈과 생각에 따라 움직입니다. 스스로 지은 생각으로 가꾼 꿈을 이루려고 나아가는 길은 언제나 기쁘면서 재미있습니다. 몸이 고되더라도 아름답고, 아직 어렴풋하거나 잘 모르겠구나 싶은 것투성이라지만, 알 듯 모를 듯 솟는 기쁨이 반갑습니다.



- “못해도 해라. 무조건 해라.” (86쪽)

- “응원단이 응원단인 의미. 그 정도는 스스로 생각해 봐.” (89쪽)

- “단장, 넌 어쩔래? 달아나고 싶으면 달아나도 괜찮아.” (123쪽)

- “응원단은 모두 이렇게 혹독한 훈련을 받나요? 왜죠? 그냥 응원만 하면 되는데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노력하는 거죠?” “말했을 텐데. 그건 너희 스스로 생각하라고.” (124쪽)





  스스로 생각해야 압니다. 남이 알려준다고 해서 알지 않습니다. 스스로 찾아야 압니다. 남이 보여준다고 해서 알지 않습니다. 스스로 바라보아야 압니다. 남이 코앞에 내밀어야 알지 않습니다.


  노래하고 싶은 사람은 노래하면 됩니다. 춤추고 싶은 사람은 춤추면 됩니다. 남들과 섞여서 어떤 틀에 맞추어야 노래나 춤이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제 가락과 사위를 살펴서 노랫가락과 춤사위를 지으면 됩니다. 남 앞에서 그럴듯하게 보이는 가락이나 사위가 아닌, 내가 스스로 기뻐서 저절로 터뜨리는 노래나 춤으로 나아가면 돼요.


  남들이 읽는 책을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남들이 입는 옷을 입을 까닭이 없습니다. 남들이 하는 일을 똑같이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읽을 책을 내가 찾아서 읽고, 내가 입을 옷을 내가 찾아서 입으며, 내가 할 일을 내가 찾아서 하면 됩니다.



- “무얼 해도 마음에 들지 않고, 무얼 보아도 시시하게 느껴져요. 하지만, 주위가 그렇게 보이는 것은 실은 내가 가장 시시한 놈이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130쪽)

- “마음속 어딘가에서 다른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책 속의 여주인공처럼 멋진 일을 할 수 없을까, 줄곧 갑갑해 했지! 최근 자주 드는 생각인데, 응원단은 참 신기해. 승부가 나는 것도 아니고, 기록을 두고 싸우는 것도 아니야. 그래서 명확한 목표도 세울 수 없고, 무언가를 달성했다는 증거도 없어. 그런 집단이 엉망이 되면서 이렇게 힘든 훈련을 받고 노력하면, 그래서 남을 응원한다면, 그 다음에는 도대체 뭐가 남을까?” (134∼135쪽)




  스스로 아름다우면, 내 둘레도 모두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시시하면, 내 둘레도 모두 시시합니다. 아주 마땅합니다. 내가 내 삶을 짓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아름답게 가꾸기에 내 말은 언제나 아름다우면서 내 하루는 늘 아름답습니다. 내가 나를 시시하게 팽개치기에 내 말은 늘 시시하면서 내 하루는 언제나 시시해요.


  그러니,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아름답고 싶은지 시시하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꿈을 지어서 이루고 싶은지, 남이 시키는 일만 그대로 따르면서 재미없게 살는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내 기운을 써서 내 몸으로 마시는 바람 한 줄기인 줄 느껴야 합니다. 내 기운을 써서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잠드는 몸인 줄 알아야 합니다. 개운해도 내가 개운하고, 졸려도 내가 졸립니다. 맛있어도 내가 맛있으며, 맛없어도 내가 맛없어요. 나를 차분히 바라보면서 내가 나를 배워야 합니다. 나를 가만히 돌아보면서 내가 나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나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하면, 다 됩니다. 4348.2.2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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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의 숨어 있는 방 창비아동문고 228
황선미 지음, 김윤주 그림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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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82



눈과 마음을 모두 닫은 사람들

― 나온의 숨어 있는 방

 황선미 글

 김윤주 그림

 창비 펴냄, 2006.9.7.



  우리는 누구나 모두 다 볼 수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누구나 모두 다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모두 다 보는 눈’을 차츰 잃거나 잊습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은 없으나,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보는 일’을 잃거나 잊으면서 쳇바퀴에 올라탑니다.


  학교에서는 시험공부만 시킵니다. 시험공부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서로 어우러져 놀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따돌림이나 편가르기나 괴롭히기 따위를 하거나, 홀로 컴퓨터게임으로 빠져듭니다. 어버이나 어른은 아이들을 시험공부와 학원에 몰아넣으면서 삶과 사랑과 꿈하고는 등을 지도록 합니다. 삶과 사랑과 꿈을 내려놓아야 하는 아이들은 이제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코앞에 있는 것조차 두 눈으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밥 한 그릇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농약을 친 푸성귀를 알아채지 못하며, 햇볕·바람·빗물을 먹은 싱그러운 나물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오직 돈만 벌어야 한다는 사회·경제 얼거리에 갇힙니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일자리가 아니라면 아무 뜻이 없는 줄 여깁니다. 삶을 가꾸는 일이나, 사랑을 나누는 일이나, 꿈을 키우는 일하고는 아예 등을 집니다. 이리하여, 스무 살쯤 될 무렵에는 사람을 제대로 마주할 줄 모르고, 서른 살쯤 될 무렵에는 사람한테 깃든 착한 숨결을 찬찬히 바라볼 줄 모르며, 마흔 살쯤 될 무렵에는 사람한테 서린 참된 넋을 옳게 읽을 줄 모릅니다.



.. “나무 좀 베었다고 세 살던 사람을 내보낸 건 성급한 처사지. 나무가 워낙 커서 창문도 가리고, 볕도 안 들어 그랬다는데.” “그럼, 집주인에게 물어 봤어야죠. 그렇게 오래 살고 약이 되는 나무를 물어 보지도 않고 벤 걸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나요. 당숙모가 얼마나 애지중지하던 나문데.” … 여기에 살았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오늘은 여기가 꼭 우리 집인 것처럼 반갑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  (13, 68쪽)



  오늘날 꽤 많은 사람들은 장삿속을 가리지 못합니다. 장삿속을 가릴 줄 알더라도 그냥 장삿속에 휘둘립니다. 오늘날 퍽 많은 사람들은 겉치레나 눈속임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문화를 휘어잡은 이들이 꾸미는 겉치레나 눈속임을 헤아리지 못하면서 거짓말에 쉬 넘어갑니다. 참이 아닌 거짓을 쏟아내는 신문과 방송이 흘러넘쳐도, 참과 거짓을 스스로 가릴 줄 모릅니다. 곁에서 눈밝은 사람이 참과 거짓을 제대로 가려내어 알려주어도 이를 귀담아듣거나 눈여겨보지 못합니다. 아주 종(노예)이 되고 맙니다.


  이를테면, 요즈음 아이들은 딸기가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돋는 열매인지 모릅니다. 딸기꽃을 아는 아이는 매우 드뭅니다. 딸기는 비닐집이 아니라 들과 숲에서 나는 열매인 줄 생각하는 아이는 아주 드뭅니다. 가게에 나도는 거의 모든 딸기는 비닐집에서 겨우내 석유난로 기름내음을 먹으면서 비료와 농약과 항생제와 수돗물로 자란 줄 생각하지 못하고, 이런 모습을 보더라도 아무것도 못 깨닫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막걸리라 ‘쌀로 빚은 술’인 줄 잊습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막걸리는 ‘쌀’로도 안 빚고 수입밀로 빚습니다. 한국에서 나는 쌀로도 안 빚고 수입쌀로 빚기 일쑤입니다. 여기에 갖가지 첨가물과 화학약품을 집어넣어 단맛을 돋웁니다. 그렇지만 이를 깨닫는 어른은 대단히 드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닭우리에 갇힌 닭처럼 길드는 오늘날 사람인 탓에, 비닐집에서 농약과 비료와 수돗물로 키우는 딸기나 푸성귀를 먹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학교와 사회와 제도권에 길들여진 사람은 ‘길들여진 밥’과 ‘공장에서 똑같이 찍은 밥’만 먹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아이들도 길드는 종이 되는 길로 접어드니까, 스스로 놀이를 새롭게 지어서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컴퓨터게임에만 빠져들어야 할밖에 없는지 모릅니다. 눈은 있으되 눈으로 못 보고, 귀가 있으되 귀로 못 듣고, 마음이 있으되 마음으로 만나지 못합니다.



.. 강우가 이상해질 수밖에 없는 일을 겪기는 했다. 아파트가 떠들썩하게 싸워대던 부모님이 이혼하고 나가 버려서 할머니랑 살게 된 것이다. 그게 우리 집 일이었다면 난 미쳐 버렸을지 모른다 … 엄마는 내가 여자답기만 바라지, 그게 나를 힘들게 한다는 건 모른다 … “너네는 어디로 간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야말로 갈 데가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넝쿨 집. 어쩌면, 안 그럴지도 모르지만…….” “좋은 집인가 보다. 이름이 예쁘네.” “응. 거긴, 예쁘고 좋아.” ..  (27, 33, 222쪽)



  황선미 님이 쓴 어린이문학 《나온의 숨어 있는 방》(창비,2006)을 읽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는 ‘내 삶’이 없습니다. 아이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학교를 다니고, 옷을 입으며, 밥을 먹습니다. 아이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학원을 다니고, 하루를 보냅니다. 이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이는 스스로 할 줄 아는 일이 없습니다. 아이는 스스로 놀 줄 모릅니다. 아이는 스스로 동무를 사귀지 못합니다.


  그저 책에 나오는 이야기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도시를 보면 사람도 많고, 어른과 아이도 많습니다. 그러나, 도시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은 서로 이웃이나 동무로 여기지 않습니다. 도시에 있는 학교는 얼마나 크고, 학급도 얼마나 많은가요? 그러면, 그 많은 ‘학교 아이’는 서로 동무일까요?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이웃이나 언니 오빠 누나 동생으로 지내는가요?


  시골에는 마을마다 아이가 없어서 동무를 사귀지 못합니다. 도시에는 동네마다 아이가 넘치지만 동무를 사귀지 못합니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똑같습니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막힌 모습은 똑같습니다.



.. “와아! 누가 이걸 다 키웠대?”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사방이 꽃이었다. 평평한 곳이든 언덕진 곳이든, 돌 틈이든, 장독 옆이든, 나무 근처든 어디든 갖가지 색의 크고 작은 꽃들이 들쭉날쭉한 풀과 더불어 사방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꽃이 진 자리에는 갈색이나 짙은 보라색 열매가 맺혀 있었다. 그 애는 콧노래를 부르며 꽃들 사이를 걸어갔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머리가 시원해!” ..  (146쪽)



  마음이 있으면, 우리는 눈을 감아도 서로 알아봅니다. 마음을 열면,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어떤 느낌이요 생각인지 환하게 알아챕니다. 마음이 없기에, 우리는 눈을 떠도 서로 살가이 사귀지 못합니다. 거짓과 속임수와 눈가림과 겉치레만 판칩니다. 마음을 열지 않으니, 우리는 하루 내내 한곳에 함께 있어도 기쁘게 웃거나 노래하지 못합니다.



.. 울음이 멎자 할머니가 다시 나를 마주보고 섰다. “아가. 무엇이든 자신이 속한 시간에 살아야 한단다. 라온과 내가 속한 시간, 네가 속한 시간은 달라. 넌 살아 있는 영혼이고, 우린 아니지. 그런데 네가 여기 있구나. 그래서 내가 찾아내기 어려웠던 게야. 넌 지금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 그래서 위험해. 자기 시간에 속해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냐. 떠돌이나 마찬가지란다. 라온과 나는 곧 우리만의 시간을 따라갈 거야. 네가 속해야 할 시간으로 가렴. 내가 도와주마.” … “할머니가 잊으신 게 저 신발이에요?” “아니다. 그리고 난 무얼 잊은 적이 없다. 아주 요긴한 때 쓰려고 잘 숨겨 두었지. 봐라, 나뭇잎 신발을 받쳐 줄 바람이 오고 있지 않느냐. 태 항아리 덕분이야. 저 바람은 라온을 잡아 주는 삼신할미 손길이란다. 오랜만에 저걸 타는구나. 라온은 바람의 잔등을 타는 걸 참 좋아했지.” ..  (238, 239쪽)



  눈과 마음을 뜨지 못하면, 몸뚱이는 ‘산 목숨’으로 보여도 ‘죽은 목숨’과 같습니다. 눈과 마음을 뜨면, 몸과 마음이 싱그럽게 빛납니다. 눈과 마음을 닫으려 하면, 몸뚱이와 마음은 그저 죽음길로 치닫습니다. 눈과 마음을 열려 하면, 몸과 마음은 눈부시게 깨어나서 아름답게 거듭납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부터 풀과 나무와 꽃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부터 흙하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부터 새와 짐승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섞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도시나 시골 모두 풀·나무·꽃을 이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냥 아무 들이나 숲을 삽차로 밀어붙여서 고속도로나 골프장이나 관광단지나 발전소나 송전탑이나 군부대나 아파트나 이런저런 쓰레기더미로 바꾸고 맙니다. 오늘날에는 도시와 시골 모두 흙이나 새나 짐승을 동무로 삼지 않습니다. 흙이 죽든, 새와 짐승이 숨을 거두든, 참말 하나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평화하고는 동떨어진 전쟁무기를 잔뜩 갖추느라 어마어마한 돈을 퍼붓지만, 막상 더 무섭고 아프며 괴로운 사회가 되는 줄 깨달으려 하지 않습니다. 평화를 짓밟는 전쟁무기를 갖춘 군부대에 젊은이를 집어넣어 바보로 만들지만, 정작 이렇게 스스로 바보가 되는 줄 옳게 바라보려 하지 않습니다.


  《나온의 숨어 있는 방》에 나오는 아이 ‘나온’은 몸뚱이가 깃든 이곳(이승)에서 즐겁지 않습니다. 즐거운 날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쌍둥이로 함께 태어났으나 먼저 저곳(저승)으로 떠난 ‘라온’과 함께 가려 합니다. 삶도 사랑도 꿈도 없어 보이는 이곳에 있을 뜻이나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린 ‘나온’은 이곳에서 삶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나온을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제라도 뉘우치고 깨달으면서 사랑과 꿈을 키우는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요? 바로 옆에 있는 아이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제 ‘나온’과 ‘라온’을 함께 바라보도록 눈을 뜨면서 삶을 새롭게 지을 수 있을까요?


  ‘라온’은 바람을 타고 저곳으로 갑니다. ‘나온’은 할머니가 가로막아서 라온과 함께 바람 타고 가는 길로 가지 못합니다. 나온은 앞으로 어떻게 살까요? 나온은 앞으로 스스로 눈을 뜰 수 있을까요? 4348.2.27.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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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푸공의 아야 2
마르그리트 아부에 지음, 이충민 옮김, 클레망 우브르리 그림 / 세미콜론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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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이 없을 때에 사람들은

― 요푸공의 아야 2

 마르그리트 아부에 글

 클레망 우브르리 그림

 세미콜론 펴냄, 2011.2.18.



  할 일이 없을 때에, 사람들은 참말 할 일이 없어서 무엇이라도 하려고 합니다. 그 일이 옳은지 그른지 좋은지 나쁜지 아름다운지 안 아름다운지 따지지 않습니다. 너무 따분하고 재미없고 심심한 나머지 어떤 일이라도 하려고 합니다.


  할 일이 있을 때에, 사람들은 참말 할 일이 있어서 아무 일이나 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제 할 일을 합니다. 아주 마땅하지요. 스스로 즐겁게 할 일이 있는데 왜 아무 일이나 건드릴까요.


  ‘할 일’이란 ‘직업’이 아닙니다. ‘할 일’이란 ‘돈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할 일’이란 스스로 삶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기쁘게 짓는 일입니다. ‘할 일’은 언제나 새롭게 마주하면서 웃음과 노래로 누리는 아름다운 일입니다.



- “자네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시골의 친척들을 잊지 않고. 마을을 떠나면 마음도 떠나는 게 보통인데 말이야. 자네와 가족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비네.” “감사합니다, 아저씨. 속담에도 있잖아요. 파리는 아무리 급해도 똥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법이죠!” (12쪽)

- “아주아, 누가 보비의 진짜 아버지인지 그냥 실토해. 간단하잖아.” “그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아주아, 넌 인생을 뭐 하러 그렇게 복잡하게 살아?” “빈투, 네 일 아니라고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 “아주아, 빈투 말이 맞아. 보비는 지나가다 자꾸 들르는 그 사람 닮았잖아.” “아야, 돌려 말할 것 없어. 그냥 마마두라고 해.” (19쪽)





  마르그리트 아우에 님이 글을 쓰고, 클레망 우브르리 님이 그림을 그린 《요푸공의 아야》(세미콜론,2011)라는 만화책 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코트디브아르라는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 이야기가 흐르는 만화라고 해서 가만히 눈여겨봅니다. 그런데 이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들 ‘할 일’이 없습니다. 커다란 회사를 꾸리는 사람이든, 커다란 회사에서 어느 지사장을 맡는 사람이든, 그저 빈둥거리는 사람이든,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는 사람이든, 길거리에서 먹을거리를 구워서 장사하는 사람이든, 참말 다들 ‘할 일’이 없습니다. 이러면서 ‘돈’을 바라고 ‘놀이’를 바랍니다. ‘새로운 일’이 아니라 ‘뭔가 짜릿한 어떤 일’을 바랍니다.



- “얘는 왜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우는 거야?” “배고파서 그래. 불쌍한 것. 업어 줘야겠다. 근데 넌 어디 가는데?” “나 파리지앵이랑 약속 있어.” “빈투! 그 남자는 또 어디서 만났어?” (35쪽)

- “너 좀 맘에 든다?” “귀찮게 좀 하지 마. 요푸공 남자들은 왜 하나같이 이렇게 야만적이야?” “뭐? 왜 사람을 무시하는 건데?” “야, 나는 이런 동네 남자들과는 볼일 없어. 나는 파리에서 온 것들만 상대한단 말이야.” “아, 그래? 그래서 뭐, 파리에서 온 차라도 있다는 거냐?” “넌 귀가 먹었냐? 애인이 파리에서 왔다고. 날 파리로 데려가서 같이 살 거라고! 그러니 넌 그냥 찌그러져 있어!” “음, 파리만 상대한다, 사람한텐 찌그러져라. 무서운 여자네.” (65쪽)




  코트디브아르라는 나라는 언제부터 이런 모습이었을까요? 프랑스라는 나라가 없을 적에도 이런 모습이었을까요? 서양사람이 전쟁무기를 앞세워서 문명이라는 허울을 붙인 온갖 종교와 교육을 들이밀 적부터 이런 모습이 되었을까요?


  손수 밥을 지어서 먹는 사람한테는 늘 ‘할 일’이 있습니다. 손수 밥을 짓는 사람은 손수 옷을 짓고, 손수 옷을 짓는 사람은 손수 집을 짓습니다. 이리하여 밥과 옷과 집을 손수 짓는 사람은 언제나 삶을 손수 짓습니다.


  ‘할 일’은 남이 나한테 주지 않습니다. 나는 남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삶을 가꿀 만한 일을 스스로 찾습니다. 나는 내 숨결을 아끼면서 사랑으로 밝힐 일을 스스로 일굽니다.


  어느 만큼 나이가 찬 가시내랑 사내가 살을 섞어야 재미있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살을 섞고 저기에서 살을 섞을 때에 재미나지 않습니다. 남이 차려 주는 밥을 먹어야 기쁘지 않고, 남이 갖다 바치는 옷을 입어야 신나지 않아요.



- “여자애가 그렇게 데리고 다니기 부끄러운 애야? 오빠는 어떻게 여자를 한 번도 집에 안 데려와?” “양파 썩는 거나 신경 쓰고 나는 좀 내버려둬.” “걱정 마. 보비와 나는 어떻게든 헤쳐나갈 테니까. 보비가 있는 게 다행인 줄 알아. 아이 앞이라 욕 안 하고 참는 거라고. 얘가 얼마나 순진한지 알아? 들쥐처럼 남들 눈을 피해 다니는 놈들하고는 다르다고!” “아주아,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그 쥐새끼가 썩으면 냄새가 진동하게 될걸!” (98쪽)





  스스로 ‘할 일’이 없으니 제자리를 잃고 떠돕니다. 떠도는 사람들은 제 할 말을 잊거나 잃습니다. 제 할 말을 잊거나 잃기에 거치거나 쓸쓸한 말이 튀어나옵니다. 내가 스스로 나를 아끼지 못하기에, 내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한테 따사롭게 말을 건네지 못합니다.


  지구별에서 어느 나라가 아름다운 삶을 누릴까 궁금합니다. 번쩍거리는 자가용을 몰고, 번쩍거리는 넓은 시멘트 아파트에서 살면 아름다울까요? 온갖 전쟁무기를 갖춘 엄청난 군대가 나라를 지켜 주는 곳에서 살면 평화로울까요? 국민투표로 뽑힌 정치 일꾼이 모든 법을 이녁 마음대로 지어서 온갖 세금을 주무르면서 경제개발을 하고 스포츠와 영화를 키우면 재미있을까요?


  사랑이 사랑을 낳습니다. 꿈이 꿈을 낳습니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습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서는 사랑이 흐르지 않습니다. 꿈이 없는 곳에서는 꿈이 흐르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없는 곳에서는 이야기가 흐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알록달록 눈부신 옷을 차려입더라도, 마음에 사랑이나 꿈이 없으면 아무런 이야기가 없습니다. 겉치레로 번드레레하고 꾸미는 말은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삶을 가꾸지 않으면서 입만 놀리는 말로는 아무런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이 살을 섞으니 ‘바람둥이’가 되고, 서로 바람둥이로 하루를 지새우니 아름다운 노래가 없습니다. 만화책 《요푸공의 아야》는 현대문명과 물질문명과 도시문명이 치닫는 막다른 벼랑을 낱낱이 보여주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4348.2.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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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와 어둠 저 너머 시 문학과지성 시인선 91
한택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0년 6월
평점 :
절판


시를 말하는 시 80



시와 한국말

― 폭우와 어둠 저 너머 시

 한택수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1990.6.15.



  어머니는 나를 낳으며 새로운 몸을 나한테 주었습니다. 나는 어머니한테서 몸을 받고는, 이 몸에 걸맞게 새로운 말을 물려받습니다. 어머니는 나한테 새로운 몸을 선물로 주면서, 이 몸을 마음껏 쓰도록 새로운 말을 하나둘 가르쳤습니다. 나는 어머니한테서 받은 몸에 새로운 말을 가득 담아서 내 삶을 새롭게 짓습니다.


  이윽고 나는 몸뚱이가 자라고 자라서 나와 함께 새로운 길을 걸어갈 짝꿍을 만나고, 나와 짝꿍은 새로운 몸을 짓도록 사랑을 이루고, 사랑으로 이루어진 씨앗은 차츰 싹이 트고 자라서, 나도 어느새 새로운 몸을 얻은 새로운 아이한테 새로운 말을 물려줍니다.



.. 이제 나의 삶은 시를 쓸 만한 때가 되었으리라. 나는 이제 삶을 노래할 수 있다! // 삶, 삶이란…… 한낮의 졸음인가, 흐린 구름인가, 서울 거리의 나무들인가, 삶은 ..  (李箱의 庭苑 2)



  말이 흐릅니다. 흐르는 말은 다시 흐릅니다. 자꾸자꾸 흐르는 말은 끝없이 흐르고, 이 말은 어느새 새롭게 흐릅니다. 말 한 마디는 두 마디로 자랍니다. 두 마디로 자란 말은 네 마디로 자랍니다. 네 마디로 자란 말은 여덟 마디로 자라고, 열여섯 마디로, 서른두 마디로 또 자라고 자꾸 자라지요.


  말이 흐르면서 생각이 흐릅니다. 말이 자라면서 마음이 자랍니다. 흐르는 말을 나누면서 생각을 서로 나누고, 자라는 말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새롭게 키울 말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삶을 가꾸려는 마음으로 말을 나눌까요.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랑을 피우려는 넋으로 말을 지을까요. 우리는 서로서로 어떤 하루를 열려는 마음으로 말을 새롭게 생각할까요. 우리는 서로서로 어떤 꿈을 이루려는 넋으로 말로 이야기를 엮을까요.



.. 어머니, 집을 옮겼어요. 28坪 아파트로 이사했어요. 어머니 계실 때도 이사를 많이 다녔었지요. 그리고 아주 작은 방에서 病을 얻으셨었지요 ..  (무덤 앞에서 4)



  한택수 님 시집 《폭우와 어둠 저 너머 시》(문학과지성사,1990)를 읽습니다.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말로 지은 노래를 읽습니다. 이 노래는 오직 한택수 님이 지을 수 있는 노래이고, 이 노래는 바로 한택수 님이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노래일 뿐 아니라, 한택수 님이 낳은 아이한테 물려주는 노래입니다.


  어머니가 지은 사랑이 말에 깃들어 흐르고, 어머니가 지은 사랑을 받아 태어난 아이가 말에 새로운 사랑을 심으며, 아이는 아이대로 새롭게 자라서 새로운 사랑을 말에 담뿍 담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쓰는 말은 아주 기나긴 날에 걸쳐서 수많은 사람이 너른 사랑으로 지은 말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쓰면서 앞으로 물려줄 말은 앞으로 이곳을 새롭게 가꾸면서 살아갈 사람한테 기쁘게 물려줄 새로운 사랑입니다.



.. 나는 한국어로 시를 쓴다. 한국어는 내 어머니에게서 전해받은 말이다. 그러므로 한국어는 나를 버릴 수 없다. 나의 시는 나를 버릴 수 없다 ..  (白石의 마을 17)



  별이 돋습니다. 별이 돋는 밤입니다. 별은 낮에도 있지만, 밤에 한결 눈부시게 돋습니다. 해가 뜹니다. 해는 밤에도 있으나, 낮에 한결 환하게 맞이합니다.


  지구별은 늘 돌고 돌기에, 지구 한쪽에서는 낮에만 해를 보고 밤에는 해를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쪽 지구에서 해를 볼 적에 저쪽 지구에서는 고이 잡니다. 저쪽 지구에서 해를 보면 이쪽 지구는 고이 자지요. 서로 낮과 밤을 되풀이합니다. 사람은 삶과 죽음을 잇습니다. 말이 자라고, 생각이 흐르면서, 이야기가 피어납니다. 새로운 삶을 지어서 하루를 열면, 이 하루는 다시금 기쁨과 노래로 자랍니다.



.. 노래는 강처럼 흐르는 것 / 노래는 바다처럼 쓰러지는 것 / 노래는 하늘처럼 무한한 것 / 노래는 땅처럼 익숙한 것 ..  (4行詩, 딸애에게 들려주는 노래)



  한국에서 나고 자라며 삶을 이루는 사람들이 쓰는 말은 모두 한국말입니다. 그러나, 같은 한국말이면서도 다른 한국말입니다. 고장마다 쓰는 말이 다릅니다. 마을마다 쓰는 말이 다릅니다. 사람마다 쓰는 말이 다릅니다. 대학교를 다닌 사람과 시골에서 조용히 사는 사람이 쓰는 말이 다릅니다. 도시와 시골에서 쓰는 말이 다릅니다. 책 많이 읽거나 글깨나 쓰는 사람이 쓰는 말하고 몸으로 일하는 사람이 쓰는 말이 다릅니다. 교수와 교사가 쓰는 말이 다르며, 아기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가 쓰는 말이 다릅니다. 아이와 어른이 쓰는 말이 다르고, 학자와 학자 아닌 사람이 쓰는 말이 다릅니다. 다른 나라에서 여러 해 살던 사람하고 이 나라에서 내처 사는 사람이 쓰는 말이 다릅니다.


  다 다르면서 다 같은 한국말일 텐데, 이 말에 우리는 어떤 숨결을 넣으려 할까요. 다 같으면서 다 다른 한국말일 텐데, 이 말을 우리는 어떤 노래로 부르려 할까요.


  봄에는 봄비가 오고, 겨울에는 겨울비가 옵니다. 바람은 거칠게 불다가 조용히 잠듭니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 밝고, 낮이 스러지면서 저녁이 찾아옵니다. 따스한 손길이 되어 따스한 말이 흐르고, 차디찬 마음이 되어 차디찬 말이 퍼집니다.


  내가 부르는 노래는 내 어버이가 부르던 노래일까요? 내가 부르는 노래는 내 아이가 물려받아 부를까요? 시집을 덮고 내 말을 돌아봅니다. 내가 우리 아이들과 시골집에서 늘 쓰는 말에는 어떤 꿈과 사랑이 흐르는지 가만히 되새깁니다. 4348.2.2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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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2-25 21:28   좋아요 0 | URL
아..좋네요..ㅎㅎㅎ.

숲노래 2015-02-26 05:52   좋아요 1 | URL
마음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면
누구나 시를 좋아할 수 있으리라 느껴요~
 
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 - 미술 치료사 정은혜의 공감 노트
정은혜 지음 / 샨티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 삶읽기 180



즐거움과 두려움은 늘 함께

― 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

 정은혜 글

 샨티 펴냄, 2015.1.30.



  물구나무서기를 하면 내 팔과 다리가 거꾸로 섭니다. 그런데, 물구나무를 서서 가만히 있다 보면, 거꾸로 서는 모습이란 무엇인가 하고 다시금 돌아보곤 합니다. 거꾸로란 무엇일까요. 어떤 모습이 거꾸로일까요. 두 다리로 땅을 디디면 ‘바로’이고, 두 팔로 땅을 디디면 ‘거꾸로’일까요. 동그란 모습인 지구별에서 북녘과 남녘은 서로 어떤 자리가 되고, 어느 쪽이 ‘바로’이고 어느 곳이 ‘거꾸로’일까요. 지구별 바깥쪽과 안쪽은 서로 어떤 터전일까요.


  몸이 무거울 적에는 물구나무를 서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몸이 무겁다면, 몇 킬로그램쯤 되어야 무거운 셈일까 궁금합니다. 무겁다와 가볍다를 가를 만한 잣대나 틀이 있을까요. 키가 몇 센티미터에 몸무게가 몇 킬로그램이면 무겁거나 가벼울까요.


  힘이 있으면 물구나무서기를 잘 할는지 궁금합니다. 힘이 없으면 물구나무서기를 못 할는지 궁금합니다. 힘이 있거나 없다는 잣대는 어떤 크기로 따질 만한지 궁금합니다. 어느 만큼 힘이 있으면 힘이 ‘있’거나 ‘없’어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거나 ‘못 할’까요.



.. 이러한 일들을 계속 겪으니 짜증이 났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자 이것이 왜 그 사람들 잘못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 없고 가족 없고 소외당하고 무시당하고 정신병이 있어서 사회의 언저리에서 멍하게 삶을 보내는 그들이 그렇게나마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아닌가? 하는 일 없이 하루 종일 미국의 쓰레기 같은 낮 텔레비전 방송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홍콩 무술 영화 비디오를 보고 또 보는 이들이 이렇게라도 나에게 관심을 갖는 것 아닌가 … ‘당신은 참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이 말을 열심히 텔레파시로 보내니 그것을 받았는지 어쨌는지 그녀의 입술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간다. 내가 따라서 살짝 웃으니 그녀도 살짝 웃는다 ..  (31, 50쪽)



  밥을 잘 짓는 길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잘 지으면 됩니다. 밥을 못 짓는 길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못 지으면 됩니다. 잘 지으려고 하면 잘 지을 수 있지만, 못 지으려고 하면 못 지을 수 있습니다. 불을 살짝 잘못 맞추어도 밥을 못 짓고, 물을 살짝 잘못 맞추어도 밥을 못 짓습니다. 다 그렇습니다. 국을 끓일 적에도 이와 같아요. 간을 살짝 잘못 맞추어도 국맛이 떨어지고, 간을 살짝 잘 맞추어도 국맛이 나아져요.


  그러니까, 언제나 내 마음에 따라서 달라지는 삶이라고 느낍니다. 내 마음이 너그럽다면, 내가 하는 일은 언제나 너그럽습니다. 내 마음이 괴롭거나 고단하다면, 내가 하는 일은 언제나 괴롭거나 고단합니다. 내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하다면, 내가 하는 말은 언제나 사랑으로 가득해요. 내 마음이 미움이나 시샘으로 넘친다면, 내 입에서 흐르는 말은 으레 미움이나 시샘이기 마련입니다.



.. 정상인이든 정신병자이든 “당신은 미쳤소. 그러니 당신 이야기도 다 미친 거요.”라고 하면 대화할 여지가 없어진다 … 그들의 작품을 보면 우리가 그들을 정신병이 있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정신병과 동일시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곤 한다 … 실제로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감정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어 어렸을 때부터 엄하고 호된 행동 요법을 치료라는 이름으로 받아 온, 그래서 마치 사육당하다시피 살았다며 그러한 치료를 거부하는 자폐운동가의 말이 생각난다 ..  (67, 83, 130쪽)



  정은혜 님이 쓴 《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샨티,2015)를 읽습니다. 정은혜 님은 ‘미술 치료사’로 일한 이녁 삶을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이 책은 ‘미술 치료’란 무엇이고, ‘미술 치료’를 어떻게 했는가를 밝힌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미술 치료는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미술 치료이면 어떻게 마술 치료이면 어떠하겠습니까. 글쓰기 치료도 사진찍기 치료면 또 어떠하겠어요. ‘무엇’으로 ‘치료’를 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대수롭게 돌아볼 대목은, ‘무엇’을 다루어서 ‘어떤 일’을 하든,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이 되어 어떤 삶을 짓느냐에 있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삶을 일구면 삶이 즐겁습니다. 스스로 고단하게 삶을 돌보면 삶이 고단합니다. 스스로 웃음으로 삶을 엮으면 삶에 웃음이 가득하고, 스스로 눈물로 삶을 쥐어짜면 삶에 눈물만 흘러요.



.. 중심으로 들어가 보면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손에 꼽힐 정도의 몇 가지 주제의 변주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 제일 어려웠던 일은 바늘에 손가락이 찔리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꼬맹이 남자애들에게 바느질은 여자만 하는 게 아니라 멋있는 남자도 하는 것이라고 꾀는 일이었다 … 내게 선물로 주어진 간결한 음식을 앞에 놓고, 그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이 나무 그릇이 어디서 왔는지, 이 음식을 키운 땅이 어떻게 왔는지 등을 생각하면 감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177, 199, 232쪽)



  귀를 기울여 소리를 듣습니다. 귀가 있으니 소리를 듣지요. 눈을 크게 뜨고 온갖 모습을 봅니다. 눈이 있으니 온갖 모습을 보아요. 그러면, 우리는 또 무엇을 할까요? 살갗이 있어서 서로 만지거나 쓰다듬거나 얼싸안습니다. 머리가 있어서 생각을 합니다. 마음이 있으니 사랑을 길어올립니다.


  곰곰이 보면, 우리는 우리한테 있는 모든 것을 골고루 써서 삶을 아름답게 누릴 수 있습니다. 돈이 있으면 돈을 다루어 삶을 누릴 테지요? 그런데, 돈은 있되 사랑이 없다면? 이때에는 돈은 넘쳐도 사랑이 메말라서 삶이 썩 아름답지 않습니다. 거꾸로, 사랑은 가득하되 돈이 없으면?


  사랑은 가득하면서 돈이 없을 적에도 삶이 메마를까 궁금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이때에도 삶이 메마르리라 여길 수 있으나, 정작 ‘사랑 가득 돈 없는’ 사람들을 보면, 삶이 메마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밥은 돈이 있어야 먹지 않거든요. 손수 흙을 일구어도 밥을 먹어요. 손수 집을 지어서 살림을 하지요.



.. 밖에 나가는 시간이 아주 적고, 나가도 단체로 우르르 가거나 운동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이렇게 남몰래 꽃 한 송이를 옮겨 심고 돌보고 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 다른 날은 비가 내렸는데, 숲에 누워서 빗방울 하나가 높은 나무 꼭대기에서 더 이상 볼 수 없을 때까지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마치 비가 오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마냥 신비로웠고, 그 신비로운 경험에 눈물이 났다 … 대다수의 미술 치료사들도 자신을 위한 치유적이고 창조적인 작업을 할 시간과 여유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 사람들은 치료사가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친구가 없어서 불행하다 ..  (247, 255, 278, 314쪽)



  있어야 할 것이 있을 때에 삶이 아름답습니다. 있어야 할 것이 없을 때에 삶이 고단합니다. 우리한테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 하고 생각할 노릇입니다. 우리가 먼저 갖추면서 다스릴 대목은 무엇인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길에서 무엇을 즐겁게 먼저 해야 할까 하고 헤아릴 노릇입니다.


  즐거움과 두려움은 늘 함께 있습니다. 두 가지 느낌은 모두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멀리 떨어진 데에 있는 두 마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똑같은 일을 놓고도 어느 때에는 즐겁고 어느 때에는 두렵습니다. 이 대목을 슬기롭게 읽어야 합니다. 똑같은 일을 마주하고도 어느 때에는 왜 즐겁고 어느 때에는 왜 두려운지 또렷하게 헤아려서 알아야 합니다.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제대로 느끼지 못하며, 제대로 알지 못할 때에는, 우리 삶은 늘 즐거움과 두려움이 엇갈리고 맙니다.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즐거움이기에 더 좋고 두려움이기에 더 나쁘지 않은 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즐거움과 두려움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으면, 내 삶을 슬기롭게 헤아리면서 온통 사랑으로 넘실거리는 노래를 부르면서 웃는 하루를 엽니다. 4348.2.2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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