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코 5
쿄우 마치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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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78



봄바람이 가볍게 분다

― 미카코 5

 쿄우 마치코 글·그림

 한나리 옮김

 미우 펴냄, 2012.12.30.



  이웃집 할아버지가 쪽파를 열 꾸러미 건네주십니다. 열 꾸러미나 되는 쪽파를 한꺼번에 먹을 수 없으니, 울타리를 따라 한 줄로 옮겨심습니다. 우리 집도 이웃집도 모두 시골집이기에, 흙에서 캔 쪽파는 다시 흙을 파서 뿌리를 잘 덮어 주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흙에 뿌리를 심으면 줄기(잎)는 다시 올라옵니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내내 먹을 수 있어요. 쪽파는 뿌리만 살짝 다듬어서 써도 되지만, 알뿌리를 땅속에 그대로 두면서 언제까지나 기쁘게 새로운 잎을 얻을 수 있습니다.


  쪽파가 아닌 큰파도 뿌리를 땅에 심으면 꾸준하게 새 잎을 얻습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풀은 푸르게 다시 돋기 마련이라, 한 번 심으면 이 아이들은 오래도록 우리한테 고마운 밥이 되어 줍니다. 겨울을 앞두고 꽃이 피고 씨앗이 맺도록 지켜보면, 새로운 씨앗이 퍼지면서 이듬해에는 더 넉넉히 열매를 얻어요.


  들딸기도 이와 같습니다. 먹을 수 있을 만큼 훑어서 먹고, 나머지를 그대로 두면 해마다 덩굴을 뻗으면서 이듬해에는 더 넉넉히 열매를 베풀어요. 열매나무도 이와 같지요. 가지치기를 굳이 해야 하지 않습니다. 줄기가 튼튼하고 굵으면서 우람하게 자라도록 돌보면, 열매나무는 해마다 더욱 싱그럽고 맛난 열매를 나누어 줍니다.





- ‘심장이 뛰는 건 달려서 그런 게 아니다.’ (9쪽)

- ‘어제랑 똑같은 시간에 나와 어제랑 똑같이 천천히 걸었다.’ (13쪽)



  여덟 살 큰아이와 아침에 쑥을 뜯는데, 큰아이가 묻습니다. “아버지, 왜 여기저기 돌아가면서 뜯어?” “응, 한곳에서만 뜯으면 이 아이들이 더 못 자라잖아. 돌아가면서 조금씩 뜯으면 더 오래 더 많이 뜯을 수 있어.”


  많이 심기에 많이 거둔다지만, 많이 거둔다고 해서 모두 다 먹지 못합니다. 모두 다 먹지 못하면 이웃하고 나누거나 다시 흙한테 돌려줍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굳이 많이 심어야 하지 않습니다. 먹을 만큼 심되, 조금 넉넉히 심으면 됩니다. 즐겁게 누릴 만큼 심고, 즐겁게 돌보면서 봄과 여름을 지냅니다. 즐겁게 돌보아 가을에 거두면, 겨울에 다시금 즐겁게 추위를 나면서 고마운 밥을 누려요.





- ‘한 번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빨간 열매. 아직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다.’ (58쪽)

- ‘카토를 좋아하지만, 진짜 사랑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67쪽)

- ‘흘러가게 두는 거 그만할래. 이 빨간 구두는 어디에도 날 데려다주지 않으니, 나 스스로 걷기로 했다.’ (69쪽)



  쿄우 마치코 님 만화책 《미카코》(미우,2012) 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다섯째 권 끝자락을 보면 2013년에 여섯째 권을 곧 선보인다는 광고가 있습니다. 그러나, 2014년을 지나고 2015년이 되어도 《미카코》 여섯째 권은 한국말로 나올 낌새가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곧 내놓겠노라 밝힌 여섯째 권이라도 나와야 할 텐데, 책에 나오는 광고는 그냥 광고로 끝날까요. 아니면, 여러 해 동안 겨울잠을 자던 책이 새봄에 새롭게 나올 수 있을까요.





- “이거, 나오 엄마가 드리래.” “그러고 보니, 둘 다 새엄마네.” (86쪽)

- “괜찮지 않을까? 이치무라 네 일이니까, 네 결정이 제일 옳아.” ‘미도리카와의 침묵은, 좋은 바람을 기다리는 시간 같다.’ (106쪽)



  봄바람이 가볍게 붑니다. 삼월 팔일 낮에는 우리 집 마당에서 나비를 처음으로 봅니다. 벌은 지난달부터 보았고, 나비는 어제부터 봅니다. 우리는 우리 집에서 나비를 어제부터 보았지만, 이 나비는 더 일찌감치 다른 곳에서 깨어났을 수 있어요. 아니면, 우리 집 풀숲이나 나무 한쪽에서 조용히 깨어났을 수 있습니다.


  이제 무당벌레를 꽤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갓잎과 유채잎은 올해에 새로 깨어난 벌레가 갉아먹은 자국이 많습니다. 모과나무에 움이 터질 듯 말 듯 부풀고, 매화나무는 며칠 뒤면 꽃망울이 터질 듯합니다. 이웃집은 벌써 닥나무 꽃이 피었고, 이웃 여러 마을에서는 매화꽃이 가득 터지기도 했는데, 우리 집 나무는 조금 늦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 나무가 꽃을 조금 늦게 피운다면, 다른 마을 나무보다 더 오래 피우는 셈입니다. 늦꽃이 오래 간다고 할까요. 그야말로 따사로운 볕과 바람이 아침저녁을 감돌 무렵에 우리 집 나무들이 기지개를 마치고 깨어난다고 할까요.





- ‘만약에 지금, 입시를 포기하겠다고 하면,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114쪽)

- “어떤 집이 지어질까? 모른다는 건 제일 좋을 때라고 생각해. 뭐든 될 수 있다는 거니까.” (119쪽)

- “버렸다고? 어째서. 좋은 추억이었는데!” “또 그릴게. 천재소년이 아니라, 이번엔 천재가 되어 보일게.” (124쪽)



  만화책 《미카코》에 나오는 ‘이치무라 미카코’는 천천히 ‘제 길’을 걸으려 합니다. 이제껏 ‘제 마음’에 따라 걷지 않던 길이지만, 이제부터 제 길을 걸으려 합니다. 이냥저냥 휩쓸리듯이, ‘제 마음’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둘레에서 바라는 대로 떠돌며 다녔지만,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 마음이 아닌 ‘내 마음 바라보기’를 하려고 합니다.


  내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내 길을 갑니다. 내 길을 갈 적에는 내 둘레에서 깜짝 놀랄 수 있어요. 그렇지만, 다 괜찮아요. 내가 말을 안 하고 지냈다고 해서 ‘네 생각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뜻이 아니었음’을 밝힌 셈이니, 내 둘레에서도 ‘내 생각’을 처음으로 제대로 바라보면서 ‘내 마음대로 걷는 길’을 꾸밈없이 바라보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둘레에서 내 길을 꾸밈없이 바라보아 주지 않는다면? 아마 이때에는 내 둘레에 있던 사람이 나를 떠나겠지요. 그러면, 이들더러 떠나라고 하면 됩니다. 나는 너를 굳이 붙잡아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를 바라보면서 내 삶으로 가야 합니다. 내가 네 삶을 뒤따라가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너는 네 삶으로 가야 하고, 나는 내 삶으로 가야 합니다. 사랑이 아닌 곳으로 따라간다고 해서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을 하려면 사랑인 곳으로 가야 합니다.


  ‘이치무라 미카코’는 시나브로 제 길을 찾아서 걷습니다만, 이 아이와 맞물리는 ‘미도리카와’라는 아이는 아직 제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미도리카와라는 아이도 앞으로 제 길을 제대로 찾고 싶습니다. 《미카코》 여섯째 권에서는 이 이야기가 더욱 넓고 깊으면서 따사로이 흐를 테지요. 아무튼, 너무 늦지 않게 여섯째 권이 한국말로 나오기를 빕니다. 4348.3.9.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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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앤소니 드 멜로 지음, 이현주 옮김 / 샨티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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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06



삶이 무엇인지 바라볼 수 있으면

―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앤소니 드 멜로

 이현주 옮김

 샨티 펴냄, 2012.5.7.



  삶이 무엇인지 바라볼 수 있으면, 내 삶에서 어려운 일은 한 가지조차 없습니다. 삶이 무엇인지 바라보지 않거나 바라볼 마음이 없으니, 내 삶에서 모든 일이 다 어렵고 맙니다.


  삶은 기쁨이 아닌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삶은 즐거운 노래이면서 웃음입니다. 그러나, 삶이 기쁨이라고 가르치는 학교는 없습니다. 삶이 기쁨이라고 알려주는 신문이나 방송은 없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학교는 아이들을 교과서로 길들이고 입시지옥에 묶어 놓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학교는 아이들한테서 기쁨을 빼앗거나 없애야 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꽁꽁 묶어야, 입시지옥으로 빠져듭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들들 볶아야, 아이들은 졸업장 아닌 내 삶을 짓는 길로 못 나아갑니다.


  신문이나 방송은 어떤 구실을 할까요? 신문이나 방송은 사건·사고와 정치·경제와 스포츠·오락만 다룹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삶을 차분하게 가꾸는 슬기로운 꿈’을 다루는 일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신문과 방송은 사람들이 서로 ‘이쪽 저쪽(이를테면 진보와 보수)’으로 갈려서 다툼질을 하도록 부추깁니다.



.. 하느님은 그 어떤 등기부도, 목록도 보관해 두지 않으신다! 그분은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시고, 한없는 사랑으로 감싸 안으신다 … 그냥 보라! 응시하라. 관념을 보려 하지 말고 보이는 세계를 그냥 보라 … 종소리를 듣고 싶으면 바다가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춤꾼을 보고 싶으면 춤을 보아라. 노래하는 이를 만나고 싶으면 노래를 들어라 ..  (13, 26, 33쪽)



  기쁨을 찾고 싶다면 학교를 버려야 합니다. 즐겁게 웃거나 노래하고 싶다면 신문과 방송을 버려야 합니다. 기쁨을 누리려 한다면, 내 삶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즐거움을 나누려 한다면, 내 사랑을 내가 스스로 지어야 합니다.


  학교에 길든 몸으로는 기쁨이 없습니다. 사회의식이나 신문·방송이나 정치·경제 같은 얼거리에 갇힌 마음으로는 즐거움이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똑같은 옷을 맞춰 입고, 똑같은 머리카락과 매무새로 똑같은 아침에 똑같은 시멘트집으로 들어가서 똑같은 교과서를 들여다보면서 똑같은 시험문제를 푸는 아이들은 아무도 안 웃습니다. 아니, 못 웃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가 웃으면 어떻게 될까요?


  회사나 공장에서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이들도 일하면서 못 웃습니다. 연봉이 아무리 높아도 은행계좌를 들여다보며 웃지 않아요. 내 주머니에 가득 찬 돈을 이웃과 기쁘게 나누면서 웃는 사람이 참으로 드물어요. 게다가, 신문에서 사건과 사고를 읽으며 웃는 사람이 있나요? 정치나 경제나 스포츠나 오락 기사를 읽으면서 웃는 사람이 있나요? 삶에서 피어나는 웃음이 아니라, 몇몇 연예인이 바보짓을 일삼으면서 억지로 웃기려 하지 않나요?



.. 가슴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무슨 신비스러운 판타지 속으로 들어가라는 게 아니다. 그대 고향집으로, 그대 자신에게 돌아가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지금 여기로 돌아오라는 말이다 … 우리 인간들은 하느님 품에 안겨 있으면서 쉬지를 못한다. 창조된 세계를 보라. 나무, 새, 풀, 짐승들 …… 모두가 기쁨으로 충만해 있다 … 행복에 대하여 그들이 가진 첫 번째 틀린 생각은 그것이 감각의 쾌락, 재미, 도취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다 ..  (44, 53, 54쪽)



  앤소니 드 멜로 님이 쓴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샨티,2012)는 아주 쉬운 책입니다. 즐겁게 살기가 아주 쉽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단히 쉬운 책입니다. 다만,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는 길잡이책입니다. 즐거움으로 들어서는 첫걸음을 알려주는 길잡이책이에요.



.. 당신은 얼마든지 당신이 아닐 수 있고, 누군가의 꼭둑각시 인형일 수 있다 … 기계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생명이 들어오면서, 당신은 뭔가 달라진 것을 느끼게 되리라 … 하느님은 내일이 아니다. 하느님은 지금이다. 삶은 내일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이다 … 살아 있음은 너 자신이 되는 것이다. 살아 있음은 지금 있는 것이다. 살아 있음은 여기 있는 것이다 …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되는 성향이 있다. 당신은 이보다 더 영적이고 신성한 무엇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  (72, 75, 80, 84, 110쪽)



  즐거움은 남이 나한테 찾아서 주지 않습니다. 즐거움은 늘 내가 스스로 찾아서 누립니다. 그러니, 앤소니 드 멜로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첫걸음’입니다. 이 책은 성경이나 경전이 아닙니다. 그저 첫걸음입니다. 내 삶에서 내 즐거움을 누리려 한다면, 내 새걸음을 내딛을 수 있어야 해요. 그러면, 새걸음은 어떻게 내딛을까요? 첫걸음을 디뎌야 새걸음으로 나아가요. 첫걸음을 떼지 않으면 새걸음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부디 신문은 끊고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같은 책을 읽는 이웃이 늘기를 바랍니다. 부디 텔레비전은 고물상에 맡긴 뒤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같은 책을 곁에 두고 읽는 동무가 늘기를 바랍니다. 신문이나 방송은 쓰레기가 아닙니다만, 우리가 스스로 쓰레기로 되는 길로 이끄는 신문이나 방송이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신문이나 방송을 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책은? 책도 우리를 쓰레기가 되는 길로 이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네, 오늘날 문명 사회에서 거의 모든 책은 우리가 스스로 쓰레기가 되는 길로 이끕니다.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는 책은 모두, 내가 스스로 바보가 되는 길로 이끕니다. 우리가 책을 읽으려 한다면, 심심풀이 땅콩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을 나 스스로 찾도록 북돋우는 책을 읽을 노릇입니다. 처세나 자기계발이 아니라, 삶노래와 기쁨웃음으로 내가 스스로 이끌도록 돕는 책을 길동무로 삼을 노릇입니다.



.. 사물을 습관처럼 보지 않겠다는 선한 의지, 무엇이든지 새롭게 보겠다는 선한 의지만 있으면 된다 … 우리는 남한테 조종당하지 않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 우리가 찾는 것은 우리 안에 있다 … 마음에서 좋고 싫음을 씻어버릴 때 우리는 하느님을 보게 될 것이다 … 협박당하지만 않으면 아이들은 언제나 훌륭하다. 그들은 무엇이든지 듣고 보고 배울 수 있다 ..  (128, 135, 162, 187, 197쪽)



  사랑은 아주 쉽습니다. 내가 스스로 사랑이니까요. 삶은 아주 아름답습니다. 내가 스스로 삶이니까요. 예배당이 아닌 내 가슴속에서 하느님을 찾으면 됩니다. 학교가 아닌 내 마음속에서 가르침을 찾으면 됩니다. 남이 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꿈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좋은 삶이나 나쁜 삶은 따로 없습니다. 그저 삶입니다. 이 삶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내 꿈을 지을 때에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름다움이나 사랑스러움도 ‘좋고 나쁨’으로 따지지 않아요. 아름다우면 그저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면 그예 사랑스럽습니다. 좋거나 나쁘다는 틀로 바라볼 때에는 ‘참 아름다움’이나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참답게 기쁘거나 즐거운 삶은 ‘좋고 나쁨’이 아니라, 오로지 티없고 가없으며 끝없는 기쁨이나 즐거움입니다. 4348.3.9.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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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린네 15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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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77



너는 부자라서 네 꿈을 이루니?

― 경계의 린네 15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1.25.



  우리 집 방바닥에 있던 장난감을 아이들더러 손수 치우도록 시킵니다. 아이들은 처음에 한숨을 쉬었지만, 내가 방바닥을 걸레로 훔치면서 어떤 것을 치워야 하는지 알려주니 더 군말을 하지 않고, 어느덧 ‘장난감 치우기’를 재미난 놀이로 삼습니다. 그래,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모두 놀이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갖고 놀다가 저것을 갖고 노느라 어느새 방바닥은 온갖 장난감이 가득한데, 이렇게 늘어놓은 장난감을 하나하나 만지면서 제자리로 갖다 놓는 몸짓도 멋진 놀이입니다.


  방바닥은 어느새 말끔합니다. 걸레질을 여러 차례 하니, 봄을 맞이한 우리 집이 한결 빛나는구나 싶습니다. 나는 걸레질을 마무리하고, 아이들은 ‘큰 장난감 통’을 하나 들고 마당으로 나가서 놀겠노라 합니다. 날이 폭하고 바람이 싱그러워서 마당에 천막을 펼쳤어요. 아이들은 마당에 펼친 천막에 들어가서 오순도순 놉니다.



- “정말로 아주 강력해. 그러고 보니 확실히, 학교의 공기가 아주 맑아졌고, 부유령도 하나 안 보여.” “즉 렌게가 나쁜 짓을 한 건 아니란 말이지?” “그래. 내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것만 빼면.” (14쪽)

- ‘어떻게 된 거지? 스트랩이 사기를 빨아들여서 영들을 끌어들일 줄 알았는데.’ “이건. 이방에 가득 차 있던 가난의 기운?” “뭐야?” “그렇구나. 그래서 영들이, 슬쩍 들여다보더니 질린 얼굴로 나가 버린 거야.” (41쪽)





  겨울이 끝나며 찾아오는 봄은 따스합니다. 새벽이나 밤에 부는 바람은 쌀쌀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주 보드라우면서 포근하구나 싶은 바람이 가득합니다. 봄이네, 봄이로구나, 봄이야, 하고 생각하다가, 이 봄은 어디에서 왔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하늘이 베푼 선물일까요? 바람이 내미는 선물일까요? 지구별과 해님이 나누어 주는 선물일까요?


  우리 집 큰아이가 ‘봄은 언제 와요?’ 하고 물을 적에 ‘네가 봄을 부르면 봄이 오지.’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요, 봄은 나 스스로 봄과 같은 마음이 되어 봄과 같은 노래를 부를 때에 옵니다. 봄은 내가 스스로 봄과 같은 숨결이 되어 봄과 같이 웃음을 지을 때에 옵니다.


  걸레질을 마친 뒤 기지개를 켭니다. 기지개를 켜고 주전부리를 그릇에 담습니다. 그릇에 담은 주전부리를 들고 아이들한테 갑니다. “천막 열어 주셔요.” “네.” “자, 받으셔요.” “고맙습니다.” 두 아이는 마당에 펼친 천막에서 오순도순 놀이꽃과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 ‘아니, 뭣보다 이 두 짠돌이가 돈으로 경쟁을 하다니! 속삭임 공주가 그렇게까지 할 만큼 명품이란 말인가?’ (52쪽)

- ‘바보지만 부잣집 딸인 아게하는, 언제나 반 아이들을 몰고 다녔다.’ … “렌게는 옛날부터 왠지 나를 바보 취급했지.” “왠지고 나발이고 들어 보면 몰라?” “들어 보니 그냥 네가 바보네.” “흥, 아니거든?” “아니야?” “렌게는 가난 때문에 성격이 꼬인 거야.” “아냐, 바보야.” “그보다 공부를 잘해서 사신 제일고 합격은 맡아놨던 렌게가, 이런 데서 뭘 하는 거니?” (71쪽)





  타카하시 루미코 님이 빚은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5) 열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열여섯째 권도 잇달아 나옵니다. 아직 일본에서 나온 책을 따라잡지 못하지만, 이렇게 다음 권을 꾸준히 만날 수 있어 반갑습니다.


  《경계의 린네》 열다섯째 권에서는 ‘부잣집 딸’과 ‘가난뱅이네 딸’ 사이에서 맞물리는 실타래 이야기가 흐릅니다. 부잣집 딸은 다른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 제 하고픈 일을 하고, 가난뱅이네 딸은 다른 걱정이 많은 채 제 하고픈 일을 못합니다.


  우리는 가난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고픈 일을 못 할까 궁금합니다. 우리는 부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고픈 일을 할까 궁금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꿈을 못 키우고, 부자인 사람은 꿈을 키우는지 궁금합니다.



- “정신이 들자 다시, 벤치에 앉아 있었어. 하지만, 어쩐지 주위가 온통 흐릿하고, 부원들도 모르는 사람뿐이었지. 나는 어떻게 된 걸까? 이긴 것도 꿈이었을까?” (127쪽)

- “좋아하는 사람을 너무 기다리게 하지 말고,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전해 주는 게 좋아.” “고마워. 용기가 생겼어.” (132쪽)





  부자인 사람은 돈으로 여러 가지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돈으로 여러 가지를 못 합니다. 부자인 사람은 돈으로 여러 놀이를 즐깁니다. 가난한 사람은 돈으로는 여러 놀이를 못 즐깁니다.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습니다. 부자인 사람은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도 즐길 만한 놀이를 누립니다. 부자인 사람은 돈이 없을 적에 즐길 만한 놀이를 모릅니다.


  소꿉놀이를 할 적에 돈이 들지 않습니다. 자리에 누워 꿈을 꿀 적에 돈이 나가지 않습니다. 공책에 글을 쓸 적에 돈이 들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달려 나들이를 다녀올 적에 돈이 들지 않습니다.


  돈이 있다면 더 멋진 사진기를 장만할 수 있을 텐데, 사진기가 고급이어야 ‘고급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돈이 없으면 좋은 종이나 붓을 장만하기 어려울 텐데, 낡은 종이나 붓이 있기에 그림을 못 그리지 않습니다.



- “돈을 벌다니, 사기신 일을 하러?” “당연하잖아! 정체를 숨기기 위해 동전지갑의 전재산 700엔마저 날렸는데!” “700엔이라는 거액과 바꿔서라도 정체를 숨기고 싶었단 말인가.” (146∼147쪽)

- “오늘 속여도 내일은 들킬지 몰라. 그래도 들키기 싫은 거냐? 그렇다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네 순수한 마음을 봐서.” (165쪽)





  부자라서 꿈을 이루지 않습니다. 꿈을 생각하기에 꿈을 이룹니다. 가난하기에 꿈과 멀어지지 않습니다. 꿈을 생각하지 않으니 꿈과 멀어집니다. 《경계의 린네》에 나오는 아이들은 저마다 꿈을 키웁니다. 돈으로 짓는 꿈이 아니라 마음으로 짓는 꿈입니다. 어떤 물질이나 물건으로 키우는 꿈이 아니라, 즐겁게 어우러지려는 꿈입니다. ‘가난뱅이 린네’는 가난하니까 가난한 살림을 꾸리지만, 돈을 많이 모아서 동무들한테 기쁨을 베풀려는 생각이 없습니다. 동무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기쁨은 돈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줄 압니다. 린네 곁에서 함께 어울리는 동무들도 이런 생각은 같아요. 돈을 쓴대서 더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돈을 안 쓴대서 덜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따사로운 마음이 반갑고, 넉넉한 품이 그립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이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손길이 고맙습니다.



- “후후, 하나하나라면 그렇지. 하지만 아이템이란 짜맞추기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다.” (169쪽)

- ‘동전지갑의 내 전 재산, 예산 700엔으로 이 정도의 장치를. 로쿠도 린네, 없는 살림 꾸리는 솜씨가 대단한걸.’ (176쪽)



  아이들은 키가 자랍니다. 아이들은 몸이 자랍니다. 아이들은 생각이 자랍니다. 아이들은 꿈과 사랑이 자랍니다. 어른인 우리들도 모두 아이였습니다. 어른인 우리들도 모두 키와 몸과 사랑과 꿈과 사랑이 자랐습니다.


  우리가 누릴 삶은 기쁨입니다. 야무진 살림꾼이 되든 헤픈 부자가 되든, 구두쇠 소리를 듣든 자선사업가 소리를 듣든, 우리는 기쁜 웃음꽃을 지으려는 길로 나아갑니다. 봄볕이 내리쬐는 하늘을 바라보고, 봄바람이 부는 들을 바라보아요. 도시에서도 밤하늘을 살펴 별빛을 찾아요. 길바닥 쪼개진 틈에서 돋는 풀꽃을 살피고, 나무마다 새로 돋는 겨울눈을 들여다봐요. 내가 선 이곳에서 오늘 하루를 스스로 알차게 가꾸는 마음이 되어요. 4348.3.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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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3 - 자음 편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 3
최승호 지음, 윤정주 그림 / 비룡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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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53



모든 말은 즐거운 놀이가 되지만

―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3

 최승호 글

 윤정주 그림

 비룡소 펴냄, 2007.7.27.



  우리는 말을 짓습니다. 나는 나대로 말을 짓고, 너는 너대로 말을 짓습니다. 나는 내 삶을 누리면서 말을 짓고, 너는 네 삶을 누리면서 말을 지어요. 저마다 다른 삶자리에서 다른 살림을 꾸리면서 다른 말을 짓습니다. 이리하여, 마을마다 말이 조금씩 다르고, 고을마다 말이 조금씩 달라요. 고장마다 말이 다르기 마련이고, 나라마다 말이 다릅니다.


  모든 말은 뿌리가 하나라 하지만, 사람마다 ‘같은 말’을 다 다르게 씁니다. 같은 것을 바라보면서 다 다른 것을 생각하기에 다 다른 말이 태어납니다. 같은 것을 다르게 생각하는 까닭은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지구별에서도 어느 한쪽이 낮이면 다른 한쪽은 밤이에요. 어느 한쪽은 아침이라면 다른 한쪽은 저녁입니다. 뭍에서는 높낮이에 따라 날씨가 조금씩 다르며, 똑같이 비가 오더라도 하늘에 뜬 구름결에 따라 빗결도 다릅니다. 그러니, 우리는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르게 느낍니다.


  요즈음은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이 있기에, 똑같은 것을 아주 똑같이 바라보도록 길듭니다. 게다가 학교에서 똑같은 교과서를 쓰는 터라, 그야말로 똑같은 것을 다 다른 사람이 그저 똑같이 바라보고 생각하고 느끼기만 하면서, 그야말로 똑같은 말만 흐릅니다.



.. 너, 구려 / 너 구린 거 알아 / 너 똥 먹었지 / 안 먹었어 / 그런데 왜 구린내가 나냐 / 저리 가 ..  (너구리)



  얼마 앞서까지만 하더라도, 동네마다 놀이가 다 달랐습니다. 놀이를 가리키는 이름이 달랐고, 놀이를 하는 틀이 달랐습니다. 같은 하늘을 등에 지고 사는 서울에서도 이 동네와 저 동네가 말씨도 놀이도 삶도 달라요. 그렇지만, 이제 골목놀이조차 모조리 사라지고 학교와 학원 사이를 맴돌다가 인터넷게임으로 바뀐 흐름이 되니, 서울과 부산에서도 ‘똑같은 삶’이 되고 똑같은 말이 됩니다. 말결이 살짝 다르기는 하더라도, 이제 한국에서 ‘다른 말’을 쓰는 ‘다른 삶’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문학을 하는 이들이 고장말이나 마을말을 쓰는 일이 드뭅니다. 학문을 하는 이라면 모두 표준말을 쓴다고 하는데, 이 표준말은 한국말이 아니기 일쑤입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한국말대로 맞추거나 띄기는 할 테지만, 이야기를 다루는 알맹이는 중국 한자말이나 일본 한자말이나 영어로 쓰기 일쑤입니다. 겉으로 보자면 모두 ‘한글’이지만, 속으로 보자면 ‘한국말’이 아니라고 할 만합니다.


  이리하여,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은 ‘다른 모습’이 없습니다. 다른 모습이 없을 뿐 아니라, ‘새로운 모습’도 없습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새로 가꾸지 않아요.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새로 일구지 않습니다.



.. 내 이름은 산딸기 / 나는 산의 딸이에요 / 산이 날 낳아 줬어요 / 내 이름은 산딸기 / 나는 산의 사랑스런 딸이랍니다 ..  (산딸기)



  요즈음은 새로운 문화나 문명이나 물질이 생기면 으레 영어나 서양말을 붙입니다. 영어나 서양말을 가끔 한자말로 옮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한국말로 새로운 문화나 문명이나 물질을 가리키거나 나타내려 하지 않아요. 한국말은 아예 없는 말처럼 다루고,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아예 멀리 밀어놓습니다. 한국말로 생각하지 않고, 한국말로 살지 않으며, 한국말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한국말로 삶을 가꾸거나 짓거나 돌보지 않습니다.



.. 담이 우는 거 봤니 / 난 봤다 / 비 오는 날이었는데 / 담이 울고 있는 게 아니겠어 / 담이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 / 괴로웠나 봐 / 하긴 담쟁이덩굴이 벽을 많이도 뜯어 먹었더군 / 뜯어 먹기만 했겠어 / 벽을 쭉쭉 빨아 먹기도 했을 거야 / 흡혈귀처럼 ..  (담 이야기)



  최승호 님이 쓴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비룡소,2007) 셋째 권을 읽습니다. 최승호 님은 ‘말놀이’ 동시집을 여러 권 씁니다. 동시를 쓰기는 쓰는데, ‘말놀이’를 하는 동시입니다. 낱말 하나를 놓고 최승호 님 나름대로 풀거나 엮거나 짜서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을 읽으면, 참말 ‘말’을 ‘다르게 읽’으면서 ‘노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동안 나온 수많은 동시집하고 여러모로 다릅니다. 다만, ‘새롭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숨결을 말에 넣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넋을 말에 심지는 않습니다. 말로 놀이를 할 수는 있되, 말로 삶을 가꾸거나 짓지는 못합니다. 말로 하하호호 깔깔낄낄 웃거나 노래할 수는 있되, 말로 꿈을 꾸거나 짓지는 못합니다.



.. 봄, 봄에 본다 / 보이지 않는 봄바람 본다 // 봄, 봄에 본다 // 보이지 않는 봄기운 본다 // 푸른푸릇한 풀 / 따스한 햇살 // 노란 민들레에 / 봄 한 송이 피었네 ..  (봄)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은 재미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기에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은 기쁘거나 즐겁지는 않습니다. 우리 삶을 새롭게 읽거나 바라보도록 이끌지는 않기 때문에 기쁘거나 즐겁게 읽을 만하지는 않습니다.


  최승호 님은 이녁이 머릿속으로 품은 생각에 따라 말놀이를 합니다. 새롭게 바라보면서 말놀이를 하지는 않습니다. ‘사회의식’과 ‘고정관념’에 따라 말놀이를 합니다. 그래서, 여느 동시집하고 이 동시집은 ‘다르’지만, ‘새로움’은 하나도 없습니다.


  담쟁이덩굴이 벽을 뜯어 먹는다는 생각은 재미있습니다. 여느 어른들 생각과는 좀 다릅니다. 그래요, 다르지요. 그렇지만 새롭지 않아요. 더욱이, 담쟁이덩굴 마음을 읽거나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산딸기가 산이 낳은 딸이라고 바라보는 생각은 재미있습니다. 여느 어른들 생각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래요, 달라요. 그렇지만 새롭지 않습니다. 더구나, ‘멧토끼’와 ‘멧나물’로 이어지는 ‘멧자락’에서 돋는 ‘멧딸기’를 읽지는 못합니다. 언뜻 겉으로 보이는 ‘말꼬리 잡는 놀이’로는 재미있습니다만, 이 다음으로 잇거나 흐르는 숨결까지는 없어요.



.. 말썽꾸러기 / 원숭이 귀를 잡아당기자 / 원숭이가 이상한 소리를 지르네 // 아야 /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 오요 /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 으이 / 아야어여오유우유으이 ..  (원숭이)



  똥은 구릴까요, 안 구릴까요? 똥이 구리다고 여기면 구립니다. 똥이 구릴 까닭이 없다고 여기면 안 구립니다. 손수 씨앗을 심어서 거두어 먹는 밥으로 삶을 짓는 사람은, 똥내음이 구리지 않습니다. 멧짐승이나 들짐승은 똥내음이 구릴까요? 멧짐승이나 들짐승이 누는 똥이 구린 냄새가 난다면, 아마 숲이나 들에서 우리는 모두 코를 막아야 할 테지요. 숲과 들에는 벌레와 짐승들이 사니까요.


  최승호 님이 쓴 동시에 가락을 입히면 멋지며 재미난 노래가 태어납니다. 이를테면 〈원숭이〉는 아이들이 널리 좋아하는 재미난 노래입니다.


  바로 이 대목입니다. 최승호 님이 쓴 동시는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뜻이 없’습니다. 뜻이 없다는 말은, ‘장난스러운 몸짓’은 되지만, 막상 ‘신나거나 즐거운 놀이’는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책이름은 ‘말놀이 동시집’이지만, 정작 최승호 님이 펼치는 동시 이야기는 ‘말장난 동시집’입니다.


  말장난이라고 해서 나쁠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말로 장난을 해 보았을 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최승호 님은 장난꾸러기입니다. 장난꾸러기 ‘어른아이 최승호’가 말을 놓고 요모조모 장난질을 해서 재미나게 하루를 보냈다는 소리입니다. 4348.3.7.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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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 나를 사랑하기 좋은 날
신현림 글.그림 / 현자의숲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 삶읽기 181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날

―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신현림 글

 현자의숲 펴냄, 2012.8.12.



  해가 기웃기웃 지려고 할 즈음에 뒤꼍으로 그릇을 하나 들고 나갑니다. 곁님과 아이들이 곧 배고프다고 할 듯하다고 느껴서, 뒤꼍에서 쑥을 뜯습니다. 이월이 막 저물고 삼월로 접어들었으나 쑥은 많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부침개 넉 장을 부칠 만큼 뜯을 수 있습니다. 아직 조그마한 쑥잎을 하나둘 뜯어서 그릇에 채웁니다. 쑥잎은 아무리 작아도 곁에 쪼그리고 앉으면 향긋한 기운이 퍼집니다. 쑥부침개를 하든 쑥국을 끓이든 쑥버무리를 하든 온통 쑥내음이요, 마당이나 뒤꼍에서 쑥을 뜯을 적에도 쑥내음입니다.



.. 세수도 안 하고 속살이 훤히 보이는 속옷을 입고 뒤척일 때 지친 하마같이도 보여요. 그래도 귀여우세요. 애써 꾸미지 않아도 당신은 아름다워요 … 사람들은 책을 봐야겠다고 늘 결심만 하죠. 정말로 실천하려면 20년은 걸릴 거예요 ..  (8, 27쪽)



  쑥을 헹군 뒤 밀가루 반죽을 합니다. 불판을 달굽니다. 기름은 아주 조금 붓습니다. 밀가루 반죽에 쑥을 넣고 더 섞은 뒤, 불판이 뜨끈뜨끈하면 이제부터 쑥부침개를 합니다. 기름이 자글자글 익는 부침개는 부엌을 지나 마루를 거쳐, 아이들과 곁님이 있는 방으로 퍼집니다. 아이들은 어느새 알아챕니다. “우와, 맛있는 냄새 난다! 아버지가 뭐 하나 봐!” 두 아이는 마루를 쿵쾅쿵쾅 뛰면서 부엌으로 달려옵니다. “아버지, 오늘 저녁은 무슨 밥?” 두 아이는 부침개 익는 냄새만으로도 배가 살살 고픕니다.


  한 장을 부쳐서 동그란 꽃접시로 옮깁니다. 두 장째 부치려고 반죽을 불판에 붓고 나서 아이들을 부릅니다. 자, 이제 먹자! 따끈하게 덥힌 국을 그릇에 담아 밥상에 올립니다. 아이들은 밥과 국과 부침개를 바지런히 먹습니다. 부침개 담은 접시가 빌 무렵 다음 부침개를 따끈하게 올립니다.


  이제 석 장째 부치고, 부침개를 먹는 젓가락은 조금 느슨합니다. 마무리로 넉 장째를 부친 뒤 설거지를 합니다. 두 아이는 조잘조잘 떠들면서 천천히 밥술을 뜹니다.



.. 딸아이를 부려먹거나 일 시켜먹으려 낳은 건 아닙니다. 일하는 법을 가르치긴 합니다. 엄마가 없을 때 혼자 있게 되면 뭐라도 해야 할 테니까요 … 고난마저 사랑하면 인생길이 더 잘 보이듯, 온전히 다 사랑하면 후회가 없습니다 … 자신의 가치가 다른 사람들의 험담으로 낮아져서는 안 돼요. 자신을 어여삐 보는 사람의 눈에 비친 자신의 어여쁨을 보세요 ..  (50, 61, 76쪽)



  신현림 님이 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현자의숲,2012)을 읽습니다. 새빨간 옷을 입은 가볍고 앙증맞은 책에 조그마한 그림이 깃듭니다. 무슨 그림일까 하고 가만히 쳐다봅니다. 아하, 신현림 님이 그린 그림이지 싶습니다. 하늘로 쪽 뻗은 파르스름한 머리카락이 돋보이는 그림이 예쁩니다. 신현림 님은 파랑을 사랑하는군요. 그러고 보면 ‘사과 여행’ 사진에서도 ‘파랑 능금’이 곧잘 나옵니다.



.. 서른 살을 보냈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소한의 생계비만 벌고 고시공부하듯 탐구하고 창작열을 불태우는 것뿐이었어요 … 마음속을 가난이 아니라 풍요로움, 행복, 자유의 이미지로 채워 보세요. 내가 꿈꾸는 이미지와 말로 내 속을 채워 나가면 삶은 바뀌더군요 ..  (112, 127쪽)



  파랑은 모든 목숨을 살리는 빛깔입니다. 우리는 흔히 ‘푸른 빛깔’이 모든 목숨을 살린다고 여길 테지만, 푸름과 파랑은 목숨을 살리는 구실이 다릅니다. 푸름은 ‘밥’으로 목숨을 살리고, 파랑은 ‘바람’으로 목숨을 살립니다. 아니, 푸름은 목숨을 살린다기보다 몸을 살찌우는 밥입니다. 파랑은 그야말로 목숨을 살리는 ‘숨결’입니다. 왜냐하면, ‘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는 바람은 ‘파란 기운’을 가득 담아서 우리한테 새로운 숨결로 깃들거든요. 밥은 며칠을 굶거나 보름을 굶더라도 목숨이 안 끊어지지만, 바람(숨)은 몇 초만 끊어도 곧바로 목숨을 잃어요. 그만큼 파랑이라는 빛깔은 우리 목숨하고 크게 잇닿습니다.



.. 한옥의 즐거움은 마당을 거닐거나 마루에 앉아 마당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거예요 … 통지표를 보다 보니 엄마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성적이 뚝 떨어져 의기소침한 나를 편안히 대해 주던 엄마 ..  (138, 142쪽)



  이야기책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은 책이름처럼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어떤 날일까 하고 수수께끼를 내고는 스스로 수수께끼를 풉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란 무엇일까요? 모든 것을 하고 싶은 날입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란 무엇일까요? 남이 나를 종(노예)처럼 부리면서 시키는 일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입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나로 우뚝 서서 홀가분하게 사랑을 꽃피울 수 있는 날이라면,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답게 노래하고 춤추면서 빙그레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날이라면, 우리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삶을 지으면 모든 날이 기쁨입니다. 사랑을 지으면 어느 날이나 노래입니다. 꿈을 지으면 온 날이 웃음입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란, 내 삶을 잃거나, 내 사랑을 잊거나, 내 꿈을 놓친 날입니다.


  하늘을 보면서 바람을 마셔요. 별을 보면서 바람을 느껴요. 해님과 마주보면서 바람을 누려요. 구름하고 동무하면서 바람을 불러요. 내 가슴 가득 파랗게 눈부신 바람을 담으면서 오늘 하루를 새롭게 맞이해요. 그러면, 오늘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아침을 열 수 있어요. 4348.3.6.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문학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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