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 함께 일기 쓰기
문현식 지음, 홍윤표 그림 / 철수와영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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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32



네 이야기를 써 봐

― 선생님과 함께 일기 쓰기

 문현식 글

 홍윤표 그림

 철수와영희 펴냄, 2012.5.15.



  나는 국민학교를 다닐 적에만 ‘일기장’을 썼습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일기장을 조금 만지작거리기는 했으나,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시험공부와 숙제가 워낙 많아서 일기장은 어느새 잊었습니다. 무엇보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일기쓰기를 숙제로 내주지 않았고, 일기를 안 쓴들 때리는 어른도 없습니다.


  내가 일기쓰기를 하던 국민학교 적을 떠올립니다. 그무렵 교사(어른)는 우리더러 ‘일기를 쓰라’고만 했습니다. ‘똑같은 일기를 쓰지 말라’고 덧붙였습니다. ‘겪은 일’을 쓰라고도 했고, ‘충효 사상’을 쓰라고도 했으며, ‘새마을운동’과 ‘반공 사상’을 쓰라고도 했습니다. 이리하여, 이런 일기를 안 쓰면 ‘안 쓴 만큼 두들겨팼’고, 밀린 일기는 ‘잔뜩 얻어맞고 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채우’든지, 집에 가져가서 채워 와야 합니다. 날짜마다 꼬박꼬박 무언가 칸을 채워서 넣도록 시켰습니다.


  어른으로 사는 나는 여러 가지 일기를 씁니다. 나더러 일기를 쓰라고 하는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일기를 안 쓴다고 해서 나를 때리는 다른 사람도 없습니다. 이제 나한테 일기쓰기는 숙제도 짐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일기쓰기는 ‘내 이야기 쓰기’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일기쓰기 = 글쓰기’입니다. ‘글쓰기 = 삶쓰기’입니다. ‘삶쓰기 = 이야기쓰기’이고, 내가 쓰는 이야기는 내가 오늘 하루 누리는 삶에서 스스로 짓는 꿈과 사랑입니다.



.. 하물며 물건과도 친구가 되는데 생명이 있는 식물과 친구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 숙제를 내고서 난 초조하다. 아이들이 식물과 대화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 오늘도 급식을 혼자 묵묵히, 35명의 아이들 쪽을 향한 채 우물거리며 먹었다. 먹으면서 아이들에게 오늘의 뉴스에 대해 말할 수 없으며, 어제 읽었던 소설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조용한 음악을 듣는 대신 아이들의 큰 웃음소리를, 식사 후에 따뜻한 차를 마시는 대신 아이들의 식판을 정렬해야 한다 ..  (25, 38쪽)



  내 어릴 적에는 왜 이런 말을 못 들었을까요? 내 어릴 적에 내 둘레에서 이런 말을 들려줄 만한 어른은 왜 없었을까요? 다른 학교에서도 비슷했을까요?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학교를 다녔을까요? 기나긴 군사독재와 반민주로 짓눌리던 학교 사회에서는 아이들한테 억지스러운 숙제와 체벌과 뺨따귀와 몽둥이질과 얼차려만 있었을까요?


  지난날과 달리 오늘날에는 생각을 깨거나 연 교사가 많이 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일기쓰기를 숙제로만 시키는 교사가 있을 텐데, 지난날과 달리 ‘일기에 내 이야기를 즐겁게 쓰면서, 내 삶을 스스로 가꾸는 아름다운 웃음과 눈물과 노래’를 들려주는 교사가 꾸준히 는다고 느낍니다.


  다만, 일기쓰기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새롭게 가르치는 교사는 틀림없이 늘 텐데, 입시지옥은 그대로 있습니다. 아니, 눈을 뜨거나 마음을 여는 교사는 꾸준히 늘 텐데, 입시지옥은 오히려 더욱 단단해지거나 거세어지지 싶습니다.



.. 교실에서 자기를 표현하지 않으면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나는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말하지 않는 아이의 말과 마음을 모두 이해한다는 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 일기에서 글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 짧은 두현이의 일기에서 두현이의 두려워하는 마음이 충분히 느껴진다 … 어쩌다 시간이 남으면 사고력과 창의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책도 읽어야 한다 … 학생과 교사의 대화 창구는 별로 없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내가 항상 마주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진실한 마음으로 서로를 마주하는 시간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  (43, 117, 121, 162쪽)



  문현식 님이 쓴 《선생님과 함께 일기 쓰기》(철수와영희,2012)라는 책을 읽습니다. 문현식 님은 초등학교 교사라고 합니다. 문현식 님은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과 만나면서 ‘아이와 함께 일기를 쓴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아이들 일기와 교사 일기가 나란히 나옵니다. 아이들한테만 쓰라고 시키는 일기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하루를 보내면서 느낀 문현식 님 생각과 마음을 차근차근 함께 쓴 일기입니다.


  곰곰이 돌아봅니다. 아이들이 쓴 일기를 살피는 교사는 많은데, 어른이 쓴 일기를 아이한테 읽어 주거나 읽히는 교사는 얼마나 될까요? 서로 일기를 바꾸어 볼 만큰 눈을 뜨고 마음을 여는 교사는 얼마나 있을까요?


  《선생님과 함께 일기 쓰기》에 나오는 문현식 님 일기는 ‘교사일기’나 ‘교단일기’가 아닙니다. 문현식 님 일기는 고스란히 ‘하루일기’이고 ‘삶일기’입니다. 책 한 권으로 묶이면서 문현식 님 일기가 바깥에도 드러난다고 할 테지만,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일기를 쓰면서, 언제나 아이들과 마음으로 사귀면서 삶을 들려주려고 하는 몸짓이로구나 하고 느낄 만합니다.



.. 인형 목욕을 했다. 어떻게 하는 거냐면 인형하고 같이 목욕을 하는 거다. 나는 토끼를 갖고 목욕을 하고 형아는 강아지를 갖고 목욕을 했다 (황지석) … 난 게임이 가장 재미있는 줄 알았는데 운동고 건강에 좋고 재미있고 개운하고 튼튼해지는 것 같았다. 내 동생은 메리야스만 입고 축구를 했는데 좀 우스꽝스러웠다 (이지숙) … 오늘 엄마가 일을 하러 식당에 가셨다. 저녁 8시에 가서 밤 12시에 오신다. 나는 지금 동생, 아빠와 같이 있다. 지금 현재 시각은 10시 5분이다 (김시온)  ..  (33, 69쪽)



  일기를 잘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성적이 잘 나와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대학교뿐 아니라 고등학교나 중학교를 꼭 가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아무렴 그렇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하거나 이름을 드날려야 하거나 권력을 거머쥐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요.


  우리는 무엇을 써야 할까요?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써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내 삶을 스스로 지으면서 기쁘게 웃고 노래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하루를 누려야 할까요?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삶을 가꾸는 기쁨이 온누리에 골고루 퍼지도록 사랑을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일기쓰기는 내 삶을 써서 스스로 돌아보는 글쓰기입니다. 일기를 즐겁게 쓰면서 내 삶을 즐겁게 돌아봅니다. 내가 스스로 즐겁게 하루를 누렸으니, 일기도 즐겁게 씁니다. 내가 내 삶을 스스로 사랑스레 가꾸니, 내 이야기를 내가 스스로 글로 갈무리해서 기쁘게 돌아봅니다.



.. 하루를 몽땅 기록하는 일기를 보면 매일매일 특별한 일을 찾아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날마다 비슷한 일들이고, 되풀이되는 하루 속에서 특별한 일은 가끔 일어난다 … 우리 교육의 현실은 지금 바뀌고 있는 걸까? 성적 지상주의, 학부모들의 교육 이기주의, 지나친 교육열, 밤새 불을 밝힌 학원 … 수업 시간에 장래 희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다혜가 질문을 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장래 희망이 뭐예요?” “???…….” 대답을 하려다 멈칫거렸다. 교사가 된 나에게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  (196, 199, 213쪽)



  우리 함께 일기를 써요. 우리 이야기를 우리가 기쁘게 써요.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 기쁜 삶을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즐겁게 써요.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에 흐르는 이야기는 내려놓고, 서로 아끼고 보살피면서 아름답게 웃은 하루를 내 손으로 정갈하게 일기에 남겨요.


  ‘일기’가 아니어도 돼요. 시도 쓰고 수필도 써요. 짤막하게 글을 써요. 이 글을 아이와 어른이 도란도란 읽으면서 기쁜 생각을 나누어요. 내가 손수 쓴 글을 편지로 띄우고, 네가 몸소 쓴 글을 편지로 받을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빌어요. 글 한 줄에 내 꿈을 담고, 글 두 줄에 우리 사랑을 담아요.


  밥을 짓는 이야기를 일기로 쓰고, 빨래를 하는 이야기를 일기로 써요. 걸어서 돌아다닌 이야기를 쓰고, 가만히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본 이야기를 써요. 꿈에서 겪은 이야기를 쓰고, 새봄에 피어나는 꽃을 한참 들여다보고서 써요. 내 손을 가슴에 대고 콩콩 뛰는 숨소리를 찬찬히 새기고서 글을 써요. 어버이와 교사는 아이들 손발톱을 곱게 깎아 주고서 글을 써요. 아이들 머리를 빗기고 나서 글을 쓰고, 긴머리를 고무줄로 묶거나 땋고 나서 글을 써요. 연날리기를 한 뒤에 글을 쓰고, 제기차기를 한 뒤에 글을 써요. 씨앗 한 톨을 심은 뒤 꾸준히 지켜보는 이야기를 글로 써요. 삶을 쓰면서 사랑이 자라나는 숨결을 온몸으로 느껴서, 이 멋진 하루를 일기라는 글로 써요. 4348.3.1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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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장수풍뎅이 내 아이가 읽는 책 3
다다 사토시 글 그림, 구혜영 옮김 / 제삼기획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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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86



서로 아끼고 믿는 사람

― 내 친구 장수풍뎅이

 다다 사토시 글·그림

 구혜영 옮김

 제삼기획 펴냄, 2002.2.15.



  봄으로 접어들었지만, 아침저녁에는 바람이 쌀쌀합니다. 시골은 늘 그렇습니다. 저녁에는 고요히 잠드는 때입니다. 봄가을에는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서늘하게 불면서 모두 고요히 잠들도록 합니다. 이 바람은 참으로 고마워서, 섣불리 깨어나려는 겨울눈이 조금 더 쉬었다가 씩씩하게 터지도록 쓰다듬어요. 모든 꽃과 겨울눈이 제때에 제대로 피어서 제철을 맑게 밝히도록 이끕니다.


  동이 트고 해가 솟으면 골골샅샅 따스합니다. 마당에도 집안에도 따순 기운이 스밉니다. 따순 기운을 먹으면서 풀꽃은 꽃잎을 벌리고, 온갖 새가 찾아들어 노래하며, 새봄에 깨어난 벌과 나비가 춤을 춥니다.


  아침마다 먼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이제 제비가 돌아올 날이 머지 않았네 하고.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제비가 돌아왔듯이, 올해에도 우리 집 제비가 기운차게 돌아와서 즐겁게 노래하기를 기다립니다.



.. 어느 겨울 유진이는 숲 속에서 아주 커다란 장수풍뎅이의 애벌레를 발견했습니다. “우와! 정말 크다. 이렇게 큰 애벌레는 처음 봐.” 유진이는 애벌레를 집에 가지고 가서 키우기로 했습니다 ..  (2쪽)




  제비는 우리를 믿고 돌아옵니다. 제비는 마을사람을 믿고 돌아옵니다. 제비는 이 시골자락에 먹이가 많고 포근한 보금자리가 되리라 믿고 돌아옵니다.


  오늘날에는 제비를 기다리거나 바라는 사람이 퍽 드뭅니다. 오늘날 도시는 제비가 살기에 어울리지 않으니, 도시에서는 아예 제비를 모르기도 하지만, 참새와 비둘기와 까치조차 아끼거나 사랑해 주지 않아요. 시골에서는 농약과 비료와 비닐을 엄청나게 써대느라, 제비가 돌아온들 딱히 반기지 않습니다. 제비가 돌아오건 말건 쳐다보지 않고, 제비가 집을 고치든 말든 쳐다보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새마을운동 물결이 채 가시지 않아, 제비집을 허무는 시골집이 제법 있습니다.



.. 한참을 놀다가 집으로 돌아간 유진이와 장수는 욕조에 들어가 목욕을 했습니다. ‘쓱싹, 쓱싹.’ “유진아! 사, 살려 줘!” 몸이 가벼운 장수는 물에 둥둥 떠서 버둥거렸습니다 ..  (18쪽)





  다다 사토시 님이 빚은 그림책 《내 친구 장수풍뎅이》(제삼기획,2002)를 읽습니다. ‘유진’이라는 아이가 숲으로 나들이를 갔다가 풍뎅이 애벌레를 보았고, 유진이라는 아이는 풍뎅이 애벌레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앞마당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어서 태어나도록 합니다. 이렇게 하고는 풍뎅이하고 함께 놀아요.


  숲에서 태어나야 했던 풍뎅이는 숲이 아닌 ‘유진이네 집’에서 태어납니다. 유진이네 집에 있는 밥을 함께 먹고, 유진이네 다른 동무하고도 어울려서 놀아요. 그런데 풍뎅이는 어쩐지 마음속으로 어딘가 그립습니다. 밤에 몰래 조용히 일어나서 마실을 다니다가 자꾸만 풀이 죽습니다.



.. 장수는 큰 도시까지 날아갔습니다. “굉장히 밝기는 하지만 왠지 쓸쓸한 곳인걸! 맛있는 것도 없는 것 같고.” 장수는 갑자기 유진이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  (25쪽)




  풀벌레는 풀과 함께 살 때에 가장 즐거우면서 아름답습니다. 풀짐승은 풀을 먹고 삶을 가꿀 때에 가장 기쁘면서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니, 풍뎅이가 갈 곳은 ‘도시에 있는 유진이네 집’이 아닌 ‘숲’일 테지요.


  유진이는 풍뎅이와 헤어져야 해서 아쉽지만, 풍뎅이를 숲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풍뎅이는 뜻밖에 도시에서 태어나야 했지만, 제 몸에 아로새겨진 오랜 이야기에 이끌려 숲으로 돌아갑니다. 이러면서 풍뎅이는 유진이라는 아이를 잊지 않아요. 풍뎅이한테 새로운 삶과 사랑과 꿈을 보여준 유진이라는 아이가 얼마나 곱고 착하며 사랑스러운지 알아차립니다.



.. 집에 돌아온 장수는 왠지 기운이 없었습니다. “장수야, 배 안 고파? 과일 좋아하지?” “유진아, 사실 나 숲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즙을 마시고 싶어.” ..  (30∼31쪽)




  내 어버이는 나를 낳습니다. 나는 내 어버이가 지은 보금자리에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나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습니다. 내 아이는 내가 지은 보금자리에서 태어나 씩씩하게 자랍니다.


  나는 내 어버이가 지은 보금자리가 마음에 들었을까요? 우리 아이들은 내가 지은 보금자리가 마음에 들까요? 나는 언제부터 내 어버이 곁을 떠나서 내 나름대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지으려는 꿈을 키웠을까요?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저마다 어떤 꿈을 키우면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이룰까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보금자리를 새롭게 가꾸면서 아름답게 돌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곁을 떠나서 새로운 터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지을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떤 보금자리가 되든, 이 보금자리는 오직 사랑과 꿈이 감도는 터여야 합니다. 사랑이 자라고 꿈이 무르익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살아갈 곳입니다. 즐겁게 놀고 기쁘게 일하지요. 사랑스레 어우러지고 아름답게 이야기꽃을 피우지요. 우리는 서로 아끼고 믿는 사람입니다. 4348.3.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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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슬럼프 완전판 1
토리야마 아키라 글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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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79



생각이 날개처럼 돋으려면

― 닥터 슬럼프 완전판 1

 토리야마 아키라 글·그림

 설은미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0.12.25.



  2010년에 ‘완전판’으로 다시 나온 《닥터 슬럼프 완전판》(학산문화사,2010) 첫째 권을 곰곰이 읽습니다. 《은하패트롤 쟈코》는 아이들한테 읽혀도 재미있다고 느껴서 《닥터 슬럼프》도 장만해서 읽습니다. 그런데, 《닥터 슬럼프》는 그리 재미있지 않습니다. 줄거리 흐름에 따라 어떤 생각을 들려주려 하는가 하는 대목은 알 만하지만, 굳이 이렇게 이야기를 짜야 할까 싶고, 이러한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보여주어서 무엇이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불량아’라는 아이는 학교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수업을 하다가 대놓고 술을 마십니다. 로봇을 만든 박사는 ‘변태 잡지’를 아무렇지 않게 읽으며 집 곳곳에 둡니다. 일본 사회와 문화가 이러한 모습이라고 보여줄 만하고, ‘변태 잡지’와 ‘시사 잡지’가 다를 바 없다고 할 만하니, 어떤 잡지를 집에 두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닥터 슬럼프》에서는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삶을 짓는 기쁨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바보스러운 사회에서 다 같이 바보스럽게 뒹구는 이야기를 넉넉히 찾아보면서, 이러한 바보짓에서 우스꽝스러운 몸짓이 흐를 뿐입니다.



- “두렵다. 난 나의 재능이 두려워. 이토록 완벽한 인간형 로봇을 뚝딱 만들어 치우다니.” “바, 박사님! 날 수가 없어요!” “누가 날랬어? 굳이 날 필요 없잖아!” “못 나는 거야?” (8쪽)



  생각이 날개처럼 돋으려면, 삶이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야 합니다. 생각이 날개를 달고 훨훨 날려면, 홀가분한 넋으로 홀가분한 마음과 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흔히 ‘자유로운 상상력’을 말하는데, ‘자유’란 무엇이고 ‘상상력’이란 무엇일까요? 아무것이든 닥치는 대로 할 수 있는 모습이 ‘자유’일까요? 무엇이든 만화로 그리거나 영화로 찍으면 ‘상상력’일까요?


  좋거나 나쁘거나 옳거나 그른 금을 그으면서 서로 틀을 짓는 모습이라면, 이러한 틀짓기도 삶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이쪽으로만 가야 옳거나 저쪽으로만 가야 옳을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 “정말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내내 내 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녀!” “왜?” “그야 친구니까.” “누가 맘대로 친구야?” “헤헤헤, 친구란다! 우린 불량아야, 불량아!” (31쪽)



  《닥터 슬럼프》에 나오는 박사가 바보스럽다거나, 펭귄마을 학교가 바보스럽다고 할 만하기에, 이러한 틀을 짠 만화책이 재미없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사회를 고스란히 담아서 보여주는 만화책이 재미없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나는 이 만화책을 보면서 웃음이 나오지 않고, 이 만화책을 보는 동안 노래가 흐르지 않습니다. 모두 쳇바퀴처럼 틀에 맞추어 움직이는 흐름을 그대로 두기에 재미없는 사회에서, 박사는 스스로 재미있는 무언가를 누리려고 로봇을 만들고 여러 기계를 만들어요. 그런데, 이런 기계를 자꾸자꾸 만들더라도 스스로 재미나지 않습니다. 따분한 삶에서 박사 스스로 이것저것 만들지만, 새로운 기계는 어느 한때 따분함을 달랠 뿐, 새로운 하루로 나아가는 실마리가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박사는 아라레라는 로봇을 만들면서 이 아이한테 아무것도 가르치지 못합니다. 학교에 보내기는 하지만, 박사 스스로 아라레한테 아무런 삶을 보여주지 못하고, 아무런 사랑을 들려주지 못하며, 아무런 이야기를 나누어 주지 못해요.



- “거대 털벌레!” “아, 아니야. 저건 곰이라는 거야. 아기 곰일 때부터 길렀는데 저렇게 크게 자란 거야. 하지만 늘 저 작은 우리 안에 갇혀 있으니, 참 안됐어.” “나쁜 짓 했어?” “그런 건 아닌데.” (87쪽)



  ‘불량아’라고 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아무런 재미가 없고, 집이나 마을에서도 따로 재미가 없겠지요. 재미가 없으니 심심풀이를 찾아서 떠돌고, 심심풀이를 찾아서 떠돌기에, 스스로 이루는 삶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얼거리로 흐르는 《닥터 슬럼프》이고, 이쁘장한 그림과 여러 주인공이 나오기는 하지만, ‘새로움’이 드러나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만화책을 볼 때에 ‘만화’이기 때문에 쉽게 빠져듭니다. 재미있든 재미없든 그저 만화를 펼칩니다. 이야기가 있든 없든 그저 만화에 사로잡힙니다. 그냥 들여다보면서 길들거나 익숙하게 받아들입니다.


  어른이라면, 축구라든지 야구라든지 이것저것 스스로 ‘취미’로 여겨서 즐깁니다. 사회의식에 젖어 여러 가지를 ‘다양한 문화’로 누립니다. 이 만화책이 ‘어른판’이라고만 한다면, 이 만화를 어른판으로 어른끼리 얼마든지 즐길 만하겠지요. 4348.3.1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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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 신경림 동시집 담쟁이 동시집
신경림 지음, 이은희 그림 / 실천문학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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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54



철이 들 때에 비로소 어른

―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신경림 글

 이은희 그림

 실천문학사 펴냄, 2012.5.18.



  어머니는 모든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도 얼마 앞서까지 나처럼 조그마한 아이였어요.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도 얼마 앞서까지 나처럼 자그마한 아이인 줄 까맣게 잊었거든요.


  어른인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녁도 얼마 앞서까지 아이로 지낸 줄 늘 떠올리면서 되새겨서 오늘 하루 씩씩하고 즐겁게 산다면 모든 것을 알아요. 철이 든 어른이지요. 이와 달리, 어른인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녁도 얼마 앞서까지 아이로 무럭무럭 큰 줄 잊거나 잃으면 오늘 하루를 재미있거나 새롭게 맞이하지 못해요. 이때에는 아무것도 모를 뿐 아니라, 철도 안 들어요.



..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는 아저씨 / 얼굴이 검다 / 어느 먼 나라에서 왔나 보다 ..  (공사장 아저씨와)



  철이 드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철이 안 든 사람은 어른이 아닙니다. 나이가 많기에 어른이 아니에요. 나이가 많은 그냥 ‘나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인데, 나이가 어리면 그냥 ‘나이 어린 사람’이에요. 나이가 어려도 철이 든 사람이 있고, 나이가 어리지만 똑똑하고 생각이 밝은 사람이 있어요.


  우리는 서로 마주하면서 ‘나이’가 아닌 ‘마음’을 헤아리면서, 저마다 어느 만큼 ‘철’이 들어서 ‘셈’이 밝거나 또렷한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제 철과 셈을 모른다면 아름답지 않아요. 제 철과 셈을 놓친다면 사랑스럽지 못해요. 그러니, 철을 모르고 셈을 모르는 ‘몸만 어른 같아 보이는 사람’은 재미없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 우리는 / 우리말로 공부를 하는데 // 어른들은 / 그것이 싫은가 봐 // 미국 말로 얘기하고 / 미국 말로 노래하라니 ..  (어른들은 싫은가 봐)



  신경림 님이 쓴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실천문학사,2012)를 읽습니다. 신경림 님이 처음으로 내놓은 동시집이라고 합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신경림 님이 처음부터 ‘어른시’ 아닌 ‘동시’를 썼다면 어떠했을까요?


  어린이와 함께 읽을 시를 쓴 신경림 님은 이 책에서 한자를 하나도 안 씁니다. 아이들 앞에서 한자를 쓸 수 없을 테지요. 아이들한테 한자를 가르칠 뜻으로 시를 쓸 수 없을 테지요. 그러나, 신경림 님은 이녁 첫 시집을 ‘농무’도 아닌 ‘農舞’라는 한자를 써서 냈어요. 신경림 님은 우리네 ‘삶노래(민요)’를 구수하게 녹여서 시를 썼다고 하지만, 막상 신경림 님이 쓴 시는 ‘삶노래를 손수 지은 여느 사람’은 읽을 수 없었어요. 한글도 잘 모르는 시골지기는 한자로 쓴 시를 읽을 수 없으니까요.



.. 평양에 가선 평양 아이들을 만나고 / 몽골에 가선 몽골 아이들을 만나서 / 동무가 되어 달리고 싶다 ..  (자전거를 타고)



  어느 ‘민요’도 한자로 안 적습니다. 모든 ‘민요’는 오롯이 한국말입니다. 중국말도 중국 한자말도 일본 한자말도 아닌 ‘한국말’로 이루는 삶노래인 민요예요. 그러니까, ‘민요’라는 이름도 ‘민요를 부르는 사람’은 안 써요. 참말 ‘민요’란 무엇일까요? ‘사람(民) + 노래(謠)’를 학자들이 ‘민요’라는 낱말로 적는데, 왜 ‘사람노래’나 ‘삶노래’ 같은 낱말로는 학문을 안 했을까요? 다시 말하지만,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노래를 부른 여느 사람들은 그저 ‘노래’라고만 했어요. 이를 학자와 시인과 예술과와 작가는 ‘民謠’라고 하는 그럴듯하다고 하는 한자로 내세우면서 말했습니다.



.. 빌딩을 지나면 또 빌딩 / 아파트 옆에는 또 아파트 // 엄마, 섭섭해하지 마 / 내 눈에는 지금도 // 만두 가게 지마녀 / 잡화점 // 학교 앞에는 / 큰 은행나무 ..  (학교 앞에는 큰 은행나무)



  오늘날 아이들은 거의 다 도시에서 삽니다. 시골에서 사는 아이조차 ‘도시 문화’와 ‘도시 문명’을 누릴 뿐 아니라, 하루 빨리 도시로 가려고 합니다. 시골 이버이도 아이들을 하루 빨리 도시로 보낼 생각으로 ‘더 높은 학교’ 있는 도시바라기를 합니다. 이리하여, 신경림 님이 처음 선보인 동시집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에도 도시 아이들 이야기가 가득해요.


  어쩔 수 없어요. 신경림 님도 도시 문화로 살고, 이 동시집을 읽을 아이도 거의 다 도시에 사니까요. 그러니까, 신경림 님이 시골을 두루 돌아다닐 무렵, 아직 시골에 아이들이 제법 많았을 지난날에, 신경림 님이 ‘어른시’ 아닌 ‘동시’를 썼다면, 참말로 ‘말을 살리는 노래’를 불렀으리라 생각합니다. 지식인이나 학자가 즐기는 민요가 아니라, 흙을 밟고 노래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신경림 님 싯말로 새롭게 태어났으리라 생각합니다.



.. 꼬부랑 할머니가 / 두부 일곱 모 쑤어 이고 / 일곱 밤을 자고서 / 일곱 손주 만나러 // 한 고개 넘어섰다 / 두부 한 모 놓고 / 길 잃고 밤새 헤맬 / 아기 노루 먹으라고 ..  (꼬부랑 할머니가)



  아이들은 도시에도 살고 시골에도 삽니다. 아이들은 도시에서 살더라도 ‘삶’을 꿈꿉니다. 아이들은 시골에서 살면서 ‘꿈’을 짓고 싶습니다. 이 대목을 우리 어른들이 잘 짚고 헤아릴 수 있기를 바라요. 철이 들 때에 비로소 어른인 줄 알기를 바라요. 서로서로 즐겁게 철이 들면서 아름답게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바라요.


  봄은 어디에서나 봄이니, 이 봄볕을 함께 쬐요. 겨울은 어디에서나 겨울이니, 겨울바람을 함께 마셔요.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곳 지구별도 별이고, 멀고 깊은 온별누리도 별이에요. 다 다른 별이 함께 있는 누리이고, 다 다른 사람이 함께 있는 지구별입니다. 이 별에서 서로 아끼고 보살피면서 따사로이 사랑하는 하루를 짓는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빌어요. 4348.3.1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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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예술가 라피 비룡소의 그림동화 233
토미 웅거러 글.그림, 이현정 옮김 / 비룡소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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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85



어깨동무를 하는 두 사람

― 꼬마 예술가 라피

 토미 웅거러 글·그림

 이현정 옮김

 비룡소 펴냄, 2014.12.31.



  2007년에 “Neue freunde”라는 이름으로 나온 그림책이 2014년 끝자락에 《꼬마 예술가 라피》(비룡소,2014)라는 이름을 얻어 한국말로 나옵니다. “Neue freunde”는 “새로운 동무”나 “새 동무”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자면, 토미 웅거러 님이 빚은 그림책 《꼬마 예술가 라피》는 ‘꼬마 예술가’인 ‘라피’를 이야기하는 책이 아닙니다. 이 그림책은 ‘새롭게 사귀는 동무’가 오래도록 함께 마음을 나누는 아름다운 ‘길동무’요 ‘삶동무’가 되는 줄거리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 아빠는 일찍부터 라피에게 공구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었어요. 이사를 오면서 라피에게도 작업실이 생겼어요 ..  (4쪽)




  그림책 《꼬마 예술가 라피》에 나오는 라피와 키라는 아이는 ‘예술가’도 ‘꼬마 예술가’도 아닙니다. 라피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키네 어머니와 아버지도, 저희 아이들을 바라보며 ‘예술가·꼬마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 어버이는 저마다 저희 아이를 ‘사랑스러운 아이’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두 아이를 ‘엉뚱한 아이’로 생각합니다. 이러다가 두 아이가 손수 지은 수많은 ‘새 인형 동무’를 보고는 ‘예술가’나 ‘꼬마 예술가’로 여깁니다. 미술관 아저씨도 두 아이를 ‘예술을 하는 어린이’로 여깁니다.


  라피는 동무를 사귈 마음일 뿐입니다. 키는 라피가 저한테 무척 마음이 잘 맞을 멋진 동무가 되리라 느꼈습니다. 두 아이는 저마다 ‘새로운 동무’가 될 인형을 함께 만들었고, 인형 동무를 만드는 동안 어느덧 ‘아름다운 사랑과 꿈’이 싹터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 옆집에 살던 소녀 키 싱이 망치 소리를 듣고 울타리 너머로 흘깃 쳐다보았어요. 키가 물었어요. “무얼 만드는 거야?” “친구들을 만들고 있어.” “나도 같이 해도 돼? 난 바느질을 잘하거든.” ..  (8쪽)



  어깨동무를 하는 두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두 사람은 아직 ‘아이’인 몸이지만, 몸이 아이일 뿐, 따사롭고 너그러운 마음입니다. 마음이 따사로우니 아름답습니다. 마음이 너그러우니 사랑스럽습니다. 라피와 키가 짓는 꿈은 서로 아끼며 보살필 줄 아는 따사로우며 너그러운 숨결입니다. 두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짓는 조각품이나 옷은 ‘예술품’이 아닌 ‘따뜻한 넋’이자 ‘너그러운 얼’입니다.


  다만, 바깥에서는 이렇게 안 볼 테지요. 평론가나 전문가는 이처럼 안 볼 테지요. 둘레에서는 두 아이를 ‘예술가’로 바라볼 테지요. 그러나, 두 아이는 예술을 하려고 조각을 하거나 옷을 짓지 않습니다. 두 아이는 삶을 지으려는 아름다운 손길이기에 기쁘게 조각을 하거나 옷을 짓습니다. 두 아이는 삶을 사랑하려는 신나는 마음이기에 즐겁게 조각을 하거나 옷을 지어요.




.. 라피와 키는 새 친구들을 앞마당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어요. 이웃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지요. 아이들도 찾아와 물었어요 … 이제 다른 아이들도 함께 만들고 싶어 했어요 ..  (20쪽)



  예술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예술품은 어떤 대단한 예술가 손끝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삶에서 짓는 살림살이가 모두 예술품입니다. 젓가락 한 벌과 밥그릇 하나가 예술품입니다. 낫과 쟁기가 예술품입니다. 지게와 바구니가 예술품입니다. 배냇저고리가 예술품이고, 뜨개옷이 예술품입니다. 베틀과 물레가 예술품이고, 절구와 다듬잇돌이 예술품이지요.


  그림책 《꼬마 예술가 라피》는 책이름만 바꾸었을 뿐이지만, 그만 ‘두 아이’를 ‘예술쟁이’로 바꾸어 놓고 맙니다. 그래요. 우리 눈이 이렇습니다. 우리는 현대 물질문명 사회에서 아이들을 ‘직업 전문가’로 키우려고만 합니다. 삶을 스스로 지으면서 사랑스러운 동무를 사귀는 아름다운 길을 걷도록 아이를 보살피는 어버이가 드뭅니다.


  나를 보고 옆을 보셔요. 어른인 나를 보고 아이인 이웃을 보셔요. 우리는 모두 아름다운 넋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사랑스러운 숨결입니다. 어깨동무하면서 아름답고, 손을 잡으면서 사랑스럽습니다. 아름다운 삶을 누리며 아름다운 손길을 뻗으니 ‘예술’이 되고, 사랑스러운 살림을 가꾸며 사랑스러운 손길을 나누니 ‘문화’가 됩니다. 4348.3.10.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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