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Kitchien 4
조주희 글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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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68



수수한 밥 한 그릇에서 사랑이 피어난다

― 키친 4

 조주희 글·그림

 마녀의책장 펴냄, 2010.10.29. 1만 원



  어제 읍내로 마실을 가서 ‘소고기 설도’라는 고기를 조금 장만했습니다. ‘설도’라는 이름은 언제나 낯설고, 이 이름이 어디를 가리키는가 하고 이야기를 들어도 이내 잊습니다. 한국말사전을 찾아보면 ‘설도’라는 낱말은 아예 안 나옵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아야 비로소 ‘泄道’라는 한자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泄道’라는 고기는 소에서 어디일까요?


  인터넷에서 찾아본 백과사전에서는 예전에 ‘구녕살’이나 ‘밑살’이나 ‘비역살’이라는 이름을 썼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한국말 이름이 ‘먹는 것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듣기에 안 좋다’고 해서 한자말 이름으로 바꾸어서 쓴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泄道’라 하든 ‘비역살(밑살, 궁둥살, 구녕살)’이라 하든 “궁둥이 쪽에 있는 사타구니 살”을 가리킵니다. 어떤 이름을 쓰든 소고기 가운데 한 곳을 가리킬 뿐이에요.


  가만히 보면, 고깃집이나 푸줏간에서는 ‘앞다리’나 ‘뒷다리’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나, ‘전지(前肢)’나 ‘후지(後肢)’라는 이름을 쓰기도 해요. ‘전지·후지’는 듣기에 좋은 이름일까요? 알아들을 만한 이름일까요?



“태워 줄까? 수학여행?” “……. 따돌려졌어요.” “늘 그렇지만, 혼자 여행이 최고지. 차 돌릴까? 저거 너네 학교 차 맞지?” (10∼11쪽)


‘언니는 막 피어난 꽃의 싱싱하고 분명한 향기보다, 은은하고 포근한 말린 꽃향기가 나는 사람 … 어느 사진작가 집을 방문했을 때 집에 가득했던 매화나무. 꽃차를 즐겨 만드는 언니를 위해 시골의 야생국화를 꺾어다 준 남자. 내가 마신 건, 사진을 찍어내듯 소중하게 말려져 봉인된 기억들이었어.’ (43, 48쪽)



  오늘 아침에 ‘밑살구이’를 합니다. 아이들이 먹기 좋도록 처음부터 알맞게 썰어서 굽습니다. 밑살이라고 하는 고기를 먹은 일은 퍽 드물다고 떠오릅니다. 곁님이 아기를 배거나 낳아서 몸을 돌보며 미역국을 끓이던 무렵 밑돈을 살뜰히 모아서 모처럼 한 번 밑살을 장만해서 쓰곤 했어요. 밑살을 구워서 먹은 일은 마흔 해 남짓 살며 아직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처음으로 밑살구이를 아이들하고 먹었어요.


  조주희 님이 빚은 만화책 《키친》(마녀의책장,2010) 넷째 권을 읽으며 아침으로 먹은 밑살구이를 가만히 떠올립니다. 네 식구는 밑살 사백오십 그램쯤을 한 끼니로 깨끗이 먹습니다. 이만 한 무게라면 고깃집에 가서 먹으려 할 적에 돈을 꽤나 써야 했겠지요. 집에서 구워도 돈은 꽤 치른다고 할 만하지만, 나와 곁님으로서는 처음이요 아이들로서도 처음인 새로운 고기구이입니다.


  자, 그러면 처음으로 먹어 본 밑살구이는 어떤 맛이었을까요? 자주 먹을 수 있다면 참으로 즐거웁겠네 싶도록 맛있더군요. 밑살구이를 하면서 불판 둘레에 고구마랑 당근을 함께 구워 보았는데, 고구마구이와 당근구이도 맛있습니다.



‘뭐야, 짜증나게 탈북자가 뭐야. 전학생은 늘 한방으로 처리했는데. 쳇, 어쩔 수 없지. 없는 사람 치자. 뭐, 자기도 알아서 조용히 하잖아.’ (58쪽)


“내 어머닌 5년 전 함께 국경 넘다 강물에 빠져 죽었다. 내 아버진 2년 전 공안에게 붙들려 북조선으로 끌려갔고. 니 아나? 네 어머니, 아버지.” (68쪽)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으면서 오늘 짓는 이 밥 한 그릇은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맛으로 스며들면서 어떤 이야기가 될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설거지를 하면서 오늘 지은 이 밥 한 그릇을 비운 우리 아이들은 어떤 기쁨을 몸이랑 마음에 담으면서 씩씩하게 놀까 하고 돌아봅니다.


  밥이랑 국만 단출하게 차리기도 하고, 마당에서 뜯은 풀을 신나게 올리는 봄밥도 있고, 카레나 짜장을 하기도 하고, 부침개를 한다든지 달걀말이를 하기도 합니다. 손이나 품이 가는 밥은 잘 안 해 버릇하는데, 아이들은 늘 고맙게 밥상을 받습니다. 웃고 떠들고 놀며 딴짓도 실컷 하며 수저를 쥡니다. 큰아이는 왼손 젓가락질이랑 숟가락질을 하겠다면서 늘 용을 씁니다. 작은아이는 한 숟가락 뜨고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면서 놀고, 또 한 숟가락 뜨고 다시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면서 놉니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스무 살이 되거나 마흔 살이 되면 저마다 어떤 밥을 손수 차려서 하루를 즐길 만할까 궁금합니다. 앞으로 나는 이 아이들이 차린 밥상을 받을 날이 있을 텐데, 그때에 이 아이들은 어떤 밥으로 기쁜 아침이나 저녁을 베풀어 줄는지 궁금합니다.



“완이 엄마, 여기서 뭐 해?” “정말, 이유식이 맛이 없네요. 이런 걸 먹으라고 주다니. 아줌마, 전 엄마 노릇 못하겠어요. 아이 하나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는 엄마라니. 으흐흑, 흐흑.” “아이고 이를 어째, 진정해. 아니, 대체 맛이 어떻기에. 음, 좀 맹탕이네. 소금 좀 치면 나으려나.” “네? 책에서 이유식엔 소금 치지 말라고. 알레르기 반응 살피면서 야채부터 고기로 하나씩.” “에이, 그게 다 뭐야. 아기도 맛있어야 먹지. 고기 야채, 다 때려넣고 양념해서 끓여. 우리 애들은 그냥 짠 국에 밥 말아 키웠구만.” (96∼97쪽)



  조주희 님이 빚은 만화책 《키친》은 밥 한 그릇하고 얽힌 삶을 차분히 보여줍니다. 맛있는 밥이든 맛없는 밥이든, 고단한 제삿상이든 카페타 레스토랑에서 잔뜩 차려입고 멋부리면서 먹는 밥이든,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삶을 누리며 다 다른 밥을 지으면서 마주한 삶을 만화로 엮어서 넌지시 보여줍니다.


  밥 한 그릇에서 웃음이 솟고, 밥 한 그릇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밥 한 그릇으로 하하하 웃는 동안 기쁨이 솟고, 밥 한 그릇을 마주보며 뚝뚝 눈물을 흘리다가는 새롭게 마음을 다잡습니다.



“정말 당신이 마음에 들었어요. 가까워지고 싶어요. 다시 만나고 싶고.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두부조림 좋아해요. 해 주시면 더없는 영광이겠고, 이런 분명한 의사표시, 뭐가 나쁜가요?” (133쪽)



  날마다 밥을 지으며 생각해 보면, 내가 지은 밥이 나로서는 가장 맛있습니다. 어릴 적에 어머니가 지어 주신 밥은 늘 고마웠습니다. 이웃하고 밖에서 사다가 먹는 밥은 내 품과 겨를을 아껴 주어서 새삼스레 반갑습니다. 이웃집에 나들이를 가서 받는 밥 한 그릇은 집집마다 다르면서 새로운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기에 재미있으면서 사랑스럽습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지은 밥을 받는다면, 이때에는 어떤 마음이 될까요? 아마 온갖 마음이 골고루 어우러지겠지요. 그야말로 밥 한 그릇에 삶이요 사랑이요 꿈이요 노래요 웃음이요 눈물이요 기쁨이요 아련함이요 그리움이요 놀라움이요 해님이요 달빛과 같다고 할 만합니다.



엄마, 아빠는 3년 전, 고향으로 돌아가 초보 농사꾼이 되었습니다. 어릴 적, 우리 식구들은 읍내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런 완벽한 시골 생활은 처음인 것이었죠. 다시 말해, 아이들에게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최고의 외가가 생긴 겁니다. (167쪽)


여름엔 상추와 오이, 고추를 뚝뚝 꺾어다, 수돗가에서 흙만 씻어내고는 된장에 찍어 먹거나 매실 소스를 쳐서 샐러드를 해먹습니다. 금방 땄기 때문에 시원하고 청량한 감칠맛이 한가득합니다. (172쪽)



  수수한 밥 한 그릇으로 수수한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만화책 《키친》이 사랑스럽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밥 한 그릇에서도 저마다 다르면서 새로운 꿈이랑 사랑을 넌지시 보여주는 만화책 《키친》이 즐겁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날마다 밥을 짓고 밥을 먹으며 밥을 나누는 만큼, 수수하면서 새로운 노래는 어느 집에서나 따사로이 흐르리라 생각해요.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기우는 저녁입니다. 저녁에도 오붓하고 조촐한 밥상을 잘 지어야겠습니다. 4348.10.29.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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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마을 - 좋은 삶을 살아낸 아미쉬 공동체의 기록
스콧 새비지 지음, 강경이 옮김 / 느린걸음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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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87



우리가 사는 마을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르나

― 그들이 사는 마을

 스콧 새비지 엮음

 강경이 옮김

 느린걸음 펴냄, 2015.10.2. 13000원



  다섯 살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서 까마중을 훑습니다. 잠옷을 입은 채 까마중을 신나게 훑습니다. 곧 십일월이지만 우리 집 마당과 뒤꼍은 까마중밭입니다. 이 까마중은 참으로 재미있는데, 사람이나 새가 열매를 훑으면 자꾸자꾸 새 줄기가 오르거나 돋습니다.


  사람이나 새가 열매를 훑지 않으면 조금 자라다가 더 자라지 않아요. 작고 새까만 알을 훑으면 곧 새 줄기가 나오면서 천천히 하얀 꽃이 피고, 하얀 꽃이 지면서 푸른 알이 영글고, 푸른 알은 이내 보랏빛으로 바뀐 다음에, 곧 새까만 알로 거듭나요. 이리하여 이 까마중은 십일월을 지나서 십이월까지 열매를 맛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까마중 열매를 먹고, 나는 까마중 잎사귀를 먹습니다. 아이들도 까마중잎을 먹지요. 왜냐하면, 까마중잎은 날풀로도 먹고, 반찬을 할 적에 함께 넣기도 하니까요.



정보고속도로가 미래의 물결이라면 저는 정보시골길을 만들어 여행자들이 더 느린 걸음으로, 더 빨리 진실에 닿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41쪽)


저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아버지, 저 말들을 없애고 다른 걸 이용하면 열 마리가 넘는 젖소를 키울 수 있어요.” 아버지의 대답은 늘 똑같았지요. “하지만 그러면 그 좋은 말똥거름을 얻지 못하잖니. 게다가 말 대신 트랙터를 쓰면 땅이 너무 굳어지고 만단다.” (47쪽)



  스콧 새비지 님이 엮은 《그들이 사는 마을》(느린걸음,2015)을 읽습니다. 이 책은 미국에 있는 아미쉬 마을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를 담는데, 〈플레인(Plain)〉이라는 잡지에 실은 글을 갈무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플레인〉이라는 잡지는 손으로 활자를 모아서 엮고, 나무판그림을 새기며, 햇볕힘을 쓰는 수동인쇄기로 찍는다고 해요. 더군다나 이 잡지를 받아보고 싶은 사람이 늘어나도 발행부수를 늘리지 않는다지요.


  더 많은 독자를 받아서 더 많은 돈을 벌겠다고 하는 잡지가 아니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알맞게 엮어서, 함께 나눌 이야기를 사랑스러운 이웃하고 조촐하게 주고받는다고 할까요.



평균적으로 1달러를 벌어야 60센트 어치 채소나 에너지를 살 수 있다. 그 정도의 돈을 벌기 위해서 더 많은 돈이 들어갈 때도 종종 있는데, 통근비나 옷 구입비까지 써야 하기 때문이다. (65쪽)


좋은 일을 하는 사람,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드는 사람에게 우리 돈을 쓸 때 그들은 살아갈 힘을 얻는다. (67쪽)


휘발유 자동차는 마차만큼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 재생불가능한 연료는 지상의 모든 사람이 전형적인 미국 시민처럼 낭비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 (85쪽)



  《그들이 사는 마을》은 이야기책입니다. 수수한 꿈을 수수한 사랑으로 가꾸어 수수한 삶으로 일구려는 사람들이 나눈 이야기를 모은 책입니다. 이 책에 실은 글이 처음 실린 잡지 〈플레인〉에서 ‘plain’은 ‘수수한’을 뜻한다고 하고, ‘꾸미지 않은’이나 ‘있는 그대로’를 뜻한다고도 합니다. 《그들이 사는 마을》이 이웃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바로 이 말마디처럼 ‘수수한’ 노래이고, ‘꾸미지 않은’ 웃음이며, ‘있는 그대로’ 어우러지는 바람결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수수한 노래일까요? 손수 흙을 가꾸는 하루가 수수한 노래입니다. 무엇이 꾸미지 않은 웃음일까요? 아이랑 오순도순 어깨동무하면서 놀고 일하고 살림을 짓는 하루가 꾸미지 않은 웃음입니다. 무엇이 있는 그대로 어우러지는 바람결일까요?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며 숲이랑 냇물이랑 바다랑 들을 모두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그대로 어우러지는 바람결입니다.



우리는 분명 건강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그 위기를 유발한 자들이나 치유한다는 자들이나 이 위기로부터 엄청나게 높은 수익을 올린다는 것이다. (107쪽)


왜 우리는 화학성분 없는 식품보다 무지방이나 무균식품을 훨씬 좋아할까? 왜 의료산업계는 흡연에 대해선 그토록 격렬히 반대하면서 항생제를 비롯한 약품을 육용동물에 대량 사용하고 유독 물질을 작물에 살포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가? (114쪽)



  수수한 사람은 도드라져 보이지 않습니다. 수수한 사람은 도드라지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수수한 사람은 그저 하루를 찬찬히 짓습니다. 더 나아가려 하지 않고 뒤로 가려 하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차근차근 한 걸음씩 걷습니다. 한 걸음을 가만히 내딛고, 두 걸음을 새롭게 내딛습니다. 세 걸음을 웃으며 내딛고, 네 걸음을 노래하며 내딛어요. 다섯 걸음을 춤추며 내딛다가는, 여섯 걸음을 꿈꾸며 내딛지요.


  스스로 삶을 짓기에 수수할 수 있습니다. 수수함이란 꾸밈없음이기도 한데, 오늘 하루가 언제나 즐거우면서 새롭기 때문에 부러 꾸밀 까닭이 없습니다. 수수함이란 있는 그대로이기도 한데, 나 스스로 언제나 사랑스러운 살림을 가꾸기 때문에 애써 덧보태거나 겉치레를 해야 하지 않아요.


  잘나 보이는 옷을 입지 않습니다. 멋져 보이는 자동차를 몰지 않습니다. 대단해 보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놀랍구나 싶은 책을 읽지 않습니다. 한 걸음을 차근차근 내딛으면서 천 리 길을 가듯이 한결같은 숨결이기에 수수합니다. 백 걸음을 한 걸음처럼 늘 첫머리를 돌아보기에 수수합니다.



기업식 농업에는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사고방식이 따라올 수밖에 없고 우리는 그런 관계를 피하고자 한다. (142쪽)


이곳 미국에서는 TV를 보고 싶다면 거의 모든 사람이, 심지어 교도소 수감자들도 볼 수 있다. 미국인은 하루 평균 세 시간 이상을 TV 앞에서 보내는데, 일하고 잠자는 것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셈이다. (168쪽)


고요를 채울 것이라곤 나의 목소리밖에 없었기에 나는 노래를 시작했다. 이제 두 살이 된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노래를 불러 주곤 했지만 그냥 이 노래 저 노래를 조금씩 불렀을 뿐이었다 … 무엇보다 나는 내가 노래 부르길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루 종일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세 살짜리 딸아이도 그렇다. (174∼175쪽)



  밥을 빨리 지어서 먹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날그날 즐겁게 밥을 지어서 먹으면 즐겁습니다. 밥을 많이 지어서 먹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때그때 기쁘게 밥을 차려서 알맞게 먹으면 기쁩니다.


  바깥에서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으려고 하면 막상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합니다. 오늘 내가 누리는 삶이 어떻게 즐겁고 얼마나 기쁜가 하고 돌아보면서 바라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즐거움이나 기쁨이 언제 어떻게 샘솟는가를 찾거나 느끼거나 압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노래하면 됩니다. 가수가 된 뒤에 노래를 부를 일이 아닙니다. 그저 내 목소리를 즐겁게 뽑아서 함께 노래하면 됩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악기를 켜면 됩니다. 전문 연주가로 된 뒤에 악기를 켜지 않아도 됩니다.


  선수처럼 잘 달려야 하지 않고, 선수처럼 자전거를 잘 타야 하지 않아요. 언제 어디에서나 홀가분하게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웃을 수 있으면 돼요. 멋진 올레길이나 둘레길을 찾아가서 관광이나 여행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 사뿐사뿐 걸어서 마실을 하면 됩니다. 우리 집 마당을 가만가만 거닐면 됩니다.



자동차를 끌면 보험이나 면허증과 관련된 비용도 들어간다. 자동차 대신에 말과 마차를 이용해 지역에서 농사를 지으며 일한다면 멀리 떨어진 직장에 출퇴근할 때보다 수입이 수천 달러는 줄겠지만 사실상 돈이 더 많이 남는다. (214쪽)


여러 세대 동안 간단한 수공구만을 사용하던 평범한 사람들도 집에서 아이들과 연로한 부모님을 돌볼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이 모든 발명품과 노동 절약형 장비를 갖추고도 병든 부모님을 돌볼 시간이 없다. (232쪽)



  고단한 날에는 세탁기 힘을 빌어서 빨래를 합니다. 고단하지 않은 날에는 틈틈이 손빨래를 합니다. 나는 두멧시골에서 살고, 우리 마을 어귀에는 오래된 빨래터가 있기에, 아이들을 이끌고 빨래터로 가볍게 나들이를 와서 빨래를 할 만합니다. 빨래터에 물이끼가 끼면 막대솔을 어깨에 이고 노래하면서 찾아온 뒤에 신나게 빨래터를 치워요. 이러고 나서 물놀이를 하지요.


  수영장이나 워터파크라 하는 데도 재미있을 텐데, 빨래터도 재미있습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서 마을 뒷산 골짜기로 나들이를 간 뒤에 그곳에서 골짝물놀이를 해도 재미있어요.


  해수욕장에 여름철에 맞추어 가야 즐겁지 않습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여느 바닷가에 가서 바닷바람을 쐬다가 도시락을 먹어도 즐겁습니다. 네 식구가 자전거를 천천히 달려서 바닷가 나들이를 해도 즐겁습니다. 함께 햇볕을 쬐고, 나란히 바람을 마시며, 다 같이 들내음을 맡으면 즐거운 하루입니다.



두 살짜리 딸 사라에게 물었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이 뭐니?” “아빠.” 이튿날에는 일곱 살인 딸 줄리아에게 물었다. “네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 뭐야?” “내 동생 사라.” (256∼257쪽)


오늘날 학교 교육 옹호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이들을 집단으로 모아 둔다고 사회성이 자라는 게 아니다. 우리가 도처에서 목격하듯 오히려 적대감을 키울 때가 많다. (269쪽)



  이야기책 《그들이 사는 마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주 쉽습니다. 누구나 쉽게 하면서 누릴 수 있는 삶을 가만히 들려줍니다. 너도 나도 함께 사랑스러운 이웃이 되어 기쁘게 어깨동무하는 살림을 찬찬히 이야기합니다.


  아이한테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장난감이 될 만합니다. 거꾸로 어머니나 아버지한테는 아이가 장난감이 될 만합니다. 아이는 어머니 등을 타거나 아버지 목을 타면서 놉니다. 어머니는 아이 배를 간질이면서 웃고, 아버지는 아이 궁둥이를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면서 노래합니다.


  학교는 졸업장을 따려고 다니지 않습니다. 학교는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기쁨이 흐르는 놀이마당이라고 할 만합니다. 집은 부동산이 아닌 보금자리요, 마을은 좋은 학군이나 첨단시설이 있는 데가 아니라 오순도순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삶자리입니다.


  미국에 있는 이쁘장한 아미쉬 마을에서 피어난 이야기가 《그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책으로 태어난다면, 한국에 있는 어여쁘고 작은 마을에서 “우리가 사는 마을” 같은 이야기가 조촐히 태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손으로 짓고, 사랑으로 지으며, 꿈으로 짓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알뜰살뜰 해맑게 태어날 수 있기를 빌어요. 4348.10.29.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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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2015-10-29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집단으로 모아둔다고 해서 사회성보단 적대감을 키울때가 많다는 말.. 리뷰보다가 오오 하고 멈춰지게 되었습니다.. 진짜 공감가는 말이네요! 수수하고 정말 플레인스럽게 살아간다면 모두가 행복감을 느끼며 욕심부리지 않고 살아갈 것 같네요ㅎㅎㅎ

숲노래 2015-10-29 20:32   좋아요 1 | URL
서로 아낄 줄 아는 아이(어른)들이 모인 자리일 때에 비로소
따스한 사랑이 흐를 수 있다고 느껴요.

그냥 집단으로 모아 놓으면...
이런 데에서 사회성을 키우기란 그야말로
어려운 노릇이나 말이 안 되는 노릇이지 싶어요.
 
해는 희고 불은 붉단다 꿈꾸는 작은 씨앗 14
길상효 글, 조은정 그림 / 씨드북(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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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59



숲과 시골에서 태어난 빛깔말

― 해는 희고 불은 붉단다

 길상효 글

 조은정 그림

 씨드북 펴냄, 2015.8.30. 11000원



  나는 어머니한테서 말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한테서 말을 배웠습니다. 여기에 우리 형도 나한테 말을 가르쳐 주었어요. 내가 쓰는 말은 어머니와 할아버지와 형한테서 하나하나 물려받은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와 곁님한테서 말을 물려받습니다. 나와 곁님은 우리 아이들한테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어서 저마다 예전에 물려받은 말을 차곡차곡 물려줍니다. 먼먼 옛날부터 이러한 결대로 흘렀어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가장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운 스승입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가장 사랑스러우면서 반가운 님이에요.



이름 없는 것들에게 첫 이름을 지어 주신 내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들께 (앞머리)




  길상효 님이 글을 쓰고, 조은정 님이 그림을 빚은 《해는 희고 불은 붉단다》(씨드북,2015)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시골 할머니한테 찾아가는 도시 가시내(아이)가 시골 할머니한테서 빛깔말을 하나씩 배우는 얼거리로 한겨레 빛깔말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양, 노랑, 푸름, 빨강, 검정, 이 다섯 가지 빛깔이 저마다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이야기를 새롭게 엮어서 들려줍니다.



“할매 어렸을 적엔 하도 배고 고파가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가 전부 하얀 떡가루면 얼매나 좋을까 하고는 입 벌려서 받아 먹고 그랬데이.” (4쪽)




  ‘해맑은’ 웃음이나 ‘해맑은’ 목소리는 무척 반가우면서 고맙습니다. 해맑은 웃음은 더욱 보기 좋고, 해맑은 목소리는 더욱 듣기 좋습니다. ‘해맑다’와 함께 ‘해밝다’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두 낱말은 “하얗고 맑다”나 “하얗고 밝다”를 뜻할 텐데, 여기에서 말하는 ‘하얗다’는 바로 하늘에 뜬 ‘해’와 같은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러니, 해맑은 웃음이란 “해처럼 맑은 웃음”이요, 해맑은 목소리는 “해처럼 맑은 목소리”입니다.


  가을이 되어 나락이 누렇게 익습니다. 누런 들판을 바라보며 금빛 물결이 출렁인다고도 합니다. 우리 모두를 먹여살리는 가을 들판 ‘나락알(나락 열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샛노란’ 빛깔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잘 익은 나락(벼) 열매를 두고 ‘누렇다’ 같은 빛깔말을 씁니다만, 아직 기계나 낫으로 베지 않고 논에 뿌리를 둔 “잘 익은 나락 열매”를 보면 ‘노란’ 빛깔이에요. ‘노랗다’는 바람에 한들거리는 나락 열매 빛깔이요, ‘누렇다’는 알뜰히 베어 햇볕에 살뜰히 말릴 적에 나락 열매가 차츰 달라지는 빛깔이라고 할 만하구나 싶습니다.



“그런디, 나는 왜 푸른 것을 푸르다고 하는 줄 아나? 풀이 푸르니께 푸르다고 하는 기다.” (13쪽)




  아이랑 어버이는 언제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수수께끼 놀이를 하듯이 말을 배우고 가르칩니다. 빛깔 하나를 알려줄 적마다 빛깔하고 얽힌 말마디가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듯이 춤을 춥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날에는 누구나 시골에서 살며 온갖 빛깔이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대목을 온몸으로 알고 온마음으로 헤아렸으나,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며 빛깔말을 잊거나 몰라요. 말이 태어난 뿌리를 모르기에 아무 말이나 함부로 쓰면서 갖가지 영어가 퍼지니, 하양도 노랑도 풀빛도 빨강도 까망도 밀립니다. 말이 태어난 뿌리를 어른들도 가르치지 못하고 아이들도 궁금하게 여기지 않으니, 그야말로 아무 말이나 엉터리로 쓰면서 우리 넋을 글 한 줄에 슬기롭게 못 담기 일쑤입니다.



할머니는 시골집 뒷산에 묻히셨어요. 풀과 나무가 우거진 푸른 뒷산에요. 여기 서면 할머니 집 마당이 내려다보여요. 해가 쨍쨍한 날 빨랫줄에 널어놓은 하얀 이불 홑청이 사각사각 잘도 마르던 곳이에요. (20쪽)




  ‘푸르다’는 ‘풀’이라고 하는 숨결에서 비롯한 빛깔말입니다. 그러면 풀이란 무엇일까요? 땅에서 씨앗이 깨어나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잎을 올려 꽃을 피우는 숨결이 바로 ‘풀’입니다. 풀 가운데 저절로 돋으면서 사람이 먹으려고 뜯거나 캐거나 훑으면 ‘나물’이고, 사람이 밭을 따로 일구어 씨앗을 손수 심어서 얻으면 ‘남새’입니다. 나물과 남새를 아울러 ‘푸성귀’라 하지요. 그러니, 밭은 모두 ‘남새밭’입니다. 들이나 산에서 캐는 “먹는 풀”은 들나물이나 멧나물이에요. 요새는 ‘푸르다·풀’하고 얽힌 말밑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기에 ‘야채·채소’ 같은 일본 한자말이나 중국 한자말을 함부로 섞어서 잘못 쓰기도 합니다.


  새까만 열매를 맺는 ‘까마중’을 보면 ‘검다·까맣다·깜깜하다·캄캄하다’처럼 갈리는 빛깔말을 새삼스레 돌아볼 수 있기도 합니다. 구름을 보고, 새파란 하늘을 보며, 온갖 빛깔로 피어나는 들꽃을 보고, 또 알록달록 고운 나무 열매를 보면, 빛깔을 이루는 낱말은 언제나 숲하고 시골에서 태어나 숲하고 시골에서 싱그러이 자라는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을에 가을빛을 느끼고, 겨울에 겨울빛을 느끼지요. 봄에 봄빛이 새롭고, 여름에 여름빛이 눈부십니다. 크레파스에 있는 빛깔이 아니라, 우리 둘레에 있는 빛깔입니다. 눈을 들어 둘레를 살필 때에 알아차리는 빛깔이고, 우리를 둘러싼 삶터를 넉넉히 품으면서 새로 배우는 빛깔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문득 고개를 갸우뚱해 하리라 느껴요. 왜 그러한가 하면 여느 살림집에서 가스불을 켜면 파란 불꽃이 일거든요. 나무를 태우는 빛깔일 때에 ‘붉다’를 알려줄 텐데, 도시에서는 장작불을 보여주기에는 만만하지 않겠지요. 그때에는 이 그림책 《해는 희고 불은 붉단다》를 넌지시 펼쳐서 아이하고 빛깔말을 새롭게 바라보고 함께 생각해 보셔요. 4348.10.28.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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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31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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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67



날마다 새롭게 배우며 즐거운 삶

― 천재 유교수의 생활 31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2.3.25. 4500원



  사람은 누구나 날마다 바뀐다고 느낍니다. 바뀌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느낍니다. 하루를 살면 하루만큼 바뀌고, 이틀을 살면 이틀만큼 바뀌지 싶어요. 한 해를 산 아기는 한 해만큼 삶을 지은 셈이고, 다섯 해를 산 아이는 다섯 해만큼 삶을 지은 셈입니다. 그리고, 다섯 살 아이한테도 쉰 살 어른한테도 하루는 늘 새롭습니다. 다섯 살에 맞이하는 가을은 언제나 꼭 한 번이요, 쉰 살에 맞이하는 가을도 언제나 꼭 한 번이에요. 두 번이나 세 번 겪을 수 없는 ‘다섯 살 가을’이고 ‘쉰 살 가을’입니다.



“당신 어쩐지 변했군.” “변하다니?” “전에는 마모루 걱정하느라 온종일 신경이 곤두서서 난리도 아니었잖아. 내가 바쁜 동안에 무슨 일 있었어?” “글쎄,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고 하니까.” (7쪽)


“아, 오랜만에 마모루랑 놀아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나저나 모르는 사이에 마모루도 많이 컸네요.” “그럴까? 변한 것은 오히려 자네가 아닐까 싶네만.” (31∼32쪽)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빚은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12) 서른한째 권을 가만히 읽습니다. 여덟 살 아이가 내 옆에 달라붙으며 묻습니다. “아버지, 천재 유교수, 나도 봐도 돼?” “글쎄, 네가 이 책에 나오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만화라고 해서 다 볼 수 있지 않아. 네가 모르는 말이 많으니까.”


  《천재 유교수의 생활》은 여덟 살 아이가 볼 만할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스무 해 넘게 그린 이 작품에는 ‘젊은 유택 교수’나 ‘중년 유택 교수’를 지나서 ‘할아버지 유택 교수’가 나옵니다. 이제 이 만화책에 아이들이 꽤 자주 나옵니다. ‘유택 교수네 네 딸’ 가운데 세 딸이 시집을 가며 낳은 새로운 아이들입니다. 이리하여 나는 이 만화책을 우리 집 여덟 살 아이더러 한번 읽어 보라고 건넵니다.



‘곧 깜깜해지는데, 집은 보이지 않고, 나는 울었다. 언니는 웃고 있었다.’ “괜찮아. 아무리 깜깜해져도 반드시 내일은 오잖니? 울어도 웃어도 내일은 온단다. 돌아갈 수 있어.” (60∼61쪽)


“선생님이 나하고 하나코를 혼냈니?” “아뇨. 다른 사람을, 혼냈어요.” “다른 사람, 이라니?” “음, 그게 아니고 사람 아니구요, 뭔가를 향해, 여러 가지 나쁜 걸 다 혼냈어요.” (89쪽)



  여덟 살 아이가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 흐르는 이야기를 모두 알아차리리라 느끼지 않습니다. 여덟 살 나이에는 여덟 살 나이만큼 알아차릴 테지요. 나중에 열두 살쯤 되어 다시 본다면 여덟 살 나이였을 적에는 알아차리지 못한 이야기를 알아차릴 테고요. 스무 살이 되어 다시 본다면 스무 살 나이일 적에 알아차릴 만한 대목을 새롭게 느끼리라 봅니다. 서른 살에는 서른 살만큼, 마흔 살에는 마흔 살만큼 이 만화책 이야기를 받아먹을 만합니다.



“내 강의는 들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나는 불쾌하지 않다네. 내 강의를 들을 의지가 있나?” (130쪽)


‘남자라서, 여자라서는 아니라고 보지만, 내가 너무 한쪽 면으로만 사람을 보고 있었나? 언제나 강하게 주장하는 이미지였던 오오에 카오루가 불안으로 목소리를 낮추고, 언제나 소리 높여 웃는 줄만 알았던 아오키 모모카가, 내게는 생각지도 못한 일의 연속이었다.’ (140쪽)



  만화책에 나오는 ‘유택 교수’도 나이를 한 살씩 새로 먹으면서 언제나 새롭게 배웁니다. 그리고, 유택 교수뿐 아니지요. 유택 교수 같은 사람을 곁님으로 둔 아주머니도 할머니가 되는 동안 천천히 삶을 새롭게 배웁니다. 유택 교수네 네 딸도 저마다 다르지만 저마다 새롭게 삶을 새롭게 배워요. 유택 교수네 손자와 손녀도 저마다 새로운 삶을 늘 즐겁게 배우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즐거움을 누리는 삶입니다. 너도 나도 새로움을 배웁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새로움을 찾아서 이 삶을 누립니다.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픕니다. 때로는 고단하고 때로는 신납니다. 때로는 웃음꽃이요 때로는 눈물나무예요.



‘내 근황을 이야기할 사이도 없이, 몇 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말은 오가지만 주제가 어디 있는지 종잡을 수 없는 대화. 하지만, 그런데도, 공기만은 틀림없이 오가고 있다. 저녁놀 속에서 참새들이 모여 지저귄다.’ (155쪽)


“왜 도와주지 않았어요!” “미안해요. 하지만 좋은 기록이 남은 것 같군.” “기왕 찍으려면 좀더 근사하게 차려입었을 때 찍지!” “아니, 좋은 기록은 생활감과 긴박감이 넘치는 것이오.” “아무튼 정리하는 거나 도와줘요!” (161쪽)



  아이들은 오늘 하루도 새롭게 깨어나서 새로운 놀이를 찾습니다. 나도 아이들처럼, 또는 아이들과 다르게, 또는 아이들하고 엇비슷하게, 또는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새롭게 하루를 헤아립니다.


  어젯밤에도 늦게 똥을 눈 다섯 살 아이가 오늘은 아침 일찍 다시금 똥을 눕니다. 참 많이 즐겁게 먹었나 보구나. 똥을 눈 다섯 살 아이가 “응가 다 했습니다! 휴지로 닦아 주세요!”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휴지를 두 칸 뜯어서 밑을 닦습니다. 토실토실 복숭아 같은 궁둥이는 더없이 귀엽습니다. 아이들은 복숭아를 늘 엉덩이에 매달면서 심심할 적마다 스스로 뜯어먹을까요? 나도 이 아이들처럼 어릴 적에 심심하면 내 복숭아를 재미나게 뜯어먹었을 테지요. 모처럼 비가 오면서 쌀쌀한 새 하루가 흐릅니다. 4348.10.27.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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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올레 - 놀멍 쉬멍 먹멍 일본 규슈 걷기 여행
손민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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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12



두 다리로 걸을 때에 비로소 여행이 된다

― 규슈올레

 손민호 글·사진

 중앙북스 펴냄, 2015.9.1. 15000원



  제주에서 ‘올레길’이 관광상품으로 생긴 뒤 크게 사랑받으면서 온 나라 곳곳에 ‘걷는 관광’이 널리 퍼졌습니다. 그런데, ‘제주 올레길’이 따로 없었어도 제주로 나들이를 다니는 사람 가운데 적잖은 이들은 두 다리나 자전거로 제주를 돌았습니다. 2007년에 관광상품 ‘올레길’이 생기기 앞서까지 사람들이 조용히 ‘걷는 나들이’를 즐겼다면, 2007년에 관광상품이 생기고 나서는 여러 가지 ‘코스’가 생겨서 이러한 코스를 따라서 움직이는 물결이 넘실거립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조용한 ‘걷는 나들이’를 누리기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지난날에 여행을 다니던 사람들은 으레 걸었습니다. 때때로 버스나 기차를 타기도 했지만, 지난날에는 여행을 다니던 사람들은 걸어야 제대로 여행을 한다고 여겼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걷지 않고서는 마을도 자연도 풍경도 도심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관광버스에 탄 채 이 지점에서 저 지점으로 달려서는 기념품 장만하는 일밖에 못 합니다. 관광버스에서 내려서 이곳부터 저곳까지 천천히 걷거나 빙글빙글 에돌아서 다닐 때에 비로소 마을도 자연도 풍경도 도심도 알 수 있습니다.



규슈올레를 처음 고안한 것은 일본의 관광 당국이었지만, 길에서 손님을 맞는 건 보통의 일본 사람이다. (8쪽)


도심 올레의 특징은 아기자기한 재미에 있다. 입이 떡 벌어지는 대자연의 위용 같은 건 없다. 대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 보면 소소한 재미를 찾을 수 있다. (26쪽)



  ‘제주올레’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규슈올레’를 태어나게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규슈올레》(중앙북스,2015)라고 하는 책에 찬찬히 담깁니다. 한국 제주에서 크게 사랑받는 관광상품을 일본에서 받아들인 셈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굳이 제주올레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오랫동안 이어온 ‘걷는 나들이 문화’가 있습니다. 일본에서 애써 제주올레를 받아들이려 했다면, 일본 사회에서 오래도록 여러 사람들이 누린 수수한 문화를 넘어서, 이를 관광상품으로도 ‘개발’하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해야겠지요. 오늘날에는 관광이 ‘문화상품’이기도 하니까요.



규슈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고속도로와 바투 붙은 교통의 요지를 한국 여행사 누구도 말하지 못했다. 단 한 명도 이날 이전에 야메시에 들어온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시쳇말로 ‘일본 관광으로 먹고산다’는 여행사 사람에게도 야메는 지나치는 도시였다. (55쪽)


깊은 숲을 헤집는 소위 산중 올레가 아니어서 가라쓰 코스의 흙길은 반갑다. 가라쓰시 공무원들의 노고가 길에서 팍팍 느껴졌다. (96쪽)




  여러 가지를 한자리에 놓고 헤아려 봅니다. ‘관광상품’하고 ‘문화상품’하고 ‘관광산업’하고 ‘문화산업’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둘레를 구경하거나 삶을 짓는 이야기를 상품이나 산업으로 바라보려고 하는 오늘날 사회를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그동안 상품이나 산업이라고 한다면 버스나 비행기나 기차나 배를 써서 사람들을 한꺼번에 싣고 나르면서 기념품을 사도록 이끄는 몸짓이었다고 할 만합니다. 이러다가 이러한 상품이나 산업이 ‘기념품은 없어도 되는’ 흐름으로 바뀌면서 ‘관광객 스스로 여러 시간을 걷거나 하루를 꼬박 걷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할 만합니다.


  여느 때에 잘 안 걷던 사람은 ‘아무리 멋진 올레길’이라 하더라도 두어 시간을 걷기 어렵습니다. 그저 수수하고 판판한 길이라 하더라도, 여느 때에 첨단 도시문명 혜택을 받으며 살던 사람들은 이 길을 잘 못 걷습니다.


  걷기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걷다가 지치지요. 걷다가 지치면 ‘아무리 멋진 올레길’을 걷더라도 둘레를 살피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규슈올레》에 나오는 일본 규슈 올레길은 ‘가게 하나 나오지 않고 여러 시간 걷는 길’이 꽤 많다고 할 만합니다. 마실거리랑 먹을거리를 가방에 짊어지면서 여러 시간을 걷다가 마땅한 곳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도시락을 먹는 나들이가 될 텐데, 이러한 관광상품은 도시사람한테 얼마나 기쁘거나 새로운 나들이가 될는지 궁금합니다. 아니, 이런 나들이는 예부터 누구나 들놀이나 바닷놀이를 다니면서 수수하게 즐겼어요. 관광상품이 없었어도 다니던 들놀이요, 문화상품이 아니어도 누리던 바닷놀이입니다.



벳푸 코스는 흙을 밟는 길이다. 지난 계절의 낙엽을 밟는 길이고, 보드라운 흙을 디디는 길이다. 흙을 밟는 길이어서 발이 편한 길이다. 일행 중 일부는 오르내리는 구간이 많아서 힘들었다고 했지만, 나로서는 발이 편해서 힘든 줄을 몰랐다. (111쪽)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사이에서 잊힌 마을, 외부인의 출입이 거의 없어 갇힌 마을, 젊은이는 떠나고 어르신만 남아 허전한 마을이 오쿠분고 코스가 거치고 들르는 마을이다. (118쪽)


  여느 때에 늘 매캐한 하늘과 우중충한 건물과 시끄러운 자동차한테 휩쓸려서 지내야 하니까, 모처럼 맑은 하늘과 푸른 숲과 싱그러운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나들이가 참으로 재미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다만, 새와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도, 이러한 소리가 익숙할 때에 노래로 받아들입니다. 흙내음이나 풀내음도 이러한 내음이 익숙할 때에 싱그럽다고 받아들여요. 방아깨비나 나비 애벌레조차 징그럽다고 여길 수 있으니까요.


  이리하여, 두 다리로 걸을 때에 비로소 여행이 됩니다. 어려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두 다리로 걷지 않을 때에는 여행이 안 됩니다. 그리고, 두 다리로 걷다가 한참 가만히 서거나 앉을 때에 비로소 여행이 됩니다. 두 다리로 걷더라도 마땅한 때에 멈추거나 서거나 쉬거나 머무를 줄 모른다면 여행이 안 됩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휭 달리는 일을 놓고 여행이라 하지 않아요. 이 자리에서 저 자리로 비행기를 타고 쌩 가로지르는 일을 가리켜 여행이라 하지 않습니다. 걸어서 둘레를 살필 적에도 마냥 걷기만 하고 걸음을 멈추지 않으면 여행이 될 수 없습니다.


  여행이 아닌 삶자리에서도 이와 같다고 느껴요. 두 다리로 걸으면서 일할 때에 비로소 삶이 되지 않을까요? 두 다리로 걸으면서 놀 때에 비로소 기쁨이 되지 않을까요?


  바람을 마실 때에 여행이 되듯이, 바람을 마시는 자리가 즐거운 일자리가 아닐까요? 햇볕을 쬐고 풀내음을 맡으면서 숲을 바라볼 때에 여행이 되듯이, 햇볕이랑 풀내음이랑 숲이 어우러진 곳에서 일할 때에 기쁜 삶이 아닐까요?




길을 걷다 보면 구주연산 산마루가 눈앞에 펼쳐진다. 고코노에·야마나미 코스는 구주연산을 오르는 길이 아니라 구주연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135쪽)


야트막한 언덕을 내려오다 걸음을 멈췄다. 풍경에 눌려 걸음을 멈춘 적이 있으면 무슨 뜻인지 알 터이다. 문자 그대로 그림 같은 장면이 앞을 가로막았다. (168쪽)



  예부터 사람들은 누구나 늘 걸었습니다. 권력자는 걷기를 싫어해서 일꾼을 부려 가마에 탄다든지 뭐에 얹혀서 간다든지 했습니다만, 땅을 밟으면서 걷지 않는 사람은 땅을 알 수 없습니다. 두 다리로 땅을 밟아야 땅을 알고, 땅을 알 때에 땅을 일구는 슬기를 얻으며, 땅을 일구는 슬기를 얻기에 이웃을 사랑하는 기쁜 사랑을 압니다.


  걸으면서 생각하고, 생각을 가꾸면서 삶을 짓습니다. 삶을 지으며 생각을 가꾸면서 다시 걷습니다. 부엌하고 마당을 오가면서 걷습니다. 뒷간에 볼일을 보러 갈 적에도 걷고, 텃밭에서 남새를 뜯을 적에도 걷습니다. 마을 한 바퀴를 걷고, 숲으로 나무를 보러 걸어갑니다.


  아이들은 걸음마를 떼면서 까르르 웃지요. 어른도 이와 같아요. 어른들도 날마다 새롭게 걸음을 떼면서 새롭게 일하고, 새롭게 살림을 보듬으며, 새롭게 이웃하고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히라도 코스도 재미가 쏠쏠한 올레길이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거리를 거니는 재미도 있고, 가와치 언덕에 올라 바닷바람 맞으며 노니는 재미도 있다. (254쪽)



  올레길이 아니어도 걸으면 재미있습니다. 올레길이 생겼어도 굳이 올레길로만 걸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리고, 올레길도 걸어 보면 재미있지요.


  이 길도 걷고 저 길도 걷습니다. 올레길로 ‘뽑힌’ 곳만 재미있을 수 없습니다. 마을에 있는 여느 살림집에서 여느 마을 빵집 사이를 걷는 길도 재미있습니다. 이웃집으로 나들이를 가려고 걷는 길이 재미있습니다. 서로서로 천천히 걸어서 오가고, 마을사람 누구나 이 집 저 집 찬찬히 걸어서 만나는 길이 재미있습니다.


  손민호 님이 엮은 《규슈올레》를 보면, 규슈에 새로 생긴 여러 올레길을 길그림이랑 사진으로 꼼꼼하게 잘 알려줍니다. 규슈로 나들이를 간다면 이 올레길을 한 번쯤 걸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올레길에 없는 여느 골목길을 느긋하게 걸을 만할 테고, 책이나 관광상품에 없는 수수한 마을길을 노래하면서 걸을 만하리라 생각해요. 우리가 걷기에 길이 되고, 우리가 길을 걸으며 노래하기에 기쁜 나들이가 됩니다. 4348.10.26.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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