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연금술사 24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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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71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 강철의 연금술사 24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0.3.25. 4200원



  낱권책으로 《강철의 연금술사》를 읽으면,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흐르는 줄 살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러한 얼거리를 헤아리면서 만화를 그렸을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하나하나 더듬어 보면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떤 삶을 누릴 때에 즐거움이나 아름다움이나 사랑스러움이 되는가 같은 이야기를 살필 만합니다.



“불사의 군단이라는군. 사람의 혼을 꼭두각시에 넣어서 만든, 죽음의 공포를 모르는 병사들이다.” (15쪽)


“너는 감정과 함께 소중한 것을 버리고 말았어. 감정을 버린 네가, 우리를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50쪽)



  《강철의 연금술사》 스물넷째 권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는 낱권책입니다. 스물넷째 권에서는 꼭 한 가지를 묻습니다.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하고 물어요. 남이 시키는 대로 좇는 사람이 될는지, 남이 시키는 대로 하면 떡고물을 주겠다고 하는 사탕발림에 홀리는 대로 살는지, 아니면 스스로 삶을 지으려 하는지, 그러니까 스스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날마다 새로운 삶을 누리려 하는지를 묻습니다.



“네가 얕보고 있던 자들의 마음을 알아라.” (63쪽)


“일반인을 희생하고 너희 고관들만 불로불사의 몸이 돼서 세계를 통일하시겠다?” (126쪽)



  어느 길을 가든 모두 ‘내 길’입니다. 남이 시키는 대로 나아가는 길도 내 길입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나아가는 길도 내 길입니다. 나는 내 길을 갑니다. 바보스러운 길로 접어들었다고 해서 ‘내 길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때때로 바보스러운 길로 접어든 뒤에 아차 하고 뒤늦게 깨닫습니다.


  이를테면 밥이나 국을 끓이면서 곧잘 바보짓을 하지요. 냄비를 태워먹기도 해요. 나중에 먹으려고 뒀다가 밥이 쉬고 말 때가 있고, 그릇이나 접시를 떨어뜨려서 깨뜨리기도 합니다. 모두 저마다 다르게 겪는 삶입니다. 잘한 일도 잘못한 일도 아닙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남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삶도 잘못한 일은 아니에요. 아직 생각이 없으니 그리 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스스로 생각하려 한다면, 남이 시키는 일을 섣불리 안 하겠지요. 남이 시키는 일이 있으면 어떠한 일인가를 곰곰이 살핀 뒤에, ‘시킨 일이든 아니든’ 스스로 즐겁게 할 만한지 아닌지를 따질 수 있어요.



“당신 자신을 믿어. 당신의 영혼에 수치스럽지 않은 삶을 택하면 돼.” (129쪽)


“허튼 소리 마! 나더러 킹 브래드레이와 똑같아지라는 거야? 저 녀석은 자기 나라 백성들도 버리려 하고 있어. 저건 내가 되고자 한 모습이 아니야!” (150쪽)



  내가 나를 믿으려면 내가 나를 보아야 합니다. 내가 나를 볼 적에 비로소 내가 나를 믿습니다. 내가 나를 믿지 않는다면, 나는 나 스스로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내가 나를 제대로 바라본다면, 나를 놓고 잘했다거나 잘못했다거나 함부로 따지지 않아요. 나로서는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는 셈입니다. 다만, 수십 해에 걸쳐서 똑같은 바보짓을 되풀이할 수 있는데, 어쩌면 수십 해에 걸쳐서 바보짓을 해 보는 엄청난 일을 겪는다고도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이르든 늦든 깨어나야 합니다. 스스로 깨어나야 합니다. 스스로 눈을 떠야 합니다. 내 눈은 내가 뜰 노릇입니다. 눈을 뜨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못 보고, 눈을 뜨지 않고서는 내 삶이 없습니다. 남이 시키는 일만 했기에 내 삶이 없지 않아요.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눈을 뜨지 않으며, 스스로 사랑을 짓지 않을 때에는 내 삶이 없습니다. 4348.11.5.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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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의 문화 인문과학 코스모스 4
이로카와 다이키치 지음, 박진우 옮김 / 삼천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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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36



권력자는 왜 ‘국정 교과서’를 들이미는가?

― 메이지의 문화

 이로카와 다이키치 글

 박진우 옮김

 삼천리 펴냄, 2015.10.16. 25000원



  ‘역사(歷史)’라는 낱말을 어른이 보는 한국말사전에서 살펴보면,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으로 풀이합니다. 어린이가 보는 한국말사전에서는 “인간이 사회와 국가를 이루면서 살아온 지난날의 자취. 또는 그 기록”으로 풀이합니다. 어느 한 가지로 보자면 사회와 나라가 걸어온 길을 역사라 하는 셈이고, 다른 한 가지로 보자면 지난날 발자취라 하는 셈입니다.


  역사책에 남는 이야기를 보면 으레 ‘정치 권력자’ 발자취를 갈무리하는 일에 힘을 쏟습니다. 사회를 이루는 바탕인 ‘수수한 사람들’ 모습이나 삶이나 이야기를 갈무리하는 역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역사를 책으로 쓰는 분들이 가르는 ‘시대 구분’은 언제나 ‘정치 권력자 역사’입니다. 조선, 고려, 발해와 신라, 세 나라와 가야, 옛 조선처럼, 정치 권력자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이 나라 발자취를 살피지요.



일본이 단 한 번도 대륙의 강대국에 정복당하지 않았던 것은 단순히 지리적인 우연이나 대담한 무사도 정신 덕분이 아니다. 그것은 다분히 몬순 아시아 풍토의 평화로운 국제 환경 덕분이다. 특히 중국과 조선 민족이 장대한 방벽 역할을 해서 천 수백 년 동안 끊이지 않은 호전적인 기마민족의 침략에서 일본을 지켜 준 덕분인 것이다. (18쪽)



  앞으로 쉰 해나 백 해쯤 뒤에 역사를 갈무리할 사람이 있다면, 아무래도 2010년대 오늘날 역사를 ‘정치 권력자’인 대통령을 한복판에 놓고 발자취를 살피리라 느낍니다. 이제껏 역사를 갈무리한 흐름을 그대로 좇는다면, 쉰 해나 백 해 뒤뿐 아니라 이백 해나 오백 해 뒤에도 똑같은 틀로 나아가겠지요.


  그런데 이제는 역사를 좀 새롭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하지 싶습니다. 정치 권력자가 무엇을 했느냐를 따지는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하며 살았는가를 되새기는 역사를 읽고 써야지 싶습니다. 정치 권력자가 어떤 훌륭한 일을 하거나 멍청한 일을 했느냐를 적는 역사보다는, 수수한 여느 자리에서 즐겁게 삶을 지은 사람들 이야기를 아로새길 수 있는 역사로 거듭나야지 싶어요.


  왜냐하면, 역사를 배우는 까닭은 ‘역사 지식을 넓히려는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배우는 까닭은 옛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오늘 이곳에서 삶을 아름답게 지을 슬기를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배우는 우리는 앞으로 이곳에서 지을 삶을 씩씩하고 참다우며 사랑스레 가꿀 때에 하루하루 즐겁기 때문입니다.



메이지는 일본 민족의 재능을 해방시켜 아시아 최대의 군사력과 공업력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절망적인 농촌과 도시 빈민의 비문화적 상황, 그리고 구조로서의 천황제를 불러왔다. 그 병폐는 민중의 체내를 돌아 뿌리 깊은 노예 구조로 정착했다. (35쪽)



  이로카와 다이키치 님이 쓴 《메이지의 문화》(삼천리,2015)라는 책을 읽으면서 일본 사회와 역사뿐 아니라 한국 사회와 역사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일본 사회에서는 일본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까요? 일본도 한국처럼 ‘임금님 이름’을 외우도록 시키거나 ‘임금님마다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를 가르치거나 ‘정치 권력자마다 어떤 전쟁을 벌여서 땅을 얼마나 잃거나 빼앗았는가’를 알려줄까요? 아니면, 일본 사회는 사람들한테 슬기로운 삶을 북돋울 만한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줄까요?



메이지 시대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이러한 일본의 도회지에 절망하고 있다. 거기서 보이는 것은 악취 나는 권력 의지와 이권을 챙기려는 욕심, 노골적인 돈벌이 근성이 벌이는 추악한 투쟁이었다. (51쪽)


우리가 여태 이름조차도 몰랐던 헌법초안 작성자와 마을 지도자가 모두 한 집안의 가장이자 농민이요 초등학교 교원이며 민중 생활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는 ‘평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59쪽)



  일본 정치나 사회는 자꾸 군국주의로 치닫습니다. 일본이 지난날 역사를 뉘우치지 않는 모습은 일본 정치·사회 권력자한테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일본도 한국 못지않게 역사를 제대로 안 가르친다고 할 만하고, 삶을 슬기롭게 가르치거나 알려주는 바탕이 제대로 안 섰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이런 뿌리는 어디에서 비롯할까요. 이런 뿌리를 찾아낸다면 어떻게 고치거나 가다듬을 만할까요. 일본은 앞으로 아름다운 나라로 거듭나서 아시아뿐 아니라 이 지구별에 평화로운 길을 여는 이웃이 될 만할까요. 한국은 앞으로 아름다운 나라로 다시 태어나서 남북녘 사이뿐 아니라 이웃 아시아 나라들하고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는 평화로운 나라가 될 만할까요.


  다른 나라 눈치를 보면서 평화를 헤아려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평화를 생각해서 평화라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저 나라에서 전쟁무기 한 가지를 줄이니 우리도 줄이자는 생각이어서는 평화를 이루지 못해요. 저 나라에서 새 전쟁무기를 늘였으니 우리도 새 전쟁무기를 늘이자는 생각에 갇히면 앞으로도 평화가 아닌 전쟁에 사로잡힙니다.



봉건 지배 아래에서는 그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야말로 인민은 무학무지의 상태로 방치되었던 것이 아닌가. 그것이 이제는 180도 전환이다. 사회의 폐풍을 교정하여 참된 문명을 낳고 국가의 영광을 거둘 수 있기 위해서는 인민이 배우느냐 배우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고 기도 다카요시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69쪽)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로 하늘을 난 것은 1903년이었지만 일본은 이러한 발명, 발견을 거의 군사적인 측면에 이용하고 민간에서 자동차 시대나 비행기 이용은 반세기나 늦어진다. (82쪽)



  《메이지의 문화》는 오늘날 일본 사회가 되도록 발판 구실을 했다는 ‘메이지’ 언저리에 정치 권력자가 아닌 ‘시골 지식인과 젊은이와 여느 마을사람’이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새로운 나라를 꿈꾸었는가, 라고 하는 대목을 짚으려 합니다. 정치 권력자 발자취로 읽는 문화나 역사나 사회가 아니라, 밑바닥에서 밑바탕을 다스리면서 샘솟거나 터져나오려고 하던 문화나 역사나 사회를 읽어서 ‘일본이 앞으로 나아갈 길은 어디인가?’를 밝히려고 하는 책입니다.


  《메이지의 문화》를 읽으면, 일본 정치·사회 권력은 무척 오랫동안 ‘일본 인민(또는 민중 또는 백성 또는 사람들)’이 못 배우도록 배움길을 가로막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다가 메이지 사회 언저리에 이르러 ‘일본 인민이 학교교육을 밟아야 나라에서 시키는 일을 잘 해내는 심부름꾼(또는 톱니바퀴 또는 부속품 또는 노예)’ 구실을 할 만하다고 깨달아서, 비로소 ‘국민 교육’을 펼친다고 이야기합니다.


  일본 정치·사회에서 ‘인민 무교육’으로 오랫동안 흐르다가 ‘인민 교육(또는 국민 교육)’이 되었을 적에, 정치 권력자는 ‘국정 교과서’를 사람들한테 내밀었다지요. 나라에서 교과서에 적은 대로 배워서, 나라에서 가르치는 대로 머릿속에 집어넣으라는 뜻이었을 테지요. 나라에서 가르치는 것만 옳고, 다른 것은 머릿속에 담지 말라는 뜻이었을 테지요.



온화하고 금욕적이며 참을성 강하고 무엇보다도 ‘관리’를 무서워하던 산촌의 인민이 어떻게 다년간의 소극주의를 넘어서 의기양양하게 권력에 맞서 대항할 수 있었을까. 이 비밀은 그들이 자신의 내면적인 도덕관념으로서 민중 도덕을 극한 상태까지 관철하고 그 한계까지 파고들었을 때 비로소 열릴 수 있었던 것이다. (194쪽)


일본인의 지식인도 대중도 어느새 그 네 모서리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상자에 갇혀, 왜 자신이 이렇게까지 고통 받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탄식하면서 죽어 갔다. 그러한 황상의 상황, 더구나 그러한 모든 상황의 대상화를 용납하지 않는 속박의 논리가 대중 측에 있다는 사실이 바로 가공할 만한 일인 것이다. (264쪽)



  정치 권력자가 ‘국정 교과서’ 하나로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까닭은 ‘국정 교과서가 가장 아름다운 책’이기 때문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국정 교과서가 안 아름다울 뿐 아니라, 아름다움하고 동떨어진 책’이기 때문에 오직 이런 교과서로 아이들을 길들이려고 한다고 느낍니다. 나라에서 엮은 교과서가 ‘아름다운 책’이라면, 나라에서 그 교과서로 배우라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스스로 나서서 배우려 하기 마련입니다. 나라에서 엮은 교과서가 ‘안 아름다운 책’이기 때문에 마치 독재권력을 휘두르려는 몸짓으로 ‘국정 교과서’ 하나로 사회와 역사와 문화와 얽힌 지식을 가두려 하는구나 싶습니다.


  이리하여, 한국 정치·사회에서도 ‘국정 역사 교과서’를 펴내겠다고 하는 흐름이 불거집니다. 학교에서 참다운 가르침을 베풀려고 하는 정책을 내놓지 않고, 좀 엉뚱한 정책을 밀어붙입니다. 아이들이 입시지옥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정책에는 등을 돌리면서, 아이들을 ‘한쪽으로 치우친 지식’에 옭아매려고 하는 독재 몸짓이 나타납니다.



그런 터무니없는 이치라도 지배 이데올로기의 핵심으로 이용되고 메이지 43년(1910년)의 국정교과서에 채용되어, 이미 존재하던 메이지 민법의 ‘이에’와는 무관했던 이름도 없도 재산도 없는 대중 가족의 마음속까지 침투해 들어갔다. (307쪽)


러일전쟁은 또 하나의 중대한 변화를 대중심리 속에 남겼다. 그것은 조선과 만주의 전쟁터로 갔던 수백만의 일본인이 거기서 직접 중국 민중을 접하고 그들에 대한 확실한 멸시 의식을 남겼다는 점이다 … 민권운동을 탄압한 후 정부는 학교령을 개정하여 ‘교육칙어’를 반포하고 반체제 교육을 단속하는 동시에 교과서를 비롯한 교과과정 전반에 대한 본격적인 체계화에 착수한다. (314, 317쪽)



  책 하나를 놓고 헤아려 본다면, 이른바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만 책이 아닙니다. 천 부가 팔릴 동 말 동하는 책도 ‘책’입니다. 이천 부나 삼천 부밖에 안 팔렸대서 이러한 책이 ‘안 아름다운 책’일 수 없습니다. 십만 부나 백만 부쯤 팔려야 ‘아름다운 책’이 되지 않습니다.


  많이 팔린 책은 그저 ‘많이 팔린 책’이고, 적게 팔린 책은 그저 ‘적게 팔린 책’입니다. 첫판도 다 팔지 못하고 사라져야 하는 책은 ‘잘 안 팔린 책’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나라에서 교육이나 문화 행정을 맡은 일꾼이라면, 국정 교과서 같은 굴레에 스스로 갇히려 하는 몸짓이 아니라, ‘아름다운 책’이 골고루 나올 수 있는 길을 여는 몸짓이 될 수 있어야 비로소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이 한두 가지 책만 읽고 책을 더 안 읽는 바보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사람들이 ‘아름다운 책’을 꾸준히 골고루 읽으면서 스스로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슬기를 보듬도록 이끄는 참다운 정책을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교과서는 여러 가지가 있어야지요. 너무 마땅합니다. 정당도 여러 곳이 있어야지요. 아주 마땅합니다. 대통령은 한 사람이어도 장관이나 국회의원은 지역이나 정당마다 골고루 있어야 할 테고, 공무원도 지역마다 부서마다 골고루 있어야지요. 참으로 마땅한 일입니다.



고토쿠 등이 몸을 던져 제시한 것은 천황제가 자애에 가득 찬 무한 포용의 체계가 아니라 이단 배제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포학한 것이며, 그 화기애애한 그늘에 사람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는 가혹함을 숨기고 있는 모순 덩어리라는 진실이었다. (327쪽)



  ‘고른 삶’하고 동떨어질 적에 독재가 되거나 군국주의가 됩니다. ‘나누는 삶’하고 멀어질 적에 반민주가 되거나 제국주의가 됩니다. 일본 사회를 들여다보는 인문책 《메이지의 문화》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독재 아닌 평화’로 나아가고, ‘반민주 아닌 민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정치·사회 권력자가 할 일이란 참 많을 텐데 역사 교과서 하나를 바보스레 엮는다고 하는 데에 이렇게 힘을 기울이는 일이란 얼마나 부질없는지 부디 알아차릴 수 있기를 빕니다. 먼 뒷날 역사를 내다볼 수 있기를 빌어요. 오늘날 정치·사회 권력자는 평화와 평등을 이루는 길을 살펴야 하고, 에너지와 식량을 슬기롭게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지 싶습니다. 이런 데에 힘을 쏟아야지요.


  평화와 엇나가거나 민주를 등돌리는 정치 권력이나 사회 권력은 ‘오늘 이곳’에서는 온갖 권력을 휘둘러 저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듯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고작 다섯 해 뒤에도, 열 해 뒤에도, 스무 해나 서른 해 뒤에도 역사가를 비롯한 ‘생각 있는 사람들’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권력자가 저지른 어설픈 몸짓을 환하게 알아채면서 ‘새 역사를 쓰리’라 느낍니다. 어제와 모레를 함께 바라보면서 오늘을 곱게 일구는 삶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4348.11.5.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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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꽃게 문학동네 동시집 4
박성우 지음, 신철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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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68



꿈을 키울 수 있는 이야기로 들려주기

― 불량 꽃게

 박성우 글

 신철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08.11.24. 8500원



  키가 1미터하고 30센티미터 가까이 큰 여덟 살 큰아이를 다독다독 하면서 재운 뒤 예전 사진을 돌아봅니다. 작은아이는 일찌감치 잠들었습니다. 큰아이가 갓 태어나던 날 찍은 사진을 보니 그야말로 조그맣습니다. 키가 1미터하고 30센티미터라 하더라도 어른 몸집에 대면 그리 크다 할 수 없으나, 한손에도 안을 수 있을 만큼 조그맣고 가볍던 숨결이 이만큼 컸으니 그야말로 크다고 느낍니다. 큰아이가 대여섯 살 무렵에는 두 아이를 한팔씩 감싸서 안고 걸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두 아이를 한팔씩 안고서 걷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갓 태어나던 무렵, 또 어머니젖을 물면서 자라던 무렵, 막 걸음마를 떼려고 하던 무렵 사진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새삼스레 느낍니다. 나는 이제껏 이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대학교 졸업장’을 거머쥐어야 한다거나 ‘연봉 많이 받는 일자리’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생각은 할 일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아이들한테 바라는 한 가지라면, 부디 어버이 사랑을 듬뿍 물려받으면서 너희 나름대로 새로운 꿈을 키우렴, 하는 마음입니다.



도대체 고추잠자리는 무얼 그릴까 // 고추잠자리가 그리는 그림은 / 동생이 그린 그림처럼 / 무엇을 그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고추잠자리)



  박성우 님이 빚은 동시집 《불량 꽃게》(문학동네,2008)를 읽습니다. 책이름으로도 붙은 〈불량 꽃게〉는 “수평선을 찰카닥찰카닥 / 지 맘대로 자르며 노는 불량 꽃게”라고 합니다. “어깨를 으쓱 들고 / 건들건들 건들대다 / 잽싸게 도망치는 불량 꽃게”라고 해요.


  동시를 쓴 박성우 님 눈에는 꽃게가 ‘불량스럽게’ 보였구나 싶습니다. 그러면, ‘불량하지 않은’ 꽃게도 있을까요? 불량하지 않다면 ‘우량 꽃게’일까요, 아니면 ‘범생이 꽃게’일까요, 아니면 ‘얌전이 꽃게’일까요?


  가만히 보면 이 동시집에 나오는 이야기는 거의 다 학교와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룹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불량·우량(모범)’으로 가릅니다. 시험성적으로 이를 가르고, 말씨와 몸짓을 놓고 이렇게 갈라요.



마당에서 노는데 / 할머니가 부른다 // 우리 똥강아지 어디 갔냐? // 강아지도 뛰어가고 나도 뛰어간다 (누굴 부른 걸까)



  동시는 아이들한테 재미난 말놀이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동시는 낱말 하나와 글월 하나를 알뜰히 엮어서 말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동시는 어른들이 지은 이 마을에서 아이들이 어른한테서 무엇을 물려받으면서 자랄 때에 즐거운가 하는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박성우 님은 《불량 꽃게》라는 동시집에서 여러모로 말놀이를 잘 보여줍니다. 집하고 얽힌 이야기는 으레 할머니를 불러서 아이가 할머니한테서 새로운 모습을 느끼는 실타래를 풀어요.



토끼풀은 토끼풀 / 염소가 먹어도 토끼풀 / 토끼풀은 토끼풀 / 암소가 먹어도 토끼풀 / 토끼풀은 토끼풀 / 할머니가 먹일 때만 퇴깽이풀 (토끼풀)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지켜보면서 배웁니다. 어른도 어른 나름대로 지켜보면서 가르칩니다. 아이는 좋고 싫거나 밉거나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모두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배웁니다. 어른은 좋고 싫거나 밉거나 나쁜 것을 가리려 하면서 알맞게 가르치려고 합니다.


  동시를 쓸 적에는 어떤 마음이 될 때에 즐거울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아이들은 어떤 동시를 읽으면서 꿈을 키울 만할까요? 아이들은 말놀이가 가득한 동시를 읽으며 말놀이는 배울 텐데, 말놀이 다음에는 무엇을 보거나 느껴서 무엇을 배울 만할까요? 말놀이 동시를 읽는 아이들은 어떤 꿈을 스스로 키우는 힘을 얻을 만할까요?



엄마가 마른 미역을 / 그릇에 담는 모습 / 지켜본 뒤에야 알았어 (미역)


아침에 보니 새끼 강아지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원래 눈을 감고 있어서 잠자는 줄 알았는데 만져 보니 땅땅하게 굳은 찰흙 뭉치 같았다 (새끼 강아지)



  어떤 사물을 좀 다르게 바라보는 눈길로 동시를 쓰기에 말놀이 동시가 됩니다. 그런데, 말놀이 동시는 어떤 사물을 좀 다르게 바라보는 눈길은 되지만, 한결 깊거나 넓게 들여다보거나 어루만지는 손길이나 품까지 이르지는 못하는구나 싶어요. 아이들한테는 ‘사실 알려주기’나 ‘사실 보여주기’에서 그치는 동시가 아니라, ‘삶을 사랑으로 가꾸는 꿈’을 함께 나누면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밝히는 동시로 나아갈 일이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동시는 어른시하고 다르게 ‘문학’으로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른시는 여러 실험시도 나오고 아주 어려운 철학이나 사상을 담는 작품도 나올 만하지만, 동시에서는 실험시도 어려운 철학이나 사상도 섣불리 담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동시에 철학이나 사상이 없다는 소리가 아니라, 동시는 철학이나 사상을 어린이 눈높이와 삶자락에 맞추어서 부드럽고 쉬우면서 아름답게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어, 밴드가 다 어디 갔지?” 망치질하다 손가락을 다친 아빠가 / 약통에서 일회용 밴드를 찾았다 / 나는 그만 얼굴이 빨개졌다 // 아침에 일어나니까 / 책상 위에 예쁜 브래지어가 놓여 있었다 // 쪽지를 펴 보니까 아빠였다 (일회용 밴드)



  우리 어른들이 밥을 차려서 아이들한테 아침저녁을 먹일 적에는 영양소만 먹이지 않습니다. 영양소만 입에 집어넣는 몸짓은 밥먹기라고 하지 않습니다. 밥상맡에 들러앉은 어른하고 아이는 사랑을 나누지요. 밥 한 그릇으로도 사랑을 나누고, 반찬 한 점으로도 사랑을 나누어요.


  아이들은 밥 한 숟갈을 입에 넣고도 신나게 떠듭니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지만 이야기를 더 터뜨리고 싶어서 밥풀을 튀기면서 밥상맡에서 노래합니다.


  나들이를 다닐 적에도 아이들은 더 먼 좋은 곳에 가기를 바라지 않아요. 아이들은 제 어버이하고 신나게 뛰놀 수 있으면 어디이든 기쁘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여겨요. 아무리 대단한 놀이기구가 있다 한들, 아무리 멋진 자연 풍경이 흐르는 곳이라 한들, 제 어버이가 저하고 신나게 놀아 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재미없거나 따분하거나 지겨워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동시에서도 말놀이로 재미나게 이야기를 빚으려고 하는 글쓰기가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말놀이 동시로만 그치면 아이들이 받아먹을 ‘마음밥’이 너무 적거나 없다는 뜻입니다.



메미와 귀뚜라미는 / 이어달리기 선수다 (매미와 귀뚜라미)


올챙이들은 / 쉼표를 마구마구 찍어 / 봄더러 천천히 가라 하지요 (올챙이)


새싹들이 / 햇살의 엉덩이에 / 봄 똥침을 놓는다 (봄 똥침)


내가 찍은 발자국은 / 과학자가 될까 선생님이 될까 (발자국)



  매미와 귀뚜라미가 “이어달리기 선수”라면, 그 다음에는 무엇일까요. “이어달리기 선수”라고 하는 어른들 눈높이로 바라보는 운동경기(스포츠) 이야기를 굳이 엮어야 했을까 궁금합니다. 어른시라면 “올챙이들은 쉼표를 마구마구 찍어” 같은 말놀이가 재미있을 만하지만, 동시에서 이러한 말놀이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궁금합니다. 새싹은 참말 “엉덩이 똥침”을 놓을까요? 아이들이 앞으로 나아갈 발자국은 “과학자나 선생님” 사이에서 더 나아가기 어려울까요? 아이들은 청소부가 되어도 아름답고, 농사꾼이 되어도 아름다우며, 가정주부가 되어도 아름답습니다. 어떤 일을 앞으로 찾아서 누리든, 아이들은 꿈을 키울 수 있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처음부터 어떤 주어진 틀로 이야기를 빚는 동시에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면, 아이들이 스스로 꿈을 키우는 힘을 북돋우는 슬기를 글 한 줄에 실을 수 있다면, 오늘날 한국 동시는 사랑꽃을 활짝 피우리라 봅니다. 재미있는 동시를 쓰려면 쓰되, 재미와 함께 있을 꿈이랑 사랑이 삶으로 녹아드는 이야기를 가만가만 헤아린다면 더욱 즐거우리라 봅니다. 4348.11.5.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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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늑대였을 때
필립 레셰르메이에 글, 사샤 폴리아포바 그림, 신선영 옮김 / 달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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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77



실컷 뛰놀며 자란 아이가 씩씩하다

― 내가 늑대였을 때

 필립 레셰르메이에 글

 사샤 폴리아코바 그림

 신선영 옮김

 달리 펴냄, 2007.7.30. 9000원



  작은아이는 졸리면 어느새 내 무릎으로 다가와서 기대거나 누우려 합니다. 큰아이도 졸릴 적에 이렇게 하고 싶으나, 이제 동생이 있기에 선뜻 내 무릎으로 다가와서 기대거나 눕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작은아이를 잠자리에 누이면 “나도 동생처럼 안아서 눕혀 줘.” 하고 말하곤 합니다. 때로는 업어서 잠자리에 누여 달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제 어버이를 믿기 때문에 졸린 몸을 맡깁니다. 제 어버이가 저희를 따스한 이부자리에 누여 주리라 믿기 때문에 느긋하게 잠이 듭니다. 제 어버이가 이불을 여미어 주고, 토닥토닥 달래면서 자장노래를 불러 주리라 믿으니, 밤마다 고이 꿈나라로 갑니다.



내가 늑대였을 때에는, 통 잠을 안 잤어요. 밤이면 지붕들 위로 기어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어요. 밑에 있는 사람들한테 “우우!” 하며 알은체도 했어요. (2쪽)



  필립 레셰르메이에 님이 글을 쓰고, 사샤 폴리아코바 님이 그림을 빚은 그림책 《내가 늑대였을 때》(달리,2007)를 빙그레 웃으면서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아이가 사회에 익숙해지는 모습을 빗대어 그렸다’고도 하는데, 어느 모로 보면 참말 그렇겠네 싶으면서도, 달리 보면 아이가 아이다움을 잃거나 잊는 모습을 그렸구나 싶기도 합니다.


  퍽 어린 아이는 밤에 잠을 자기보다는 밤에 말똥말똥 깨어서 놀려고 해요. 퍽 어린 아이는 밤에 잠을 안 자려 한 탓에 아침이랑 낮에 깊이 잠들기 일쑤예요. 낮이나 밤을 따로 가릴 줄 모르기에 이 아이들은 언제라도 실컷 놀고 싶지요. 밤마다 까르르 웃고 노는 아이를 키운 어버이라면, 이 그림책 첫머리에 나오는 ‘밤에 울부지는 늑대’ 모습에 허허 하고 웃음이 나오거나 아이고 하며 웃음이 나오거나 그저 빙긋빙긋 웃음이 나올 테지요.




내가 늑대였을 때에는, 달빛 없는 밤이면 할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럴 때면 나는 공처럼 몸을 둥글게 웅크렸어요. 정말로 마음이 우울하고 쓸쓸했어요. (6∼7쪽)



  갓 태어난 아기는 임금님하고 똑같다고 할 만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를 알뜰살뜰 모시지요. 아프랴 추우랴 더우랴 살피면서 알뜰히 모십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갓 태어난 아기뿐 아니라, 무척 늙은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도 알뜰살뜰 챙기고 사랑하면서 모셔요.


  힘이 여린 사람을 돌보는 몫은 바로 튼튼하거나 힘이 센 사람이 누리는 삶입니다. 힘이 여리니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힘이 있으니 보살필 줄 아는 마음이 되어야지요.


  어느 어버이도 아이한테 밥을 지으라 시키지 않아요. 어느 어버이도 아이더러 옷을 짓거나 집을 지으라고 윽박지르지 않아요. 참말 아이들은 실컷 놀아야 합니다. 일찍 글을 떼거나 공부를 해야 할 아이가 아닙니다. 일찍 책을 읽을 줄 아는 아이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누구나 마음껏 놀고 신나게 뒹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 참다 못한 사람들이 진저리를 치며 소리쳤어요. “저 늑대 녀석은 남들 깨어 있을 땐 자고, 세상 조용할 땐 떠들어대고, 아주 제멋대로야. 저 녀석 때문에 미칠 지경이야, 없애 버려야겠어!” (14쪽)



  그림책 《내가 늑대였을 때》에 나오는 늑대는 차츰 늑대 노릇을 하기 어렵습니다. 둘레에서 늑대를 내쫓으려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늑대는 어느덧 털이 빠지고 날카로운 손톱이나 송곳니도 사라집니다. 차츰차츰 ‘사람 꼴’로 바뀝니다. 사람 꼴로 바뀌다가 그예 사람이 되더니, 이제는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듣’습니다.


  그림책 마지막 쪽을 펼치고는 후유 하고 한숨이 나옵니다. 두 아이를 돌보는 삶을 여덟 해를 보낸 어버이로 헤아리자니, 나는 우리 아이들이건 이웃 아이들이건 ‘더 오래 늑대다운 삶’을 누리면서 놀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나는 온누리 모든 아이들이 적어도 열 살까지는, 또 열한두 살까지도 실컷 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회를 알거나 배우더라도, 글을 알거나 책을 읽더라도, 학교를 다니든 안 다니든, 아이들이 ‘들사람 넋’을 가슴에 품을 수 있기를 바라요.


  열다섯 살이 되어도 구슬땀을 흘리면서 들길을 달리면서 놀 줄 아는 푸름이로 자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스무 살이 되어도 기쁘게 노래하면서 마음껏 춤줄 줄 아는 젊은이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을 흉내내는 노래나 춤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샘솟는 사랑스러운 몸짓과 목소리로 곱게 노래하고 춤줄 줄 아는 신나는 젊은이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요.




언젠가부터 내 털이 조금씩 짧아졌어요. 이빨도 작아지고, 목소리도 부드러워졌어요. 주둥이는 오그라들었어요. 내가 거리로 나가도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어요. 집에서는, 내 손톱 때문에 마루에 흠집 나는 일이 없어졌어요. 내가 만지는 것마다 찢어지지도 않았고요. 나는 지붕 위에서 하던 달빛 목욕도, 으르렁대고 울부짖던 것도 그만두었어요. (20∼21쪽)



  십일월이 되어도 마당에서 맨발로 노는 우리 집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실컷 뛰놀며 자란 아이가 씩씩하게 자랄 테지요. 지난해 겨울에도 마을 어귀 빨래터에서 물이끼를 걷어내고 나면 십이월이나 일월에도 신나게 물놀이를 하던 우리 집 아이들은 올 십이월에도 똑같이 물놀이를 하겠거니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마음껏 노래하고 춤추면서 하루를 새롭게 맞이하던 아이가 어른이 될 적에 고우면서 착한 넋이 되리라 느껴요.


  시험공부만 하던 아이가 되지 말고, 동무를 아끼고 동생을 돌볼 줄 알면서 숲바람을 마시며 자란 아이일 적에, 공무원이 되든 교수나 지식인이 되든 아름다운 꿈으로 정책이나 학문을 밝힐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바람맛을 알고, 햇살맛을 알며, 풀맛이랑 흙맛을 아는 아이로 뒹굴며 놀다가 천천히 푸름이를 거쳐서 어른이 될 적에, 이웃을 사랑하고 기쁘게 어깨동무하는 숨결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4348.11.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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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찾고 바다에서 건진 우리 역사 - 고고학 생생 노트
김영숙 지음, 송진욱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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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19



오늘은 살림살이, 먼 뒷날은 발자취

― 땅에서 찾고 바다에서 건진 우리 역사

 김영숙 글

 송진욱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펴냄, 2012.7.31. 11000원



  오늘 내가 쓰던 작은 물건 하나를 알뜰히 건사해서 아이들한테 물려준다면, 그리고 아이들은 이 작은 물건을 고이 여겨서 새 아이들한테 물려준다면, 이리하여 이 작은 물건을 물려주고 물려받기를 되풀이하면서 오백 해쯤 흐른다면, 앞으로 오백 해 뒤에는 새로운 유물이 될 만합니다.


  쓰레기통에 넣으면 쓰레기가 되고, 불에 태우면 한줌 재로 바뀌지만, 나 스스로 살뜰히 간수해서 두고두고 돌볼 수 있다면, 오늘 이곳에서는 예쁜 살림살이로 누리고, 먼먼 뒷날에는 재미난 유물이 될 만합니다.



이 작은 돌멩이가 바로 전곡리를 세계적인 유적으로 알린 유물이야. 이 유물의 이름은 바로 주먹도끼. 무심코 보면 그냥 돌멩이 같지만, 한 번 관찰하면 특징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9쪽)


엄청난 위력의 홍수로 퇴적층이 쓸려 나가고 뒤집히면서 수천 년 동안 묻혀 있었던 암사동의 신석기 시대의 유적이 드러난 거야. (21쪽)




  《100년 전 우리는》이나 《조잘조잘 박물관에서 피어난 우리 옷 이야기》를 쓴 김영숙 님이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고고학과 옛 유물 이야기를 들려주는 《땅에서 찾고 바다에서 건진 우리 역사》(책과함께어린이,2012)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어린이 인문책에서 다루는 ‘우리 역사’는 유물로 살피는 역사입니다. “역사 이전”이라고 하는 ‘선사 시대’ 유물부터 백제와 가야 무렵 발자취를 보여주는 유물까지 차근차근 살핍니다.


  큰물이 지면서 땅 밑이 넓게 드러나서 찾아낼 수 있던 유물을 이야기합니다. 아파트를 짓는다며 땅 밑을 깊이 파헤치면서 새롭게 나타난 유물을 이야기합니다. 바다 밑에서 건져올리면서 수수께끼를 풀도록 도와준 유물을 이야기합니다.


  자그마한 유물 하나가 나와서 우리 역사가 바뀝니다. 언뜻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 만한 유물 하나가 나타나서 우리 발자취가 달라집니다.



암사동 선사 주거지는 참 재미있고 특별한 유적인 것 같지? 지금은 높은 아파트 단지와 자동차 행렬이 끊이지 않는 도로에 둘러싸여 있지만, 아주 먼 옛날,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고, 산에서 주운 도토리를 갈돌과 갈판에 갈아 빗살무늬 토기에 끓여 먹던 장면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곳이기도 하니까. (26쪽)


가루베 지온은 6호분에서 나온 유물을 고스란히 자기가 채익고, 조선총독부에는 이미 도굴된 것으로 보고했어. 광복 후 가루베 지온은 훔친 유물을 트럭에 싣고 대구로 가서 일본인과 함께 일본으로 유물을 가져가 버렸어. 그리고 이렇게 약탈한 유물을 가지고 《백제 유적의 연구》라는 책까지 펴냈지 뭐야. (81쪽)



  높다란 아파트를 올리려고 땅 밑을 깊이 파헤치면서 나오는 유물은 무엇을 말할까요. 높다란 아파트를 올려야 하기 때문에 유물이 나오거나 말거나 먼저 아파트부터 지어야 할까요.


  삶을 돈이라는 테두리에서 바라본다면, 유물 조사는 굳이 할 까닭이 없이 아파트만 지어대면 됩니다. 삶을 경제성장이라는 틀에서 바라본다면, 유물 조사뿐 아니라 환경 조사도 애써 할 까닭이 없이 아파트나 공장이나 온갖 시설을 지어대면 되지요.


  땅 밑을 파헤치는 일이 있을 적마다 으레 유물 조사를 하려는 까닭이라면, 자그마한 옛 유물 하나로 옛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오늘 우리가 이곳에서 살아가는 뜻을 읽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역사책에 아로새기려는 역사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온 길을 더듬으면서 오늘을 되새기고 앞날을 새로 가꾸려는 뜻으로 읽는 역사라고 느껴요.



이처럼 중요한 유적이 오늘날에는 안타깝게도 등산로, 체육 시설, 군사 시설 등으로 훼손되고 있어. 구의동 보루 같은 경우에는 발굴 이후 아파트 숲으로 변해 흔적을 찾기도 힘들어. (91쪽)


무덤 발굴에서는 유물이 나오든지 나오지 않든지, 무덤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를 발견하는 것 또한 의미가 커. (101쪽)




  일제강점기에 여러 일본 학자는 이 나라 유물을 많이 훔쳤다고 합니다. 신안 앞바다에서 유물이 나왔을 적에 적잖은 사람들이 바다 밑 보물을 가로채려고 애썼다고 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한국 유물을 훔친 사람은 일본 고고학자나 도굴꾼이나 수집가뿐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한국 유물을 가로채거나 훔친 사람이 무척 많아요. 이들은 모두 돈이 될 만한 길을 살폈습니다. 주머니를 두둑하게 챙길 마음이었고, 혼자 연구 성과를 차지하면서 이름을 드날릴 마음이었어요.



고고학자들이 흥분하고 있는 사이, 한쪽에서는 심각한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어. 유적의 규모와 중요성을 감안해 복천동 고분군의 보존에 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오자, 새로운 연립주택이 지어질 것을 기대했던 주민들이 쫓아와 문화재관리국 담당 공무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벌어진 거야. (109쪽)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정부에서 역사 교과서를 갈아치우겠노라 하고 외칩니다. 아이들한테 ‘새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외치는 셈이라 할 텐데, ‘어떤’ 새 역사를 가르치고 싶기에 정부에서도 역사 교과서를 쓸 생각일까 궁금합니다.


  곰곰이 따지자면 정부에서도 얼마든지 역사 교과서를 쓸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얼마든지 역사 교과서를 쓰라고 할 노릇입니다. 그리고, ‘정부 교과서’도 다른 역사 교과서하고 똑같이 ‘다른 여러 학자한테서 감수를 받아’야지요. 정부에서 쓰는 교과서도 꼼꼼하게 감수를 받아서 잘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지요. 그리고, 정부에서 쓰는 교과서는 학교마다 역사 교사가 여러 교과서를 스스로 살펴서 알맞게 아이들한테 가르칠 수 있어야지요.


  왜 그러한가 하면, 한국 사회는 독재 사회가 아닌 민주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도 역사 교과서를 쓰고 싶다면 쓰라 하고, 이 ‘정부 교과서’도 학자 같은 전문가뿐 아니라, 교사와 학생 모두한테서 감수를 받을 노릇이며, 교사와 학생이 여러 교과서 가운데 스스로 배우고 싶은 교과서를 고를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안 앞바다에 보물선이 가라앉은 게 아니냐는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어. 전국의 골동품 상인과 도굴꾼들이 신안에 몰려들기 시작했어. 재빠른 도굴꾼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바다에서 값비싼 도자기들을 건져 올렸어. 뒤늦게 경찰이 나서서 도굴꾼들을 붙잡기에 이르렀는데, 도굴꾼들의 창고를 열어 보니 값을 매길 수 없는 국보급 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해. (115쪽)



  어린이 인문책 《땅에서 찾고 바다에서 건진 우리 역사》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땅 밑과 바다 밑에서 나온 유물을 몇몇 사람이 혼자서 차지한다면 우리 옛 역사를 제대로 적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 모습을 몇몇 사람이 쓴 ‘국정 교과서’ 한 가지만 아이들한테 읽혀서 가르치려고 한다면, 참말 오늘날 한국 사회 모습을 제대로 밝힐 수도 없고 알려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습니다.


  역사를 읽는 까닭은 역사 지식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유물을 찾아서 박물관을 짓는 까닭은 오래된 유물을 자랑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어제를 읽어서 오늘을 돌아보고, 오늘 이곳에서 흐르는 삶을 읽으면서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날을 꿈꾸자는 뜻으로 역사를 읽고 유물을 돌아봅니다. 오늘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살림살이로 누리고, 먼 뒷날에는 아련하면서 즐거운 발자취로 되새길 수 있도록 역사와 유물을 살핍니다.


  역사책을 쓰려고 하는 어른들이 부디 슬기로울 수 있기를 빌어요. 정치를 이끄는 어른들이 부디 아름다운 넋으로 거듭나서 아이들 앞에서 떳떳할 수 있기를 빌어요. 오늘 이곳에서 우리 어른들이 보여주는 모든 몸짓과 모습도 ‘역사’로 남습니다. 먼 앞날 아이들한테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말고, 먼 앞날 아이들한테 자랑스러운 어른으로 오늘 이곳에서 삶을 지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8.11.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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