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이야기
야나기 무네요시 지음, 이목 옮김 / 산처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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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21



수수한 것을 그러모으는 손길이 사랑스러워

― 수집 이야기

 야나기 무네요시 글

 이목 옮김

 산처럼 펴냄, 2008.6.5. 18000원



  나는 아이들하고 함께 살며 ‘재미난 모으기’를 한 가지 합니다. 무엇인가 하면, 아이들이 빚은 글조각이나 그림종이입니다. 두 아이가 꼬물꼬물 놀린 글씨가 깃든 작은 종잇조각을 모으고, 두 아이가 저마다 저희 마음을 담아서 신나게 빚은 그림종이를 모아요.


  큰아이가 여덟 살을 누리는 올해를 돌아보면, 두 아이가 내놓은 글조각하고 그림종이는 퍽 많습니다. 작은 상자로 여럿 됩니다. 앞으로도 글상자나 그림상자는 늘어날 테지요. 온누리에 오직 하나뿐인 ‘재미난 모으기’이고, 이웃집에서는 이웃 어버이가 이웃 아이한테서 이러한 글조각이나 그림종이를 모을 만하리라 느껴요. 저마다 그야말로 온누리에 오로지 하나 있는 멋진 모으기를 할 수 있을 테지요.



물건을 사 모으는 데에 돈도 힘이 될 테지만, 그 이상으로 뜨거운 마음이 힘이다 … 사물에 대한 사랑은 솔직해야만 한다. 사물은 사람과 사람의 훌륭한 중개자다. 마음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기물을 매개로 해서 만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18, 24쪽)


좋은 물건은 흠집이 있어도 좋고, 나쁜 물건은 완전해도 나쁘다 … 사물이 존재하니까 선택한다기보다는, 선택됐기 때문에 사물이 존재한다는 쪽이 맞다. (44, 54쪽)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쓴 《수집 이야기》(산처럼,2008)를 읽습니다. 이 책은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민예품’을 모으면서 겪은 이야기를 다룹니다. 아직 사람들이 제 값어치를 알아보지 못하던 물건을 처음 만나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더없이 수수해서 아무도 문화재라고 여기지 않는 여느 사람들 옷감이랑 옷에 깃든 오래된 숨결과 손길이 얼마나 고운가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는 것은 곧 보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잘못이다. 물건을 보기 전에 지식을 움직이면,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이 방해받게 된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 지식으로 무언가를 계산하면, 그 지식으로 측정 가능한 범위 이내의 요소로 말미암아 제대로 볼 수 없는 법이다. (71쪽)


부자들은 유명 작품이 아니면 사지 않을 만큼, 또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81쪽)



  일본사람 야나기 무네요시 님은 《수집 이야기》라는 책에서 ‘일본 민예품’을 그러모은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러면, 한국에서는 ‘한국 민예품’을 그러모은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거의 없다 싶으나, 예용해 님은 ‘인간 문화재’ 이야기를 썼고, 《뿌리깊은 나무》라는 잡지가 ‘한국 민예품’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그러면 요즈음에도 이렇게 ‘한국 민예품’ 이야기를 다루거나 쓸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가만히 헤아려 보는데, 아무래도 요즈음에는 ‘한국 민예품’ 이야기를 다루거나 쓸 만한 사람을 찾기 어렵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살림살이를 집집마다 손수 지어서 썼으나,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게에서 물건을 사다가 써요. 집집마다 다 다르게 가꾸거나 보듬는 살림살이를 찾아보기 어려운 만큼 이제는 ‘한국 민예품’을 이야기하기는 몹시 어려우리라 느껴요.



우리가 내심 탄복했던 물건들을 수집해서 앞에 늘어놓고 보았을 때, 그 대부분이 지금까지 소중하게 다뤄지지 않던 민기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103쪽)



  가만히 보면, 요즈음에는 ‘명품’이나 ‘진품’ 이야기를 다루는 글이 퍽 많습니다. 그리고, 수수한 살림살이 이야기를 다루는 글은 몹시 드물 뿐 아니라, 여러 회사에서 나온 공산품을 견주어서 따지는 글이 아주 많아요. 이른바 ‘상품평’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벌이는 몸짓이나 모습을 놓고 ‘관전평’을 쓰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스스로 짓는 삶이나 살림이 사라지면서, 수수한 이야기가 사라지는 흐름입니다. 스스로 가꾸는 삶이나 살림이 자취를 감추면서, 수수한 사랑과 꿈을 노래하는 숨결이 잊혀지는 흐름입니다.


  그래도 인터넷과 사진기가 널리 퍼지기에,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 이야기가 부쩍 늘어요. 지난날에는 누구나 흙을 일구었으니 굳이 이런 밭짓기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지도 않고 글로도 안 남겼다고 할 만한데, 오늘날에는 조그마한 텃밭에 씨앗을 심어서 손수 기르는 이야기를 사진으로도 찍고 글로도 남기는 사람이 많아요.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어린이책이나 어른책으로 두루 나옵니다.



잘못 보는 많은 사람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빈손으로 사물과 접하지 않기 때문이다 … 직관이 고마운 까닭은 망설임을 동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떤 명성 따위에 의지할 필요가 사라진다. (152쪽)


나는 너무도 행복했다. 이런 책과 우연히 만날 수 있었다는 현실에. 멋진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에. 그 아름다움을 감지할 수 있는 마음까지 주어졌다는 것에. 그리하여 그것을 원할 수 있고 신변 가까이에 둘 수 있을 만큼 좋은 환경에 있다는 것에. 더욱이 이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많은 친구들까지 있다는 것에. (223쪽)



  수수한 것을 그러모으는 손길이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손수 나무를 깎아서 지을 수 있는 손길이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지난날에는 신 한 켤레도 손수 빚었어요. 옷이야 아주 마땅히 손수 지었고, 밥도 언제나 손수 지었지요. 집도 언제나 손수 지으면서 가꾸었지요.


  따로 전문가를 두지 않은 옛사람 삶입니다. 몇몇 전문가가 있는 삶이 아니라, 누구나 손수 삶을 짓는 삶이었기에, 참말 옛사람이 빚은 수수한 살림살이는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보든 모두 ‘멋지거나 사랑스러운 민예품’이 될 만했지 싶어요.


  어떤 솜씨를 뽐내려고 짓는 살림살이가 아니거든요. 뭔가 놀라운 재주를 부리려고 짓는 살림살이도 아니에요. ‘민예품’이란 수수한 사랑으로 수수한 손길을 뻗으면서 태어납니다. 여느 살림집에서 쓰는 살림살이는 수수한 꿈으로 수수한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하나하나 빚습니다.



자연에서 보자면 애초 그 같은 상하의 구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각 저마다의 특색이 있기 때문에 이 흙에 순종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어떠한 흙이라도 그 나름대로 소생할 것이다. (251쪽)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다기라고도 불리는 각발은, 발견됐을 당시만 하더라도 일반 농민 집에서 닭모이를 담아 두는 그릇이었다고 나카니시 씨한테서 직접 그 사연을 들었다. (256쪽)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쓴 《수집 이야기》는 그야말로 수수한 사람들이 지은 살림살이를 만난 기쁨을 노래하는 책입니다. 멋부리지 않은 살림살이에서 노래가 흐르고, 꾀부리지 않은 살림살이에서 이야기가 자랍니다. 멋내지 않은 살림살이에서 외려 멋이 흐르고, 꼼수가 없는 살림살이에서 더없이 환한 숨결이 자랍니다.


  앞으로 2050년이나 2500년 무렵이 되면 2000년대 첫무렵 요즈음 사람들이 쓰는 살림살이를 어떻게 바라볼 만할까요? 2000년대 첫무렵 요즈음 우리가 쓰는 살림살이는 참말 ‘살림살이’라고 할 만할까요, 아니면 어느 만큼 쓰다가 버릴 수밖에 없는 플라스틱 쓰레기라고 할 만할까요. 4348.10.3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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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가로부터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 - 생태적 전환과 해방을 위한 기본소득 팸플릿 시리즈 (한티재) 2
하승수 지음 / 한티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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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35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달마다 40만 원씩’ 받을 권리

― 나는 국가로부터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

 하승수 글

 한티재 펴냄, 2015.3.16. 8000원



  2015년 가을에 나라에서 ‘아이 수당’을 주었습니다. 아이마다 50만 원씩 주었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놀랄 만한 일이지만, 곰곰이 보면 하나도 안 놀랄 만한 일입니다. 어떻게 이 나라 모든 아이 ‘머릿수’에 맞추어 50만 원씩 나라에서 줄 수 있었을까요? 이 돈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나라에서 주는 ‘아이 수당’은 2015년에 한 번 주고 끝일까요, 아니면 앞으로 해마다 줄까요, 아니면 두 해나 세 해에 한 차례씩 띄엄띄엄 또 줄까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2013년 연봉이 0원이라고 한다. 무보수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소득이 진짜 0원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연봉을 안 받는지는 모르지만, 이건희 회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식에서 배당받는 돈만 해도 1년에 1758억 원에 달했다(2014년). (6쪽)



  하승수 님이 쓴 조그마하면서 야무진 책 《나는 국가로부터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한티재,2015)를 읽다가, 문득 ‘아이 수당’이 떠오릅니다. 이 책을 읽고 보니, ‘아이 수당’은 한 해에 한 번이라든지 어쩌다가 한 번 주고 끝낼 만하지 않습니다. ‘아이 수당’은 다달이 50만 원씩 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참말 나라에서는 ‘아이 수당’을 다달이 50만 원 남짓 ‘집행’한다고 여길 만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거의 모든 어버이는 아이들을 유아원이나 보육원이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맡기는데, 여기에 드는 돈을 나라에서 꽤 많이 댑니다. 한 아이마다 얼추 50만 원에 이르는 돈을 다달이 나라에서 대요.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볼 만합니다. 나라에서 유아원이나 어린이집 같은 ‘시설에 아이 수당을 집행’하지 말고, 아이를 돌보는 집에 계좌이체로 ‘아이 머릿수에 맞추어 아이 수당 50만 원을 다달이’ 넣을 만하겠다고 느껴요. 그래서,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유아원이나 어린이집’ 같은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길는지, 아니면 따로 사람을 사서 아이를 맡길는지, 아니면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아이를 맡기고 ‘다달이 주는 아이 수당’을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드릴는지, 이러한 ‘결정권’을 아이 어버이한테 주면 훨씬 아름다운 복지 정책이 되겠구나 싶습니다. 이렇게 할 때에 비로소 ‘어린이집 원장이 어린이집을 부동산처럼 사고파는 엉터리 같은 짓’을 곧장 끝낼 수 있겠지요.



조합원이나 주주가 아닌 사람은 도대체 누구로부터 배당을 받을 수 있는가? 나는 누구나 국가로부터 배당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본래 공유였던 것을 사유화해 버렸는데, 그로부터 나오는 이익이라도 공유화해서 시민들에게 배당을 주자는 것이다. (15쪽)



  다시 《나는 국가로부터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라는 책을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하승수 님은 대한민국 모든 시민이 나라한테서 다달이 40만 원씩 ‘기본소득(기본수당)’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말은 뜬금없이 ‘내뱉지’ 않습니다. 낱낱이 차근차근 따져서 이 나라 중앙정부와 지역정부가 ‘엉터리로 흘려 버리는 세금’을 알뜰히 건사하면 모든 사람이 다달이 40만 원씩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다고 외칩니다.


  부자한테 더 특혜를 주는 엉터리 조세정책이 아니라, 불로소득에 제대로 세금을 매기라고 하는 기본소득 제도입니다. 월급이나 연봉을 받지 않으나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온 하루를 ‘가사노동’이나 ‘육아노동’에 바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림을 조금이나마 펼 수 있도록 밑받침이 되도록 기본소득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조건 없이 65세 이상에게 매월 기초연금 2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들고 나왔다. 일종의 노인기본소득이었다. 이처럼 대한민국에서도 기본소득은 언제든지 기득권 정치세력의 의제가 될 수 있다. 물론 기득권을 가진 정치세력은 진정성 없이 문제에 접근하기 때문에 믿을 수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도 결국 공약을 스스로 어겼다. (20쪽)


아무리 사회복지제도가 있다고 한들, 매번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은 고역이다. 그래서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통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31쪽)



  하승수 님이 이 작은 책에서 찬찬히 짚고 따지기도 합니다만, ‘임금노동’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원자력 발전소를 늘려고 ‘일자리 만들기’를 하는 일은 참말 이 나라에 도움이 될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원자력 발전소를 늘리면, 폐기물 처리장도 지어야 하고, 송전탑도 박아야 하고, 한국전력 회사도 커져야 하지요. 이래저래 ‘일자리는 늘어납’니다. 공사와 건축이 끊이지 않으니 ‘막일을 하는 일자리’도 늘 테지요. 그러나 그뿐이에요. 이러한 임금노동은 삶을 북돋우지 못합니다.


  전쟁무기를 만들어 군대를 키울 적에도 ‘군대 일자리’는 늘 텐데, 군대 일자리는 사회를 아름답게 가꾸지 못합니다. 전쟁무기를 개발하는 과학자와 기술자는 보람이 있을 만한 일을 하는 셈일까요, 아니면 바보짓으로 임금노동을 하는 셈일까요?


  시골에서는 돈이 되는 농사를 지으려고 농약과 비료를 엄청나게 써대는데, 시골 농사꾼이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으면, 억지로 농약과 비료를 함부로 안 쓰리라 느낍니다. 억지스레 곡식과 남새를 내다 팔아서 돈을 벌어야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욱 깨끗하고 좋은 곡식과 남새를 자연농이나 유기농으로 키우는 밑틀이 생길 수 있어요. 그리고,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서 조용하면서 수수한 살림을 지으려고 하는 사람이 꾸준히 늘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도시는 밀집 문제나 주택 문제나 교통 문제도 조금씩 풀릴 테고, 시골은 시골대로 빈집이나 빈마을을 없애면서 마을이 새롭게 살아날 길이 열릴 테지요.



우리는 가사노동, 돌봄노동 같은 말을 쓴다.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도 임금을 받고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여전히 많다. 자기 집의 가사노동을 하는 사람, 자기 가족을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은 ‘임금’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일’을 하고 있다 … 모든 임금노동은 가치 있는 일인가? … 어떤 일자리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원전을 많이 지어 그곳에서 나오는 방사성폐기물이 늘어나면, 그것을 처리할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다. 대량살상 무기를 더 만들어도 일자리는 늘어난다. 사회가 더 불평등해져서 범죄율이 늘어나도 일자리는 늘어난다. 교도소도 더 지어야 하고 교도소를 지킬 사람들도 더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78∼79쪽)



  나라에서 기본소득 40만 원을 다달이 준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그러면, 아이를 낳은 어버이 가운데 ‘아버지 자리’에 있는 사람도 한 달에 며칠쯤 느긋하게 쉬면서 집에서 아이를 함께 돌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도 아이를 함께 돌보면서 아이하고 누리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를 온몸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한 달에 40만 원을 기본소득으로 받는다면, 책마을을 살린다느니 출판산업을 살린다고 바둥거리지 않아도 됩니다. 이러한 기본소득을 다달이 대주면, 사람들은 스스로 한 달에 책을 한두 권이라도 사서 읽기 마련입니다. 40만 원이라는 기본소득을 바탕으로 적어도 한 달에 하루나 이틀을 말미를 내어 몸을 쉬려 하고, 가볍게 여행을 다녀올 수 있고, 영화도 홀가분하게 볼 만하겠지요. 그리고 이 기본소득은 고스란히 ‘마을 가게에서 고기 한 번 구워 먹는다’든지 ‘차 한 잔 마신다’든지 ‘옷 한 벌 산다’든지 하는 소비로 이어질 테니, 지역살림도 저절로 살릴 만합니다.



제주도의 지하수는 공유재다. 본래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자연이 준 선물이다. 그런 지하수를 무분별하게 쓰는 것에 대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 골프장이나 리조트의 지하수 사용에 대해서는 매우 무거운 부담금을 물려야 한다. (56∼57쪽)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 낭비되는 공적인 재원들이 너무 많다.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불필요한 도로를 닦고, 건물을 짓고, 댐을 건설하고, 온갖 부패로 찌든 공공사업을 추진하는 데 낭비되는 돈이 너무 많다. 이 돈만 줄여도 기본소득을 지급할 상당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각종 토건사업에 쓰는 예산이 1년에 40조 원 정도 된다. (117쪽)



  나라에 돈이 없다면, 세금을 제대로 걷을 노릇입니다. 나라에 돈이 없다면, 쓸데없는 토건사업을 줄일 노릇입니다. 나라에 돈이 없는데, 왜 원자력 발전소를 자꾸 지으려 할까요? 나라에 돈이 없다면, 사람들더러 전기를 덜 쓰라 하면서 오히려 발전소를 줄일 노릇이지요. 나라에 돈이 없는데, 전쟁무기는 언제까지 자꾸 만들 생각이며, 값비싼 전쟁무기를 왜 자꾸 사들이려고 할까요? 전쟁무기가 평화를 끌어들일까요, 아니면 끝없는 전쟁과 전쟁무기만 자꾸 끌어들일까요?


  나라에서 아직 기본소득을 펴지 않는 까닭이라면, 나라에서 이 나라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길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누구나 사람답게 살고, 누구나 즐겁게 어울리며, 서로서로 보금자리와 마을을 알뜰살뜰 가꾸는 길을 생각한다면, 기본소득 같은 제도를 이제부터라도 꼼꼼히 살피고 챙겨서 펼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이자소득이나 배당소득을 많이 올리는 사람에 대한 과세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 2015년부터 정부가 배당소득을 많이 받는 대주주가 오히려 낮은 세율(25%)로 세금을 낼 수 있도록 특혜를 주고 있는데, 이런 부분은 당연히 폐지해야 한다. 그리고 근로소득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 (131쪽)



  돈을 더 많이 벌어야 삶이 즐겁지 않습니다. 경제성장이나 경제발전을 이루어야 나라가 아름답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제 삶자리에서 웃고 노래할 수 있는 하루를 누릴 때에 삶이 비로소 즐겁습니다. 도시사람도 시골사람도 저마다 제 보금자리와 마을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스스로 가꿀 때에 비로소 이 나라가 아름답습니다. 이름난 관광지 몇 군데만 개발해서 관광객을 끌어모아야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라, 골골샅샅 어느 도시나 시골이나 모두 ‘살고 싶은 곳’이 될 수 있어야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예요.


  삶에 즐거움과 보람과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이 피어나도록 북돋울 만한 조그마한 정책이 될 기본소득 제도가 머잖아 펼쳐지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4348.10.3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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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9
오시미 슈조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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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55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면

― 악의 꽃 9

 오시미 수조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1.25. 4500원



  열한째 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만화책 《악의 꽃》입니다. 아홉째 권에서는 이 만화책을 이끄는 사내 주인공이 드디어 굳게 마음을 다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제껏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보지 못하던 이 아이는 여러 해에 걸친 긴 수렁길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하루 빨리 삶을 끝내고 이 지구별에서 없어지기를 바랐는’지, 아니면 ‘하루 빨리 살아갈 뜻을 찾고 이 지구별에서 웃고 노래하기를 바랐는’지를 스스로 생각하여 마무리짓기로 합니다.



“안 그래도 되는데 신경 쓰지 마.” “괜찮아. 나도 괜히 폐를 끼쳤다 싶고, 게다가, 그렇게 계속 도망치기만 해선, 지금까지와 다를 게 없으니까.” (20쪽)


“그건 너 혼자 멋대로 그렇게 믿어버린 거잖아? 넌 의존하고 있을 뿐이야. 그 소설을, 너 자신을 위로하는 도구로 삼고 싶은 거잖아? 넌 쭉 의존해 왔어. 책에, 사에키에, 나카무라에, 그리고 넌 이제, 도키와와 그녀의 소설에 의존하고 있어.” “그렇지 않아. 난…….” “뭐가 다르지? 넌 나카무라가 왜 널 밀쳤는지도 모르잖아.” (52∼53쪽)



  다짐은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다짐하는 삶이란 어려울까요, 아니면 어려울까요. 스스로 다짐하고 이 다짐처럼 살기는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스스로 꿈을 품으면서 이 꿈을 이룰 길을 걷자고 다짐하는 삶이란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하지만, 난 할 수 없어. 평생을 유령의 세계에서 살 순 없어.” (67쪽)


“아, 아, 따뜻해.” (106쪽)



  아이들을 섣불리 학교에 넣지 말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만화책 《악의 꽃》을 보아서 이런 대목을 느낀다기보다, 모든 아이는 저를 낳은 어버이한테서 더 사랑받기를 바란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다섯 살이든 열 살이든 열다섯 살이든 제대로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어른도 그렇잖아요?


  어른은 툭하면 연애소설을 읽고 툭하면 연속극을 보며 툭하면 사랑영화를 봅니다. 그런데, 어른으로서 저희가 낳은 아이를 제대로 사랑하는 일은 드뭅니다. 그저 나이에 맞추어 학교에 툭툭 집어넣고는 아이하고 얼굴 볼 틈조차 얼마 안 됩니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돈을 벌러 바깥일을 하느라 바쁘다면서 아이랑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눌 틈도 제대로 안 내기 일쑤입니다.


  아이들이 씩씩하고 아름답게 살기를 바라나요? 그러면 아이들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셔요. 하루 한두 시간이 아니라 하루 스물네 시간을 아이들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이 아이들 마음을 읽으려고 해 보셔요.



“카스가. 산책이라도 갈까? 날씨도 좋고 하니.” “아, 글 안 써도 돼?” “잠깐 휴식.” (128쪽)


“시골이라도 상관없어. 카스가가 자란 곳이라 가 보고 싶은 것뿐이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진짜 아무것도 없는데.” “카스가. 전부터 좀 궁금했던 건데, 무슨 일 있었어? 중학교 때. 뭔가 있었던 거지? 말하고 싶지 않다면 할 수 없고.” (164∼165쪽)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죽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죽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언제나 스스로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스스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이러한 생각대로 씩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이 아침에 눈을 뜨고 수저를 들면 삶이 무엇인가를 놓고 골머리만 앓기 마련입니다. 죽는 길도 어렵지 않아요. 죽으려면 그냥 죽으면 돼요. 그러나 살아야 할는지 죽어야 할는지 도무지 모르겠으니 이도 저도 하지 못합니다. 살아야 할 뜻도 죽어야 할 뜻도 모르니까, 더군다나 죽은 뒤에 어떻게 되거나 무엇이 되는지는 까맣게 모르니까 이도 저도 아닌 삶이 됩니다.


  자, 생각해 보아야지요. 이대로 이 삶에서 ‘스스로 아무것을 하지 않고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대로 이 삶에서 스스로 아무것을 하지 않고 죽으면, 곧바로 이러한 삶대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면 어떻게 하렵니까? 스스로 내 굴레를 내가 깨닫고 내가 제대로 바라보면서 내가 떨치지 않으면, 이 굴레는 스스로 빨리 목숨을 끊어서 죽어버린다 한들, 곧바로 다른 몸으로 다시 태어나서 이 굴레를 고스란히 뒤집어쓴다면, 그래도 그냥 쉽게 죽음길로 가렵니까?



“나도 갈래.” “아니, 하지만 널 그 마을에 데려가는 건.” “그래, 이제 겨우 3년밖에 안 됐는데.” “아빠, 엄마, 이 상처가 설령 아문다 해도, 흉터는 사라지지 않을 거야. 어디선가 반드시, 마주해야 할 날이 올 거야.” (180∼181쪽)



  죽는다고 빚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는다고 괴로움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는다고 걱정이나 근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음은 그저 죽음입니다. 죽으려 하면 그저 죽을 뿐입니다.


  빚을 없애고 싶으면, 살면서 빚을 없애면 됩니다. 괴로움을 떨치고 싶으면 살면서 이 괴로움에 당차게 맞서면서 씩씩하게 떨치면 됩니다. 걱정도 근심도 잊고 싶다면 살면서 기운차게 꿈을 품고 사랑을 나누면 됩니다.


  만화책 《악의 꽃》에 나오는 아이는 이 만화 흐름에서 아홉째 권에 이르러 드디어 스스로 제 삶을 마주하려 합니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고, 아무도 돕지 않으나, 이 주인공 아이 곁에서 이 아이를 지켜보는 따사로운 눈길을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주인공 아이가 ‘살아야겠다’는 뜻을 북돋아 준 따사로운 동무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되면서 비로소 새롭게 한 걸음을 내딛으려 합니다.


  새로 내딛는 한 걸음은 두렵거나 무서울 수 있지만, 새롭기 때문에 언제나 기쁨입니다. 새로 내딛는 한 걸음은 가시밭길을 헤치고 지나가야 할 수 있지만, 스스로 새롭기 때문에 언제나 노래하며 웃을 수 있습니다. 4348.10.3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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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형태 6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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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60



기나긴 삶을 어떻게 가꾸겠니

― 목소리의 형태 6

 오이마 요시토키 글·그림

 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9.30. 5500원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는 1권부터 5권까지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하고 묻습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하고 물어요. 그러니까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묻는 말이 아닙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나라면’이 아닌 ‘너라면’이라고 하는 마음이 되어서 묻습니다.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자리에서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고,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지 못하다가 학교에서 여린 동무를 따돌리는 재미를 느꼈을 적에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지요. 이러다가 하나를 더 물어요. 네가 따돌림을 받는 아이라면, 또 네가 따돌림을 하는 아이라면, 너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하느님 제발 조금만 더 나한테 힘을 ㅈ세요. 더 이상 뭐 싫은 게 있다 해서 도망치고 그러지 않을게요. 니시미야 핑계 안 댈게요. 내일부터 애들 얼굴 제대로 볼게요. 내일부터 애들 목소리도 제대로 들을게요. 내일부터 제대로 살게요.’ (15쪽)


‘아아, 그때 낸 상처, 아직 남아 있었구나. 나, 제대로 사과했던가? 미안. 미안해, 니시미야. 이제 와서 그래 봤자 늦었겠지만. 아직도 화났어? 아, 맞다.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 둘 걸 그랬어.’ (19쪽)



  마지막 7권을 앞둔 《목소리의 형태》는 이제 물음을 바꿉니다. 그동안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하고 물었으나, 너한테 아무리 물어도 아무 실마리가 나올 수 없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꼬치꼬치 캐묻거나 따질 노릇이 아니라, 나는 바로 나한테 물어보아야 비로소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대목을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에 나오는 앳된 아이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고등학교를 두 해째 다니기는 하되, 어릴 적부터 유치원과 학교에 다니는 일 빼고는 따로 해 본 일이 없는 앳된 아이들로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더욱이,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앳된 어른도 똑같아요. 아이들보다 나이는 더 들었어도 그동안 스스로 가꾸려 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바쁘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으며, 고단하기도 했어요. 먹고사느라 바쁘기도 했을 테지만, 아이들을 차분히 바라보면서 돌보거나 보듬을 틈을 미처 못 냈습니다.



“나오는 남의 마음을 너무 무시해!” “나왔다! 우리 니시미야 특기! 남을 이용한 공격!” “남이 아니라 친구야! 나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멋대로 단정 짓지 마!” (39∼40쪽)



  모든 사람은 똑같이 삶을 누립니다. 한 살을 두 해 동안 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열 살이나 스무 살 나이를 두 해나 세 해를 누린다든지, 아니면 한두 달만 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한테 열다섯 살은 꼭 한 해뿐입니다. 모든 사람한테 열일곱 살 여름은 꼭 한 번뿐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너와 내가 어머니와 아들이라면, 너와 나 사이에 맺은 어머니와 아들로 꾸리는 삶은 바로 한 번뿐입니다. 두 번이나 세 번도 아닌 오직 한 번입니다. 너와 내가 이웃이나 동무라면, 너와 나 사이에 이러한 얼굴이랑 몸매랑 마음이랑 생각으로 맺는 이웃이나 동무라는 모습도 오로지 한 번입니다.



‘소용없었어. 전부 다. 하나도 전해지지 않았어. 제대로 말로 하는 게 더 나았던 걸까? ‘죽지 마’라고. 그럼 달라졌을까? 이시다, 너라면 어떻게 했을까? 난 어떡했어야 해?” (55쪽)



  물러서고 싶다면 얼마든지 물러설 수 있습니다.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리고 싶다면 얼마든지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릴 수 있습니다. 안 쳐다보아도 돼요. 모르는 척해도 되어요. 다만, 눈을 감아도 하루하루 흐르고, 고개를 돌려도 삶은 흐릅니다.


  자,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까요? 너한테 묻지 말고, 내가 나한테 물을 일입니다. 자,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에 나오는 사내 주인공 이시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던 니시미야를 붙잡습니다. 니시미야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움직였어요. 4층 툇마루에서 껑충 뛰어내렸지요. 도무지 수수께끼와 실마리를 풀 수 없어 아프고 괴롭던 니시미야는 죽음길로 가려 했습니다. 이때에 이 모습을 이시다가 보았습니다. 이시다는 멈칫하면서 니시미야가 스스로 죽으러 가는 길을 놓칠 수 있었어요. 이때에 이시다는 생각해요. 이제 스스로 생각해요.


  나도 죽고 싶지 않지만, 다른 동무도 죽지 않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짧은 겨를이었을 테지만, 툇마루에 한손을 버티고 다른 한손으로 니시미야 손을 붙잡으면서, 이렇게 가까스로 잡아채어 버티다가 자꾸 생각합니다. 힘이 빠지는 다른 손을 끝내 버틸 수 없다고 느끼면서 생각하지요. 이제부터 제대로 살고 싶다고, 이제부터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이제부터 사랑을 품으며 살고 싶다고, 그야말로 1초도 안 될 겨를에 기나긴 생각을 합니다.



‘갈고닦자. 나 자신을. 계속해서 변해 가자. 앞으로도 쭉 변치 않고.’ (96쪽)



  《목소리의 형태》 첫째 권을 돌아보면, 이시다는 어릴 적에 높은 곳에서 냇물로 뛰어내리는 놀이를 날마다 즐겼습니다. 왜 이런 놀이를 즐겼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바로 이날, 니시미야라는 아이가 4층 높이에서 뛰어내려 죽으려 할 무렵, 이 아이를 살려내고 이시다가 이 높은 곳에서 마을 냇물로 뛰어내리면 ‘죽지 않을 수 있겠네’ 하는 대목을 미리 배운 셈일는지 모릅니다. 앞날은 알 수 없으나, 스스로 앞날을 지은 셈이라고 할까요.


  기나긴 삶은 스스로 지을 때에 즐겁고, 기나긴 삶은 누구한테나 주어지며, 기나긴 삶을 사랑으로 가꾸든 미움이나 슬픔으로 차곡차곡 여미든, 모두 우리 몫입니다. 앳된 아이들은 이제 ‘스스로 생각하는 길’로 나아가려는 첫발을 뗍니다. 4348.10.3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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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 - 인지과학이 발견한 배움의 심리학 하워드 가드너의 마음의 과학 1
하워드 가드너 지음, 류숙희 옮김 / 사회평론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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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13



오늘날 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

 하워드 가드너 글

 류숙희 옮김

 사회평론 펴냄, 2015.9.3. 2만 원



  배우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늘 배웁니다. 학교를 다닐 때에만 배우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학교가 널리 퍼져서, 꼭 학교에 다녀야만 배울 수 있는 줄 여기지만, 사람은 먼먼 옛날부터 학교가 아닌 집에서 먼저 배웠고, 마을에서 배움을 넓혔고, 들과 숲과 바다에서 배움길을 한껏 펼쳤습니다.


  여느 때에 집에서 즐겁게 삶을 배울 줄 아는 사람일 때에, 나중에 학교에 가서도 즐겁게 지식이나 정보를 배웁니다. 여느 때에 마을에서 기쁘게 사랑을 배울 줄 아는 사람일 때에, 나중에 먼 고장 이웃이나 동무를 만나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새로운 꿈을 배웁니다. 무엇보다도 여느 때에 들과 숲과 바다에서 온누리를 배울 줄 아는 사람일 때에, 이 지구별을 넉넉히 품에 안으면서 사람으로서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배웁니다.



나는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 그 이해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 열렬하고 지속적으로 이해를 개선하려는 사람을 간절히 바란다. (22쪽)


300년 전 학교에서는 엘리트만을 가르쳤고, 주로 종교적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그 다음 200년에 걸쳐서는 좀더 큰 집단을 가르쳤고, 주로 세속적인 성향을 보였다. 이렇게 변화한 이유는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읽고 쓸 수 있는 믿을 만한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뚜렷한 교육 계획과 권한을 가진 중앙집권적 교육담당 부서가 나타났다. (61쪽)



  하워드 가드너 님이 쓴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사회평론,2015)를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이 책은 ‘현대 사회 학교교육’은 사람한테 무엇을 가르칠 만한가를 다룹니다. 사람들은 오늘날 학교를 다니면서 무엇을 배울 만한가를 찬찬히 짚습니다. 다만,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학교와 삶과 사람 사이에 맺는 실타래를 푸는 책인데, 한국 사회는 으레 미국 사회를 좇거나 따르기 마련이니, 한국 사회에서 학교교육이 어떤 모습이고 어떤 흐름인가를 읽는 데에도 길동무가 될 만하리라 느낍니다.


  그러면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가 어떤 구실을 할까요.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사회 구성원을 이룰 아이들이 사회에 잘 길들도록(적응하도록)’ 교과서를 엮습니다. 사회를 고치거나 바로잡거나 갈고닦거나 새로 지을 만한 아이들이 아니라, 사회에서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 잘 따르는 ‘사회 구성원’이 될 만한 교육을 시키려는 중앙정부예요. 요즈음 한국 중앙정부가 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바꾸겠다고 난데없이 나서듯이, 한국 중앙정부는 ‘정부가 시키는 대로 머릿속에 지식을 집어넣어서, 정부가 바라는 대로 사람들이 끌려다니’도록 학교교육 얼거리를 짭니다.



평범한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의 마음이 잘 작동하는 방식과 그렇지 못한 방식을 평가하고, 우리의 사고를 정립하기 위해 공부를 할 때 도움이 될 전략과 보완방법에 대해서도 가치를 평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13쪽)


인간은 그저 가르치고 배우는 것만이 아니다. 사람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왜 그것을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지를 선택하고 결정하낟. (119쪽)



  왜 오늘날에는 ‘보통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아이들을 학교에 넣으려고 할까요? 왜 오늘날에는 모든 아이들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가야만 할까요?


  말은 보통교육이지만, 오늘날 학교교육은 교과서 지식하고 정보만 달달 외워서 시험문제 풀이를 하도록 내모는 얼거리입니다. 허울은 의무교육이지만, 오늘날 학교교육은 다 다른 아이들이 다 같은 교과서를 쳐다보면서 ‘교과서 밖 이야기’에는 눈을 감거나 등을 돌리도록 내모는 얼거리입니다.


  국정교과서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교과서 밖’을 살피기 퍽 어렵습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도 어린이책하고 청소년책이 꽤 많이 나옵니다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어린이책하고 청소년책이 교과서 진도 보조교재 구실’에서 크게 못 벗어납니다. ‘교과서 학습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글월을 책에 버젓이 찍으면서 펴내는 어린이책하고 청소년책이라고 할까요. 교과서 진도에 맞추어서 어린이책이나 청소년책이 바뀌는 얼거리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자라도록 북돋우려는 어린이책이 아직 드문 한국 사회요, 청소년이 청소년답게 꿈을 키우도록 도우려는 청소년책이 아직 모자란 한국 사회입니다.



학교교육의 실제 내용에 대해 생각해 보자. 많은 사회에서 중앙관료들이 교육과정을 결정하고 있고, 숙달해야 할 지식의 본질에 대해 공적인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155쪽)


수학에서 유클리드의 증명을 완벽히 체득하거나 모든 대수공식과 삼각비공식을 반드시 습득할 필요는 없다. 예술의 모든 형태를 공부하거나 역사적 사건을 다 알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학생들은 과학자, 기하학자, 예술가, 역사가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알 수 있도록 자신의 능력껏 사례들을 충분하고 깊이 있게 탐구해야 한다. (179쪽)



  역사 교과서를 중앙정부에서 쓰는 대로 아이들이 배워야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참’이라고 하는 대목에 길듭니다. 나라에서 가르치는데, 학교에서 가르치는데, 설마 거짓을 가르치겠느냐고 여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다른 교과서는 어떠할까요? 한국말은 중앙정부가 국정교과서로 슬기롭게 가르치는가요? 아이들이 한국말을 슬기롭게 배워서 사랑스레 쓰도록 북돋우거나 돕는 국정교과서인가요, 아니면 ‘기초지식’이나 ‘시험지식’에 얽매이는 한국말 교과서일까요? 영어 교과서는 어떠하고, 과학 교과서나 수학 교과서는 어떠할까요? 영어를 왜 어떻게 얼마나 배워서 이러한 영어를 어디에서 누구하고 어떻게 써야 즐거운가 같은 대목을 교과서로 슬기롭게 보여줄는지요?



교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에게 초기에 형성된 부적절한 표상과 오개념이 지속되는 데 가담하게 된다. 학생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정보를 사용하도록 장려하지 않고 단순히 교재와 수업내용을 암기했는지를 평가하는 필기시험 … 학생들이 단순히 교재와 수업내용을 암기했는지를 평가할 뿐 새로운 방식으로 정보를 사용하도록 도전할 의욕을 주지 않는 필기시험 환경 … (186쪽)


궁극적으로 진실, 아름다움, 선함의 문제에 대한 사회의 답이 중요하지만, 우리의 개인적인 질문과 답은 더욱더 중요하다. 진실, 아름다움, 선함 사이의 접점과 반향들은 그것의 독특한 특성만큼이나 중요하다. (327쪽)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라고 하는 인문책은 제도권 학교교육에서 담아내어 아이들을 이끌 틀을 어떻게 세울 때에 알맞거나 올바른가 하는 대목을 차근차근 짚으려고 합니다. 아이들을 똑똑하게 가르치는 학교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저마다 제 삶을 차분히 바라보면서 제 마음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도록 이끄는 학교교육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짚습니다. 더 많은 지식을 학교에서 배우는 얼거리보다는, 한 가지 지식이라도 뿌리와 줄기와 잎과 열매와 꽃을 골고루 살펴서 제대로 생각하도록 이끄는 얼거리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얼마나 유연해질 수 있을까? 사람들이 반드시 합리적으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심리학자들은 관찰하고 증명했다. 나는 사실 미국인들이 독특한 여섯 가지 경로들을 만들고 지킬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다. (353쪽)



  모든 아이는 학교에 다니기 앞서 집에서 배웁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기 앞서 어버이 스스로 먼저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보육원에 가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제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사랑을 받고, 제 보금자리에서 삶을 물려받으려고 태어납니다. 아이들은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따사로운 손길로 즐겁게 사랑을 베풀면서 가르쳐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태어납니다. 아이들은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일구는 삶을 지켜보면서 저마다 새롭게 삶을 짓는 꿈을 키우려고 태어납니다.


  아이들은 어느 만큼 나이를 먹은 뒤에 직업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나이가 된 뒤에 직업훈련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하고 싶은 꿈을 찾아야 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꿈을 찾을 수 있으면, 이때부터 아이들은 스스로 배움길을 떠나지요. 꿈이 없는 아이들은 배움길을 나서지 못해요. 꿈이 없는 아이들을 학교에 몰아넣는다고 해서 교육을 할 수 있지 않습니다. 꿈이 없는 채 또래 무리가 좁은 울타리인 학교에 갇히니, 이러한 학교에서는 폭력과 따돌림 따위가 자꾸 불거질 수밖에 없습니다. 꿈이 없는 또래 무리는 아름다운 길보다는 바보스러운 짓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자신이 믿는 것을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들이야말로 정말 중요하다. (360쪽)


한 가지 방식으로 일하는 법만 배운 기관들은 힘이 들더라도 새로운 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363쪽)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라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문득 생각합니다. 이런 책은 대통령이나 시장이나 군수 같은 사람이 읽고서 배울 만한 책입니다. 교육부라든지 중앙정부 공무원이 책상맡에서 서류만 붙잡지 말고 이런 책을 읽을 노릇입니다.


  스스로 새롭게 배우지 않고서는 스스로 새로운 하루를 짓지 못합니다. 스스로 새롭게 사랑을 가꾸지 않고서는 스스로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지 못합니다.


  똑같은 몸짓은 똑같은 하루를 빚습니다. 새로운 몸짓은 새로운 하루를 빚습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어떻게 노는가 하고 물끄러미 지켜보셔요. 이렇게만 해도 ‘어른’들은 아주 쉽게 삶을 배울 수 있습니다. 기쁘게 웃고 차분하게 노래하는 아이들은 ‘똑같은 놀이’를 두 번 다시 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훑는 눈길로는 아이들 놀이가 다 똑같아 보일는지 모르나, 아이들은 참말 똑같은 놀이를 안 합니다. 늘 조금씩 새롭게 바꾸어서 한결 재미나게 놀이를 누립니다.


  삶에서 배우기에 마을과 학교에서도 배웁니다. 삶에서 배우지 못하면 학교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아무것도 못 배웁니다. 삶에서 배우기에 이웃사람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겁게 배웁니다. 학교가 학교다우려면 중앙정부 손길을 되도록 덜 타거나 안 타면서, 마을이나 고장에서 조그마한 지역자치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학교를 마친 뒤에 졸업장을 받지 않는다면, 졸업장을 따지지 않을 수 있는 사회라면, 참말 학교는 슬기롭고 올바르게 학교교육을 할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4348.10.3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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