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3
츠키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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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218



좋아하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는다

―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3

 츠키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7.25. 4500원



  츠키코 님이 빚은 만화책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학산문화사)은 좋아하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는 푸름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고등학교 졸업반이면서 사진을 아주 좋아해서 아주 어릴 적부터 찍은 아이(유키)가 있고, 사진기를 늘 갖고 다니면서 무엇이든 찍는 아이한테 마음이 끌려서 이제 막 사진기를 손에 잡은 아이(미야마)가 있습니다. 사진이나 사진기나 사진찍기를 모두 잘 모르지만, 두 아이 사이에서 천천히 제 길을 걷는 아이(린타로)까지 모두 세 사람이 이야기를 이끕니다.



“여기서 싼 아파트를 빌려서, 이곳 사람이나 자연물을 찍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24쪽)


‘그렇게 많이 찍으면서, 남에게는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 외의 누군가에게 찍히는 걸 허락할 수 없다.’ (53쪽)



  사진을 오래 찍어 본 사람이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사진을 이제 막 찍는 사람이 사진을 못 찍지 않습니다. 사진을 오래 찍어 본 사람은 그저 사진을 오래 찍어 보았을 뿐입니다. 사진을 이제 막 찍는 사람은 이제 막 사진을 찍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사진을 잘 찍거나 못 찍는다는 매무새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스스로 무엇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찍으려 하는가를 알면 됩니다. 스스로 무엇을 바라보는가를 제대로 알 적에 사진을 제대로 찍어요. 스스로 무엇을 찍으려 하는가를 제대로 느낄 적에 사진을 제대로 찍지요.


  다시 말해서, 사진을 아무리 오래 찍어 보았다 한들, 스스로 무엇을 바라보는가를 제대로 모르는 채 사진기 단추만 누른다면, 누구 마음에도 와닿지 못하는 작품만 빚습니다. 아무리 값진 장비를 갖추어 사진을 찍는다 한들, 스스로 무엇을 찍으려 하는가를 제대로 마음에 세우지 않는다면, 아무 이야기도 없는 맨숭맨숭한, 이러면서 ‘그럴듯해 보이기만 하는’ 모습만 찍어요.



‘공기가 되고 싶다. 눈을 깜빡이듯 사진을 찍고 싶다. 아무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 나의 이 소원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59쪽)


“찾았니? 뭔가. 찍고 싶은 걸.” (108쪽)


‘카메라를 든다. 린타로가 이쪽을 돌아봐 준다. 그걸 찍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히 든다.’ (120쪽)



  만화책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에 나오는 유키는 오랫동안 사진을 찍기는 했으나 ‘좋아하는 사람’을 찍는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틀림없이 좋아할 만한 사람을 찍은 사진이지만, 스스로 너무 높게 울타리를 세웠어요. 사진을 찍을 적에 ‘마음(감정)’이 드러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말았지요.


  이 만화책에 나오는 미야마는 사진기를 쥔 지 얼마 안 되었으나, 게다가 무엇을 찍으면 좋을는지도 아직 갈피를 못 잡았지만, 사진기를 손에 쥘 적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찍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고작 몇 장 안 찍어 본 미야마입니다만, 미야마가 찍은 사진은 늘 싱그럽게 살아서 움직이는 이야기요,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이야기입니다.



‘언뜻 보기엔 사이좋고 훈훈한 풍경이지만, 두 사람 사이의 벽이, 언제나 안타까웠지. 그 벽만 없어지면, 얼마나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133∼134쪽)


‘그래도 유키가 필름에 집착하는 건 역시, 셔터의 무게, 집중력 같은, 디지털 카메라에는 없는 힘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145쪽)



  대학교 사진학과를 나와야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사진강의를 오래 들어야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이름난 사진가한테서 배운다거나, 이름난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심부름꾼 노릇을 해 보아야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사진을 잘 찍고 싶다면 ‘사진으로 찍고 싶은 이야기’를 늘 마음에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하고, 스스로 좋아하는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채 사진을 못 찍지요.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기에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도 모르지요.


  사진은 ‘장비’나 ‘경력’이나 ‘졸업장’이나 ‘이름난 작가 문하생’ 따위를 내세워서는 도무지 못 찍습니다. 사진은 오로지 ‘내 마음으로 스며든 기쁜 이야기’를 가만히 마주하면서 반가이 맞아들이는 몸짓이 될 적에 찍습니다.



“아, 셀프타이머 쓸 줄 알게 됐구나.” “응, 맞아! 우리 둘이서 ‘교복’ 입은 걸, 찍어 두고 싶어서!” (156쪽)


‘지워지질 않아.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카메라를 써도, 나는 영원히 찍을 수 없는 사진.’ (172쪽)


“오늘은 카메라 안 가져왔어.” “응? 왜?” “왠지, 뭘 찍으면 좋을지 알 수가 없어져서.” (179쪽)



  만화책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에서 늘 사진기를 목걸이처럼 갖고 다니던 유키가 어느 날 사진기를 손에서 뗍니다. 스스로 무엇을 찍으면 좋을는지 알 수 없다고 털어놓습니다. 이 말을 들은 미야마는 날카롭게 따집니다. 너는 네 속마음을 감추기 때문에 네가 찍고 싶은 사람을 찍지 못한다고 외쳐요. 그러니까, 네가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참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한테 마음을 열라는 뜻입니다. 네(유키)가 아직 마음을 열지 못하니까, 네가 찍고 싶은 사진을 못 찍을 수밖에 없다고 외치는 셈입니다.


  미야마라는 아이는 사진책을 읽은 적도 없고, 사진 수업을 들은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알지요. 사진은 작품이나 예술을 하려고 찍지 않는 줄 알지요. 사진은 공모전에서 상을 받거나 작품집을 내려고 찍지 않는 줄 알지요.


  사진은 왜 찍을까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사진은 누구하고 찍을까요? 좋아하는 사람하고 함께 찍히고 싶어서 ‘셀프타이머’를 배워서 함께 찍지요. 마음속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스스로 기쁘게 웃는 아름다운 사진을 얻습니다. 마음속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어서 고이 가꾸면 참말 언제 어디에서나 스스로 밝게 노래하는 고운 사진을 빚습니다. 4348.11.3.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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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맛 기행 2 -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맛의 문화사 바다맛 기행 2
김준 지음 / 자연과생태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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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88



맑고 고운 바다맛을 물려주고 싶구나

― 바다맛 기행 2

 김준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5.11.5. 16000원



  어머니 뱃속에서 곱게 열 달을 살다가 씩씩하게 이 땅으로 태어난 아기는 천천히 자라면서 수많은 맛을 보고 겪고 느끼고 생각하고 맞아들입니다. 마치 깊은 바다와 같은 어머니 뱃속에서 지내며 무엇보다도 사랑맛을 볼 테지요. 사랑맛으로 튼튼히 자라다가 빛이 가득한 이 땅에 태어난 뒤로는 젖맛을 봅니다. 젖맛을 뗄 무렵 밥맛을 보는데, 이동안 아기는 어버이가 일군 삶자리에서 바람맛하고 물맛을 함께 보아요.


  오늘날에는 아기가 태어나서 자라는 터전이 어떠한가 같은 대목을 찬찬히 살피는 어버이가 몹시 드문데, 아기는 사랑을 받으면서 자랄 뿐 아니라, 고운 밥을 먹으면서도 자라고, 무엇보다 바람이랑 물을 마시면서도 자라요. 교육이나 문화나 여러 가지 사회시설만 따질 일이 아니라, 늘 마시는 바람하고 물이 얼마나 깨끗하거나 아름다운가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밥맛이 늘 새로운 줄 깨닫습니다. 이윽고 아이 스스로 무엇이든 만지작거리며 짓고 싶은 꿈을 키워서 손맛을 배웁니다. 손맛을 배우면서 놀이맛을 보고, 일맛을 깨닫지요. 찬찬히 철이 들면서 새삼스레 삶맛을 보고, 삶을 스스로 짓는 길을 걸으면서 꿈맛을 누리려 합니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생일날이면 소금 독에 묻어 둔 고등어를 꺼내 구웠다. 지글지글 기름기가 불씨로 떨어질 때면 부뚜막의 옹기에 담긴 굵은 소금을 집어 한 토막에는 살살 뿌렸고, 다른 세 토막에는 팍팍 뿌렸다. (19쪽)


“아빠, 아빠, 우리 반 아이 중에 갈치가 네모라고 생각하는 아이가 있어요.” 식탁에 앉자마자 둘째 달이 호들갑스럽게 한 말이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인가 … “그 친구는 마트에서 갈치도 못 본 모양이구나.” … 막내가 “마트에 있는 갈치는 모두 네모잖아.”라며 말을 받았다. (29쪽)



  김준 님이 쓴 《바다맛 기행》(자연과생태,2015) 둘째 권을 곰곰이 읽습니다. 김준 님은 이녁 곁님하고 아이들한테 ‘바다맛’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두 권째 선보이는 《바다맛 기행》은 바로 ‘바다맛’이 우리 삶자락에서 얼마나 넓은 자리를 차지하는가 같은 대목을 건드려요.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를 낚거나 잡아서 손질해서 먹는 맛을 들려줍니다. 물고기가 우리 곁에 있기에 밥상이 한결 소담스럽다는 대목을 알려줍니다. 맛있다고 마구 먹을 일이 아니라, 맛있기에 오늘 이곳에서 즐겁게 먹는 몸짓이 되면서, 앞으로도 오래오래 누구나 기쁘게 먹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옛날에는 대하를 살짝 쪄서 조기처럼 짚에 엮어서 말렸다. 가을볕에 잘 말린 대하는 겨울철에 훌륭한 양식이었다. (46쪽)


1980년대 명태 20여 만 톤을 잡을 때, 명태 새끼인 노가리는 40여 만 톤을 잡았다. 노가리를 그렇게 먹어댔으니 씨가 마를 만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남획보다도 기후변화 탓만 하고, 여전히 맥주를 마실 때 아무런 생각 없이 노가리를 찾는다. (117쪽)



  한국은 갯벌을 아주 많이 메워서 없애버린 바보스러운 나라로 손꼽힙니다. 한국은 갯벌이 대단히 훌륭할 뿐 아니라 아름답던 나라였습니다. 나는 1980년대 첫무렵에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한국은 아름다운 갯벌로 이 지구별에서 첫손가락으로 꼽을 만하다’ 같은 이야기를 배웠습니다. 그무렵 한국에서 내로라 할 만한 것은 거의 없어도, 무엇보다 갯벌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울 뿐 아니라, 한국에 있는 갯벌을 부러워하는 나라가 많다는 이야기를 배웠어요.


  2010년대를 살면서 한국을 돌아보면, 이 나라 갯벌은 매우 초라합니다. 그 드넓던 갯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돈으로만 쳐도, 이른바 ‘경제 논리’로만 따져도, 한국에 있던 갯벌은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값어치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갯벌을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메웠을 뿐 아닐, 2000년대로 접어들 적마저 또 어마어마하게 메우려 했고, 메웠습니다.


  요즈음은 인천 영종도를 모두 공항으로 알 테지만, 나한테 인천 영종도는 내 오랜 동무가 살던 섬이요, 언제라도 조개를 한가득 캘 수 있던 너른 갯터였습니다. 갯벌이 몹시 아름다운 영종섬인데다가 소금밭이 대단히 넓게 있던 터전이었는데, 영종섬하고 용유섬 사이 갯벌을 몽땅 메워서 아스팔트를 두껍게 까는 공항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마 한국처럼 바보스러운 나라도 드물지 싶어요. 스스로 바다를 망가뜨리고 갯벌까지 짓밟으면서 공항을 닦으려고 하는 나라는 다른 어디에도 없지 싶어요. ‘인천 앞바다’가 아닌 ‘인천 먼바다’를 더럽히는 짓이 앞으로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뻘짓’이 될는지 조금도 헤아리지 못했어요.



이제는 사라져 버린 마을, 군산시 하제. 새만금사업으로 바다와 갯벌을 잃고, 미군기지가 확대되면서 마을도 사라졌다. (89쪽)


그 많던 조기들이 계화도 간척 이후 사라졌다. 이어서 천수만, 영산강과 금강 일대의 갯벌이 간척되었고, 물길이 막혔다. 조기가 철산바다에서 사라진 것도 그무렵이었다. (188쪽)


홍합은 보통 2∼3년은 자라야 먹을 만큼 자란다. 진주담치는 1년 정도 양식하면 7cm 내외로 자라 시중에 유통된다. 진주담치가 홍합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면서 식탁에서만 아니라 연안의 가까운 갯바위도 점령했다. (158쪽)



  인천에서 나고 자라며 크다가, 전남 고흥으로 삶터를 옮겨서 사는 요즈음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고흥에서 살고 보니, 고흥에는 무시무시한 ‘매립지’가 있습니다. 해창만이라는 곳입니다. 고흥은 해창만이라는 데를 메워서 모두 논으로 바꾸었는데, 해창만으로 드나드는 길목인 고흥 포두면 소재지에는 ‘쌀 수입개방과 수매’와 얽힌 가슴 아린 걸개천이 걸립니다.


  무슨 소리일까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이 나라 중앙정부와 지역정부는 ‘돈으로도 따질 수 없도록 값어치가 대단한 갯벌’을 함부로 짓밟듯이 메우면서 ‘논이나 공장 따위’로 바꾸었는데, ‘논으로 바꾼 갯벌’에서 거두는 쌀은 이제 ‘돈조차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드넓은 매립지 논에는 농약과 비료까지 엄청나게 써야 하지요.


  전남 고흥은 갯벌을 메운 데가 많아도, 아직 이 고장에서 나는 꼬막이 엄청나도록 많아서 전국 곳곳으로 아주 많이 팔립니다. 이름나기로는 ‘벌교 꼬막’이 으뜸일 테지만, 웬만한 ‘고흥 꼬막’은 바깥에 ‘벌교 꼬막’이라는 이름으로 팔립니다. ‘고흥 꼬막’이라는 이름을 쓰면 알아보거나 알아주는 데가 없거든요. 고흥에서 해창만 갯벌을 메우지 않았으면, 교통이 잘 뚫린 오늘날에 고흥 꼬막은 그야말로 그냥 ‘고흥 꼬막’으로 손꼽혔으리라 느낍니다.



한번은 누나와 함께 냇가에서 고마니 풀을 베다 또 일을 저질렀다.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를 감쌌지만 피가 뚝뚝 떨어져 개울물을 붉게 적셨다. 깜짝 놀란 누나가 냇가에서 하얀 뼈를 주워 돌에 갈아 가루를 뿌려 주었다. 보통 쑥을 찧어 상처에 동여 매는데 이날은 달랐다. (235쪽)


바지락 하나가 하루에 오염된 물 15ℓ를 정화한다고 한다. 바지락이 가득했던 사라진 새만금 갯벌 200㎢는 10만 톤의 물을 처리하는 하수종말처리장 40개와 같았다. (284쪽)



  김준 님이 쓴 《바다맛 기행》에 흐르는 바다맛과 바다내음을 곱씹습니다. 이 도톰한 책에서 흐르는 바다노래에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이 조촐한 책에 깃든 바닷사람 손길이랑 숨결이 얼마나 살가운가 하고 되돌아봅니다.


  들에서 들맛이 들사람을 키웠고, 바다에서 바다맛이 바닷사람을 키웠습니다. 시골에서 시골맛이 시골사람을 키웠고, 숲에서 숲맛이 숲사람을 키웠습니다. 들맛하고 바다맛을 보면서 자란 아이들은 하나둘 크면서 모두 도시로 나갑니다. 이제 시골에 남아서 들맛이나 바다맛을 가꾸는 젊은이는 매우 드물고, 시골에서 나고 자라더라도 시골에 뿌리를 박으려는 어린이는 거의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다가 시골로 오는 이웃님은 있되, 시골에서 나고 자라면서 그대로 시골사람으로 사는 마을님은 거의 없다고 할 만해요.


  오래도록 손맛과 삶맛과 살림맛으로 물려주는 들맛이나 바다맛은 이제 이음고리가 끊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겨우 이음줄을 간당간당 잇는 곳마저 원자력발전소하고 화력발전소가 떡하니 들어서면서 보금자리와 삶자리를 잃습니다. 원자력발전소나 화력발전소가 우람하게 들어선 시골에 가서 살겠다는(귀촌하겠다는) 도시사람은 없으리라 느낍니다. 조용하면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골일 때에 비로소 도시사람도 시골에 가서 살아야지(귀촌해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조용하면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골일 때에 들맛도 살고 바다맛도 삽니다. 안 조용하고 안 깨끗하고 안 아름다운 시골에는 들맛도 없고 바다맛도 없어요. 오랜 삶을 물려받는 마을님은 자취를 감추더라도, 새롭게 시골마을을 가꾸려고 하는 이웃님이 시골에 뿌리를 내리려 하는 요즈음, 부디 골골샅샅 어느 시골에서든, 또 어느 바닷마을에서든, 사랑스러운 들맛하고 바다맛이 짙푸르게 흐를 수 있기를 빕니다. 아름다운 삶맛과 살림맛을 아이들이 물려받을 수 있기를 빕니다. 착하고 참된 꿈맛과 이야기맛을 우리 어른들이 슬기롭게 물려줄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1.3.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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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다이家 사람들 1 삼양출판사 SC컬렉션
모리모토 코즈에코 지음, 양여명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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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70



두 가지 마음이 흐르는 잔잔한 바다

― 코우다이 家 사람들 1

 모리모토 코즈에코 글·그림

 양여명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5.4.16. 7000원



  어른은 몸이 고단하거나 힘들어도 야무지게 견디곤 합니다. 아이도 몸이 고단하거나 힘들 적에 씩씩하게 버티곤 해요. 그런데 어른은 고단한 티나 힘든 낌새가 거의 드러나지 않도록 감추기도 하지만, 아이는 고단한 티나 힘든 낌새를 잘 감추지 못합니다. 어른이면서 고단한 티나 힘든 낌새를 쉬 드러내는 사람을 보고 아직 철이 덜 들었다고도 말하지만, 속마음을 가리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마음이란 무척 홀가분하면서 사랑스럽구나 하고 느껴요. 왜냐하면, 고단할 적에 고단하다고 밝혀야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더 빨리 생각할 수 있습니다. 힘들 적에 힘들다고 밝혀야 얼른 손을 내밀어 도울 수 있어요.


  아이들은 밥이 맛이 없으면 맛없다면서 고개를 돌리거나 수저를 내려놓지요. 어른들은 밥이 맛이 없어도 끝까지 먹곤 하지요. 아이들처럼 밥이 맛이 없다고 할 적에 곧 티를 내면, ‘어디에서 뭘 잘못해서 이렇게 맛이 없을까’ 하고 돌아볼 만합니다. 어른들처럼 밥이 맛이 없어도 제대로 티를 내지 않으면 ‘맛이 없게 지은 밥’을 못 깨닫고 지나가 버릴 수 있어요.



“우와우와거리지 말고, 키에 너도 쫄지 말고 한번 노려 봐.” “네? 아뇨, 그 정도 스펙이면 저랑은 다른 세계 사람인걸요. 현실감이 안 들어요.” (9쪽)


“히라노 씨, 괜찮으면 오늘 저녁에 같이 식사 안 할래요?” “네에에? 어, 어째서요?” “아니, 어째서긴요. 같이 먹고 싶으니까 그렇죠.” (22쪽)



  모리모토 코즈에코 님이 빚은 만화책 《코우다이 家 사람들》(삼양출판사,2015)은 ‘다른 사람 마음속을 읽는 힘’이 있는 ‘코우다이 집안 사람들’을 다룹니다. 마음속을 읽는다니, 어느 모로 보면 대단한 사람들일 수 있으나, 다르게 보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며 지내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겉과 속으로 다른 마음과 몸짓이 되어 마주하는 모습을 늘 지켜보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네 마음을 읽고 싶지 않으나 네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가 늘 들리’기 때문에 ‘듣고 싶지 않아도 마음 소리를 듣는’ 삶입니다.



‘코우다이 씨는, 의외지만, 내가 지어낸 공상과도 같은 황당무계한 스토리를 좋아한다. 나는 웃거나 센스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목소리로 맞장구치는 것밖에 못 하지만.’ (25쪽)


“근데, 그런 능력이 있다면, 불행하겠지.” “응? 어째서? 엄청 편할 것 같은데.” “타인의 속마음은 모르는 편이 낫지. 상대방의 안 좋은 점을 알게 돼 상처 받거나 실망할 일도 많이 생길 것 아냐.” (27쪽)



  다른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읽으면 나는 어떤 마음이 될까요. 다른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알기에 다른 사람하고 한결 사이좋게 지낼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알기에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괴롭히거나 홀리는 짓을 할까요.


  우리는 입으로 말을 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런데, 입으로 하는 말에 속마음을 안 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과 마음이 달라요. 겉으로는 다른 사람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듯 말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사람을 안 아끼거나 안 사랑하기도 해요. 앞에서는 번드르르하게 말하지만, 뒤에서는 아주 사람을 괴롭히는 짓을 벌이기도 해요. 사람들 앞에서는 이렇게 하겠노라 다짐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물러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기도 해요.


  겉으로나 속으로나 한결같이 마음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지요. 남을 속일 줄 모르는 사람이 있고, 마음을 감추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남을 속일 줄 모르기에 남한테서 자꾸 속는 사람도 있고, 남을 속일 줄 모르기에 언제나 착하면서 참다운 살림을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치만, 코우다이 씨라면, 생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전해진다면 좋을지도. 난 하고 싶은 말을 좀처럼 입 밖으로 못 뱉으니까. ‘좋아해’라는 말은 앞으로 몇 년이 지나도 못 할 것 같지만, 머릿속에서라면 큰소리로 외칠 수 있어.’ (29쪽)


‘그렇다면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난 연애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거야? 타인의 속마음만 열심히 들여다보고 정작 나 자신의 속마음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어.’ (51쪽)



  만화책 《코우다이 家 사람들》에 나오는 코우다이 집안 세 남매는 할머니한테서 ‘마음 읽는 힘’을 물려받았습니다. 세 남매는 말없이 둘러앉아도 서로서로 어떤 마음인가를 훤히 압니다. 그래서 세 남매는 제 마음을 알려주기 싫어서 깊이 감추려 하지만, 세 남매 사이에서는 도무지 감추지 못해요. 감추려고 해도 훤히 들여다보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세 남매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 말이 않는 사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정작 마음속으로는 어마어마하게 수다를 떨지요. 왜 내 마음을 읽느냐는 둥, 네 마음이 왜 그러느냐는 둥, 하면서 신나게 수다를 떨어요. 겉으로는 낯빛 하나 안 바뀌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세 남매는 ‘다른 사람 마음을 쉽게 읽기’는 하되, 누구보다 ‘내 마음’은 제대로 못 읽곤 합니다. 뜻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 마음속이 훤히 보여서 그 마음을 살피다 보면, 어느새 ‘나는 무엇을 생각했더라?’ 하면서 잊거나 지나칩니다. 내 삶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다른 사람 삶을 바라보면서 제 앞길을 제대로 못 가기 일쑤라고 할 만해요.



‘코헤이와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물론 그 역시 잡다한 생각을 많이 하지만, 마음속엔 항상 봄바다처럼 잔잔하고 부드러운 색이 있다.’ (45쪽)


‘처음 만났을 땐 깜짝 놀랄 정도로 감탄했었지. 남자들은 다 그랬었으니까. 그래서 난 손에 넣을 수 없는 벼랑 위에 핀 꽃이라고 생각해 곧바로 단념했지. 파란 눈, 이런 색에도 여러 계열이 있지만, 이 녀석 눈은 따스한 바다 같은 부드러운 색이야.’ (82쪽)



  나는 아이들 마음을 읽습니다. 아이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읽습니다. 눈빛뿐 아니라 몸짓으로도 읽습니다. 눈빛이랑 몸짓뿐 아니라 기운으로도 읽습니다. 아이들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떤 마음인지 읽을 테지요. 입으로 말을 해서 아는 마음이 있고, 입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아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서로서로 마음을 못 읽기도 해요. 가까이 있는 곁님 마음을 못 읽는다든지, 곁님한테 내 마음을 드러내 보이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웃이나 동무한테 내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기도 하고, 이웃이나 동무가 어떤 마음인가를 못 읽기도 합니다.



“한번 제대로 마음을 전해 보는 게 좋지 않겠어?” “이, 이제 와서 뭘, 미츠마사 오빠한텐 약혼자도 있다며?” “그러니까, 한번 제대로 차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잖아.” “잠깐만, 차이기 위해 고백하란 거야?” (134쪽)



  마음을 읽는 사이라면, 그야말로 한마음이 되어 살아가는 사이입니다. 마음을 못 읽는 사이라면, 그야말로 딴 생각으로 딴 자리에 있는 사이입니다. 한집에서 산다고 해서 한마음이 되지 않습니다. 다른 몸에 깃든 다른 넋인 목숨이라 하더라도 오직 사랑으로 기쁘게 하나되는 마음일 때에 비로소 한마음이라고 합니다. 즐겁게 웃을 때에 한마음이 되고, 스스럼없이 노래할 때에 한마음이 되어요.


  즐겁게 웃지 못하기에 한마음이 되는 길을 가려고 말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스스럼없이 노래하면서 함께 기쁜 살림을 지으려고 애써 글도 쓰고 말도 섞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려고 해요.


  두 가지 마음이 흐르는 잔잔한 바다라고 할까요. 내 마음이 흐르는 바다와 네 마음이 흐르는 바다가 만난다고 할까요. 찬바다만 흐르는 곳이나 더운바다만 흐르는 곳보다는, 찬바다와 더운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바닷물고기가 훨씬 많이 산다고 해요. 한쪽 마음만 흐르는 곳보다는 두 마음이 서로 사이좋게 얼크러지면서 어깨동무하는 곳에 시나브로 사랑이 흘러서 아름다운 삶자리가 되는구나 싶어요.


  삶을 노래하면서 한마음으로 지내고, 삶을 꿈꾸면서 한마음으로 사귑니다. 삶을 빛내면서 한마음으로 손을 맞잡고, 삶을 새롭게 일구면서 한마음으로 웃습니다. 4348.11.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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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
마크 펫.게리 루빈스타인 지음, 노경실 옮김 / 두레아이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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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76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는 없다

―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

 마크 펫·게리 루빈스타인 글

 마크 펫 그림

 노경실 옮김

 두레아이들 펴냄, 2014.4.30. 12000원



  고단하거나 졸릴 적에 애써 참으며 설거지를 하다가는 그만 손에서 접시나 그릇이 미끄러져서 개수대로 쿵 떨어집니다. 자칫하면 애먼 접시나 그릇이 깨집니다. 밥을 지을 적에 늘 홀가분한 몸과 마음이 되어 노래하는 숨결일 때에 맛난 밥을 지어요. 다 먹은 그릇하고 접시를 치울 적에도 언제나 홀가분한 몸하고 마음이 되어 노래하면서 수세미를 쥐지 않는다면 날마다 접시를 깨고 맙니다.


  어른하고 대면 조그마한 손이랑 발인 아이들이 개구지게 놀다가 소꿉을 떨어뜨립니다. 세발자전거를 둘이 올라타면서 오랫동안 놀았는데, 낡은 세발자전거는 이제 두 아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앞바퀴가 폭삭 주저앉습니다. 아이들이 마당하고 고샅에서 마음껏 달리면서 놀다가 그만 자빠지거나 엎어집니다. 소매도 무릎도 흔히 구멍이 납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 베아트리체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 대신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라고 부릅니다. 베아트리체가 실수하는 모습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죠. (7쪽)



  마크 펫 님하고 게리 루빈스타인 님이 함께 빚은 그림책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두레아이들,2014)를 읽습니다. 도무지 잘못이라고는 저지르지 않는다는 아이가 나오는 그림책입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아이는 누구라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요. 아이는 잘못이라고는 모르니까요. 어른들이 아이를 바라보며 “너 잘못했어!” 하고 말하니까 아이는 멀뚱멀뚱 어른들을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아, 이렇게 하면 싫어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걸음마를 떼는 아이가 넘어진들 잘못이 아닙니다. 힘이 여린 아이가 물건을 떨어뜨린들 잘못이 아닙니다. 한창 말을 익히거나 글을 배우는 아이가 소리가 샌다든지 글씨를 틀리게 쓴들 잘못이 아닙니다. 참말로 아이한테서 잘못이라고 할 만한 대목이 없습니다.




누나와 달리 레니는 실수투성이며, 엉뚱한 일을 할 때가 많습니다. 크레파스를 먹거나 통조림 콩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거든요. 두 발 대신 두 손으로 춤을 추거나, 두 손 대신 두 발로 피아노를 치기도 합니다. 레니는 실수하는 걸 겁내지 않거든요. (8쪽)



  우리 어른한테는 잘못이 있을까요? 우리 어른은 어떤 잘못을 저지를까요? 아이를 큰소리로 나무란다든지, 아이한테 회초리를 드는 일은 잘못일까요 아닐까요. 아이가 한 일이 아닌데 아이를 몰아세운다든지, 이야기를 다 듣지 않고 섣불리 아이를 꾸짖는다면, 이런 몸짓은 잘못일까요 아닐까요.


  잘과 잘못을 나누는 눈길은 좋다와 나쁘다를 나누는 눈길입니다. 좋다와 나쁘다를 나누는 눈길은 이것과 저것을 가르는 눈길입니다. 이것과 저것을 가르는 눈길은 온누리를 두 가지 틀로 잘라서 옭아매는 눈길입니다.


  접시는 깰 수 있고,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질 수 있고, 큰소리로 왁왁거릴 수 있고, 밥을 태울 수 있고, 골을 부릴 수 있고, 책을 찢을 수 있고, 주머니에 구멍 난 줄 모르다가 돈을 흘릴 수 있고, 놀다가 시간 가는 줄 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하고 놀이는 언제나 다르면서 새로운 삶입니다. 이른바 경험이라고 합니다. 이 경험을 했다고 좋다고 여길 수 있고, 저 경험을 했으니 나쁘다고 여길 수 있을 텐데, 좋고 싫음을 떠나서 차분히 바라볼 수 있으면 마음도 새로울 수 있어요.




음악이 멈췄습니다. 베아트리체는 어쩔 줄을 몰랐어요. 울어 버릴까? 무대 뒤로 숨어 버릴까? 사람들도 많이 놀라 숨죽이고 무대를 쳐다보았습니다.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가 실수를 하다니! (23∼24쪽)



  아이는 무엇이든 스스로 하면서 배웁니다. 어른도 밥을 짓다가 그만 부엌칼에 손가락을 베면서 밥짓기를 새삼스레 더 배우기도 합니다. 어른도 낫질을 하다가 그만 낫날에 손가락을 베면서 풀베기나 나락베기를 새삼스레 더 배우기도 해요.


  그릇을 떨어뜨려 깨는 사이에 한 가지를 배웁니다. 아이들이 재미나게 놀다가 그만 툭탁거리는 사이에 스스로 한 가지를 배웁니다. 낮잠을 안 자고 밤잠도 건너뛰면서 놀려고 하는 아이들은 문득 코피가 터지면서 새삼스레 한 가지를 배웁니다. 가을이 저물며 겨울 문턱에 다다를 즈음 바람결이 달라지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새롭게 한 가지를 배워요. 추운 날 굳이 얇게 옷을 입겠노라 하는 아이들은 스스로 찬바람을 쐬어야 비로소 두꺼운 옷을 입든 여러 벌을 껴입든 하면서 배웁니다.




베아트리체는 (햄스터) 험버트를 올려다보고, 험버트는 베아트리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흠뻑 젖은 험버트의 털에 찢어진 풍선 조각들이 잔뜩 묻어 있었어요. 베아트리체가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낄낄거리며 웃다가 결국 크게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25쪽)



  그림책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이》는 사랑스러운 이야기 한 가지를 들려줍니다. 아이도 어른도 누구나 문득문득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면서 배운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아이도 어른도 똑같은데, 어떤 일을 했을 적에 꼭 잘못이라고만 할 수 없어요. 그저 겪어 보는 일입니다. 처음으로 겪는 일이고, 갑작스레 겪는 일이에요.


  그러니, 아이들이 어떤 일을 겪거나 치르든 차분하게 바라보면서 따스하게 안아 줄 수 있어야 슬기롭게 배워요. 어른들도 어떤 일을 겪거나 치르든 차분하게 마주하면서 포근하게 어루만질 수 있어야 사랑스럽게 배워요.


  때때로 어떤 어른들은 자꾸 바보짓을 일삼기도 하는데, 게다가 바보짓을 일삼으면서 아무것도 못 배우는구나 싶기도 하는데, 이런 어른들은 아직 사랑을 모르기에 바보짓을 하리라 느껴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모르고, 바보스러운 어른이 이녁을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모르기에 자꾸 바보짓을 할 테지요. 4348.11.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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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삶터, 달동네 문화의 길 11
김은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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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14



달동네를 가꾸고 지키는 마을사람

― 끈질긴 삶터 달동네

 김은형 글

 한겨레출판 펴냄, 2015.7.25. 13000원



  인천문화재단에서 기획에서 어느덧 열한째 권까지 나온 ‘문화의 길 총서’ 가운데 하나인 《끈질긴 삶터 달동네》(한겨레출판,2015)를 읽습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한겨레〉 기자로, 인천 동구 송림동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문화의 길 총서’ 가운데 ‘달동네’를 다루는 이 책은 송림동수도국산박물관을 한복판에 놓으면서 이야기를 풀고, 송림동을 둘러싼 화수동과 만석동과 북성포구와 중앙시장과 배다리까지 다룹니다.


  책을 읽는 내내 ‘달동네’를 다룬다고 하는 책으로서는 줄거리가 좀 가볍네 하고 느낍니다. 인천에 있는 달동네는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언저리에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수동하고 맞닿아서 북쪽으로 걸어가면 가좌동하고 석남동이 나오는데, 이곳도 인천에서 손꼽히는 ‘달동네’입니다. 송림동 옆에는 송현동과 배다리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도화동하고 숭의동이 맞닿는데, 이곳 또한 인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달동네’이지요. 배다리 아래쪽으로 경동과 유동과 신흥동과 율목동이 이어지고, 왼쪽으로는 내동과 중앙동, 오른쪽으로는 이내 용현동과 학익동이 나오며, 이곳도 인천에서 사람들이 아주 빼곡히 모여서 살아가는 ‘달동네’입니다.



인천은 정주의 거처가 아니라 잠시 머무르는 도시였던 것 같다. 그때 교회학교 아이들과 찍은 사진에서 맨발의 친구들 가운데 유일하게 하얀 양말을 발목까지 올리고 찍은 언니의 모습에는, 구질구질한 달동네의 무리와 어울리지 않겠다는 엄마의 ‘자존심’이 반영돼 있었을 터이다. 실은 우리 식구들이 떠나온 신당동도 서울의 달동네였는데 말이다. (5∼6쪽)



  인천 달동네는 동쪽으로 천천히 뻗어, 숭의동 옆으로 주안동이 나오고 간석동이 나옵니다. 간석동 곁으로 이제 부평구 언저리가 되면서 산곡동하고 십정동이 나오지요. 그리고 간석동 오른쪽으로 구월동하고 만수동이 나와요. 이곳도 하나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서 어우러지는 ‘달동네’입니다.


  그러면, 《끈질긴 삶터 달동네》는 인천에서 달동네라고 일컫는 곳을 차근차근 짚거나 다루어야 알맞지 싶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느 한 군데 달동네만을 대표로 삼아서 더욱 깊게 파고들어야지 싶어요. 이 책은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에서 했던 몇 가지 전시 자료를 퍽 길게 다루느라 정작 인천에 넓게 퍼진 아기자기하면서 수수하고 투박한 달동네 삶자락은 거의 못 보여준다고 느낍니다.


  그렇다고 글쓴이 김은형 님이 어릴 적에 겪거나 느낀 달동네 삶을 들려주지도 못합니다. 자율학습을 빼먹고 살짝 골목을 거닐던 이야기는 있으나, 막상 그무렵 달동네 이웃이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이야기가 없고, 김은형 님에 식구가 달동네 살림살이를 어떻게 가꾸었는가 하는 이야기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달동네는 또 다른 달동네를 탄생시키는 방식으로 늘어났다. 정부가 도시를 정비하면서 달동네 판잣집을 철거했고, 주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강제 이주하거나 쥐꼬리만 한 보상금으로 더 낙후된 지역에 판잣집을 지었다. (23쪽)


공장 도시 인천은 여공의 도시이기도 했다. 기술이나 자본을 가진 쪽이 기득권층 남성이었다면, 묵묵히 지지대 역할을 했던 것이 수많은 여공들이었다. (79쪽)



  정부나 지자체에서 재개발 정책을 펼쳐서 달동네를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했다는 이야기는 맞습니다. 그런데 인천에서는 그런 정책이 그리 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인천에서는 오래된 달동네가 그저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켰어요. 서울처럼 엄청난 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인천입니다. 그래서 “달동네는 또 다른 달동네를 탄생시키는 방식” 같은 이야기는 인천에 있는 달동네하고는 안 맞습니다. 인천에 있는 달동네는 쉰 해 앞서도 달동네였고 일흔 해 앞서도 달동네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태어난 옛 지번주소를 찾아서 어느 곳이 ‘내가 태어난 골목집’인가를 아직도 찾을 수 있습니다. 다만, 내가 태어나서 살던 골목집(인천 도화동)은 빌라로 바뀌었기 때문에 콕 짚어서 어느 한곳을 알 수 없으나, 지번주소는 여태 그대로입니다. 나즈막한 동산을 낀 달동네인 율목동, 이름을 한국말로 풀면 ‘밤골’이나 ‘밤나무골’인 율목동은 1990년대가 저물고 2000년대로 접어들며 갑작스레 빌라가 늘었어요. 그제서야 조금 ‘재개발’이 된 셈인데, 재개발이라고 해 보았자 마당이 있던 작은 기와집이 저마다 빌라로 바뀌어 빌라끼리 거의 맞붙듯이 서서 햇볕 한 줌 안 들어오는 ‘새로운 달동네 빌라’가 되었다뿐입니다.



자유공원 아래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단짝 친구와 나는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빠져나오면 자유공원에서 중국인거리까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공원과 중국인 동네를 잇는 계단에 앉아 항구에 배가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고, 마름모나 동그라미로 창문이 뚫린 이국적이고 낡은 적산가옥 주변을 서성이며 집 안을 훔쳐보기도 했다. (99쪽)


〈파이란〉이나 〈천하장사 마돈나〉의 인천도 낡고 구질구질하기는 마찬가지다. 왜 카메라 속에 담긴 인천은 하나같이 이렇게 허름하고 칙칙한지,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만약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한 연수구나 송도 신도시에서 찍은 영화라면 누가 그 작품을 보면서 인천을 떠올릴 수 있을까. (115쪽)



  달동네란 무엇일까요? 백기완 님은 ‘달동네’라는 이름을 이녁이 지었다고 밝힙니다. 공무원이나 지식인이 ‘여느 사람들이 사는 수수한 마을’을 가리켜 자꾸 ‘빈민촌’이나 ‘빈민가’라고만 하면서 깎아내리기에, 이러한 이름은 이 작은 마을에서 오순도순 사는 사람들한테 어울리지 않다고 여겨서 ‘우리는 언제나 달을 보고 산다’고 하면서 ‘달동네’라는 이름을 1950년대부터 썼다고 밝힙니다. 가난한 사람이 모인 빈민촌이 아니라, 삶을 새롭게 가꾸려고 모인 달동네라는 이야기이지요.


  그래서, 이러한 달동네 숨결을 헤아리면서 골목마을을 돌아볼 수 있다면, 또 이 골목마을에서 골목사람(주민)으로 지낼 수 있다면, 골목마을을 바라보는 눈길은 사뭇 달라지리라 느낍니다.


  나는 인천 도화동에서 태어나 주안동과 신흥동에서 어린 나날을 보냈고, 인천을 떠나서 다른 고장에서 살다가 서른이 넘어 인천으로 돌아가서 창영동과 내동에서 살며 아이를 낳았습니다. 어릴 적을 더듬고, 나중에 아이를 낳아 함께 살던 무렵을 헤아리면, 우리 집뿐 아니라 이웃 여러 집은 모두 따사롭고 살뜰한 사람들입니다. 크게 잘나지 않으나 딱히 못나지 않습니다. 골목마을에는 커다란 집이 거의 없습니다. 아예 없지 않습니다만 높이 솟는 아파트에 대면 아무것이 아닙니다. 거의 엇비슷하다 싶은 골목집이 옹기종기 모여서 마을을 이루는데, 골목집마다 손바닥만 한 마당에 나무를 한두 그루씩 심어요. 골목마실을 할 때면 으레 이 골목나무를 바라보면서 즐겁습니다. 우리 집 나무가 아니어도 마을나무요 골목나무이기 때문에 반갑습니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바로 아래쪽으로는 그 옛날의 좁은 골목들과, 날아갈 듯 얇은 슬레이트 지붕 위에 타이어며 온갖 잡동사니를 올려놓은 슬레이트 집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과거이면서 현재이고 또 미래가 될 달동네의 얼굴이다. (171쪽)


관광 상품화가 그냥 버려야 할 카드인가는 개인적으로 단순명쾌하게 정리를 못 하겠다. ‘관광 상품’이라는 말 자체에서 배어 나오는 기계적 사고, 그리고 구체적 실행안에 자주 등장하는 박물관 체험관 카페 벽화 도예 공방 등, 마을 재생 운동에 단 한 번 발 들여놓지 않았던 나조차 줄줄이 읊을 수 있는 빈곤한 내용들이 ‘안 봐도 비디오’인 결말을 예상케 한다. 하지만 그런 식이 아니라면,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보람도 느끼며 수익도 낼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해 본다면, 외지인들의 발길이 가라앉는 동네에 활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든다. (293쪽)



  골목집 사람들은 골목을 스스로 건사합니다. 청소부가 오가면서 쓰레기봉투를 가져가지만, 이밖에 여느 때에는 아침 낮 저녁으로 골목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비질을 합니다. 골목마을에서 사는 분이라면 으레 스스로 골목길을 치울 테고, 골목마실을 다니는 분이라면 으레 ‘비질을 하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만날 만하리라 느낍니다. 더욱이 골목마을 할머니나 할아버지나 아주머니나 아저씨는 담벼락 앞쪽을 조금씩 꽃밭으로 가꾸기 마련이고, 담벼락에도 꽃그릇을 가지런히 올려놓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웬만한 골목길은 ‘꽃골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골목사람 삶자락을 헤아린다면, ‘오래된 골목마을 살리기’는 ‘관광 상품’이 아니어도 넉넉합니다. 관광 상품을 꾀한다면서 용역을 내고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느라 돈을 쓰지 말고, 골목마을 사람들한테 ‘골목집 곱고 정갈하게 가꾸는 도움삯’을 다달이 이십만 원쯤 줄 수 있어요. 골목마을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으니 집집마다 다달이 이십만 원을 ‘골목집 가꿈삯’으로 정책을 마련해서 집행한다면, 골목사람 스스로 훨씬 아기자기하면서 더욱 아름답게 골목마을을 가꿀 테지요.


  어쩌다가 한 번 골목을 찾는 관광객이나 예술가는 ‘겉치레를 하는 벽그림’밖에 못 그리고 못 보지만, 늘 마을에서 사는 사람(주민)은 ‘속을 가꾸는 삶을 밝히는 길’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로 마을사람 스스로 가꾸는 마을살림이 관광객한테도 더 아름다우면서 재미나고 놀라우며 새롭게 보일 테지요.



2000년대 중반 청라신도시에서 송도신도시를 곧바로 잇는 산업도로를 만든다는, 그 도로만큼이나 단순무식한 계획 아래 배다리마을은 존폐 위기에 놓였다. 계획대로라면 도로가 배다리를 관통하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아벨서점의 곽현숙 대표와 스페이스빔의 민운기 대표 등을 중심으로 동네 주민들까지 합세해 이 계획을 저지시켰다. (204쪽)



  《끈질긴 삶터 달동네》를 읽다 보니 204쪽에 잘못된 정보가 나옵니다. 인천시 종합건설본부에서 밀어붙이려고 하던 ‘배다리 산업도로’는 2006년에 인천 동구 창영동 주민 세 사람이 알아내어 처음으로 밝혔고, 이 마을 주민 세 사람이 끝까지 앞장서서 싸우면서 2011년에 백지화까지 이끌었습니다. 인천시 종합건설본부에서 몰래 밀어붙이려던 공사 계획을 밝힌 마을 주민 세 사람 이름은 곽현숙, 박태순, 하유자입니다. 이들은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 아벨서점을 본부처럼 삼아서, 동구 송림동에 있는 송림동성당 신부님과 신자가 함께 나설 수 있도록 이끌었고, 여기에 인천에 있는 여러 단체와 지식인을 한자리에 모으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배다리 산업도로를 막으려고 하는 사무실을 마련할 적에 아벨서점 곽현숙 님이 사무실을 손수 알아보고 임대료까지 냈지요. 스페이스빔이라는 문화공간도 이때에 함께 한 여러 단체 가운데 하나이지만, “아벨서점의 곽현숙 대표와 스페이스빔의 민운기 대표 등을 중심으로 동네 주민들까지 합세해”라는 말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이 배다리 산업도로 싸움에서 ‘중심’은 ‘마을 아주머니(라기보다는 할머니입니다만) 세 사람’이고, 배다리를 둘러싼 마을사람(거의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였습니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비로소 인천에 있는 시민사회단체가 모여들었고, 이 힘을 바탕으로 여러 해에 걸쳐 끈질기게 싸웠기에 공사 백지화를 이끌었습니다.


  인천문화재단에서 ‘문화의 길 총서’로 내는 책이라면 이만 한 정보를 모아서 갈무리하기는 어렵지 않을 텐데, 이 같은 대목은 부디 나중에라도 바로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같은 대목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하는 까닭을 더 든다면, ‘왕복 16차선 공사 계획’을 밝혀내고 이를 막은 밑힘은 바로 마을사람 숨결이기 때문입니다.


  마을을 살리는 힘은 언제나 마을에서 샘솟습니다. 바보스러운 공사를 가로막는 힘도, 마을을 새롭게 가꾸는 힘도, 언제나 마을에서 샘솟아요. 예술가와 지식인과 시민사회단체 힘도 고맙습니다만, 언제나 모든 일에서 중심은 마을이어야 합니다. 관도 단체도 아닌 마을이 중심이어야 하고, 마을에서 터를 닦고 오래도록 오붓하게 살면서 알뜰살뜰 살림을 가꾸는 사람이 중심이어야 한다고 느껴요. 이때에 비로소 달동네는 달을 사랑스레 누리면서 달잔치도 하고 마을잔치도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곳간으로 거듭날 테지요. 4348.11.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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