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과나무 춤추는 카멜레온
루스 게리 오바크 글.그림, 최용은 옮김 / 키즈엠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1



마당에 심은 나무 한 그루로 나누는 사랑

― 나의 사과나무

 루스 게리 오바크 글·그림

 최용은 옮김

 키즈엠 펴냄, 2015.10.22. 8000원



  나무 한 그루를 돌볼 수 있는 집이랑, 나무 한 그루를 돌볼 수 없는 집은 사뭇 다릅니다. 나는 서른다섯 해가 넘도록 나무 한 그루조차 돌볼 수 없는 집(마당이 없는 집)에서 살다가, 요 다섯 해 남짓 비로소 나무 한 그루를 돌볼 수 있는 집(마당이 있는 집)에서 지냅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갓 태어난 뒤에는 제 나무를 만날 수 없었지만, 작은아이는 갓난쟁이일 무렵부터 우리 나무를 마주하면서 언제나 하루를 새롭게 맞이합니다.


  우리 집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맨 먼저 하는 일이 있어요. 바로 ‘나무한테 절하고 오기’입니다. 나무한테 절을 하고 말을 섞고 바람을 마시고 춤을 추면서 웃지 않으면 밥도 주전부리도 없습니다. 언제나 아침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에는, 흐리나 맑으나 아침에는, 우리 집을 둘러싼 여러 나무한테 절을 하면서 열기로 합니다. 나들이를 가거나 집을 비울 적에도 나무한테 절을 하고,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적에도 으레 나무한테 절을 하면서 말을 섞어요.



우리 집 마당에는 오래된 사과나무가 있어요. 늘 앙상해서 사람들은 나무가 죽은 줄 알고 주변에 쓰레기를 버렸지요. 하지만 사과나무는 죽지 않았어요. (2쪽)




  루스 게리 오바크 님이 빚은 앙증맞은 그림책 《나의 사과나무》(키즈엠,2015)를 읽으며 나무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apple pigs”라는 이름으로 2015년에 미국에서 처음 나오고, 한국말로는 《나의 사과나무》(키즈엠,2015)로도 나온 예쁜 그림책을 읽으며, 집에 나무가 있느냐 없느냐는 얼마나 다른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오래된 나무’를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아마 이 아이도 집에 있는 나무를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테지요.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 스스로 제법 나이가 든 뒤에 비로소 ‘마당에 있는 오래된 능금나무’가 시들시들 앓는 줄 알아차렸구나 싶어요. 집에서 누구도 돌보지 않고 아끼지 않고 눈길도 두지 않아서 시름시름 시드는 나무를 ‘아이’가 알아보았네 싶습니다.



나는 사과나무 주변의 쓰레기를 치우고, 풀을 뽑고, 갈퀴로 땅을 정리했어요. 사과나무 주위로 예쁜 꽃도 심었지요. 봄볕이 따사롭게 비추고, 봄비가 촉촉이 내렸어요. (5쪽)




  아이는 무엇을 할까요? 아이는 나무한테 무엇을 할 만할까요?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합니다. 먼저, 나무 둘레에 쌓인 쓰레기부터 치웁니다. 이러고 나서 자잘하게 돋은 온갖 풀을 뽑아 줍니다. 나무뿌리가 제대로 숨쉴 터를 마련하고, 나무한테 이제부터 제대로 사랑을 나누어 주리라 하고 다짐합니다. 나무가 좋아하도록 고운 꽃을 나무 곁에 심기도 했대요.


  자,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오래되고 아픈 능금나무 한 그루는 아이한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나무 한 그루를 살뜰히 돌본 아이는 앞으로 어떤 일을 겪을까요? 따스한 사랑을 받은 늙은 능금나무 한 그루는 앞으로 아이한테 어떤 선물을 베풀 수 있을까요?



저녁밥도 사과, 간식으로도 사과를 먹었어요. 하지만 사과는 여전히 많았어요. “더 못 먹겠어!” 우리는 소리쳤어요. 그래서 사과를 따서 침대맡에 두었어요. (10∼11쪽)




  그림책 《나의 사과나무》를 보면, 그동안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한 능금나무가 꽃을 활짝 피웁니다. 꽃을 활짝 피우고 잎도 잔뜩 돋은 능금나무에 새가 다시 찾아옵니다. 새는 능금나무 한쪽에 둥지를 짓습니다. 능금나무에 둥지를 지은 새는 날마다 기쁘게 노래를 부릅니다.


  집에 나무가 한 그루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나무는 봄에 새롭게 잎을 틔워서 새로운 숨결과 짙푸른 바람을 베풀지요. 잎이 우거지는 나무는 새를 부르기 마련이라, 새가 찾아들어서 고즈넉히 깃들면, 새는 아름답게 노래하면서 사람들한테 새로운 즐거움을 나누어 줍니다.


  나무가 잘 자라는 집에서는 나무 그늘을 누리면서 쉴 수 있습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하루 내내 실컷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무가 선물처럼 내놓는 꽃이랑 열매를 듬뿍 누리지요.



이제 더는 사과를 보관할 곳이 없었어요.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나는 안내문을 쓰고, 초대장을 보냈어요. “사과 축제를 합니다! 모두 모두 오세요.” (19쪽)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바야흐로 ‘아침 낮 저녁’으로 끼니마다 능금을 먹을 수 있습니다. ‘여태 열매 한 알 내놓지 못하던 능금나무’가 어마어마하게 능금을 내놓습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날이면 날마다 능금을 먹는데, 먹고 또 먹어도 능금은 자꾸자꾸 열립니다. 온 집안에 능금을 잔뜩 쌓지만, 능금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바야흐로 집 안팎이 ‘능금바다’가 되어 도무지 어찌저찌 손쓸 틈이 없습니다.


  이때에 ‘나무를 되살린 아이’가 멋진 생각 하나를 그려요. ‘능금잔치’를 열어서 이웃을 부르기로 하지요. 나무가 새를 부르듯이, 사랑이 나무를 되살리듯이, 수북하게 쌓인 너른 능금을 잔뜩 펼쳐서 재미난 잔치를 열기로 해요.


  가까이서 찾아오고 멀리서 찾아온 수많은 이웃은 어마어마한 능금을 신나게 먹습니다. 수많은 이웃이 수없이 능금을 먹어 주기에 비로소 능금바다가 줄어듭니다. 이제 집안이 한결 넉넉합니다. 넘치는 능금 때문에 더는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니까, 능금나무 한 그루는 바로 이러한 삶을 바랐구나 하고 느낍니다. 꽃 한 송이와 열매 한 알로 다 같이 오순도순 누리는 사랑을 바랐구나 싶습니다. 서로서로 웃고 노래하고 이야기하고 춤추면서 하루를 즐거이 누리기를 바랐구나 싶습니다. 나무 한 그루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사랑을 나누고 꿈을 나누며 기쁨을 나누기를 바랐구나 싶어요.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며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면 참말 삶이 바뀌리라 생각해요. 시골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모든 집에서 마당을 조그맣게라도 누릴 수 있어서 ‘우리 집 나무’를 돌볼 수 있다면, 또 ‘내 나무’를 아낄 수 있다면, 마음 가득 피어나는 사랑스러운 꿈으로 이웃하고 살가이 어깨동무를 할 수 있겠지요. 4348.11.18.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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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숲의 왕을 찾아서 - 흰부리딱따구리와 생태 파수꾼 이야기 생각하는 돌 13
필립 후즈 지음, 김명남 옮김 / 돌베개 / 201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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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89



새가 사라진 마을에는 노래가 없다

― 사라진 숲의 왕을 찾아서

 필립 후즈 글

 김명남 옮김

 돌베개 펴냄, 2015.11.2. 15000원



  새 한 마리가 있으면 집안이 시끌시끌합니다. 처마 밑에 제비가 찾아와서 둥지를 틀거나, 참새나 박새가 처마랑 지붕 사이 빈틈에 들어가서 새끼를 까면, 새벽부터 밤까지 새소리를 듣습니다. 마당에 우람한 나무가 한 그루 있으면, 숲에서 아침을 여는 멧새가 마을로 내려올 적에 이 나무에 내려앉아서 다리쉼을 하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이 새들은 모두 벌레를 좋아하기 때문에 나무마다 샅샅이 뒤지면서 벌레잡이를 합니다.


  오늘날에는 논밭뿐 아니라 나무에도 농약을 무척 많이 쓰는데, 예부터 시골사람은 새를 곁에 두면서 벌레잡이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면서 하루를 더 아름답게 누릴 줄 알았습니다.




부리는 뼈로 이루어졌고, 그 위에 케라틴이라는 특수한 단백질이 덮여 있다. 굵은 밑동은 나무를 두드릴 때 받는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서 두꺼운 머리뼈에 깊숙이 박혀 있다. 콧구멍은 작은 틈처럼 찢어져 있고, 둘레에 털이 나 있어서 톱밥이 들어가는 것을 막아 준다. 흰부리딱따구리에게 이렇게 크고 단단한 쇠지레 같은 상아색 부리가 필요했던 것은 나무껍질을 벗겨내기 위해서였다. (22∼23쪽)


알렉산더 윌슨이 흰부리딱따구리를 그리기 위해서 총을 쏘아 잡았던 1809년부터 조지 바이어가 그 새를 박물관에 진열하기 위해서 총을 쏘아 잡았던 1899년까지 90년 동안, 흰부리딱따구리의 세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30쪽)



  필립 후즈 님이 쓴 《사라진 숲의 왕을 찾아서》(돌베개,2015)를 읽습니다. 이 책은 미국에서 자취를 감추고 만 ‘흰부리딱따구리’하고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쩌다가 흰부리딱따구리가 모조리 자취를 감추어야 했는가를 살피는데, 미국에서는 흰부리딱따구리만 모조리 사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그네비둘기 같은 새도 몽땅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사람들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모두 죽고 말아 사라져야 한 새가 퍽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떠할까요? 한국에서는 ‘흰부리딱따구리’ 못지않게 자취를 감춘 큼지막한 딱따구리로 ‘크낙새’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크낙새가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고, 한국에서는 광릉수목원 언저리에서 한 쌍이 산다고 하는데, 한 쌍만 있어서는 크낙새가 더 퍼지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새가 여럿 살려면 숲이 넓어야 하지요. 조그마한 숲에서 이런저런 새가 한두 쌍쯤 산다고 하더라도 새끼를 퍼뜨리기 어렵습니다.




남부 목재에 대한 열광은 1849년의 금광열에 뒤지지 않는 기세로 타올랐다 … 돌아온 목격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혀가 꼬여 더듬거리면서 보고했다. 그곳에는 수백만 에이커의 삼림이 펼쳐져 있고, 숲 천장은 하늘을 완전히 가리며, 나무 둥치는 어른 남자 둘이 팔을 맞잡은 것보다 굵다고 했다. 자유인이 된 노예들과 가난한 백인들은 하루에 50센트만 주면 기꺼이 숲에서 일하겠다고 줄을 선다고 했다. (49쪽)


아서 웨인은 왜 흰부리딱따구리를 마흔네 마리나 죽였을까? 윌리엄 보르수트넌 왜 흰부리딱따구리 표본을 예순한 점이나 샀을까? 그 새가 멸종할 위기라는 사실을 몰랐나? 몰랐다면, 관심이 없어서였을까? 당연히 그들은 흰부리딱따구리가 귀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65쪽)



  흰부리딱따구리나 크낙새 같은 새가 숲에서 사라지는 까닭은, 이들 새가 살 만한 숲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숲이 사라지는 까닭은, 사람들이 나무를 너무 모질게 많이 베어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숲을 밀어내어 아파트나 공장이나 발전소나 고속도로나 골프장을 지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새를 지키자면서 집도 짓지 말고 공장이나 발전소도 없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헤아려 볼 노릇입니다. 왜 숲을 밀어서 아파트를 지어야 할까요? 왜 숲을 밀어서 공장이나 발전소가 들어서야 할까요? 숲이 아닌 다른 땅이 틀림없이 있을 텐데요. 숲이 없이는 사람도 살 수 없을 텐데요.


  사람은 누구나 숨을 쉽니다. 숨을 쉬자면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아무리 물건을 써야 하거나 전기를 써야 하더라도, ‘깨끗한 바람’이 없으면 사람은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살려면 맨 먼저 깨끗한 바람이 있어야 하고, 다음으로 맑은 물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뒤에 정갈한 밥이 있어야 하지요.


  개발을 하든 건설을 하든 무엇을 하든, 짙푸른 숲하고 깨끗한 냇물하고 넓은 들과 갯벌하고 아름다운 바다부터 곱게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숲에는 새가 날고 짐승이 달릴 수 있어야 하고, 냇물과 바다에는 물고기가 노닐 수 있어야 하지요. 이런 터전일 때에 비로소 사람도 사람다운 삶을 누립니다.




(앨런 박사는) 손가락을 진정시키고 새에게 겨눴다. 산탄총이 아니라 카메라였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흰부리딱따구리 사진을 찍었다. (82쪽)


싱어 보호구역의 흰부리딱따구리 서식지가 팔린 것은 사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사건이었다. 태너는 감정을 쉽게 비치지 않는 편이었지만, 오듀본 협회의 존 베이커에게 보낸 연례 보고서에서는 좌절감을 드러냈다. (146쪽)



  새가 사라지는 숲에서는 노래가 사라집니다. 숲에서 새가 사라지면, 숲을 감도는 고운 숨결이 사라집니다. 무엇보다도 새가 사라진 숲에는 벌레가 들끓을밖에 없습니다. 헬리콥터로 농약을 뿌린다 한들 숲에서 사는 벌레를 다스리지 못합니다. 사람으로서는 ‘벌레먹은 나무’를 베는 일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새가 홀가분하게 살 수 있는 숲이 있어야, 도시에 있는 사람도 마음과 몸을 달랠 만합니다. 매캐한 바람이 가득한 도시를 벗어나서 몸을 쉬고 마음을 다스리고 싶다면 숲으로 갈 테니까요. 시골에 숲이 없으면 도시사람도 쉴 데가 없지요. 시골에 숲이 없으면 도시에서 부는 매캐한 바람을 씻어 주지도 못하지요. 숲에서 비롯하는 바람이 도시마다 어루만져 주기 때문에, 도시에서도 누구나 숨을 쉬면서 삶을 지을 수 있습니다. 코앞에서 숲을 바라보거나 마주하지 않더라도, 브라질에 있는 숲이, 인도네시아에 있는 숲이, 부탄에 있는 숲이, 서울 한복판에 고인 매캐한 먼지를 찬찬히 다독여 줍니다.




새들은 굶어죽고 있었다. 털룰라에 있는 시카고 제재 및 목재 회사의 거대한 띠톱은 최고 속도로 통나무를 집어삼키면서 흰부리딱따구리가 둥지를 짓고 잠을 자고 먹이를 구하는 데 쓸 최후의 나무들을 없애고 있었다. (163쪽)


태너는 숲이 결국 사라질 운명일 것 같아서 두려웠다. 머지않아 큰 나무가 듬성듬성해지고 숲이 조각조각 나뉘어서 흰부리딱따구리 한 쌍도 못 먹일 만큼 좁아질 것이었다. 진주만에 떨어진 폭탄은 텐사스 늪지 국립공원 설립 법안도 날려 버렸다. 다들 전쟁 말고는 딴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177쪽)



  흰부리딱따구리를 찾아나선 사람들과 흰부리딱따구리를 지키려 애쓴 사람들은 바로 이녁 스스로를 사랑하려는 몸짓이었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 가슴에 고운 바람이 불 수 있기를 바라는 몸짓이었다고 느낍니다. 기껏해야 새 한 마리가 아닙니다. 새 한 마리가 지구별에서 모두 사라질 적에는 지구별 삶고리(생태순환고리)가 끊어지거나 흔들립니다. 어느 한 가지 목숨붙이가 모두 사라지는 지구별이라면, 아름다움이 차츰 깨지거나 빛이 바랜다는 뜻입니다. 다양성이 사라지는 곳에는 아름다움이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라진 숲의 왕을 찾아서》에서도 다루는데, ‘나쁜벌레(해충)’를 잡아서 죽이겠노라 하면서 뿌린 DDT는 메뚜기를 거치고 ‘메뚜기를 잡아먹는 다른 생물’을 거치고 거쳐서 송골매한테까지 이른다고 합니다. 먹이사슬 꼭대기에 있는 송골매는 이 때문에 껍데기가 흐물흐물한 알을 낳고, 이 탓에 송골매는 사라질 뻔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들이 논밭에 뿌리는 농약은 먹이사슬 꼭대기에 있는 ‘사람’한테 도로 돌아옵니다. 나락에 뿌리는 농약은 쌀밥을 먹는 사람한테 돌아오고, 밀밭에 뿌리는 농약은 빵을 먹는 사람한테 돌아오며, 이런 농약은 빗물에 씻겨 바다로 들어가면서 바닷물고리를 먹는 사람한테 돌아옵니다.




사람들이 해충 방제 용도로 작물에 뿌렸던 DDT는 작물을 먹는 메뚜기 같은 생물의 몸에 오래 남았고, 나중에 그 메뚜기를 먹는 생물을 중독시켰으며, 계속 그런 식으로 먹이사슬 꼭대기까지 도달했다. 그렇게 하여 송골매에게 도달한 DDT는 알껍데기를 약화시켰고, 그 때문에 부모가 알을 품다가 제 알을 깨뜨리곤 했다. (232쪽)



  아침저녁으로 새가 노래하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새소리를 흉내내어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날갯짓하는 새를 바라보면서 마음을 달랬고, 쉴 새 없이 새끼한테 먹이를 물어 나르는 어미 새를 보면서 사랑을 헤아렸습니다. 새가 짓는 집을 가리켜 ‘둥지’나 ‘보금자리’라 하는데, ‘둥지·보금자리’ 같은 말마디는 따스한 기운이 넘치는 사랑스러운 집을 가리키곤 합니다. 그러니까, 한겨레는 예부터 새를 늘 곁에 두면서 아름다움을 배우고 사랑을 돌아보면서 살림을 가꾸었다는 뜻입니다.


  참새가 나락을 좀 쪼더라도 참새는 가을 한철에나 나락을 좀 쫄 뿐, 한 해 내내 벌레를 엄청나게 잡아먹으니 귀엽게 바라보며 ‘참새’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콩 석 알을 심을 적에 한 알은 새가 먹고 한 알은 벌레가 먹으며 한 알은 사람이 먹는다는 옛말은 괜히 나오지 않았습니다. 새도 벌레도 이 땅에서 저마다 맡은 구실이 있다는 뜻입니다. 벌레가 있기에 거름이 삭고, 벌레가 있어서 수많은 주검이나 나뭇잎이나 풀잎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는 흰부리딱따구리를 마지막으로 본 (1997년) 뒤에도 열 번 넘게 탐사를 이끌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전 세계에서 숲이 쓰러지고 있으니, 조류학계에서 쿠바의 흰부리딱따구리를 찾는 일은 청춘의 샘이나 앨도라도를 찾는 것에 비할 만한 중대한 모험이 되었다. (210쪽)



  미국에서 끝끝내 흰부리딱따구리를 건사하거나 지키지 못하고 만 이야기를 다루는 《사라진 숲의 왕을 찾아서》를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흰부리딱따구리를 지키지 못한 미국은 그리 아름답지 못한 길을 걸었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흰부리딱따구리를 지키려고 애쓴 사람들은 ‘아름답지 못한 정책과 경제발전’이 춤추는 미국에서 숲과 마을과 사람을 지키는 새로운 길을 씩씩하게 열기도 했습니다. 오듀본 협회가 태어나고, 국립공원을 세우자는 물결이 일었으며, 지구 삶터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1940년대에 미국에서 터진 전쟁(진주만 폭격 뒤에 일어난 전쟁)은 그예 흰부리딱따구리가 살 숲을 모두 밀어내는 끔찍한 일로 이어지고 말았다고 하는 얘기를 돌아봅니다. 전쟁은 새도 사람도 모두 죽음이라는 구렁텅이로 밀어넣습니다. 전쟁무기를 만드는 동안 사람들은 바보가 되고, 전쟁무기를 손에 쥐고 서로 죽이고 죽는 짓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멍텅구리가 됩니다. 평화가 아닌 전쟁으로 나아갈 적에는 너와 내(아군과 적군)가 모두 죽지요. 전쟁이 아닌 평화로 나아갈 적에 비로서 너와 내가 함께 삽니다.


  우리 삶에 아름다운 숨결이 흐르려면 마을에 새가 날아들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마다 숲이 넓게 드리울 수 있어야 합니다. 도시에도 곳곳에 크고작은 ‘숲 공원’이 있어야 합니다. 작은 손길 하나로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고, 작은 새 한 마리가 날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줍니다. 작은 마음 하나로 꿈이라는 씨앗을 심으며, 작은 새 한 마리가 짝을 찾아 노래를 부르는 사이에 웃음꽃이 활짝 핍니다. 4348.11.17.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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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u:Do 2015-11-17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서평을 멋지게 작성해주시네요 ㅎ 저는 주로 모바일사용자라 피씨로 작성해야 가능할 것 같은 멋들어진 서평입니다. 감사합니다 ㅎ

숲노래 2015-11-17 10:56   좋아요 0 | URL
사진을 얻고 손질하느라 좀 품이 많이 들었습니다.
흰부리딱따구리 서식지가 줄어든 지도도
포토샵에서 오려서 붙이기를 하고 그랬습니다 ^^;;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책은 필립 후즈 님 다른 책과 함께
무척 알차고 아름다운 책입니다 ^^
 
내가 함께 있을게 웅진 세계그림책 120
볼프 에를브루흐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웅진주니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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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1



동무를 떠나보내는 삶인 ‘죽음이’

― 내가 함께 있을게

 볼프 에를브루흐 글·그림

 김경연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 2007.10.31. 9500원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 하루를 즐겁게 마무리짓고, 이튿날 새 하루를 새로우면서 기쁘게 맞이하자’고 생각합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 적에 ‘이제 곧 죽는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새로운 하루는 어떻게 누리면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 적에 ‘하루를 더 살았으니, 죽음하고 하루 더 가까워지네’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른인 나도 이렇게 생각하지만, 아이들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잠자리에서 삶을 생각할 뿐입니다. 구태여 죽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부터 오리는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대체 누구야? 왜 내 뒤를 슬그머니 따라다니는 거야?” “와, 드디어 내가 있는 걸 알아차렸구나. 나는 죽음이야.” (4∼5쪽)



  볼프 에를브루흐 님이 빚은 그림책 《내가 함께 있을게》(웅진주니어,2007)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오리가 한 마리 나오고, 오리 곁을 늘 맴돌았다는 ‘죽음이’라는 아이가 나옵니다.


  오리는 어느 날 문득 제 곁에 누군가 가까이 있는 줄 깨닫고는 고개를 홱 돌리면서 묻습니다. 그리고, 오리가 이렇게 물을 적에 ‘죽음이’는 그동안 드러내지 않던 모습을 오리 앞에 환하게 드러냅니다. 뒷짐을 진 손에 꽃을 한 송이 든 채 말이지요.



“사고가 났을 때 걱정해 주는 것은 삶이야. 삶은 감기라든가, 너희 오리들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걱정하지. 한 가지만 예를 들게. 여우가 나타났다고 생각해 봐.” 오리는 그건 절대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으스스 소름이 돋았습니다. (9쪽)




  오리는 왜 죽음이를 알아챘을까요? 죽음이는 왜 오리 곁에서 맴돌았을까요? 오리는 죽고 싶은 마음이었을까요? 아니면, 오리는 이제 삶을 마치고 죽음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무래도 오리 스스로 죽음을 생각했기에 죽음이 늘 곁에 맴도는 줄 느꼈으리라 봅니다. 죽음을 생각하던 나날이었으니 때때로 오싹하기도 하고, 때때로 ‘누가 옆에 있네’ 하고 느꼈을 테지요.


  죽음이는 죽음으로 가도록 이끄는 아이입니다. 그러니 늘 꽃 한 송이를 갖고 다니면서 ‘죽음을 맞이한 님’한테 꽃송이를 가만히 올려놓고 냇물에 주검을 띄워서 흘려보냅니다.



“추워? 내가 따뜻하게 해 줄까?” 오리가 물었습니다. 아무도 죽음에게 그런 제안을 해 준 적이 없었습니다. (13쪽)




  오리는 죽음이를 알아챘지만, 그다지 죽음이를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스스로 곧 죽음이 닥칠 줄 알았기에, 제 곁에 늘 맴돌던 숨결이 무엇인가를 알아챈 뒤에는 아무것도 거리낄 일이 없어졌구나 싶습니다. ‘죽음이 곁에 있는 삶’이란 두려움도 무서움도 없는 줄 알았다고 할까요.


  바야흐로 오리는 죽음이를 제 동무로 삼아요. 오리는 죽음이가 늘 따라다니는 줄 깨닫습니다. 아침에 번쩍 눈을 뜨면서 죽음이를 깨웁니다. 아직 죽지 않았다고 외치면서 기뻐합니다. 죽음이는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서 오리가 기뻐하는 대로 함께 기뻐합니다. 이러면서 오리하고 함께 놀지요. 못에도 가고 나무에도 오르지요. 어디를 가든 함께 움직여요.


  그림책 《내가 함께 있을게》를 읽을 어린이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 그림책을 읽을 어린이는 ‘죽음은 두려워할 만하지 않다’는 대목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죽음을 생각하기에 죽음이 찾아오고, 삶을 생각하기에 삶을 누린다’는 대목을 가만히 마음속에 그릴 만할까요?



오리는 죽음의 옆구리를 툭 치며 큰 소리로 기뻐했습니다. “나, 아직 죽지 않았어!” 죽음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나도 기쁘다.” 죽음이 기지개를 켜고 말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죽었다면?” “그럼 난 늦잠을 잘 수 없었을 거야.” 죽음이 하품을 하며 말했습니다. (15쪽)




  기쁨을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마음속에 기쁨을 그리면서 삶에 기쁨이 깃들도록 이 길을 걷습니다. 슬픔을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마음속에 슬픔을 그리면서 삶에 슬픔이 스미도록 이 길을 걸어요. 웃음을 생각하니 웃음을 스스로 길어올리고, 눈물을 생각하니 눈물을 스스로 끌어냅니다.


  온누리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뭘 하고 놀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누구나 참으로 재미나게 놀고 신나게 놀며 개구지게 놀아요. 그런데, 학교에 매인 아이들은 ‘아이고, 오늘도 학교에 가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학교 공부가 괴롭거나 대학입시로 고달픈 아이들이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새로 맞이하는 삶’이 그리 기쁘지 않을 만합니다. 아침을 기쁘게 웃으면서 맞이하지 못한다면 아무래도 삶하고 멀어질 테지요. 기쁨이를 부르지 못하고 죽음이를 부를 테지요.


  그림책 끝자락을 보면 ‘죽음이’한테는 “죽음이 삶”이라고 읊는 대목이 나옵니다. 모처럼 동무를 사귀었어도 동무가 죽음으로 가는 길로 이끄는 일이 죽음이한테 삶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죽음이한테도 죽음이 있을까요? 삶을 누리던 목숨이 죽음으로 가도록 이끄는 ‘죽음이가 죽으’면, 이 아이는 ‘삶’이라는 자리에서 다시 태어날까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일 텐데, 참말 삶과 죽음은 수수께끼라고 할 만합니다. 수수께끼를 풀려고 이 땅에 태어나고, 수수께끼를 풀면서 이 삶을 지으며, 수수께끼를 풀거나 맺으면서 이 길을 마무리짓겠지요. 그림책에 나오는 ‘죽음길로 떠난 오리’는 몸뚱이는 고이 내려놓고 새로운 삶길로 갔으리라 생각합니다. 4348.11.16.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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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무어, 따로 있나 문학동네 동시집 32
서정홍 지음, 정가애 그림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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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73



흙내음이 나는 동시를 쓰는 시골 아재

― 주인공이 무어, 따로 있나

 서정홍 글

 정가애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14.10.20. 9500원



  가을이 깊어 이제 보름쯤 뒤면 십이월입니다. 겨울이 코앞입니다. 우리 고장은 퍽 포근해서 이 늦가을과 겨울 문턱에도 들풀이 새로 돋습니다. 나는 두 아이하고 마당에서 새로 돋는 들풀을 훑습니다. 이 들풀은 밥을 끓일 적에 함께 넣기도 하고, 볶음이나 부침을 할 적에도 함께 넣습니다.


  모시풀은 잘게 썰어서 밥에 넣습니다. 쇠무릎이나 유채잎이나 갓잎은 볶음에 넣습니다. 갈퀴덩굴은 물로 헹구어 나물로 먹습니다. 손바닥만 하다 싶은 작은 땅뙈기에서도 네 식구가 먹을 풀은 넉넉히 자랍니다. 햇볕이란, 빗물이란, 바람이란, 흙이란, 참말 늘 우리를 살리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어느 날 강원도 오대산에서 / 친구들과 나무를 벨 때였어. 나무 속에 아이들 새끼손가락만 한 / 총알이 박혀 있는 걸 보았지. (총알 안은 나무-목수 자중 삼촌)


할머니는 산새들이 안 볼 때 / 콩을 심어야 한다며 / 해도 뜨기 전에 콩을 심었다. // 그런데 어찌 알았는지 / 산새들은 할머니만 없으면 / 콩을 내먹는다. (힘겨루기)



  경상도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서정홍 님이 빚은 동시집 《주인공이 무어, 따로 있나》(문학동네,2014)를 읽습니다. 흙을 만지는 서정홍 님이 쓰는 동시에는 흙내음이 흐릅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흙을 만지니 흙내음을 노래합니다. 흙을 만지기에 흙노래를 부르고, 흙을 아끼기에 흙사랑을 읊으며, 흙을 돌보기에 흙마음이 되어 글 한 줄을 씁니다.


  동시를 쓰는 어른은 저마다 하는 일에 따라서 동시를 씁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동시를 쓴다면 학교 이야기가 가득가득 흐릅니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살림꾼 노릇을 하는 삶으로 동시를 쓴다면 아이하고 복닥이는 하루 이야기가 넘실넘실 흐릅니다. 그리고, 문학창작으로 동시를 쓴다면 말놀이와 말솜씨를 부리는 말맛이 아기자기한 동시가 태어나지요.



할아버지 직업은? // 농부입니다. // 그럼 아버지는? // 농부입니다. // 농사지어 / 먹고살기 힘들 텐데? // 선생님, 오늘 아침밥 / 먹고 왔습니다. (학교에서)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얘, 넌 앞으로 농사꾼이 되렴.” 하고 이야기하거나 가르치거나 이끌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앞으로는 이 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어느 일거리보다 ‘시골지기(농사꾼)’라는 일거리를 맡아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아예 학교에서 어릴 적부터 ‘시골일을 해야 할 사람’을 뽑지요.


  다만, 학교에서 억지로 ‘이 일만 하라’고 등을 미는 일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보람으로 삶을 짓는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칠 수 있어야지 싶어요.


  《주인공이 무어, 따로 있나》에 나오는 〈학교에서〉라는 동시를 보면, 학교 교사는 아이더러 “농사지어 / 먹고살기 힘들 텐데?” 하고 묻습니다. 참말 교사가 물을 만하지 않은 바보스러운 물음입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농사꾼이라는데, 어떻게 아이더러 “먹고살기 힘들 텐데?” 하고 물을까요?



아버지, 한창 자랄 때는 / 고기를 먹어야 키가 큰대요. // 아니다. / 풀만 먹는 기린도 키가 크다. (그게 아닌데)


이모부는 농촌에서 양계장을 합니다. / 하루도 빠짐없이 / 달걀이 삼천 개가 넘게 나옵니다. /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합니다. / 일요일도 국경일도 / 외할아버지 장례식 날에도 / 쉬지 못했습니다. / 날마다 달걀을 꺼내야 합니다. (달걀 삼천 개)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 가운데, 서울내기나 부산내기더러 “얘들아, 앞으로 너희들은 이 지구별과 한국을 아름답게 가꾸는 농사꾼으로 자라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하고 씩씩하게 외치면서 농사꾼이 되려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치거나 이끄는 분이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고흥이나 합천 같은 시골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 가운데, 고흥내기나 합천내기더러 “얘들아, 너희는 도시로 떠날 생각만 하지 말고, 바로 이 고장, 이 시골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랑스러운 꿈을 키워 보면 아주 멋지리라 생각한다!” 하고 씩씩하게 노래하면서 농사꾼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르치거나 보여주는 분이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터놓고 말하자면, 오늘날에는 도시에서 일하는 분들도 먹고살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회사원이든 공무원이든, 공장 노동자이든 운전기사이든 청소부이든, 어느 누구도 먹고살기 느긋하다고 쉬 말하지 못합니다. 부자는 부자이면서 먹고사는 걱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먹고사는 걱정을 떨치지 못해요.



장에 가려고 길을 나선 진주 할머니는 / 하루에 두 번 있는 마을버스를 놓쳤습니다. // 아이고, 택시라도 타고 가야지. / 아니지, 택시비가 오천 원이라던데……. // 조금만 걸어가다 타면 / 택시비가 사천 원만 나오겠지. / 아니지, 조금만 걸어가다 타면 / 택시비가 삼천 원만 나오겠지. (진주 할머니)



  삶이 노래가 되고, 노래는 사랑이 됩니다. 사랑은 다시 바람을 타고 흐르고 흘러서 삶이 됩니다. 노래할 수 있는 삶이 사랑스러운 삶이요, 사랑스러운 삶이라면 늘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삶을 사랑할 수 있을 때에 즐겁고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아끼고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 때에 살림살이를 기쁘게 일구면서 활짝활짝 웃음꽃을 피웁니다.


  시골 아재 서정홍 님은 시골지기로 꾸리는 삶을 헤아리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는 바로 이녁 삶을 기쁘게 돌아보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시골지기 아재가 부르는 시골노래는 동시라는 옷을 입고서 아이들한테 나풀나풀 날아갑니다. 시골 어린이도 도시 어린이도 조그마한 동시집 한 권을 펼칠 적에 ‘시골지기 아재가 부르는 노래’를 듣습니다.


  시골은 못사는 곳도 잘사는 곳도 아닙니다. 시골은 그저 사람 사는 곳입니다. 동시집 《주인공이 무어, 따로 있나》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노래합니다. 시골 할머니가 사는 이야기를, 시골 할아버지가 사는 이야기를, 시골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사는 이야기를, 시골 어린이가 사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노래합니다.



새미 마을에서 태어나 / 새미 마을에서 일흔 해 동안 / 농사지으며 살아온 새미 할머니는 // 호미로 풀 매고 / 호미로 북을 돋우고 / 호미로 감자와 고무라를 캐고 / 호미로 온갖 농사일을 다 하셨다. (호미 냉장고)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아재는 흙내음에서 사랑을 봅니다. 도시에서 펜대를 잡거나 셈틀 앞에 앉는 아재는 펜대와 셈틀에서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몰며 사랑을 볼 수 있고, 자가용을 모는 동안에도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따사로운 숨결이 되면, 누구나 언제 어디에서라도 사랑스러운 넋으로 거듭나면서 사랑이라는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흙내음 동시는 흙사랑을 노래합니다. 흙살림을 꿈꾸는 동시는 흙사랑으로 서로 어깨를 겯고 손을 맞잡으면서 즐겁게 춤추면서 웃을 수 있는 삶을 노래합니다. 대단한 자리가 아닌 수수한 자리에서 노래가 태어납니다. 문학창작을 하지 않기에 노래가 자랍니다. 글멋이나 글치레를 부리지 않으니 노래가 환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들바람을 쐬고 숲바람을 마시니 노래가 싱그럽습니다. 늦가을 바람이 곱게 불면서 햇볕이 내리쬐는 우리 집 마당에 멧새도 마을고양이도 마음껏 드나들면서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4348.11.15.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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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4
츠키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76



‘사진 만화’에서 ‘짝짓기 만화’로 바뀐

―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4

 츠키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11.25. 4500원



  츠키코 님이 빚은 만화책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은 처음에 ‘사진 만화’로 이야기를 열었습니다. 첫째 권을 보면 온통 사진 이야기입니다. 사진 이야기 사이사이에 ‘풋사랑’ 이야기를 조금 곁들였지요. 둘째 권을 보면 사진과 풋사랑 이야기가 반쯤 섞입니다. 셋째 권은 사진 이야기가 크게 줄어들면서 풋사랑 이야기가 훨씬 넓게 자리를 잡고, 넷째 권에 이르면 온통 풋사랑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이제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은 ‘그녀와 카메라’가 아니라 ‘그녀와 그녀’로 이야기가 바뀝니다. 누가 누구하고 짝을 짓는가 하는 이야기가 이 만화책에서 한복판을 차지합니다.



‘학교에 갈 마음도 사라지고, 늘 가던 공원, 늘 가던 카메라 가게, 사진관도. 내가 얼마나, 사진 중심으로만 살았는지 실감이 나. 그래도, 달리 하고 싶은 일이나 갖고 싶은 게 아무것도 떠오르질 않아.’ (6쪽)


‘신기하다. 산은 거기 있을 뿐인데, 힘을 주는 것 같아.’ (38쪽)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넷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넷째 권에서는 두 가시내 사이에 얼키고 설킨 응어리를 푸는 징검돌로 사진을 끼워넣습니다. 이러면서 두 사람(두 가시내)이 바라보는 사진 이야기는 곁두리 노릇일 뿐입니다. 사진하고 얽힌 새로운 이야기도 없고, 사진을 새롭게 바라보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흔한 사진 이야기에다가, 흔한 풋사랑 이야기로 흐릅니다.


  그렇다고 흔한 이야기가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냥 흔한 이야기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만화책에서만 흐를 수 있는 이야기가 드러나지 않고, 그냥 흔하게 어느 만화책에서든 어슷비슷하게 흐를 만한 이야기가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린타로도 그랬지. 우리는 시간이 없어. 이 교복을 입을 날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고.’ (125쪽)


‘어떤 기분으로 이 사진을 찍었는지, 왜 내게 보여주고 싶어했는지,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물어보고 싶어.’ (147쪽)



  아이들한테는 시간이 없지 않습니다. 어른들한테도 시간이 없지 않습니다. 시간은 왜 없을까요? 스스로 시간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선 자리가 어떠한 자리인가를 제대로 모르기에 시간이 어떠한 줄 모릅니다. 열다섯 살이나 열일곱 살이나 열아홉 살은 오직 한 번뿐입니다. 그리고, 스물한 살이나 스물다섯 살도 오직 한 번뿐이에요. 서른다섯 살하고 마흔다섯 살하고 쉰다섯 살도 늘 한 번뿐입니다.


  그러니, 우리한테 시간이 없을 수 없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이 언제나 한 번뿐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시간이 없으면 앞으로도 늘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한 번 누리는 삶에 즐겁게 마음을 쏟지 않으면, 앞으로도 꼭 한 번만 마주하면서 누릴 삶에 제대로 즐겁게 마음을 쏟지 못합니다.



‘이런 곳에서 살고 싶었구나, 유키. 나는 어떨까. 혼자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뿐인 세계에 뛰어들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무리 유키라도 문득 불안해지진 않을까?’ (150∼151쪽)


‘어느 쪽이든 좋아. 시간이 지나면, 유키를 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웠던 적이 있었다. 그래도 오늘, 도쿄에 와서, 유키가 눈에 들어온 순간, 그렇지는 않겠구나 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찰칵 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도리 없이 유키를 떠올리고 있겠구나라고, 쭈욱. 앞으로도 쭈욱, 내 안에서 유키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살아 있겠구나 하고.’ (169∼171쪽)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이 저마다 알맞게 짝을 지어야 하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은 저마다 제 삶을 찾으면 됩니다. 제 삶에 따라 제 짝은 눈부시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 눈부시거든요. 이 아이는 이 아이대로 눈부시고, 저 아이는 저 아이대로 눈부셔요. 그리고, 사진기를 더 오래 쥐었기에 사진을 더 잘 찍지 않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유키는 아주 어릴 적부터 사진을 찍었으나,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넋이 못 되었기에, 사진기를 손에 쥔 지 몇 달이 안 되는 미야마처럼 사진을 못 찍습니다. 왜냐하면, 미야마는 사진기를 손에 쥔 지 얼마 안 되었어도, 사진 한 장을 찍을 적마다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넋이 되거든요.


  만화책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넷째 권을 읽으니, 이 만화는 셋째 권에서 마무리를 짓는 쪽이 훨씬 나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나올 다섯째 권은 어떠할는지 모르지요. 다섯째 권에서 이야기가 사뭇 달라지면서, 이 만화를 이루는 뼈대가 무엇인가를 새삼스레 되살릴는지 모르지요. 부디 두 가시내하고 한 사내가 맺고 풀고 얼키고 설키는 풋사랑 이야기가 사진이라고 하는 징검돌 사이에서, 또 사진이라고 하는 삶이랑 나란히, 고우면서 애틋한 노래가 될 수 있기를 빕니다.


  만화를 그리는 분이 ‘사진’하고 ‘풋사랑’ 두 가지를 모두 거머쥐려고 하면서 외려 두 가지를 모두 잃어버리는 어설픈 길을 가는 듯하다는 느낌이 앞으로 나올 다섯째 권에서는 사라질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1.14.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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