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창비시선 214
김용택 지음 / 창비 / 200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말하는 시 99



시와 배롱나무

― 나무

 김용택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2002.2.25.



  전라도라는 시골로 삶자리를 옮겨서 지내지 않았어도 배롱나무를 볼 일은 으레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온 식구가 전라남도 고흥군으로 옮겨서 조그마한 마을에 조용히 깃들면서 늘 배롱나무를 만나면서 여러모로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도시에서나 다른 고장에서는 이 나무를 두고 ‘백일홍나무’라든지 ‘목백일홍’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마을이나 고장에서는 ‘백일홍’ 같은 이름을 안 씁니다. 도시에서 찾아온 손님이 ‘백일홍’ 꽃송이가 참 곱네요 하고 말을 여쭈면, 마을 분들은 이 말을 못 알아듣기 일쑤입니다. 나이가 제법 있는 분들은 ‘배롱나무’라는 이름뿐 아니라 ‘간지럼나무’라는 이름도 즐겨씁니다.



봄꽃들이 지는 날, 너의 글을 읽는다. 땅위에 떨어져 있던 흰 꽃잎들이 다시 나무로 후루루 날아가 붙는다. (올페)



  김용택 님 시집 《나무》(창작과비평사,2002)를 읽으면서 나무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를 헤아리고, 우리 마을에서 자라는 나무를 헤아립니다. 이웃 여러 마을이나 우리 고장에서 자라는 나무도 곰곰이 헤아립니다.


  고흥 읍내로 가 보면 큰길에 나무가 거의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늘이 드리우는 나무조차 없습니다. 남녘은 여름에 불볕이요 봄가을에도 땡볕이 꽤 센데, 그늘을 드리울 만한 나무를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다고 할까요.


  어느 모로 본다면, 들에 나락을 심고 밭에 남새를 심으니 그늘을 안 좋아할 수 있습니다. 나무가 마을 둘레에 있으면 나락이나 깨나 고추를 말리기 어렵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나락을 논에 볏가리를 쌓아서 말렸습니다. 더욱이 예전에는 나무를 땔감으로 삼았으니 나무를 함부로 다루는 일이 있을 수 없고, 마을 둘레에는 ‘숲정이’라는 이름이 따로 붙을 만큼 고운 숲을 이루기 마련이었어요.



어머니는 동이 가득 남실거리는 물동이를 이고 서서 나를 불렀습니다 / 용태가아, 애기 배 고프겄다 / 용태가아, 밥 안 묵을래 / 저 건너 강기슭에 / 산그늘이 막 닿고 있었습니다 / 강 건너 밭을 다 갈아엎은 아버지는 그때쯤 / 쟁기 지고 큰 소를 앞세우고 강을 건너 돌아왔습니다 (이 소 받아라, 박수근)



  나무가 있는 마을하고 나무가 없는 마을은 사뭇 다릅니다. 나무가 있는 마을에는 마을사람뿐 아니라 길손이나 나그네도 다리쉼을 할 만한 곳이 있기 마련입니다. 나무가 없는 마을에는 마을사람도 길손도 나그네도 다리쉼을 할 만한 곳이 없기 마련입니다.


  높다란 건물만 빼곡하게 선 도시에서는 그야말로 쉴 곳이 없습니다. 돈을 치르고 들어가야 하는 찻집이나 밥집이 되어야 비로소 쉴 수 있으나, 돈이 없고서야 이러한 곳에 들어갈 수도 있고 느긋하게 있을 수도 없습니다.


  나무가 잘 자라서 그늘을 드리우는 풀밭이나 평상이라면, 어른뿐 아니라 아이도 마음껏 뛰놀 수 있습니다. 나무가 없고 자동차와 건물만 빽빽한 도시에서는 어른도 느긋하게 쉴 자리가 없으며, 아이는 아무 데에서나 뛰거나 달리지 못합니다.



고향산천을 막무가내로 뜯어고치는 건설의 포크레인 소리, 여기저기 엄청나게 파뒤집어 쌓아놓은 흙더미. 아, 아, 하루라도 좋다 건설 없는 평화로움 속을 나는 거닐고 싶다. 정말 우린 왜 사는가? (세한도)



  시집 《나무》에는 삽차 이야기가 곧잘 나옵니다. 삽차가 고향마을 들과 내와 숲을 망가뜨리는 이야기가 곧잘 나옵니다.


  삽차를 모는 일꾼은 위에서 시키니까 삽차를 몰밖에 없습니다. 삽차를 몰도록 시키는 웃사람은 언제나 ‘개발·발전’을 외칩니다. 그런데, 웃사람이 외치는 개발이랑 발전은 늘 ‘시골이랑 숲을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려’서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새로운 도시를 일으키거나 공장을 늘리는’ 모습입니다.



한없이 부드러운 손을 뻗어 다른 나뭇잎을 건드리며 / 서로 신비로워서 깜짝깜짝 놀라는 저 몸짓들을 좀 보라지 / 어, 저 오리나무 아래 연보라색 아기붓꽃 보아 / 고사리도 손을 쪽 폈구나 두릅잎도 피고, 찔레순도 자랐네 / 너는 둥글레 싹이구나 캄캄한 땅 속에서 얼마나 천천히 솟았기에 (숲)



  무화과밭에 가 보면, 무화과나무 가지를 철사로 단단히 감아서 땅바닥에 붙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무화과알을 따기 좋도록 한다고도 하고, 무화과나무는 가지를 삭둑 잘려야 더 굵은 알을 맺는다고도 합니다. 능금나무도 배나무도 모두 앉은뱅이나무이기 일쑤입니다. 포도나무는 열 해 즈음 포도를 맺으면 잘 맺는 셈이라고 합니다.


  백 해는 우습고 천 해는 가볍게 산다고 하는 나무인데, 오늘날 문명사회에서 발전과 개발을 외치는 흐름으로는 나무 한 그루가 백 해는커녕 쉰 해나 서른 해조차 못 삽니다. 천 해를 살면서 넉넉히 모든 사람과 짐승과 벌레한테 나누어 줄 열매인데, 사람들끼리 더 많이 거두어서 더 많이 팔고 더 많이 쓴다고 하는 발전논리와 개발논리에 휩쓸려서 나무를 괴롭힐 뿐입니다.



가을비 그친 강물이 곱다 / 잎이 다 진 강가 나무 아래로 다희가 책가방 메고 혼자 집에 가는데, 그 많은 서울 사람들을 다 지우고 문재는, 양말을 벗어 옆에다 두고 인수봉을 바라보며 혼자 술 먹는단다. (맨발)



  여름이 저무는 들녘이 곱습니다. 가을로 들어서는 하늘이 곱습니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부는 바람이 곱습니다. 나무 한 그루가 곱습니다. 소나무이든 방울나무이든 느티나무이든 감나무이든, 어느 나무이든 모두 곱습니다.


  우리 마을 어귀를 밝히는 배롱나무도 곱고, 우리 집 마당에서 의젓하고 씩씩하게 크는 후박나무도 곱습니다. 아침 낮 저녁으로 나무한테 인사하면서 내 마음도 곱게 거듭납니다. 나무하고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나무 같은 마음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시골에도 도시에도 싱그럽고 예쁘면서 멋진 나무가 가득하기를 빌어요. 사람들 가슴속에 고운 사랑이 피어날 수 있기를 꿈꾸어요. 4348.8.2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리 크리스마스, 늑대 아저씨!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46
미야니시 타츠야 글 그림,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56



너희를 사랑해, 아이들아

― 메리 크리스마스, 늑대 아저씨!

 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

 이선아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02.11.25. 7500원



  풋감이 떨어지면서 쿵 소리를 내는 늦여름입니다. 무르익지 못하고 떨어지는 감알은 모두 나무한테 돌아갑니다. 땅바닥에 구르는 풋감을 그러모아서 감나무 둘레로 모읍니다. 이 풋감을 고이 건사해서 옷감에 물을 들이기도 하는데, 나는 감물 들이기까지는 할 줄 모릅니다.


  시골집에서 살며 처음 ‘풋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을 적에는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쿵 하고 큰소리가 나니까 놀랄밖에요. 그러나 밖에 나가 보면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있는 것이라고는 땅바닥을 구르는 감알뿐입니다.


  이제 아이들도 지붕을 쿵 때리는 소리가 나면 또 감이 떨어졌네 하고 여깁니다. 늦여름까지는 풋감이요, 가을로 접어들면 ‘잘 익은 감’입니다. 잘 익은 감이 떨어지면, 나무타기를 하지 않고도 고맙게 감알을 얻습니다.



배고픈 늑대 한 마리가 아기 돼지들을 몰래 훔쳐보았어요. “상냥한 마음이 가득가득? 쳇 신나는 크리스마스 좋아하네!” (3쪽)



  미야니시 타츠야 님이 빚은 그림책 《메리 크리스마스, 늑대 아저씨!》(시공주니어,2002)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늑대 아저씨’ 하나가 나오고, ‘아기 돼지’ 여럿이 나옵니다. 늑대 아저씨는 몹시 배고픕니다. 겨우내 제대로 못 먹었습니다. 늑대 아저씨가 겨울잠이라도 잔다면 걱정할 일이 없을 테지만, 겨울에 겨울잠을 안 자는 짐승은 겨울에도 먹이를 찾아서 숲을 돌아다녀야 해요.


  그림책에 나오는 늑대 아저씨는 먹잇감을 찾아서 이리저리 살피다가 아기 돼지 무리를 만납니다. 아기 돼지는 한집을 이루어 오순도순 지냅니다. 늑대 아저씨가 가만히 살피니 아기 돼지들만 잔뜩 있고 어른 돼지는 없습니다. 옳거니 잘 되었구나 싶어서 겨우내 주린 배를 채우려고 합니다. 늑대 아저씨는 아기 돼지를 몽땅 사로잡습니다. 이 많은 아기 돼지를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아주 들뜹니다.


  그런데, 아기 돼지들을 몽땅 사로잡은 늑대 아저씨가 그만 땅바닥에 자빠집니다. 아기 돼지들을 잡다가 ‘아기 돼지들이 마련한 성탄절 나무’를 우지끈 부러뜨렸는데, 늑대 아저씨가 부러뜨린 나무를 늑대 아저씨 스스로 밟아서 그만 자빠졌지요.



아기 돼지들은 부드러운 풀밭에 떨어졌기에 하나도 다치지 않았어요. “늑대 아저씨, 괜찮을까?” 늑대는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10쪽)



  아기 돼지들을 사로잡아서 좋다고 춤추다가 땅바닥에 자빠진 늑대 아저씨는 꼼짝을 못 합니다. 아기 돼지들은 모두 부드러운 풀밭에 떨어져서 아무도 안 다쳤습니다. 이때에 아기 돼지들은 늑대 아저씨를 붙잡아서 크게 꾸짖을 수 있었을 텐데, 아기 돼지들은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기 돼지들은 늑대 아저씨를 살뜰히 보살핍니다. 다친 곳을 찬찬히 어루만져 줍니다.


  늑대 아저씨는 어떤 마음일까요? 팔도 다리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드러눕기만 해야 하는 늑대 아저씨는 어떤 마음일까요?



“그, 그게 아냐! 아픈 데가 다 나으면 너희들을 죄다 잡아먹어 버린다고!” 늑대가 바락바락 소리쳤어요. 그렇지만 아기 돼지들에게는 “우, 우우우! 우우우웃 우우우우우 …… 우우우웃!” 하는 소리로 들릴 뿐이었죠. “이번에는 ‘고맙다’고 인사하는 건가?” (15쪽)



  몸이 나으면 아기 돼지들을 모두 잡아먹겠다고 울부짖는 늑대 아저씨입니다. 그런데 ‘늑대 말’을 돼지는 못 알아듣는다고 해요. 더욱이 ‘얼굴도 다쳐’서 입에 붕대를 친친 감았으니, 늑대 아저씨가 외치는 말은 아기 돼지들한테 하나도 안 들려요. 아기 돼지들은 늑대 아저씨가 고마워 하는가 보다 하고 여깁니다. 늑대 아저씨는 갈수록 어처구니없다고 여겨서, 더 큰소리로 ‘너희 다 잡아먹겠노라’ 하고 자꾸 외치지만, 이 말은 아기 돼지들한테 ‘참말 고맙다’고 하는가 보다 하는 소리로만 들려요.


  이리하여 늑대 아저씨는 그예 눈물까지 흘립니다. 그리고, 아기 돼지들은 늑대 아저씨가 ‘흘리는 눈물’은 더없이 고맙고 기쁘다는 뜻으로 여깁니다.



그날 밤이었어요. “메리 크리스마스, 늑대 아저씨. 이거, 우리가 드리는 선물이에요. 빨리 나으세요.” 아기 돼지들은 침대에 살며시 빨간 장갑을 내려놓았어요. (20∼21쪽)



  가을 어귀로 들어서면서 무화과알이 하나둘 익습니다. 가을로 접어들면 무화과알도 감알도 곱게 익습니다. 우리 집 감순이는 “감 아주 맛있더라.” 하면서 감을 얼른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 가을부터 겨울 끝자락까지 먹는 감알이요, 겨울이 끝나고 봄으로 접어들 때부터 맛볼 수 없는 감알입니다. 봄으로 접어들면 감알을 더 맛볼 수 없지만, 겨우내 마련한 모과차를 마실 수 있고, 봄이 한창 무르익어 여름으로 접어들려고 하면 들딸기를 훑을 수 있어요.


  들과 숲은 우리를 늘 아끼면서 열매를 베풉니다. 우리는 늘 들과 숲에서 고마운 밥을 얻습니다. 성탄절은 어떤 날일까요? 그림책에 나오는 아기 돼지는 겨울 한복판에 성탄절 놀이를 하며 기쁘게 웃습니다. 저희를 잡아먹으려고 하던 늑대 아저씨한테도 기쁘게 사랑을 베풀어요.


  그림책을 보면서, 또 우리 집 아이들을 보면서, 참말로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이들이 제 어버이나 둘레 어른한테 베푸는 것은 언제나 오직 사랑입니다. 그리고, 어버이나 여느 어른이 아이들한테 줄 수 있는 것도 늘 오로지 사랑입니다.


  감나무가 감알을 베풀고 무화과나무가 무화과알을 베풀듯이,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을 베풉니다. 아이도 어버이한테 사랑을 선물합니다. 성탄절이라는 날은, 또 한겨레한테 설날이나 한가위 같은 날은, 바로 서로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을 넉넉히 나누는 날이겠지요. 성탄절이나 설날이 아니어도 한 해 내내 한결같이 서로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으로 살 때에 즐거울 테고요. 4348.8.2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십일분의 일 1
타카토시 나카무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49



우리가 함께 하면서 즐거운 하루

― 십일분의일 (1/11) 1

 나카무라 타카토시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9.25. 4800원



  한집을 이루는 사람은 혼자일 수 있고 여럿일 수 있습니다. 한집에 한 사람만 있더라도, 한마을을 이루자면 ‘여러 한집’이 모여야 합니다. 그러니, 한마을을 이루려면 여러 사람이 골고루 어우러져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도 있고 저러한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한별을 이루는 이 지구에는 여러 나라와 겨레가 있습니다. 같은 나라이면서 여러 가지 말을 쓰기도 하고, 여러 겨레가 모인 나라에서 한 가지 말을 쓰기도 합니다. 삶과 말이 같을 적에는 겨레요, 삶과 말이 다르더라도 한마을을 슬기롭게 이루려 하면 나라입니다.



“축구는 이제, 취미 삼아 할 거야.” “하지만 너만큼 실력 좋은 사람이 축구를 안 하는 건 아까운데.” “국가대표가 그렇게 말해 주니 기쁘긴 한데, 이미 결심했어.” (18쪽)

“난 축구를 계속할 수 있었어. 그건, 축구가,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야.” (32쪽)



  혼자서 무대에 오르는 운동경기가 있고, 여럿이 무대에서 뛰는 운동경기가 있습니다. 혼자서 무대에 오른다 하더라도 이 한 사람을 돕거나 돌보는 사람은 여럿입니다. 여럿이 무대에서 뛰는 운동경기라면 그야말로 여러 사람이 한마음이 되어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나카무라 타카토시 님이 빚은 만화책 《십일분의일(1/11)》(학산문화사,2013) 첫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은 ‘축구’라는 운동경기를 놓고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혼자서 잘 한다고 잘 할 수 있는 운동경기가 아닌, 여럿이 함께 도우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경기를 보여줍니다. 한두 사람이 솜씨를 뽐낼 때에 놀라운 성적을 거둘는지 모르나, 모든 사람이 한몸과 한마음이 되어 움직일 적에 비로소 ‘이 운동경기를 하는 보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나도 비슷한 처지였던지라 젊었을 땐 둘이서 정말 고생했어. 아빠는 ‘호강시켜 주지 못 해 미안하다’고 늘 내게 말했지. 그렇게 아빠는, 대학에 가지 않은 것, 고교 시절 달리기만 했던 걸 내내 후회했어. 그래서 최소한 내 아이들에게만은 나 같은 고생은 시키고 싶지 않다, 그게 아빠가 서클 따위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야.” (79∼80쪽)



  우리가 함께 하면서 즐거운 하루입니다. 우리가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빙그레 웃는 하루입니다. 우리가 같이 노래하면서 어깨동무하는 하루입니다.


  네 힘이 모자라면 내가 힘을 쓰면 됩니다. 내 힘이 모자라면 네가 힘을 쓰면 돼요. 둘 다 힘이 모자라면 이웃이나 동무를 부릅니다. 둘 다 힘이 넘치면 이웃이나 동무를 도우러 가요.


  물이 흐르듯이 삶이 흐릅니다. 물결처럼 기쁜 노래를 부르면서 삶을 가꿉니다. 물처럼 맑은 눈망울로 바라봅니다. 온누리를 적시는 빗물처럼 서로서로 마음을 촉촉히 적시는 고운 숨결이 됩니다.



“골도 어시스트도 아니야. 얼핏, 이 달리기는 그저 쓸데없는 짓으로 보일지 몰라. 하지만, 그렇게, 쓸데없을지도 모르는 걸 온힘을 다해 해야, 비로소 재미있는 축구로 이어지는 거야.” (87∼88쪽)

‘늘 혼자서 카메라에 빠져 있던 그녀를, 반 아이들은 괴짜 취급했지만, 그런 주변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왠지 무척이나 상쾌해 보였다.’ (117쪽)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자, 그렇게, 새로운 결심을 가슴에 품고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무렵, 내 몸은 변하기 시작했다.’ (122쪽)



  만화책 《십일분의일(1/11)》이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새롭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품을 때에 비로소 새롭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스스로 새롭지 않겠다는 마음이 될 때에 참말 새로움이 하나도 없는 하루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보스럽게 산다면 그저 바보일 테지요. 그러나, 바보스럽게 산다고 해서 나쁘지 않습니다. 바보스러움을 온몸으로 겪을 뿐입니다. 슬기롭게 살 적에는 슬기로운 빛이 널리 퍼집니다. 나부터 슬기로우면서 둘레에 밝은 웃음을 베풀고, 내 둘레에서 슬기로우면서 나한테까지 밝은 웃음이 퍼집니다.


  조금 늦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조금 일찍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일찌감치 바보스레 살다가 뒤늦게 바보스러움을 떨칠 수 있어요. 차근차근 한길을 걸으면서 바보스러움을 씻은 뒤에, 빙그레 웃음꽃을 피울 수 있어요.



“결국 판단은, 네 몫이야. 네가 가고 싶은 길을 선택해라.” (81쪽)

“진심으로 변하려 한다면, 사람은 변할 수 있어요.” (152쪽)

‘지금, 이제야 겨우 딱 한 걸음 다가갔다. 그 시절 내가 그토록 꿈꿨던, 겉모습만이 아닌, 반짝반짝 빛나는 나 자신에게.’ (163쪽)



  내 길은 내가 걸어갑니다. 내 밥은 내가 먹습니다. 내 말은 내가 합니다. 내 노래는 내가 부릅니다. 내 웃음은 내가 짓습니다. 내 빨래는 내가 합니다. 참말 모두 내 몫을 나 스스로 즐겁게 맡습니다. 내 꿈은 내가 이루고, 내 사랑은 내가 길어올려요.


  너도 나도 얼마든지 반짝반짝 빛나는 숨결입니다. 나도 너도 언제나 고요히 피어나면서 눈부시게 일어서는 나무와 같습니다. 열한 사람이 함께 운동장에서 뛰는 축구처럼, 나는 열한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때로는 운동장에서 뛰지 못하고 뒷자리에 앉아서 지켜보는 사람일 수 있어요. 때로는 뒷자리에도 앉지 못하고 관중석에 앉아서 쳐다보는 사람일 수 있어요.


  어느 자리에 앉든 다 재미있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내 몫은 즐거이 맡을 수 있습니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달릴 수 있고, 물주전자를 떠올 수 있으며, 목청껏 기운을 북돋아 줄 수 있습니다. 서로 아끼는 마음일 적에는 언제 어디에서나 사랑스러운 벗님입니다. 4348.8.2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비안 마이어 : 나는 카메라다 비비안 마이어 시리즈
비비안 마이어 지음, 박여진 옮김 / 윌북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212



우리는 누구나 ‘이야기 도서관’이다

―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

 비비안 마이어 사진

 존 말루프 보관

 로라 립먼·마빈 하이퍼만 글

 하워드 그린버그 엮음

 박여진 옮김

 윌북 펴냄, 2015.3.30. 25000원



  요즈음 ‘사람책’이라는 말이 차츰 퍼집니다. ‘사람이 바로 책이다’라는 뜻으로 쓰는 ‘사람책’입니다. 종이로 빚어야만 ‘책’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오롯이 ‘책과 같다’는 뜻입니다.


  종이로 빚은 책을 내놓을 때에만 ‘작가’이지 않습니다. 연필을 손에 쥔 적이 없고, 교사나 교수나 강사가 되어 본 일이 없더라도, 아이들한테 삶을 이야기로 물려준 사람은 누구나 ‘작가’라고 할 만합니다. 온 삶으로 사랑을 아이와 이웃과 동무한테 고스란히 보여준 사람도 누구나 ‘작가’라고 할 만합니다.


  작품이란 무엇일까요? 예술이나 문화라는 이름이 붙을 때에만 작품일까요? 전시회를 하지 않거나 책을 내지 않더라도, 온몸이 고스란히 ‘작품’과 같아서, 호미질을 하는 손놀림이나 밥을 짓는 손놀림이나 바느질을 하는 손놀림이 한결같이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운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사진은 바로 ‘사람책’을 찍습니다. ‘사람이 바로 책이다’ 하고 느낄 만한 모습을 보면서, 사진기를 찰칵 눌러서 사진 한 장을 남깁니다. 사진에 담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면서 저마다 아름다운 ‘사람책’ 모습이라고 할 만합니다.




마이어의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 이야기는 보는 이들마다 달라진다 … 그녀가 찍은 사람들과 풍경은 누구라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기 전에 먼저 보아야 한다. 마이어는 탁월한 시선과 완벽한 기술을 겸비한 예술가였다 (9쪽/로라 립먼)



  비비안 마이어 님이 찍은 사진으로 엮은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윌북,2015)를 읽습니다. 이 사진책은 비비안 마이어 님이 엮지도 않았고, 비비안 마이어 님이 뜻하지도 않았습니다. 젊은 날부터 늙어서 죽는 날까지 늘 사진기를 목걸이처럼 몸에 품고 살던 사람이 걸어온 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진책인데, 비비안 마이어 님이 ‘한뎃잠’도 자다가 ‘돈이 없어서 애먹’기도 하다가, 그만 이녁 사진과 책과 물건이 모두 경매로 넘어갔다고 해요.



부동산 중개업자인 존 말루프는 380달러에 30만 장에 달하는 네거티브 필름과 소지품들을 구매했다. 자연스럽게 그는 그녀의 삶이 남긴 무런들을 소유하게 되었다 … 실제로 마이어의 작품은 무엇일까? 생전에 마이어는 자신의 작품에 우선순위를 매기지 않았다. (40, 41쪽/마빈 하이퍼만)




  ‘부동산 중개업자’인 ‘존 말루프’라는 사람은 380달러에 30만 장에 이르는 필름과 온갖 물건을 손에 넣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죽음을 앞두고 이녁 사진과 책과 물건을 모두 빼앗겨야 한 비비안 마이어 님 손에는 ‘돈 몇 푼’이 흘러갔을까요? 아마 한푼조차 안 갔을 테지요. 경매에 넘겨졌다고 하니까, 코앞에서 이녁 모든 것이 갑자기 이슬처럼 사라지는 모습만 지켜보다가 눈을 감고 흙으로 돌아갔겠구나 싶습니다.


  다시금 생각합니다. 380달러에 필름 30만 장입니다. 이밖에 다른 것도 아주 많다고 하니까(자그마치 컨테이너 다섯 대 부피), 10달러에 필름 1만 장을 산 셈입니다. 마흔 해 넘도록 바지런히 찍은 사진을 단돈 몇 푼에 빼앗긴 비비안 마이어 님이라고 할 만합니다. 존 말루프 님은 인터넷경매로 ‘비비안 마이어 사진’을 팔려고 했다는데(팔았는지 안 팔았는지까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사진 한 장마다 값을 얼마쯤 붙여서 내놓았을까요? 이를테면, 오드리 햅번을 찍은 사진은 값을 얼마쯤 붙여서 내놓았을까요?



주의 깊게 사진을 들여다보고 사람과 공간을 관찰하는 일은 특별하고도 은밀한 즐거움이었다. 마이어를 알았던 사람들이 그녀를 이야기할 때 독특한 차림새나 걸음걸이도 자주 언급하지만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은 그녀의 목에 언제나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는 사실이다 … 아이들에게 음식이 식탁에 오르는 경로를 보여주기 위해 도축 조합에 데리고 가기도 했고, 자필 서명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으며, 동네 공원이나 해변에 소풍을 가거나, 민주당 전당 대회 기간에 열린 대학생들의 격렬한 시위 현장에도 데리고 갔다고 한다. (18, 20쪽/마빈 하이퍼만)




  내가 찍는 사진을 돌아봅니다.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을 적에 이 아이들한테서 밝게 피어나는 눈부신 한때를 즐겁게 아로새깁니다. 먼저 마음에 아로새기고, 그 다음에 사진으로 옮깁니다. 언제나 마음에 기쁘게 담은 뒤에 사진으로도 가볍게 옮깁니다.


  사랑으로 짓고 싶은 하루이기에, 사진기를 쥐는 마음도 사랑이 됩니다. 노래를 부르며 어깨동무하고 싶은 삶이기에, 사진기를 쥐는 눈빛도 노래처럼 흐릅니다.


  스스로 사랑일 때에 사랑스레 사진을 찍고, 스스로 노래일 때에 노래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스스로 슬프기에 슬픈 빛이 어리는 사진을 찍으며, 스스로 아프기에 아픈 넋이 드러나는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책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에 실린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 사진책에 실린 비비안 마이어 님 사진은 모두 ‘비비안 마이어 님 삶’입니다. 비비안 마이어 님이 어떤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든, 비비안 마이어 님한테는 사진기를 목걸이로 삼아서 어디이든 마음껏 누비고 다니는 삶이 바로 기쁨이요 노래요 사랑이었습니다.


  비비안 마이어 님이 낳지 않았으나 비비안 마이어 님이 돌보는 아이들을 이끌고 도축장에 가거나 전시장에 가거나 골목길을 다니는 동안에도 사진기는 늘 비비안 마이어 님 목에 걸렸다고 합니다. 마음으로 삶을 읽고, 손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사랑으로 삶을 누비고, 기쁨으로 사진을 빚습니다.




마이어가 열심히 모았던 것은 사진만이 아니다. 마이어는 세실 비튼부터 토마스 스트루스에 이르기까지 사진가에 관한 논문을 포함해 수천 권의 책들을 모았다. 뿐만 아니라 사진엽서, 유명인사의 사인이 든 사진, 야구 카드, 모조 보석, 정치 홍보용 배지, 우표, 라이터, 구둣주걱, 병따개 등도 수집했다 … 갱단 기사부터 케네디에 관련된 기사, 상담을 해 주는 디어 애비 칼럼, 현대 사진전 리뷰 같은 기사들을 발췌해 모았다. 그 분량이 파일 수백 권에 달했다. (22쪽/마빈 하이퍼만)



  우리는 누구나 ‘도서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책’이면서 ‘사람도서관’입니다. 둘레에 이야기로 삶과 사랑을 노래처럼 들려줄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저 온몸으로 삶과 사랑을 노래처럼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슬기로운 삶을 환하게 밝히듯이, 우리는 저마다 책이면서 도서관입니다.


  그리고, 비비안 마이어라고 하는 분은 이녁 두 손에 사진기를 쥐면서 ‘온몸과 사진으로 삶을 적바림하는 도서관’이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비비안 마이어 님이 빚은 사진을 두루 살펴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수많은 모습’이 드러나고, ‘사람으로서 이 땅에 태어나서 하는 일과 놀이’가 나타나며, ‘사람이 사랑과 꿈으로 짓는 이야기’가 애틋하게 흐릅니다.




대다수 사진가들이 안전하게 최상의 사진을 확보하려고 같은 대상을 다양한 구도로 여러 장 찍는 데 반해 마이어는 관심이 있고 눈에 들어온 피사체를 단 한 장만 찍었다 … 그녀가 찍은 도시 풍경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난 것은,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높이겠다거나 맹목적으로 숭배하게 만들겠다거나 변화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삶이란 무엇이며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계속 직면하고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그녀 자신의 욕구였다. (26, 30쪽/마빈 하이퍼만)



  아마추어나 프로를 따로 나눌 까닭이 없습니다. 역사책에 이름을 남겨야 비로소 ‘작가’나 ‘사진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이라고 하는 삶은 몇몇 사진가로 뭉뚱그릴 수 있지 않습니다. 그림이나 노래나 글도 이와 같아요. 몇몇 뛰어나다거나 놀랍다고 하는 화가나 가수나 시인 같은 사람들로 뭉뚱그릴 수는 없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면 누구나 사진가입니다. 노래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수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시인이요 소설가입니다. 우리는 모두 작가입니다. ‘작가’, 한국말로 쉽게 풀자면, 우리는 모두 “짓는 사람”입니다. 삶을 짓고 사랑을 지어서 이 “삶 사랑”을 이야기로 새롭게 짓는 사람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진을 찍을 적에 ‘같은 모습’을 굳이 여러 눈길로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일부러 여러 눈길로 찍으며 놀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꼭 한 장만 찍어도 이야기꽃이 피어나니, 애써 여러 눈길로 찍지 않아도 됩니다. 둘레를 휘 살피면 사진으로 담을 이야기가 흘러넘칩니다. 한곳에 고일 겨를이 없습니다. 나비처럼 춤추는 몸짓으로 이곳저곳 사뿐사뿐 즐겁게 웃으며 돌아다니면서 사진꽃이 핍니다.


  삶꽃을 피우듯이 사진꽃을 피우고, 사진꽃을 피우기에 사랑꽃이 피며, 사랑꽃은 이내 이야기꽃으로 거듭납니다.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은 어느새 사람꽃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사진책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는 아주 재미있습니다.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말없이 들려주거든요. 사진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조용히 알려주거든요. 그러면, 사람은 무엇일까요? 사진책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에 실린 숱한 사진을 빌어서 말하자면, 사람은 노래이고 춤이고 빛이고 고요이고 웃음이고 눈물이고 사랑이다가, 이 모두를 아우르는 이야기 한마당입니다. 4348.8.2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은 날
박일환 지음, 오윤화 그림 / 창비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사랑하는 시 65



어머니도 아직 사랑을 잘 모르나 봐

―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은 날

 박일환 글

 오윤화 그림

 창비 펴냄, 2013.12.16. 8500원



  아이가 늦도록 잠들려 하지 않으면 어버이는 고단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고단할까요? 아이가 안 자서 어버이인 내가 못 자거나 다른 일을 못 하기에 고단할까요? 아이가 밤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않으면 아침에 늦게 일어나거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더라도 몸이 찌뿌둥할까 싶어서 고단할까요?


  아이를 꾸짖는 어버이는 ‘아이 아닌 어버이 스스로’를 꾸짖는 셈입니다. 아이를 나무라는 어버이는 ‘아이 아닌 어버이 스스로’를 나무라는 셈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꾸짖거나 나무라는 어버이는 ‘아이가 시무룩해 하거나 울’면, 이런 모습을 보면거 가슴이 미어집니다. 아이를 꾸짖거나 나무랄 일까지 아니었는데 괜한 짓을 한 줄 뒤늦게 알아채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이한테 한 말은 모두 어버이가 저 스스로한테 한 말이라 가슴에 날카롭게 꽂히고 말지요.


  이와 달리, 아이를 따사롭게 보듬으면서 아끼는 말은 아이한테뿐 아니라 어버이한테도 하는 말입니다. 아이한테 부드럽고 착하게 흐르는 말은 바로 어버이 스스로한테 부드럽고 착하게 흘러요. 따스하면서 살가이 부르는 자장노래는 아이한테도 곱게 스미지만, 이 노래를 부르는 어버이 가슴에 한결 뚜렷하면서 곱게 감겨들기 마련입니다.



떨어진 손톱을 보며 / 빙긋 / 조각 웃음을 흘리는데 // 손톱 깎다 말고 뭐 해? / 엄마가 소리치는 바람에 / 얼른 손톱을 쓸어 모았다. (손톱)



  박일환 님이 빚은 동시집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은 날》(창비,2013)을 읽습니다. 책이름부터 뭔가 ‘있어’ 보이는 동시집입니다.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았다니, 아팠을까요 서운했을까요 놀랐을까요 슬펐을까요 괴로웠을까요 미웠을까요, 아니면 사랑스러웠을까요. 아이 어머니는 왜 아이를 빗자루를 들어서 때렸을까요. 맞아서 아프라고 빗자루를 들었을까요, 아니면 맨손으로 손찌검을 하기 싫어서 빗자루를 들었을까요, 아니면 눈에 빗자루가 보여서 바로 집어서 성풀이를 하려 했을까요.


  어머니도 아직 사랑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아니, 어머니라고 해서 사랑을 잘 안다고 할 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어머니가 되기 앞서’까지 초·중·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입시에 빠져들어 헤매다가 대학교를 마쳤고, 대학교를 마친 뒤 몇 해쯤 회사 일을 하다가 아기를 배어 회사를 그만둔 뒤 아기를 낳은 어머니가 많아요. 이렇게 살아온 어머니는 ‘사랑을 찬찬히 돌아볼 겨를’이 없기 마련입니다. 이는 아버지도 똑같아요. 참말 사랑을 잘 모르니 멋모르고 빗자루를 들어서 아이를 나무라거나 꾸짖고 맙니다.



달이 나에게 / 고운 달빛과 긴 그림자를 / 선물로 주었다. (달밤)


콩알처럼 동글동글한 / 콩새는 / 콩을 좋아해. (콩새)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을 선물합니다. 어버이는 사랑을 선물하려고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 사랑을 선물합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사랑을 선물하기에 아이도 어버이한테 사랑을 선물하지 않아요. 그럼 왜 아이는 어버이한테 사랑을 선물할까요?


  자,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 돈을 선물할까요? 아니지요. 아이는 어버이한테 밥을 선물할까요? 아니지요. 옷이나 집을 선물할까요? 아니에요. 아이는 어버이한테 자동차나 자격증이나 성적표 따위를 선물하지 않아요. 아이는 어버이한테 케익이나 떡도 선물하지 않아요. 두 살 아기가 밥을 지을 수도 없지만, 뭘 돈으로 장만해서 선물할 수도 없습니다.


  온누리 모든 아이는 어버이한테 오직 사랑을 선물합니다. 사랑받기에 사랑을 선물로 하지 않아요. 아이 숨결은 언제 어디에서나 모두 사랑뿐이라서, 늘 어버이한테 사랑을 선물합니다.



별만큼 작은 별꽃. / 별만큼 예쁜 별꽃. // 별은 밤하늘에 숨어서 빛나고 / 별꽃은 길섶에 숨어서 피지요. // 별은 고개를 들어야 보이고 / 별꽃은 고개를 숙여야 보이지요. (별꽃)



  사랑을 선물하면서 사랑을 받는 아이는 별꽃을 별처럼 알아봅니다. 학자가 별꽃이라는 이름을 붙였기에 ‘별꽃’이라 하지 않습니다. 아이 스스로 길바닥을 쳐다보고 풀밭을 바라보다가 문득 ‘와, 여기에 하얀 별이 조그맣게 내렸네!’ 하고 놀라면서 ‘별꽃’이라는 이름이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아이는 별꽃이 별꽃나물인지 아닌지 궁금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그저 하얀 별이 낮에도 방긋방긋 웃는구나 싶어서 반갑습니다. 개미를 보려다가, 사마귀나 메뚜기를 보려다가, 나비나 잠자리를 잡으려다가, 아이는 문득 별꽃을 보고는 별을 그리면서 온마음이 새롭게 푸근합니다.



엄마 차 타고 가는데 / 갑자기 / 택시가 옆에서 끼어들자 / 엄마가 욕을 했다. / 나도 옆에서 / 한마디 거들었더니 / 엄마 얼굴이 굳어졌다. (엄마 얼굴이 빨개졌다)


아빠 차 타고 가다 / 깜박 잠이 들었는데 // 어느새 시골에 다 왔다며 / 빨리 내리란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건?)



  아이는 별꽃을 바라보면서 나비하고 노는데,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동차를 몹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동차를 모느라 아이를 쳐다볼 겨를이 없습니다. 자동차를 몰면서 옆이나 뒤를 돌아볼 사람은 없어요. 말이 안 되지요. 자동차를 싱싱 몰다가 옆을 보면 어찌 되겠어요? 큰일이 나지요.


  그렇다고 자가용을 모는 일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가용을 모는 어버이는 그만큼 아이 얼굴을 또렷이 쳐다볼 겨를이 없다는 뜻입니다. 자가용을 모느라 다른 자동차와 길알림판과 찻길 따위를 살피느라, 막상 아이가 어떤 눈빛이요 몸짓이며 마음인가를 살필 틈이 없다는 뜻입니다.


  박일환 님은 〈엄마 얼굴이 빨개졌다〉라든지 〈세상에서 가장 빠른 건?〉처럼 재미난 동시를 씁니다. 비록 자동차를 몰 적에 어버이는 아이하고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지 못하지만, 이런 삶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아요. 어머니는 얼굴이 벌개지고, 아버지는 아이가 잘 자도록 하면서 시골집까지 잘 왔구나 싶어 마음을 놓는 이야기를 찬찬히 잘 들려줍니다.



모기가 / 팔뚝을 물었다. // 빨갛게 / 솟아오른 자리에 // 할머니가 / 침을 발라 주셨다. // 모기 주둥이처럼 / 내 입이 / 삐죽 튀어나왔다. (모기 주둥이)



  〈모기 주동이〉 같은 동시도 재미있지요. 할머니를 몹시 사랑하고 좋아해서 ‘할머니 침이 묻은 밥’도 아무렇지 않게 먹을 아이가 있을 테고, 모기 물린 자리에 할머니가 침을 바르면 징그럽거나 싫다고 여길 아이가 있을 테지요. 이래서 좋고 저래서 나쁘지 않습니다. 아이들마다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른 것을 보면서 자라기 때문에, 그저 다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다만, 이럴 때에, 그러니까 아이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만날 적에, 어머니나 아버지도 곁에 있기를 바라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슬기롭게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시겠지만, 어머니나 아버지도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을 새삼스레 느끼면서 새롭게 받아들이고, 또 아이한테 살가운 징검다리 구실을 할 수 있으면 한결 아름다우리라 느낍니다. 이러한 삶이 되면, 동시도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만하겠지요.


  그나저나, “파란 고추는 익으면 / 빨간 고추가 되고 // 파란 사과도 익으면 / 빨간 사과가 되는데 // 파란 수박은 아무리 익어도 / 파란 수박인걸(엉큼한 수박).” 같은 이야기가 흐르는 동시는 좀 아쉽습니다. 풋고추나 풋능금은 ‘푸른 빛깔’입니다. 풀빛입니다. ‘파란 빛깔’이 아니지요. 더더구나 수박을 놓고 “파란 수박”이라고 하다니요.


  “새파란 보리싹”처럼 쓰기도 합니다만, 오늘날 아이들은 시골에서 거의 안 살 뿐 아니라, 시골일조차 제대로 모릅니다. 먼 옛날에 누구나 시골에서 나고 자라면서 시골일을 하던 때라면 “새파란 보리싹”이라 말해도 다 알아듣습니다만, 요즈음 도시 아이들을 헤아린다면, 또 도시에서 가게에서나 고추랑 능금이랑 수박을 볼 아이들을 헤아린다면, 고추도 능금도 수박도 ‘푸른’이라는 말을 붙여서 나타내야 올바릅니다. 4348.8.25.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동시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