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좋아해요
뻬뜨르 호라체크 지음 / 시공주니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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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0



섬돌맡에서 잠든 마을고양이

― 고양이가 좋아해요

 뻬뜨르 호라체크 글·그림

 편집부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05.9.1. 6500원



  뻬뜨르 호라체크 님은 작고 가벼우면서 알록달록 눈부신 그림책을 선보입니다. 《작은 새야 안녕》이라든지 《꼬마 생쥐의 새 집 찾기》라든지 《나비가 팔랑팔랑》이라든지 《딸기는 빨개요》라든지 무척 예쁘장한 그림책이 많습니다. 《자동차가 부릉부릉》이나 《기차가 칙칙폭폭》 같은 그림책은 자동차와 기차 같은 탈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손에서 떼지 못하리라 느낍니다.


  그림책 《고양이가 좋아해요》는 고양이를 좋아하거나 집에서 기르는 아이들이라면 참으로 손에서 뗄 수 없을 만하리라 느낍니다. 저마다 빛깔도 모습도 크기도 다른 고양이를 한 마리씩 가만히 보여주면서, 이 고양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살몃살몃 곁들입니다.



하얀 고양이는 생선 먹기를 좋아해요.



  우리 집에는 마을고양이가 늘 오갑니다. 마을고양이 여러 마리가 마당 한쪽에서 살고, 뒤꼍이랑 텃밭에도 여러 마을고양이가 삽니다. 어느 아이는 모과나무 옆에서 잠들고, 어느 아이는 감나무 밑에서 잠듭니다. 어느 아이는 광에서 잠들고, 어느 아이는 마당에 놓은 평상 밑에서 잠듭니다. 어느 아이는 텃밭 풀숲에 서로 엉켜서 잠들고, 어느 아이는 우리 집 자전거 밑에서 새근새근 잠드는데, 어느 아이는 배짱도 좋아서 섬돌에 척 앉아서 잠듭니다.



이 커다란 고양이는 여러분을 잡아먹을지도 몰라요!



  고양이는 무엇을 좋아할까요? 고양이도 여느 들짐승처럼 제 먹이를 좋아하지요. 그리고, 놀이를 무척 좋아합니다. 게다가, 햇볕을 아주 좋아해요. 볕이 바른 곳이라면, 울타리이든 담벼락이든 지붕이든 가리지 않습니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서 햇볕을 듬뿍 받으면서 살짝 눈을 감지요. 때로는 게슴츠레 눈을 뜨거나 느릿느릿 검벅이다가 꼬르륵 잠들어요.


  우리 집에서 사는 마을고양이는 겨울에 햇볕이 더 그리우니 섬돌맡을 늘 알짱거리는데, 때때로 내 발에 밟힙니다. 드르륵 마루문을 열고 내려설 적에 미처 일어나지 않고 깊이 잠든 마을고양이는 물컹 밟히지요.


  여러 차례 밟히고도 꼭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마을고양이를 보면, 어쩌면 이 아이들은 이렇게 ‘밟히기’도 새삼스럽거나 재미난 놀이로 여길는지 모릅니다. 고양이는 고양이 스스로 싫어하는 몸짓이나 일은 안 하니까요.


  아이들도 고양이도 저마다 스스로 좋아하는 대로 놀거나 하루를 보냅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찾고,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사랑하면서, 다 함께 이 지구별에서 사이좋게 어우러집니다. 4348.11.14.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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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사 - 선사시대에서 헬레니즘 시대까지
토마스 R. 마틴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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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38



전쟁으로 얼룩진 ‘옛 그리스’ 역사는 바보스럽다

― 고대 그리스사

 토머스 R.마틴 글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펴냄, 2015.10.15. 2만 원



  오늘 하루는 앞으로 역사가 됩니다. 오늘을 살아낸 사람은 어제를 되새기는데, 어제가 바로 역사입니다. 어제를 돌아볼 줄 알면서 오늘을 씩씩하게 가꾸고, 오늘 하루 기쁘게 누린 살림을 모레에도 곱게 일구려는 마음이 됩니다. 오늘 하루 썩 기쁘지 못하거나 슬픈 살림이었으면, 이날을 차근차근 되씹으면서 모레에는 새로운 꿈이 자라도록 북돋우려고 하기 마련입니다.


  슬기롭게 보낸 하루는 앞으로도 슬기로운 발자국으로 남습니다. 어리석거나 바보스레 보낸 하루는 앞으로도 어리석거나 바보스러운 발자국으로 남습니다. 어느 발자국이든 모두 스스로 찍는 발자국이요, 스스로 내는 발자국입니다. 역사를 아는 사람이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가를 아는 사람이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날을 슬기롭게 지으려는 꿈이 있는 사람입니다.



여자들은 정착촌에 매인 몸이 되었다. 그들은 점점 더 규모가 커져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영농을 지원하기 위해 아이들을 키웠다. 여자들은 또한 대구모 가축 떼들의 2차 생산품을 가공하는 노동 집약적 일을 떠맡아야 했다. (42쪽)



  토머스 R.마틴 님이 쓴 《고대 그리스사》(책과함께,2015)를 곰곰이 읽습니다. 글쓴이 토머스 R.마틴 님은 《고대 그리스사》뿐 아니라 《고대 로마사》도 썼다고 합니다. 《고대 로마사》는 ‘로물루스에서 유스티니아누스까지’ 적은 역사책이라면, 《고대 그리스사》는 ‘선사시대에서 헬레니즘 시대까지’ 적은 역사책이라고 해요.


  자, 그러면 이들 역사책에는 그리스나 로마에서 벌어진 어떤 이야기를 다룰까요? 우리는 그리스나 로마와 얽힌 옛 발자국에서 무엇을 읽을 만할까요? 아스라한 옛날, 그리스와 로마는 어떠한 삶을 꾹꾹 눌러서 발자국으로 남겼을까요?



고온에서 금속을 합금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고안한 에게 해의 금속공들은 더 치명적인 무기, 전투를 위한 새로운 사치품, 더 좋은 농업이나 건축용 도구들을 만들어냈다. 이 새로운 기술 덕분에 금속 무기는 훨씬 더 치명적인 살상력을 얻게 되었다. (56쪽)


아르카이크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이 새롭게 획득한 기술을 이용하여 전승 문학을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호메로스의 두 장시이다. 근동의 이야기들이 많이 스며든 이 구전 서사시는 여러 세기에 걸쳐서 그리스의 후예들에게 자자손손 문화적 가치를 전달했다. (96쪽)



  《고대 그리스사》는 그리스를 둘러싼 정치와 사회와 문화를 다루는데, 이 가운데 정치는 거의 ‘전쟁 역사’라고 할 만합니다. ‘사회’를 살피면 ‘민주 제도’가 싹터서 뿌리를 내리려고 하는 흐름을 살핍니다. ‘문화’를 보면 아름다운 삶과 생각을 북돋운 슬기로운 사람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리스 옛 역사도 한국 옛 역사 못지않게, 정치권력을 쥔 이들이 서로 창이나 칼을 거머쥐고 땅을 차지하거나 뺏는 몸짓이 큽니다. 이른바 ‘영토 확장’이라든지 ‘노예 확보’를 노리려는 몸짓이요, 이웃한 ‘다른 지도자가 거느리는 땅’에 있는 자원에 군침을 흘리면서 가로채려는 몸짓이라고 할 만합니다. 옛 그리스에서 크게 꽃을 피운 멋지거나 놀라운 문화는, 바로 이웃에 있는 여러 나라를 쳐들어가서 땅과 사람과 자원을 빼앗았기에 이룰 수 있었다고 할 만합니다.



전쟁의 패배라는 참사로 자유를 잃어버린 그들은 그 이전에는 자유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재 노예가 된 것은 이성의 능력이 결핍되어서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모든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전쟁 포로를 노예로 팔아넘기는 것을 인정했다. (140쪽)


스파르타 사람들의 생활 방식은 그들이 전쟁에서 정복하여 노예로 삼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면서 정립되었다. 그들은 그 노예들을 경제적으로 수탈했는데, 노예의 수가 그들보다 훨씬 많았다. 정복당한 적대적 이웃들에게서 식량과 노동을 착취하고 또 그들에 대하여 우월성을 지키기 위해, 스파르타 사람들은 사회를 늘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는 군인 사회로 만들어 나갔다. (158쪽)



  스파르타 사람들은 이녁 사회에서 노예 숫자가 훨씬 많아서 늘 ‘군대 집단’ 같은 얼거리였다는데, 스파르타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이러한 사회 얼거리가 즐거웠을까요? 누가 날 칼로 찔러서 죽이려고 한다는 두려움을 늘 품고서 노예를 더욱 짓누르는 삶이란 얼마나 재미날까요?


  사내로 태어나서 꽤 어린 나이부터 군사 훈련을 받고서 ‘적군’을 무찌르는 삶만 배워야 한다면, 이웃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마음은 배우지 못하고, 그저 전쟁무기를 가득 채우고, 전쟁훈련을 더 해야 하며, 자꾸자꾸 이웃하고 전쟁을 벌여야 한다면, 이러한 사회를 이룬 사람들은 삶에서 어떤 보람을 누릴 만할까요.


  그러고 보면, 오늘날 지구별에서 미국은 전쟁무기와 군대를 어마어마하게 거느립니다. 미국은 여러모로 과학이나 문화나 문명도 뽐내지만, 전쟁무기와 군대를 가장 크게 뽐냅니다. 러시아도 미국 못지않고, 중국도 미국 못지않아요.


  어쩌면, 미국이나 러시아나 중국은 이들 나라가 거느리는 전쟁무기와 군대를 앞세워서 이웃 땅이나 사람이나 자원을 가로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무기와 군대로 나라를 지킨다고 여길 만합니다만, 전쟁무기와 군대 때문에 자꾸자꾸 더 전쟁을 부추긴다고도 할 수 있어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하여 타당한 이유를 제시해야 하고 또 그 결혼의 타당성을 남들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하며 아무런 증거도 없이 다른 사람이 자기의 이야기를 진실로 믿어 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는 사고방식이 초기 이오니아 사상가들이 이룬 가장 중요한 업적이었다. (197쪽)


놀랍게도 아테네 민회는 페르시아와의 거래를 거부했다. 아무리 많은 황금 덩어리를 안겨 주고 아무리 아름다운 영토를 준다고 해도, 동료 그리스인들에게 ‘노예제’를 가져오는 일과 연관된 페르시아의 뇌물은 받아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220쪽)



  정치를 다스리는 이들이 전쟁이나 군대에 돈과 힘과 품을 쓰지 않고, 오직 사람들이 아름답고 즐겁게 사는 길에 돈과 힘과 품을 썼다면 이 지구별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궁금합니다. 오늘날 미국과 러시아와 중국 같은 나라가 전쟁무기와 군대에 돈을 한 푼도 안 쓴다면, 한국 사회도 전쟁무기와 군대에 돈을 한 푼조차 안 쓸 수 있을 테고, 젊은이도 군대에 끌려가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전쟁무기와 군대에 들이던 어마어마한 돈으로 사회와 문화와 복지와 교육을 그야말로 훌륭하게 다스릴 만하리라 느낍니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는 남녘하고 북녘이 갈린 채 다투지요. 남녘뿐 아니라 북녘도 전쟁무기와 군대 때문에 ‘가난하거나 괴로운 사람들’이 아주 많아요. 남녘과 북녘이 하나인 나라로 거듭난다면, 서로 총칼을 맞댄 채 으르렁거려야 하지 않으니, 전쟁무기와 군대에 바치던 돈을 아주 크게 줄이거나 아낄 만합니다.


  흔히 ‘통일비용’이 엄청나다고들 하지만, ‘통일이 된 뒤에는 전쟁무기와 군대를 크게 줄이면 되’고, 마땅히 전쟁무기와 군대를 크게 줄여야 할 터이니, ‘통일비용’은 오히려 얼마 안 들 뿐 아니라, 이러한 돈과 사람과 자원은 고스란히 ‘하나가 된 한국 사회와 문화’를 북돋우는 밑힘이 되리라 느낍니다. 곧 ‘분단비용’이 훨씬 어마어마합니다. ‘분단된 두 나라’가 전쟁무기와 군대에 수십 해째 치러야 하는 돈과 사람과 품은 그야말로 그악스럽도록 어마어마하지요.



아테네인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겪은 손실은 아테네 민회의 남자 투표자들이 거듭하여 적과 평화로운 협상을 거부한 태도에서 비롯된, 예기치 못한 참담한 결과였다. (306쪽)


그리스 중장 보병은 생존의 기술과 용기를 과시했다. 이 일을 알게 된 페르시아 왕은 그리스인들이 서로 힘을 합하면 제국에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왕은 그리스인들을 서로 분할하여 자기들끼리 싸우게 만들어 자신의 제국과 부에 눈독을 들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롭다는 교훈을 명심했다. (363쪽)



  무척 아름답고 훌륭했다는 아테네였지만, 아테네는 식민지와 자원과 노예가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으리라고 잘못 여겼습니다. 전쟁을 그치지 않던 아테네는 그만 이 전쟁으로 얻은 엄청난 식민지와 자원과 노예를 고스란히 잃을 뿐 아니라, ‘나라’도 흔들거립니다. 아테네와 늘 맞수로 지낸 스파르타도 늘 ‘전쟁 사회’였지만, 무시무시할 만큼 씩씩하던 군대는 전쟁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어느새 힘을 잃고, 그동안 총칼로 끔찍하게 짓누르던 노예가 스파르타를 뒤집어엎으려고 하면서 이 ‘나라’도 흔들흔들하면서 그예 무너집니다.


  그리고, 이런 ‘그리스 내분’이라고 할 크고작은 다툼은, 이웃 다른 나라가 바란 일이라고도 해요. “그리스인들끼리 싸우면 이웃 나라는 가만히 앉아서 더 큰 이득을 얻는다”지요. 다시 말하자면, 한국 사회가 남녘하고 북녘으로 갈린 채 전쟁무기와 군대에 자꾸 힘을 싣는 일이란, 바로 중국이나 일본이나 러시아나 미국한테 더 크게 이득이 되는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무기와 군대를 키우는 나라에는 아무런 ‘발돋움(발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대의 군대는 이처럼 물자를 필요로 했기에 그 군대가 지나간 곳의 주민들은 곧바로 기근과 파괴를 각오해야 했다 … 농부들이 식량 대신 받은 돈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는데, 다들 자급자족하는 터라 농촌에는 사들일 만한 물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402쪽)


적에게 충격 효과를 안겨 주는 데에는 그만인, 헬레니즘 시대의 애용 무기, 전쟁용 코끼리들을 유지하는 데에도 비용이 많이 들었다. (418쪽)


가난한 사람들은 헬레니즘 왕국의 경제를 떠받치기 위해 엄청나게 노동을 해야 했다. 농업이 경제의 기반이었고, 농민과 농업 노동자들의 삶은 시간이 지나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423쪽)



  한국 사회를 이끄는 정치 지도자는 무엇을 생각할까요? 이곳이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정책을 생각할까요? 토목공사를 벌일 적에 ‘더 많은 돈’을 바라는 마음일까요, 아니면 아름다운 나라를 이룩하는 길을 생각할까요? 발전소를 짓는다고 할 적에 ‘자급자족하는 전기’를 생각할까요, 그저 ‘돈이 되는 토목건설’로 흐를까요?


  아름답지 못한 정책을 펼치기에 사람들이 집회나 시위를 하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이 집회나 시위를 할 적에 정치 지도자는 전투경찰을 내세웁니다. 처음부터 아름다운 정책을 펼친다면 집회나 시위를 벌일 사람이란 없을 테고, 나라에서는 전투경찰을 꾸리느라 돈을 쓸 일이 없습니다. 스스로 아름답지 못하기에 군대나 전투경찰을 키우고야 맙니다. 스스로 아름다운 길로 꾸준히 나아가면, 이리하여 군대나 전투경찰을 쓸 일이 없으면, 이 나라 사람 누구나 즐거울 테고, 군대나 전투경찰이 있을 까닭도 사라집니다.


  《고대 그리스사》에 나오는 옛 그리스 모든 나라는 ‘전쟁 물자’를 대느라 사회가 휘청거립니다. 시골에서 흙을 짓는 사람들은 언제나 가난에 시달립니다. 군대가 휩쓸고 지나간 마을에는 먹을거리가 떨어집니다. ‘옛 그리스 도시’에서는 제 나라 시골에서 먹을거리가 떨어지면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먹을거리를 가로챕니다. 다시 말하자면, 전쟁은 자꾸 전쟁으로 이어지고, 전쟁은 전쟁으로 꽃피운다고 할 만합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전쟁용 코끼리’ 때문에 돈이 엄청나게 들었고, ‘전함’을 짓는 데에 돈을 또 엄청나게 들입니다. 오늘날 사회는 전투기와 탱크와 잠수함과 온갖 전쟁무기를 만드느라 돈을 엄청나게 들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이런 외부의 영감들을 바탕으로 하여 그들 나름의 사상과 실천을 배양했고 그런 것들 중 일부는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사람들에게 공명을 일으키고 있다 … 사람들은 때때로 고대를 비판하면서 현대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오만한 견해를 내놓기도 했으나, 근세사는 그런 견해를 조금도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 (16쪽)



  사회를 가꾸자면, 전투기를 갖추려고 수천억 원이나 수조 원에 이르는 돈을 써야 할까요? 아니면, 수천억 원이나 수조 원은 아름다운 살림을 짓는 데에 알맞게 써야 할까요? 사회를 가꾸자면, 젊은이한테 총을 쥐어 주고 군사훈련을 시켜야 할까요, 아니면 젊은이가 꿈과 사랑을 배워서 스스로 텃밭도 가꾸고 즐겁게 일하면서 땀흘리는 보람을 익히도록 이끌어야 할까요?


  《고대 그리스사》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를 되새겨 봅니다. 오늘날 사회는 조금도 아름답지 못합니다. 예나 이제나 전쟁무기가 사라지지 않을 뿐 아니라, 옛날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전쟁무기와 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이백 해나 오백 해 뒤를 살아갈 뒷사람이 ‘오늘 이곳’ 이 나라 역사를 어떻게 적바림할는지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아름답게 살지 않는다면, 앞으로 ‘오늘 이곳’ 이 나라 역사는 그야말로 바보스럽거나 어리석은 발자국만 꾹꾹 찍을 수밖에 없겠지요. 4348.11.13.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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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린네 19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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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75



왜 너하고만 놀아야 하니?

― 경계의 린네 19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10.25. 4500원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은 “오늘 뭐 하고 놀까?” 하고 묻습니다. “오늘 나랑 놀자!” 하고 외치기도 합니다. 오늘 뭐 하고 놀겠느냐고 물으면 “그래, 네가 한번 생각해 봐.” 하고 말하고, “어떻게 생각해?” 하고 되물으면 “놀고 싶은 사람이 스스로 어떤 놀이가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해야지.” 하고 이야기해 줍니다.



“쿠로스 6단은 평가가 짜기로 유명해.” “그럼 반대로 저분에게 인정받으면 독립할 수도 있단 말이군요!” “뭐, 그렇죠.” (9쪽)


“당연한 결과지. 훔친 초콜릿은 어차피 남의 것이니, 네 마음의 구멍을 메워 주진 못해.” (36쪽)



  놀이는 스스로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놀이는 얼마든지 스스로 생각하고 살피고 찾고 빚고 누릴 수 있습니다. 남이 놀아 주어야 놀이가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움직일 적에 놀이가 되어요.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5) 열아홉째 권을 읽으면서 이 대목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어느덧 열아홉째 권이 한국말로 나오는데, ‘린네’를 둘러싸고 여러 아이들이 하나하나 새삼스레 나타납니다. 그런데, 린네 둘레에 나타나는 아이들은 ‘린네를 혼자 차지하면서 놀고’픈 마음이기 일쑤입니다. 다른 동무하고 린네랑 함께 놀기보다는, 오직 저 혼자서 린네를 차지하려고 하는 마음이에요.


  그리고 린네 아버지는 가난한 린네조차도 등쳐서 조금이라도 돈을 가로채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린네는 아버지 때문에 자꾸 빚쟁이가 되어야 하기에 아버지를 ‘못난’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나무랍니다. 아버지가 아이를 나무라지 않고, 아이가 아버지를 나무라요.



“길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 건 할 수 없지만, 새전 도둑 같은 질 떨어지는 범죄를 저지르다니!” “자판기 밑을 훑는 건 괜찮고?” “거기까진 괜찮겠죠.” (85쪽)


“내게 감사해라, 로쿠도 린네. 덕분에 동창회 회비 3천 엔을 내게 됐잖아?” (128쪽)



  아이들하고 놀다가 힘들면 자리에 벌렁 눕습니다. 아이들은 놀고 놀아도 지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벌렁 자리에 누운 아버지 배에도 올라타고 다리에도 올라탑니다. 이때에 이불을 재빨리 돌돌 말아서 아이들을 감쌉니다. 까르르 웃는 아이더러 “요 김밥 먹어야지!” 하고 외치는데, 아이가 돌돌 몸이 말린 이불에서 손을 빼려 하면 “아니, 단무지가 튀어나왔나!” 하면서 손을 야금야금 먹는 시늉을 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손을 도로 넣고, 다시 손을 빼내려 하면 “아니, 시금치가 튀어나왔나!” 하면서 또 손을 냠냠 먹는 시늉을 해요.


  한참 김밥말이 놀이를 하다가 두 아이는 아버지 배나 등을 ‘물살을 가르는 배’로 여겨서 뱃놀이를 합니다. 그러면 나는 눕거나 엎드린 채 몸을 실룩실룩 움직이지요. 이때에 아이들은 아버지 배나 등을 타고 거친 물살을 헤친다고 여깁니다.



“결과적으론 잘 됐잖아.” “그 노력도 모두 오늘을 위해서야.” ‘로쿠도에게 복수하기 위해?’ “다시 태어난 나를 보고, 그때 심술부리지 말걸, 하고 후회하게 만들기 위해!” (152∼153쪽)


‘이제 과거에 연연하는 건 그만두자. 하지만 로쿠도, 너는 역시 그 시절 그대로 상냥한 로쿠도였구나.’ (165쪽)



  《경계의 린네》에 나오는 린네는 무척 상냥한 아이입니다. 다만,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엄청난 빚을 갚느라 늘 쫄쫄 굶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린네는 아버지하고 달라서, 빚에 허덕이더라도 돈에 홀리지 않습니다. 가난해서 끼니를 굶어야 해도 피눈물을 삼키면서 제 넋을 지키려고 해요.


  가만히 보면, 린네만 상냥한 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린네를 둘러싼 여러 동무도 상냥한 넋입니다. 이모저모 어설프거나 어수룩하거나 바보스럽거나 너무 똑똑한 동무들이라고도 할 텐데, 이 아이들은 저마다 따스한 마음으로 삶을 짓고 놀이를 누리기에 도란도란 모일 수 있어요.



“팬시 배후령이 보고 들은 상황은, 영적 통신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이러면 나는 언제나 린네와 함께 있는 기분이지.” “그건 스토킹용 몰래카메라잖아.” (172∼173쪽)


“좋아하는 상대라면 좀더 소중히 해.” “오호.” “마음이 서로 통하지 않으면, 그런 초커는 그저 스토킹용 아이템일 뿐이야.” (184쪽)



  만화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우리는 서로 무슨 놀이를 할 적에 즐거울까요? 우리는 서로 어떤 삶을 지을 적에 기쁠까요? 나 혼자서만 재미있으면 다른 사람도 즐거운 놀이가 될까요? 나 혼자서만 배부르면 다른 사람도 배부른 삶이 될까요?


  나는 너하고만 놀아야 하지 않습니다. 너도 나하고만 놀아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아끼는 어깨동무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모든 아이하고도 즐겁고 기쁘며 반가운 사이입니다. 따사로운 마음으로 빙그레 웃으며 마주보는 동안 새로운 놀이가 태어나고, 새로운 놀이를 누리면서 삶도 살림도 사랑도 새롭게 가꿉니다. 4348.11.13.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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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 일상을 바꾼 여성들의 역사 - 제도와 규정, 억압에 균열을 낸 여성들의 반란
이임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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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38



사내가 집안일을 하면 나라가 아름답다

― 해방공간, 일상을 바꾼 여성들의 역사

 이임하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5.11.7. 22000원



  이임하 님이 쓴 《해방공간, 일상을 바꾼 여성들의 역사》(철수와영희,2015)라는 책은 일제강점기에서 막 벗어난 한국 사회에서 ‘가시내(여성)’가 어떤 삶을 누리면서 어떤 생각을 품었는가 하는 대목을 살그마니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크게 세 갈래로 나누어서 살핍니다. 첫째로는 지식 사회가 바라본 여성 이야기, 정부에서 마련한 ‘부녀국’ 이야기를 살핍니다. 둘째로는 해방 뒤에도 일제강점기처럼 똑같이 노동자를 짓누르거나 괴롭히는 제도와 노동조건을 고치자고 하는 목소리를 낸 여성 이야기를 살핍니다. 셋째로는 미군정이 이 나라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 공창과 사창이 뿌리내리는 발자취, 정부가 여성 몸을 통제하는 이야기를 살핍니다.



대한제국기 계몽운동가들이 여성들을 국권운동에 참여시키기 위해 봉건적 굴레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제도적·관습적 조치를 요구했지만, 그것은 그때뿐이었다. 그 임무가 끝나면 여성은 언제든지 여성의 본성 또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받았다. (41쪽)



  여성이란 누구일까요. 남성이란 누구일까요.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앞서 여성하고 남성이란 어느 자리에 어떻게 있는 사람인가를 먼저 헤아려 봅니다. 남성은 여성을 짓누르거나 윽박지르거나 거머쥐어도 될 만한지요? 거꾸로 여성이 남성을 짓누르거나 윽박지르거나 거머쥐어도 될 만할까요?


  남성은 여성을 옭아매거나 괴롭히거나 두들겨팰 까닭도 권리도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성이 남성을 옭아매거나 괴롭히거나 두들겨팰 까닭이나 권리가 없습니다. 사람은 남성이나 여성, 또는 여성이나 남성이라는 두 갈래 성별이 있을 뿐입니다. 두 가지 성별인 사람들이 모이기에 집이 태어나고 마을이 생기며, 고을로 퍼져서 나라도 됩니다. 한 가지 성별인 사람들만 모인다면, 집도 마을도 고을도 없는데다가 나라도 없을 테지요. 한 가지 성별인 사람들만 모인 곳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늙어서 죽으면 가뭇없이 사라질 테니까요.


  그러니, 사람은 서로 아낄 때에 사람이 됩니다. 평등이나 평화나 민주라는 말을 모르더라도 서로 아낄 때에 사람다운 사람입니다. 사람을 계급이나 신분으로 갈라야 하지 않듯이,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도 계급이나 신분을 가르지 말 노릇입니다. 



국립경찰전문학교 제1기 졸업생들은 일선 경찰서에 배치됐지만 뚜렷한 업무를 맡기지 않아 전화 받는 일이 전부였다. 또한 “남성 경찰들이 여경의 존재에 분개하고 여성들을 요리 또는 관서 주위의 잡무를 보는 직위로 내쫓을 정도”였다고 주한미군사에 기록되어 있다. (84쪽)


부녀국의 활동은 여성이 국가 건설 과정에서 어떤 역할과 직분을 갖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했다. 해방공간에서 다양하게 전개된 ‘여성해방론’, ‘남녀평등’, 가정의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세탁소와 탁아소 등의 정책 마련에 대한 요구, 여성 노동 조건의 개선과 대안의 요구 따위를 모두 제거해 버리고 ‘현모양처’ 역할만이 강조됐다. 이런 점에서 부녀국은 국가기구 안에서 여성들의 다양한 잠재성과 가능성의 확장이 아닌 하나의 역할만을 강제하고 규제하는 역할을 했다. (90쪽)



  해방 뒤 정부에서는 부녀국이라는 기관을 마련했다고 하는데, 이 부녀국은 여성 인권이나 권리나 문화에는 어느 한 가지도 눈길을 못 두었다고 합니다. 여성 경찰을 키우는 기관을 나라에서 마련했다고 하지만, 정작 여경은 경찰로 제 맡은 일을 할 수 없고, 경찰서에서 남자 경찰한테 밥을 지어 주느니, 헌 옷을 기워 주느니 하는 자잘한 뒷일을 할 뿐이었다고 합니다.


  여성 노동자는 공장 기숙사에 거의 갇히듯이 지내야 했답니다. 여성 노동자는 일을 쉬는 날에 ‘자유롭게’ 공장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니고 싶다고 공장장한테 말하지만, 공장장은 이를 딱 잘라서 손사래쳤다고 합니다. 그나마 남성 노동자보다 일삯을 적게 받는 여성 노동자이지만, 공장장은 이들 여성 노동자를 아주 손쉽게 해고했다고 합니다. ‘더 적은 돈만 주어도 될 다른 노동자’가 수두룩하게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947년) 대구 지역 신문기자들이 해고 이유를 묻자 총무과장은 “전원 해고 이유는 재정 곤란인데 현재 여공 전원을 해고시키고 형무소 죄수를 쓰면 1인당 임금 67원을 단 10원으로 절약하여 죄수 5백 명을 사용할 수 있는 까닭”이라고 대답했다. (161쪽)


(1946년) 종연방직에서 행해진 신체에 가해진 폭력은 대죽으로 구타하기, 걸상 들기, 나체로 신체검사 따위였는데, 이는 폭력 피해자에게 수치감과 모멸감을 불러오는 체벌이었다. 곧 남한 최대의 방직공장이었던 종연방직은 여성 노동자의 신체에 대한 규율과 폭력을 통해 이들을 자본에 순응하고 말 잘 듣는 노동자로 만들고자 했다. (182쪽)



  이 나라 사내는 왜 평등이나 평화나 민주로 가는 길하고는 동떨어질까요. 어릴 적부터 평등이나 평화나 민주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일까요. 나이가 든 뒤에도 평등이나 평화나 민주를 배울 생각을 스스로 안 했기 때문일까요.


  공공기관에서 높은 자리를 맡기는 까닭은 일을 잘 하라는 뜻입니다. 뒷돈을 빼돌리라고 높은 자리를 맡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앉은 이들을 비롯해서 낮은 자리에 앉은 이들까지 온갖 정책이나 사업이나 공사에서 뒷돈을 으레 빼돌렸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일은 멈추지 않고, 일제강점기나 해방 언저리나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에도 이러한 흐름은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곰곰이 돌아볼 노릇입니다. 사내들이 집안일을 할 줄 안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고. 사내들이 집 바깥만 나돌면서 지내기만 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는 일을 함께 맡았어도 이런 짓을 일삼았을까 하고.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는 일을 가시내한테만 맡긴 사내입니다. 아버지 자리에 서는 사내는 으레 집 바깥에서 돈만 버느라 바쁩니다. 아버지로서 아이한테 말을 가르치거나, 삶을 보여주거나, 사랑을 물려주는 일이 아주 드뭅니다. 어쩌면, 아버지 자리에 설 사내는 말도 삶도 사랑도 모르는 탓에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아이 곁에서 아이를 따스히 돌보면서 살림을 가꾸는 일을 못 하는 셈이 아니랴 싶습니다. 이리하여, 삶을 모르기 때문에 사회에서도 삶과 동떨어진 일을 할는지 모릅니다. 삶도 사랑도 모르는 탓에 사회에서도 자꾸 엉뚱한 짓을 벌일는지 모릅니다.



미군정기 당시 미군 범죄는 총상, 강도, 절도, 주택 침입, 폭행, 상해, 교통사고, 밀매 따위로 다양했다. 그 가운데 성범죄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 미군 성범죄는 조선인 통역을 낀 채 대개 2∼3명이 무리를 지어 여성들을 차에 태워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납치하는 방식이거나 새벽에 민가를 침입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246쪽)


법령 제70호인 인신매매 금지령의 이중성이 오히려 ‘사창’을 증가시켰던 것처럼 법령 제72호 제70조 역시 성매매에 대한 미군정의 이중적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곧 미군에게 성병만 감염시키지 않는다면 성매매는 얼마든지 인정됐다. (303쪽)



  주한미군 범죄는 미군정 무렵부터 그치지 않습니다. 미군정기에 미군이 벌인 성폭력을 놓고 제대로 재판을 벌인 일이 드물다고 합니다. 재판장에 미군을 세웠어도 ‘성폭력’이 아닌 ‘폭력’으로만 다스렸다고 합니다. 그나마 재판장에 섰어도 거짓말만 하는 미군 손을 들어 주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해방 언저리 한국 재판장에서 미군 범죄를 똑똑히 다스렸으면 그 뒤로 이 나라에 미군 범죄가 함부로 발을 붙이지 못했으리라 느낍니다. 미군 범죄뿐 아니라 다른 범죄도 그렇지요. 나라는 식민지에서 벗어났지만, 정치와 사회와 문화와 교육이 모두 식민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일제강점기에 스며든 일본 말투는 아직도 한국 말투를 어지럽히기도 하지만, 이를 못 깨닫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일제강점기 제국주의 군대 같은 얼거리가 한국 군대와 사회에 아직도 또아리를 틉니다.


  바야흐로 평화를 헤아리지 않는다면 평화와 먼 모습이 됩니다. 평화와 함께 평등을 살피지 않는다면 평화도 평등도 뿌리를 내리기 어렵습니다. 평화와 평등을 가꾸면서 민주를 싹틔워서 자라도록 북돋우지 않는다면, 정치와 사회뿐 아니라 문화와 교육도 참다이 일어서기 어렵습니다.




여성의 직분이 현모양처라고 주장한 우익의 담론에는 여성해방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지 않았으며, 여성해방에 대한 전망 또한 없었다. 그것은 여성해방을 주장하면서도 오히려 남녀 불평등을 온존시키는 기능을 했다. 여성해방은 뒤로한 채 국가 건설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여성들을 다시 가정에 묶어 두려는 담론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담론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가 내세운) 총력전 체제 아래에서 여성 지식인의 현모양처론과 닮아 있다. (376쪽)



  《해방공간, 일상을 바꾼 여성들의 역사》라는 역사책은 새로운 역사책입니다.

 

  정치 지도자 몇 사람 발자국으로만 역사를 살피던 틀을 깨고서, 자료나 신문이나 문헌에 이름이 거의 안 남은 사람들 몸짓으로 역사를 읽자고 하는 책입니다. 역사를 수수한 사람들 마음과 꿈과 사랑을 바탕으로 읽자고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여성사’라고 할 적에도 몇몇 이름난 여성운동가 발자국으로 돌아보자고 하지 않고, ‘몇몇 운동가’를 넘어선 ‘모든 여성’이 선 자리에서 다시 헤아리자고 하는 책입니다.



고루한 전통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단발을 찬성한 김활란과, 대중들과 만나 여성운동을 하기 위해 단발을 반대한 정종명. 한국 사회에서 김활란은 잘 알려져 있지만 정종명은 흔적조차 없다. (25쪽)



  오늘날에도 ‘집에서 밥 짓는 가시내’ 이야기는 역사책에 안 실립니다. 집에서 아기를 낳아서 돌보는 어머니 이야기는 역사책에서 안 다룹니다. 대통령이 된 여성 이야기는 머잖아 ‘새로운 국정 교과서’ 같은 역사책에서 다루겠지요. 그러나, 이 나라를 밑바탕에서 일구고 가꾸면서 ‘새로운 나라’가 아름답게 태어나서 자라기를 바라던 ‘수수하면서 사랑스러운 가시내’ 이야기는 국정 교과서에 실리지 않을 듯합니다.


  아마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된 여성’을 드높여야 여성 지위가 높아진다고 말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수수한 집과 수수한 마을에서 수수한 살림을 가꾸는 가시내와 사내가 즐겁게 살림을 지을 때라야 비로소 여성 지위도 높아지고 남성 지위도 높아집니다. 가시내와 사내가 함께 살림을 지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밥짓기나 옷짓기는 가시내한테 떠넘길 일이 아니라, 사내와 가시내가 함께 즐기면서 누릴 일입니다. 집안일은 사람으로서 누구나 기쁘게 맡는 일입니다.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있는 마을이기에 아름다운 나라가 섭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짓습니다. 인문책 《해방공간, 일상을 바꾼 여성들의 역사》는 바로 ‘여느 자리’에서 삶을 바꾼 여성이 ‘나라’도 문화도 정치도 모두 바꿀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나즈막한 목소리로 야무지게 외칩니다. 4348.11.12.나무.ㅅㄴㄹ


(최종규 / 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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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 세 알의 비밀 알이알이 명작그림책 17
제럴드 맥더멋 글.그림, 노계순 옮김 / 현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72



이 땅에 겨울이 생긴 까닭은?

― 석류 세 알의 비밀

 제럴드 맥더멋 글·그림

 노계순 옮김

 현북스 펴냄, 2012.10.15. 11000원



  아이들은 어버이가 들려주는 말을 모두 받아먹습니다. 아이들은 새로운 말을 받아들여서 익히고 싶기에 어버이가 읊는 말을 찬찬히 살피면서 받아먹습니다. 어버이가 고운 말을 쓰면 아이는 저절로 고운 말을 씁니다. 어버이가 미운 말을 쓰면 아이도 저절로 미운 말을 써요.


  어버이가 바쁘고 힘들다면서 미운 말을 자꾸 쓰면, 아이는 ‘어버이가 바쁘고 힘들다’는 대목은 살피지 않고 ‘미운 말’만 받아들입니다. 아이로서는 ‘어버이가 새로 하는 말’이나 ‘어버이가 늘 쓰는 말’에 눈길이 갑니다.


  이를테면, 아이가 가게에 어버이 손을 잡고 나들이를 간다면, 아이는 ‘아이 스스로 갖고 싶은 장난감’에 손을 뻗습니다. 아이는 값을 따지거나 바라보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이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살펴서 고릅니다. 이때에 어버이는 어떻게 마주할까요? 아이가 고른 장난감을 기꺼이 장만할까요, 아니면 ‘값’을 따질까요? 값을 아예 안 볼 수 없을 터이나, 값을 먼저 보느냐, 아니면 아이가 바라는 곳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집니다.



그 날도 데메테르는 여느 때처럼 대지를 가꾸었어요. 데메테르 옷이 닿는 곳마다 밀이 솟아오르고, 발길이 닿는 곳마다 예쁜 꽃들이 피어났어요. 일을 다 마친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에게 말했어요. “다른 신들을 만나고 올 테니 멀리 가지 말고 여기서 퀴아네와 놀고 있으렴.” (8쪽)



  제럴드 맥더멋 님이 빚은 그림책 《석류 세 알의 비밀》(현북스,2012)을 읽습니다. 석류 한 알도 아니고 왜 석 알일까 하고 궁금해 하면서 이 그림책을 읽습니다. 그림책에는 ‘여신’이 나오고, ‘여신이 낳은 딸’이 나옵니다. 딸도 여신이니, 지구별은 두 여신이 따사롭게 보듬는 손길을 받아서 풀이 돋고 꽃이 피며 나무가 자랍니다. 두 여신은 이 지구별에 아름다운 숲을 사랑스레 가꾸어 줍니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이 지구별에서 언제나 기쁨이 넘치는 삶을 짓습니다.




페르세포네는 퀴아네가 말릴 틈도 없이 연못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으로 가 버렸어요. 한 팔 가득 꽃을 꺾은 페르세포네가 돌아가려고 할 때였어요. “어머나! 이렇게 예쁜 꽃은 처음 보는걸.” 페르세포네는 마지막으로 한 송이만 더 꺾으려고 수선화 줄기를 힘껏 잡아당겼어요. 그러자 갑자기 땅이 흔들리더니 ‘쩌억!’ 하고 갈라졌어요. (10쪽)



  그런데, 두 여신 가운데 ‘딸아이 여신’은 어머니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아니 귓등으로 넘겼지요. 어머니 여신이 살짝 자리를 비운들 무슨 큰일이 있으랴 여겼고, 그저 새로운 놀이나 즐거움을 찾아서 ‘어머니가 가지 말라고 하던 곳’으로 갑니다. 어쩌면, 어머니가 ‘가지 말라’고 했기에 더 가고 싶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아이한테 ‘가지 말라는 곳’을 말했기 때문에, 아이 마음에는 ‘가지 말라는 곳’이 오히려 마음에 남습니다. 이를테면, ‘먹지 마’ 하고 말하면 더 먹고 싶은 마음이 들 듯 말이지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거친 말 쓰지 마’라든지 ‘동무나 동생을 괴롭히지 마’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아이들한테 들려준다고 해서 아이들은 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왜?’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무엇을 하지 마’ 하고 말해서는 ‘무엇을 해’라는 뜻밖에 안 돼요. 하지 말라고 말하지 말고, 아이들이 즐겁게 할 일과 놀이를 보여주거나 함께할 노릇입니다. ‘자, 우리 이것을 해 볼까’ 하고 말한다든지 ‘이것을 해 보렴’ 하고 나긋나긋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할 노릇이에요.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를 찾아 곳곳을 헤맸어요. 슬픔에 잠긴 데메테르가 지나가자 새들은 노래를 멈추었고, 나무와 풀은 시들어 검게 바뀌어 버렸어요. (17쪽)



  그림책 《석류 세 알의 비밀》은 지구별 어느 곳에서 고이 흐르는 옛이야기를 되살립니다. 이 지구별 ‘땅 위쪽 나라’에서 사랑스레 살던 사람들이 누리던 ‘언제나 따스하고 아름다운 철’이 왜 바뀌었는가를 들려주려는 옛이야기입니다.


  땅 위쪽 나라를 보듬던 두 여신 가운데 딸아이 여신은 땅 아래쪽 나라 남신(남자 신)한테 사로잡혔고, 딸아이 여신은 땅 아래쪽 나라에서 배고픔을 꿋꿋하게 참다가 그만 석류 세 알을 먹습니다. 이 모습을 들켰어요. 땅 아래쪽 나라에 있는 밥을 한 숟갈이라도 먹으면 땅 위쪽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데, 그만 석류 세 알을 먹었다는군요.


  그러나 ‘세 덩이’가 아니라, 석류 한 덩이에 있는 아주 조그마한 알갱이 셋만 먹었기에, 딸아이 여신은 땅 위쪽 나라에서는 아홉 달을 살고, 땅 아래쪽 나라에서는 석 달을 살아야 하는 몸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그러니, 딸아이 여신이 땅 아래쪽 나라로 떠나야 하는 석 달 동안, 땅 위쪽 나라에서는 어머니 여신이 슬픔에 겨워 풀도 꽃도 나무도 돋지 않는 추운 겨울이 되었다고 해요.




다시 만난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는 뛸 듯이 기뻐했어요. 둘은 예전처럼 정성스럽게 대지를 돌보고 가꾸었어요. 그렇지만 한 해에 한 번, 페르세포네는 하데스 지하 왕국으로 가야만 했어요. 그러면 땅 위는 춥고 어두운 겨울이 되었어요. 그러다 다시 페르세포네가 땅 위로 나오면 온 세상은 봄을 맞는 기쁨으로 가득 찼답니다. (31쪽)



  언뜻 보기에 그림책 《석류 세 알의 비밀》에서 딸아이 여신이 참 바보스럽네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참말 그렇지요. 고작 석류 석 알이라면 조금 더 참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그런데, 딸아이 여신이 땅 아래쪽 나라로 끌려가서 지내야 하는 석 달 동안 땅 위쪽 나라에 겨울이 흐른다면, 이 겨울도 어느 모로 보면 재미있는 삶자락입니다. 이 땅에는 겨울이 있어서 풀이 시들어 흙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 땅에는 겨울이 있어서 온갖 벌레가 겨울에 죽거나 겨울잠을 잡니다. 이를테면, 겨울에는 모기가 몽땅 얼어죽거나 잠들지요. 겨울은 그야말로 ‘쉬는 철’이라고 할까요. 겨울이 있기에 살그마니 한숨을 돌리면서 쉴 만하고, 겨울이 있기에 아이들은 새롭게 ‘눈놀이’를 즐기기도 합니다.


  좋고 나쁨이라는 대목이 아니라, 잘하고 못하고를 가르는 대목이 아니라, 삶을 새롭게 가꾸려는 이야기로 바라본다면 《석류 세 알의 비밀》은 앞으로 아이와 어른이 함께 어떤 삶을 지을 때에 아름답고 즐거운가 하는 대목을 들려주려는구나 싶습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다시 찾아올 적에 기쁜 그 마음처럼, 여름을 북돋우고 가을에 거두는 즐거운 그 땀방울처럼, 이러면서 다시 맞이하는 겨울에 차분히 쉬는 그 몸짓처럼, 삶을 어떻게 지을까 하고 돌아볼 일이지 싶어요.


  노래하고 꿈꾸며 춤출 수 있는 삶을 생각합니다. 아이한테 새롭고 즐거운 말을 들려줄 줄 아는 어버이로 살자고 생각합니다. 오순도순 기쁜 웃음으로 아침을 열고, 도란도란 보드라운 자장노래로 저녁을 마무리하자고 생각합니다. 4348.11.12.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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