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소녀 카르페디엠 8
벤 마이켈슨 지음, 홍한별 옮김, 박근 그림 / 양철북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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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나무소녀
- 글쓴이 : 벤 마이켈슨
- 옮긴이 : 홍한별
- 펴낸곳 : 양철북(2006.6.7.)
- 책값 : 8500원


 이 책 하나 15 : 나무소녀
 - ‘기록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는가요

 
 - 1 -


 충주에서 인천으로 살림을 옮겼습니다. 3.5톤 짐차 석 대에 가득 실리는 책짐과 책꽂이를 옮겼습니다. 책을 묶는 데에 보름이 넘는 시간을 썼습니다. 책을 풀 때에는 하나하나 닦아서 꽂아야 하는 만큼 더 긴 시간이 들어갈 듯합니다. 3.5톤 짐차에는 책 만 권쯤 실린다는데, 얼추 3만 권이 조금 못 되는 책짐입니다. 책을 가까이한 때는 고등학교 1학년인 1991년. 이때부터 모은 책, 사이사이 헌책방에 내다 팔고 이웃들한테 주고 하면서도 남은 책이 이만큼. 얼핏 보기에는 많을 수 있지만, 가만히 살피면 많지 않을 수 있는 책. 3만 권이라고 해도, 여태까지 보고 살피고 만져 본 책이 이만큼이라는 뜻. 이제부터 새로 읽을 책, 새로 만날 책, 새로 제 곁에 자리할 책은 하나둘 늘어서 새로운 숫자를 이루겠지요. 저는 살아 있는 사람이고, 살아갈 사람이며, 날마다 새롭게 살고픈 사람이니까요.


.. 나무소녀는 높이 올라가면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알지. 그렇지만 올라가면 새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알아. 아주 강하기 때문에 삶에서 좋은 것을 누리기 위해서 나쁜 일을 겪어야 할지라도 그걸 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어. 희망을 찾기 위해 어떤 고통에도 굳세게 맞서지. 삶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찾기 위해 추한 것들을 만날 위험도 무릅쓰고. 나무소녀는 다른 사람들은 무서워서 감히 덤비지 못할 때에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어 ..  〈197쪽〉


 인천으로 오면서 보금자리를 튼 곳은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골목. 이곳에서 사진책 도서관을 꾸릴 생각입니다. 일본 도쿄 간다 헌책방거리에는 백쉰 군데가 넘는 헌책방에 새책방도 대여섯 곳쯤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몰라서 그렇지, 조그마한 박물관과 도서관이 곳곳에 많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책흐름이나 책문화라면, 새로 빚어내는 책이 머무는 새책방, 이 책 가운데 골라서 갖추는 도서관, 두 곳을 거쳐 세월 흐름을 고여 내는 헌책방, 이렇게 어우러지지 싶어요.

 인천에도 도서관이 제법 있습니다. 하지만 배다리에는 없습니다. 또한 입시생이나 고시생이 학과공부하는 독서실 같은 분위기에서 벗어난 도서관을 찾기도 수월하지 않습니다. 책 하나로 이룰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고, 책 하나로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얼마나 될까도 모릅니다. 다만 이곳에서 씨앗을 뿌리고 싶어요. 땅에 뿌리내린 씨앗 가운데에는 싹이 안 트고 죽고 마는 녀석이 있을 테니, 저도 그 씨앗처럼 죽을 수 있습니다. 운이 닿는다면 잘 살아남아 한 해 한 해 무럭무럭 자라겠지요. 씨앗이 어린나무로 자라는 데에 다섯 해쯤 걸리고, 어린나무에서 자라 여느 어른 키 높이쯤 되려면 열 해쯤 있어야 합니다. 제 사진책 도서관도 이런 빠르기와 흐름으로 알맞게 살찌우면 좋으리라 믿습니다.


.. 네 미래는 올바른 질문을 찾아내고 용기 내어 그 질문을 던지면서 찾아나가는 거다. 좋은 질문은 좋은 대답보다 훨씬 중요한 거야. 그렇지만 질문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지. 가브리엘라, 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알겠지. 하지만 왜 사는지도 알겠니? ..  〈46쪽〉


 사진책 도서관을 여는 까닭은 한 가지입니다. 제가 사진책을 좋아하고, 부지런히 한 가지 주제로 사진을 찍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진을 찍는 동안 고개숙여 배우고자 하나하나 사들인 사진책이 어느덧 제법 숫자가 불어서 오천 권쯤 되었고, 앞으로도 꾸준히 새 사진책을 사서 볼 생각이니까, 차츰차츰 늘겠지요.

 우리 나라에서 사진책은 ‘무던히 안 팔리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값이 퍽 비싸기도 하지만, 사진쟁이들치고 사진책 부지런히 사서 보면서 ‘동료 사진작가 작품’을 헤아리며 자기 작품을 돌아보는 분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가르치는 교수님들도, 사진을 배우는 학생들도, 사진으로 먹고사는 사진작가나 사진기자도 ‘바쁘다는 자기 틈을 쪼개어 다른 이 작품을 살피는 일’이 꽤 드뭅니다. 그래서라고 느끼는데, 날이 갈수록 사진 찍는 분은 늘어가지만, 마음을 울리는 사진 작품 만나기는 어려워집니다. 멋들어진 사진은 늘어나지만, 맛깔스러운 사진은 줄어듭니다. 사진이란 어느 한때를 찰칵 담아내는 발자취만이 아닐 텐데, 사진에 어떤 삶을 담고, 누구 눈길을 깃들이며, 어떻게 나눌 마음과 넋을 어우러내느냐까지 살피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이런 몸짓과 눈길이라면, 사진을 찍을 때뿐 아니라, 우리 둘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을 느끼거나 받아들일 때에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내 사진에 담는 사람들 모습이 겉핥기이거나 겉치레인데, 내 이웃한테 일어나는 일을 속깊이 살피거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내 사진에 담기는 삶터가 겉모습뿐인데, 내 둘레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밑바탕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읽어낼 수 있을까요.


.. 저는 우리 말, 키체어로 된 이름이 예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우리 이름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사실은 우리가 좋지 않게 보였기 때문이겠죠. 누군가를 존중한다면 그 사람의 종교, 관습, 이름을 바꾸도록 만들 수는 없을 거예요. 군인들이 우릴 존중하지 않는 건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인가요? ..  〈47쪽〉


 - 2 -


 디지털사진이 두루 퍼지면서, 한 가지 좋아졌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사진을 스스럼없이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나빠졌습니다. 1회용 플라스틱 같은 사진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마음과 세상을 사는 마음은 한 동아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즐기는 마음과 세상을 부대끼는 마음은 한 줄기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다루는 마음과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마음 또한 한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잘 찍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우리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사진을 그럴싸하게 찍으려는 사람이 우리 삶터를 어떻게 굽어살필까요. 사진으로 이름값-돈-힘을 얻으려는 사람이 제 식구와 벗과 이웃을 어떤 자리에서 함께하려 할까요.


.. 하늘이 어둑어둑하고 굵은 비가 내리던 12월 어느 날, 스무 명 가까이 되는 군인들이 우리 마을로 행군했다. 마을사람들 모두 깜짝 놀랐다. 군인들이 마을에 쫙 퍼져 집집마다 소총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우리 집 문을 걷어차고 들어온 군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땅이 네 소유라는 권리증을 제시하라.”
 아빠는 젊디젊은 군인에게 사정했다.
 “그런 증명 같은 것은 없어요. 우리는 우리 조상들처럼 왔다 가는 방문객일 뿐입니다. 짧은 일생 동안 이 땅을 빌려 사용하는 방문객인 거예요. 이 땅은 누구 소유도 아닙니다. 조상님들이 아무런 권리증 없이 물려주었고, 또 우리도 아무런 문서 없이 자식들에게 물려줄 땅입니다.”
 “당신들은 법률을 위반했다. 30일 이내로 이 지역에서 떠나지 않으면 강제로 쫓아낼 것이다.”
 군인이 위협했다 ..  〈58쪽〉


 요즘도 모두 가시지는 않았으나, 지난날 독재정권 때에는 사진 한 장을 놓고 장난질을 참 많이 쳤습니다. 독재정권을 우상으로 섬기고, 이 나라 백성들은 폭도인 듯 거꾸로 뒤집어 꾸며댔습니다. 사진은 찍는 자리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찍는 눈길에 따라 달라 보입니다. 사진기자는 ‘피맺히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백성’ 모습에는 슬그머니 눈을 감고 사진을 안 담을 수 있습니다. 사진기자는 ‘억울함을 하소연하며 분통을 터뜨리는 백성’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찍어서 이이가 미친놈이거나 깡패처럼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사진기자는 힘있고 돈있고 이름있는 사람들한테만 우루루 몰려다니며 이 사람들 이야기만이 세상에 알려지는 기삿거리가 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런 사진 장난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사진에 찍혔으니 참이구나’ 하면서 그대로 믿어 버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 “네놈들 중 한 명이라도 오늘 있었떤 일을 내뱉으면 잡아죽일 테다. 알겠나?”
 우리는 모두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가라!”
 지휘관이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달렸다. 우리는 한 덩이가 되어 울퉁불퉁 자갈이 깔린 강가를 달려 백여 미터 떨어진 숲으로 뛰었다. 그러나 숲에 들어서기 전에 총소리가 울렸다. 내 옆에서 달리던 파블로가 쓰러졌고, 바위 위에 붉은 피가 흘렀다. 돌아보니 빅토리아도 총에 맞아 그 자리에 쓰러졌다.
 나는 숨을 헐떡였고 연달아 루벤이 쓰러지자 공포의 비명을 질렀다. 루벤이 땅에 고꾸라지며 머리를 바위에 부딪혀 ‘쿵’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어린 리사가 우리 뒤에서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걸음이 느려 우리를 따라오지 못했다. 나는 속도를 늦춰 리사의 손을 잡았지만, 손을 잡는 순간 총소리가 울리고 리사도 엎어졌다 ..  〈78쪽〉


 ‘기록되는 역사’와 ‘기록되지 않는 역사’가 있어요. 지난날 조선-고려-신라-발해-고구려-백제-가야-…… 임금들 이름은 역사에 잘 남아 있습니다. 신하들 이름도 잘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 삶터를 지키고 있던 보통사람들, 백성들 이름은 한 줄도 안 남아 있습니다. ‘궁중 음식 요리법’은 역사책에 남아도, ‘보통사람들 상차림’은 어디에도 안 남습니다. ‘궁중 문화와 전통과 옷차림과 살림살이’는 역사책에 남고 문화재가 되어도 ‘보통사람들 문화와 전통과 옷차림과 살림살이’는 구지레한 쓰레기 대접만 받습니다.

 ‘기록되는 사진’과 ‘기록되지 않는 사진’을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지금 우리 사회는, 교육 틀거리는, 삶터 얼거리는, ‘기록되는 사진’만 보도록, 이런 사진만 배우도록, 이런 사진만 느끼도록 흘러가고 있지 않나요. ‘기록되지 않는 사진’은 마치 아무것도 아니거나 없는 듯 여겨지지 않나요.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도 이런 데에는 눈길을 안 두지 않나요.


.. 나는 뛰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불붙은 집 앞에 시체가 하나 쓰러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또다른 시체, 또다른 시체가 보였다. 잿더미가 된 우리 마을 여기저기에 시체가 널려 있었다. 마을에서 군인들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들판에 쓰러져 있었다. 소총이나 헬리콥터에서 쏘아대는 기관총을 맞고 쓰러진 것이었다. 늦은 오후 황혼 속에,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가지처럼 시체가 흩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나뭇가지가 아니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모들, 삼촌들, 할아버지들, 그리고 이웃들이었다 ..  〈85쪽〉


 저는 헌책방 한 가지를 찍습니다. 헌책방은 제 마음이 쉴 자리이며 제 몸을 추스르는 자리인데다가 제 뜻을 펼치고 제 꿈을 다독이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세월을 넘나드는 책이 있고, 나라와 문화를 넘어서는 온갖 책이 함께하는 자리입니다. 잘난 책이 없으며 못난 책이 없습니다. 모두 똑같은 책입니다. 앞서가는 책이나 뒤처지는 책이 따로 없습니다. 100해를 묵었건 한 달밖에 안 되었건, 그때그때 우리 형편과 터전에 걸맞는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찾아내고 밝혀내고 담아낼 때 빛이 되어 주는 책이 있는 자리입니다.

 이 헌책방을 찬찬히 다녀 보지 않은 분들은 ‘헌책방은 지저분한 곳이다’라든지 ‘헌책방은 싸구려 책이 있는 곳이다’라든지 ‘헌책방은 어둡고 어수선한 곳이다’라든지 ‘헌책방은 책방 임자가 바가지를 씌우는 곳이다’라든지 ‘헌책방 임자는 책도 모르는 바보다’ 따위 생각을 품습니다. 이리하여 이곳을 사진에 담을 때 이런 치우친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자기가 바라보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니, 어떤 사진이 나올까요. 무슨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이런 사진으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 마음을 짠하게 움직이는 사진을 남길 수 있을는지요.


.. 곧바로 다른 여자 하나가 끌려나왔고 강간이 계속되었다. 군인들은 서로 먼저 하겠다고 다투었다. 몇 시간 동안 나는 마치치나무에 매달려 시체가 불에 던져지는 걸 봤다. 군인들은 칼로 시체에서 금니를 도려낸 다음 굶주린 불길에 던져 넣었다. 눈을 감고 싶었지만, 들키거나 떨어질까 봐 무서웠다. 대신 두 귀를 틀어막았지만, 절박한 비명과 고통의 신음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여러 가지의 다른 마야어가 비명과 울부짖음과 함께 울려퍼졌다. 군인들이 지껄이는 소리와 농담은 오직 한 가지 언어, 에스파냐어뿐이었다 ..  〈120쪽〉


 - 3 -


 헌책방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배다리 한미서점, 부개 책사랑방, 용산 뿌리서점, 노량진 책방 진호, 진주 동훈서점, 제주 책밭서점, 보수동 우리글방, 원동 육일서점, 목동 수현헌책방, 원당 집현전, 신촌 공씨책방, 연대 정은서점, 연신내 문화당, 수원 오복서점, 중앙동 보문서점, ……. 이름이 있다 함은 모두 고유한 자기 삶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한테는 ‘최종규’라는 이름이, 제가 쓴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한테는 그분들마다 자기 이름이 고유하게 있습니다. 고유한 이름 하나는 그 사람 모두를 가리킵니다. 우주와도 똑같은 그이 한 사람, 너나없이 소중한 목숨붙이 하나. 이 고유함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사진기로 들여다보는 눈이 반짝 빛난다고 느낍니다.


.. 때로는 낯선 사람들이 피난민들에게 다가와 방향을 일러 주고 군인들이 어디에 주둔했는지 알려주기도 했다. 나는 이 사람들이 군대를 위해 함정을 놓는 게 아닌가 경계했다. 그 사람들 말을 믿었다가는 죽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말을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죽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끝없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고 서로 아무도 믿지 않았다 ..  〈132∼133쪽〉


 이름을 알지 못할 때, 아니 이름을 생각하지 못할 때, 아니 이름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는 무슨 사진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요. 나와 남이 아닌 ‘최종규’와 ‘아무개’가 아니라면 어떤 사진이 나올까요.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가 아닌 구경꾼이나 떠돌이라면 사진에 담기는 모습은 어떠할까요.


.. 내가 밀어 쓰러뜨린 난민들은 어쩔 수 없이 다음 기회를 잡으러 다시 트럭 쪽으로 몰려갔다. 나는 넓은 곳으로 나와 방수막을 위필 안에 감췄다. 파란 방수막은 대충 텐트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큼직했다. 드디어 집이 생긴 것이다. 방수막을 살펴보며 흡족해하다가, 고개를 들어 내가 밀어낸 할머니 둘을 흘깃 보았다. 할머니들은 무리에서 돌아서서 가는 길이었다. 한 할머니는 심하게 다리를 절었고 다른 할머니가 부축했다. 둘 다 울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수치심이 몰려왔다. 저 할머니들은 나보다 훨씬 더 절박하게 방수막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저 할머니들은 오늘밤 추운 데서 자야 하는 걸까? 내일이면 해를 가릴 곳 하나 없어 뜨거운 햇볕 아래서 시체로 발견되는 건 아닐까? 모두 나 때문이다.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이 되어 버린 걸까? 나의 기품이란 건 내 몸의 때만큼이나 얄팍했던 것일까? 고작 방수막 하나에 자존심을 버리고 말다니. 이렇게 살려면 살아남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엄마 아빠가 지금 내 모습을 봤으면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  〈146쪽〉


 저는 돈이 없기 때문에 ‘좋다’고 하는 사진기를 쓰지 못합니다. 쓰고픈 사진기를 장만하지 못합니다. 몇 차례 여러 해에 걸쳐 적금을 부은 뒤 렌즈 하나, 몸통 하나 장만하기는 했는데, 두 번 도둑을 맞았고, 지금은 가까스로 새 사진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돈을 모을 길이 없어서 장비가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더 나은 장비가 없다고 사진을 못 찍을 일이란 없습니다. 더 나은 필름을 못 쓴다고 해서 더 훌륭한 사진을 못 찍을 일 또한 없습니다. 값비싸고 대단한 필름을 쓴다고 해도, 사진기로 바라보는 세상이 좁다면, 사진기 눈구멍으로 겉모습밖에 읽어낼 수 없다면, 쓰레기하고 다를 바 없는 사진밖에 안 나오잖아요. 그저 1회용품 사진만 나오잖아요.


.. “미국에서 카이빌을 무장하고 훈련시켰어요.”
 “미국사람들은 나쁘지 않아요. 미국인들이 수용소에 있는 우릴 도와주잖아요. 구호품 대부분은 미국에서 온 거예요.”
 내가 말했다.
 “미국 시민들이 그러는 거지. 미국 정부는 달라. 미국인들은 대부분 자기 정부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몰라. 알고 싶어하질 않는 거지.”
 젊은 남자가 덧붙여 말했다 ..  〈156쪽〉


 ‘로모’라고 하는 사진기를 사서 쓰는 분을 자주 봅니다. 하지만 이분들 가운데 ‘여러 해에 걸쳐 꾸준하게’ 로모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남들이 사서 쓰니까, 재미있으니까, 몇 번 쓰다가 다시 중고로 내다 팔곤 합니다. 디지털사진기도 비슷합니다. 화소수가 더 높은 게 나오니까, 더 쓰기 좋다고 하는 게 나오니까 자꾸자꾸 바꿉니다. 어쩌면 새로운 사진기로 바꾸어 새 기능을 익히는 데에 온 시간을 빼앗기고, 정작 자기가 바라거나 좋아하는 모습을 찍는 데에는 시간을 못 쓰는지 몰라요. 사진에 담을 대상을 찾고 느끼고 생각하고 함께하는 데에 시간을 못 보내고, 기계 다루는 데에 시간을 다 쏟으니, 정작 사진에 담기는 모습이라곤 알맹이가 없겠지요. 아무 모습이나 마구마구 찍다가는, 나중에 정리할 때 다 지워 버리겠지요.

 자기가 찍은 사진을 한 번이라도 다시 돌아보게 되는지, 자기가 찍어 놓고도 다시는 볼 일이 없어서 셈틀 용량만 꽉꽉 채워서 짐덩이로만 만드는지 돌아볼 일이라고 느낍니다.


.. 누더기공이 너덜너덜 자꾸 풀어져서, 나는 얼굴을 익힌 구호요원한테 다가갔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이렇게 부탁했다.
 “공 한 개 구해 주실 수 있어요?”
 미국인 구호요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가 놀이터니? 여긴 난민 수용소잖아.”
 “아이들은 다시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야 해요.”
 구호요원이 화를 내지 않을까 겁이 났지만 나는 계속 매달렸다.
 “행복해지려면 놀이가 필요해요. 놀기 위해서 제대로 된 공이 필요하고요.”
 “수용소에 필요한 건 의약품과 식량이야.”
 “공이 약이에요. 아이들을 다시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약이요.” ..  〈169∼170쪽〉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는 오늘 하루군요. 이제 저도 사진기를 둘러메고 요 앞 헌책방 한 곳에 찾아가서 책 구경을 해야겠습니다. 슬슬 책을 둘러보면서 사진 몇 장 찍어야겠어요. 제가 사랑하고 아끼는 헌책방을, 제가 좋아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헌책방에서 제 마음에 빛이 되는 책 하나를 찾고, 제 마음 깊숙한 데에서 느껴지는 모습을 차분히 담아야겠어요.


 - 4 -


 이야기책 《나무소녀》는 과테말라 내전을 줄거리로 담습니다. 하지만 ‘내전’이라는 말을 붙이기 멋쩍습니다. 미국 뒷배를 받는 독재정권이 과테말라 보통사람들을, 또 산골과 시골에 사는 토박이들을 괴롭힐 뿐 아니라 끔찍하게 죽이고 마을을 없애서 난민을 만들고 서로가 서로를 못 믿는 얼치기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놓고 ‘내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을 사람 그대로 볼 줄 모르고, 사람 삶터를 사람 삶터 그대로 아낄 줄 모르고, 어떤 눈먼 잇속을 챙기려는 움직임 때문에 고달파하며 목숨까지 잃어야 하는 아픔을 한 마디 ‘과테말라 내전’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학살에는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고, 수많은 마을이 사라졌습니다. 이들 과테말라 토박이는 역사에 이름 한 번 남은 적이 없고, 이들 삶터는 지도책에 그림 한 번 그려진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기록되지 않은 사람이자 마을’이 ‘기록되지 않은 학살’에 송두리째 날라가 버렸다고 할까요.

 우리들은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나?’ 할 수 있고, ‘에이, 꾸며낸 이야기겠지?’ 하며 스쳐 지나가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테말라 토박이들한테는 잊을 수 없는 아픔이며, 잊혀지지 않는 생채기입니다. (4340.4.24.불.ㅎㄲㅅㄱ)


.. 내가 학살에서 살아남은 건 내가 겁쟁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강하기 때문에,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  〈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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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12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록되지 않은 사진, 저도 이 책을 읽었었지만 님의 글은 정말 인상 깊은 리뷰네요.
카불의 책장수, 리뷰를 따라 왔다가 이렇게 두루 읽고 갑니다. 그냥 가기 미안해서
인사드리구요^^ 반갑습니다.

숲노래 2007-09-13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나 긴 글이었는데, 애써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십장생을 찾아서
최향랑 글.그림 / 창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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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좋다고 느껴지지 않는 책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다달이 <북새통> 잡지에 보내는 글입지요. 썩 좋지 않은 까닭을 함께 적었는데, 이럭저럭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림책 크기가 커서, 스캐너로는 잡히지 않아 사진은 함께 못 올립니다..

 
― 할아버지와 함께 크는 아이


- 책이름 : 십장생을 찾아서
- 글ㆍ그림 : 최향랑
- 펴낸곳 : 창비(2007.2.20.)
- 책값 : 1만 원


 우리한테 즐거움을 선사하는 이야기는 저 멀리 물 건너, 또는 산 너머, 바다 너머에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곳보다 우리 둘레에,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고 느껴요. 파랑새는 다른 곳이 아닌 우리 집 마당에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빌지 않더라도, 저마다 가장 소중한 보물은 우리 둘레(우리 집, 우리 마을)에 있고, 소중하고 살가운 동무도 우리 가까이에 있어요. 또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마음속 깊이 애틋하며 빛나는 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중한 보물을 볼 수 있느냐, 우리 스스로 간직하고 있는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느냐, 우리 식구와 우리 마을 사람들 삶과 삶터를 아름답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느냐에 따라 우리 눈길과 눈높이와 마음밭과 몸가짐이 달라지리라 믿습니다.

 그림책 《십장생을 찾아서》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이 곁에서 늘 마주하고 있는 나이든 분들(할머니와 할아버지)을 동무로 여기며 오순도순 알콩달콩 동무처럼 지내는 즐거움을 이야기합니다. 이제는 하루가 다르게 ‘조기교육’과 ‘영어 배우기 유학’이나 ‘갖은 학원-학교 교육’에다가, 중학교를 앞두고 밀어닥치는 ‘대학교 입시교육’에 짓눌리면서, ‘인터넷 놀이-인터넷게임 빠지기’로 자기 울타리를 쌓아가는 아이들이 되었습니다만, 이 아이들이 자기와는 또다른 사람을 만나고, 또다른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길잡이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이 세상을 부대끼면서 보고 듣고 생각한 여러 가지 이야기는 아이들한테 놀라움과 새로움을 느끼게 하면서, 자기가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며 부딪힐 세상을 차근차근 헤아리며 내다보도록 해 줍니다.

 아이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며 ‘자라나는 나와 달리 늙어 죽음과 가까워지는 남’을 느끼고, 이렇게 몸에 힘이 빠지고 걸음이 느려지는 이들을 느끼다가, 맨 처음으로 ‘죽음’을 지켜봅니다. 아직 ‘태어남’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느끼는 아이들이 ‘죽음’을 부대끼며 마음이 어수선해지기도 하고요. 그림책 《오른발, 왼발》(토미 드 파울라)은 이런 마음앓이와 마음만남, 또는 마음자라남을 가슴찡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들이 다 알고 있다고 할 만하고, 우리들 누구나가 겪었거나 겪었음직하지만 정작 이야기책이나 그림책에는 담아내지 못했던 삶을 보여주면서, 다른 곳이 아닌 우리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 이제 죽음과 가까워지지만 이 세상에 한 번 와서 살다 간 자기 삶을 즐겁게 마무리하면서 새로 자라날 아이들한테 사람과 세상과 삶과 죽음을 지긋이 바라보는 눈길을 다독인다고 할까요.

 그림책 《십장생을 찾아서》 이야기 흐름을 좇으면, 아이가 둘도 없이 살가운 동무로 여기는 할아버지가 병을 앓고 드러누워 병원에 들어가는 날, 할아버지 방에서 잠들어 꿈속에서 두루미와 함께 ‘오래오래 튼튼하게 살아가는 십장생 상징’을 만납니다. 할아버지는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아이는 산속에 쓴 무덤자리에서 할아버지를 또다른 모습으로 만나게 됩니다.

 참 좋은 이야기감을 잡았구나 싶어서 반갑습니다. 다만, 요즘 아이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숫자가 할아버지를 동무로 삼으며 지낼까 싶습니다. 아이들은 거의 어린이집이나 놀이방에 보내지거나 학원에 매여 지낼 텐데요. 아파트로 이루어진 시멘트 마을에서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은, 할아버지이든 할머니이든 ‘거의 돌아보지도 않고’ 지내지 싶은데요. 그렇지만, 차츰차츰 살가움을 잃어가는 우리들 모습을 뒤돌아보고 되새기도록 하는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솜과 깃털과 자수 들을 써서 ‘우리 문화’를 남달리 즐길 수 있도록 해서 반갑습니다. 다만, 군데군데 성의 없이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할아버지 무덤을 쓴 자리 둘레에 자라는 나무가 ‘미술학원이나 제도권학교 미술교육에서 틀에 박히게 아이들한테 그리도록 시키는 엉성한 그림’이었다는 대목이 대표라 할 만합니다. 아이들 눈높이에 걸맞지 않은 낱말이나 말투, 바로잡거나 다듬으면 좋을 만한 얄궂은 낱말이나 말투를 걸러내지 못한 대목도 좀 아쉽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우리 곁에서 늘 부대끼는 수수한 삶에서 가장 웃음이 묻어나고 눈물이 나는 삶’을 깨닫고 ‘우리 나름대로 우리 문화와 생각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그림책을 찬찬히 그려 나가 준다면 좋겠습니다. 아쉬움이 묻어나지만, 가능성을 믿고 별 다섯 만점에서 별 둘 반을 주겠습니다. (4340.3.2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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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우리시대의 논리 2
하종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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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 글쓴이 : 하종강
- 펴낸곳 : 후마니타스(2006.5.1.)
- 책값 : 1만 원


.. 한쪽은 막강한 자본과 권력으로 무장한 자본가들이고, 다른 한쪽은 맨몸뚱어리밖에 없는 노동자들인데, 그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17쪽〉


 우리 세상은 얼마나 평등할까요. 돈-이름-힘을 가진 사람과 돈-이름-힘을 못 가진 사람이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둘은 같은 자리에 서서 힘껏 첫발을 내디딜 수 있을까요. 50미터 앞에서 달리는 이가 있고, 50미터 뒤에서 달려야 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배우는 기회, 배운 것을 펼치는 자리, 펼치려는 것을 실을 매체, 매체에 실은 뒤 받는 대접들은 누구한테나 고르게 주어져 있을까요. 어렵게 살림을 꾸리며 공부도 부지런히 해서 뜻을 이루었다는 소년소녀 가장을 칭찬하는 사람들만큼, 어려운 살림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찔해 하는 훨씬 많은 사람들한테 따순 손길 내미는 이웃은 얼마나 될까요. 이들을 보듬는 제도가 우리 사회에 있을까요. 이런 사회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일은 무엇을 뜻할까요.


.. 남들이 하나도 갖기 어려운 자격증을 세 개씩이나 갖고 있으면서도 그 장애인 노동자는 아직까지 번듯한 직업을 가져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게 ‘썩을 놈의’ 우리 사회다 ..  〈39쪽〉


 양복 착 빼입은 사람한테는 굽실거리지만, 일할 때 입던 옷차림인 사람한테는 눈을 부라리며 가는 길을 막는 우리 사회입니다. 시커멓고 큰 차를 몰면 검문을 안 하지만 값싸고 작은 차나 짐차를 몰면 어김없이 검문을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열 해 앞서, 스무 해 앞서, 서른 해 앞서도 똑같이 나왔습니다. 아직까지 하나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앞으로 열 해가 지나고 스무 해가 지나도 마찬가지가 되리라 봅니다.

 길에서 신체장애인을 부대낄 때 보통사람들 반응을, 몽골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를 부대낄 때 보통사람들 반응을 떠올려 보셔요. 얼굴 하얀 서양사람이 길을 물을 때와 파키스탄 이주노동자가 길을 물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가요.


.. 법대로 모든 안전설비를 하는 데에는 수십억 원의 비용이 들지만,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을 때에는 기껏해야 1억 남짓의 비용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것도 대부분 산재보험에서 지불됩니다. 우리 사회와 같은 기업 경영 풍토 속에서 유능한 경영자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자명한 일입니다 ..  〈229쪽〉


 법이 있어도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사람한테는 ‘법이란 있느나 마나’ 아닐까요. 어떤 이는 불법을 저질렀어도 변호사를 잘 써서 불구속이 되거나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어떤 이는 멋모르고 저지른 잘못 하나로 바로 구속이 되고 오랫동안 옥살이를 합니다. 자기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살아남아 있기 때문에 옥살이를 해야 합니다. 사회 부조리에 항의하는 집회를 하는 사람들은 전투경찰 쇠몽둥이 찜질과 닭장차에 몸뚱이가 들린 채 처박히는 창피를 겪어야 합니다.

 법조항을 따진다면, 지금 틀거리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길’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사람 다니는 ‘거님길(인도)’로도, 자동차 다니는 ‘찻길’로도 다닐 수 없습니다. 법조항으로 따진다면. 그렇다면 자전거를 파는 가게도 불법이고, 자전거를 만드는 회사도 불법 아닐까요. 툭툭 끊어지는 자전거길을 놓는 행정 당국자도 불법이요, 자전거길을 제대로 놓지 않는 정책입안자와 공무원 모두도 불법 아닐까요. 자전거를 만들어서 팔게 해 놓고 다닐 수 없게 했으니까요.

 한편, 도시나 시골 길가에 불법무단 주정차를 하고 있는 자동차가 딱지를 끊는 일이란 거의 보기 드뭅니다. 몇 군데에서 함정 단속을 할 뿐, 그 많은 경찰들은 숱한 불법무단 주정차 자동차를 못 본 척합니다.


.. 노동자 임금이 인상되면 기업 경영에는 당연히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과도한 임금인상이 원인이 되어 도산한 기업은 거의 없습니다. 부실 경영의 원인은 대부분 다른 곳에 있습니다. 노동자의 적정 임금 수준을 유지하면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나라 기업 경영자들이 시급히 해야 할 일입니다 ..  〈75쪽〉


 우리들은 누구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은 ‘일꾼’입니다. 한자말로 옮기면 ‘노동자’입니다. 논밭을 부치는 사람이든,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동사무소나 행정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버스나 기차를 모는 사람이든, 누구나 ‘일하는 사람 = 일꾼 = 노동자’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는 일하는 사람이야. 일하는 사람이니 일꾼이지. 일꾼이란 노동자를 가리키지.’ 하고 생각할까요. 내 이웃도 똑같은 ‘일꾼이며 노동자’라는 생각을 몇 사람이나 할까요. 노동자한테 주어진 노동3권이 무엇인지, 노동자가 받을 권리가 무엇인지, 지금 우리 나라 노동현실이 어떠한지, 노동조합이나 민주노총이 어떠한 곳인지, 노조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회사 간부와 언론재벌 생각은 어떠한지, 노동운동이란 무엇을 하자는 일인지, 노동운동이 우리한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찬찬히 헤아리거나 살필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웬만한 직장인들은 대학교를 나오는 오늘날, 머리속에 수많은 지식을 가득 채우고 있으나, 정작 자기 자신은 누구이며 어떠한 ‘일꾼’이고, 어떤 대접과 권리를 받고 있는 가운데, 내 이웃이자 또래이자 손위나 손아래 사람인 다른 ‘일꾼’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무덤덤하지는 않나 모르겠어요. 내 이웃이 시달림을 받고 푸대접을 받을 때, 나 또한 시달림과 푸대접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못 느끼지 싶어요. 그래도 노동운동에 희망이 있을까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우리 사회에서 희망이란 불씨 하나 꺼지지 않도록 살리면서 보듬을 수 있을까요. (4340.4.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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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자연
김준호 지음 / 따님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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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사람과 자연
- 글쓴이 : 김준호
- 펴낸곳 : 따님(2001.5.20.)
- 책값 : 6800원


 익산에 사는 할머님 한 분이 보내준 된장과 간장으로 밥을 해먹습니다. 요 된장을 풀어서 끓이면 어떤 찌개든 맛깔스럽다고 느낍니다. 다른 간은 안 합니다. 된장만 반 숟가락 풀어서 국수를 삶거나 버섯찌개를 합니다. 김치나 감자나 빨간무나 호박 들을 두루 넣어 섞어찌개를 할 때도 있고요. 익산 할머님이 보내준 된장은 당신이 콩씨까지 하나하나 가려서 심고 풀약이나 비료를 하나도 안 쓰고 길러서 거둔 뒤, 손수 삶은 다음 메주를 띄워서 빚어내었습니다. 손수 띄워서 빚은 된장을 나날이 먹는 밥으로 먹어 보기는 스무 해 만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열서너 살 나이 때까지는 집에서 어머니가 손수 된장과 간장과 고추장을 담그셨거든요. 문득, 그때는 그 된장과 간장과 고추장만으로도 밥 한 그릇 맛있게 먹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  우리는 국토 면적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에 자연을 개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지만, 국토 면적이 좁을수록, 또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더 자연보존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까지 보존되어 온 자연마저 개발한다면 장차 이 땅에는 손바닥 만하게 보존된 자연마저도 영원히 사라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 들어 자연보호와 자연보존을 혼동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자연보호만이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개발만 하려는 생각이 판을 치게 되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  〈145쪽〉


 오랜 술동무 하나가 힘겹게 몸앓이한 끝에 아들아이 하나를 낳았습니다. 저저번달에 돌잔치를 했고, 저번달에 그네가 사는 동네로 찾아가서 저녁을 함께 먹었습니다. 집에서 손님 대접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라 그네 식구가 자주 찾는다는 오리고기집에 갔는데, 오리고기집은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논 한복판에 있습니다. 오리고기를 얻어먹으며, ‘어떻게 논 한복판에 오리고기집을 차릴 생각을 다했을까?’ 싶었습니다. 김포공항 둘레에는 아직 논밭이 조금 남아 있는데, 이 논밭은 머지않아 모두 갈아엎고 높은 아파트를 올린다고 합니다.

 농사짓는 분들로서는 곡식 거두어 보았자 돈이 안 되고 빚만 되니까, 그 땅이나마 좋은(?) 값에 팔아 딴 데로 떠나거나 고기집 장사를 하는 편이 살림살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까요. 재개발업자는 공사 한 건 얻을 테니 돈방석에 앉을 테고, 시나 구에서는 세금을 더 많이 거둘 수 있으니 공사업자와 어깨동무를 하고 힘껏 재개발에 나설 테지요. 논밭 둘레 높직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자기네 아파트 옆에 논밭보다 높직한 아파트가 나란히 서 있어야 집값이 올라 돈을 번다고 생각하겠지요.


.. 큰 도시가 생기고 생활환경이 열악해짐에 따라 식물은 일방적으로 수난을 당하게 되고, 사람의 마음은 자꾸 황폐해지고 있다. 무엇이 사람과 식물을 이간질하는지 모르는 사이에 둘 사이가 멀어지기만 하는 것 같다. 옛날에는 숲이 바로 안식처였고 생활 터전이었다. 사람은 메마른 마음을 살찌우려고 정원을 만들고 공원을 꾸민다. 정원은 각 민족의 오랜 정서를 모은 자연의 축소판이다 ..  〈67쪽〉


 도시개발 하는 모습을 보면, 여태까지 고이 이어오던 산을 깎고 들을 뒤집어엎어 시멘트로 바른 뒤 아파트를 세웁니다. 그리고 나서 흙을 퍼 오고 나무를 사 오고 꽃을 심고 하며 ‘근린공원(‘근린공원’이란 “가까이 있는 공원”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아파트 재개발을 한 곳에 가까이 마련한 공원이란 소리입지요)’을 조그맣게 만듭니다. 처음부터 재개발을 할 때 숲과 산과 들판을 고이 지키면서 ‘사람 살 집’만 알맞춤하게 지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모두 때려부수거나 갈아엎은 뒤 돈으로 바릅니다. 그리하여, 뒷날 ‘이번에 새로 지은 아파트’가 낡았다고 여겨지는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뒤에는 아파트뿐 아니라 아파트 옆에 있던 근린공원마저도 똑같이 허물고 부수고 새 아파트를 올린 뒤 새 근린공원을 만듭니다.

 있는 것을 지키거나 가꾸기보다, 있는 것을 부수고 새로 만들어야 돈이 된다고 하는 요즘 세상이라서 이렇게 돌아갈까요. 그러면 그 돈이란 어디에서 나오고, 이 돈은 어디에 쓰일까요. 이 돈은 밑도 끝도 없이 샘솟기만 할까요. 돈은 샘솟아도 돈을 쥐고 있는 사람이 숨을 쉴 수 있는 곳, 물을 마실 수 있는 곳, 아늑하게 깃들 수 있는 곳이 다 파헤쳐지거나 무너진 뒤에는 어찌 될까요. 오늘은 4월 5일, 박정희 독재자가 세운 ‘나무심는날’입니다. (4340.4.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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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아 - 어느 시골의사 이야기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김현우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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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이름 : 행운아
 - 글 : 존 버거 / 사진 : 장 모르
 - 옮긴이 : 김현우
 - 펴낸곳 : 눈빛(2004.11.11.)
 - 책값 : 9000원


 시골의사와 나누는 ‘행운’
 - 존 버거, 장 모르 함께 만든 《행운아》


 〈1〉 환자를 알아주어야 할 의사


.. 실제로 좌절한 사람에게 ‘좌절’이란 단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은 환자 자신의 목소리의 메아리에 불과하다. 알아줌은 간접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취급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 〈82쪽〉


 영국 어느 시골에서 수수하게 의사로 살아가는 ‘사샬’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이는 이 시골에 오직 하나 있는 의사이며, 마을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기도 하고 좋은 말동무가 되기도 하며, 어려움을 풀어 주는 사람이기까지 합니다. 다만, 마을사람들은, 여태까지 만난 다른 의사와는 사뭇 다른 이 사샬한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아주 자기들과 하나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 이러한 개인적이고 매우 친밀한 알아줌은 신체적인 면과 심리적인 면 양쪽 모두에서 요구된다. 전자의 경우 그것은 진찰의 기술이다. 진찰을 잘하는 의사는 드문데, 이는 그 의사에게 의학지식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관련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실들 ― 단순히 신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감정적, 역사적, 환경적인 것까지 ― 을 고려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환자의 진실, 다양한 양상을 암시할 수 있을 환자의 진실 대신에 특정한 양상만을 찾는다 .. 〈79쪽〉


 의사가 환자를 알아주는 일은 환자한테 ‘어떤 병이 어디에서 나서 얼만큼 번졌고, 어떻게 손을 쓰고 무슨 약을 쓰면 된다’ 하는 의학지식이 아닙니다. 이런 일은 오래지 않아 컴퓨터가 모두 알아서 해 줄는지 모릅니다. 컴퓨터도 할 수 있는 일, 그러니까 기계와 같이 착착착 지식을 뽑아내고 처방을 내리는 일이 사람이 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몸이 아플 때 사람들은 의사를 큰형이나 언니 정도로 가정한다.(74쪽)”고 합니다. 하지만 “치료가 불가능할 때 그가 우리의 죽음을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는군요. 이런 마음과 느낌은 무엇일까요?

 실제로 우리 자신이나 식구나 동무나 둘레 사람들이 병원에 참 자주 가고 많이들 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병원에 다니는 분들 가운데 ‘아주 좋다’고 하는 의사를 어렵지 않게 만나는 사람은 퍽 드뭅니다. 그저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다니면 좋을 텐데, ‘좋은 의사’를 찾아다닙니다. 이 ‘좋다’는 의사란 어떤 사람이기에 그럴까요. 또,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는 ‘좋다’는 의사를 만날 수 없는가요.


 〈2〉 좋다고 할 만한 의사

 제 나름대로 ‘좋다고 할 만한 의사’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봅니다. 첫째, 좋다고 할 만한 의사는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흰 가운을 입고 눈이 부신 빛을 쏘는 기계가 옆에 줄줄이 늘어선 병실에서만 만나서는 안 됩니다. 시골의사 사샬은 “좀처럼 수술실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스스로를 일종의 움직이는 일인 병원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식탁 위에서 충수염이나 탈장 수술을 한 적도 있고, 승합차에서 아기를 받은 적도 있었다. 일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61쪽)”었다고 합니다. 요즘 이런 의사를 볼 수 있을까요.

 둘째, 좋다고 할 만한 의사는 자기가 다스린 환자의 식구나 동무들, 또는 자식들까지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의사 사샬은 “마침내 그는 사람들이 변해 가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삼 년 전에 홍역을 치료해 줬던 여자아이가 결혼을 해서는 첫 번째 출산을 위해 찾아오는가 하면, 한 번도 앓은 적이 없었던 남자가 총으로 자기 머리를 쏴 버리는 일도 있었다(61쪽)”고 합니다.

 셋째, 좋다고 할 만한 의사는 환자가 두렵지 않게 해야 하며, 자기 집에 있는듯(그래서 의사를 형이나 언니처럼 느끼듯) 마음 가벼이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의사 사샬이 꾸린 진찰실은 “병원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오랫동안 살고 있는 아늑한 공간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어떤 응접실보다 더 깔끔했으며, 작은 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이 널찍해 보였다. 그곳이 바로 환자들이 진찰을 받고, 처방과 진료를 받는 곳이(53쪽)”었다고 합니다.

 넷째, 좋다고 할 만한 의사는 크지 않은 병원에서 일하거나 크지 않은 차를 타거나 자기를 낮출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시골의사 사샬은 “다른 집들과 떨어져 있는 병원은 차고 두 개를 합쳐 놓은 크기였다. 대기실과 두 개의 진찰실, 그리고 약제실이 있었다. 숲이 우거진 계곡과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계곡의 다른 쪽에서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을 정도(49쪽)”인 곳에서 일하고 있었답니다.

 다섯째, 좋다고 할 만한 의사라면 죽음을 앞둔 환자를 돌보는 식구들 앞에서 돈이 얼마가 있어야 수술을 할 수 있다느니, 장례비용이 얼마라느니, 얼마를 안 내면 주검을 내주지 않겠다느니 하고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시골의사 사샬은 다음처럼 움직입니다.


.. “참 별일이네요.” 노인이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말했다.
 “심장이 안 좋다가, 이제 폐렴까지… 별일이잖습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말입니다.”
 노인은 울기 시작했다. 마치 여자가 울 때처럼 매우 조용한 울음이었다.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벌써 왕진 가방까지 싸 들었던 의사는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차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 그가 말했다.
 딸이 차를 끓이는 동안, 두 남자는 집 뒤편에 있는 과수원과 올해 사과 농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딸이 차를 가지고 왔을 때는 노인의 류머티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의사는 차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31쪽〉


 환자인 여인은 늙은 할머니입니다. 할머니는 이튿날 숨을 거두었고, 할아버지는 내내 발 구르기를 멈추지 않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시골의사 사샬은 “좀더 사셨더라도 고통 속에 사셨을 겁니다. 훨씬 더 힘드셨을 거예요.”라고만 짧게 말하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3〉 ‘행운아’란?

 권정생 님은 《우리들의 하느님,녹색평론사(1996)》이라는 책에서 “나는 나중에 커서 훌륭한 의사가 되어 불쌍한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겠다는 어린이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기특한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그것도 이기적인 욕심이란 생각이다. 그런 어린이는 자신들만 훌륭한 의사가 되고 다른 사람은 모두 불쌍한 환자가 되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42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의사 되기란 참 어렵습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인 의사’가 되기도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의학지식 쌓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자신들만 훌륭한 의사가 되고 다른 사람은 모두 불쌍한 환자가 되’길 바라는 비뚤어진 이기심을 품지 않도록 마음 다스리기에도 애써야 합니다.


.. 사샬의 특권에 대한 마을 사람이나 숲 사람들의 반응은 복잡하다. 사람들은 그가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왜, 그렇게 좋은 머리로…” 그때 사샬이 그들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시골의사로 활동하기로 한 그의 선택까지도 일종의 특권을 암시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성공에 무관심할 수 있는 특권. 이제 그의 특권은 어느 정도는 그들의 특권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자랑스러워하고, 동시에 그를 보호하려 든다. 마치 그의 선택이 은연중에는, 머리가 좋다는 것이 약점일 수도 있음을 암시하기라도 하듯이. 종종 사람들은 그를 매우 걱정스러운 듯이 쳐다본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그를 의사로서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아니다. ― 그가 좋은 의사라는 것은 마을 사람들도 알고 있지만, 그런 의사가 보기 힘든 의사인지 아니면 흔히 볼 수 있는 의사인지는 모르고 있다. 그것보다도 사람들은 그의 생각하는 방식을 자랑스러워하고,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하여금 자신들과 함께 머물도록 선택하게 해 준 그의 정신을 자랑스러워한다 .. 〈117쪽〉


 이리하여 시골의사 사샬은 ‘행운아’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샬에게 의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골사람들도 ‘행운아’가 되어요. 외진 시골로 가서 성공에는 얽매이지 않고 의료 봉사를 하면서 즐거움과 보람을 찾는 일은 한편으로 ‘특권’이지만, 이런 일을 자기 몸을 낮추고 다스릴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일은 특권이 아니라 ‘부지런히 애써서 얻은 열매’입니다. 사샬한테 특권만 있었다면 시골사람들은 그저 그런 의사 하나쯤으로 보고 조금은 고마워했겠지만, 자기들과 한 마을에서 살면서 자랑스럽게 여길 만하게 생각하지 않았겠지요.

 “안타까운 합병증이라고 부르는 것까지도 사샬은 실수라고 생각(142쪽)”합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을 가만히 돌아다보면, ‘의사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람은 없고 ‘합병증’이라느니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데까지 왔다’느니,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느니 하면서 온갖 핑계와 구실을 대며 책임을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돌리는 직업인만 많아 보입니다.


.. 의사는 여러 직업들 중에서 가장 이상화한 직업이지만, 그것은 추상적으로 이상화했을 뿐이다.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몇몇 젊은이들은 초기에 그 이상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많은 의사들이 환상을 깨고 냉소적으로 변하는 이유는, 그러한 이상이 엷어졌을 때, 자신이 다루는 환자의 실제 삶의 가치에 대해 확신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성격이 둔하거나 비인간적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인간의 삶의 가치를 알아볼 능력이 없는 사회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 〈177쪽〉


 〈4〉 우리 자신에게 물어 볼 이야기들

 시골의사 사샬 이야기를 옆에서 살피면서 《행운아》란 책을 남긴 존 버거는 우리한테 묻습니다. “사샬은 25년 동안 의료 활동을 펼쳐 왔다. 지금까지의 치료건수는 10만 건이 넘을 것이 분명하다. 이만하면 ‘괜찮은’ 기록처럼 보인다. 그가 1만 건만 다루었다고 해서 ‘덜 괜찮은’ 기록일까? 그가 머리만 좋고 부주의한 의사였다고 가정해 보자. 한 번의 사례를, 혹은 열 번, 백 번의 사례를 부주의하게 다루었다는 이유로 그의 기록에서 그만큼을 제외해야만 하는가? 반대로 머리가 좋고 대단히 헌신적인 의사였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그 기록에 얼마를 더해 줘야 하는가? 그래서 그가 얻게 되는 것은 또 무엇인가?(175쪽)” 하고요.

 “고통의 치료가 가지는 사회적인 가치는 무엇인가?”, “구해 낸 생명들이 가지는 가치는?”, “대단히 어렵게 정확한 진단을 내려 주는 것은 위대한 작품을 그리는 것에 비견될 수 있을까?”, “의사는 전문성에 따라 평가되어야 하는 것일까?” 같은 이야기도 묻습니다. 자, 이런 물음을 들은 우리들은 무어라고 대꾸해야 좋을까요. 아니, 이런 물음을 들어 보기나 했을까요,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요, 참다운 의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는지, 의사를 넘어 우리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우리 자신이 얼마나 참다운 사람, 참다운 일, 올바르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생각이나 해 보고 있기나 할까요?


.. 풍경은 기만적일 수 있다.
 종종 풍경은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는 무대라기보다는 하나의 커튼처럼 보인다. 그 뒤에서 사람들의 투쟁, 성취 그리고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그런 커튼… 〈13쪽〉


 생명을 얻어서 이 땅에 태어났고,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일은 누구한테나 축복이고 행운입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자신이 축복받은 일과 행운을 얻은 일을 생각하거나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시골의사 사샬은 틀림없는 행운아이고, 사샬과 함께 살아가는 시골사람들도 행운아입니다. 이런 사샬을 취재하고 만난 존 버거와 장 모르도 행운아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엮은 책을 읽는 우리들도 행운아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우리 스스로 느껴야 행운이지, 느끼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픔도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우리가 살갗으로 느껴야 비로소 아픔, 기쁨, 슬픔, 즐거움이 됩니다.

 《행운아》라는 책은 언뜻 보면 남다르다고 할 만하게 살아가는 시골의사 한 사람을 드러내어 보여줍니다. 책 한 권 읽으며 ‘보람차게 살아간 한 사람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편, ‘시골’과 ‘의사’를 넘어서서 ‘한 사람이 고즈넉하게 걷는 길’을 차분하게 보여주는 책 《행운아》입니다. 우리는 이 책을 곁에 두고 틈틈이 읽으면서, 우리 스스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거나 살필 수 있고, 자기 삶을 알뜰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란 무엇인가 우리 나름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운이 좋아서 주어지는 ‘행운’이 아닌, 저마다 소중한 한 사람으로 태어나, 저마다 자기 길을 즐겁게 걸어가는 ‘삶’과 이야기를 느끼면서. (4338.6.13.달.처음 씀/4340.3.9.고쳐 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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