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는 용감해
데보라 닐랜드 지음, 조선미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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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51



아이들은 씩씩함을 타고날까?

― 애니는 용감해

 데보라 닐랜드 글·그림

 조선미 옮김

 크레용하우스 펴냄, 2008.12.29. 9500원



애니는 넘어져도 혼자 일어나요.

“괜찮아요. 안 아파요.”

나방이 팔랑팔랑 날아와도

벌레가 스멀스멀 기어와도

애니는 소리 지르지 않아요.

“아이, 간지러워.” (3쪽)



  아이들이 얼마나 씩씩한지를 오히려 어른들이 잘 모르기 일쑤입니다. 아이들은 심부름을 잘 해내기도 하고, 무서움이나 두려움이 없을 뿐 아니라, 여린 동무나 이웃을 따스하게 보살필 줄 알기도 해요. 아이들은 작은 짐승이나 벌레를 따스히 바라볼 줄 알고, 풀포기와 꽃송이를 살뜰히 아낄 줄 알아요. 바람이나 구름하고 말을 섞고, 비나 눈하고 이야기할 줄 알아요.


  누구한테서 이런 모습이나 몸짓을 배웠을까요? 아이라면 누구나 이런 모습이나 몸짓을 타고날까요? 우리는 누구나 아이로 태어나서 어버이한테서 사랑이나 보살핌을 받고 자라는데, 이동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웃사랑이나 씩씩함이 몸에 배었기에, 새로 아이를 낳는 어른이 되면 저절로 아이들한테 이 기운을 물려줄까요?


  씩씩한 아이는 나무에 올라간 어린 고양이를 보고는 안쓰럽게 여깁니다. 고양이가 나무를 잘 타는 줄 아직 모르는 아이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고양이를 내려 주겠노라 말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나무를 타고 오르니 어린 고양이는 어느새 땅으로 내려가네요. 이제까지 언제 어디에서나 씩씩하던 아이는 어떤 모습이 될까요? 늘 씩씩하던 아이는 어떤 몸짓을 할까요? 나무를 타고 높은 데까지 올라간 아이는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나무를 타고 높이 올라간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은 차분한 마음이 되어 아이를 이끌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어떤 엄청난 일을 해낸 모습을 바라보는 어른은 상냥한 눈빛이 되어 아이를 마주할 수 있을까 궁금해요. 그림책을 읽는 내내 저도 이 아이처럼 씩씩하게 노래하자고 생각합니다. 2017.7.28.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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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책읽기 - 안건모 서평집, 2017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안건모 지음 / 산지니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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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15


틈이 없어 책 못 읽는다는 핑계는 안 먹혀
― 삐딱한 책읽기
 안건모 글
 산지니 펴냄, 2017.6.19. 15000원


  버스기사로 일하던 안건모 님은 버스를 몰다가 신호에 걸려서 기다려야 할 적에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 본들 책을 얼마나 읽겠느냐고 여길 분이 있을 텐데, 열 권짜리 《태백산맥》을 오직 버스를 모는 동안 한 달 만에 다 읽었다고 해요.

  한 달에 열 권쯤 읽기란 대수롭지 않을 수 있을 테지요. 그러나 버스가 신호에 걸리는 작은 틈을 차곡차곡 모으니 한 달 동안 열 권에 이르는 책을 읽는 새로운 길을 연 셈이에요. 우리한테 틈이 없어 책을 못 읽는다기보다, 책을 읽는 틈을 스스로 못 내는 하루라고 할 만하지 싶어요.


사람의 기억이 얼마나 짧은지, 게다가 강연과 책이 다시 말해 ‘말’과 ‘글’이 이렇게 느낌이 다르고 이해가 깊이 있게 다가오는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44쪽,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읽고)

노동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동료들을 배신하고 심지어는 뉴라이트까지 들어가 자본에 넘어가는 가장 큰 원인은 자본가들의 이간질과 이념 공세 때문이 아닌가. 노동자들이 참다 참다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자본가들 공세가 얼마나 심한가. (75쪽, 《길은 복잡하지 않다》를 읽고)


  버스기사 안건모 님은 책읽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가벼운 책읽기로 끝내지 않습니다. 버스를 몰면서 생기는 작은 틈에 책을 읽는 삶에서 한 걸음 나아가기로 합니다. 사회에서 바라본다면 아주 작은 버스기사 한 사람입니다만, 이 땅하고 이웃을 책으로 읽어 보자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글을 쓰기로 합니다. 작가도 지식인도 문학인도 아니지만, 버스기사로 살아가는 나날을 수수하게 적어 보기로 합니다. 책을 읽으며 넓힌 눈길을 바탕으로 이녁 삶을 이녁 손으로 고스란히 적는 글쓰기로 나아가요.

  이러면서 잡지 《작은책》을 펴내는 자리로 일터를 옮겼고, 《삐딱한 책읽기》(산지니,2017) 같은 책까지 써낼 수 있습니다.


전교조를 탄압하던 박근혜에게 김진숙은 “박근혜 씨, 가관도 길어지면 민폐라 한마디 하오” 하면서 박근혜에게 묻는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와바리’를 지키거나 더 확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누군가를 위해 단 하루라도 바쳐 본 적이 있으시오?” 하면서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그 자리가 아니오.” 일갈하고 (107쪽, 《소금꽃 나무》를 읽고)

그런 책 한 권을 보면 사회를 보는 눈이 트일 텐데 우리 노동자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 내가 같이 일하던 버스 운전사들을 보면 1년 내내 책 한 권 읽지 않는다. 시간이 없어 못 본다는 핑계는 나한테 먹히지 않는다. “나는 운전하면서 책 읽었어.” (112쪽, 《전태일》을 읽고)


  책읽기를 둘러싸고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은 ‘바빠서 책 읽을 틈이 없다’입니다. 그러나 틈이 많아서 책을 읽는 사람이 있을 터이나, 없는 틈을 내어 책을 읽는 사람이 제법 많다고 느껴요. 요즈음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서 책을 읽는 사람이 매우 크게 줄었다고 하는데요, 그래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꾸준히 있어요. 여행을 가는 길에 비행기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있어요. 여행을 간 곳에서 다리를 쉬면서 책을 읽는 사람이 있지요. 여행을 간 곳에서 책방을 애써 찾아가서 틈틈이 책을 손에 쥐는 사람이 있고요.

  저는 집에서 살림하는 틈틈이 책을 손에 쥡니다. 밥을 하다가 1분이나 10초쯤 쪽틈이 날 적에 책을 읽어요. 김치를 담그려고 풀을 쑤면서 책을 읽지요. 한 손으로는 주걱을 쥐고 한 손으로는 책을 쥡니다. 낫을 쥐고 풀을 베다가 땀을 식히느라 풀밭에 앉아서 책을 쥐어요.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를 다녀오는 길에 책을 쥐고요.


미국은 대체 왜 그렇게 다른 나라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일까.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핵을 보유하고도 모자라 남의 나라에 있는 핵은 무용지물이 되도록 미사일방어체제를 갖추고, 그것도 모자라 남의 나라에까지 배치하려고 기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167쪽, 《맨발의 겐》을 읽고)

나리타공항을 반대했던 이들은 언론이 보도한 과격파들이 아니라 거기 살고 있는 순박한 농민들이었다. 이들은 왜,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버티고 있을까? 책을 다 읽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176쪽, 《우리 마을 이야기》를 읽고)


  안건모 님은 ‘삐딱한 책읽기’를 말합니다. 아무 책이나 읽기보다는 ‘삐딱한’ 눈길로 책을 읽자고 말합니다. 바쁜 틈을 쪼개어 읽는 책인 만큼, 시간을 죽이는 책이 아니라 생각을 넓히는 책을 읽자고 말해요.

  이 나라가 어떤 모습인가를 꿰뚫어보도록 북돋우는 책을 읽자고 말합니다. 우리 이웃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돌아보도록 이끄는 책을 읽자고 말합니다. 일하는 사람이 흘리는 땀방울이 무엇인가를 깊이 느끼도록 알려주는 책을 읽자고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지요. 애서 틈을 내고, 틈 가운데에서도 아주 작은 쪽틈을 내는데, 아무 책이나 손에 쥘 수 없어요. 스스로 새롭게 거듭나도록 일깨우는 책을 읽으면서 즐거워요. 스스로 새롭게 바라보도록 가르치는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어요. 스스로 새롭게 살림을 짓도록 돕는 책을 읽으면서 사랑스럽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삐딱한 책읽기란 아직 평등하지 않고 평화롭지 않으며 민주하고 동떨어진 이 나라에서 평등·평화·민주를 찾아내어 가꾸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는 모습이나 몸짓일 수 있습니다. 평등·평화·민주하고 엇나가는 나라 흐름을 앞으로는 작은 촛불힘으로 바꾸어 내고 싶은 꿈으로 바지런히 책을 읽습니다. 2017.7.28.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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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07-29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버스 신호 대기 중에 책을 읽는다는 건 너무 무서워요^^ 엘레베이터안에서 책을 읽는 일인인데 못 내린적 많습니다^^

파란놀 2017-07-30 05:42   좋아요 0 | URL
너무 푹 빠지면... 위험할 만하겠지요?
알맞게 끊으면서 조금조금 즐길 수 있다면
할 만할 테지만
책에 푹 사로잡히는 분한테는
많이 힘들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
 
이누야샤 5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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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08



서로 도우며 걷는 길

― 이누야샤 5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2.4.25. 4500원



“도망, 가.” “싫어!” “바보. 말 들어.” “그래, 바보다! 혼자 도망가는 건, 죽어도 못해!” (59쪽)


“미안. 나 때문에 깼어?” “아니. 생각하고 있었어. 왜, 나 때문에 울었어?” “그러니까, 네가 죽어 버리나 해서.” “…….” “무릎, 무릎 빌려줄래?”

 (71쪽)


“어때? 좀 편해졌어?” “응. 너, 좋은 냄새가 나.” “뭐? 뭐, 뭐야? 내, 냄새가 마음에 안 드느니 할 땐 언제고?” “그거, 거짓말이야.” (72쪽)



  혼자서 길을 갈 수 있어요. 혼자서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어요. 씩씩하게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외롭다고 느낄 겨를이 없겠지요. 혼자 모든 일을 짊어지느라 바쁘니 외롭다느니 쓸쓸하다느니 생각하지 않아요. 언제나 홀가분하게 생각을 짓고, 길을 닦아요.


  혼자서 길을 간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다고 둘레에서 딱히 돕거나 이끌지는 않아요. 그동안 여러 사람들 품에 고이 묻혀서 지냈을 뿐이에요. 따로 꿈을 짓거나 세워 보지 않았을 뿐이고, 앞으로 어떤 삶을 스스로 걸어갈 만한가 하는 대목도 그다지 헤아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길을 어떻게 걸어갈 적에 즐거울까요? 우리는 우리 길을 누구하고 걸어갈 적에 기쁠까요?


  《이누야샤》 다섯째 권에서는 어느 길을 함께 걷는 마음이란 무엇인가를 넌지시 짚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냥 이 길을 함께 걷는 사이가 아닌 줄 이야기합니다. 오랜 마음이 비로소 만나면서 새롭게 길을 찾아서 걷는 사이인 줄 이야기해요.


  옆에 있기에 도울 수 있어요. 마음으로 아끼기에 먼발치에서 도울 수 있어요. 옆에 있지만 안 도울 수 있어요. 마음으로 안 아끼니 어디에 있든 도울 뜻이 없어요.


  삶은 사랑으로 피어나고, 하루는 꿈으로 자라납니다. 서로 아낄 줄 아는 마음이 모여 어깨동무를 하고, 이 길을 걷는 곁님이 문득 마음벗인 줄 깨닫고는 빙그레 웃음을 짓습니다. 2017.7.26.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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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까? 베틀북 그림책 69
마거릿 초도스-어빈 글 그림, 민유리 옮김 / 베틀북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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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50



아침에 그린 하루

―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까?

 마거릿 초도스 어빈 글·그림

 민유리 옮김

 베틀북 펴냄, 2005.2.1.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엘라가 말했어요.

“오늘은 분홍색 물방울 무늬 바지랑

알록달록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줄무늬 양말에 노란 구두를 신어야지.

그런 다음 빨간 모자를 써야겠다.” (1쪽)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그렸다고 합니다. 오늘은 어떤 옷을 입겠노라 하는 그림을 그렸다고 해요. 그런데 이렇게 아이가 그린 하루를 바라보는 어머니나 아버지나 언니로서는 좀 터무니없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서 ‘이렇게 입을 테야’ 하고 말한 옷차림은 이들이 보기에 내키지 않거든요. 어머니는 어머니 마음에 드는 옷차림을 아이한테 말해요. 아버지는 아버지 마음에 드는 옷차림을 아이한테 말하고요. 언니는 언니대로 언니 마음에 드는 옷차림을 말할 텐데, 이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이로서는 모두 억지로 느낄 만한 말입니다.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서 스스로 생각한 대로 해 보려는 일을 왜 막아야 할까요? 어머니나 아버지나 언니로서 좀 내키지 않거나 아니로구나 싶다면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면 되어요. 아이가 바라는 옷차림대로 하지 말라는 말은 멈추고, 어머니나 아버지나 언니로서 보기에 그 옷차림은 ‘내(어머니나 아버지나 언니) 느낌’에는 안 어울리는 듯하다고 말을 해야지요. 그리고 아이가 그 옷차림이 마음에 든다고 말하면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테고요.


  터무니없는 옷차림이란 없어요. 수수한 옷차림도 없지요. 잠옷을 입고 돌아다닐 수 있고, 속옷차림으로 다닐 수 있을 테지요. 모두 스스로 겪어 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면서 차리는 옷이 아닌, 나 스스로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을 차릴 적에 즐거워요. 우리는 누구나 아침에 스스로 하루를 지을 적에 가장 아름다우며 가자아 즐겁고 가장 빛납니다. 2017.7.26.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그림책 읽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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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의 작은 냄비 신나는 새싹 2
이자벨 카리에 글.그림, 권지현 옮김 / 씨드북(주)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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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49


‘다른’ 아이는 사랑스러운 아이
― 아나톨의 작은 냄비
 이자벨 카리에 글·그림
 권지현 옮김
 씨드북 펴냄, 2014.7.27. 11000원


  이곳에 눈에 뜨이는 아이가 있어요. 남하고 다르기 때문이에요. 다들 키가 큰데 몇 아이가 키가 작으면 바로 이 작은 키가 남하고 다르기 때문에 눈에 뜨여요.

  저곳에 눈에 뜨이는 아이가 있어요. 남하고 안 같기 때문이에요. 다들 여덟 시에 똑같은 옷을 맞춰 입고서 학교에 가는데 이 아이는 여덟 시에 공원이나 숲이나 도서관에 가요. 게다가 다른 아이들처럼 똑같은 옷을 맞춰 입지 않았어요. 이 때문에 눈에 뜨여요.


아나톨은 작은 냄비를 달그락달그락 끌고 다녀요.
어느 날 갑자기 냄비가
머리 위로 떨어졌어요.
하지만 왜 그랬는지
아무도 몰라요. (1∼2쪽)


  그리고 어느 곳에 돋보이는 아이가 있어요. 여느 아이들이 해내지 못하는 어떤 일을 솜씨있게 해내거나 훌륭히 해내요. 돋보이는 아이도 눈에 뜨이는 아이처럼 남하고 다르거나 안 같은데, 돋보이는 아이를 놓고는 좀 ‘다르게’ 바라봐요. 눈에 뜨이는 아이는 꺼린다든지 안 좋게 보는 눈길이 짙다면, 돋보이는 아이는 반긴다든지 추켜세운다든지 좋아하기 일쑤예요.

  다른 모습이라고 하는데 왜 한 아이는 그저 눈에 뜨이고, 다른 아이는 돋보인다고 여길까요? 안 같은 모습이라고 하는 왜 한 아이는 자꾸 눈에 뜨이고, 다른 아이는 돋보인다고 느낄까요?


아나톨은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예요.
잘하는 게 아주 많은 아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자꾸 냄비만 쳐다봐요.
냄비가 이상하대요. (5∼6쪽)


  이자벨 카리에 님이 빚은 그림책 《아나톨의 작은 냄비》(씨드북,2014)은 ‘눈에 뜨이는’ 아이를 이야기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상냥하고 곱고 밝은 아이라 할 수 있지만, 어느 때에는 둘레에서 사람들이 ‘뭔가 다르다’고 느낀대요.

  ‘뭔가 다르다’고 하는 모습은 여러 가지일 수 있어요. 개구지거나 말괄량이 같은 모습일 수 있지요. 덜렁거리거나 수다스러울 수 있어요. 툭하면 울거나 걸핏하면 골을 부리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셈을 잘 못 하거나 글씨를 아직 못 깨쳤을 수 있고, 다리가 여려 잘 넘어질 수 있어요. 아이인데 눈이 어두워 두꺼운 안경을 쓸 수 있고, 앞을 아예 못 볼 수 있습니다. 걷지 못하는 아이일 수 있고, 마음 한쪽이 다친 아이일 수 있어요.


작은 냄비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결국 숨어 버리기로 했어요.
그러면 더 편해질 것 같았어요.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죠.
그러자 사람들은 아나톨을 조금씩 잊어버렸어요.
아무도 아나톨에게 말을 걸지 않았어요. (16∼18쪽)


  가만히 보면 온누리 모든 아이는 다 다릅니다. 같은 아이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어요. 그런데 사회라는 틀에서는 모든 아이를 ‘똑같은 아이’로 맞추기 마련이에요. 여덟 살이 되면 초등학교 1학년이어야 한다든지, 열네 살이 되면 중학교 1학년이어야 한다는 틀에 아이들을 맞추려 하지요.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에는 대학교에 가야 한다는 틀이 있고, 대학교를 마친 뒤에는 돈을 버는 일자리를 얻어야 한다는 틀이 있어요. 돈을 버는 일자리를 얻고서는 짝꿍을 만나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틀도 있고, 새로 낳는 아이를 또 학교에 보내고 …… 하는 틀이 있어요.

  모든 아이가 이러한 틀에 맞추어서 움직여야 할까요? 모든 아이가 유치원·어린이집에다가 초·중·고등학교하고 대학교라는 틀에 따라서 배움길을 걸어야 할까요? 좀 다른 배움길을 걸으면 안 될까요? 굳이 회사원이나 공장 일꾼이 안 되면 안 될까요? 돈을 안 벌고 시골에서 조용히 흙을 지을 수 있을 테고, 구태여 회사에 나가지 않고서 집에서 차분히 살림을 할 수 있어요.

  텔레비전을 집에 안 들이고 살 수 있지요. 연예인도 운동선수도 까맣게 모르는 채 살 수 있어요. 대통령 이름조차 모르면서 착하게 살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세상은 아나톨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어요.
세상에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되어요. (19∼20쪽)


  그림책 《아나톨의 작은 냄비》는 넌지시 묻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다른 이웃’을 어떤 눈길로 바라보는가 하고 물어요. 우리 스스로 남들하고 꼭 똑같아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너하고 다른 나를 얼마나 느끼는가를 묻고, 나하고 다른 너를 얼마나 헤아리는가 하고 물어요.

  우리는 톱니바퀴가 아니에요. 우리는 부속품이 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다른 삶과 꿈을 짓는 사람이면서, 우리는 모두 사랑스럽다는 대목에서는 똑같은 사람이에요. 그림책에 나오는 아나톨은 작은 냄비를 몸에 안고 살아간대요. 누구는 큰 냄비를 몸에 안고 살아갈 테고, 누구는 숟가락을 귀에 꽂고 살아갈 수 있어요. 누구는 손끝에 젓가락을 달고 살아갈 수 있을 테고, 누구는 등에 꽃그릇을 얹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든 모두 다른 모습이면서 모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리라 생각해요. 우리는 모두 다른 보금자리에서 모두 다른 살림을 지으면서 모두 다른 꿈으로 걸어가기에 기쁘게 어깨동무하는 따사로운 이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7.25.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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