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은 날
박일환 지음, 오윤화 그림 / 창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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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65



어머니도 아직 사랑을 잘 모르나 봐

―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은 날

 박일환 글

 오윤화 그림

 창비 펴냄, 2013.12.16. 8500원



  아이가 늦도록 잠들려 하지 않으면 어버이는 고단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고단할까요? 아이가 안 자서 어버이인 내가 못 자거나 다른 일을 못 하기에 고단할까요? 아이가 밤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않으면 아침에 늦게 일어나거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더라도 몸이 찌뿌둥할까 싶어서 고단할까요?


  아이를 꾸짖는 어버이는 ‘아이 아닌 어버이 스스로’를 꾸짖는 셈입니다. 아이를 나무라는 어버이는 ‘아이 아닌 어버이 스스로’를 나무라는 셈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꾸짖거나 나무라는 어버이는 ‘아이가 시무룩해 하거나 울’면, 이런 모습을 보면거 가슴이 미어집니다. 아이를 꾸짖거나 나무랄 일까지 아니었는데 괜한 짓을 한 줄 뒤늦게 알아채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이한테 한 말은 모두 어버이가 저 스스로한테 한 말이라 가슴에 날카롭게 꽂히고 말지요.


  이와 달리, 아이를 따사롭게 보듬으면서 아끼는 말은 아이한테뿐 아니라 어버이한테도 하는 말입니다. 아이한테 부드럽고 착하게 흐르는 말은 바로 어버이 스스로한테 부드럽고 착하게 흘러요. 따스하면서 살가이 부르는 자장노래는 아이한테도 곱게 스미지만, 이 노래를 부르는 어버이 가슴에 한결 뚜렷하면서 곱게 감겨들기 마련입니다.



떨어진 손톱을 보며 / 빙긋 / 조각 웃음을 흘리는데 // 손톱 깎다 말고 뭐 해? / 엄마가 소리치는 바람에 / 얼른 손톱을 쓸어 모았다. (손톱)



  박일환 님이 빚은 동시집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은 날》(창비,2013)을 읽습니다. 책이름부터 뭔가 ‘있어’ 보이는 동시집입니다.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았다니, 아팠을까요 서운했을까요 놀랐을까요 슬펐을까요 괴로웠을까요 미웠을까요, 아니면 사랑스러웠을까요. 아이 어머니는 왜 아이를 빗자루를 들어서 때렸을까요. 맞아서 아프라고 빗자루를 들었을까요, 아니면 맨손으로 손찌검을 하기 싫어서 빗자루를 들었을까요, 아니면 눈에 빗자루가 보여서 바로 집어서 성풀이를 하려 했을까요.


  어머니도 아직 사랑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아니, 어머니라고 해서 사랑을 잘 안다고 할 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어머니가 되기 앞서’까지 초·중·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입시에 빠져들어 헤매다가 대학교를 마쳤고, 대학교를 마친 뒤 몇 해쯤 회사 일을 하다가 아기를 배어 회사를 그만둔 뒤 아기를 낳은 어머니가 많아요. 이렇게 살아온 어머니는 ‘사랑을 찬찬히 돌아볼 겨를’이 없기 마련입니다. 이는 아버지도 똑같아요. 참말 사랑을 잘 모르니 멋모르고 빗자루를 들어서 아이를 나무라거나 꾸짖고 맙니다.



달이 나에게 / 고운 달빛과 긴 그림자를 / 선물로 주었다. (달밤)


콩알처럼 동글동글한 / 콩새는 / 콩을 좋아해. (콩새)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을 선물합니다. 어버이는 사랑을 선물하려고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 사랑을 선물합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사랑을 선물하기에 아이도 어버이한테 사랑을 선물하지 않아요. 그럼 왜 아이는 어버이한테 사랑을 선물할까요?


  자,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 돈을 선물할까요? 아니지요. 아이는 어버이한테 밥을 선물할까요? 아니지요. 옷이나 집을 선물할까요? 아니에요. 아이는 어버이한테 자동차나 자격증이나 성적표 따위를 선물하지 않아요. 아이는 어버이한테 케익이나 떡도 선물하지 않아요. 두 살 아기가 밥을 지을 수도 없지만, 뭘 돈으로 장만해서 선물할 수도 없습니다.


  온누리 모든 아이는 어버이한테 오직 사랑을 선물합니다. 사랑받기에 사랑을 선물로 하지 않아요. 아이 숨결은 언제 어디에서나 모두 사랑뿐이라서, 늘 어버이한테 사랑을 선물합니다.



별만큼 작은 별꽃. / 별만큼 예쁜 별꽃. // 별은 밤하늘에 숨어서 빛나고 / 별꽃은 길섶에 숨어서 피지요. // 별은 고개를 들어야 보이고 / 별꽃은 고개를 숙여야 보이지요. (별꽃)



  사랑을 선물하면서 사랑을 받는 아이는 별꽃을 별처럼 알아봅니다. 학자가 별꽃이라는 이름을 붙였기에 ‘별꽃’이라 하지 않습니다. 아이 스스로 길바닥을 쳐다보고 풀밭을 바라보다가 문득 ‘와, 여기에 하얀 별이 조그맣게 내렸네!’ 하고 놀라면서 ‘별꽃’이라는 이름이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아이는 별꽃이 별꽃나물인지 아닌지 궁금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그저 하얀 별이 낮에도 방긋방긋 웃는구나 싶어서 반갑습니다. 개미를 보려다가, 사마귀나 메뚜기를 보려다가, 나비나 잠자리를 잡으려다가, 아이는 문득 별꽃을 보고는 별을 그리면서 온마음이 새롭게 푸근합니다.



엄마 차 타고 가는데 / 갑자기 / 택시가 옆에서 끼어들자 / 엄마가 욕을 했다. / 나도 옆에서 / 한마디 거들었더니 / 엄마 얼굴이 굳어졌다. (엄마 얼굴이 빨개졌다)


아빠 차 타고 가다 / 깜박 잠이 들었는데 // 어느새 시골에 다 왔다며 / 빨리 내리란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건?)



  아이는 별꽃을 바라보면서 나비하고 노는데,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동차를 몹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동차를 모느라 아이를 쳐다볼 겨를이 없습니다. 자동차를 몰면서 옆이나 뒤를 돌아볼 사람은 없어요. 말이 안 되지요. 자동차를 싱싱 몰다가 옆을 보면 어찌 되겠어요? 큰일이 나지요.


  그렇다고 자가용을 모는 일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가용을 모는 어버이는 그만큼 아이 얼굴을 또렷이 쳐다볼 겨를이 없다는 뜻입니다. 자가용을 모느라 다른 자동차와 길알림판과 찻길 따위를 살피느라, 막상 아이가 어떤 눈빛이요 몸짓이며 마음인가를 살필 틈이 없다는 뜻입니다.


  박일환 님은 〈엄마 얼굴이 빨개졌다〉라든지 〈세상에서 가장 빠른 건?〉처럼 재미난 동시를 씁니다. 비록 자동차를 몰 적에 어버이는 아이하고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지 못하지만, 이런 삶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아요. 어머니는 얼굴이 벌개지고, 아버지는 아이가 잘 자도록 하면서 시골집까지 잘 왔구나 싶어 마음을 놓는 이야기를 찬찬히 잘 들려줍니다.



모기가 / 팔뚝을 물었다. // 빨갛게 / 솟아오른 자리에 // 할머니가 / 침을 발라 주셨다. // 모기 주둥이처럼 / 내 입이 / 삐죽 튀어나왔다. (모기 주둥이)



  〈모기 주동이〉 같은 동시도 재미있지요. 할머니를 몹시 사랑하고 좋아해서 ‘할머니 침이 묻은 밥’도 아무렇지 않게 먹을 아이가 있을 테고, 모기 물린 자리에 할머니가 침을 바르면 징그럽거나 싫다고 여길 아이가 있을 테지요. 이래서 좋고 저래서 나쁘지 않습니다. 아이들마다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른 것을 보면서 자라기 때문에, 그저 다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다만, 이럴 때에, 그러니까 아이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만날 적에, 어머니나 아버지도 곁에 있기를 바라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슬기롭게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시겠지만, 어머니나 아버지도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을 새삼스레 느끼면서 새롭게 받아들이고, 또 아이한테 살가운 징검다리 구실을 할 수 있으면 한결 아름다우리라 느낍니다. 이러한 삶이 되면, 동시도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만하겠지요.


  그나저나, “파란 고추는 익으면 / 빨간 고추가 되고 // 파란 사과도 익으면 / 빨간 사과가 되는데 // 파란 수박은 아무리 익어도 / 파란 수박인걸(엉큼한 수박).” 같은 이야기가 흐르는 동시는 좀 아쉽습니다. 풋고추나 풋능금은 ‘푸른 빛깔’입니다. 풀빛입니다. ‘파란 빛깔’이 아니지요. 더더구나 수박을 놓고 “파란 수박”이라고 하다니요.


  “새파란 보리싹”처럼 쓰기도 합니다만, 오늘날 아이들은 시골에서 거의 안 살 뿐 아니라, 시골일조차 제대로 모릅니다. 먼 옛날에 누구나 시골에서 나고 자라면서 시골일을 하던 때라면 “새파란 보리싹”이라 말해도 다 알아듣습니다만, 요즈음 도시 아이들을 헤아린다면, 또 도시에서 가게에서나 고추랑 능금이랑 수박을 볼 아이들을 헤아린다면, 고추도 능금도 수박도 ‘푸른’이라는 말을 붙여서 나타내야 올바릅니다. 4348.8.25.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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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숟가락 8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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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37



‘엄마도 이 집 아이라면’ 좋을 텐데

― 은빛 숟가락 8

 오자와 마리 글·그림

 삼양출판사 펴냄, 2015.6.2.



  아침에 두 아이를 데리고 마당 한쪽에서 능금씨를 심습니다. 마침 어제오늘 비가 와서 흙이 촉촉하게 젖었기에 손가락으로 땅을 쏘옥 눌러서 넉 톨을 심습니다. 능금씨에서 싹이 틀 수 있을는지 없을는지 모릅니다. 다만, 우리 집 마당 한쪽에서 씨앗에서 자라는 나무가 있기를 꿈꿉니다. 어린나무를 장만해서 키우는 나무도 사랑스럽고, 새가 눈 똥으로 자라는 나무도 사랑스러우며, 예전부터 이 시골집에서 자라는 나무도 사랑스럽습니다. 우리 집을 둘러싼 여러 사랑스러운 나무에 ‘씨앗 한 톨로 키운 나무’가 있으면 더욱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해요.



“요 매화나무가 리츠 오빠 나무고, 요 단풍나무가 시라베 오빠 거, 가장 왼쪽에 있는 레몬나무가 내가 태어났을 때 심은 거야. 루카한테는 올리브가 어울린다고 엄마랑 얘기했거든.” “올리브가 뭐야?” “이 모종나무 이름.” (16∼17쪽)


‘문득 바라보니, 루카가 어리광부리고 싶어하는 것 같기에, 엄마랑 둘이 샌드위치처럼 양쪽에서 꼭 안아 줬다.’ (37∼38쪽)



  오자와 마리 님 만화책 《은빛 숟가락》(삼양출판사,2015) 여덟째 권을 읽습니다. 만화책 《은빛 숟가락》은 ‘집에서 사랑으로 지어서 먹는 밥’ 이야기를 다룹니다. 대단한 밥차림이라 하기 어려울 수 있고, 누구나 지어서 먹을 만한 밥차림이라 할 수 있는데, 한집 사람들이 저마다 손을 거들어 이것을 함께 하고 저것을 같이 하면서 짓는 밥차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집 사람들이 누리는 한솥밥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맛집 이야기라든지, 요리 대회 이야기라든지, 요리 솜씨를 겨루는 이야기라든지, 술안주를 찾는 이야기가 만화로 꽤 많이 나오는데, 《은빛 숟가락》에서 다루는 ‘집밥’은 여러모로 사뭇 다릅니다. 밥 한 그릇이 마음을 달래는 이야기를 다루되, 온누리 모든 살림집에서 저마다 사랑을 담아서 짓는 밥 한 그릇에서 피어나는 이야기가 흐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다루어요.



‘처음엔 밥 먹기 전에 ‘잘 먹겠습니다’ 하는 거랑, 밥 먹고 나서 ‘잘 먹었습니다’ 인사하는 걸 까먹기도 했어. 나중에 배고파질 때를 위해 잔뜩 남겼다가 혼나기도 하고, 다음 식사가 언제가 될 지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많이 먹어서 배 아파지기도 했지만, 이제 괜찮아. 형네 집에서는 매일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밥 먹는 시간이 꼭 있거든.’ (22쪽)


‘엄마는 제대로 밥 먹고 있을까? 엄마가 일을 쉬는 날, 늦게 일어나서 보울 가득 샐러드만 먹거나, 크리스마스 무렵엔 이틀 연달아 케이크만 먹던 날도 있었는데. 카나데 누나가 그런 건 영양이 치우쳐서 안 된대. 엄마도 이 집 아이였으면 좋았을 텐데.’ (29∼30쪽)



  《은빛 숟가락》 일곱째 권에서 ‘루카’라는 아이는 ‘어머니 집’을 떠납니다. 이 만화책을 이끄는 주인공 사내인 ‘리츠’라는 젊은이는 ‘그동안 기른 어머니’ 말고 ‘저를 낳은 어머니’가 있는 줄 고등학생 적에 처음으로 알았고, 고등학교를 마친 뒤 ‘저를 낳은 어머니’를 찾아가기로 했는데, ‘저를 낳은 어머니’한테서 사랑을 조금도 못 받는 채 밥도 으레 굶는 ‘동생 루카’를 만나요.


  마음이 여리면서 착한 리츠라는 젊은이는 척 보기에도 제 동생인 줄 알겠는 아이한테서 등을 돌릴 수 없습니다. 날마다 손수 도시락을 싸서 ‘다른 집’에서 ‘저를 낳은 어머니’한테서 사랑을 못 받는 동생한테 가져다 줍니다. 도시락을 가져가는 길에 언제나 그림책도 챙겨서 책을 읽어 주고 여러 가지 놀이를 함께 해요.


  이러던 어느 날 리츠라는 젊은이는 ‘저를 낳은 어머니’하고 이야기를 하기로 합니다. ‘루카라는 아이를 리츠라는 젊은이한테 맡겨’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러면서 루카라는 아이는 리츠가 사는 집으로 옮기고, 루카라는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때에 제 끼니를 먹는 삶’을 누려요.


  제때에 제 끼니를 처음으로 먹으면서 밥상맡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처음으로 배우는 루카라는 아이는 마음속으로 혼자서 생각합니다. ‘엄마도 이 집 아이였으면 좋았을 텐데.’



“루카의 책가방 멘 모습을 보면 분명 데려가고 싶어질 거야. 그리고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또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겠지. 그러니까 당분간은 안 만나도 돼. 가끔 너한테서 이렇게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좋아.” (55∼56쪽)


‘하지만 만일 지금 그 애가 상처받은 상태라면 뭔가 하고 싶어.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드레일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축 처져 있을 때에, 그 애가 손을 내밀어 준 것처럼.’ (68∼69쪽)



  아이는 아이입니다. 어른도 아이입니다. 몸뚱이와 키는 크더라도 어른도 아이와 똑같이 아이입니다. 아이도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고, 어른도 사랑을 받으면서 삽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는 제대로 철들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어른도 제대로 슬기롭지 못해요.


  사랑이 흐르기에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씩씩하고 멋진 아이로 철이 듭니다. 사랑이 샘솟기에 어른은 기운차게 일하고 살림을 가꾸는 동안 아름답고 슬기로운 사람으로 우뚝 섭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먹는 밥 한 그릇은 ‘그냥 밥 한 그릇’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을 나누면서 기쁘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밥 한 그릇입니다. 한집에서 함께 나누는 밥 한 그릇은 ‘그냥 끼니 한 번’이 아니라 따사로운 마음이 오가면서 맑게 웃음잔치를 이루는 밥 한 그릇입니다.



“아까, 널 기다리면서 깨달았어. 가방 안에 늘 이 상자가 있었듯이, 내 마음속엔 네가 있었다는 것. 이제 상자 귀퉁이가 닳았고, 내용물도 전혀 대단한 게 아니지만, 늦어서 미안해. 생일 선물이야.” (94∼95쪽)



  밥상에 반찬을 많이 올려야 넉넉하지 않습니다. 값진 먹을거리를 늘 밥상에 올려야 즐겁지 않습니다. 어떤 반찬을 올리든 한솥밥을 오순도순 먹을 수 있을 때에 넉넉한 한 끼니입니다. 어떤 먹을거리를 나누든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먹을 수 있을 때에 즐겁습니다.


  동무를 부르고 이웃을 부릅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살붙이를 부릅니다. 차린 것은 얼마 없어도 밥상맡에 나란히 둘러앉습니다. 서로 마음으로 사귀는 아름다운 넋이기에 즐겁게 밥 한 그릇을 비웁니다.



“그거 말인데, 뭐, 이런저런 말을 하는 놈도 있겠지. 너 때문에 주전에서 누락되는 사람도 있을지 몰라. 하지만, 작은 내 동생을 보면서, 있을 자리라는 건 처음부터 존재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거라고 절실히 느꼈어.” (144∼145쪽)



  씨앗을 심어서 열매를 얻기까지 긴 나날이 듭니다. 남새 씨앗을 심어도 석 달을 기다리기 마련입니다. 나무 씨앗을 심으면 여러 해를 기다려야 합니다. 나는 ‘씨앗으로 키운 예쁜 배나무’를 만난 일을 늘 마음으로 되새깁니다. 대여섯 해쯤 앞서 골목집 한쪽에 마련한 마당에서 잘 자란 배나무를 본 적 있는데, 이 배나무를 돌본 할아버지는 ‘놀러온 아들이 준 배가 맛있어서 씨앗을 남겨서 심어 보았는데, 이렇게 잘 자라서 이제 이 배나무에서 배를 얻어.’ 하고 말씀했습니다. 배씨 한 톨을 배나무로 키우기까지 얼마나 긴 나날을 얼마나 따순 손길로 어루만지셨을까요.


  사람도 씨앗 한 톨에서 새로운 숨결로 자랍니다. 모든 짐승과 벌레도 알(씨앗)에서 깨어나서 새로운 목숨으로 삶을 짓습니다. 풀과 나무도 언제나 씨앗 한 톨에서 새롭게 자랍니다. 몸에도 씨앗이 깃들고, 마음에도 씨앗이 깃듭니다. 우리 몸과 마음은 아주 작은 씨앗에서 비롯하는데, 이 작은 씨앗은 가없이 너르며 깊은 바람이 되어 따스한 사랑으로 거듭납니다.



“우리 집에 와. 좁은 정원이지만 무리해서 농구대를 설치했거든.” “어째서 그런 식으로 말해 주는 거예요?” “네가 농구를 좋아한다는 걸 아니까 그렇지. 그리고 또 하나는 나를 위해서야.” (138∼139쪽)



  밥을 다 지어서 밥상에 차릴 즈음 아이들을 부릅니다. 자, 수저는 너희가 놓아 주렴. 두 아이는 저마다 수저를 놓습니다. 어머니 수저와 아버지 수저도 아이들이 놓아 줍니다. 아직 아이들은 스스로 밥을 지을 줄 모르니 어버이가 도맡아서 짓습니다. 앞으로 아이들이 야무지게 자라서 손수 밥을 지을 무렵에는 내가 수저를 놓을 수 있겠지요. 밥을 먹자고 부를 수 있어서 기쁜 하루입니다. 밥상맡에서 수저 놀리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밥 한 술 뜰 수 있어서 즐거운 삶입니다. 4348.8.25.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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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8-25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즐겨보는 만화입니다~^^
가족을 배려하는 마음이 읽혀서 좋습니다.

숲노래 2015-08-25 21:26   좋아요 0 | URL
오자와 마리 님 만화를 보시는군요 @.@

일본에서는 십 몇 권까지 벌써 나왔는데
한국은 번역이 너무 늦어요 ㅠ.ㅜ
9권이나 10권은...
또 이분 다른 작품은 언제쯤 번역이 될는지
참 까마득합니다......
 
파타리로! 23
마야 미네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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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48



재미난 삶을 바라는 장난꾸러기 임금님

― 파타리로 23

 마야 미네오 글·그림

 조은정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06.9.15. 3500원



  마야 미네오 님이 빚은 만화책 《파타리로》(대원씨아이,2006) 스물셋째 권을 읽습니다. 한국에서는 서른째 권까지 나오고 더는 나오지 않는 만화책입니다. 일본에서는 1979년에 첫 낱권책이 나왔고, 아직도 새 이야기가 꾸준히 나와서 2015년 5월에 아흔넷째 권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만화를 그리는 분이 씩씩하게 몇 해 더 그린다면, 이 만화책은 마흔 해를 잇는 발자국을 남길 테고, 낱권책으로도 백 권을 넘기겠구나 싶습니다.




“그럴듯한 말로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구! 사탄님의 명령을 거역할 거라면 힘으로라도 데리고 가겠어!” “힘으로?” (7쪽)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집적대지 마! 다음에 또 이런 짓을 하면 소금을 뿌려서 머리부터 씹어버릴 거야!” (27쪽)



  만화책 《파타리로》는 ‘엽기발랄 원조만화’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이런 이름 그대로 《파타리로》에 나오는 ‘마리넬라 왕국’에서 임금님 노릇을 하는 ‘파타리로’는 언제나 우스꽝스럽거나 바보스러운 짓을 일삼습니다. ‘마의 삼각지대’ 한복판에 뜬 작은 섬나라라 하는 마니넬라 왕국이라는데, 파타리로 국왕은 이 나라에서 나오는 다이아몬드를 팔아서 어마어마한 재산을 쌓고, 이 재산으로 비밀정보요원(이들 요원한테는 ‘양파’라는 이름을 붙였다)을 키웁니다. 그런데 파타리로 국왕이 거느리는 비밀정보요원은 딱히 하는 일이 없습니다. 언제나 심심하다고 노래하는 국왕 곁에서 단막극놀이나 분장놀이를 하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인간계에는 옛날 인간이 파묻어 둔 보물이 여기저기에 있어. 그것을 파내지.” “그런 것을 용케 아는군요.” “파묻는 현장에 있었을 때도 있었고, 파묻은 본인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거든.” “그렇군요. 몇 천 년 전부터 인간계에는 가끔 왔었으니까요.” “아스타로트 님은 몇 살이에요?” “글쎄, 나도 몰라.” “1만 살은 훌쩍 넘었잖아요. 생일 초가 장난 아니겠네요.” (38쪽)



  만화책 이야기로 그칠 수도 있지만, 파타리로 국왕은 나라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돈이 넘쳐나니까 걱정하지 않는다기보다 처음부터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파타리로 국왕이 걱정하는 일은 언제나 하나뿐이니, ‘삶이 재미없으면 어쩌나?’입니다.


  그래서 늘 이런저런 일을 꾀하고, 이런저런 장난을 치며, 이런저런 놀이를 지어냅니다. 만화책 《파타리로》를 놓고 ‘엽기발랄’이라고 하는 까닭은 ‘사회의식하고 동떨어진 모험과 놀이’로 온 하루를 보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몇 살인지 알 수 없는 파타리로인데, 학교에 가거나 책을 읽는 일은 없습니다. 만화에 나오는 여러 ‘미소년’도 학교에 가거나 책을 읽는 일은 없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돈이 넘치는 엄청난 부자가 되었을 때에만 ‘삶이 재미있기를!’ 바랄 수 있을까요? 돈이 아주 많아야만 ‘이제부터 삶을 재미있게 누려야지!’ 하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돈이 아주 많다고 하는 이들은 외려 돈을 자꾸자꾸 더 모으려고만 하지 않는가요?




“양파를 빌려줄 거야, 말 거야? 공짜로 빌린다는 건 아니야!” “사례금을 지불하겠다구?” “아아!” “그러면 그렇다고 빨리 말하잖구서 뭐야. 친구 사이에 싱겁기는.” (105쪽)


“너무 멋지다. 밖에 서서 음식을 먹는 것은 생전 처음이야.” “햄버거는 웬디스가 제일 맛있어.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은 마음만 먹으면 뼈까지 먹을 수 있어.” (175쪽)



  즐겁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웃고 노래하려는 사람이 웃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춤추고 꿈꾸려는 사람이 춤추고 꿈꿀 수 있습니다. 생각으로 하루를 짓고, 하루를 짓는 대로 삶을 짓습니다. 만화책 《파타리로》에 나오는 ‘엽기스러운 모습’이나 ‘동성애 몸짓’은 그저 그렇구나 싶은데, 아무래도 한국에서 나온 《파타리로》 서른 권은 일본에서 꽤 예전에 나온 책이니 ‘해묵은 우스개’라 할 수도 있어서 그냥 그렇구나 싶은데, ‘아무 걱정을 안 하며 재미난 놀이를 새롭게 찾으려’ 하는 파타리로 국왕 모습은 여러모로 맑습니다. 짓궂은 얼굴로 여길 수도 있지만, 신나게 노는 어린이 얼굴이라 할 수도 있어요.


  이 만화책을 아이들한테 읽힐 수는 없고, 스무 살쯤 넘은 뒤에야 보여줄 수 있을 테지만, 만화책 《파타리로》에 나오는 ‘삶을 바라보는 눈길’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아침에 웃으면서 일어날 때에 스스로 웃음이고, 저녁에 노래하면서 잠들 때에 스스로 노래입니다. 4348.8.25.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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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교수의 더불어 교육혁명 - 두려움과 불안을 넘어 행복한 연대로
강수돌 지음 / 삼인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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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26



도시를 떠나는 ‘시골이웃’을 만나고 싶어

― 강수돌 교수의 더불어 교육혁명

 강수돌 글

 삼인 펴냄, 2015.7.30. 16000원



  먼 옛날부터 어버이가 아이를 낳는 일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어른과 어른이 서로 아끼는 짝님이 되어 사랑으로 아이를 낳을 적에는, 둘레에서 모두 기쁘게 웃음짓고 노래해 주었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한테 이름을 곱게 붙여 주고, 언제나 따스하고 넉넉한 사랑으로 품어 주었습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면서 모든 삶을 어버이한테서 배웠습니다. 풀이름을 배우고 꽃이름을 배웁니다. 엉금엉금 기다가 아장아장 걸으면서 “이 풀은 뭐야?” “이 꽃은 뭐야?” 하면서 궁금함을 풉니다. 어버이는 늘 빙그레 웃으면서 풀이름도 꽃이름도 가르쳐 주고, 벌레와 나무와 새는 저마다 어떤 이름인지 가르칩니다. 짚을 엮어서 바구니를 짜는 모습을 몸소 보여줍니다. 흙을 갈고 씨앗을 심는 삶을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먼 옛날부터 따로 학교라는 곳이 없더라도, 아이들은 누구나 이녁 어버이한테서 모든 삶을 물려받으면서 배웠습니다.



아이를 그 자체로 ‘작은 우주’로 보거나 ‘우주의 선물’로 본다면 우리는 아이를 절대 ‘함부로’ 대할 수 없다. (15쪽)


자기 삶에 대한 자유로운 결정권을 자살이 아니라 멋진 인생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온전한 인격체로 수용하는 것이다. 성적이나 외모 따위로 차별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이 쉬운 해법이 통하지 않는 건 왜 그런가? 그것은 대학입시라는 관문, 나아가 대학 입학 서열화라는 사다리 질서, 그리고 직업 차별과 사회 차별이라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을 가지 않아도, 또는 어떤 대학을 나와도, 사회경제적으로 차별 받지 않고 자부심을 누리며 더불어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26쪽)



  《강수돌 교수의 더불어 교육혁명》(삼인,2015)을 읽습니다. 대학교수인 강수돌 님은 ‘더불어 교육혁명’을 외칩니다. 함께 짓는 교육을 꿈꾸고, 서로 사랑하는 교육을 바라며, 같이 일구는 삶을 노래해요.


  강수돌 님은 이론이나 지식으로 교육혁명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강수돌 님 스스로 세 아이를 돌보던 삶을 돌아보면서 ‘삶과 교육’을 이야기합니다. 서울을 벗어나서 작은도시로 갔다가, 작은도시를 벗어나서 시골로 갔다가, 시골에서도 더 깊은 두멧자락으로 다시 삶자리를 옮기면서 ‘삶과 교육’을 이야기합니다.



대부분의 노동자 부모들은 ‘자식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갖는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나처럼 노동자 또는 하위층으로 살지 말라’는 말이다. (56쪽)


어릴 때일수록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부모와의 친밀한 시간이지 더 많은 돈도 아니요, 더 많은 학원도 아니다 …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릴수록 행복해진다. 아이의 마음이 평온해지면 아이는 스스로 호기심이나 배움의 욕구를 발동시킨다. (85쪽)



  한국에서 스스로 서울을 떠나서 시골에서 사는 대학교수는 손가락에 꼽을 만큼 드물리라 봅니다. 정년퇴직을 할 무렵 시골로 가는 대학교수가 아니라, 한창 젊은 나이에 시골로 가는 대학교수는 참말 몇 사람이나 될까요? 입으로만 외치는 교육혁명이 아니라, 나부터 스스로 아이를 입시지옥에 밀어넣지 않으면서 ‘삶과 교육’을 함께 바꾸자고 외치는 지식인은 그야말로 얼마나 될까요?


  교육은 ‘교과서 수업 진도’가 아닙니다. 교육은 ‘삶을 보여주고 배우며 함께 가꾸는 하루’입니다. 교육은 책이나 이론으로 할 수 없습니다. 교육은 언제나 온몸으로 할 뿐입니다. 교육은 교사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하지 않습니다. 교육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오롯이 펼칠 수 있는 ‘철든 어른’일 때에 할 수 있습니다.



지난 30∼40년간 우리 사회의 변화를 보면, 갈수록 대학 준비 시간이 빨라지고 있는 게 아닌가? (98쪽)


한 가지 짚을 점이 있다. 지금과 같은 팔꿈치사회, 곧 경쟁사회는 인류의 초기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인류 역사의 대부분(95퍼센트 이상)은 협동 사회요 공생 사회였다. 지금과 같은 경쟁사회는 불과 500년 내외의 일이다. (105쪽)



  곁님하고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냅니다. 곁님하고 나는 인천이라는 도시를 떠나서 충청도 음성이라는 시골로 한 차례 옮겼고, 이곳에서 다시 전남 고흥으로는 시골로 옮겼습니다. 2011년부터 전남 고흥에서 지내는 동안 아직도 둘레에서 우리한테 묻는 말이 있는데, ‘왜 그 좋은 도시에서 이 구석진 시골로 왔느냐?’입니다. 오늘날 시골은 하나같이 도시로 아이들을 모조리 보내려 하는데, 그 ‘좋은 도시’에서 뭔 일이 있었기에 시골로 왔느냐 하면서 궁금해 합니다.


  시골은 유배지일까요? 시골은 도피처일까요? 시골은 사람 살 곳이 못 될까요?


  그런데 말이지요, 시골이 있어야 도시가 삽니다. 도시에는 논도 밭도 없어요. 시골에서 늙은 할매와 할배가 논밭을 일구어야 도시사람이 밥을 먹습니다. 고기를 얹는 상추도 시골사람이 비닐집이든 맨땅이든 상추씨를 심고 돌봐야 도시사람이 먹을 수 있습니다. 토마토, 오이, 능금, 배, 수박, 포도, 딸기 할 것 없이 모두 시골에서 납니다. 도시사람이 즐겨먹는 소고기나 돼지고기나 닭고기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다 시골에 있는 짐승우리에서 자랍니다.


  강남 한복판에서 복숭아나무를 키우는 사람은 없어요. 서울 강남 땅값이 비싸기도 할 테지만, 매캐한 배기가스와 시끄러운 소리가 가득한 강남 한복판에서 과일밭을 일굴 사람은 없습니다. 깨끗하며 조용한 시골이라야 비로소 논밭을 일구어 아름다운 열매를 맛나게 얻습니다. 시골 아이들을 모조리 도시로 보내면, 한국 사회는 머지않아 무너지고야 말아요. 손수 밥을 얻는 길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면, 한국 사회 젊은이뿐 아니라 기성세대도 곧 ‘잃어버린 식량주권’ 때문에 크게 몸살을 앓아야 하리라 느낍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너도 나도 자기 자식을 전쟁과 같은 입시 경쟁으로 내모는 것은 그것이 행복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나은 대안을 스스로 찾지 못해서가 아닐까? (122쪽)


운동장이나 체육 시간까지 없앨 정도로 경쟁 분위기에 압도당한 학교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 당연히도 일부 학생들은 좋은 성과를 낸다. 하지만 대다수 학생들은 좌절감, 열등감, 절망감, 배신감, 무력감, 죄책감 따위에 시달리다 마침내 자살까지 감행하기도 한다. (227쪽)



  도시를 떠나는 ‘시골이웃’을 만나고 싶습니다. 도시를 떠나서 대학입시에 이제 그만 목을 매면서, 그러니까, 아이들이 대학입시에 목을 매지 않으면서 즐겁게 저희 꿈을 키우도록 북돋울 예쁜 시골이웃을 만나고 싶습니다. 새마을운동이 일으킨 농약바람과 비닐바람이 아닌, 두 손으로 기쁘게 땀흘리면서 논밭을 사랑하는 시골이웃을 만나고 싶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떠도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하루 아이들하고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고 놀고 어울리면서 사랑을 누렸는가 하는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시골이웃을 만나고 싶습니다. 책에서 읽은 이야기가 아니라, 손수 길어올린 재미난 하루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시골이웃을 만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의 대부분 부모들은 초·중 교육과정이 ‘의무 교육’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강제’로 학교에 보내야 한다. 일단 보내고 나면 학교나 당국이 요구하는 각종 시험, 심지어 일제고사, 그리고 대학 입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사람 대접을 받는다. 그것도 이른바 ‘일류’ 대학을 가야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253쪽)



  학교에 안 가는 우리 집 아이들은 날마다 놉니다. 놀고 또 놀고 새로 놉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음껏 놉니다. 여덟 살하고 다섯 살인 두 아이는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놀이를 실컷 합니다. 지칠 때까지 놀고, 곯아떨어질 때까지 놉니다. 풀벌레 노랫소리와 함께 놀고, 밤바람과 밤별을 맞이하면서 놉니다. 바다에서 바다와 하나가 되어 놀고, 골짜기에서 숲과 하나가 되어 놉니다.


  노는 아이는 맑게 웃습니다. 한참 놀다가 땀을 훔치면서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습니다. 때때로 글놀이를 하고, 곧잘 편지쓰기를 합니다. 언제나 나무하고 인사하고, 새랑 나비하고 마당에서 춤을 춥니다.



시골은 일 년 내내 새로움과 신기함의 연속이다. 자연이 최고의 교과서임을 새삼 실감하는 순간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 아이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면 부모가 경험한 세상의 잣대를 아이들에게 들이밀지 말고 스스로 행복하게 살면서 아이가 행복한 길을 찾도록 등불이 되면 된다. (321, 322쪽)



  아이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아이는 ‘철’을 배워야 합니다. 아이는 봄에 봄을 배우고 가을에 가을을 배워야 합니다. 아이는 아침에 아침을 배워야 하고 밤에 밤을 배워야 합니다. 아이는 씨앗을 보며 씨앗을 배워야 하고, 열매를 보면서 열매를 배워야 합니다. 《더불어 교육혁명》을 쓴 강수돌 님은 시골에서 오순도순 살림을 가꾸면서 ‘교육혁명’이 무엇인지 온마음과 온몸으로 새롭게 배우셨지 싶습니다. “더불어 교육혁명”이라는 말은 바로 시골에서 흙을 만지고 바람을 마시며 숲을 마주하는 동안 새삼스레 깨달으셨지 싶습니다.


  호박넝쿨이 뻗어 마당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늘 지켜봅니다. 호박꽃이 피고 지면서 알이 굵는 모습을 날마다 새롭게 바라봅니다. 먹음직스럽게 굵어지면 낫으로 서걱 베지요. 호박 한 덩이를 얻으면 이레 즈음 실컷 호박국에 호박볶음을 누립니다. 오늘은 뒤꼍 무화과나무에서 첫 열매를 얻었습니다. 어제 낮에 보았을 적에 잘 익었네 하고 쓰다듬었더니, 오늘 아침에 멧새가 먼저 쪼아먹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뿐 아니라 멧새도 무화과알이 아주 잘 익을 때까지 기다렸나 봐요.


  비가 오는 밤에도 풀벌레는 노래합니다. 처마 밑에서 노래할까요? 아니면 커다란 호박잎 밑에서 노래할까요? 고즈넉한 밤노래를 들으면서 삶을 배우는 하루가 차분하게 저뭅니다. 4348.8.2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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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정원일까? - 베텔스만 그림동화 011 베텔스만 그림동화 11
메리 앤 호버만 지음, 제인 다이어 그림, 이혜선 옮김 / 대교출판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56



누구 꽃밭? 누구 집? 누구 별?

― 누구의 정원일까?

 메리 앤 호버먼 글

 제인 다이어 그림

 이혜선 옮김

 베텔스만 펴냄, 2005.4.1. 8000원



  귀를 기울일 줄 안다면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버스나 전철에서도 얼마든지 듣습니다. 어떻게 듣냐고요? 귀를 기울이니 듣지요. 귀를 기울일 줄 알면, 창문이 꽉 닫힌 버스에서도 저 멀리에서 누군가 나를 보며 외치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귀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귀를 기울일 줄 모른다면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는커녕 바로 옆에서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도 못 듣습니다. 참말 귀를 안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귀에 아무것도 안 꽂더라도 옆사람 말을 하나도 못 듣기 마련이지요. 옆사람이 말을 하든 떠들든 아랑곳하지 않고 내 마음을 한 군데로 모았으면, 내 귀에는 어떤 소리도 안 들어옵니다.



할머니가 즐겁게 걸어가는데 울긋불긋 꽃이 핀 꽃밭이 나타났어요. 할머니는 그렇게 아름다운 꽃밭은 처음 보았죠! (2쪽)



  메리 앤 호버먼 님이 글을 쓰고, 제인 다이어 님이 그림을 빚은 《누구의 정원일까?》(베텔스만,2005)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서 주인공은 ‘할머니’입니다. 아기를 수레에 앉혀서 천천히 마실을 다니는 할머니가 주인공입니다. 할머니는 아기한테 바깥바람을 쏘여 주려고 햇볕 따뜻한 낮에 돌아다니는데, 어느 꽃밭을 보고는 무척 놀라요.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꽃밭이람, 하면서 놀라지요. 이때에 꽃밭을 가꾸는 아저씨가 한번 구경해 보겠느냐면서 꽃밭 울타리 한쪽을 엽니다.



이번에는 높은 나뭇가지에서 새가 지저귀었어요. “밭은 내 거야! 밭 지렁이도 모두 내가 잡아먹으라고 있어!” 지렁이는 한숨을 폭 쉬었어요. “그렇지만 난 밭흙을 기름지게 하는걸. 그러니 이 밭은 내 거야!” (10∼11쪽)



  할머니는 꽃밭을 두루 돌아보는데, 꽃밭에서 ‘꽃’ 말고 다른 숨결을 골고루 만납니다. 아름다운 꽃을 두루 볼 생각이었으나, 꽃을 둘러싼 수많은 숨결을 하나하나 만나요.


  토끼를 만나고 들쥐를 만납니다. 새를 만나고 지렁이를 만납니다. 두더지를 만나고 뱀을 만납니다. 벌이랑 나비를 만나고, 씨앗까지 만나요. 그런데 할머니는 귀가 어두운지 ‘꽃밭에 있는 여러 목숨’이 저마다 외치는 말을 좀처럼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래도 이쪽저쪽에서 온갖 소리가 터져나옵니다. 저마다 “이 꽃밭은 내 거야!” 하고 외쳐요.



꽃나무가 살랑거리며 말했어요. “이 꽃밭은 내 거야. 난 철마다 꽃을 피워. 꽃이 안 피면 그게 어떻게 꽃밭이겠어?” 풀도 산들바람에 한들거리며 말했어요. “아니, 내 거야. 넌 누가 심어 줘야 하지만, 난 어디서나 맘대로 자라니까.” (21쪽)



  꽃밭 임자는 누구일까요? 땅문서에 이름이 적힌 사람이 임자일까요? 땅을 가꾸는 사람이 임자일까요? 땅에서 먼먼 옛날부터 살던 짐승이나 벌레가 임자일까요? 풀이나 나무가 임자일까요? 해나 바람이나 비가 임자일까요?


  꽃밭은 왜 꽃밭일까요? 꽃이 피어서 꽃밭일 텐데, 꽃은 왜 피어날까요? 꽃은 누가 보라고 피어날까요? 꽃은 누구한테 이바지를 하는 숨결일까요?



매기 할머니는 살짝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엎드려 귀를 기울였어요. 씨앗이 소곤소곤 속삭였지요. “꽃밭은 내 거야. 난 아주 조그맣지만, 모든 것이 나한테서 비롯하는걸. 다른 동무들이 나를 도와주긴 해. 그렇지만 내가 없으면 꽃밭에서는 풀도 나무도 자라지 못하지.” (26∼27쪽)



  이 지구별에는 꽃밭도 풀밭도 텃밭도 있습니다. 이 지구별에는 수많은 나라가 옹기종기 어울려서 살림을 가꿉니다. 이 지구별에는 온갖 사람이 저마다 다른 삶에 맞추어 하루를 짓습니다.


  전쟁무기가 가장 많은 나라가 ‘지구별 임자’일 수 없습니다. 돈이 가장 많은 나라가 ‘지구별 임자’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지구별 임자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이 지구별을 가꾸는 임자요, 사람이며, 목숨이고, 숨결입니다.


  땅문서를 손에 쥔 사람만 그 땅을 알뜰히 돌봐야 하지 않습니다. 땅문서가 없는 사람이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리면 ‘땅문서를 손에 쥔 사람’이 아무리 애쓴들 덧없는 일이 됩니다. 이 땅 옆에 있는 다른 땅에 공장이나 핵발전소나 쓰레기매립지를 지으면, ‘이 땅’은 망가집니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 이웃이고, 서로 한목숨이며, 서로 한솥밭을 먹는 사이입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들 ‘이 지구별 테두리’입니다. 아무리 먼 나라에 있다고 하더라도 참말 ‘이 지구별에서 똑같은 바람’을 쐬면서 목숨을 잇습니다.


  누구네 텃밭이거나 꽃밭이거나 풀밭일까요? 바로 우리 모두가 짓고 가꾸며 돌보고 누리는 텃밭이요 꽃밭이며 풀밭입니다. 대통령 한 사람이 ‘이 나라 임자’일 수 없듯이, 또 어느 한 사람이나 몇몇 사람이 ‘이 나라 임자’라고 설치거나 나설 수 없듯이, 우리는 저마다 ‘이 나라 임자’이면서 ‘이 지구별 임자’로서, 또 ‘내 삶을 손수 짓는 임자’로서 하루를 열며 이야기꽃을 터뜨립니다. 4348.8.2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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