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이야기 9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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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13



새살림 이루고 싶은 마음

― 신부 이야기 9

 모리 카오루 글·그림

 김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7.7.15. 8000원



“빵 줘 보세요. 이건 제가 만들었어요. 매 발톱 무늬예요. 매의 발톱은 재앙을 막아 주죠. 우마르랑 아무르의 가족들, 친척 여러분이 건강하기를 빌었어요.” “고마워.” “이건 민들레예요. 민들레 솜털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죠. 우마르의 집에 좋은 소식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이건 밧줄 무늬예요. 끈의 매듭이란 건, 인연을 나타내니까요. 그러니까 오랫동안 좋은 인연이 맺어지게 해 주십사 하고.” (28∼29쪽)


“활을 쏠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시집을 온 후로는 전혀 건드리지 않게 됐으니.” “할머님이요?” “그래. 여기선 사냥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이곳에 얼른 적응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구나. 지금 생각해 보면.” (105쪽)



  어버이한테서 여러 가지를 물려받습니다. 훌륭하거나 멋진 모습을 물려받고, 때로는 아쉽거나 모자란 모습을 물려받습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물려받는 모습에다가 스스로 갈고닦는 모습이 함께 있습니다. 어버이한테는 없으나 아이 나름대로 새롭게 나아가려는 길에 맞추어 차근차근 거듭나지요.


  때로는 어버이 일이나 살림을 고스란히 물려받습니다. 때로는 어버이하고는 아주 딴판이다 싶은 곳으로 떠나서 아주 새로운 일이나 살림을 짓습니다. 어버이라면 아이가 어느 길을 가든 모두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북돋아 주리라 생각해요.


  만화책 《신부 이야기》에 나오는 수많은 ‘신부’는 저마다 다른 넋이요 숨결입니다. 저마다 다를 뿐 아니라 저마다 새로운 기운과 꿈이 있는 사랑입니다. 이들 신부를 맞아들여서 새살림을 이루고 싶은 사내도 여느 사내하고 다른 넋이자 숨결일 뿐 아니라, 여느 사내하고 다른 기운하고 꿈이 있는 사랑이지요.


  남달리 빵을 잘 굽지만 바느질만큼은 매우 어설픈 ‘예비 신부’가 있습니다. 예비 신부는 모든 혼수를 스스로 바느질을 해서 마련해야 한답니다. 앞길이 까마득해서 늘 한숨이 나오지만, 새살림을 이루고 싶은 꿈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큽니다.


  언제나 새롭게 빵을 구울 적마다 스스로 꿈을 키웁니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새로운 길을 그립니다. 앞으로는 좀 다르면서 즐거운 길을 걸어 보고 싶습니다. 남 눈치를 보지 않고서 스스로 마음을 곱게 바라보고 펼치면서 날갯짓을 하는 길로 나아가고 싶어요. 2017.8.9.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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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해녀입니다 (양장)
고희영 지음, 에바 알머슨 그림, 안현모 옮김 / 난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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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48


어머니한테 바다는 안 무섭단다
― 엄마는 해녀입니다
 고희영 글
 에바 알머슨 그림
 안현모 옮김
 난다 펴냄, 2017.6.12. 13500원


  어머니가 되어 아이를 보살필 적에 아마 거의 모든 어머니한테서 몇 가지가 사라질 만하지 싶습니다. 먼저 두려움이 사라지고, 다음으로 무서움이 사라지지 싶어요. 미움이 사라질 테고, 싫음도 사라질 만하지 싶습니다. 어머니로서 아이한테 물려주고 보여주고 가르치고 나누면서 함께 누리고 싶은 길이란 기쁨하고 사랑일 테니까요. 어머니가 되는 동안, 또 아버지가 되는 동안, 어버이 마음자리에는 언제나 기쁨하고 사랑 두 가지가 새롭게 자랄 만하지 싶습니다.


“엄마, 파도는 너무 무서운 것 같아요.”
“얘야, 바다는 더 무시무시한 곳이란다.”
“근데 왜 매일 바닷속엘 들어가나요?”
“매일 들여다봐도 안 보이는 게 바다의 마음인걸.” (4쪽)


  그림책 《엄마는 해녀입니다》(난다,2017)를 읽습니다. 해녀인 어머니를 둔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아이 어머니는 처음에는 바다를 안 좋아했다고 해요. 바다하고 아주 멀리 떨어진 도시로 가서 일을 했다지요. 그런데 막상 바다하고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일하는 동안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기 어려웠대요.

  온통 기곗소리만 있는 도시에서, 자동차 달리는 소리만 있는 도시에서, 하늘을 볼 수 없도록 건물로 꽉 막힌 도시에서, 별빛이나 달빛뿐 아니라 햇빛도 느끼기 어려운 도시에서 ‘시골내기 어머니’는 몹시 힘들었다고 합니다.

  도시에서 한동안 일을 하던 어머니는 바다로 돌아갔대요. 바다로 돌아온 어머니는 이녁 어머니인 할머니처럼 물질을 하는 일꾼이 되었대요. 아마 이렇게 물질을 할 즈음 아이가 태어났을 테고, 아이는 어려서부터 물질하는 어머니랑 할머니를 늘 곁에서 지켜보며 자랐으리라 봅니다.


엄마는 잠수 대장이라서 돌고래처럼 헤엄을 잘도 칩니다.
엄마는 건지기 대장이라서 물고기를 잘도 건집니다.
엄마는 따기 대장이라서 전복을 잘도 땁니다.
엄마는 줍기 대장이라서 미역을 잘도 줍습니다.
엄마는 잡기 대장이라서 문어를 잘도 잡습니다. (8쪽)


  바다를 되찾은 어머니는 바다에서 무엇이든 으뜸이라고 합니다. 잘 치고(헤엄), 잘 건지고(물고기), 잘 따고(전복), 잘 줍고(미역), 잘 잡는다(문어)고 해요. 살짝 말놀이처럼 이야기를 곁들이는 《엄마는 해녀입니다》인데, 살몃살몃 할머니 이야기를 거듭니다.

  아이로서는 모두 다 궁금해요. 어머니가 날마다 바다에 나가는 모습도 궁금하고, 아주 오랜 나날 바다에서 살아온 할머니가 궁금합니다.


“그거야 바다님 말씀을 잘 들으면 되는 거란다.”
“바다님 말씀이요?”
“암, 그렇고말고.”
나는 알쏭달쏭 머리를 갸웃댔습니다.
할머니는 쪼글쪼글 입에서 미소를 머금었습니다.
마치 입속에 혼자만의 비밀 사탕을 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14쪽)


  바다님 말씀이란 무엇일까요. 아마 아이 스스로 머잖아 알아차리겠지요. 아이 스스로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물놀이를 즐기며 물고기하고 벗삼을 무렵, 바다님 말씀이 무엇인가를 몸이랑 마음으로 함께 깨닫겠지요.

  가만히 보면 아이한테는 학교만 배움터가 되지 않습니다. 어머니랑 할머니하고 함께 지내는 보금자리가 바로 배움터입니다. 물질을 하는 어머니랑 할머니가 늘 지내는 바다가 언제나 배움터입니다. 바닷가에 앉아 바다를 보고 바람을 보며 새와 물고기를 보는 내내 온 삶을 배워요.


“우리들은 바다를 바다밭이라고 부른단다.
그 밭에 전복 씨도 뿌리고 소라 씨도 뿌린단다.
아기 전복이나 아기 소라는 절대로 잡지 않는단다.
해산물을 먹어치우는 불가사리는 싹 다 치운단다.
바다밭을 저마다의 꽃밭처럼 아름답게 가꾼단다.
그 꽃밭에서 자기 숨만큼 머물면서
바다가 주는 만큼만 가져오자는 것이
해녀들만의 약속이란다.” (27쪽)


  그림책 《엄마는 해녀입니다》는 물질하는 가시내, 또는 일하는 가시내 자리란 무엇인가 하고 넌지시 보여줍니다. 바다와 벗삼으면서 바다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몸짓이란 무엇인가 하고 조용히 알려줍니다.

  그리고 다른 자리 삶으로 가만히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다는 대목을 밝힌다고 할 만해요. 땅을 일구는 사람으로서 땅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어떠할까요? 나무를 만지는 사람으로서 나무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어떠할까요? 꽃이 곱다고 여기는 사람으로서 꽃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어떠할까요?

  우리 어머니는, 또 우리 아버지는, 또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느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우리한테 새로운 배움을 베푸는 분일까요? 일하는 어버이는 아이들이 앞으로 무엇을 배워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물려줄까요?

  바다가 주는 만큼 가져오면서 바다밭을 가꾸는 해녀 마음을 돌아봅니다. 이 땅을, 이 나라 냇물을, 이 나라 숲을, 이 나라 하늘을, 이 나라 골골샅샅 모든 마을을, 고이 가꾸려는 손길이 널리 퍼질 수 있기를 빕니다. 2017.8.9.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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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8.8.


밥상을 다 차리고 나서 등허리를 펴려고 누운 뒤에는 만화책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벗님이 된다. 아니, 몸에 새 기운이 샘솟도록 북돋우는 멋진 기쁨님이 된다고 할까. 이 대단한 만화는 누가 맨 처음 그렸을까. 맨 처음이 아니더라도 이 엄청난 만화를 누가 이토록 키웠을까. 나는 아마 예닐곱 살 즈음부터 만화책을 보았을 테고, 글책보다 만화책이 더 가까웠을 테지. 몇 해만 있으면 만화책을 읽으며 살아온 지 마흔 해를 맞이하리라. 참 재미있네. 만화책 한길은 아니지만 만화책 즐김길 마흔 해라. 마흔 해를 지나면 쉰 해가 될 테고, 쉰 해를 지나면 예순 해가 되겠지. 이야, 앞으로 예순 살이나 일흔 살에도 만화책을 즐기는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쉰 해를 읽은 만화책’이나 ‘예순 해를 누린 만화책’을 이야기하는 새삼스러운 기쁨도 맛볼 수 있겠네. 끙끙 소리를 내며 누워서 《블랙잭 창작 비화》 다섯째 권을 읽으며 생각에 잠겨 본다. 《블랙잭 창작 비화》는 다섯째 권으로 마무리를 짓는다고 한다. 아쉽고 아쉬워서 며칠에 걸쳐서 야금야금 읽었다. 다 읽고 나서도 아쉬우니 다시 읽고 또 읽었다. 테즈카 오사무라는 사람이 아니어도 만화는 널리 사랑받고 사랑할 읽을거리 가운데 하나였을 테지만, 테즈카 오사무라는 사람이 있었기에 우리는 만화를 더욱 널리 사랑하면서 삶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하루를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만화가를 놓고서 ‘블랙잭 창작 비화’라는 이름처럼 이녁 만화길을 비추는 만화책을 후배 만화가가 그려 줄 수 있을까?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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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8.5.


요새는 밥을 하는 짬짬이 책을 들출 겨를을 내지 못한다. 밥을 할 적에는 그저 밥을 한다. 밥을 다 하고 나서는 밥상까지 차리고서 끙 소리를 낸다. 살짝 드러눕는다. 아이들은 이런 마음을 알까? 어쩌면 알 테고, 어쩌면 모를 테지. 다만 나는 어릴 적에 어머니가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헤아려 본다. 어머니는 다른 일이 많아서 우리하고는 밥상맡에 둘러앉지 못하신다. 때로는 밥상을 차리고서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 드러눕느라 우리하고는 밥상맡에 둘러앉지 못하셨다. 요새 내가 꼭 예전 우리 어머니를 닮은 몸짓을 한다. 자리에 눕지만 잠이 오지는 않는다. 모로 누워서 《전당포 시노부의 보석상자》 넷째 권을 펼친다. 보석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들떴다가 가라앉는 모습을 잘 그린다. 보석은 그저 보석일 뿐인데, 겉치레나 겉모습에 휘둘리는 사람이 많다. 보석 때문에 돈을 왕창 쓰는 사람이 많고, 보석에 걸린 돈 때문에 휘청거리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꼭 보석 하나만 놓고 볼 수 없다. 책에 사로잡힌다든지 옷에 사로잡힌다든지 자동차에 사로잡힐 적에도 어느 한 가지에 돈을 왕창 쓴다. 즐김과 사로잡힘 가운데 사로잡힘으로 기울면 즐기는 마음하고 멀어진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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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산책
노인향 지음 / 자연과생태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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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29


달콤한 바람 마시는 마실길에 책을 읽다
― 섬마을 산책
 노인향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7.8.7. 12000원


  어릴 적에 바람이 달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여느 때에는 바람이 매캐한 곳에서 늘 지내야 했기에 달디단 바람을 느꼈구나 싶어요.

  제가 어린 날을 보내고 국민학교를 다니던 마을에는 화학공장하고 연탄공장이 있었어요. 아침 낮으로 늘 이 앞을 지나다니며 코가 뚫어지는구나 하고 느꼈지요. 이러다가 갯벌이 보이는 바닷가로 나가면 바람이 시원하다고 느꼈습니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에 시외버스를 타고 당진 시골에 나들이를 갈 적에는 바람맛이 참 다르네, 바람이 달구나 하고 느꼈어요. 고작 여덟아홉 살 아이 코에도 시골바람은 달았습니다. 모깃불 태우는 밤이 지나고 새벽이 찾아올 즈음, 뜨끈뜨끈한 온돌과 달리 종이 한 장만 댄 나무문 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은 또 얼마나 달았나 모릅니다.


달뜬 마음을 가득 안고 노두길로 첫발을 내딛으려는 찰나 왼쪽 해변에서 “퐁퐁”, “다다다” 하는 소리가 난다. 고개를 돌려 보니 서서히 드러나는 펄에 점점이 박힌 돌이 가득하다. 돌에서 소리가 날 리는 없고, 뭔가 싶어 갯벌로 내려가는 순간 돌멩이 위에서 수많은 무언가가 다시 “퐁퐁”, “다다다” 뛰어간다. 짱뚱어 새끼들이다. (36쪽)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서울에서 일하면서 지내는 노인향 님이 쓴 《섬마을 산책》(자연과생태,2017)을 읽다 보면 섬마을 나들이를 하면서 ‘달콤한 바람’을 마시는 이야기가 곳곳에 흐릅니다. 시골내기 어린이로 살던 무렵에는 바람이 달콤한 줄 몰랐다고 해요. 서울내기 어른으로 살다가 섬마실을 하며 ‘어릴 적 늘 마시던 바람’이 참말 달콤했네 하고 깨닫는다고 합니다.


농어는 민박집 아저씨가 잡아온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아주머니가 직접 기르고 담근 것이다. 세상에는 값비싸고 흔하게 먹을 수 없는 진미도 많다지만 팍팍한 식당 밥을 주식으로 삼는 이에게는 이런 소박한 밥상이 가장 귀하고 맛나다. (50쪽)

별똥별은 이 하늘 저 하늘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고 밤하늘에 선명한 선을 그었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전쟁이 난 것처럼” 휘황찬란한 하늘은 보지 못했지만 “별이 지나가는 길”을 수십 번이나 본다는 것만으로도 말도 못하게 마음이 벅차오른다.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순간이다. (57쪽)


  섬마을로 나들이를 다니면서 섬밥을 먹습니다. 섬에서 거둔 남새에 섬에서 낚은 물고기로 차린 섬밥입니다. 대단할 것 없는 수수한 차림인 섬밥이라지만, 서울내기 어른으로서는 이 수수한 섬밥이야말로 맛나면서 고맙다고 이야기합니다. 느긋하게 받아서 느긋하게 누리는 밥상입니다. 서둘러 그릇을 비워야 하지 않습니다. 빨리 먹고 일어나야 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밥알 하나 나물 한 점 천천히 헤아리면서 먹을 수 있습니다.

  섬마실을 다니면서 마주하는 별이란 무엇일까요. 별은 섬이나 시골에만 뜨지 않아요. 비록 서울에서는 별을 보기에 만만하지 않다지만, 서울 하늘에도 별은 언제나 있습니다. 건물에 가리거나 불빛에 막힌다고 하더라도 애써 찾으려고 하면 ‘서울별’도 얼마든지 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바쁘게 다니지 않을 수 있는 자리가 되고서야 비로소 별을 마주합니다. 땅바닥이나 풀밭이나 평상에 드러누워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비로소 별빛이 온몸으로 스며듭니다. 낱말이나 지식으로만 아는, 또는 책이나 영상이나 영화에서 보는 별똥별이 아닌, 맨눈으로 지켜볼 수 있는 별똥별은 매우 달라요.


배 시간이 다 되어서 그만 가 봐야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살아온 세월만큼 투박하지만 따뜻한 손으로 내 등을 두드린다. 그리고는 “그래, 가 봐라. 그리고 내년에 또 온네이.”라며 손을 흔들어 주신다. (79쪽)

깊은 산골에 살던 어린 시절, 도시에서 온 손님들이 이따금 “공기가 달다”고 했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공기가 아이스크림도 아닌데 어떻게 달다는 것인지. 그런데 뭍에서 뱃길로 2시간 반이나 떨어진 섬에 서서 비로소 나는 그들의 말에 공감한다. (84쪽)


  여름이 흐릅니다. 일찌감치 말미를 얻어 여름마실을 다녀온 분이 있을 테고, 이제부터 말미를 받아 여름마실을 다녀올 분이 있을 테지요. 마실길에 《섬마을 산책》이라는 책 한 권을 챙겨 보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혼자 마실을 다닌다면 때때로 혼자 생각에 잠길 즈음 가방에서 꺼내어 읽을 만합니다. 아이를 이끌고 마실을 다닌다면,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이 곯아떨어진 뒤에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면서 가만히 꺼내어 펼칠 만합니다.

  섬마실을 떠날 적에만 《섬마을 산책》을 읽어 볼 만하지 않아요. 섬마실에서는 나하고 다른 눈과 다리와 손과 마음으로 섬을 느끼는 이야기를 헤아립니다. 들마실이나 숲마실에서는 들이나 숲을 이루는 터전에서도 누리는 달콤한 바람처럼 섬에서 어떤 달콤한 바람으로 기쁜 이야기를 적바림했는가를 헤아립니다.


돈대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도 어김없이 붕붕 소리를 내며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니는 녀석들이 보인다. 풍이다. 꽃무지과 곤충인 풍이는 딱지날개를 벌리지 않고 옆에 있는 틈 사이로 속날개를 내밀며 난다. 처음에는 녀석들이 내는 이 날갯짓 소리에 벌인 줄 알고 깜짝깜짝 놀랐다. (146쪽)

열여섯. 한창 다른 세상이 궁금할 나이다 싶어 고개를 끄덕이는데 아이들이 또 하나같이 소리친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 다시 대청도로 올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 괜스레 코끝이 찡해진다. (164∼166쪽)


  며칠 말미를 얻기에도 바쁜 몸이라면 이곳저곳 마실을 다닐 적에 자칫 바쁘게 움직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말미란 우리가 여느 때에 매우 바쁘게 살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느긋하고 스스로 넉넉하며 스스로 너그러운 마음을 되찾자는 하루일 때에 즐거울 만하지 싶습니다. 더 많은 곳을 둘러보지 않아도 돼요. 더 많은 뭔가를 느끼거나 보거나 누려야 하지 않아요. 섬 한 곳도 좋고, 골짜기 한 곳도 좋으며, 바닷가 한 곳도 좋아요. 그냥 수수한 시골집 한 곳도 좋습니다.

  매캐한 바람에 둘러싸인 채 살아온 나날을 며칠쯤 말끔히 잊고서 달콤한 바람을 마시는 마실길을 누려 봐요. 고작 서울에서 한두 시간을 벗어날 뿐인데 바람맛이 달라지는 하루를 누려 봐요. 때로는 솜사탕처럼 달고, 때로는 사탕수수보다 달며, 때로는 코코아는 댈 수 없도록 달디단 바람을 누려 봐요.

  달콤한 바람 한 줄기가 우리 몸을 감돌 적에 온갖 티끌을 씻어 줍니다. 달콤한 바람 두 줄기가 우리 몸을 스치면서 웃을 적에 갖은 앙금을 달래 줍니다. 달콤한 바람 석 줄기가 우리 몸을 어루만지면서 노래할 적에 바야흐로 맑은 마음으로 거듭나면서 새롭게 기운을 차립니다. 책 한 권으로 바람마실을 함께 누립니다. 2017.8.8.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 자연과생태 출판사에서 본문사진을 보내 주셔서 고맙게 싣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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