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돌아와 지양어린이의 세계 명작 그림책 36
크리스티나 부스 글.그림, 정경임 옮김 / 지양어린이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67



바다에서는 고래가 살고,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놀아야

― 이제 그만 돌아와

 크리스티나 부스 글·그림

 정경임 옮김

 지양사 펴냄, 2015.8.1. 1만 원



  크리스티나 부스 님이 빚은 그림책 《이제 그만 돌아와》(지양사,2015)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 남방긴수염고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아이 눈길로 고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는 바닷속에서 고래가 노래하듯이 외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 외침소리는 아이만 듣습니다. 아이 어머니나 아버지는 못 듣습니다. 다른 이웃도 못 듣습니다. 아이는 왜 저한테만 고래 외침소리가 들리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도 귀를 기울여서 고래가 저한테 외치는 소리를 들으려 합니다. 바다로 나가서 듣고, 잠자리에 누워서 듣습니다. 언제나 고래 노랫소리를 가만히 듣습니다.



나를 부르는 소리는 강에서 들려왔습니다. 달빛은 강물 위에서 춤추고, 고래 속삭임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습니다. (4쪽)




  남방긴수염고래는 새끼를 세 해에 한 마리 낳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옛날부터 영국은 호주를 유배지로 삼으면서 고래잡이배를 써서 죄수를 영국에서 호주로 보냈다고 하며, 이때에 고래잡이배는 호주와 뉴질랜드 사이에서 고래를 수없이 잡았다고 합니다.


  고래잡이배가 지구별 온 바다마다 휘저으면서 고래를 잡는 동안 고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영국을 비롯해서 수많은 나라가 수많은 고래잡이배를 띄워서 고래를 잡아죽이는 동안 고래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과학과 기술이 발돋움하면서 고래잡이배도 고래를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쉽게 잡아서 죽일 수 있는 솜씨를 갖춥니다. 고래잡이를 못 하도록 하는 법이나 제도가 생겨도 일본에서는 ‘그물에 걸려서 죽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아직 몰래 고래잡이를 한다고도 합니다. 일본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로 둘러대면서 ‘고래가 스스로 죽었다’고 할 테지요.



엄마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아빠도 아무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6쪽)



  고래잡이배 일꾼은 고래가 들려주는 노래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초음파 기기를 써서 고래가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서 얼른 잡아죽이려고 할 뿐, 고래가 울부짖는 소리도, 고래도 노래하는 소리도, 고래가 웃거나 기뻐하는 소리도 하나도 안 듣습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사람들은 고래가 외치는 소리뿐 아니라, 나무가 외치는 소리도 못 듣습니다. 나무가 아파하는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숲이 아파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냇물이 아파하고, 바다가 아파하며, 들이 아파하는 소리는 누가 들을까요.


  한국에서는 원자력 발전소에다가 송전탑에다가 해군기지나 미군기지에다가 골프장과 고속철도와 고속도로에다가 공장에다가 4대강사업에다가 끝없는 막개발하고 관광단지 공사에다가 먹는샘물 개발에다가 그야말로 끝도 없습니다. 모두들 경제개발을 이루어 은행계좌에 돈이 늘어나는 소리를 들으려 할 뿐, 우리 둘레 이웃이 아파하거나 끙끙 앓는 소리에는 모조리 귀를 닫습니다.





고래는 말했습니다. 지난날 그 기억들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는지를. 고래 이야기는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 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18쪽)



  어린이는 노래하면서 놀고 싶습니다. 어린이는 시험공부에 갇히고 싶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학교에서 교과서 수업진도를 받고 싶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아름다운 삶을 꿈꿀 수 있는 사랑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 정부와 기관과 학원에서는, 또 마을과 집에서까지, 아이들한테 이런 교육에 저런 학습에 그런 입시를 자꾸 닦달합니다. 청소년한테도 참다운 삶과 사랑과 꿈을 들려주거나 보여주거나 알려주려 하지 않아요. 청소년한테는 어린이한테보다 훨씬 더 모질고 매섭게 입시지옥으로 채찍질을 하지요. 대학입시에 목숨을 걸라면서 아주 목을 죄지요.


  그림책 《이제 그만 돌아와》는 사람들 등쌀에 목숨이 간당간당한 고래한테 ‘부디 이 바다에 다시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들려줍니다. 너희(고래)가 다치지 않도록 온힘을 다하겠다고, 어른들은 어린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지만 온힘을 다해서 너희(고래)가 이 바다에서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작은 꼬리가 물 위로 치솟더니 물줄기를 내뿜으며 고래가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아기 고래가 얼굴을 니밀었습니다. (26∼27쪽)



  바다에서는 고래가 살 수 있을 때에 지구가 아름답습니다. 하늘에서는 새가 마음껏 바람을 가를 수 있을 때에 지구가 아름답습니다. 들에서는 개구리도 뱀도 풀짐승도 홀가분하게 함께 살 수 있을 때에 지구가 아름답습니다. 숲에는 송전탑 아닌 나무가 우거질 수 있어야 지구가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집과 마을과 학교에서 마음껏 뛰놀면서 아름다운 사랑을 어른한테서 배울 수 있을 때에, 바로 우리 지구가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전쟁놀이를 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앞으로 군인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차츰 자라서 젊은이가 될 무렵 전쟁무기 다루는 재주나 사람 죽이는 전쟁훈련 따위를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그림책 《이제 그만 돌아와》가 고즈넉히 속삭이듯이 노래하는 이야기로 밝히듯이, 우리는 서로 아끼고 돌볼 줄 아는 따사로운 마음이 될 때에 삶이 즐겁습니다. 고래를, 아이들을, 서로를, 우리 모두를, 곱게 사랑할 수 있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꿈꿉니다. 4348.10.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 동네서점의 유쾌한 반란
백창화.김병록 지음 / 남해의봄날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33

 

 

기쁨 누리는 ‘책마실’로 마을 살리기

―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백창화·김병록 글·사진
 남해의봄날 펴냄, 2015.8.15. 16500원

 

  전남 순천에 〈형설서점〉이라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서른 살이 훌쩍 넘은 오래된 책방입니다. 순천 버스역에서 걸어가면 7분쯤 걸리는 이곳을 틈틈이 찾아갑니다. 제가 사는 전남 고흥에서는 서울이나 광주나 부산이나 인천 가는 버스는 있으나 다른 고장으로 가는 버스는 없습니다. 그래서 대구나 진주를 간다든지, 또 장흥이나 음성이나 전주나 아무튼 다른 고장에 가야 한다면 으레 순천으로 가서 다른 시외버스로 갈아탑니다. 고흥에서 장흥으로 가자면 벌교만 거쳐서 가도 됩니다. 그렇지만 굳이 순천까지 조금 더 돌아서 갑니다. 왜냐하면 애써 마실을 하는 김에 순천에 있는 헌책방에 들러서 책마실도 함께 누리면 한결 즐겁거든요.

  헌책방이라고 하는 곳은 아주 뜻있고 재미있는 책터이면서, 책문화를 밝히는 잣대 구실을 하기도 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헌책방이 있는 고장’은 ‘사람들이 책을 좀 사서 읽는 곳’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새책’을 사서 읽는 사람이 있어야, 이 새책이 흘러서 헌책방으로 갈 수 있습니다. 새책을 사서 읽는 사람이 드물거나 너무 적으면 새책방도 버티기 힘들 테지만, 헌책방은 아예 생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새책을 사서 읽는 사람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책을 널리 즐기는 사람’이 꽤 있어야 헌책방이 자리를 지킵니다.


  이리하여 ‘헌책방이 있는 고장’은 ‘책을 읽는 숨결이 그윽한 곳’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헌책방 한 곳이나 여러 곳이 문을 열 수 있을 만큼 책이 돌면서, 마을책방에서 새책을 꾸준히 사서 읽는 사람이 넉넉히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들은 일부러,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찾아온 것이다. ‘책’을 찾아. (18쪽)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방 대도시에서는 도서관 붐이라고 할 만큼 괄목할 만한 성장이 이어졌지만 지방 소도시, 특히 주민이 많지 않은 시골 마을에는 여전히 책문화라고 할 만한 것도, 책 문화공간도 부족했다. (25쪽)

 


  백창화·김병록 두 분이 빚은 이야기책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남해의봄날,2015)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백창화 님하고 김병록 님은 충청북도 괴산 시골집에 ‘숲속작은책방’에 열어서 ‘시골책방’이자 ‘마을책방’을 지킨다고 합니다. 시골로 삶터를 옮겨서 살기 앞서 경기도 일산에서 ‘도서관’을 열어서 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분이 열어서 지킨 도서관은 국공립도서관은 아닙니다. 개인도서관입니다. 두 분이 아이하고 즐겁게 읽고 나누려고 하는 책을 다른 이웃한테도 널리 열어서 함께 즐기는 터전을 가꾸었다고 해요.


우리는 이곳 시골 마을 작은 책방에서 서점의 정의를 다시 내린다. 서점이란, 그곳에 들어가면 반드시 책을 한 권이라도 사들고 나와야 하는 곳 … 이 서점들이 있어 주어서 고마웠던 이들, 이왕이면 내 집 옆에 술집이 있기보다는 서점이 있었으면 하는 이들이라면 서점에서 지갑을 열어 달라는 뜻이다. (39쪽)

  시골에서 책방을 꾸리는 두 분이 쓴 책에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만, 한국에서는 도서관이 도서관답게 서기 몹시 어렵습니다. 아직 한국 도서관은 ‘어린이책 분류’가 너무 어렵습니다. 아니, 어린이책을 따로 갈래를 나누어서 갈무리할 만한 틀이 제대로 서지 않았어요. 그리고 어린이책은 ‘어린이책 도서관’에 있으면 된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니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책’이기 때문에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는 책’이건만, 이 대목을 제대로 바라보는 도서관 정책이나 문화가 거의 없다고까지 할 만해요.

 

  전국에 있는 수많은 국공립도서관을 보면, 건물이 제법 번듯해도 ‘한 해 새책 구입 예산’이 대단히 적습니다. 새로 나오는 아름다운 책을 모두 장만해서 갖출 수 없을 만큼 적어요. 때로는 ‘도서관 도서구입비’가 ‘예산 삭감’으로 잘려 나가기까지 합니다.


  나라에서 꾸리는 국공립도서관마저 이러하다 보니, 나라에서는 마을책방(새책방하고 헌책방 모두)을 제대로 돕거나 북돋울 만한 정책이나 제도나 행정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마을책방을 지키는 분들이 늘 짊어지는 임대료 걱정을 풀어 주는 일이 없어요.


전국에서 사람들이 명성을 듣고 찾아오지만 그들이 머무는 30여 분, 서점 안은 카메라 찰칵이는 소리만 가득하고 독자를 그리워하는 책들의 기다림은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 스마트한 소비자들에게 서점이란 책의 실체를 확인하는 곳일 뿐, 구매의 장은 온라인이기 때문이다. (65쪽)


  책방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요? 책방은 책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러면, 책을 만나서 어떻게 할까요? 책을 만나서 ‘사는’ 곳이지요. ‘사서 읽을 책’을 만나는 곳이 책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도 책을 만나는 곳인데, 도서관은 한 마을에서 함께 사는 여러 이웃이 ‘서로 돌려서 읽을 아름다운 책을 만나는 곳’이고, 책방은 ‘내 삶을 스스로 가꾸는 길동무가 되는 고마운 책을 만나서 장만하는 곳’입니다.

 


왜 서점이었을까? 역설적이게도 서점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바로 그가 서점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는 데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116쪽)

  책을 사는 까닭은 책을 읽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니 책을 삽니다. 책을 빌리는 까닭도 책을 읽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돈이 없거나 적거나 모자라다면 도서관에 가지요. 그리고 ‘굳이 우리 집에 갖추어 놓을 만하지는 않으나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도서관에 갑니다.


  책방에는 왜 갈까요? 두고두고 집에 갖추어 둘 만한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면서 고마운 책을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수집품이나 장식품이 아니라, 아니 수집품이나 장식품으로 책을 사도 좋아요. 사치품을 가득 장만해서 집을 꾸미기보다는 아름답고 멋지며 훌륭한 책을 넉넉히 사서 집을 꾸며도 대단히 좋아요. 돈이 많은 이라면 집안을 책으로 꾸미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돈이 많은 이들은 그 많은 돈으로 책을 왕창 사들여서 집안을 꾸미되, 석 달마다 책갈이를 해 주면 아주 좋지요. 똑같은 책으로 석 달 넘게 ‘장식하는’ 일은 그리 예쁘지 않아요. 돈이 많은 이들은 멋지고 훌륭한 책으로 집안을 장식하되, 석 달마다 이 책들을 모두 헌책방에 내놓아 줄 노릇입니다. 이러면서 ‘돈이 많으니까’ 새로운 책을 다시 왕창 사들여서 집안을 새롭게 꾸며 주어야지요. 그러면 돈이 적지만 책을 사서 읽고 싶은 수많은 이웃들은 즐겁게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튼, 책은 스스로 읽으려고 장만합니다. 스스로 다시 읽고 되읽고 자꾸 읽으면서 ‘내 손때’를 묻히려고 책을 장만합니다.


  빌려서 읽는 책은 아주 깨끗하게 읽고서 돌려줍니다. 사서 읽는 책도 정갈하게 읽고 건사할 노릇인데, 사서 읽는 책에는 내 나름대로 생각한 이야기를 책 귀퉁이에 적어 넣기도 해요. 밑줄도 긋고 동그라미도 하면서 ‘온누리에 오직 하나 있는 내 책’으로 다스립니다.

시골로 이사하기 위해 도서관 문을 닫고 쉬면서 순전히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책 구입과 독서를 시작했다. 도서관 운영비 걱정을 할 일이 없으니 생활에 여유가 생겼고, 그 여유만큼 무지막지한 책 구매가 이어졌다. (94쪽)

 

이곳이 카페가 된다면 사람들이 오히려 책을 사 가지 않고 차 한 잔 마시면서 공짜로 책을 보는 곳이 될 것 같았다. 아끼는 책들을 커피 한 잔 가격에 마구 망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고 했다. (149쪽)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를 함께 쓴 두 분은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첫째, 두 사람이 도시를 기쁘게 떠나서 시골에서 씩씩하게 뿌리를 내리려 하면서 빚은 ‘시골책방’ 이야기입니다. 둘째, 두 사람이 시골에서 씩씩하게 지키는 ‘마을책방’처럼 한국에서도 마을에 뿌리를 내려서 씩씩하게 한길을 걷는 아름다운 이웃을 만나러 나들이를 다닌 이야기입니다.


  저는 ‘책마실’이나 ‘책방마실’ 같은 말을 지어서 씁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책마실을 다닙니다. 도서관에 간다든지 ‘책 많은 이웃집’에 가는 일은 책마실입니다. 책 한 권이랑 도시락을 자전거 바구니에 담고서, 나무그늘이 싱그러운 곳으로 마실을 다녀오는 일도 책마실입니다. 책방마실은 ‘책을 살 수 있는 곳(새책방과 헌책방 모두)’으로 가는 일입니다.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를 보면 서울과 부산에 있는 예쁘고 아기자기하며 뜻있는 책터를 두루 보여줍니다. 여기에 전국 여러 곳 책터를 살며시 곁들입니다. 다만, 아쉽게도 ‘전라남도 마을책방’ 이야기는 없더군요. 나중에 뒷이야기를 쓰실 수 있다면 그때에는 전라남도 마을책방도 두루 돌면서 쓰실 수 있겠지요. 백창화 님하고 김병록 님이 시골에서 마을책방을 하시는 만큼, 서울이나 부산에 있는 ‘꼭 소개하지 않아도 잘 알려진 책터’보다는 시골이나 작은도시에서 씩씩하게 책삶을 짓는 이웃님들한테 조금 더 눈길을 쏟을 수 있었으면 이 책이 한결 야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서울 옆에 있는 인천이나 부천에 있는 다부지고 사랑스러운 책터 이야기도 이 책에는 빠졌습니다.


바로 이것이 진주에 반디앤루니스가 아니라, 영풍문고가 아니라, 진주문고가 있어야 할 이유인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다수 우리들은 지역의 이름을 잃어버렸다. 이름을 잃자 이야기도 잃었다. 이야기를 잃으면 삶은 껍데기만 남는다. (172쪽)

  경상남도 진주는 참 재미있는 고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충청북도 청주와 전라북도 전주도 진주와 함께 아주 재미있는 고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주와 청주와 전주에는 그 고장에서 무척 오랫동안 터를 닦은 멋진 ‘새책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진주와 청주와 전주에는 작은도시이지만 ‘헌책방’이 꽤 많습니다.


  오랜 지역 책방이 새책방과 헌책방으로 여러 군데 함께 있는 세 고장(진주와 청주와 전주)은 작은도시 가운데 젊은이가 퍽 많은 고장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책을 읽는 숨결’이 흐르는 고장에서는 젊은이가 그 고장에서 즐겁게 뿌리를 내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꼭 ‘책방이 있어야 젊은이가 있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책방조차 없는 고장’에서는 지역을 살리거나 살찌우려고 하는 숨결이나 기운이 여리기 마련이라고 느껴요. 지역 책방은 ‘책을 만나는 곳’일 뿐 아니라, ‘책을 만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지역을 가꾸거나 살리려고 하는 사람들 몸짓’이 새롭고 새삼스레 모여서 ‘작아도 알차’고 ‘작지만 씩씩’한 지역문화를 북돋우는 일을 크고작게 벌입니다.

 


책이란 삶의 다른 말이다. 다른 이의 삶의 역사와 흔적 없이 오늘 우리들의 삶이란 없다. (275∼276쪽)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를 쓴 두 분은 괴산에서 ‘숲속작은책방’을 앞으로도 알차고 야무지게 가꾸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국 곳곳에 있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책방이웃’하고 ‘책이웃’을 두루 만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다음 이야기도 쓰실 수 있기를 빌어요. 전국에 있는 작은 책방이 “책 쫌 파는” 이야기를 넘어서 “삶 쫌 짓는” 이야기와 “사랑 쫌 나누는” 이야기도 새록새록 길어올릴 수 있기를 빌어요.


자연 속에서 책을 보자! 어쩌면 이 말은 그저 허울 좋은 구호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말이다. 그러나 시골 마을로 귀촌한 이후 우리가 발견한 최대의 수확은 바로 자연 속에서 책을 보는 경험이다. (190쪽)

  창문을 열고 가만히 들바람하고 숲바람을 마십니다. 수많은 풀벌레하고 멧새가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함께 듣습니다. 가을에는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고 봄에는 봄 하늘을 올려다보지요. 아이들하고 마당이나 고샅을 씩씩하게 달리기도 하면서 놀다가, 조용히 책을 들여다보다가, 자전거를 함께 타고 들길을 누비기도 합니다.


  책은 종이책도 책이면서 삶도 삶책이라고 느끼기에 시골에서 아이들하고 여러 가지 책을 함께 누립니다. 자전거를 몰아 바닷가에 가면 ‘바다책’을 읽습니다. 자전거를 낑낑거리면서 고갯길을 달리면 골짜기에서 ‘골짝책’을 읽습니다. 마당에서 뛰놀면 ‘마당책’이고, 우리 집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톡톡 따서 먹으면 ‘나무책’입니다. 해바라기를 하면서 ‘해님책’이요 밤마다 쏟아지는 별을 올려다보면서, 별바라기를 하면서 ‘별님책’입니다.

 

  오늘 하루도 전국 곳곳에서 기쁘게 아침을 열고 즐겁게 저녁을 마무리지으면서 마을 이야기를 갈무리하는 아름다운 ‘책방이웃’을 헤아려 봅니다. 책방이 마을을 살리는 삶을 헤아리고, 마을이 책방을 살리는 사랑을 헤아려 봅니다. 4348.10.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 미시령 창비시선 260
고형렬 지음 / 창비 / 200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말하는 시 103



시와 달밤

― 밤 미시령

 고형렬 글

 창비 펴냄, 2006.3.17. 7000원



  달빛이 내리는 밤에는 달빛을 듬뿍 받습니다. 달빛은 깜깜한 한밤을 고루 밝혀서 고샅길을 환하게 비추어 줍니다. 한가위나 설에는 더없이 밝은 달빛이 들판을 푸근하게 어루만집니다.


  불빛이 가득한 밤에는 불빛이 눈부셔서 잠들기 어렵습니다. 불빛이 밝은 도시에서는 깊은 밤에도 오가는 자동차가 많고, 자동차가 내는 소리가 밤새 끊이지 않으며,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 발걸음 소리도 그치지 않습니다.



사다리 같은 긴 목을 펼쳤다. 하늘가지에 노는 아기잎을 따 먹으려고, 앞발은 풀을 피해 가슴 밑 흙바닥에 사뿐히 눌러놓았다. 나뭇잎만 한 얼굴을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의 입은, 내 주먹만 하다. (동물원 플라타너스)



  고형렬 님이 빚은 시집 《밤 미시령》(창비,2006)을 읽습니다. 밤에 미시령을 넘는 이야기일 수 있고, 밤이 깊은 미시령을 바라보는 이야기일 수 있으며, 밤과 미시령을 함께 생각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또는 밤이나 미시령하고는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 있어요. 그러면, 시인한테 밤과 미시령은 무엇이 될까요. 시인은 어인 일로 밤에 미시령을 생각할까요.



사람만이 세계의 일부가 아니다 / 가족과 함께 도처를 떠돌아다닌 프라이드는 / 제 최종 폐차통지서를 보내고 / 내 마음속에서 한 시절처럼 사라졌다 / 거대한 폐차장에서 / 그는 북한산 흰 구름처럼 북으로 사라졌다 (폐차통지서를 받고, 서울45라4706)



  옛날이라면 미시령을 자동차로 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자가용이 매우 흔하기 때문에 시인도 자가용을 몰며 미시령을 밤에 넘습니다. 밤이 아니어도 언제나 넘을 수 있는 미시령이요, 언덕길이며, 고갯길입니다. 숲길이나 멧길이 아니어도 어디이든 자가용으로 달릴 만하고, 이 나라에서 자동차로 못 가는 곳은 없다시피 합니다.


  문득 돌아봅니다. 참말 한국에는 자동차가 많습니다. 자동차가 많아도 아주 많아서, 뭍과 섬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도 흔합니다. 뭍과 섬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고 하면, 사람들이 두 다리로 건너려고 놓는 다리가 아니라, 자동차가 뭍과 섬 사이를 싱싱 빠르게 달리도록 하려는 다리입니다.


  이리하여, 시인은 자가용 이야기를 시로 쓸 수 있습니다. 시인은 폐차로 떠나 보내는 자가용 이야기를 시로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 맞아들이는 자가용 이야기를 시로 그릴 수 있어요.



남들 다 보고 온 백두산 보러 2000년 / 옌뻰 가, 모자같이 생긴 산을 지나 // 윤동주 집으로 가다가 새빨간 깨꽃밭을 보았다 (모자산 꽃을 지나며)



  얼마 앞서까지만 해도 누구나 시외버스를 타고 이 고장 저 고장을 찾아다녔습니다. 더 예전에는 누구나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서 이 고을 저 고을로 나들이를 다녔습니다. 하루아침에 서울하고 부산을 오가는 오늘날에는 이 빠른 찻길을 내달리면서 태어날 만한 시가 드물 텐데, 스무 날이나 달포나 여러 달에 걸쳐서 천천히 두 다리로 이 땅을 밟으며 나들이를 다니던 꽤 아스라한 지난날에는 바로 이 마실길에서 수많은 시와 노래와 이야기가 태어났습니다.


  꼭 자가용 때문은 아닙니다만, 자가용이 늘고 자가용을 모는 사람이 늘면서 시를 쓰거나 읽는 사람이 부쩍 줄어든다고 느낍니다. 자가용을 몰거나 자가용에 함께 탄 사람은 깊은 밤에 달빛을 느끼지 못해요. 자가용에서는 오직 앞만 바라보아야 하며, 앞 자동차 불빛을 살펴야 하고, 때때로 뒷 자동차 불빛까지 헤아려야 합니다. 한낮이라 하더라도 햇빛을 느낄 만큼 느긋한 운전수는 없습니다. 신호등을 살피고 다른 자동차를 헤아려야 합니다.



산돌을 밟으며 나는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이 화산이었다는 것을 / 이 돌들이 심장을 단숨에 연소시킨 불이었다는 것을 / 나무들은 그럼 어디서 왔는가 나는 모르지 / 그것이 설악의 화두다 알 길 없는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돌)



  《밤 미시령》을 쓴 고형렬 시인은 하늘에 뜬 돌을 마음속으로 그립니다. 산을 오르면서 산돌을 밟기에 하늘에 뜬 돌을 마음속으로 그립니다. 자동차에서 내리지 않았다면, 자동차에서 내리지 않아서 산돌을 밟지 못했다면, 자동차에서 내릴 엄두나 생각이나 마음이 없이 산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두 다리로 이 땅을 밟는 삶을 누리지 않았다면, 아마 시는 흐르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스스로 두 손으로 가꾸는 삶이 있기에 시를 씁니다.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스스로 두 발로 걸어가는 삶이 있기에 시를 노래합니다.



풀잠을 자고 싶은 게지. / 나 지금 하고 싶은데. / 지금 할까? / 참았다가 모레 합시다. / 싫은데……. (벌레)



  시를 읽는 사람은 시외버스에서도 읽고, 전철에서도 읽습니다. 시를 읽는 사람은 베개맡에 시집을 눕혀 놓고도 읽고, 밥을 먹다가도 읽으며, 마당에 가만히 서서 가을볕을 쬐면서도 읽습니다.


  셈틀을 끄기에 시를 읽습니다. 신문을 덮기에 시를 읽습니다. 텔레비전을 집안에서 치우기에 시를 읽습니다. 두 다리로 걸으면서 지구라는 별을 느끼기에 시를 읽습니다. 훅 불어서 나뭇가지를 살살 건드리는 바람을 쐬기에 시를 읽습니다.



나도 그래 / 내 등뒤에 서울이 있다고 생각한 적은 / 없어. 뻬이징 밖에는 농민이 살고 풀들이 살아 / 토오꾜오 밖에는 토오꾜오 만이 있고 파도가 있고 / 서울 뒤에는 북한산이 있다는 것이지. (버티컬 블라인드가 열릴 때)



  때때로 자동차를 멈출 수 있으면 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 때때로 자동차를 멈추어 시동을 끄고 창문을 내려서 가을바람을 한껏 들이마신다면 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귀여겨듣는다면 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를 읽을 적에 새로운 시가 마음속에서 샘솟습니다. 시를 읽고 시를 쓸 수 있으면 삶을 노래로 지으면서 곁에 있는 사랑스러운 사람한테 따스한 목소리로 이야기 한 꾸러미를 풀어놓을 만합니다.


  환한 달빛은 구름까지 속살을 훤히 보여줍니다. 눈부신 달빛은 별더러 오늘은 고이 잠들라고 속삭입니다. 맑은 달빛은 시골집 처마를 지나 대청마루에까지 스며듭니다. 깊어 가는 가을에 무르익는 나락이 달빛을 받으며 더욱 노란 빛이 됩니다. 4348.9.3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찾았다! 곤충의 집 봄 여름 가을 겨울 생태놀이터 3
곤도 구미코 글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66



풀벌레는 사람한테 이웃이자 동무

― 찾았다! 곤충의 집

 곤도 구미코 글·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한울림어린이 펴냄, 2008.1.7. 1만 원



  마루문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빗자루를 들고 가랑잎을 씁니다. 해마다 봄가을이면 가랑잎을 쓰느라 바쁩니다. 네 철 푸른 나무는 네 철 푸른 만큼 꾸준하게 가랑잎을 내놓고, 겨울에 앙상한 가지로 쉬는 나무는 가을마다 가랑잎을 잔뜩 내놓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가랑잎을 쓸어도 마당에는 가랑잎이 소복합니다. 그렇다고 하루라도 미루면 더 많이 쌓여서 구릅니다.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가랑잎을 고이 쓸어서 풀밭으로 옮깁니다. 마당에서 바스라져서 흙이 되기보다는 풀밭이나 나무 둘레에서 천천히 삭아서 흙이 될 때에 한결 싱그러울 테니까요.


  마당을 쓰는 김에 누렇게 시든 풀을 베거나 뽑습니다. 줄기마다 새 뿌리가 생기면서 뻗는 여뀌를 걷다가 뿌리가 토톡 소리를 내며 뽑히는데 갑자기 엄청나게 많은 개미가 함께 튀어나옵니다. 아차, 너희가 여뀌 뿌리 언저리에서 집을 짓고 살았구나. 이것 참 미안한 노릇이네. 그래도 너희는 집을 대단히 잘 지으니까 다시 손질해서 잘 가꾸렴.


  씨앗을 심으려고 호미로 땅을 쪼면 으레 개미집이 나옵니다. 또는 벌레집이나 애벌레가 나오기도 합니다. 굼벵이도 나오지요. 이럴 때마다 풀벌레한테 미안합니다. 그러나 이 작은 아이들한테 속삭입니다. 괜찮아, 씨앗만 심고 갈 테니까. 씨앗을 마저 심을 때까지 기다려 주렴. 씨앗을 다 심으면 그 뒤로 이 땅은 도로 너희 보금자리가 되겠지. 땅속을 알뜰살뜰 잘 보듬어 주렴.


  잘 자란 쑥대라든지 모시풀이라든지 젓가락나물이라든지 고들빼기를 베어서 마당 한쪽에 쌓았습니다. 달포 즈음 그대로 두어 바싹 말렸는데, 이 풀짚을 풀밭으로 옮기면서 보니, 아래쪽에도 온갖 벌레가 바글거립니다. 지렁이도 이곳에서 기어다니고, 쥐며느리와 집게벌레와 여러 벌레가 북새통을 이룹니다. 그런데 풀짚 밑바닥은 어느새 까무잡잡한 흙밭입니다. 고작 달포를 그대로 두었을 뿐이지만, 밑바닥에 있던 풀은 잘게 바스라졌을 뿐 아니라 동글동글 이쁘장하면서 구수한 냄새가 나는 까무잡잡한 멋진 흙으로 바뀌었어요.


  풀벌레와 지렁이는 참으로 대단하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지구별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풀벌레가 지렁이가 꾸준히 새로운 흙을 일구어 주면서 사람한테 아름다운 이웃이자 동무가 되는구나 싶습니다. 마른 풀이나 말라죽은 풀을 흙으로 바꾸어 주는 풀벌레와 지렁이입니다. 밥찌꺼기도 어느새 흙으로 바꾸어 주는 풀벌레와 지렁이입니다. 게다가 개미는 풀벌레 주검을 흙으로 바꾸어 주지요.



생각 없이 보아 넘긴 풍경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숨었어요. 나뭇잎을 잘라 돌돌 말거나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리거나 나무줄기 속에나 땅속에 굴을 파거나, 저마다 보금자리를 마련하려고 갖가지 슬기를 짜내어 살아가요. (25쪽)





  곤도 구미코 님이 빚은 그림책 《찾았다! 곤충의 집》(한울림어린이,2008)을 읽으며 흙과 풀과 시골과 땅을 함께 헤아려 봅니다. 곤도 구미코 님 그림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생태놀이터’라는 이름으로 네 권이 한국말로 나왔습니다. 《톡! 씨앗이 터졌다》, 《와글와글 떠들썩한 생태일기》, 《꼬물꼬물 곤충이 자란다》와 함께 《찾았다! 곤충의 집》은 네 권으로 네 철 이야기를 골고루 들려줍니다.


  이 가운데 《찾았다! 곤충의 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따로 ‘이야기 말(설명 글)’이 붙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맨눈으로 볼 수 있을 만한 땅거죽이나 물위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다음 쪽에서는 ‘사람이 맨눈으로 볼 수 없을’ 만한 땅속이나 물속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주 조그마한 풀벌레와 날벌레와 물벌레가 저마다 어느 곳에서 어떤 삶을 짓는가 하는 이야기를 꼬물꼬물 조그맣고 앙증맞으며 재미난 그림으로 보여주어요.


  처음에는 ‘응? 무슨 그림일까?’ 하고 궁금하도록 이끌고, 한쪽을 넘기면 앞쪽하고 바탕은 같되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수많은 벌레가 저마다 얼크러지고 어우러지는 얼거리’를 한자리에 그러모아서 보여주지요.


  그런데, 그림책 《찾았다! 곤충의 집》을 보면, 온갖 벌레가 서로 잡아먹거나 잡아먹히는 모습이 곳곳에 나옵니다. 어느 벌레는 잡아먹히면서 눈물을 흘리고, 어느 벌레는 잡아먹으면서 빙긋 웃습니다. 그럴밖에 없어요. 참말 풀밭 먹이사슬에서는 목숨앗이가 뚜렷하게 갈려서 서로 먹이가 되고 삶이 되며 삶터를 이룹니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꾸밈없이 들여다봅니다.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으로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이 벌레는 이러한 삶이로구나 하고 깨닫고, 저 벌레는 저러한 삶이네 하면서 깨닫습니다. 수많은 벌레가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이루는 새로운 삶을 마주합니다.



벌레 똥은 벌레 집. 혹잎벌레 집은 벌레 똥이거든.

나는 노랑쐐기나방. 내 고치는 길쭉동글한 초코볼처럼 생겼어.

난 팽나무혹파리. 나뭇잎 벌레혹 속에 살지.

나는 물속 청소부, 물방개.

나는 빨간 바탕에 까만 점이 콕콕 박힌 무당벌레. 나무껍질 안쪽에 옹기종기 모여 다 함께 겨울을 나. (그림책 면지에 있는 그림)





  가을볕이 뜨겁다면서 마루에서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을 마당으로 부릅니다. “얘들아, 우리 집 빨랫줄을 보렴. 잠자리가 네 마리나 나란히 앉았는걸.” 아이들은 “어디? 어디?” 하면서 내다봅니다. 마당으로 맨발로 내려서서 두리번거리다가 찾아냅니다. “아, 저기 있구나!”


  저녁에 잠자리를 깔고 함께 눕습니다. 큰아이가 문득 묻습니다. “아버지, 거미들은 왜 태풍이 오면 안 날아가?” “거미는 태풍이 올 적에 안 날아간다기보다 태풍이 오면 미리 알아채고 줄을 다 걷고서 숨지. 그래야 태풍에 날아가지 않으니까. 태풍이 오면 거미줄로 잡을 벌레도 없으니 줄을 걷어야지.” 엊그제 두 아이는 마당에서 애벌레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맨발로 마당에서 놀다가 애벌레를 보았다더군요. “저기, 저 나무에서 이리로 떨어졌어. 다시 나무로 올려주려고 나뭇잎을 대는데 얘가 나뭇잎으로 안 올라오고 혀만 빨갛게 낼름낼름 내밀어.” “나뭇잎으로 안 올라오면 다른 나뭇잎을 써서 뒤에서 밀어 주면 되지.” “얘는 범나비 애벌레일까, 아니면 파란띠제비나비 애벌레일까?” “글쎄, 파란띠제비나비 애벌레 같기는 한데, 혀 내미는 빛깔하고 다리 옆으로 난 하얀 띠를 보니까 범나비 애벌레 같아.”


  나는 풀벌레나 애벌레를 잘 몰랐고, 아직 얼마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 집에서 함께 사는 수많은 풀벌레하고 애벌레를 늘 아이들하고 지켜보면서 새롭게 배웁니다. 여기에다가 멋진 그림책을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면서 즐겁게 배웁니다.


  벌레를 다루는 그림책은 아이들이 대단히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공룡 그림책 못지않게 벌레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벌레가 사람하고 아주 가까운 이웃이자 동무인 줄 마음으로 아는 셈일까요? 벌레가 이 지구별에 있기에 모든 주검과 쓰레기를 삭혀서 아름다운 흙으로 바꾸어 주는 줄 마음으로 알까요?


  벌레 그림책을 읽으면서 벌레를 더 재미있고 살가이 배웁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사랑스러운 벌레 그림책을 읽으면서 ‘인문 지식’이 아닌 ‘우리 곁 예쁜 숨결’이라는 테두리에서 벌레 한살이와 이야기를 새삼스레 배웁니다. 4348.9.2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꼴찌, 동경대 가다! 19 (신장판) - KBS 드라마 '공부의 신' 원작
미타 노리후사 지음, 김완 옮김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56



‘시험공부’만 하느냐 ‘삶을 배우려’ 하느냐

― 꼴찌, 동경대 가다! 19

 미타 노리후사 글·그림

 김완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2010.1.4. 4500원



  중·고등학교 여섯 해를 다니는 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가 하고 돌아보면 이것저것 떠오르기는 하지만 그리 기쁘거나 새롭다고 할 만한 일은 좀처럼 찾기 어렵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늘 같은 자리만 맴돌아야 했던 나날이었네 하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이런 중·고등학교 여섯 해였어도, 기찻길을 밟고 두어 시간 거닐던 일은 자주 떠오릅니다. 이제 옛날 그 기찻길은 몽땅 사라졌지만 하루에 한두 대 지나가는 오래된 기찻길이 있었고, 자율학습 따위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려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으레 그 기찻길을 따라서 아무 생각을 안 하고 천 걸음 떼기나 만 걸음 떼기를 하며 혼자 놀았습니다. 이렇게 한참 기찻길을 밟고 걸으면 어느새 무거운 짐이 훌훌 사라지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다시 시험공부를, 대학 입시 공부를 붙잡습니다.



“내 콤플렉스는 내 자신에 대한 거야. 난 고등학교를 중퇴했잖아? 난 곤란하면 금방 도망쳐 버리는 약한 사람이 아닐까 싶어서 자기혐오에 빠지는 거야. 하지만, 입시에서든 뭐든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이 강해질 수 있고, 더 유리하댔어.” (18∼19쪽)


“그래서, 오늘은 뭐 할 거야?” “그게 문제야. 시간은 남아돌고, 어슬렁거릴 수밖에 없으려나. 하지만 참 신기해. 작년 이맘때는 할 게 없어도 아쉽지 않았는데, 지금은 심심해서 죽을 지경이라니.” (40쪽)



  미타 노리후사 님이 빚은 만화책 《꼴지, 동경대 가다!》(랜덤하우스코리아,2010) 열아홉째 권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이 만화책은 모두 스물한 권이고, 책이름에서 말하듯이 ‘학교 꼴찌’인 아이가 일본에서 동경대에 붙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학교 꼴찌’를 하던 아이라 하더라도 동경대학교에 붙도록 시험공부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보여준다고 할까요.


  그러면, 어떤 이는 이 만화책을 참고서 삼아서 ‘나도 서울대에 한번?’ 하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참말 그렇지요. 서울대학교라고 해서 아무나 못 가는 곳이 아니라, 가고자 하는 뜻이 있는 사람이 가는 곳일 테니까요.



‘처음 시작했을 때는 공부가 무한한 것처럼 느껴졌는데, 시험공부는 유한하구나. 그걸 알고 나니 얼마나 공부하면 좋을지 점점 보이게 되고, 약점을 극복하는 게 재미있어졌어. 마치 공부란, 정해진 크기의 판 위에서 하는 오셀로 게임 같아. 아직 칸을 전부 채우진 못했지만, 이기는 법을 알게 돼 돌을 놓을 때마다 게임판의 색이 순식간에 바뀌는, 그런 느낌이 너무 좋아.’ (46∼47쪽)



  나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붙은 뒤 ‘대학교는 중·고등학교하고 다르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던 ‘다른 모습’은 대학교에 없었습니다. 고등학교까지 오직 시험공부만 해야 하던 학교 얼거리인데, 대학교에서도 똑같이 시험공부만 해야 하는 얼거리입니다. 중학교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바라보는 시험공부요, 고등학교는 대학교를 바라보는 시험공부인데, 대학교는 회사와 공공기관을 바라보는 시험공부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 대학교는 놀고 먹는 시험공부입니다. 한쪽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술잔치이고, 한쪽에서는 도서관에만 처박히는 시험공부입니다. 대학교조차 도서관이 ‘책 읽는 곳’이 아니라 ‘시험공부에 사로잡히는 곳’입니다.


  그러고 보면,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시험공부만 시키는 나라에서 대학교가 제대로 설 수 없겠구나 싶습니다. 이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내가 바보스럽다고 할 만합니다. 이 나라 교육이 제대로 섰다면, 중·고등학교 푸름이한테 시험공부만 우악스럽게 시킬 까닭이 없습니다. 한창 마음이 자라야 할 푸름이한테 삶을 가르쳐야 마땅한 중학교요 고등학교입니다.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 따위로 아이들을 길들이거나 괴롭히려는 중·고등학교가 아닌, 삶과 사랑과 사람을 슬기롭게 보여주면서 가르칠 줄 알아야 하는 중·고등학교여야 하지요.


  고등학교를 마치는, 또는 대입 시험을 치른, 앳된 젊은이는 손쉽게 술하고 담배를 손에 쥡니다. 술하고 담배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좋지도 않습니다. 그저 술하고 담배일 뿐입니다. 다만, 고등학교까지 학교나 사회나 마을이나 집에서 아이들한테 술하고 담배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주거나 가르치는 어른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대학교는 어떠할까요? 대학교 교수나 선배라는 사람은 술이나 담배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거나 가르칠 수 있을까요?



“큰맘 먹고 뒤로 물러나라. 거시적인 시점에서 수험에 임하기 위해 보다 높이, 위에서 보는 거야. 점점 높이, 기왕 하는 김에, 일본 상공에서, 지구 밖에서, 그리고 우주에서.” (69∼71쪽)


“그래서 어쨌는데 하는 얘기일 뿐이지.” “그래서 어쨌는데?” “설령 실전에 약한 타입이래도, 그게 어쨌다는 거냐, 그 말이야. 그렇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실전에 강해지도록 트레이닝해서 자기개혁을 하면 되는 것뿐이거든.” (119쪽)



  만화책 《꼴지, 동경대 가다!》는 훌륭하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으며 재미있지도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가 있습니다. 꼴찌이든 아니든 누구나 동경대에 가려고 하면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떤 일이든 스스로 어떤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꼴찌이든 일등이든 동경대에 못 들어가는 까닭은 ‘동경대’라고 하는 곳을 제대로 알거나 살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고, 동경대에 왜 들어가려고 하는가를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나 스스로 새롭게 거듭나려고 애쓰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화책에서도 흐르는 이야기입니다만, 동경대에 가든 안 가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동경대에 가야 한다면 가야 할 뿐입니다. 들어가면 되지요. 한국에서 서울대에 굳이 가야 할까요? 한국에서 대학교에 굳이 가야 할까요? 더 생각해서,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꼭 마쳐야 할까요? 중학교나 초등학교를 구태여 다녀서 졸업장을 거머쥐어야 할까요? 대학교 졸업장뿐 아니라 초등학교 졸업장이 반드시 있어야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만할까요?



“넌 슛을 열 개 다 넣으려 했기 때문이야.” “슛 열 개를 다.” “반대로 난 어떻게 이겼을까? 그건 처음부터 대략 여섯 개만 성공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대략 여섯 개.” “일곱 개 넣으면 승리는 거의 확실하고, 다섯 개로도 어떻게든 비길 수 있을 거라고 계산했어. 그래서 처음 두 번은 빗나가도 당황하지 않았지. 반대로 넌 아무 대책도 없이 시합을 시작했을걸? 어때?” (154∼155쪽)



  삶은 졸업장으로 판가름할 수 없습니다. 삶은 은행계좌나 아파트 크기로 잴 수 없습니다. 삶은 얼굴 생김새나 몸매 따위로 따질 수 없습니다. 삶은 밥그릇이나 나이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삶은 오로지 삶으로 마주하면서 바라봅니다. 삶은 오직 사랑으로 가꿉니다. 삶은 오직 스스로 아름답게 일어서는 웃음꽃으로 기쁘게 돌볼 수 있습니다.


  시험공부를 하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어떤 시험에 꼭 붙어서 어떤 일을 하겠노라 하는 꿈이 있으면 시험공부를 신나게 하고 기쁘게 하며 재미나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시험을 마쳤으면 새로운 마음과 몸이 되어서 ‘삶 배우기’로 나아가면 돼요.


  우리는 저마다 다 다른 삶을 일구면서 저마다 다른 기쁨을 누리려고 이 땅에 태어납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다 다르면서 모두 뜻있고 값있으면서 아름다운 삶을 지으려고 이 땅에 태어납니다.


  삶을 가르치고 배울 때에 즐겁습니다. 삶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스러운 너와 내가 만나서 어깨동무를 하면 아름답습니다. 한 걸음을 내딛고 두 걸음을 뻗습니다. 세 걸음을 디디고 네 걸음을 폴짝 뛰어오릅니다. 배우는 길은 즐겁고 사랑스러우며 아름답지만, 시험공부에 얽매이는 길은 괴롭고 따분하며 힘듭니다. 우리는 어느 길을 걸어야 할까요? 4348.9.28.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