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공주 비룡소의 그림동화 141
배빗 콜 지음, 노은정 옮김 / 비룡소 / 200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8



‘나이가 꽉 차’도 시집가기 싫은 공주

― 내 멋대로 공주

 배빗 콜 글·그림

 노은정 옮김

 비룡소 펴냄, 2005.5.17. 9000원



  아이들은 얼마든지 놀 만합니다. 어른도 얼마든지 놀 만합니다. 공부만 해야 하는 아이가 아니고, 일만 해야 하는 어른이 아닙니다. 삶을 즐겁게 누릴 아이요 어른이고, 삶을 사랑스레 가꿀 아이요 어른입니다.


  아이는 나이에 맞추어 이것을 하거나 저것을 해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가 똑같은 나이에 글을 떼거나 어떤 학교를 마쳐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가 똑같은 어느 나이에 이르러 어떤 일을 반드시 해내야 하지 않아요. 더군다나 아이한테는 ‘꽉 찬 나이’가 없습니다.


  이는 어른한테도 마찬가지예요. 어른도 몇 살 나이가 되었으니 이런 일을 꼭 해야 하지 않습니다. 어른도 어느 나이에 이르면 무엇을 반드시 해내야 하지 않습니다.



내 멋대로 공주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가씨로 지내는 게 좋았거든요. 하지만 공주가 워낙 예쁘고 부자여서 모든 왕자들이 결혼하고 싶어 했죠. (2∼3쪽)



  배빗 콜 님이 빚은 이쁘장한 그림책 《내 멋대로 공주》(비룡소,2005)를 재미있게 읽습니다. 책이름처럼 ‘내 멋대로’라고 하는 공주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괴물이라고 여길 만한 짐승을 귀염둥이로 곁에 둡니다. 언제나 귀염둥이 짐승(괴물)을 돌보고, 드넓은 꽃밭을 가꾸면서 하루를 누려요. 내 멋대로 공주로서는 나이가 꽉 찼기에 혼인을 한다든지 시집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없습니다. 내 멋대로 공주로서는 공주 이름 그대로 ‘마음껏 하고픈’ 대로 하면서 삶을 누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루는 왕비가 말했어요. “너도 이제 나이가 꽉 찼으니 짐승들하고 그만 노닥거리고 어서 남편감이나 찾아라!” (6쪽)



  어버이가 왕이나 왕비라고 해서 아이한테 꼭 ‘왕국을 물려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굳이 왕국을 물려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왕국뿐 아니라 커다란 회사도 이와 같다고 할 만해요. 어버이가 어떤 내로라하는 대단한 회사를 세운 대표나 회장이나 사장이라 하더라도 아이가 구태여 그런 회사를 물려받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어버이로서는 아이를 ‘후계자’로 여길 수 있을 테지만, 아이로서는 아이 나름대로 아이 삶을 즐겁고 씩씩하면서 알차게 가꾸는 꿈을 키울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군인이기에 아이도 군인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운동선수이기에 아이도 운동선수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의사이기에 아이도 의사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교사이기에 아이도 교사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언제나 아이 스스로 가장 즐겁거나 기쁜 삶을 찾아서 꿈을 키울 노릇입니다.




아무도 공주가 시킨 일을 해내지 못했어요. 왕자들은 모두 쑥스러워하며 성을 떠났습니다. “이제는 됐겠지?” 내 멋대로 공주는 킥킥 웃으며 말했죠. 공주는 이제야 마음이 푹 놓였어요. 그런데 바로 그때 뺀질이 왕자가 짜잔 나타난 거예요! (20∼21쪽)



  그림책 《내 멋대로 공주》에 나오는 내 멋대로 공주는 ‘아무튼 어머니 아버지 말을 듣기’로 합니다. 그래서 공주한테 찾아온 수많은 왕자한테 이것저것 시켜 봅니다. 공주가 시키는 일을 거뜬히 해낼 수 있어야 ‘남편감’으로 받아들이겠노라 하고 밝힙니다.


  수많은 나라에서 찾아온 수많은 왕자는 공주가 시키는 일을 하나도 못 합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공주는 공주 스스로 좋아하고 사랑하며 즐기는 일을 왕자들한테 시키는데, 수많은 왕자 가운데 ‘내 멋대로 공주가 여느 때에 즐겁게 하는 일(놀이)’을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없어요. 공주한테 찾아온 왕자는 너나 할 것 없이 ‘공주 겉모습’이나 ‘공주 재산’을 바라보면서 찾아왔을 뿐입니다. 공주하고 사이좋게 놀거나 어울리면서 ‘먼저 동무가 되려는 마음’인 사람이 없어요.


  생각해 보셔요. 사이좋은 동무로 함께 놀고 꿈꾸고 사랑하려는 사이가 아니라, 그저 ‘공주와 왕자’라고 하는 ‘후계자로 짝짓기’만 해야 한다면, 공주는 살아가는 보람이나 뜻이 없습니다. 왕자한테도 이런 삶은 보람이나 뜻이 없을 테고요. 즐거움도 기쁨도 없이 왕좌에 앉는 일이란 웃음도 노래도 이야기도 흐르기 어렵습니다.




뺀질이 왕자는 내 멋대로 공주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공주는 하는 수 없이 왕자에게 마법의 뽀뽀를 했고 ……. (26∼27쪽)



  수많은 왕자는 공주가 시키는 일을 해내지 못하는데, 마지막으로 뺀질이 왕자는 공주가 시키는 일을 모두 거뜬히 해냅니다. 이러면서 뺀질이 왕자는 생각합니다. “내 멋대로 공주도 별것 아니군”


  자, 이제 뺀질이 왕자는 어떻게 될까요? 뺀질이 왕자는 수많은 ‘경쟁자’를 신나게 물리치고 내 멋대로 공주하고 짝이 될까요? 공주를 아끼거나 사랑하려는 마음이 아닌 ‘공주가 시키는 일쯤이야 대수롭지도 않다’고 여기는 마음으로 공주하고 어떤 삶을 누리려 하는 생각일까요?


  공주는 ‘하는 수 없이’ 왕자한테 뽀뽀를 합니다. 그러나 그냥 뽀뽀가 아닌 ‘마법 뽀뽀’입니다. 왕자는 ‘마법 뽀뽀’인 줄 모르는 채 ‘다른 모든 경쟁자를 물리쳐서 으뜸이 되었다는 자랑’만 생각합니다. 즐거운 삶을 짓는 놀이를 꿈꾸는 공주는 마지막 장난으로 ‘마법 뽀뽀’를 하는데, 이를 받아들일 만한 뺀질이 왕자가 될는지, 아니면 ‘저런 공주하고는 못 살겠다’고 외칠는지, 마지막 이야기는 우리가 저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아야지 싶습니다. 4348.12.2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원도의 힘 눈빛사진가선 17
엄상빈 지음 / 눈빛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04



‘수수하며 착한’ 이웃이 사는 강원도를 바라보다

― 강원도의 힘

 엄상빈 사진

 눈빛 펴냄, 2015.10.12. 12000원



  포근한 겨울 날씨는 더없이 반가운 선물이라고 느낍니다. 추운 날씨가 이어지다가 며칠쯤 포근한 날씨가 찾아들면 이불이며 빨래이며 마당에 내다 넙니다. 어른인 나는 이불이랑 빨래를 널며 하하하 웃습니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신나게 뛰놀다가 ‘아, 겨울인데 덥네?’ 하면서 웃어요.


  매서운 겨울 날씨는 가없이 고마운 선물이로구나 하고 느끼고요.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면 어느새 파리가 깨어나기도 하는데, 다시 차가운 바람이 불면 파리는 감쪽같이 사라질 뿐 아니라, 풀잎이 더 싯누렇게 시들고 가랑잎도 더 바짝바짝 마릅니다. 한겨울에 웬 파리가 나다니나 싶어 파리채를 휘두르다가 요 녀석들도 겨울에는 좀 잠을 자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뒤꼍이나 마당에서 잘 돋던 풀은 숨이 죽으니, 시든 풀을 밟으며 서걱서걱 사각사각 소리를 노래처럼 듣습니다.


  전남 고흥에서 지내는 우리 식구는 한겨울에도 무척 포근한 날씨를 누리기 때문에, 다른 고장에서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씨여도 이곳에서는 싸락눈조차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눈을 구경하기는 어렵지만 한겨울에 동백꽃이나 장미꽃을 구경합니다. 참말 고흥에서는 한겨울에도 볕이 따사로운 날이 이레 남짓 이어지면 장미나무를 울타리에 심어서 키우는 이웃집에서는 장미꽃이 소담스레 벌어지기도 합니다. 아마 경상남도 통영이나 남해 같은 곳에서도 한겨울에 짙붉거나 새빨간 꽃송이를 소담스레 만날 만하리라 느껴요. 태평양을 거쳐서 부는 포근한 바람을 맞이하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서 빛살조각처럼 퍼지는 즐거운 기운을 맞아들입니다.



강원도 내 한 일간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강원도민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순박하다’를 가장 많이 꼽았다. 도민들이 ‘타 지역 사람들이 도민들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대한 질문에서도 역시 ‘순박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꼽았다.




  엄상빈 님이 빚은 사진책 《강원도의 힘》(눈빛,2015)을 읽습니다. 이 사진책은 강원도 사람들 이야기를 차분하면서도 포근하게 들려줍니다. 그저 사진일 뿐이라고 여긴다면 그저 사진이지만, 그저 강원도 이야기라고 여길 수 있으면 그저 강원도 이야기입니다. 우리 이웃이라고 바라보면 우리 이웃이요, 우리 할매요 할배라고 여기면 우리 할매요 할배입니다.


  강원도 사람들은 ‘순박’할까요? 그러면 ‘순박(淳朴)’이란 무엇일까요? 한국말사전에서 이 한자말을 찾아보면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순수하며 인정이 두텁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한자말 ‘순수(純粹)’는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을 뜻해요. 그러니, ‘순박한 강원도 사람들’이라 할 적에는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티없고 살갑다”는 뜻이 되리라 느낍니다. 다른 한국말로 하자면 “수수하면서 착하다”요 “수수하면서 사랑스럽다”라고도 할 만합니다.


  문득 궁금합니다. 서울 사람들은 ‘수수하다’거나 ‘착하다’거나 ‘사랑스럽다’거나 ‘살갑다’고 할 만할까요? 부산이나 대구나 광주 사람들은 어떠할까요? 서울 같은 커다란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을 놓고 강원도 사람들을 바라보듯이 ‘수수하네요’라든지 ‘착하네요’라든지 ‘사랑스럽네요’라든지 ‘살갑네요’ 하고 들려주는 말은 몇 사람이나 할 만할까요?


  어느 모로 본다면, 모든 강원도 사람들이 다 ‘순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고장 사람들이 강원도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순박’하다고 말하는 사이에 강원도 사람들은 차츰 ‘순박’한 마음결이나 마음씨로 거듭납니다.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 사람들을 가리켜 ‘차갑다’거나 ‘새침스럽다’거나 ‘날카롭다’거나 ‘바쁘다’거나 ‘안 착하다’ 같은 느낌을 말하는 동안 참으로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으로 달라지지 싶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새로운 말을 빚기도 하지만, 우리가 쓰는 말에 따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달라지기도 한달까요. 사진은 바로 이러한 흐름을 찬찬히 살피면서 찍습니다. 사진은 바로 이러한 삶자리를 가만히 돌아보면서 찍습니다. 사진은 바로 이러한 이음고리를 넌지시 밝히면서 찍습니다.



여기에 담겨 있는 30여 년 세월의 사진 속 주인공들이 바로 강원도민들의 순박한 자화상이다. 강원도 여기저기를 다니며 우연히 만난 우리의 이웃 아저씨들이고 아주머니들이다.





  전라남도에서 사는 우리 식구는 우리 이웃을 따사롭게 바라봅니다. 이웃도 우리를 따사롭게 바라봅니다. 그래서 내가 전라남도 고흥이라는 고장에서 사진을 찍는다면 ‘고흥 사람들’이나 ‘전라남도 사람들’을 엄상빈 님이 《강원도의 힘》이라는 사진책에서 강원도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듯이 ‘순박’하게 마주하면서 담을 수 있습니다.


  서울이나 부산에서 사는 이웃님도 서울이나 부산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순박’하게 마주하면서 순박하게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찍히는 사람’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하는 사진이지만, ‘찍는 사람’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거듭나기도 하는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사람들이 워낙 순박하기에 엄상빈 님은 강원도 이웃님을 순박한 숨결이 흐르도록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엄상빈 님 스스로 순박한 마음결이나 마음씨가 되어 강원도 사람들을 이웃이요 동무요 한식구로 마주한다면, 강원도 사람들을 찍는 사진은 언제나 순박한 기운이 흐르는 따사롭고 착하며 수수하고 살가운 사진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강원도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기에 ‘순박한 빛’이 흐르지 않습니다. 서울이나 부산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어도 얼마든지 ‘순박한 빛’이나 ‘따사로운 숨결’이나 ‘수수한 바람’이나 ‘짙푸른 노래’로 담을 수 있어요. 모델이 훌륭해서 사진이 훌륭할 수 있으나, 모델만 훌륭해서는 사진이 훌륭하지 않습니다. 모델이 좋고 나쁜가에 따라서 좋고 나쁜 사진이 나오지 않으니까요.





집중호우로 다 망가졌던 그 양배추밭에도 이듬해가 되면 어김없이 다시 파종을 하고 농사일을 이어가는 사진 속 주인공 농부처럼 은근과 끈기, 그리고 순박함이 바로 ‘강원도의 힘’이다.



  누구를 찍든 ‘누가’ 찍는가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누구, 이를테면 멋지거나 훌륭한 모델을 찍더라도 ‘누가’ 찍는가에 따라 비틀리거나(편견이 되거나) 뒤틀릴(왜곡될) 수 있습니다. 순박한 사람들을 찍더라도 ‘누가’ 찍는가에 따라 안 순박하게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순박한 이웃을 사진으로 찍으려면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도 똑같이 순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수한 이웃을 사진으로 담으려면 사진기를 손에 잡은 사람도 똑같이 수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스러운 이웃을 사진으로 옮기려면 사진기를 손에 든 사람도 똑같이 사랑스러울 수 있어야 합니다.


  사진은 언제나 삶자리에서 찍습니다. 먼 자리도 가까운 자리도 아닌 삶자리에서 찍는 사진입니다. 그리고 사진은 사랑자리에서 찍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넋으로 사진을 찍지요. 마지막으로 사진은 꿈자리에서 찍습니다.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삶을 사랑스럽게 짓겠노라 하는 꿈을 가슴에 품으면서 찍습니다. 삶자리와 사랑자리와 꿈자리를 생각하기에 《강원도의 힘》이라는 사진책이 태어날 수 있습니다. 자그마한 사진책 한 권을 책상맡에 두고 오래오래 되읽으면서 우리 이웃이 살아가는 삶자리랑 사랑자리랑 꿈자리를 헤아리다가, 오늘 우리 식구가 지내는 삶자리랑 사랑자리랑 꿈자리에는 어떤 기운과 바람과 숨결이 흐르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4348.12.2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대와 통하는 사회 이야기 - ‘사회’를 아는 만큼 내가 보인다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23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푸른책과 함께 살기 127



아이들은 왜 ‘사회를 알아야’ 하는가?

― 10대와 통하는 사회 이야기

 손석춘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5.12.25. 12000원



  곁님하고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낼 마음이 없습니다. 아기를 낳기 앞서부터 이러한 마음이었고, 아기를 낳은 뒤에도 이러한 마음입니다. 큰아이뿐 아니라 작은아이도 학교에 안 보내려 해요.


  곁님하고 내가 아이를 학교에 안 보낸다고 하는 얘기를 듣는 이웃은 ‘나중에 사회생활을 어떻게 시키’려고 하느냐고 걱정을 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걱정스러울는지 모르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면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아이들은 굳이 ‘사회생활을 해야’ 하지 않으니까요.


  아이들은 사회라는 곳에서 회사를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사회라는 곳에서 연금생활자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사회라는 곳에서 자격증이나 졸업장을 거머쥐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꿈을 키울 노릇입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삶을 지을 노릇입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사랑을 가꿀 노릇입니다.



우리 중·고등학생들처럼 입시 지옥에 갇혀 학교를 마치자마자 저마다 학원으로 가거나, 밤이 깊도록 학교에 남아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모습은 지구촌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살풍경입니다. (14쪽)


한국 사회에서 ‘규제 완화’를 쓸 때, 그 대부분은 사회구성원의 권인이나 인권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더 많은 돈(이윤)을 벌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본의 탐욕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을 완화할 때 어떻게 될까요?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일어납니다. (18쪽)



  손석춘 님이 이 나라 푸름이한테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쓴 《10대와 통하는 사회 이야기》(철수와영희,2015)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손석춘 님은 ‘사회’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이 책에서 밝히면서,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지식’이 아니라 ‘푸름이 스스로 이 땅에서 어른이 될 적에 마주할’ 삶터가 어떠한 결인가를 다루려 합니다. 정치권력이나 국가권력이 사람들 생각을 옭아매거나 얽어매는 틀인 ‘사회’가 아니라, 푸름이가 앞으로 ‘새로운 어른’이 되어서 ‘새롭게 어우러질 삶터’인 사회를 어떻게 가꾸거나 일굴 적에 아름다운 삶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려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존권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고 고등학교 졸업생과 대학 졸업생 사이에 월급 차이가 없이 일만으로 평가받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 많은 10대들의 꿈이 바뀔 수 있습니다. (25쪽)


외부 침략이 없고 내적 착취가 상대적으로 적은 ‘태평성대’에도 노비나 천민들은 고통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평민들도 양반의 위세에 내내 눌려 살아야 했지요. (62쪽)



  사회생활은 회사생활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다만, 회사를 다닌다고 해서 사회생활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회사생활만 사회생활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떤 일자리를 얻어서 돈을 버는 살림일 때에 사회생활이 아니라, 스스로 가슴에 품은 꿈을 일구는 길을 걸을 때에 비로소 사회생활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돈을 벌어야만 밥을 먹지 않아요. 손수 흙을 일구어 먹을거리를 얻어도 밥을 먹습니다. 돈을 벌어서 옷을 사야만 하지 않습니다. 모시풀을 심고 거두어서 실을 얻은 뒤, 모시풀에서 얻은 실로 손수 옷을 지어서 입을 수 있습니다. 돈을 들여 집을 장만해야 집짓기나 집살이가 아닙니다. 손수 숲을 가꾼 뒤에 숲에서 나무를 베어 집을 지어도 집짓기요 집살이입니다.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어올리고 동상을 세우는 데 앞장선 사람들에게 한국 사회는 ‘세계적으로 기적을 이룬 사회’입니다 … 그렇다면 정부 수립 과정이 곧 분단 수립 과정이었다는 엄연한 사실, 그 과정과 결과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은 사실, 일방적인 산업화로 노동자들이 희생당한 사실,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정작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인 민중의 생활은 더 팍팍해지고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돤 사실 … (33, 35∼36쪽)



  나는 아직 밥이나 옷이나 집을 손수 짓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직 우리 아이들한테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를 제대로 가르치거나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앞으로 아이들하고 함께 밥이며 옷이며 집을 손수 짓는 길을 걸어가면서 서로서로 돕고 북돋우는 살림을 가꾸려는 꿈을 키웁니다.


  돈으로 짓는 삶이 아니라 사랑으로 짓는 삶을 생각합니다. 자격증이나 졸업장으로 어떤 일을 하지 않고, 꿈과 사랑으로 일을 하는 나날을 생각합니다. 사회에서는 사람들한테 자격증이나 졸업장을 바랍니다만, 어떤 일을 할 적에 자격증이나 졸업장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무엇보다도 ‘아이를 낳아 사랑을 돌보는 삶’에는 자격증도 졸업장도 없습니다. 자격증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를 낳지 않아요.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를 낳지요.


  씨앗을 심어서 돌보는 손길은 자격증이나 졸업장으로 키우지 않아요. 오직 사랑스러운 손길이 될 때에 씨앗을 심어서 돌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 바로 그것이 개인의 등장이었습니다. (88쪽)


신자유주의의 자유는 ‘자본이 누리는 절대적 자유’를 뜻하므로 그것을 한마디로 줄이면 ‘자본 독재’가 됩니다. (105쪽)


그들(조선 사회 양반·지식인)이 말하는 공론, 언로와 간쟁은 신분제 사회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조선의 양반계급이 백성을 위한다며 내세운 ‘민본 정치’ 또한 신분제도의 틀에 갇혀 있었지요. (114쪽)



  청소년 인문책 《10대와 통하는 사회 이야기》를 살피면, 조선 사회나 한국 사회에서 ‘권력을 쥔 이들’이 ‘사회 밑바탕을 이룬 수수한 여느 사람들’을 얼마나 옥죄면서 괴롭혔는가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권력을 쥔 이들은 언제나 권력을 지키려고 ‘사회’를 단단하게 짓누르면서 톱니바퀴 얼거리를 짰어요. ‘사회 밑바탕을 이룬 수수한 여느 사람들’을 톱니바퀴로, 그러니까 소모품으로 다루는 얼거리를 짰지요.


  비정규직이라든지 정리해고란 무엇인가 하면, 수수한 여느 사람들이 언제나 소모품이 되어 ‘쉽게 갈아치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벌이는 슬픈 몸짓입니다. 서로서로 이웃이요 동무로 여긴다면, 어느 사회에서든 비정규직이 있을 수 없고 정리해고도 나올 수 없어요. 자격증이나 졸업장 때문에 일삯을 다르게 받아야 할 까닭이 없고, 가난이나 푸대접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더더구나 전쟁무기와 군대 때문에 돈을 엉뚱하게 쓰느라, 막상 삶과 살림(문화와 복지)에는 등을 지는 사회 얼거리가 되어야 할 까닭이 없지요.



‘국민’이라는 번역은 옳지 못합니다. ‘people’은 결코 ‘국민’으로 옮길 수 없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의 기초는 특정 국가의 틀에 갇힌 국민이 아니거든요. (133쪽)



  먼먼 옛날부터 슬기로운 어른은 아이들한테 삶을 가르쳤습니다. 슬기로운 어른은 학교나 책이나 지식이 아닌 사랑으로 아이들한테 삶을 가르쳤습니다. 풀이나 나무나 짐승이나 벌레한테 붙인 이름은 모두 수수한 여느 사람이 사랑으로 지어서 붙였습니다. 식물도감이나 곤충도감이 있어야 아는 이름이 아니라, 수수한 여느 사람이 스스로 삶을 짓고 가꾸면서 고장마다 다 다르게 곱고 재미난 지어서 붙인 이름입니다. 사랑으로 가꾸는 마을에서 사랑으로 자라는 아이들이 웃고, 꿈으로 빚는 보금자리에서 꿈으로 자라는 아이들이 노래한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나아갈 길은 사회생활이 아닌 마을살이입니다. 사회가 아름답도록 하기에 앞서 마을이 아름다울 노릇입니다. 그리고 마을이 아름다우려면 먼저 여느 집살림부터 아름다울 수 있어야 할 테지요.



소비자본주의 사회가 굴러가는 모습을 자세히 분석하면 경제성장이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행이 경제 성장을 지탱해 준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소비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를 계속 부추겨 물건을 사도록 조장하고, 그렇게 이윤을 남김으로써 자본주의 체제는 강화되어 갑니다. (171쪽)



  아이들은 사회를 알아야 하기 앞서 ‘삶’을 알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교과서 지식을 외우기 앞서 ‘사랑’을 배워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며 졸업장을 따거나 자격증을 거머쥐기 앞서 ‘꿈’을 가슴에 품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는 곁님하고 시골에서 삶하고 사랑하고 꿈을 함께 짓고 누리면서 이러한 숨결을 아이들이 물려받을 수 있는 보금자리를 돌보려 합니다. 교과서를 쓰고 시험점수를 받아야 하며 입시지옥 대학바라기로 나아가는 학교가 아닌 집에서 삶이랑 사랑이랑 꿈을 아이하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나날을 생각합니다.


  삶을 알 때에 비로소 사회도 제대로 안다고 느낍니다. 사랑을 배울 때에 비로소 사회도 제대로 배운다고 느낍니다. 꿈을 가꿀 때에 비로소 사회도 제대로 가꾸는 길을 걷는다고 느낍니다. 삶도 사랑도 꿈도 모르거나 배운 적 없이 어릴 적부터 사회생활에 길든다면 그예 삶도 사랑도 꿈도 모르는 어른이 되어 바보스럽거나 어리석은 몸짓을 보이지 싶습니다. 온누리 모든 아이들이 ‘사회를 제대로 배우고 알’도록 먼저 삶·사랑·꿈부터 제대로 배우고 알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2.2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청소년 인문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42
로버트 배리 글.그림, 김영진 옮김 / 길벗어린이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7



‘성탄절나무’ 한 그루가 돌고 돌아서

―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

 로버트 배리 글·그림

 김영진 옮김

 길벗어린이 펴냄, 2014.12.1. 1만 원



  선물은 언제 우리한테 올까요? 선물은 누가 우리한테 줄까요? 선물은 어디에서 샘솟아서 우리한테 이를까요? 선물은 왜 우리한테 나타날까요? 선물은 어떻게 우리한테 닿을까요?


  하늘에서 뚝 하고 선물이 찾아올 수 있을 테지만, 선물이 우리한테 오려면 ‘선물이 될 것’을 우리가 애타게 바라고 꿈꾸며 빌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우리 스스로 애타게 바라거나 꿈꾸거나 빌지 않고서야 선물을 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늘 생각하고 언제나 가슴에 두기에 선물을 받을 만하구나 싶습니다. ‘소원종이’에 바람이나 꿈을 적는다고 하듯이, 마음에 어떤 꿈을 생각으로 깊게 새겨서 노상 되뇔 수 있을 때에 이러한 바람이나 꿈을 이룰 수 있지 싶습니다.



나무를 세우고 보니 상상한 것과 퍽 달랐어요. 나무 꼭대기가 천장에 닿아 픽 꺾였어요. 윌로비 씨가 한숨을 폭 쉬었어요. “오, 이런! 이대로 둘 순 없지!” (8쪽)




  로버트 배리 님이 빚은 그림책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길벗어린이,2014)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한 해가 저무는 섣달에서도 스물나흘째 날에 생기는 일을 재미나게 담은 그림책입니다. 이 그림책 첫머리를 보면 윌로비라고 하는 할아버지 댁에 ‘성탄절나무’ 한 그루가 찾아오는 모습이 나옵니다. 윌로비 씨는 무척 큰 집을 거느린 분이고, 무척 커다란 성탄절나무를 이녁 집안에 들이려 합니다. 그런데 커다란 집이지만 커다란 나무가 그만 다 안 들어갑니다. 나무 꼭대기가 천장에 닿아서 구부러집니다.


  윌로비 씨는 나무 꼭대기가 구부러지니 집사를 불러서 꼭대기를 자르라고 말합니다. 집사는 나무 꼭대기를 자르지요. 그러고는 이 나무 꼭대기를 이 커다란 집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한테 선물로 줍니다. 그리고 이 ‘잘린 나무 꼭대기’를 받은 사람은 이녁 나름대로 이녁 방에도 놓으려 하는데 이녁 방에서 천장에 닿으니 새삼스레 다시 ‘나무 꼭대기’를 또 잘라요.



정원사 팀 아저씨가 버려진 나무 꼭대기를 보았어요. 팀 아저씨는 버려진 나무를 그냥 지나칠 사람이 아니었어요. (14쪽)



  그림책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를 보면 ‘나무 꼭대기’는 자꾸 잘립니다. 여러 사람 손을 거친 뒤에는 여우가 이 나무 꼭대기를 봅니다. 여우는 이녁 보금자리로 가져가서 이 ‘여러 차례 잘려서 버려진 나무 꼭대기’를 두는데 또 ‘나무 꼭대기’가 천장에 닿는군요.


  나무 꼭대기는 또 잘려서 버려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잘려서 버려진 나무 꼭대기는 자꾸자꾸 다른 짐승 손으로 갑니다. 더 작은 짐승이 ‘더 작아진 나무 꼭대기’를 손에 쥡니다. 처음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였는데 차츰 자그마한 ‘나무 꼭대기’가 되고, 마지막으로 생쥐한테 이릅니다.




밤이 깊었어요. 아빠 여우가 지나가다가 버려진 나무 꼭대기를 봤어요. 아빠 여우는 곰곰 생각하다가 자루에 나무 꼭대기를 담았어요. (22쪽)



  생쥐한테까지 닿은 ‘나무 꼭대기’는 사람 눈길로 보자면 매우 작습니다. 그렇지만 생쥐한테 ‘마지막으로 남은 나무 꼭대기’는 작지 않습니다. 사람한테는 매우 작아 보일는지 모르나, 생쥐한테는 ‘무척 큰’ 나무 한 그루라고까지 할 만합니다. 생쥐는 ‘나무 꼭대기를 집으로 가져가느’라 무척 애먹습니다. 눈밭에서 구르고 넘어지거든요. 아빠 생쥐가 나무 꼭대기를 가까스로 집까지 끌고 가니, 이 나무 꼭대기는 생쥐네 집에 꼭 들어맞습니다. 생쥐네 집에서는 더 ‘나무 꼭대기를 잘라야 할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밤에 윌로비 씨를 비롯해서 여우며 토끼이며 생쥐이며 모두 기쁜 웃음이 가득합니다.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 알맞게 ‘성탄절나무’ 한 그루를 집안에 두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집이든 크고작은 짐승이 사는 집이든 저마다 가슴으로 품는 꿈으로 바라보는 성탄절나무를 누립니다.



아빠 생쥐가 지나가다가 버려진 나무 꼭대기를 봤어요. 아빠 생쥐는 나무 꼭대기를 끌고 가다가 눈밭에서 꽈당. 계단을 오르다가 미끌미끌 꽈당! 후유,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어요. 엄마 생쥐가 손뼉을 짝 쳤어요. “어쩜, 우리 집에 딱 맞아요!” 생쥐 식구는 나무 꼭대기에 샛노란 치즈 별을 달았어요. (30∼31쪽)




  나는 책상맡에 ‘내 꿈’을 적거나 그린 종이를 올려놓거나 붙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희 꿈을 적거나 그린 종이를 문이나 벽마다 붙입니다. 우리는 우리 꿈을 아침저녁으로 언제나 새삼스레 바라봅니다. 마음에 품은 꿈을 늘 바라보면서 이러한 꿈으로 나아가는 길을 새롭게 생각합니다. 스스로 꿈길로 걸어가고, 스스로 꿈노래를 부릅니다. 하려고 하는 일을 생각하고, 이루려는 사랑을 생각합니다. 나아갈 길을 헤아리고, 함께 어우러질 살림을 헤아립니다.


  그림책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를 가만히 돌아보면, ‘나무 꼭대기’를 얻은 이들은 모두 ‘이만 한 크기로 성탄절나무가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나무 꼭대기가 버려질 때마다 길에서 이 ‘버려진 나무 꼭대기’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어요. 모두들 길에서 이 ‘버려진 나무 꼭대기’를 알아보았어요.


  여느 때에 늘 꿈으로 마음에 품지 않았다면 ‘나무 꼭대기가 버려진 자리’ 옆을 지나갈 일이 없었으리라 느껴요. 언제나 꿈으로 고이 마음에 품었기에 ‘나무 꼭대기가 버려진 자리’ 옆을 지나갔을 테고, 나무 꼭대기를 알아보았구나 싶어요. 왜냐하면, 나무 꼭대기가 버려진 자리 옆을 지나가면서 ‘다른 것’은 알아보지 않고 오직 ‘나무 꼭대기’만 알아보거든요.


  한 해가 저무는 섣달 끝자락에서 지난 발걸음을 되새기고, 앞으로 내딛을 발걸음을 되짚습니다. 꿈을 품기에 꿈을 이룬다고 하는 말을 곱씹습니다. 새해에 이루고 싶은 꿈을 아이들하고 함께 새롭게 종이에 적거나 그려서 잘 보이는 자리를 골라서 척 붙여야겠습니다. 4348.12.2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땅이 의사에게 가르쳐준 것 - 하버드 의학박사가 농장에서 찾은 치유 비결
대프니 밀러 지음, 이현정 옮김 / 시금치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숲책 읽기 92



항생제와 첨단장비로는 ‘아픈 데’를 못 고쳐

― 땅이 의사에게 가르쳐 준 것

 대프니 밀러 글

 이현정 옮김

 시금치 펴냄, 2015.11.25. 18000원



  ‘내 땅’을 누리는 사람하고 ‘내 땅’을 못 누리는 사람은 그야말로 삶이 다릅니다. 내 땅 한 뙈기라도 있는 사람은 삶을 새롭게 가꾸는 꿈을 키울 만하지만, 내 땅 한 뙈기조차 없는 삶은 삶을 새롭게 가꾸는 꿈을 좀처럼 못 키웁니다.


  땅이 없어도 돈이 있으면 되지 않느냐 하고 여길는지 모르나, 돈은 있되 땅은 없는 사람은 아직 삶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돈으로 사서 얻을 수 있는 살림은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사서 얻는 모든 것은 ‘땅에서 나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마당이 한두 평이라도 있는 집하고 마당이 한두 평조차 없는 집은 사뭇 다릅니다. 마당이 있어 텃밭이나 꽃밭을 둘 수 있는 집하고 마당은 손바닥만큼조차 없어서 텃밭도 꽃밭도 두지 못하는 집은 그야말로 달라요.



나는 이때 처음 ‘공장형 농업’에 대응하는 ‘공장형 의료’라는 말이 떠올랐다. (33쪽)


“이 땅에 대해 걱정이 엄청 많았죠. 황폐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나는 양분이 부족한 농산물을 기르는 많은 사람들 중 일부가 되기를 원하는가?’ 양분이 부족한 흙에서 양분이 풍부한 음식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거든요.” (47쪽)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는 대프니 밀러 님이 쓴 《땅이 의사에게 가르쳐 준 것》(시금치,2015)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땅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의사로 일하는 대프니 밀러 님은 환자를 마주할 적에 항생제 같은 약품이나 여러 첨단장비만으로는 ‘아픈 곳’을 모두 다스릴 수 없다는 대목을 깨닫습니다. 의사인 대프니 밀러 님 스스로도 어디가 아프거나 힘들 적에 항생제 같은 약품만으로는 하나도 낫게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되레 아픈 데를 도지게 하거나 다른 데까지 더 아프게 한다는 대목을 깨닫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의사 스스로도 아픈 데가 있다는 뜻입니다. 의사 스스로도 아픈 데를 바로잡거나 고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바보스러운 노릇일까요? 아니면 ‘자기고백’이나 ‘내부고발’일까요?



전통적인 농부들은 살충제, 제초제, 화학비료 없이 땅을 일구었고, 거름을 만들어 땅으로 돌려보내는 농사를 지었다. 이런 농사 시스템은 여러 세대 동안 지속되었는데, 그것은 그 방식이 땅과 가축의 건강, 그리고 사람의 건강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61쪽)


큰 유통 체인이 제공하는 유기 농산물은 거의 예외 없이 엄청 큰 규모의 농장에서 생산된 것이고, 유기농 인증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지켜서 재배한 것이다 … 그리고 무경운 농법을 활용하는 대신 해마다 밭을 갈아엎어서 비옥한 표토가 강으로 쓸려가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땅이 다음 작물에게 영양분을 줄 수가 없게 된다. (66쪽)



  의사이자 어머니인 대프니 밀러 님은 ‘환자가 아픈 데를 말끔히 터는 길’을 찾으려는 뜻에서 ‘땅’을 찾아나섭니다. 환자도 환자이지만 의사인 이녁 스스로 ‘아프지 않은 삶’을 살피고 ‘아프지 않은 삶을 넘어서 즐거운 삶’을 생각하고 싶어서 땅을 돌아봅니다.


  오늘날 불거진 관행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땅과 사람을 살핍니다. 이런 뒤에는, 먼먼 옛날부터 이어온 자연농법으로 흙을 가꾸는 땅과 사람을 살펴요. 공장 축산이 이루어지는 땅을 찾아가서 몸소 살펴보고, 자연 방목을 펼치는 땅을 찾아가서 몸소 살펴봅니다.


  의사로서 대프니 밀러 님은 ‘두 가지 땅’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가를 새삼스레 헤아립니다.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도시에서는 조그마한 텃밭조차 받아들일 틈이 없고, 이러한 도시에서는 시골에 커다랗게 지은 ‘관행농법 농장’에서 한꺼번에 엄청나게 많이 거두는 곡식이나 고기를 받아들이는 얼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달리 경제와 사회 모두 ‘작은 고장’이나 ‘작은 마을’ 얼거리로 나아가는 곳에서는 돈을 투자해서 더 큰 돈을 버는 얼거리가 아니라 즐겁게 일해서 즐겁게 나누는 삶이 됩니다.



앨리는 자신이 냉동 요리, 테이크아웃 음식, 에너지 바, 보조제에 그만큼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것을 곧바로 깨달았다. (80쪽)


“정말 개처럼 열심히 일했지만, 호르몬, 백신, 구충제, 인공수정 비용, 사료, 질소비료, 트랙터 연료 따위에 점점 더 돈이 많이 들어가더군요. 그런데도 쇠고기 가격은 20년간 변하지 않았고요.” (93쪽)


“쓰레기가 들어가서 쓰레기가 나오는 것과 같아요. 많은 소들이 똥이 배에 닿도록 가득 찬 곳에 살고 있고, 영양가 있는 것을 먹지 못해요. 그 소젖을 살균한 것은 인간이 섭취하기에 적당하지 않아요. 맞아요. 그런 우유는 살균해야 돼요.” (112쪽)



  《땅이 의사에게 가르쳐 준 것》을 쓴 의사는 농사꾼이 아닙니다. 이 책을 쓴 분은 흙을 잘 안다거나 풀이나 나무를 잘 알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흙이나 밥이나 땅이 어떠한가를 느낄 줄 아는 마음이 있습니다. 발 디딜 틈조차 없는 ‘공장 양계장’에 갇힌 닭이 어떠한가를 살핀 뒤에, 자연 방목을 하는 닭이 어떠한가를 살필 적에, 두 닭이 어떻게 다를 뿐 아니라 두 닭이 낳은 달걀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대목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이 있어요.


  의사로서는 처방전만 쓰면 될는지 모릅니다. 의사로서는 진찰만 하면 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의사도 사람이기에 아플 수 있겠지요. 의사 스스로 아플 적에는 의사 스스로 항생제 처방만 하면 다 나을까요? 의사 스스로 아플 적에는 다른 의사한테 진찰을 받고 처방만 받으면 다 나을까요?


  《땅이 의사에게 가르쳐 준 것》이라고 하는 책은 ‘뭔가 아니다’ 하고 느끼는 마음에서 태어납니다. 항생제와 처방전과 첨단시설로는 ‘아픈 데’를 낫게 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마음에서 태어납니다.



일찍 젖을 뗀 송아지들이 풀을 먹지 않으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어미 소와 함께 풀을 뜯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코디는 자신 있게 말했다. (128쪽)


“닭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고 더 행복해 하니까 달걀이 좋아요. 나도 행복하고, 경제적으로도 더 낫습니다.” (150쪽)


앤드루는 방울뱀을 보이는 대로 죽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가끔 뱀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렸다. 새로 묘목을 심은 포도밭에 조그만 땅굴이 움푹움푹 파여져 묘목들이 땅속에서부터 눈에 안 보이는 적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212쪽)



  햇볕을 쬐고 빗물을 마시면서 자란 남새하고, 비닐집에서 석유난로와 비료와 수돗물로 자란 남새는 생김새도 맛도 냄새도 모두 다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비닐집에서 석유난로와 비료와 수돗물을 써서 남새를 키워도 얼마든지 유기농 인증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유기농 인증은 ‘유기농’으로 짓기만 하면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햇볕을 못 쬔 유기농 남새나 열매를 먹는 사람은 무엇을 먹는 셈일까요? 사료만 먹고 자란 고기를 먹는 사람은 무엇을 먹는 셈일까요? 항생제와 촉진제로 한 달 만에 몸뚱이가 불어나서 고기닭으로 잡히는 살점을 먹는 사람은 무엇을 먹는 셈일까요?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물어볼 만합니다. 어미 소하고 들판을 노닐며 풀을 뜯은 적이 없는 송아지는 사료에만 길들기 때문에 나중에 풀밭에 풀어 놓아도 어찌할 줄 모르면서 풀을 안 먹거나 못 먹는다고 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은 어릴 적부터 보육원과 어린이집과 학교와 학원에서 아주 오랫동안 지내는데, 이 아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거나 무엇을 할 줄 모를까요?



“저는 도시농업이 질병 예방 역할을 한다고 봐요.” 캐런은 이렇게 말하고는 뉴욕 시의 독립구 중에 브롱스만큼 질병 예방이 필요한 곳도 없다고 덧붙였다. (254쪽)


“그렇지만 한 종류의 성분에 지나치게 집착하지는 마세요.” 애니가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되면 제약회사와 똑같이 사고하는 거예요. 허브로 약품을 만들려고 하는 것과 같지요.” (302쪽)



  사람들이 저마다 ‘내 땅’을 누릴 수 있다면 삶도 사회도 마을도 송두리째 바뀔 만하리라 봅니다. 사람들이 층층이 올린 건물에서만 살지 말고,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며 저마다 나무를 심고 텃밭을 조그맣게라도 가꿀 수 있으면, 삶이며 사회며 마을이며 나라며 모두 새롭게 거듭날 만하리라 봅니다.


  곰곰이 살피면, 정부에서는 ‘주택 정책’을 세우면서 ‘마당 없는 아파트’만 지으려 합니다. ‘마당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하려는 길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주차장은 없어도 마당이 있어야 할 노릇이고, 도시가 아닌 시골이어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삶터입니다. 아파트를 때려지은 뒤에 나무 몇 그루 장식품처럼 박는 겉치레가 아니라, ‘내 땅’과 ‘내 집’을 누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나무를 심어서 보금자리하고 나무하고 땅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는 사회 얼거리가 될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삶이 태어나리라 봅니다.


  ‘아픈 데’를 낫게 하려면, 아니 처음부터 ‘아픈 데’가 없는 삶이 되도록 하려면, 우리는 누구나 내 땅을 누릴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내 땅을 누리는 사람이라면 내가 먹을 남새나 곡식이나 열매에 섣불리 항생제나 비료나 농약을 치지 못합니다. 가장 좋으며 가장 나은 밥을 먹으려 할 테니까요. 4348.12.2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