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진짜 갖고 싶어 꼬마 그림책방 24
에마 치체스터 클락 지음, 노은정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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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605



별똥별을 바라보며 내 꿈을 빌기

― 진짜 진짜 갖고 싶어

 에마 치체스터 클라크 글·그림

 노은정 옮김

 아이세움 펴냄, 2009.1.5. 8500원



  저녁을 먹고 나서 그림책을 함께 읽은 뒤 촛불을 켜고 책상맡에 둘러앉아서 함께 공부를 합니다. 아이들더러 잠옷으로 갈아입으라 이르고 나서 설거지를 마저 한 다음 이를 닦도록 하고는 손발을 씻깁니다. 작은아이는 아직 아버지가 이를 닦아 줍니다. 하루를 마무리하기 앞서 두 아이가 마지막으로 방에서 놀 즈음 나는 겉옷을 걸치고 혼자 조용히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캄캄한 시골집 마당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거닐면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구비진 고샅길에 켜진 등불은 우리 집 마당에 우람하게 선 후박나무가 가려 줍니다. 후박나무한테 고맙다고 말하면서 별잔치를 누립니다. 처음 마당에 내려설 즈음에는 제법 많은 별이었다면, 1분이 지나고 2분이 흐르는 동안 더욱 많은 별이 돋습니다. 꽤 많은 별이 돋으며 별잔치를 더 신나게 누릴 즈음 두 아이는 왜 아버지가 방에 안 들어오나 궁금해서 방문을 열고 두리번거리다가 마당에서 별 구경을 하는 아버지를 찾아냅니다.


  큰아이랑 작은아이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별 보러 가나 봐!” 하고 외치면서 서둘러 마당으로 내려서려 합니다. “겉옷.” 하고 넌지시 말하면 “아, 겉옷 입어야지.” 하고 노래하면서 겉옷을 챙겨 걸칩니다. 두 아이가 겉옷을 걸치며 신을 꿰는 모습을 보고는 나는 대청마루로 다시 올라서서 두 아이 장갑을 꺼냅니다.




내가 진짜 눈물까지 흘리며 앙앙거리는 커다란 아기 인형을 구경하던 바로 그때였어요. 아주 별난 게 내 눈에 띄었어요. 조막만한 판다 인형이 진열장에서 팔짝팔짝 뛰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어요. (4쪽)



  두 아이하고 마당에 서서 아주 천천히 동그라미를 그리며 거닐다가 셋이 함께 별똥별을 봅니다. 나는 별똥별을 곧잘 보지만 셋이 함께 별똥별을 보기는 오늘이 거의 처음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참말 때마침 셋이 같은 하늘을 올려다볼 즈음 별똥별이 하늘을 하얗게 꼬리를 늘어뜨리고 가르면서 지나갔어요. 큰아이는 이때에 “소원 빌어야지. 별똥별한테 소원 빌면 다 이루어진다고 했어!” 하고 외치느라 막상 큰아이는 제 꿈을 말하지 못 합니다. 얘야, 먼저 네 마음속에 늘 흐르는 꿈부터 읊은 뒤에 그런 말을 해야 했을 텐데.


  그림책 《진짜 진짜 갖고 싶어》(아이세움,2009)를 가만히 떠올립니다. 에마 치체스터 클라크 님이 빚은 사랑스러우면서 고운 그림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참말로 참말로 갖고 싶다고 하는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인데, 이 그림책을 보면 큰아이는 우리 집하고 똑같이 ‘누나’이고, 작은아이도 우리 집하고 똑같이 ‘사내’예요. 누나랑 동생 사이라는 대목에서는 똑같은데, 그림책에 나오는 동생은 무척 어려요. 그림책에 나오는 동생은 뭐든 입에 집어넣으면서 우적우적 씹습니다. 터울이 좀 진 사이라고 할까요.



나는 판다 인형을 빤히 보았어요. 판다 인형도 나를 말똥말똥 보았어요. 내가 “진짜 판다 맞아?” 하고 물었어요. 그러자 “네가 진짜이듯 나도 진짜야. 내 이름은 팅크야. 진짜 보기 드문 판다 인형이지.” 했어요. (7쪽)




  하늘을 하얗게 가르다가 사라지는 별님한테 꿈을 빌기를 못 한 큰아이를 달래면서 속삭입니다. “아버지는 꿈을 말했지. 왜 그런지 아니?” “아니, 몰라.” “별똥별이 지나가는 겨를이 짧은 듯하지만 짧지 않아. 우리가 마음속에 품은 꿈을 읊기에 넉넉하도록 지나가지. 그런데, 별똥별한테 꿈을 읊으려면 우리가 늘 꿈을 마음속에 품으면서 살아야 해. 늘 꿈을 마음속에 품으면서 살기에 언제 어디에서라도 곧바로 내 꿈을 말할 수 있어.” “아, 그렇구나. 벼리도 꿈을 늘 품으면서 살래.”


  그림책 《진짜 진짜 갖고 싶어》에 나오는 큰아이는 어느 날 어머니하고 백화점에 갑니다. 두 사람은 동생이 곧 맞이할 생일잔치에 줄 선물을 고릅니다. 아마 동생은 두 돌쯤 되겠지요? 그런데 이때에 큰아이는 무척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 작은 인형을 봅니다. 게다가 그림책 큰아이는 인형이 저한테 거는 말을 알아들어요. 백화점 한쪽에서 이 아이는 인형하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자, 이제 이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뭐든지 입으로 척척 집어넣으면서 우적우적 씹는 동생한테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인형을 주어야 할까요? 이 인형만큼은 동생한테 주지 말고 제가 가질 수 있을까요?



“이거 꼭 동생한테 줘야 해요?” 내가 물었지요. “엉뚱하기는! 동생 선물로 산 거잖아!” 엄마가 대답했어요. (10쪽)




  집에 두 아이가 있으면 아마 거의 모든 집에서 엇비슷할 텐데, 나이가 어리고 힘도 여린 동생을 더 살피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집에서나 가장 어리고 여린 사람을 더 살피고 아끼며 보살피니까요. 어리고 여린 사람한테 밥을 가장 먼저 챙겨 주고, 어리고 여린 사람한테 더욱 마음을 기울이기 마련이에요.


  곰곰이 헤아리면,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뿐 아니라 우리 집 아이도 다른 모든 집 아이도 ‘첫째’로 태어나건 둘째나 셋째로 태어나건 똑같이 사랑을 받습니다. 몇 째 아이로 태어나든 대수롭지 않아요. 모든 아이는 오롯이 사랑을 받아요.


  그렇지만 큰아이 자리에 들어선 아이들은 ‘나 혼자 오롯이 갖거나 받고 싶은 선물’이 있어요. 《진짜 진짜 갖고 싶어》에 나오는 큰아이로서도 동생을 생각하며 고른 선물이지만, 동생은 뭐든지 입에다 넣기만 하니까 이 인형만큼은 동생 침으로 범벅이 되도록 하지 않고 싶을 수 있어요. 이리하여 생각을 기울입니다. 참말로 갖고 싶은 것을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 꿈을 품습니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이튿날 동생한테 이 인형을 선물로 주어야 하는데, 그때까지 머리를 짜내야 합니다.


  아이는 좋은 생각을 하나 떠올리고, 거의 밤을 새다시피 새로운 선물을 하나 꾸립니다. 동생이 몹시 반가이 여기면서 좋아할 만한 선물을 꾸리느라 잠을 잘 겨를이 사라지지만, 아이는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작은 인형을 품에 안고 함께 놀겠다는 꿈을 키우면서 기운을 내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길을 찾으며, 스스로 꿈을 짓는다고 할까요.




“아직 늦지 않았어. 내 손으로 선물을 만들어야겠어. 그런데 뭘 만들지?”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요. “아기는 뭘 좋아할까? 뭘 좋아하지?” 그러다 좋은 생각이 반짝 떠올랐어요! (16쪽)



  셋이 함께 별똥별을 바라본 오늘 밤, 별똥별을 더 찾아내지는 못 합니다. 나는 두 아이 손을 잡고 마을 한 바퀴를 크게 천천히 돌며 밤하늘 별을 내내 올려다보았는데, 쏟아지는 별빛은 실컷 보아도 별똥별은 오늘 따라 더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은 별똥별 하나로 반갑게 여기고 다음 밤에 다시 밤마실을 다니면서 별똥별을 찾아야지 싶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앞서 책상맡에 켠 촛불을 다시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큰아이는 촛불을 보면서 “촛불에서 별똥별이 보여.” 하고 말합니다. 그래 그렇겠구나, 네가 별똥별을 다시 보고 싶다는 꿈을 마음에 담으니 별똥별이 보이겠네. 그런 네 생각처럼 기쁜 꿈을 다시 마음속에 담으면서 포근히 잠자리에 들자. 아침에 새롭게 일어나서 새롭게 노래할 놀이를 헤아려 보자. 우리가 함께 지으면서 참으로 기쁘게 웃고 노래할 멋지고 사랑스러운 꿈을 별똥별한테뿐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대고 빌어 보자. 4349.1.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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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근처
양현근 지음 / 문학의전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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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10



시와 밤낮

― 기다림 근처

 양현근 글

 문학의전당 펴냄, 2013.1.15. 8000원



  밤에 잠자리에서 아이가 ‘밤이 무서워서 싫다’고 말합니다. ‘밝고 환한 곳이 좋다’고 말합니다. 아이가 본 만화나 영화에서는 밤을 으레 무섭거나 무시무시하게 그리곤 합니다. 만화나 책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어른들은 밤을 무섭거나 무시무시하다는 투로 이야기하곤 합니다.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나도 어릴 적에 우리 아이하고 거의 똑같다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어릴 적에 나한테 밤이 안 무섭거나 안 무시무시한 까닭을 제대로 이야기해 주는 어른을 만나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어린 나한테 밤이란 무엇인가를 슬기롭고 똑똑히 알려준 어른이 있을는지 모르나, 그무렵 내가 그 이야기를 못 알아들었을 수 있습니다.



붉은 줄무늬넥타이가 목을 휘감는다 오늘도 나는 어디론가 끌려가는 사막의 낙타, 암소의 눈망울처럼 순한 色의 아침은 없다 혼자 아무렇게나 붉어져도 좋을 버찌의 하루는 없나 (아침의 色)


내게 그리움이란 고작 담배를 꼬나물고 / 입안에 고인 말을 허공에 잠시 적어두는 일 / 봄볕에 젖은 오후를 끌어와 펼쳐보는 일 (감꽃 2)



  양현근 님이 빚은 시집 《기다림 근처》(문학의전당,2013)를 읽습니다. 아이들을 이끌고 읍내로 나들이를 다녀오는 군내버스에서 읽습니다. 두 아이는 한 주에 한 번쯤, 또는 열흘에 한 번쯤 군내버스를 탑니다. 읍내에 자주 드나들 일이 없으니 드물게 버스를 탑니다. 그러니까 자동차라고 하는 탈거리를 한 달에 대여섯 번쯤 타는 셈입니다.


  모처럼 타는 버스이기에 작은아이는 몹시 신납니다. 큰아이도 버스 타기를 좋아합니다. 다만, 큰아이는 버스를 타기 무섭게 코를 감싸쥡니다. 버스에서 나는 냄새가 고약하다고 말해요. 참말 모든 버스이며 자동차이며 택시이며 짐차이며 다들 냄새가 있어요. 플라스틱이랑 쇠붙이로 만들고 기름(석유)을 태우면서 달리니까, 또 아스팔트 찻길을 달리면서 고무바퀴가 닳으니까, 이런저런 것들이 섞인 냄새가 있거든요.


  가만히 돌아보니 나도 이 아이를 맞이하기 앞서 ‘버스 냄새’를 느꼈어요. 나도 어릴 적에 버스만 탔다 하면 속이 메스껍거나 울렁거렸어요. 우리 아이라고 해서 다를 수 없겠지요. 그런데 내가 어릴 적에 ‘버스 울렁거림’을 제대로 밝히거나 알려준 어른이 없었어요. 우리 어머니조차 버스 울렁거림 때문에 버스에서 아무 말씀을 안 하시고 이마를 한손으로 짚으면서 끙끙거리셨어요.



뒤엉킨 바람을 끊어내며 달리는 국도 / 삐-삐 과속하지 말라는 경고음이 울리지만 이미 가속도가 붙었다 / 굽은 길에서는 점점 더 바깥으로 밀린다 (오이도 근처)


폭탄주 몇 잔에 밤길을 오락가락하다가 / 새로 산 스마트폰을 잃어버렸다 /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캄캄하다 /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좀 받아라 (잘 가거라 나의 배후여)



  시집 《기다림 근처》는 회사원으로 무척 오랜 나날을 보내야 하면서도 이 회사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나날을 기다리는 어느 한 삶 삶을 차분히 들려줍니다. 스스로 굴레라고 여기면서도 이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이야기가 조용히 흐릅니다.


  고속도로에서 자동차를 몰면서 빠르기를 줄이지 않는 모습을 그냥 스스럼없이 시 한 줄로 적습니다. 늘 건물 안쪽에만 머물다가 모처럼 마주한 봄꽃하고 봄볕 이야기를 가만히 시 두 줄로 적습니다. 집에서 신문을 읽으며 투덜거릴 적에 이녁 곁님이 집일을 좀 거들라며 메추리알을 까라고 내민 그릇을 마주한 이야기를 넌지시 시 석 줄로 적습니다.


  참말 시는 여느 삶자리에서 태어납니다. 아주 대단한 생각을 머릿속으로 굴리고 굴려야 쓰는 시가 아닙니다. 우리가 저마다 여느 삶자리에서 부대끼거나 겪거나 마주한 이야기는 모두 아름다운 시 하나로 다시 태어납니다.



뒤죽박죽인 뉴스를 보는데 아내가 신문을 휙 걷어내며 답도 없는 것에 머리 아파하지 말고 메추리알이나 까달라고 놓고 간다 속이 패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슬쩍 힌트를 던진다 (메추리알 쉽게 까는 법)


봉헌성가를 부르면서 모두 한 목소리로 집중하는데 / 한 신도 등에 업힌 어린 양의 칭얼대는 소리 / 잉잉-어-잉 / 후렴 한번 명징하다 (말씀)



  잠자리에서 큰아이한테 밤이랑 낮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이야기해 줍니다. 벼리야, 꽃도 풀도 나무도 모두 밤에 잠을 자. 잠을 자지 않으면 꽃도 풀도 나무도 튼튼하게 살지 못해. 너희도 밤에 잠을 자야, 새롭게 기운을 얻어서 아침에 신나게 뛰놀 수 있어. 환한 낮만 있으면 모든 목숨이 괴로워서 죽고 말아. 해님이 하루 내내 비춘다고 하면 그야말로 모두 타죽거나 말라죽어 버리지. 그렇다고 밤만 있어야 하지 않아. 낮만 있어야 하지도 않아. 밤하고 낮은 사이좋게 어울려야 해. 잠을 잘 적에는 아주 새까맣게 어두워야 해. 그래야 잘 자거든. 잘 적에는 모두 잊고 꿈나라로 가서 새롭게 놀면서 우리 몸에 기운을 되찾도록 해 주고, 아침에 밝은 햇살을 보며 일어날 적에는 기쁘게 웃으면 돼. 밤낮은 늘 함께 있는 동무이고, 낮은 신나는 몸짓이고, 밤은 고요한 숨결이 잔잔히 물결치는 때이고, 씨앗이 캄캄한 흙에서 태어나듯이 밤이 있어야 우리는 꿈을 꿀 수 있어. 그러니까, 밤은 꿈이고 낮은 삶이야.



내 생의 팔 할은 서류 뭉치 속에 첨부되어 있습니다 / 종일 붙잡힌 책상머리 주변에는 / 슬프도록 끝이 잘 깎인 연필이며 잡다한 서류와 / 층을 이루고 있는 계간지가 겉봉도 뜯지 못한 채 / 한 계절을 넘기고 있습니다 (고백)



  읍내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군내버스에서 시집을 살며시 덮고 큰아이를 가만히 안습니다. 이러면서 새롭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줍니다. 벼리야, 네 아버지도 얼마 앞서까지 버스 울렁거림 때문에 몹시 괴로웠어. 그런데 말이야, 버스를 타면서 버스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면 이 냄새 때문에 못 살아. 냄새가 나든 말든 우리는 우리가 갈 곳을 생각하고 우리가 할 일을 생각하고 우리가 즐겁게 누릴 놀이를 생각하고 우리가 앞으로 가꿀 꿈을 생각하면, 냄새는 어느새 잊히고 우리 꿈과 사랑만 마음속에 남지. 정 냄새를 못 견디겠으면 겨울이니까 창문을 살짝 열면 되지. 그리고 네 마음속에 오늘 무엇을 하며 놀까 하는 생각을 심어 봐. 그러면 돼.


  집에 닿아 시집을 마저 읽습니다. 다 읽은 시집을 덮으며 새삼스레 어린 날을 그려 봅니다. 내 어릴 적에 나한테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준 어른은 없었지만, 어느덧 나는 새로운 어른이 되었고, 오늘 내 곁에 있는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바로 나부터 이곳에서 새롭게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는 삶을 일구자고 생각합니다.


  굴레는 남이 만들어서 나한테 씌우지 않습니다. 모든 굴레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서 내 목에 씌웁니다. 시집 《기다림 근처》를 쓴 양현근 님은 머잖아 양현근 님 스스로 마음자리에 심은 꿈씨 같은 싯말에 따라서 새로운 삶길로 나아갈 테지요. 우리 삶과 꿈을 이루는 고운 밤낮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4349.1.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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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형태 5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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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92



작은 곳에서 샘솟는 기쁨

― 목소리의 형태 5

 오이마 요시토키 글·그림

 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8.31. 5500원



  기쁨은 어디에서 샘솟을까 하고 돌아본다면, 언제나 작은 곳에서 샘솟지 싶습니다. 슬픔은 어디에서 찾아올까 하고 헤아린다면, 늘 작은 곳에서 찾아오지 싶습니다.


  아주 작은 곳에서 기쁨을 느끼고, 이와 똑같이 아주 작은 곳에서 슬픔을 느끼는구나 싶어요. 아주 작은 곳에서 보람을 느끼고, 그야말로 아주 작은 곳에서 괴로움을 느끼지요.



“있잖아, 야쇼는 왜 그때, 날 도와준 거야?” “고2까지의 나였으면 분명 무시했을 거야. 하지만 니시미야를 만난 뒤로 바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 (20쪽)


‘약이 돼? 그런 거 아냐. 애당초 제대로 큰 건지는 또 무슨 수로 알아? 교복을 보고? 그걸로 날 알았다 이거야?’ (52쪽)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 다섯째 권에서는 바로 이 ‘작은 곳’을 다룹니다. 살아가는 기쁨이나 슬픔이 비롯하는 ‘작은 곳’을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거나 느끼거나 알아차리면서 새로운 마음이 되는 삶을 다루어요. 어떻게 하면 서로 동무가 되었다가, 다시 멀어지거나 틀어지는 사이가 되는가 하는 대목을 다루지요. 겉보기로만 동무처럼 지내는지, 아니면 마음을 열고서 서로 어깨를 겯는 사이가 되는지, 이러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작은 곳을 다룹니다.



‘그러고 보니까 가족 말고 딴 애랑 여름방학을 함께 보내는 건 오랜만이네. 별거 아닌 일로 티격태격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게 기뻤던 건지도 몰라.’ (86쪽)


‘카와이 말대로 나는 내 입맛대로 기억을 꾸며댔던 것뿐일까. 안 돼. 알 수가 없어. 생각이 나지 않아. 젠장, 이젠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 (114∼115쪽)



  어느 사람은 작은 곳을 보면서 그야말로 작은 곳에 얽매입니다. 이를테면 겉모습에 얽매여 속마음을 못 읽어요. 어느 사람은 작은 곳을 보면서 그야말로 온 모습을 살필 줄 압니다. 이를테면 아주 작은 몸짓에서 묻어나는 기쁨이나 슬픔을 알아차려서 마음으로 다가서려고 하지요.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작은 곳을 봅니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작은 일을 합니다. 이 작은 곳 하나에서 모든 실마리가 풀리는데, 바로 이 작은 곳 하나 때문에 실타래가 뒤엉킵니다. 아주 작은 일을 하면서도 살림살이가 빛나고, 아주 작은 일을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살림살이가 엉터리로 뒤흔들려요.



‘이시다는 친구들에게 몹쓸 소리를 했다. 내게는 성가신 것을 쫓아버리는 것처럼 보였다.’ (143쪽)


“이시다네 집에서도 보이려나?” “분명 다들 보고 있을 거예요. 다들 같은 걸 보고 있다는 거, 어쩐지 좋네요.” (173쪽)



  크게 마음을 써야 동무가 되지 않습니다. 크게 한턱을 쏘았기에 기쁘지 않습니다. 크게 선물을 주고받아야 신나지 않아요. 커다란 놀이터가 재미나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작은 마음씀 하나로 서로 손을 맞잡습니다. 언제나 작은 손길 하나로 서로 따스한 숨결을 나눕니다. 언제나 작은 사랑 씨앗 한 톨을 심으면서 기쁜 삶을 짓는 길을 걸어갑니다. 4349.1.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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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카베야 후요우 글 그림, 이유리 옮김 / 산하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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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604



엄마가 나만 사랑하면 얼마나 좋을까

―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카베야 후요우 글·그림

 이유리 옮김

 산하 펴냄, 2003.7.14. 8000원



  내 어릴 적을 곰곰이 돌아보니, 나는 어릴 적에 꿈을 품으라고 하는 말을 거의 못 들었습니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마을에서나 모두 똑같은 말만 들었어요. 무슨 말인가 하면 “공부해. 공부하면 돼.”입니다. 둘레 어른들은 하나같이 ‘공부’부터 해서 ‘대학교’에 가라고 말했고, 대학교를 마친 뒤에 ‘돈을 잘 버는’ 회사에 들어가면 ‘네가 하고픈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어린 나는 ‘내가 하고픈 것’을 오늘 이곳에서 바로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언제가 될는 지 모를 까마득한 앞날까지 공부를 하고 대학교를 마치고 회사에 들어가고 돈을 벌고 …… 그러고 나서 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꿈’이 아닌 ‘공부’만 하라고 일렀어요.



유치원에 갈 때, 이런 걸 타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 봐, 휙휙! (4쪽)




  카베야 후요우 님이 빚은 그림책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산하,2003)를 읽으면서 생각을 기울입니다. 이 그림책은 아주 어린 동생을 둔 아직 어린 아이가 스스로 꿈을 꾸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로서는 ‘오늘 이곳’에서 ‘하나도 이루지 못하는’ 모습을 꿈으로 꾸고, 이 꿈대로 이루어지기를 애타게 바라요.


  이를테면, 유치원에 가는 길에 ‘하늘걸상’을 타고 휙휙 날아가기를 꿈꿉니다. 집에서 키우는 개가 아주 커져서 이 개를 타고는 하늘을 날아서 돌아다니기를 꿈꿉니다. 유치원에서 아주 커다란 케잌을 샛밥으로 주기를 꿈꿉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지 말고 살아서 늘 함께 놀아 주기를 꿈꿉니다.



우리 집 강아지 치비가 아주 커져서 하늘을 날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치비 등에 타고, 단숨에 날아서 갈 텐데. (8∼9쪽)



  꿈이란 언제 어디에서나 아름답다고 느껴요. 꿈이기에 아름답기도 하고, 이 꿈을 떠올리는 동안 마음에 기쁨이 흐르기에 아름답기도 해요. 꿈을 작은 씨앗 한 톨로 마음에 심기도 하기에 아름다우며, 이 꿈을 이루려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씩씩하게 지으니 아름답지요.


  그래서 나는 내 어릴 적에 내 둘레 어른들이 나한테 ‘공부’를 하라는 말이 아니라 ‘꿈’을 품으라고 말해 주기를 바랐어요. 먼저 꿈이 있어야 공부를 하지, 공부부터 하면서 꿈을 품을 수는 없다고 여겼어요. 이루려는 꿈이 있어야, 이 꿈에 맞는 공부를 찾을 수 있다고 여겼어요. 꿈이 없는 채 공부만 하다가는 머리통만 너무 커져서 ‘꿈이 없는 몸짓’이 되리라 여겼어요.


  어느 모로 보면, 우리 사회에는 꿈이 없는 채 공부만 매달린 사람이 너무 많을는지 몰라요. 곰곰이 살펴보면, 우리 사회에는 꿈을 심지 못한 채 공부만 파고든 사람이 지나치게 많을는지 몰라요. 집이든 학교이든 마을이든 아이들이 꿈을 생각하지 못하는 채 공부만 해야 하는 얼거리가 되어 버렸는지 몰라요.




우리 집 목욕탕이 수영장만큼 크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아빠, 엄마, 나리, 치비와 함께 다 같이 목욕할 거야. (19쪽)



  오늘 나는 우리 집 두 아이하고 꿈을 지으려고 생각을 기울입니다. 아이가 가을에 강냉이를 먹고 싶다고 말하면 가을에도 씨앗을 심습니다. 아이가 흙놀이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 어디 흙을 퍼 올 만한 데를 헤아려서 수레를 끌고 아이더러 스스로 흙을 자루에 퍼 담아서 뒤꼍에 흙을 실어 날라서 흙놀이터를 마련하자고 합니다. 이러면서 나도 내 나름대로 새로운 꿈을 하나씩 지어 봅니다. 나 스스로 이루려는 꿈을 종이에 그림으로 그립니다. 내 마음속에서 꿈이 잘 자라기를 바라면서 ‘꿈을 그린 종이’, 그러니까 ‘꿈종이’를 아침저녁으로 고요하게 바라봅니다.



엄마가 나만 사랑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그러면 말이지, 나는 아주 착한 아이가 될 거야. 동생 나리도 예뻐해 줄 테야. (22쪽)



  그림책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는 어린 아이가 어머니 품에 살며시 안겨서 ‘어머니가 나만 사랑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살짝 비춥니다. 아이는 하늘도 날고 싶고, 넓은 집에서 살고 싶고, 할아버지하고 놀고 싶고, 케잌도 실컷 먹고 싶고, 이것저것 해 보거나 이루고 싶은 꿈이 많은데, 이 많은 꿈 가운데 어머니 사랑을 모두 차지하는 나날을 가장 이루고 싶습니다.


  자, 이 아이는 이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아이 어머니는 아이한테 어떤 말로 이 꿈을 곱게 이루는 길을 밝혀 줄까요? 여러 아이를 낳아서 보살피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어떤 말을 들려주면서 ‘너를 하늘처럼 땅처럼 사랑한단다’ 하는 뜻을 알려줄 만할까요?


  그림책을 덮고 생각한다면, 사랑이란 주고 또 주고 거듭 주고 자꾸 주고 꾸준히 주어도 줄지 않아요. 한 사람한테 주는 사랑이든 온 사람한테 주는 사랑이든 끝이 있을 수 없어요. 큰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이든 작은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이든 ‘둘을 반토막으로 갈라’서 물려주는 사랑이 아니라, 언제나 한 아이를 바라보며 한 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입니다. 다 함께 있어서 기쁜 삶이요, 서로 아끼며 마주할 수 있는 살림이기에 사랑이 새로 샘솟습니다. 아이들아, 너희 어버이는 너희를 너희 숨결 그대로 사랑한단다. 너희 마음 그대로, 너희 넋 그대로, 너희 눈빛 그대로 사랑한단다. 4349.1.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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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시몬 연구실 1
다이스케 테라사와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91



아이처럼 배우는 공룡뼈 고고학자 이야기

― 나오시몬 연구실 1

 테라사와 다이스케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9.25. 4500원



  아이들은 무엇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아이마다 다 다르기에 어느 아이는 이것을 잘 하고 어느 아이는 저것을 잘 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아이한테 ‘넌 이것을 못 해’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면 어느 아이라도 무엇이든 다 잘 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섣불리 ‘넌 이것을 못 하는구나’ 하고 말하기 때문에 아이는 그만 마음속에 ‘난 이것을 못 하네’ 하는 생각을 품기 마련이고, 이러한 생각이 스스로 굴레가 되어 앞으로도 어느 한 가지를 못 하는 몸짓이 되고 마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테라사와 다이스케 님이 빚은 만화책 《나오시몬 연구실》(학산문화사,2015) 첫째 권을 읽으면서 이 같은 대목을 새삼스레 되짚습니다. 이 만화책은 일본에서 공룡뼈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고고학자 이야기를 다루어요. 테라사와 다이스케 님은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대단한 만화를 그리기도 했는데, 《나오시몬 연구실》은 요리 만화하고 아주 동떨어진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 가지 만화는 어느 모로 보면 많이 닮아요. 어느 모습에서 닮는가 하면 ‘한길을 파면서 스스로 삶을 일구는 몸짓’이 닮은 사람이 만화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수선 전문 기술자를 교수님네 고향에서 뭐라고 부르는 말이 있다죠?” “제가 그랬던가요? 아무튼 다 됐슴다! 수지가 마를 때까지 건드리지 말라고 한 장 써 붙여 주세요.” (10쪽)


“그렇게 다 망가진 칠기를, 고치는 비용이 더 나오겠네! 차라리 버리고 새 걸 사는 게 싸게 먹힐걸요?” “돈은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돌아가신 제 어머니의 유품이거든요.” (13∼14쪽)



  아이들은 신나는 노래가 흐르면 저절로 춤을 춥니다. 아이들은 신나는 노래가 없어도 스스로 신나게 놀면서 춤을 춥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재미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터뜨리면서 노래를 불러요. 아이들은 스스로 호미질을 익혀서 흙놀이나 밭놀이를 해요. 아이들은 씨앗을 잘 심을 줄 알고, 삽질도 제법 잘 해냅니다. 아이들은 끈을 잘 묶을 줄 알며, 짐도 꽤 잘 나를 줄 압니다. 아이들은 문법이나 학문을 알려주지 않아도 ‘말’을 그야말로 무척 빠르게 익히거나 받아들입니다. 한국에서는 한국말을 놀랍도록 빠르게 익히고, 미국에서는 미국말을 놀랍도록 빠르게 익히지요.


  나는 두 아이를 돌보면서 이 같은 대목을 늘 마주하고 느낍니다. 참말 아이들한테 어른이 섣불리 ‘넌 못 해’ 같은 말을 하지 않고 빙그레 웃으면서 가만히 지켜보면, 아이는 누구나 스스로 차근차근 손놀림을 익혀서 무엇이든 척척 해냅니다.


  그러면, 이런 아이들 몸짓하고 《나오시몬 연구실》이라는 만화는 어떻게 얽힐까요? 네, 만화책 《나오시온 연구실》에 나오는 ‘대학교 고고학과 교수’는 무척 닮습니다. 고고학과 교수로 일하는 사람은 고고학 연구만 할 줄 알 뿐 아니라 ‘유물 되살리기’를 무척 훌륭히 해냅니다. 흩어진 뼛조각이나 조각난 도자기를 무척 손쉽다 할 만한 손놀림으로 짜맞추어요. 마치 아이들이 놀이를 하듯이 유물 되살리기를 합니다.



“상칠을 할 때는 먼지 한 톨 앉아서는 안 돼. 그럼 완전히 못 쓰게 되거든. 옛날 칠장인들은 사람 없는 광 2층 같은 데서 조용히 작업을 했지.” (27쪽)


“당신이 기억하는 그 사발의 그윽한 윤기와 색조는, 오래도록 써 오신 어머님의 손때가 배면서 만들어진 색이니까요. 칠기는 도자기와 달리 쓰면 쓸수록 표면에 윤기가 나며 색조는 부드럽고 깊어지죠. 그건 칠이 사람의 온기로 인해 더욱더 아름답게 가꾸어지는 과정입니다.” (33∼34쪽)



  만화책에 나오는 ‘대학교 고고학과 교수’는 책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쪽에서는 바지런히 배우면서 책이라는 이론에도 밝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바지런히 땀흘려 몸을 쓰면서 삶이라는 대목에서도 밝아요. 어느 때에는 미장이가 되고, 어느 때에는 칠장이가 되며, 어느 때에는 벽돌공이 됩니다. 어느 때에는 그림을 솜씨 있게 그리고, 어느 때에는 칼을 솜씨 좋게 다루어요. 머리로도 몸으로도 ‘못 하는 일’이 없어요. 무엇이든 스스로 생각해 내면서 스스로 해낼 줄 압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대학 교수’로 있는 분 가운데 이 만화책에 나오는 고고학과 교수처럼 머리로나 몸으로나 모두 훌륭히 스스로 해낼 줄 아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이런 사람은 만화책에만 나오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둘레를 찬찬히 살피면, 먼 옛날부터 여느 수수한 보금자리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누구나 집을 스스로 짓고 옷을 스스로 지으며 밥을 스스로 지었어요. 연장도 스스로 짓고, 새끼도 스스로 꼬며, 짚신이며 미투리이며 스스로 엮었습니다. 옛날에는 누구나 모든 삶을 스스로 지었어요. 일을 남한테 시키지 않고 언제나 스스로 해냈지요.



“곡목가구는 부드러우면서 심지가 굳은 너무밤나무가 제격이야. 내가 소중히 아끼는 이 곡목 의자도 너도밤나무로 만들었거든? 마코토, 너는 마음씨 상냥한 아이란다. 집이나 다리처럼 단단하고 거창한 인물은 안 되어도 좋아. 이 의자처럼 포근하고 따스한 사람이 되면 할아버지는 좋겠구나.” (132∼133쪽)


“너는 자기가 꽤나 남을 배려하는 줄 아는데, 상대나 주위 대상물을 전혀 보려고 하지 않아!” (179쪽)



  만화책 《나오시몬 연구실》을 읽으면 이 만화책에 나오는 고고학과 교수는 ‘공룡 조사 연구비’를 얻으려고 무척 애씁니다. 그렇지만 대학교에서는 ‘돈 안 될 만한 연구 조사’에는 지원비를 주기 어렵다고 합니다. 굥룡뼈를 깊은 땅속에서 캐낸들 무엇이 달라지겠느냐 하고 여기기 일쑤입니다.


  이런 대목에서는 한국 사회도 엇비슷하리라 느낍니다. 흔히 말하잖아요, 돈이 안 될 만하면 투자를 안 한다고 말이지요. 돈이 될 만해야 비로소 투자를 한다고, 그러니까 돈이 될 만한 자리에 돈을 쓴다고 말이지요.



“막연히 보기만 하지 말고, 보려고 노력해야 비로소 보이는 거야.” (181쪽)



  무엇이든 솜씨 있게 해낼 줄 아는 사람은 무엇이든 가볍게 지나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솜씨 좋게 해내는 몸짓을 보여주는 사람은 무엇이든 찬찬히 바라보면서 깊이 생각하고 돌아봅니다. 그런데,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해서는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마냥 뚫어지게 쳐다볼 노릇이 아니라, 무엇을 보아야 할는지 생각하면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수수께끼를 스스로 풀겠다는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실마리를 스스로 찾겠다는 생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리하여, 나는 이 만화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삶과 살림과 사랑을 모두 처음으로 새롭게 마주하면서 배우는 몸짓을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어떤 선입관이나 편견도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받아들이면서 온마음을 기울이기에 아이들은 무엇이든 무척 빠르면서도 놀랍도록 알차게 배웁니다. 한길만 죽어라 하고 가기에 한삶을 아름답게 일군다기보다, 한길을 걷는 몸짓이 슬기롭고 차분하면서 야무질 때라야 비로소 한삶을 아름답게 일구지 싶어요. 그저 한길만 가서는 될 일이 아니라, 스스로 모든 수수께끼와 실마리를 맺고 풀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꿀 때에 한삶을 이루지 싶습니다. 모두 두 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나오시몬 연구실》 둘째 권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는지 궁금합니다. 4349.1.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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