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텐파리스트 2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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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89



허둥지둥 넘어지고 깨지는 만화가 엄마

― 엄마는 텐파리스트 2 (초보엄마 육아일기)

 히가시무라 아키코

 시리얼 펴냄, 2012.5.25. 8000원



  ‘골 때리는 이야기(엽기 코믹)’를 만화로 신나게 그리는 아줌마 히가시무라 아키코 님은 이녁이 아이를 낳아 돌보는 이야기를 《엄마는 텐파리스트》라는 책으로 네 권 내놓았습니다. 날마다 쏟아지는 일감을 붙잡기에도 벅차지만 아기를 씩씩하게 낳은 이녁은 몸풀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만화를 그렸고, 아기한테 젖을 물리랴, 집안일을 하랴, 이러면서 다시 만화를 그리랴, 아기를 도움이(만화 보조 일꾼)한테 맡기고 만화를 붙잡느라, 다시 아기를 받아서 먹이고 입히고 재우느라, 이러는 동안 제대로 쉬지도 자지도 못하느라, 언제나 허둥지둥 얼렁뚱땅 어설피 하루하루 지냈다고 해요. 만화책 《엄마는 텐파리스트》를 보면 이 같은 이야기가 퍽 우스꽝스러우면서 재미있게 흐릅니다.



모처럼 일을 쉬어 늦잠이라도 자고 싶은 뷰티풀 선데이 모닝도, 아이가 일어나면 그것으로 슬리핑은 엔딩이 됩니다. (13쪽)


“아니야! 고짱 칼이 더 세! 왜냐하면 이건 엄마가 사 줬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 칼이 훨씬 더 세!” (15쪽)



  어느 모로 보면 재미있으면서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가 깃든 만화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다르게 바라보면 슬프면서 고단합니다. 늘 허둥지둥 지내는 삶이니 이리 부딪히고 저리 깨지면서 아프거나 힘들어요. 이처럼 허둥지둥 지내다 보니 바보스러운 짓도 하고, 어처구니없는 일도 저질러요. 이럴 때마다 내가 왜 이러나 하고 돌아볼 텐데,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자란 뒤에 되새기면 뜻밖에도 참 재미있던 지난날로 떠오르기도 합니다. 앞뒤가 맞는지 틀리는지 살필 겨를이 없이 흐르는 하루라고 할까요. 참말 만화책 《엄마는 텐파리스트》에 흐르는 이야기를 살피면 앞뒤가 맞는지 틀리는지 알 길이 없을 뿐 아니라 여러모로 뒤죽박죽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같은 대목이 ‘텐파리스트(てんぱる + ist)’ 같은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도 ‘아이를 돌보느라 지친 어머니(또는 아버지)’한테 살그마니 기운을 북돋워 주기도 하리라 봅니다. 이를테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나만 힘들지 않구나. 너도 힘들구나. 나만 그때 그렇게 바보스럽지 않았구나. 너도 그때 그렇게 바보스러웠구나.’ 하고 말이지요.



덩달아 나도 세상의 엄마들이 3일에 한 번 꼴로 빠지는 ‘나는 정말 낙제 엄마일지도 몰라 모드’에 돌입할 것 같은 우울한 느낌. (43쪽)


대처 방법. ‘아이보다 더 크게 운다’ 요즘 이 방법으로 많은 위가 상황을 모면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봐도 하나도 안 창피하다’는 분에게 강추하는 방법입니다. (82쪽)



  아이하고 함께 지내는 삶은 더 힘들거나 덜 힘들다고 말할 만하지 않습니다. 그저 아이하고 함께 지내는 삶일 뿐입니다. 아이는 어른하고 달라서 길을 걸을 적에도 그냥 걷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새로운 것을 쳐다보느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일쑤이고, 자동차가 찻길을 달리거나 말거나 저 가고픈 대로 마구 달려요. 왜냐하면 아이는 새롭게 놀고 싶을 뿐 아니라 마음껏 달리고 싶으니까요.


  맛있으면 맛있다고 웃고, 맛없으면 맛없다고 찡그립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하고 지내면서 밥 한 그릇을 더 맛있게 지을 뿐 아니라 즐겁게 짓자는 생각을 새삼스레 품고, 아이처럼 스스럼없으면서도 맑은 숨결로 생각을 나눌 때에 기쁜 삶이 되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아이가 곁에 있기에 함께 춤을 추며 놉니다. 아이가 곁에 있으니 함께 노래하다가 잠듭니다. 아이가 곁에 있는 터라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출산한 지 4년, 이때 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아, 아이 낳길 잘했다. (112쪽)



  만화를 그리는 히가시무라 아키코 님은 만화를 그리는 삶이 아니었으면 《엄마는 텐파리스트》에 나오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겪지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만화가 길을 걷지 않았으면 허둥지둥하면서 이리 부딪히거나 저리 깨지는 일도 없었거나 드물었을는지 몰라요. 그러나, 만화가로 살지 않았어도 이 만화책에 나오듯이 허둥지둥했을 수 있고(틀림없이 그럴 만합니다), 만화가 아닌 여느 살림꾼으로 집에서 아이만 돌보았어도 이 만화책에 나오듯이 날마다 잠 못 이루는 삶으로 아이하고 온 하루를 보냈을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아서 돌보기에 ‘아이 어머니’나 ‘아이 아버지’가 어떤 삶인가를 온몸으로 부대끼면서 배웁니다.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동안 ‘아이’란 어떤 넋이고 숨결이고 목숨이고 빛이고 사랑이고 꿈인가 하는 대목을 새롭게 복닥이면서 배웁니다. 아이를 낳아서 돌보기 때문에 ‘오늘은 어버이로 사는 나’도 예전에는 이 아이처럼 무럭무럭 자라서 오늘 같은 어른이 되었다는 대목을 돌아봅니다.


  허둥거리는 어머니라도 틀림없이 어머니입니다. 주마다 마감에 쫓기면서 만화를 그리느라 ‘(스스로 밝히는) 0점짜리 엄마’일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틀림없이 어머니예요.



“히가시무라 씨는 육아에 지쳤을 때 어떤 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나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뭔가를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요! 잠도 못 자, 외출도 못 해, 애가 자는 동안엔 작업이며 집안일을 해야 하고.’ “아이를 할머니한테 맡기고 한잔 하러 가요.” “그렇군요.” ‘아아,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아이를 할머니한테 맡길 수 없는 환경의 엄마들에게 너무 죄송하잖아. 게다가 까딱 잘못하면 인터넷에서 ‘할머니한테 애를 맡기고 술이나 먹으러 가다니 아주 구제불능 엄마의 전형이네 …… 아니, 술 마시러 갈 시간 있으면 고짱이랑 놀아 주기나 해라, 인간아!’라며 들고 일어나겠지?’ (124쪽)



  《엄마는 텐파리스트》 2권 끝자락에 뒷이야기가 하나 붙습니다. 이 뒷이야기에는 잡지사에서 취재를 와서 ‘아이를 키우며 만화를 그리는 어머니’한테 몇 가지를 묻는 대목이 나옵니다. 취재기자는 만화가 아줌마한테 ‘육아 스트레스 풀기’를 묻습니다. 만화가 아줌마는 ‘스트레스 풀기’를 해 본 적이 없거나 해 볼 수 없다고 느끼면서도 취재기자한테 뭔가 대꾸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육아 스트레스 풀기’를 하려고 할머니한테 아기를 맡기도 술 한잔을 하러 나들이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만화가 아줌마는 날마다 마감에 쫓기는 삶이기에 ‘술 한잔 하러 나들이’를  하지 못합니다. 취재기자가 물어보니 어쩔 수 없이 하는 말이지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 누구나 ‘육아 스트레스 풀기’는 거의 엄두를 못 냅니다. ‘육아 스트레스’라는 말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하루가 흐르기도 합니다. 이를 제대로 헤아리는 아버지가 드물기도 합니다. 아이를 돌보는 하루가 아무리 고되더라도 이 아이가 짓는 웃음으로 모든 고단함이 녹아서 사라지기도 합니다.


  만화가 아줌마가 아닌 내 삶을 돌아보아도 ‘허둥지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설프고 저렇게 어수룩합니다. 언제나 다시 배우고 늘 새로 배웁니다. 처음부터 다시 하기 일쑤이고, 늘 첫걸음을 새로 떼는 하루입니다. 마치 싸움을 한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바보스러운 내 모습하고 싸우면서 상냥하게 어깨동무를 합니다. 내가 나를 달래면서 아이를 마주하고, 내가 나부터 사랑하면서 아이를 돌보자고 생각합니다.


  만화가 아줌마는 나하고 또래이고, 이 아줌마네 아이는 우리 아이하고 또래입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서로 다른 아이를 만나서 서로 다른 삶을 짓는 셈인데, 서로 씩씩하게 기운을 내면서 아이랑 ‘어버이인 내 모습’ 모두를 사랑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49.1.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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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형제 춤추는 카멜레온 61
알렉시스 디컨 글.그림, 최용은 옮김 / 키즈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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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01



새끼 새와 새끼 악어는 서로 형제가 되어

― 우리는 형제

 알렉시스 디컨 글·그림

 최용은 옮김

 키즈엠 펴냄, 2012.10.12. 11000원



  알렉시스 디컨 님이 빚은 그림책 《우리는 형제》(키즈엠,2012)는, 어느 날 알에서 나란히 깨어난 두 짐승이 서로 돕고 아끼면서 일구는 삶을 차분히 그립니다. 그런데 두 알은 모두 어미가 없이 깨어나요. 어미는 온데간데없이 알만 덩그러니 나란히 있다가 깨어납니다. 게다가 한 알에서는 새끼 새가 깨어나고, 다른 한 알에서는 새끼 악어가 깨어나요.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까요? 그림책이니까 이렇게 그릴 수 있을까요? 참말 새알이랑 악어알이 나란히 있다고 깨어나기도 할까요?


  그림책을 읽는 아이한테는 새랑 악어가 두 알에서 나란히 깨어나는 일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 그림책을 읽는 아이는 왜 새알하고 악어알이 나란히 있다가 깨어나는가를 따지거나 묻지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 있다가 알이 깨어난다고만 여깁니다. 두 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깨어나는 모습만 물끄러미 들여다보아요.



얼마 뒤 알에서 아기 새가 태어났어요. 그리고 곧 아기 악어가 태어났지요. “네가 내 동생이구나.” 새가 말했어요. “형, 나 배고파.” 악어가 말했지요. (4∼5쪽)



  새알이든 악어알이든 모두 알입니다. 새이든 악어이든 모두 새로운 목숨입니다. 어린 짐승은 모두 ‘아기’예요. 새끼 새이니 더 귀엽거나 새끼 악어이니 무섭지 않습니다.


  그림책 《우리는 형제》를 보면, 먼저 깨어난 새끼 새가 나중에 깨어난 새끼 악어를 보면서 “네가 내 동생이구나” 하고 말합니다. 나중에 깨어난 새끼 악어는 먼저 깨어난 새끼 새를 보면서 “형, 나 배고파” 하고 말해요. 둘은 그냥 동생이고 형입니다. 둘은 한자리에서 깨어난 형제요, 앞으로 사이좋게 삶을 지을 살가운 곁지기라고 할 만합니다.



“형, 뭘 먹어야 할지 몰라서 이것저것 다 가져왔어.” “내가 먹기에는 너무 크다. 네가 잘게 씹어서 줄래?” 먹이를 다 먹고 난 새와 악어는 두 눈을 끔쩍이며 주이를 둘러봤어요. “형, 나 추워.” “응, 나도.” (10∼11쪽)




  새끼 새하고 새끼 악어는 서로 돕고 기대고 아끼고 사랑하고 돌보면서 천천히 자랍니다.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짐승 눈치를 볼 까닭은 없습니다. 두 새끼 모두 어미가 없이 저희끼리 깨어났고, 저희끼리 먹이를 찾으며, 저희끼리 둥지를 지어요.


  악어는 따로 둥지를 짓지 않습니다만, 새끼 새는 어릴 적부터 ‘스스로 살아남으’려고 둥지를 짓습니다. 어미 새가 곁에 없어도 몸속에 깃든 숨결에 따라 저절로 집짓기에 나섭니다. 새끼 악어도 어미 악어가 없으니 어떻게 삶을 지어야 하는지 잘 모르지만, 형으로 삼는 새끼 새가 둥지를 지을 적에 이 일을 거들어요. 왜냐하면 밤에 춥거든요. 둥지가 있으면 한결 포근히 잠들 수 있어요.


  그림책 《우리는 형제》를 아이들하고 읽으면서 ‘말도 안 돼!’라거나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고 묻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저 차분히 이 이야기를 따라갈 노릇입니다. 새는 새끼리만 살아야 하거나 악어는 악어끼리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섣불리 앞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두 어린 목숨이 서로 아끼면서 보살피는 숨결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조용히 읽어야 합니다.



다시 날이 밝았어요. “저것 봐, 정말 예쁘다.” 밝아 오는 해를 보며 악어가 말했어요. “응, 눈부셔. 우리 노래할래?” 따뜻한 햇살이 비치자 새는 기분이 좋아졌어요. 새가 즐겁게 노래를 불렀어요. 악어는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잠이 들었지요. (12∼14쪽)




  새끼 악어는 먹이를 찾아서 나릅니다. 새끼 새는 노래를 불러 어린 동생을 타이르고 달래며 북돋웁니다. 새끼 새는 날갯짓을 익히는데, 새끼 악어도 날아올라 보려고 애씁니다. 새끼 악어는 물에 둥둥 뜨면서 노는데, 새끼 새도 불에 둥둥 뜨면서 함께 놀려고 합니다.


  그래요, 사랑입니다. ‘난 못 해!’ 하고 못을 박지 않습니다. 서로 무엇을 좋아하거나 즐기는가를 가만히 살펴서 함께 하려고 합니다. 서로 무엇을 잘 하는가를 곰곰이 살펴서 솜씨를 키우거나 살찌웁니다.


  이렇게 두 어린 목숨은 무럭무럭 자라고, 어느덧 씩씩하고 의젓한 어른이 됩니다. 그리고, 두 어린 목숨이 어른이 된 어느 날, 다른 숲으로 마실을 갔는데, 다른 숲에서 ‘처음으로 어떤 모습’을 봅니다.


  네, 한쪽에서는 새끼리 놀고, 다른 한쪽에서는 악어끼리 노는 모습을 보아요. 새끼일 적에 함께 깨어나서 자란 새랑 악어는 ‘저희 둘이 그저 같은 형제’인 줄 알고 살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대목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어른이 된 새는 다른 새가 모인 나무로 날아가고, 어른이 된 악어도 다른 악어가 우글거리는 늪으로 날아가요.



둘은 함께 하늘을 나는 연습을 했어요. 그리고 물 위에 통나무처럼 둥둥 떠 있는 법도 연습했지요. 나무에 오르는 법도 연습하고, 멋진 춤을 추는 법도 연습했어요. 날씨가 좋을 때는 바위에 올라가 따뜻한 햇볕을 쬐었어요. 그리고 추울 때는 서로 꼭 붙어 몸을 따뜻하게 했지요. “형이 우리 형이라서 참 좋아.” 악어는 곧 까무룩 잠이 들었어요. (18∼19쪽)




  새 무리에 낀 ‘새’는 이곳에서 어떻게 지낼까요? 악어 무리에 낀 ‘악어’는 그곳에서 어떻게 살까요? 새라는 모습으로 태어났으니 새라는 모습으로만 살아야 할까요? 악어라는 모습으로 태어났으니 악어라는 모습으로만 살아야 할까요?


  그림책 《우리는 형제》는 아이한테 조용히 묻고, 이 그림책을 함께 볼 어른한테도 넌지시 묻습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눈으로 새랑 악어를 바라보는지 묻습니다. 새랑 악어는 서로 어떤 사이인가를 묻습니다. ‘형제’란 누구이고 ‘동무’나 ‘이웃’이란 누구이며, ‘한식구’란 누구이냐고 물어요. ‘적’이나 ‘맞잡이’나 ‘남’이란 누구인가 하고 묻습니다. 어떻게 살 적에 스스로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울까 하는 대목을 묻습니다. 겉모습으로 이웃을 살피려 하는지, 속마음으로 동무를 사귀려 하는지, 사랑으로 한식구를 돌보거나 아끼려 하는지, 스스로 기쁨으로 누릴 삶이란 무엇이라 할 만한지를 묻습니다.


  겉모습이 같으니 형제이거나 동무이거나 이웃일까요? 겉모습이 다르니 너랑 나는 그저 남이면서 적이나 맞잡이 사이로 지내야 할까요?


  그림책 《우리는 형제》를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을 틈틈이 다시 꺼내어 읽으면서 새삼스레 생각에 잠깁니다. 어버이가 낳는 아이는 어버이한테 저마다 사랑스럽습니다. 열 손가락을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습니다. 우리 집 아이도 사랑스럽고, 이웃 아이도 사랑스럽습니다. 나도 아름다운 사람 가운데 하나이고, 나를 둘러싼 수많은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아름다운 숨결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몸짓이요 말짓이어도 얼마든지 서로 아름다운 넋입니다. 서로 다른 삶이고 살림이어도 얼마든지 서로 사랑스러운 목숨입니다. 이 지구별에서 인종이나 나라를 따질 까닭이 없이 모두 ‘지구별 형제’입니다. 서로 따사로이 아끼면서 어깨동무를 할 반가우면서 기쁜 ‘지구별 형제’입니다. 4349.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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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의 비밀 일기 난 책읽기가 좋아
수지 모건스턴 지음, 이세진 옮김, 세브린 코르디에 그림 / 비룡소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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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27



‘온누리에 오직 한 권’만 있는 책을 쓴다

― 엠마의 비밀 일기

 수지 모건스턴 글

 세브린 코르디에 그림

 이세진 옮김

 비룡소 펴냄, 2008.9.26. 6500원



  초등학교에서는 으레 일기쓰기를 시킵니다. 이러면서 일기검사를 합니다. 일기를 쓰도록 하는 까닭은 하루를 차분히 돌아보면서 기쁨과 슬픔을 되새긴다든지 새로운 하루를 내다보면서 내 삶을 아로새기는 길을 알려주려는 뜻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적잖은 학교에서 적잖은 교사는 ‘일기검사’를 숙제로 시켰고, 이 숙제를 안 하면 매질이나 얼차려를 주었습니다. 나는 1988년에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일기검사’에서 풀려난다는 대목이 대단히 기뻤습니다. 즐겁게 쓰도록 북돋우는 일기가 아닌 숙제와 매질(체벌)로 얼룩진 일기검사만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5년에 ‘일기검사’는 어린이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불거졌습니다. 너무 마땅한 노릇인데, ‘그냥 검사’만 하는 일로는 틀림없이 ‘사생활 침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오직 사랑으로 따스히 바라보면서 어루만지려는 마음이 아니라면 ‘일기검사’는 ‘인권침해’가 될 테지요. ‘검사’라는 말이 붙는 대목부터 ‘일기검사’는 아이를 슬기롭거나 사랑스레 돌보려는 숨결이 깃들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기장에 남겨 보렴. 이건 엠마의 비밀 일기장이야.” 미레유 아줌마의 설명을 듣고, 엠마는 속으로 생각했지요. ‘아줌마,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제 이름밖에 못 쓰는걸요…….’ (4∼5쪽)




  수지 모건스턴 님이 글을 쓰고, 세브린 코르디에 님이 그림을 그린 《엠마의 비밀 일기》(비룡소,2008)를 읽으면서 일기쓰기를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2016년부터 아홉 살이 되고, 2016년 1월 1일부터 일기를 쓰기로 하면서 일기란 무엇인가를 새롭게 돌아봅니다.


  아이는 어른하고 달라서 띄어쓰기라든지 받침이라든지 글씨쓰기가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이가 쓰는 일기를 ‘검사’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쓸 적에 어느 낱말에서 띄고, 어느 낱말은 어떻게 쓰는가를 ‘살피’기만 합니다. 잘 틀리는 대목은 따로 ‘쓰기 공책’을 마련해서 찬찬히 보기글을 들면서 알려줍니다. 이를테면 ‘자르다’라는 낱말은 ‘자른 뒤·자르니까’처럼 ‘자 + 르’ 꼴로 쓰기도 하지만, ‘잘랐다·잘라내다’처럼 ‘잘 + 라(랐)’ 꼴로 쓰기도 합니다. 이런 대목을 짚어 준다든지, 일기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 때에 스스로 즐거운가 하는 대목을 일러 주려면, ‘검사’가 아닌 ‘살피기’를 해야 하고, 아이와 어버이가 함께 일기를 쓰면서 서로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하루 이야기를 새롭게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미레유 아줌마는 엠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었어요. “엠마야, 꼭 글로 쓰지 않아도 된단다. 사진이나 그림을 붙여도 되고……, 네가 그림을 그려도 되고, 나뭇잎이나 꽃을 따서 붙일 수도 있지.” (6∼7쪽)



  어린이책 《엠마의 비밀 일기》를 보면 글도 그림도 무척 곱습니다. 무엇보다 ‘일기쓰기’는 꼭 글로만 써야 하지 않는다는 대목을 잘 밝힙니다. 그림을 그려도 되고, 사진을 붙일 수 있어요. 나뭇잎이나 껌종이를 붙일 수 있어요. 마음을 담는 ‘내 빈책’이 일기장입니다. ‘빈책(공책)’을 새롭게 이야기로 채우기에 일기장입니다. 텅 비어서 아직 아무런 얘기가 안 적힌 책에 내 나름대로 살아낸 하루를 가만히 돌아보면서 차곡차곡 아로새기는 ‘온누리에 오직 한 권만 있는 책’을 쓰는 일이 일기쓰기라고 할 수 있어요. 일기를 쓰는 동안 우리는 누구나 ‘내 책을 쓴다’고 할 만하지요. 아이가 아이 나름대로 삶을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겪고 헤아린 이야기를 아이 손으로 즐겁게 빚는 일이 일기쓰기라고 할 테지요.




수요일에는, 돌아가신 자크 할아버지 사진을 붙였거요. (12쪽)



  가만히 돌아보면, 1980년대만 하더라도 국민학교는 한 교실에 쉰 아이나 일흔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학교는 한 반에 여든 아이가 넘기도 했어요. 한 반에 이렇게 많은 아이가 있을 적에는 ‘일기검사’가 ‘썼느냐 안 썼느냐’라든지 ‘얼마나 썼느냐’라든지 ‘어제 쓴 얘기를 똑같이 베꼈느냐 안 베꼈느냐’ 따위를 따지면서 아이들을 매질(체벌)하는 무시무시한 숙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사로서도 아이를 하나하나 살뜰히 살피면서 사랑으로 어루만지기 어렵지요.


  어른(어버이나 교사)이 아이들 일기를 들여다본다고 할 적에는 아이가 제 삶을 스스로 짓는 길에 동무가 되고 이슬떨이가 되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했느니 못 했느니 따지지 않고, 즐겁게 삶을 쓰고 기쁘게 이야기를 짓도록 곁에서 도우려는 뜻으로 일기를 살피면서 도움말을 들려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레유 아줌마를 만난 날, 엠마는 아줌마에게 비밀 일기장을 살짝 보여줬어요. 아줌마는 일기장을 펴 보고 환하게 웃었지요. “엠마가 참 재미있게 지냈구나.” (22∼23쪽)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일기쓰기를 서로 즐겁게 할 때에 즐거운 하루가 되리라 느낍니다. 재미있게 지내는 하루를 재미나게 돌아보려고 일기를 쓴다는 뜻을 함께 살필 수 있을 때에 기쁘리라 봅니다.


  일기는 숙제가 아닙니다. 일기쓰기는 고단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섣부른 일기검사로 아이들 마음을 다치게 하거나 힘들게 한다든지, 무엇보다 아이가 제 이야기를 숨기거나 감추면서 안 쓰는 일이 생기도록 하지 말 노릇입니다. 일기는 아이가 스스로 쓰고 스스로 되읽으면서 스스로 생각을 가꾸도록 하는 멋진 글쓰기인 줄 알아차리도록 도와야지 싶습니다.


  ‘온누리에 오직 한 권’만 있는 책을 씁니다. 지구별에도 우주에도 그야말로 딱 한 권만 있는 책을 아이가 씩씩하게 씁니다. 아이가 누린 하루는 참말 이 지구별에서도 온 우주에서도 꼭 하루뿐인 삶이고, 둘도 셋도 없는 삶입니다. 이 아름답고 멋지며 사랑스러운 삶을 아이가 손수 쓸 수 있을 때에 서로서로 활짝 웃으면서 기쁜 노래가 흐를 수 있습니다. 4349.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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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붉은 꽃잎 창비시선 81
송기원 지음 / 창비 / 199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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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105



겨울밤에 버스를 기다리며 춤을 추다가

― 마음속 붉은 꽃잎

 송기원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0.2.10. 4000원



  추운 날에는 춥다고 웅크리기만 하면 더욱 춥습니다. 그렇지만 춥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몸을 움직이면서 일하거나 놀면 추위를 잊어요. 춥기 때문에 일하기 어렵지 않고, 추운 탓에 놀기 어렵지 않아요. 추워서 못 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아무리 춥더라도 스스로 좋아할 뿐 아니라 사랑하는 일을 한다면 추위쯤 얼마든지 떨칠 만해요. 아무리 춥더라도 스스로 즐길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하고 놀이를 한다면 추위 따위는 곧바로 사라질 만해요.



처음에는 노랫소리인 줄도 몰랐습니다. / 끊일 듯 말 듯 가냘픈 소리 하나가 / 다른 소리에 잇대어지고, 그렇게 / 또 다른 소리에 닿더니 (안개)



  겨울 한복판에 아이들하고 읍내로 마실을 나간 뒤에 저녁 늦게 군내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들어가서 기다릴 데도 없습니다. 이십 분 남짓 한길에서 군내버스를 기다려야 합니다. 이동안 아이들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저기로 달리고, 이쪽에 있는 울타리에 매달리고, 이 걸상을 기어오르더니 저쪽으로 폴짝 뛰어내립니다.


  아이들이 노는 양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아이들은 춥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오직 ‘놀이’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 아이들한테 두툼한 겉옷을 입히려 하지 않아도 돼요. 아이들은 마음껏 몸을 움직이면서 땀을 냅니다. 아이들한테 두툼한 겉옷을 입히는 일은 나쁘지 않으나, 정작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할 ‘일’이란 아이들이 언제 어디에서나 신나게 뛰놀면서 온몸을 움직여서 땀을 내고 기쁘게 웃도록 북돋우는 한 가지로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십 년을 넘어 사글셋방으로 전전하다가 / 서울에서도 동쪽 끄트머리 고덕으로 옮겨와 / 금년에는 빚도 좀 얻고 하여 겨우겨우 / 아파트 전세값 천만 원을 마련했습니다. / 아내는 아르바이트로 피아노를 가르치고 / 국민학교 4학년과 1학년짜리 두 딸년도 / 아무것이나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잘 자라서 (고덕에서)



  송기원 님 시집 《마음속 붉은 꽃잎》(창작과비평사,1990)을 읽습니다. 판이 끊어진 지 한참 된 시집을 읽습니다. 해묵은 시집이라고도 할 만하지만, 1947년에 태어난 송기원 님 나이를 헤아리자면 1990년은 한창 ‘젊은’ 나이입니다. 스무 살에 대거나 서른 살에 대면 ‘안 젊은’ 나이일 테지만, 쉰 살이나 예순 살에 대면, 또 일흔 살에 대려고 하면 ‘젊은’ 나이예요. 책으로 치자면 1990년에 나온 시집은 2016년에 돌아보기에 스물여섯 해나 묵은 책입니다만, ‘시인 한 사람’이 마흔 살을 살짝 넘긴 나이에 쓴 이야기라는 대목을 생각한다면 묵거나 오래된 시집이 아니라, ‘어느 젊은 한때에 누린 삶이 깃든 목소리’가 흐르는 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갯벌, 물결, 섬, 갈매기 등이 작은 제목이었습니다. 그런 시라도 쓰지 않으면 정말이지 옆방의 늙은 여자보다도 제가 / 먼저 죽어버릴 것 같았습니다. (여수 앞바다)


나이가 마흔이 넘응께 / 이런 징헌 디도 정이 들어라우. / 열여덟살짜리 처녀가 / 남자가 뭔지도 몰르고 들어와 / 오매, 이십 년이 넘었구만이라우. (살붙이)



  이제 일흔 줄 나이에 접어들 시인으로서는 1990년에 선보인 《마음속 붉은 꽃잎》에 흐르는 이야기 같은 삶을 마주하기에는 만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시집을 선보일 무렵 송기원 님은 섬마을이나 바닷마을이나 시골마을로 찾아가면서 그곳에서 ‘술과 몸을 파는 늙은 가시내’가 읊는 하소연을 고스란히 들으면서 함께 술자리를 했다고 합니다. 이 시집에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고향마을’을 그리는 ‘술과 몸을 파는 늙은 가시내’ 목소리가 고스란히 흐릅니다. 술잔으로 눈물을 달래는 외롭고 아픈 우리 이웃들 숨결이 고스란히 흘러요.


  시 한 줄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을 만할까요? 시 한 줄에는 어떤 노래를 엮을 만할까요? 우리 곁에는 어떤 이웃이 있을까요? 우리 둘레에는 어떤 동무가 있을까요?



전라도 땅끝 흙부뚜막에 / 된장 뚝배기 끓던 고향집을 / 나라고 차마 잊을 수야 있나요. / 자, 우리 나가요, / 빠다냄새 나는 돈으로 한잔 살 테니. / 어디 해장집 가서 소주병 까면서 / 이미자 노래나 오지게 불러요. (이미자 노래나)



  찬바람이 싱싱 부는 겨울 저녁에 읍내 한쪽에서 아이들하고 춤을 춥니다.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가방은 내려놓고서 가벼운 몸으로 두 아이하고 버스터 한쪽에서 신나게 땀을 흘립니다. 읍내 고등학생 아이들이 지나가건 말건, 시골 아지매가 지나가건 말건, 나는 두 아이만 바라보면서 ‘우리 마을로 돌아가는 버스’가 들어올 때까지 이마에 땀이 흐르도록 함께 춤을 춥니다. 아이들은 그저 ‘노는 마음’이 되고, 나는 ‘아이들하고 노는 마음’이 됩니다. 아이들도 다른 사람 눈치를 안 보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추위를 잊습니다. 나도 어른이나 어버이라는 옷을 벗고서 다른 사람 눈치가 아니라 내 삶을 헤아리면서 깔깔깔 웃으면서 춤을 춥니다. 이렇게 춤추는 동안 오늘이 겨울인지 여름인지 생각할 일이 없고, 오늘이 얼마나 춥거나 더운지 따질 일이 없습니다.



꽃값 오천 원으로 당신이 나를 사면 / 내 고향 들샘 복사꽃으로 나는 당신을 사요. (꽃값)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붉은 꽃잎을 건사합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크거나 작거나 향긋하거나 밋밋하거나 새빨간 꽃잎을 건사합니다.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는구나 싶은 붉은 꽃잎이 흐드러지기도 하고, 차가운 겨울바람에 스러지면서 땅바닥에 뒹굴고 마는 바싹 마르고 마는 잎사귀이기도 한 꽃잎을 건사합니다.


  해가 넘어가면서 십이월에서 일월로 접어드는 날인데, 마을 논둑에 봄까지꽃이 조그맣게 보랏빛 꽃송이를 살그마니 터뜨립니다. 마을 어귀 빨래터에도, 우리 집 뒤꼍하고 마당에도, 또 볕이 잘 드는 곳마다 앙증맞도록 작은 제비꽃이 봄까지꽃처럼 환한 보랏빛 꽃송이를 가만히 터뜨립니다.


  꽃은 봄에도 피지만 겨울에도 핍니다. 꽃은 여름과 가을에도 곱게 피지만, 한겨울에도 씩씩하게 핍니다. 늙은 꽃이 있고 젊은 꽃이 있습니다. 고향을 떠난 씨앗 한 톨이 새로운 고장에서 야무지게 뿌리를 내리기도 합니다. 차마 고향을 떠나기 싫은 씨앗은 어미꽃 곁에 톡 떨어져서 함께 피어나려 하기도 합니다.



어머니, 당신이 손수 물 주어 기르신 앵두나무, 사과나무, 배나무는 이 봄에도 어김없이 꽃을 피웠습니다. (꽃 피는 봄날 1)



  아이들이 이 겨울 한복판에 “씨앗 심고 싶어요!” 하고 외치면서 꽃삽을 들고 마당 한쪽에서 저희끼리 텃밭을 일굽니다. 이 어여쁜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빙그레 웃음이 터지고, 이 살뜰한 몸짓을 찬찬히 지켜보다가 삶이란 시란 노래란 이야기란 이렇게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즐겁게 심는 씨앗처럼 곱게 뿌리를 내리고 환하게 떡잎이 돋아서 자라기를 꿈꿀 적에 태어나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알아차립니다. 4349.1.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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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숨겨진 삶
짐 더처.제이미 더처 지음, 전혜영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숲책 읽기 95



늑대가 사라진 숲은 어떻게 무너졌는가

― 늑대의 숨겨진 삶

 짐 더처·제이미 더처 글·사진

 전혜영 옮김

 글항아리 펴냄, 2015.12.7. 22000원



  숲에서 늑대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는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좀처럼 생각해 보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늑대를 숲에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우나 이리나 곰이 사라진 숲은 어떤 모습이 될는지 생각해 보기도 어렵습니다. 범이 사라진 숲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생각해 보기 어렵지요. 작은 짐승을 잡아서 먹는 큰 짐승이 숲마다 마음껏 돌아다니던 때를 살지 않았으니, 이러한 큰 짐승이 없는 오늘날 숲에서는 이러한 큰 짐승이 널리 있는 숲을 그리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헤아려 볼 만합니다. 큰 짐승이 있는 숲에는 그야말로 온갖 짐승이 두루 있습니다. 큰 짐승이 없는 숲에는 그야말로 몇몇 짐승만 있습니다.


  ‘포식자’라고 하는 큰 짐승은 먹이사슬에서 거의 꼭대기에 있습니다. 얼핏 생각한다면 이 포식자가 없으면 먹이사슬 아래쪽에 있는 작은 짐승은 ‘살기 좋다’고 여길 테지만, 찬찬히 생각한다면 이런 얼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포식자가 없는 먹이사슬에서는 작은 짐승이 끝없이 불어나다가 스스로 무너지기도 하고, 포식자가 없기 때문에 먹이사슬 아래쪽에 있는 짐승은 뒷걸음치기도 하는데, 먹이사슬 아래쪽에 있는 짐승은 거의 풀을 먹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먹이사슬 꼭대기 쪽에 있는 포식자가 사라지거나 줄어들면 ‘풀도 함께 사라지거나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먹이사슬 얼거리가 깨지기 때문에 모두 뒤틀리거나 망가집니다.



소투스 무리의 중간 서열 늑대 모토모. 모토모는 우리가 일을 할 때면 빤히 쳐다보곤 했다.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도, 우리의 관심을 끌려고 애쓰지도 않았으며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35쪽)


늑대 무리는 서열을 통해 질서를 유지한다. 소리와 몸짓이 혼합된 여러 가지 소통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지배와 복종을 표현하며, 질서를 꾸준히 강화시킨다. 늑대는 소통을 통해 서열을 표현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언어를 포악하고 악한 것으로 해석하는 실수를 범하곤 한다. (70쪽)



  짐 더처 님하고 제이미 더처 님이 함께 빚은 《늑대의 숨겨진 삶》(글항아리,2016)을 읽으면서 늑대와 숲과 사람은 어떻게 이어진 삶인가를 곰곰이 짚어 봅니다. 이 책은 늑대 무리 사이에서 늑대를 오래도록 꾸준히 지켜본 끝에 태어납니다. 한두 해라든지 몇 해쯤 지켜본 뒤에 나온 책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늑대를 먼발치에서 구경하고 나온 책도 아닙니다. 늑대 무리가 일구는 삶을 건드리지 않되 늑대 무리 한복판에 오두막을 마련해서 조용히 늑대 무리하고 이웃이 되어 살며 바라보고 마주한 이야기를 글하고 사진으로 엮은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숨겨진 삶”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이제껏 사람들이 늑대라고 하는 숲짐승을 제대로 살피거나 헤아리거나 알려 하지 않으면서 엉뚱한 생각만 했다는 대목을 건드리거든요.




어린 늑대들에게서 놀이가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새끼는 굴에서 나와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린다. 많은 생물학자는 유년기의 놀이가 근력을 키우고 협동력을 향상시키며, 사냥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게 하고, 새끼가 서열 구조에서 자리를 매기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94쪽)


레오폴드와 몇몇 사람은 자연에서 늑대의 존재가 파괴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늑대를 제거하자 자연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149쪽)



  늑대는 무리를 지어서 산다고 합니다. 늑대는 홀로 떨어져서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늑대는 ‘그리 센 짐승’이 아니기에 여럿이 힘을 모아서 사냥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먹잇감을 헤아려서 알맞게 무리를 지키거나 거느린다고 하지요.


  늑대 이야기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미국에서 퍼진 이야기가 무척 많다고 느낍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드넓은 들판에서 울타리를 치고 소나 양 같은 짐승을 기르면서 ‘늑대한테 잡아먹힌 소나 양’ 때문에 앙갚음을 하려고 늑대를 마구 사냥하던 이야기가 많이 퍼졌을 테지요.


  그런데 말이지요, 늑대가 사냥을 해서 잡아먹는 짐승 숫자보다 ‘농장에서 자연스레 죽는 짐승’ 숫자가 더 많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이 늑대로서도 농장 짐승을 모조리 잡아서 죽인다든지 많이 잡아서 죽인다면, 늑대 무리를 지킬 수 없을 테니까요. 사람이 건사하는 농장이 있어도 이 농장에 있는 짐승이 늘 어느 만큼 숫자를 지키도록 하겠지요. 더군다나 오늘날 과학과 조사로 살피니, 미국에서는 늑대 무리를 숲에 다시 들이고 난 뒤에 다른 숲짐승 숫자가 오히려 더 늘었다고 합니다. 이러면서 사냥꾼은 ‘사냥할 짐승이 줄었다’고 해요. 왜 그러한가 하면, 늑대 무리가 사라진 미국 숲에서 ‘풀 먹는 숲짐승’은 포식자 걱정이 없이 느긋하게 지내느라 몸놀림이 뒷걸음을 치면서 숲을 망가뜨리기에 개체 숫자가 늘 수 없었지만, 포식자가 다시 나타나면서 몸놀림이 다시 ‘진화’를 했고, 이러면서 숲이 차츰 살아날 뿐 아니라, 개체 숫자가 껑충 뛰어올랐다고 해요. 이러니 사냥꾼으로서는 예전에는 느긋하게 옐크 같은 숲짐승을 쉽게 사로잡았다면, 이제는 옐크가 ‘늑대라는 포식자한테 잡히지 않으려고 진화를 한 탓’에 사냥하기에 무척 까다롭다고 합니다.




늑대를 죽이기 위해 대자연에 수천 톤의 독성 물질을 뿌린 이유가 무엇일까? 늑대 한 마리를 죽이기 위해 가축의 목숨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 위험을 무릅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늑대를 멸종시키려고 수천수만 달러를 쓸 수 있을까? 오늘날 자연재해로 죽는 소와 양이 늑대의 공격을 받아 죽는 숫자보다 훨씬 많은데도 목장 주인이 오직 늑대에게만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54쪽)



  한국에서도 숲에 늑대나 범이 다시 살 수 있으면 어떻게 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오늘날 한국은 멧돼지나 노루나 고라니나 멧토끼가 마을로 몰래 내려와서 밭을 다 파헤치거나 망가뜨린다고 하는데, 울타리를 높이 세우든 울타리에 전기가 흐르게 하든 독약이나 덫을 놓든 뾰족한 수가 되지 않습니다. 총을 쏘아 이런 짐승을 잡는다고 해서 달라질 일도 없어요.


  한국에서도 늑대나 범 같은 짐승이 숲에서 살면 어떠할까요? 그러면 멧돼지나 노루나 고라니나 멧토끼도 섣불리 마을로 내려오지 못하겠지요. 숲에 먹잇감이 줄어들어서 멧돼지나 노루 같은 짐승이 마을로 내려온다고 할 수 있지만, 미국에서 늑대가 사라진 숲이 망가져서 ‘숲짐승 스스로도 먹이가 사라진 얼거리’를 돌아볼 수 있다면, 한국에서도 ‘포식자 노릇을 할 짐승이 사라진 탓’에 ‘풀을 먹는 숲짐승 스스로 누릴 먹이’가 숲에서 차츰 줄거나 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7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몇몇 특정 지역에서 엘크 수가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늑대가 재도입되고 난 후 처음 12년 동안 엘크는 총 9만 마리에서 12만 마리로 오히려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2011년에는 14만 613마리로 집계되었다. (207쪽)



  늑대가 다시 무리를 지어서 마음껏 살 수 있는 옐로스톤 국립공원 둘레에는 늑대 무리뿐 아니라 수많은 여러 숲짐승이 차츰 골고루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러면서 숲이 새롭게 깨어났다고 해요.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이 새로 깨어난 숲은 그야말로 아름답고 ‘볼거리’가 늘어난 만큼, 국립공원이나 관광지 ‘수입’이 눈에 띄도록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호텔을 짓거나 놀이시설을 갖추었기에 늘어나는 관광객이 아닙니다. 숲이 숲대로 되살아나도록 마음을 기울여서 살짝 손길을 뻗었을 뿐인데, 이러한 손길이 숲을 살리면서 마을도 사회도 모두 살리는 길이 되었다고 해요. 굳이 경제논리를 살필 까닭은 없지만, 경제논리를 따지기 좋아하는 오늘날 한국 사회를 돌아본다면, 경제논리로서도 숲을 제대로 살리고 숲짐승이 고루 어우러지도록 하는 길이야말로 우리 모두 아름답게 거듭나는 길이라고 할 만합니다.





늑대 도입 이후 그 지역에 버드나무와 사시나무가 다시 활발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먹이와 집 지을 재료가 많아지자 비버의 개체 수 또한 늘어났고, 넓은 습지가 조성되면서 개구리와 백조, 캐나다두루미가 몰려들었다. 한때 개울둑은 엘크에 의해 풀이 사라지고 침식되었는데, 그 때문에 곤충이 들끓는 야생화가 너무 많이 자라나 고창증을 유발했다. (212쪽)



  《늑대의 숨겨진 삶》이라는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주 뚜렷합니다. 사람만 살려고 하면 사람도 죽습니다. 이웃(사람을 비롯해 모든 짐승과 벌레와 풀과 나무)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살려고 하면 사람도 삽니다. 이웃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도 어떤 숨결이거나 목숨인지 알지 못합니다. 이웃을 알려고 한 걸음을 내딛을 적에 비로소 이웃을 비롯해서 우리 스스로 어떤 넋인가를 슬기롭게 깨달을 만합니다. 4349.1.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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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6-01-01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많은 생각을 품게 하네요!!

숲노래님!
그래도 새해이니 새해인사 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댁네 평안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복 된 하루,하루 되소서^^

숲노래 2016-01-01 10:51   좋아요 0 | URL
책읽는나무 님 보금자리에도 언제나 고운 노래와 웃음이 넘치는
새해가 되기를 빌어요. 고맙습니다 ^^

박현규 2016-01-01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이쁘네요...ㅋ

숲노래 2016-01-01 10:51   좋아요 0 | URL
네 사진이 아주 훌륭하도록 이쁩니다

빈수레 2016-02-15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전 장룽저 늑대토템이란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몽골에서 늑대와 생활하며 발견한 늑대의 지혜,용맹스러움
그리고 늑대가 초원의 생태를 보호하고 있다는 진실을
알려주어 늑대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되었습니다.

이책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숲노래 2016-02-15 10:53   좋아요 0 | URL
저도 <늑대토템>이라는 책을 찾아보아야겠네요.
말씀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