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릉부릉! 삐익! 출발! 춤추는 카멜레온 46
크리스티 뎀프시 지음, 아이생각 옮김, 브리짓 스트레빈스 마르조 그림 / 키즈엠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9



아이들한테 자동차는 얼마나 멋진가

― 부릉부릉! 삐익! 출발!

 크리스티 뎀프시 글

 브리짓 스트레빈스 마르조 그림

 아이생각 옮김

 키즈엠 펴냄, 2012.8.10. 1만 원



  큰아이에 이어 작은아이가 우리 집에 찾아온 뒤부터 ‘자동차’가 나오는 그림책을 장만합니다. 작은아이가 우리 집에 찾아오지 않았으면 ‘자동차’가 나오는 그림책을 장만하지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나로서는 자동차라고 하는 탈거리는 거의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았으니까요.


  작은아이는 자동차 장난감뿐 아니라 자동차를 몹시 좋아합니다. 머스마란 누구나 자동차를 이렇게 좋아하는가 하고 생각해 보다가, 자동차뿐 아니라 모든 탈거리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끼는데, 더 생각해 보니 나도 어릴 적에 자동차를 비롯한 온갖 탈거리를 참으로 좋아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인 나도 어릴 적부터 자동차 같은 탈거리를 좋아하고, 손가락으로든 진흙으로든 돌멩이로든 나무토막으로든 자동차 놀이를 했습니다. 이러한 결이 그대로 아이한테도 흐를 테며, ‘내 몸을 쓰지 않고’ 빠르게 달리거나 날아오르거나 헤엄치는 탈거리란 참으로 많은 아이들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겠지 하고 느낍니다.




여기는 자동차 경주 대회가 열리는 경기장입니다. (2쪽)



  크리스티 뎀프시 님이 글을 쓰고, 브리짓 스트레빈스 마르조 님이 그림을 빚은 《부릉부릉! 삐익! 출발!》(키즈엠,2012)을 장만해서 아이들하고 읽습니다. 자동차 장난감으로 온 하루를 보내는 작은아이는 이 그림책을 보더니 눈을 반짝반짝 빛냅니다. 온갖 자동차가 나오니 재미있고, 온갖 자동차가 온갖 곳을 마음껏 달리니 즐겁습니다. 아직 글씨를 모르더라도 그림만으로도 무슨 이야기인가 하는 대목을 알아차립니다. 아직 글씨를 알고 싶지 않더라도 그림으로도 넉넉히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서 마음껏 놉니다.


  그림책이 왜 아름답거나 즐거운가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오직 그림으로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그림 한 점으로 온누리 아이들이 서로 동무가 되어 즐거운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대목을 손꼽을 수 있어요.


  흔히 ‘사진’이나 ‘사진책’만 놓고서 ‘국경을 넘는 마음’이 흐른다고 하는데, 그림책을 놓고도 얼마든지 나라도 겨레도 뛰어넘습니다. 말을 몰라도 아이들은 장난감 자동차 하나를 사이에 놓고 따사로이 어깨동무를 할 수 있어요.




가파른 길을 쌩쌩 달립니다. 어두컴컴 굴도 문제없군요. (6쪽)



  자동차가 잔뜩 나오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우리 집에는 아직 자동차가 없습니다. 나는 운전면허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머잖아 우리 집에도 자동차를 장만해 보자고 꿈을 꿉니다. 앞으로는 ‘무인자동차’도 나올 테고,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무인자동차’를 탈 수 있을 테며, 이런 자동차가 나올 때쯤에는 자동차 값도 무척 쌀 뿐 아니라 보험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리라 느껴요. 아니, 앞으로는 찻길만 달리는 자동차가 아니라 하늘을 날고 바닷속을 헤엄치는 재미난 자동차가 나올 테지요. 그때에는 우리 집 온 식구가 재미난 자동차를 타고 찬찬히 이곳저곳 누비면서 새로운 이웃도 만나고 새로운 마을도 찾아가면서 삶을 더 재미나게 누릴 만하리라 봅니다.



일등은 달팽이 선수가 차지했네요. 정말 축하합니다! (25쪽)





  아직 지구별에는 기름만 먹는 자동차가 아주 많습니다. 기름만 먹는 자동차로는 찻길만 달릴 테지만, 기름이 아닌 햇볕도 먹고 바람도 먹으면서 ‘깨끗하고 끝없이 쓸’ 수 있는 자동차가 나오면, 이러한 자동차는 시골 할매와 할배도 느긋하게 탈 만하리라 생각해요. 걷기 싫어서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 힘든 몸이나 나이가 되는 사람도 자동차를 즐거이 타면서 어디로든 마음껏 다니는 새로운 앞날이 열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그림책 《부릉부릉! 삐익! 출발!》은 온갖 자동차가 ‘빨리 달리기 경주’를 하는 줄거리를 보여주지만, 막상 책을 펼치면, ‘더 빨리 달리기’를 보여주지 않아요. ‘달팽이 자동차’가 으뜸을 차지한다고 하는 마무리처럼, 그야말로 수많은 자동차가 지구별 구석구석을 찬찬히 달리면서 아름다운 이웃을 만나고, 스스로 아름다운 숨결이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야말로 꿈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한국에서 자동차를 모는 어른들이 이 그림책을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면서 찻길에서 좀 느긋하고 차분할 수 있어도 아름답겠지요? 끼어들기라든지 마구 헤집으면서 앞지르기라든지 골목길에서 함부로 빵빵거리며 놀래킨다든지, 이런 일은 좀 그만두고, 서로 아끼면서 함께 삶을 즐기는 자동차가 늘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4349.1.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니의 결혼 1
니시 케이코 지음, 최윤정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87



뒤늦게 혼인을 생각하는 언니

― 언니의 결혼 1

 니시 케이코 글·그림

 최윤정 옮김

 시리얼 펴냄, 2012.8.25. 8000원



  《남자의 일생》이라는 네 권짜리 만화를 그리기도 한 니시 케이코 님이 그린 《언니의 결혼》이라는 만화책은 어느덧 일곱째 권까지 나옵니다. 《남자의 일생》이라는 만화책은 ‘남자’가 ‘혼인’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눈길을 좇으려고 한 작품이라면 《언니의 결혼》이라는 만화책은 ‘여자’가 ‘혼인’을 어떻게 맞아들이는가 하는 눈길을 담으려고 한 작품입니다. 다만, 남자나 여자라고 하는 삶을 바라보면서 담으려고 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이 만화를 그린 분이 바라보는 생각이고 마음입니다. 모든 남자와 여자가 이 만화책에 흐르는 대로 생각하거나 느끼지는 않을 테니까요.



“아, 그럼 원래 여기 사람이군요. 결혼은 하셨나요?” “아니, 소위 독신귀족. 요즘은 ‘낙오자’라고 하던가?” (10쪽)



  혼자 살든 짝을 짓든 스스로 걷는 길입니다. 혼자 살면서 아이만 낳든 짝을 지어서 아이를 안 낳든 스스로 걷는 길입니다. 어떻게 하려 하는가 하는 대목은 늘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남이 내 하루를 살아 줄 수 없습니다. 남이 내 몫을 맡아서 짝을 짓는다든지 아이를 낳아 줄 수 없습니다. 혼인이란 대리만족이 아니니까요. 이루지 못했다고 여기는 첫사랑을 대리만족하려는 혼인이 될 수 없고, 성욕을 풀려고 하는 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누군가는 대리만족이나 성욕풀기로 혼인을 할는지 모르지요. 이런 모습도 저마다 다른 삶 가운데 하나이니까요.



‘나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애인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으니, 게다가 동창이니 매정하게 굴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93쪽)


“난 이만 퇴근해야 해서요.” “나도 갈 거예요.” “따라오지.” “나도 이쪽 방향이에요.” “질리지도 않나요?” “난 즐거워요.” “난 아주 곤혹스러워요.” (118쪽)



  아이는 아무나 낳지 못합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아이는 아이를 돌보며 사랑을 물려줄 수 있는 마음이 된 사람이 낳을 수 있습니다. 아이를 돌보며 사랑을 물려줄 수 있는 마음이 못 된 채 아이를 낳지 못해요. 그러나 혼인을 했기에 또는 성욕풀이를 하다가 아기를 배기도 하지요. 아기를, 아이를, 새로운 숨결을, 앞으로 새로 태어나 이 땅을 밟을 어린 목숨을 생각하지 않은 채 아기를 배는 어른이 있어요.


  사랑을 받지 못한 채 태어나는 아이는 기쁠까요? 아이는 그저 태어나기만 해도 기쁠까요? 어쩌면 그러할는지 모르지요. 그렇지만 사랑을 받으면서 태어날 아이요,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날 아이입니다. 어른 사이에서도 그저 한쪽이 몰아세우듯이 ‘나 너 좋아해’ 하면서 짝을 이루거나 혼인할 수 있지 않아요. 아이를 낳을 적이든 어른 사이에 짝을 이룰 적이든, 서로 마음으로 다가서면서 아낄 수 있는 숨결이 될 적에 비로소 ‘사랑’이라는 이름을 쓸 만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을 쓰기에 비로소 혼인이라고 하는 짝맺기를 하며, 사랑스레 짝을 맺은 삶을 지으면서 아이가 아름다운 ‘사랑 열매’로서 두 어버이한테 찾아옵니다.



“사귈 생각도 없으면서 그런 걸 왜 물어봐야 하는데.” “그런 건 시간이 지나면 물어보기가 더 어려워진단 말이야.” “그 사람과는 아무 사이도 아니고, 앞으로도 아무 일 없을 거야.” (166쪽)


‘의사들의 모임에 그런 여자가 혼자 올 리 없고. 그렇게 생긴 여자라면 누구든 상관없다 이건다. 여보란 듯 날 쫓아다닌 건? 그저 그 사람의 질투를 자극하기 위해? 그럼 난 뭐가 되냔 말이야. 좋아하니 사랑하니, 그런 건 아내한테나 가서 떠들 것이지.’ (183쪽)



  만화책 《언니의 결혼》은 서른 끝자락에 이르도록 혼자 살며 혼자 일하고 혼자 놀던 ‘언니’가 도시에서 시골(고향)로 삶터를 옮기면서 부대껴야 하는 어떤 사내하고 어우러지는 삶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러면서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든지 두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가 하는 대목을 짚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두 사람은 ‘사랑’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모로 보면 두 사람은 ‘사랑’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아직 사랑을 모르는 두 사람일 수 있고, 사랑을 알고 싶은 두 사람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사랑을 배울 마음이 없이 짝만 짓거나 혼인을 하고 싶거나 아기만 낳고 싶을 수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든 두 사람은 저마다 마음속으로 지은 대로 삶을 누립니다. 이렇게 살 수도 있고 저렇게 살 수도 있으니까요. 더 낫거나 더 좋은 삶이나 사랑이 아니라, 저마다 다르게 겪으면서 삶을 돌아보도록 이끄는 ‘사람 만남’이나 ‘사람 사귐’이라고 할까요. 우리는 누구나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마주하고 말을 섞고 하루를 보내면서 내 삶을 새롭게 바라봅니다. 4348.12.3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년원의 봄
조호진 지음 / 삼인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시를 노래하는 시 108



봄볕은 소년원에도 깃들 수 있을까

― 소년원의 봄

 조호진 글

 삼인 펴냄, 2015.12.9. 8000원



  조호진 님이 빚은 시집 《소년원의 봄》(삼인,2015)은 소년원에도 소년원 바깥에서와 똑같이 봄날이 찾아오고 봄볕이 찾아들지만, 막상 따스한 숨결이나 기운은 흐르지 못하는구나 싶은 사회 모습을 시로 찬찬히 그립니다. 날씨는 봄이지만 마음은 봄이기 어려운 사람들 이야기를 시로 그리고, 햇볕은 따사롭게 내리쬐지만 따사롭다 싶은 사랑이 깃들지 못하는 구석진 삶자리 이야기를 시로 그려요.



가난한 이들 덕에 칭찬받은 그대여 / 가난한 이들 덕에 유명해진 그대여 / 가난한 이들 덕에 훈장 받아 놓고서 / 어찌하여 그대 안에 가난함이 없나요 (무료급식소에서 5)


아내는 호박죽을 좋아하고 저는 그 샛노란 빛깔을 좋아해서 / 팔 아픈 아내 대신해 호박죽이 타니 않도록 잘 저었습니다. (묵정밭 늙은 호박)



  한겨울이지만 포근한 날씨인 전남 시골마을에서 시를 한 줄 읽다가 아이들하고 마실을 나옵니다. 이틀쯤 드센 바람이 불었지만 이 바람이 가라앉으면서 한겨울이 무척 포근합니다. 아마 이 고장뿐 아니라 북쪽으로 올라가는 고장도 제법 포근하리라 생각합니다. 한겨울에도 바람이 자는 날이라면 어디에도 봄볕 같은 기운이 퍼지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마음이 포근하지 못하면 포근한 겨울바람이 찾아와도 몸이며 살림이며 집이며 포근하지 못합니다. 마음이 포근할 적에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도 몸이나 살림이나 집이나 포근하게 지키거나 건사할 수 있어요.


  이 같은 대목을 예전에도 알았는지 몰랐는지 가만히 돌아보면, 아마 예전에도 알았을는지 모르나 똑똑히 못 깨달았구나 싶습니다. 아니,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했고, 모르면서도 새롭게 알려고 나서지 않았구나 싶습니다. 따뜻한 집일 적에도 따뜻할 수 있으나 마음이 따뜻하지 못하면 난방이 잘 되는 집이어도 따뜻하지 못하다는 대목을 나 스스로 알려고 하지 않았어요. 추운 집일 적에는 그야말로 추울 테지만 마음이 따뜻할 적에는 추위를 잊거나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대목을 나 스스로 똑똑히 알아차리려 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가난한 시인을 위해 / 아내를 특별한 선물로 주셨다. (임무)


목숨 걸고 / 지켜야 할 것은 / 이따위 조국이 아니라 / 내 목숨보다 귀한 자식이다. // 어린 목숨들 죽이는 / 이따위 조국은 조국 아니다. / 우리들의 자식 빼앗아 가는 / 이따위 조국은 조국 아니다. (당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한 가지라면 바로 삶이지 싶습니다. 목숨을 바쳐 살려야 하는 한 가지라면 바로 사랑이지 싶습니다. 아이들을 바닷속에 가두어 버리는 나라라든지, 군부대를 새로 짓는다며 땅과 바다를 모두 망가뜨리는 나라라든지, 경제성장율만 바라보면서 쌀이며 곡식이며 끝없이 수입하려는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나라라든지, 아직도 원자력 발전소를 놓지 않으려는 나라라든지, 평화로운 학교가 아닌 입시지옥 학교로 가는 교육정책을 바꾸지 않으려는 나라를 지킬 노릇이 아닙니다. 삶이 삶답고 사랑이 사랑다울 수 있는 길로 나아갈 노릇이요, 우리 아이들부터 삶과 사랑을 배우도록 할 노릇입니다. 이러면서 어른인 나도 삶과 사랑을 새롭게 배워야지요. 아이와 어른이 살가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삶과 사랑을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가르치며 배워야지요.



잡혀 가는 거리의 소년아 / 너의 죄는 얼마만큼 무겁기에 / 고개도 못 든 채 울기만 하느냐 (자복)


소년들이 예수를 알겠느냐 구원을 알겠느냐 / 사랑을 알겠느냐 은혜를 알겠느냐 그냥 둬라 / 받아본 적도 맛본 적도 없는데 어찌 알겠느냐 / 어린 나이에 죄의 진흙탕에 빠진 게 누구 죄냐 (소년원 예수)



  조호진 님은 시 한 줄로 사회를 바라봅니다. 아이들한테 죄를 들씌우는 사회가 아닌, 아이들한테 사랑을 보여줄 사회를 바라면서 시를 한 줄 씁니다. 아이들한테 차가운 감방을 안기는 사회가 아니라, 아이들을 포근하게 감싸는 마음이 우러나오는 어른들이 아름답게 일굴 사회를 꿈꾸면서 시를 한 줄 씁니다.


  아주 마땅한 일인데 더 나은 복지가 되어야 아이들이 즐겁지 않습니다. 더 나은 복지를 정책으로도 꾸릴 노릇이지만, 이에 앞서 어른들 스스로 사랑과 평화와 평등으로 삶을 슬기롭게 가꿀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들 스스로 사랑과 평화와 평등이 없이 복지 정책만 꾸리려 한다면, 복지 정책조차 제대로 서지 못해요. 사랑을 모르면서 무슨 복지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평화와 평등을 모르고서 어떤 복지를 살필 수 있겠습니까. 따스한 기운이 없는 제도나 규칙이나 법이 아니라, 언제나 따스한 기운으로 삶을 북돋울 수 있는 사회가 된 뒤에 비로소 제도나 규칙이나 법을 살필 수 있어야지요.



눈물도 사랑도 없는 / 저것은 죽은 십자가다 / 저것은 탐욕의 십자가다 / 저것은 허위의 십자가다 (벽면예배)



  봄볕은 소년원에도 깃들 수 있을까요? 네, 틀림없이 소년원에도 깃들 수 있습니다. 봄볕은 청와대에도 시청에도 깃들 수 있습니다. 봄볕은 공장에도 발전소에도 깃들 수 있습니다. 봄볕은 겨울 빈들에도 깃들 수 있고, 봄볕은 낙동강이나 영산강에도 깃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봄볕은 우리 가슴에 깃들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지을 하루이고, 사랑으로 닦을 살림입니다. 사랑으로 찾을 꿈이요, 사랑으로 누릴 이야기입니다.


  아이들 눈물을 바라보면서 쓰는 시는 눈물을 씻으려는 시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눈물을 씻고 나서 웃음꽃이 피어나기를 바라는 손길로 쓰는 시입니다. 이 눈물이 돋은 자리에 새롭게 웃음이 자라기를 바라는 손으로 시를 찬찬히 쓰고, 한 걸음 두 걸음 씩씩하게 나아갑니다. 이 땅에, 온누리 모든 곳에, 아이들이 겨울볕도 포근히 누리고 봄볕도 따사로이 맞이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서기를 빕니다. 죄도 잘못도 아닌 기쁜 사랑이 새싹처럼 터져나올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2.3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주 산책 - 우주와 지구의 탄생, 그리고 생명의 진화. 경이로운 시간과 함께 걷다
이정규 지음 / 이데아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삶읽기 223



지구별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나들이

― 우주 산책

 이정규 글

 이데아 펴냄, 2015.12.15. 14000원



  밤하늘에 올려다보는 뭇별이 ‘오늘 반짝이는 빛’이 아니라 아스라히 먼 옛날에 반짝이던 빛이라는 대목을 어릴 적에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 별에서 내뿜는 빛을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보지만, 막상 오늘 이곳 이때를 헤아리면 ‘저 별은 우주에서 사라지고 없을’ 수 있다는 대목도 배웠어요.


  이러한 이야기를 배우며 한참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면, 지구라는 별에서 저 별로 내뿜는 빛도 저 별에서는 아스라히 먼 앞날이 되어야 받을까요? 저 먼 별에서 지구빛을 받을 적에는 아스라히 까마득한 옛날 빛을 받는 셈일까요?



내가 저 산과 나무들을 볼 수 있는 건 바로 저 먼 우주 공간을 여행해 온 별들과 은하들의 빛 때문이었다. (33쪽)


우리가 이렇게 우주에서 생겨 나온 산물이라면, 우리 안에는 우주 진화의 특성이 있지 않을까? (160쪽)



  이정규 님이 쓴 《우주 산책》(이데아,2015)을 읽습니다. 지구를 둘러싼 여러 별을 비롯해서, 지구에서 한참 멀 뿐 아니라 새까맣게 먼 뭇별 이야기를 가볍게 나들이를 하듯이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이정규 님은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대학에서 천문학을 익힌 뒤, 더블린과 벨파스트에서 연구원을 지냈다고 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 눈높이를 헤아리면서 우주와 별 이야기를 오랫동안 들려주었다고 해요. 《우주 산책》은 어린이와 청소년한테(또 어른한테도) 들려준 우주와 별 이야기를 한결 쉽게 간추리면서 엮은 이야기책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점점 더 많은 모습을 이해하게 되자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동그라미의 세계관’이다. 동그라미의 세계관에서는 우리 인간은 자연과 분리되지 않고 자연 안에 있으며, 모든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고, 또 상호 의존적이라고 본다. (43쪽)



  별을 이야기하는 책 《우주 산책》은 ‘우리는 모두 우주에서 태어난 숨결’이라는 대목을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이, 궂은 사람도 착한 사람도 따로 없이, 먼먼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그야말로 아주 작은 조각이나 티끌과 같다고 하는 대목을 차근차근 밝힙니다.


  참말 그렇겠지요. 수십억 광년이나 수백억 광년쯤 떨어진 별에서 지구를 바라본다면 어떠할까요? 수십억 광년이 아닌 수만 광년 거리가 떨어진 다른 별만 생각해 보더라도 우주는 그야말로 ‘끝없이’ 넓고 ‘가없이’ 깊으며 ‘그지없이’ 대단합니다. 이 지구별에 73억에 이르는 사람이 산다고 하지만, 우주에 있는 별 숫자만 헤아려도 73억뿐 아니라 730억이 넘을 테고, 어쩌면 7300억이나 7조 300억이 넘을는지 몰라요.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우주 속의 우리 위치에 대한 이해도 달라져 왔다. (51쪽)



  어느 자리에 서서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려 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 느낍니다. 지구라는 테두리에서 보느냐, 태양계 테두리에서 보느냐, 지구에서도 아시아 테두리에서 보느냐,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도 경상도나 전라도 테두리에서 보느냐, 아니면 드넓은 은하나 더 큰 은하나 은하를 품는 더 큰 우주 테두리에서 보느냐에 따라 삶도 생각도 사랑도 달라지기 마련이겠지요.


  우리가 태양계 테두리에서만 생각할 수 있어도 삶이 크게 달라지리라 봅니다. 이 너른 우주에서 전쟁무기를 깨끗이 없애버릴 수 없을까요. 이 깊은 우주를 돌아보면서 입시지옥이나 비정규직이라는 굴레를 말끔히 털어낼 수 없을까요. 함께 나아가는 아름다운 길을 생각해 볼 수 없을까요. 서로 돕고 아끼는 길로 새로 걸어가는 삶을 헤아려 볼 수 없을까요.



5시 방향으로 토성의 고리 아래쪽에 보이는 작은 점 하나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다. 73억이 넘는 인구와 수백만 종이 넘는 생명체가 함께 살고 있는 우리의 집 지구가 바로 이 한 점으로 보인다. (73쪽)


은하들이 어느 방향에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3차원 공간상에 표시하는 연구가 198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는데, 여기에서 ‘거대장벽(Great wall)’이나 ‘보이드(Voids)’니 하는 구조들이 드러났다. (82쪽)



  밤마다 아이들하고 마당에 서서 놀다가 별바라기를 합니다. 처음 마당에 내려서면 아이들은 하늘에 별이 얼마나 있는지 잘 모릅니다. 불을 다 끄고 가만히 있으면 어느덧 밤눈이 트이면서 하늘 가득 별이 잔치를 벌이는 줄 알아차립니다. 별이 저렇게 많네, 하고 까르르 웃으면서 깜깜한 숨바꼭질을 하고 술래잡기를 합니다. 함께 노래하면서 춤을 추고, 다시 별바라기를 합니다. 달밤에 춤을 춘다는 옛말이 있는데, 나는 아이들하고 별밤에 춤을 춥니다.


  별 한 조각을 누리려는 삶이 되고 싶습니다. 쏟아지는 미리내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서 꿈을 노래하는 사랑이 되고 싶습니다. 별도 보고 해도 보고 달도 보면서 언제나 내 가슴에 별빛과 햇빛과 달빛을 담고 싶습니다. 이 별빛처럼 시골마을 숲내음을 숲노래로 맞아들이고 싶습니다.



태양의 중심에서는 매초 400만 톤의 물질을 태워 빛을 내고 있다. 그 빛 중에서 우리 지구에 떨어지는 빛의 양은 정말 작지만, 그 덕분에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고 살 수 있는 것이다. (115쪽)


초신성 폭발은 엄청난 폭발력으로 주변의 물질을 한쪽으로 밀어서 다음 세대의 별들이 탄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렇듯 새로운 세대의 별들은 그 이전 세대의 별들이 자기 몸을 불살라 만든 수많은 원소들로 더욱 풍성해진 터전에서 태어난다. (126쪽)



  《우주 산책》은 가볍게 ‘우주 마실’을 해 보자고 하면서 손짓을 합니다. 바쁜 일을 살며시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저 하늘을 기쁘게 올려다보자고 손짓을 합니다. 이웃집으로도 마실을 다니고, 별나라로도 마실을 다니자고 손짓을 해요.


  망원경을 써서 별마실을 할 수 있습니다. 눈을 감고 고요히 생각에 잠긴 채 별마실을 할 수 있어요. 문명으로 우주선을 지어 우주에 배를 띄울 수 있을 테고, 꿈나라를 헤매면서 마음으로 우주를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또는 먼먼 우주에서 지구로 찾아오는 우주별 이웃이 있으면 그 우주선을 얻어타고 새로운 우주별로 마실을 다녀와 볼 수 있을 테지요.


  별을 바라보며 별을 가슴에 담습니다. 별을 마주하며 별을 두 손에 얹습니다. 나는 지구라는 별에 사는 지구사람이요 지구별사람이며 ‘별사람’입니다. 너도 나랑 똑같이 ‘별사람’입니다. 지구별에 깃든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온 별이 가득한 누리 저 먼 곳에서 아름답게 삶을 짓는 ‘다른 별 사람(외계인)’을 이웃으로 맞아들일 수 있기를 꿈으로 꾸어 봅니다. 4348.12.2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뜨개질하는 소년 콩닥콩닥 7
마가렛 체임벌린 그림, 크레이그 팜랜즈 글 / 책과콩나무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94



뜨개질하고 살림하는 사내가 아름다워라

― 뜨개질하는 소년

 크레이그 팜랜즈 글

 마가렛 체임벌린 그림

 천미나 옮김

 책과콩나무 펴냄,2015.8.20. 11000원



  나는 어떤 어른으로 살림을 지을 적에 아름다울까요? 마흔을 훌쩍 넘은 나이에 문득 이 대목을 돌아봅니다. 큰아이가 아홉 살 나이로 넘어설 문턱에서 이 대목을 새삼스레 헤아립니다. 곰곰이 돌아보니 어떤 어른으로서 어떤 살림을 지을 적에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을 건드리거나 짚어 주는 둘레 이웃이나 어른은 찾아보기 어려웠구나 싶습니다. 한집에서 지내는 곁님을 빼고는 이러한 대목을 이야기하거나 밝히는 사람이 몹시 드물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둘레에서 이러한 대목을 이야기하거나 밝히는 사람이 드물기에 나 스스로 이 대목을 잊거나 놓쳐도 되지는 않을 테지요.


  사내가 집안일을 왜 하거나 배우려 하느냐는 소리를 익히 들으면서 자란 어린 날을 되새깁니다. 집에 가시내가 있는데 왜 마흔 넘은 사내가 집안일을 하느냐는 소리를 아직도 들으면서 두 아이를 건사합니다. 한해넘이를 앞두고 문득 생각에 잠깁니다. 삶을 슬기롭게 바라보도록 북돋우는 소리라면 귀여겨들을 노릇이고, 삶을 슬기롭게 마주하도록 이끄는 소리가 아니라면 굳이 듣지 않아도 될 노릇이지 싶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아이들하고 오붓하게 지을 살림을 생각할 노릇이고, 앞으로 이 보금자리를 차근차근 곱게 가눌 길을 살필 노릇이지 싶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맨날 데굴데굴 구르고, 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놀았어요. 하지만 라피는 시끄러운 소리나 거친 놀이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쉬는 시간이면 혼자 가만히 앉아 있거나 함께 있어 줄 선생님을 찾아다니곤 했어요. 평화롭고 조용한 시간을 누리고 싶어서요. (5쪽)



  크레이그 팜랜즈 님이 글을 쓰고, 마가렛 체임벌린 님이 그림을 그린 《뜨개질하는 소년》(책과콩나무,2015)을 아이들하고 거듭거듭 재미있게 읽습니다. 뜨개질하는 소년이라니, 얼마나 멋있고 사랑스러우면서 의젓한가 하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내가 뜨개질을 하기에 멋있고 사랑스러우면서 의젓하지는 않습니다. 가시내가 뜨개질을 할 적에도 멋있고 사랑스러우면서 의젓합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찾을 뿐 아니라, 스스로 즐겁게 삶을 짓는 길을 생각하며, 이 길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와 교사한테서 사랑을 받습니다. 따순 눈길로 ‘치우침 없이’ 바라보는 사랑을 받으면서 기쁘게 뜨개질을 하지요.




“선생님, 뭐하세요?” 라피가 묻자, 선생님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어요. “동생한테 줄 목도리를 뜨고 있단다.” “와, 예쁘다! 선생님, 뜨개질 하는 거 어려워요?” “꾸준히 연습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 가르쳐 줄까?” “네, 네! 가르쳐 주세요!” (7쪽)



  학교에서 공차기를 안 하는 ‘라피’라는 아이는 으레 놀림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라피는 일부러 애써 공차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라피는 알록달록하거나 울긋불긋한 빛깔하고 무늬가 깃든 옷을 입고 싶습니다. 애써 거무죽죽하거나 시커먼 옷을 입고 싶지 않습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입니다만, 치마는 가시내만 입을 옷이 아닙니다. 사내도 입고 싶으면 얼마든지 입을 만합니다. 발을 하나씩 꿰기에 바지이고, 허리에 두르기에 치마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이 그림책에 나오는 라피라는 아이가 치마를 두르지는 않습니다.


  뜨개질하는 아이는 뜨개질만 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노래하기를 즐기고, 그림 그리기를 사랑하며, 뜨개질하기를 새로 익혀서 언제나 신이 나서 이 삶을 누릴 뿐입니다.


  라피는 학교에서 ‘가시내 같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을 어머니한테 고스란히 옮깁니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는 ‘아이(라피)가 얼마나 자랑스러우면서 사랑스럽고 훌륭한 아이(아들)’인가 하는 대목을 부드럽게 이야기해 줍니다. 아이는 어머니 말을 듣고 한결 씩씩하게 기운을 내고, 더욱 즐겁게 잠자리에 든 뒤에, 학교에서 어떤 일을 겪더라도 의젓하고 당찬 몸짓이 됩니다.




“엄마? 내가 이상하고 특이한 거예요? 나는 왜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뜨개질하는 걸 좋아할까요? 엄마는 내가, 여자애 같아요?” “아니. 엄마는 네가 아주 라피 같은데. 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남자애들은 맨날 축구 얘기만 해요. 엄마, 나 정말 여자애 같은 거 아니죠?” “여자애라니? 라피, 좋아하는 게 다른 애들이랑 다를 뿐이지. 넌 엄마 아빠의 훌륭한 아들이야. 엄마 아빠는 네가 아주 자랑스럽단다.” (16∼17쪽)



  나는 곧잘 바느질을 합니다. 아버지가 집에서 바느질을 하면 두 아이가 “뭔데? 뭔데?” 하면서 곁에 달라붙습니다. 한참 바느질을 구경하다가 저희도 바느질을 해 보겠노라 엉겨붙기도 합니다. 절구질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몸짓쯤은 큰아이도 얼마든지 해 볼 수 있다면서, 큰아이는 씩씩한 살림순이가 되기도 합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칠 수 있을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삶을 보여주거나 살림을 가르치는 하루일까요?


  아이들은 어버이 손길을 기다립니다. 아이들은 어른 눈길을 바라봅니다. 삶을 보여줄 어버이 손길을 기다리고, 사랑을 가르칠 어른 눈길을 바라보지요. 오직 뜨개질뿐만 아니라, 삽질도 호미질도 낫질도 톱질도 망치질도 기다립니다.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아이들 스스로 손을 놀려서 살림을 짓는 길을 배우고 싶습니다.




라피는 학교에 도착하자 오도넬 선생님에게 달려갔어요. “선생님, 보여 드릴 게 있어요.” 선생님은 천천히 가방을 열어 보았어요. “어머나, 망토잖아! 네가 지었니? 라피, 정말 놀랍구나.” (26쪽)


라피 생일에 엄마는 특별한 상표를 선물해 주었어요. 라피가 뜨개질과 바느질을 끝낼 때마다 달 수 있는 라미만의 상표였지요. ‘디자이너 라피’ (31쪽)



  《뜨개질하는 소년》이라는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아버지한테 목도리를 손수 떠서 선물합니다. 치렁치렁 길게 늘어지는 멋진 목도리입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멋지고 훌륭한 아이를 바라보면서 이 아이한테 걸맞는 선물을 해 주기로 합니다. 아이가 뜨개질을 마치면, 이 뜨개옷에 붙일 ‘이름표(상표)’를 마련해 주어요. ‘디자이너 라피’라는 이름을 넣어서.


  온누리에 오직 한 벌뿐인 옷을 짓는 아이인 셈입니다. 온누리에 오직 이 보금자리에서만 감도는 따순 사랑을 받아서 자라는 아이인 셈입니다. 그러니까 온누리 모든 집안에서 저마다 다르면서 고운 사랑이 즐겁게 자라서 마음껏 넘칠 수 있다면 아름다운 살림이 되리라 느껴요.


  뜨개질하는 아저씨가 예쁩니다. 집안일하는 아버지가 곱습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다 함께 살림을 돌보고 삶을 짓는 하루가 될 때에 이곳에서 사랑이 싹틉니다. 4348.12.2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