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탐구 생활 - 할머니라는 지혜의 창고에서 발견한 삶의 보물들, 2015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선정작(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정청라 지음, 임종진 사진 / 샨티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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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94



할머니한테서 받은 사랑을 돌아보기

― 할머니 탐구 생활

 정청라 글

 임종진 사진

 샨티 펴냄, 2015.11.30. 15000원



  내 어릴 적을 더듬으면, 나는 할머니한테서 사랑을 받은 일을 거의 못 떠올립니다. 갓난쟁이일 무렵에는 여러 할머니한테 둘러싸여 사랑을 받았을는지 모르나, 어느 만큼 나이가 든 뒤에는 우리 집 할머니를 마주할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작은아버지 댁에서 살던 할머니는 설이나 한가위가 되어야 비로소 얼굴을 보다가, 병원에서 몸져누운 뒤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았을 뿐입니다.


  할머니가 곁에 없이 지내던 어린 나날 왜 우리 집에서는 할머니가 함께 안 사나 하고 생각해 보는데, 할머니 한 분이 큰집과 작은집에 함께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형제 자매가 함께 살면 할머니가 함께 계시겠지만, 형제 자매가 따로 사니까 할머니는 여러 형제 자매 가운데 한 집에 사셔야겠지요.


  우리 집에는 할머니가 안 계셨지만 마을에서는 할머니를 어디에서나 마주했습니다. 할머니는 누구나 느린 걸음이었고, 짐을 잘 들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누구나 찬찬히 말씀을 하고, 따사로운 목소리와 손길로 다가오셨습니다.



“여그서 걸어갈 때는 아파 죽겄어. 근디 산에 들어가믄 아픈 줄도 몰라. 꼬사리 끊다 보믄 오지가꼬 암시랑토 않당께. 내일은 집이도 같이 가. 고롱구테(골짝 이름)로 갈라니께.” (19쪽)


어쩌면 하느님도 고사리며 산더덕 같은 나물을 미끼로 사람들을 산으로 불러들이시는 게 아닐까? (24쪽)




  정청라 님이 멧골자락에서 오붓하게 지내는 살림살이 이야기를 담고, 이러한 살림살이를 임종진 님이 사진으로 살가이 담은 《할머니 탐구 생활》(샨티,2015)을 가만히 읽습니다. 정청라 님은 곁님하고 아이들하고 시골자락에서 조용히 지냅니다. 시골자락에는 거의 모두 할머니와 할아버지입니다. 아니, 시골자락에는 젊거나 어린 사람은 모조리 도시로 나가고 없다고 해야겠지요. 마을에서 한 시간쯤 걸어서 나와야 비로소 군내버스가 지나가는 곳에 이른다고 하니, 이런 멧골에서 조용히 살려고 꿈을 키우는 어린이나 젊은이는 매우 드물다고 할 만합니다. 자가용 없이 이런 멧골에서 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주 드물다고 할 만하고요.


  그렇지만 정청라 님네 집안에 처음부터 자동차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자동차가 있었어도 이 자동차를 탈 수 없는 살림이 되었다고 할까요. 돈이 없어서라기보다 그냥 자동차하고 살며시 멀어진 살림이라고 할까요.


  자동차를 달려서 읍내나 면내를 다녀올 적에는 이대로 재미있습니다. 두 다리로 걷거나 버스를 타고 읍내나 면내를 다녀올 때에는 이대로 즐겁습니다. 마을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먼먼 옛날부터 걸어서 그 길을 오가셨겠지요. 마을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이녁이 어릴 적부터 고개를 넘고 골짜기를 지나면서 마실을 다니셨겠지요.



지난봄, 마침 아울이와 산에 오르다가 할머니가 고추 이랑 만드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새들이 지저귀는 가운데 괭이질 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고, 할머니는 천천히 한 줄씩 고랑을 그려 나갔다. 고요히 숨을 내쉬는 것처럼, 한 땀씩 바느질을 하는 것처럼, 너무나 편안하고 가벼운 괭이질에 나는 가슴이 숙연해졌다. (44쪽)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꽃과 함께 살아가는 동래 할머니를 바라보며 꽃이 주는 위안이 얼마나 큰지 생각했다. (60쪽)





  멧길을 걷는 동안 멧내음을 마십니다. 들길을 걷는 사이 들내음을 마셔요. 숲길을 걷는 내내 숲내음을 받아들입니다. 나무를 하고 나물을 하면서 멧자락도 들도 숲도 모두 마음으로 고이 안습니다. 오랜 나날 나무를 하고 나물을 하던 길이기에 멀지도 힘들지도 않습니다. 철 따라 어느 나물을 훑을 만한지 서로 알고, 철 따라 어떤 숨결이 멧골과 숲에 깃들어 이웃이 되는가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할머니 탐구 생활》을 쓴 정청라 님으로서는 마을 이웃이 모두 할머니요 할아버지이니, 할머니하고 할아버지를 살펴봅니다. 마을 할머니는 마을 젊은 집안을 찬찬히 살펴볼 테지요. 젊은 아낙은 늙은 할매를 지켜보고, 늙은 할매는 젊은 아낙을 지켜보아요. 젊은 아낙은 늙은 할매를 따사로이 마주하고, 늙은 할매는 젊은 아낙을 따사로이 마주합니다. 아이들은 어머니 아버지뿐 아니라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 사이에서 함께 사랑을 받으면서 자랍니다. 마음으로 이웃이 되고 사랑으로 동무가 되는 살림살이를 찬찬히 물려받고 지켜보면서 자라요.



두 발로 걷는 길에서는 풍경과 하나로 어우러져 숱한 이야깃거리를 주워 담을 수가 있었다 … 차가 없어진 것을 무척 서운해 했던 다울이도 자전거나 수레를 실컷 탈 수 있어서 좋은지 나들이 갈 때마다 연신 노래를 불렀다. (91쪽)


잘은 몰라도 도시에 나가 길 가는 젊은 사람 붙잡고 나락이 뭔지 아냐고 물으면 대답 못할 사람도 수두룩하지 않을까 … 나는 그와 같은 무지와 무관심이 ‘쌀 수입 전면 개방’이라는 황당무계한 정책을 펼치게 하는 거라고 본다. 백성이 어리석으면 권력자가 백성을 함부로 보고 제 뜻대로 쥐고 흔들게 마련이니까. (107∼108쪽)





  할머니는 저마다 이야기꾼입니다. 할머니마다 오랜 나날 천천히 걸어온 살림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서로서로 노래꾼입니다. 할머니마다 오랫동안 찬찬히 일하고 살림하며 부른 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눈물이 젖은 이야기이든, 웃음이 묻어나는 노래이든, 할머니는 이녁한테 아이와 같을 젊은 아낙한테 도란도란 말을 걸고 받습니다. 두멧자락 할매가 쓰는 투박한 고장말을 모두 다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어도, 포근하면서 살가운 숨결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귀로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듣고 몸으로도 듣습니다. 할머니는 말에 앞서 몸이요, 이론이나 지식이 아닌 삶으로 모두 다 보여주고 알려주거든요.



“이것도 모르간디? 나는 통 이렇게 꿰매서 신어. 비 오는 날이믄 양말 꿰매는 것도 재미져.” (122쪽)


가지러 온다면 모를까 뭐하러 보내느냐고 그랬더니 “주고 자픈디? 뭐 있으믄 다 주고 자퍼”라고 대답하시며 그리움에 젖은 눈망울을 보이신다. (162쪽)


“너무 뜨거와도 안 되고 덜 뜨거와도 안 돼아. 너무 뜨거우믄 메주가 안 뜨고 거죽만 깨까시 말라붙더랑께. 메주가 추우믄 검은곰팡이가 나불고. 그란께 불 조절을 잘해야 써.” “어떻게 잘이요?” “워따, 그걸 어떻게 말로 혀. 집이가 적당히 알아서 해야제.” (177쪽)



  몸으로 겪은 삶을 몸으로 들려줍니다. 몸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몸으로 듣습니다. 《할머니 탐구 생활》을 쓴 정청라 님은 멧골마을에 깃든 작은 집에서 그야말로 작은 풀꽃 같은 할머니들을 마주하면서 이 작은 풀꽃 한 송이에서 온누리를 포근히 감싸는 기운을 느낍니다. 크고 밝으며 따스한 해님이 지구별을 감싸고, 작고 낮으며 조용히 피어나는 풀꽃이 지구별을 덮으면서 해님을 마주 바라봅니다. 넉넉하고 푸르며 싱그러운 숲이 마을을 어루만지고, 조그맣고 여리며 고요한 풀씨 한 톨이 지구별이 고루 퍼지면서 숲이 새롭게 자라도록 북돋웁니다.


  할머니 한 분은 풀꽃이요 풀씨라고 할 만합니다. 할머니 한 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풀꽃 같은 노래이고 풀꽃 같은 사랑이라고 할 만합니다. 할머니 한 분한테서 듣는 이야기는 풀꽃 같은 사랑이 어리는 이야기이고, 할머니 한 분한테서 받는 사랑은 숲을 이루는 작은 풀씨 같은 품에서 피어나는 사랑이라고 할 만합니다.





“걱정 안 해도 되겄네. 애기 배꾸리가 든든허니 꽉 찼구만. 배 곯은 아그는 배꾸리가 이러지를 않는단 말여. 내가 새대기 때, 이 마을 아그들 동냥젖 많이 묵여봐서 안당께.” (254쪽)


내가 밭일에 지쳐 고단해 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쉬다 해라!” 하는 설매실 할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그때가 쉬는 시간이 된다. 할머니가 어르신 몰래 가져온 소주병을 꺼내 큰 컵으로 하나 가득 따라 주시면 얼떨결에 받아 마시고는 알딸딸하게 취한다. (262쪽)



  오늘날 시골은 젊은이도 어린이도 자꾸 사라지는 고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시골은 할매와 할배한테서 살가우면서 슬기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고장이기도 합니다. 손수 삶을 짓는 살림살이를 보고 듣고 배우면서 마주할 수 있는 곳이 시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손수 사랑을 길어올린 보금자리를 보고 듣고 배우면서 어깨동무할 수 있는 곳이 시골이라 할 만합니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한 마디에 마음이 놓이고, 할머니가 건네는 이야기 한 마디에 마음이 다사롭습니다. 가슴으로 아기를 품은 숨결로 어머니가 되고, 어머니로 살며 아이를 돌보는 사이에 할머니가 되며, 할머니는 다시 천천히 아이다운 마음으로 거듭나면서 흙내음 어린 웃음을 짓습니다. 시골 아낙으로 살림을 짓는 정청라 님은 이 흙내음 어린 웃음을 날마다 보고 듣고 마주하는 사이에 아주 천천히 나이를 먹고 살림을 먹고 슬기를 먹고 이야기를 먹으면서 아이들하고 새롭게 자랄 테지요. 먼 뒷날 아이들이 씩씩하고 의젓하게 자라서 짝님을 만나 아이를 낳을 무렵이 되면, 멧골마을을 예쁘면서 알뜰히 지키고 가꾸는 새로운 할머니가 되실 테고요. 4348.12.2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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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후루 16
스에츠구 유키 글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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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86



기쁨을 누릴 수 있을 적에 아름답게 웃지

― 치하야후루 16

 스에츠구 유키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2.9.25. 4500원



  ‘카루타(かるた/carta)’를 하는 아이들이 나오는 만화책 《치하야후루》는 2015년까지 스물일곱째 권까지 한국말로 나옵니다. 앞으로 이 만화책이 몇 권까지 나올는지 모르나 꽤 오랫동안 더 나오리라고 느낍니다. 나는 처음에 ‘카루타’가 뭔가 하는 마음에 이 만화책을 읽었고, 고등학교를 다니며 새로운 삶과 꿈을 바라보는 아이들 몸짓이나 삶을 잘 그리는구나 싶어서 이 만화책을 보다가, 권수가 늘면서 대회에 나가서 솜씨를 겨루는 흐름으로만 나오기에 더 읽을 재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곰곰이 살피면, 적잖은 일본 만화는 ‘전국 대회’에 나가서 이기려고 하는 몸짓이 ‘긴 연재만화’를 이루는 뼈대나 줄거리가 되곤 합니다. 초밥 이야기이든, 라면 이야기이든, 피아노 이야기이든, 노래나 악기나 야구나 축구 이야기이든, 참말 일본 만화는 전국 대회를 무척 좋아하는구나 싶어요.


  그렇다고 전국 대회가 나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참 온갖 놀이를 놓고도 전국 대회를 벌이는구나 싶어서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는 제기차기나 공기놀이로도 전국 대회를 하는 셈이라고 할까요.


  어느 모로 본다면 ‘하모니카 전국 대회’라든지 ‘피리 전국 대회’도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그림 대회나 글쓰기 대회가 있고, 바둑 대회와 장기 대회가 있듯이 오목 대회도 재미있을 테고, 농구 대회나 배구 대회를 겨룰 만합니다. 다만 우리 삶을 이루는 수많은 놀이나 운동이나 솜씨를 놓고서 꼭 대회까지 치러서 겨루어야 하는지 아리송하기도 합니다.



“타이치, 나한테 팀이란 오직 ‘타이치와 치하야’뿐이었다.” “말하고 보이 부끄럽네. 됐다, 치아라. 그거랑은 상관없지만, 난 대학은 도쿄에서 다닐라 칸다.”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어, 어느 학교 칠 건데?” “추천받을 수 있는 학교. 내일 개인전에 우승하고 도쿄애 갈 거다.” (17∼18쪽)



  한국에 윷놀이 대회나 제기 대회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연날리기 대회나 자치기 대회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고무줄 대회라든지 땅따먹기 대회가 있을까요? 이런 대회까지 누군가 열 수 있습니다만, 대회를 열어서 ‘전문가’가 나오도록 하기보다는 여느 삶자리에서 즐겁게 누리면서 웃음꽃을 피울 때에 그야말로 ‘즐거움’이요 ‘기쁨’이 되리라 느낍니다. 빵 굽는 솜씨나 밥 짓는 솜씨를 겨루는 전국 대회가 있어도 재미있을 테지만, 솜씨를 겨루는 대회보다는 마을살이를 즐겁게 밝히는 조촐한 잔치마당이 있을 적에 한결 재미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어떤 대회가 있으면 ‘대회에 나가려는 생각’에 오랫동안 어느 한 가지 일이나 놀이만 합니다. 처음에는 재미난 놀이나 일이었을 수 있지만, ‘대회에 나가려고 하’면, 이때부터 사뭇 달라져요. 처음에는 배구나 축구나 야구나 농구도 재미있게 했어도, 대회를 앞두고는 ‘훈련’이나 ‘연습’으로 바뀝니다. 이제껏 그냥 재미나게 놀다가 대회 때문에 ‘꼭 이길 수 있도’록 작전을 짜고 계획을 세우지요.


  작전 짜기나 계획 세우기도 이 나름대로 머리를 쓰면서 북돋우는 일입니다. 그런데 밥 먹고 연습과 훈련만 하면서 온 하루를 보낸다면? 연습과 훈련으로 온 하루를 보낼 뿐 아니라 기나긴 해를 보낸다면? 축구 전문가나 야구 전문가로 아이들을 키운다면? 그러니까 만화책 《치하야후루》에 나오는 아이들이 ‘카루타 전문가’가 되어 오직 카루타 한 가지만 아주 빼어나게 잘 하는 어른이 된다면?



‘왼손으로도, 이렇게 필사적으로, 즐거운 듯이. 그러고 보면, 처음 치하야에게 한 장을 뺏겼을 때도, 왼손이었지. 재미있겠다. 얼마나 즐거울까. 치하야와 하는 카루타는.’ (83∼85쪽)


“쓰는 손을 다쳐서 힘들겠네. 나도 오른손으로 할까?”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 (109쪽)



  바둑을 잘 하는 사람은 하루 내내 바둑만 생각하겠지요. 아니, 바둑 전문가가 되어 바둑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라면 하루 내내 바둑만 생각하겠지요. 노래를 잘 불러서 노래로 먹고살 수 있습니다. 이른바 전문 가수가 될 수 있어요. 그러면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노래만 잘 부르면 되고, 밥은 못 짓거나 살림은 못 하거나 사랑은 영 모르거나 이웃은 하나도 헤아리지 못하거나 동무는 조금도 못 만나도 될 만한지 궁금합니다. 어느 한 가지를 잘 하기에 다른 여러 가지는 못 할 수 있습니다만, 잘 하는 한 가지만 해야 할는지, 아니면 스스로 새로운 삶과 살림을 찾거나 살피는 길은 안 걸어도 될는지 가만히 물어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만화책 《치하야후루》를 가로지르는 줄거리나 이야기는 그리 나쁘지 않지만, 권수가 이어지면서 ‘전국 대회로 더 깊이 빠지는’ 흐름은 썩 재미있지 않다고 할까요. 더 빠르고, 더 날렵하고, 더 매서우며, 더 힘센 ‘특급 선수’로 거듭나는 모습이 되어야 비로소 ‘성장 이야기(성장만화/성장소설)’라고 해야 할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퀸이랑 만났는데 어떻게 그런 얼굴을 할 수 있지? 어떻게? 보고 싶다. 아라타와 시노부의 결승전.’ (153쪽)


‘같은 급인 상대를 다섯 번 연속으로 이기는 걸, 왜 지금까지 못했을까?’ (165쪽)



  기쁨을 누릴 수 있을 적에 아름답게 웃습니다. 기쁘게 배우고 어우러질 적에 그야말로 환하게 노래합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처음으로 ‘카루타 놀이’가 태어났을 적에는 그야말로 재미나게 놀고, 기쁘게 어우러지며, 신나게 이야기꽃을 피우려는 마음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일본에서 카루타 놀이에 쓰는 ‘백 장짜리 카드’는 그냥 카드가 아니라 ‘짤막하게 읊은 노래를 적은 종이’입니다. 사랑을 노래하고 숲을 노래하며 삶과 마을과 꿈을 노래하는 이야기가 깃든 종이예요.


  어느모로 본다면 ‘노래종이’나 ‘시를 적은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루타라는 놀이를 즐기면서 노래(시)를 더 깊이 살피고, 카루타라는 놀이를 여럿이 둘러앉아서 하는 동안 노래(시)를 더 넓게 돌아보면서, 참말로 도란도란 이야기잔치를 누리는 셈이라 할 만해요.


  한국에서도 이런 놀이를 해 볼 수 있을 테지요. 종이를 백 장이든 이백 장이든 쉰 장이든 마련해서, 이 종이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짤막하게 적으면서 주거니 받거니 뺏거니 나누거니 하면서 놀 만합니다. 노래 한 마디로 꿈을 키우고, 놀이 하나로 웃음을 북돋웁니다. 글 한 줄로 사랑을 가꾸고, 이야기잔치를 열어서 기쁨을 한껏 살찌웁니다. 4348.12.2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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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12-27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과 애니 때문에 우리 한시와 하이쿠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서요..물론 언어의정원도 거기 한 몫 했고요.
좋은 소개 잘 읽고 가요!^^

숲노래 2015-12-27 01:48   좋아요 1 | URL
카루타라고 하는 놀이가
일본 사회에서 `옛 시`를 즐겁게 익히면서
쉽게 부를(읊을) 수 있도록 빚었다고 합니다.

이런 놀이는 우리 스스로도 재미나게 살려서
아이들하고 새롭게 즐길 만하겠구나 하고 느껴요.

[그장소] 2015-12-27 01:51   좋아요 0 | URL
백인 백수 ㅡ라는 데에서 온 거죠..대회가 계속되면 앞에서 시를 읊는 장인이 특유의 목소리를 돋궈서
낭송하고 그 시의 속도에 맞춰 카드를 날리고하죠..
우리도 그런 좋은 놀이를 좀 만들면.. 저도 바라곤 ㅡ했었어요..
 
가을 파로호 문학과지성 시인선 387
김영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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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08



시와 지우개

― 가을 파로호

 김영남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11.2.28. 7000원



  글씨를 쓰다가 틀리는 아이들은 지우개로 틀린 글씨를 지웁니다. 슥슥 지우개질을 마친 뒤 찬찬히 새 글씨를 넣습니다. 아이들은 글씨를 힘껏 눌러서 쓰기에 지우개로 연필 자국을 지워도 까만 글씨만 지울 뿐 꾸욱 눌린 자리까지 없애지 못합니다.


  볼펜으로 글씨를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지우지 못해서 까맣게 덧입히곤 합니다. 까맣게 덧입힌 글씨 뒤나 둘레에 새 글씨를 넣습니다. 틀린 글씨 자국이 고스란히 남으니 얼룩덜룩합니다. 이 얼룩덜룩한 자국만 보면 얼룩덜룩이만 보일 텐데, 얼룩덜룩한 자국은 건너뛰면, 종이에 어떤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가 하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우물가 집 뒤란의 누나 방에 // 굴러다니는 피임약이여, 그걸 // 영양제로 주워 먹고 건강한 오늘날이여 (앵두가 뒹굴면)


바람이 차고 푸르다 // 창밖에선 삐거덕삐거덕거리는 소리 // 청둥오리들 감나무 사이 무더기로 날 때 // 오리들은 누구의 집에 들러 // 대문 저리 슬프게 열며 지나가는 걸까 (성에꽃)



  김영남 님이 빚은 시집 《가을 파로호》(문학과지성사,2011)를 읽습니다. 가을과 파로호를 노래하면서 삶을 북돋우는 사랑이 어디에서 흘러와서 어디로 흐르는가 하는 대목을 찬찬히 건드리는 시를 읽습니다.


  앵두하고 누나 방하고 영양제하고 피임약이 서로 얼크러지는 시를 읽고, 바람이 찬 날 성에꽃을 보다가 문득 창밖으로 감나무 사이로 청둥오리를 바라보는 시를 읽습니다. 딸기에서 퍼지는 냄새에서 짧은치마 아가씨를 떠올리다가 다시 딸기 상자를 바라보는 시를 읽습니다.



그 딸기들 향기 따라가보면 /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들이 앉아 있다 / 팔과 다리 드러난 피부가 토실토실하고 / 잘 익은 것들 쪼그리고 앉아 있으니 위태롭고 (상자 안에 갇혀)


우울하면 명동으로 오세요 / 신데렐라 만화 보고 있으면 즐거워져요 (하이힐 하이힐)



  시집 《가을 파로호》를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지우개로 지울 수 있는 삶이 있을까요? 지우개로 지우고 새로 쓸 수 있는 삶이 있을까요? 지우개로 지우면 말끔히 사라져서 하나도 안 떠올릴 만한 삶이 될까요? 지우개로 지우고 또 지워도 다시 돋아나거나 드러나서 언제까지나 자꾸 떠오르는 삶은 아닐까요?


  가만히 보면 우리 삶은 지우개로 지운다고 해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틀리게 쓰든 잘못 적든 그냥 그대로 두고 바라보면 외려 마음속에서 잊히기도 합니다. 지우개로 지우기에 고칠 수 있거나 바꿀 수 있는 삶이 아니라, 생채기를 생채기 그대로 마주하면서 껴안을 적에 새롭게 거듭나거나 피어나는 삶이 아닌가 싶어요.


  깔깔거리며 고샅을 달리다가 철퍼덕 넘어지는 아이들이 일어섭니다. 처음에는 씩씩하게 일어서는데, 피를 보고 으앙 울기도 합니다. 피를 보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시 놀기도 하고, 넘어져서 아프다며 더 못 놀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든 모두 아이들 하기 나름입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깨졌어도 씩씩하게 새로 놀 수 있습니다. 넘어져서 무릎이 살짝 벗겨졌기에 이제 더 놀 마음이 사라질 수 있어요.


  어른들 삶에서도 아프거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힘겨운 일이 있어서 그만 삶을 접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아프거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힘겨운 일이 있기에 다시금 기운을 차리면서 한결 의젓하게 일어설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보내온 감 상자는 한 바퀴 빙 돈 테이프를 억세게 뜯어내도 어머니이고 상자 속 상자를 살짝 열어봐도 어머니입니다. (지독)



  감 상자에는 어머니 손길이 그대로 흐릅니다. 상자를 테이프로 감싼 자국에도 어머니 손길이 흐르고, 감알에도 감나무를 돌본 어머니 손길이 흐릅니다. 택배 상자에 적은 글씨에도 어머니 손길이 흐를 테지요.


  사랑을 읽으려 하면 언제나 사랑을 읽는 삶입니다. 아픔을 읽으려 하면 언제나 아픔을 읽는 삶입니다. 꿈을 읽으려 하면 언제나 꿈을 읽는 삶이요, 미움을 읽으려 하면 언제나 미움을 읽는 삶입니다.



하숙집 앞집 뒤란은 언제나 신비한 것들이 널려 있곤 했다 / 세수하다 건너다보는데, 그때 핀 목련은 끙끙 소리가 났다 (목련의 고통)


지우개란 이럴 때 자기 위해 / 갈매기 향기롭게 띄우는 것이겠지요 / 바다도 누가 던지는 조약돌 / 얌얌 하는 표정으로 받아먹다가 / 저렇게 퍼렇게 멍드는 것이겠고 (설리 폐선)



  시 한 줄로 삶을 노래합니다. 시 한 줄에 내 삶을 내 나름대로 실어서 띄웁니다. 나는 너한테 노래를 띄우고, 너는 나한테 노래를 보냅니다. 나는 너한테 노래를 읊어 주고, 너는 나한테 노래를 불러 줍니다.


  시 한 줄로 사랑을 적습니다. 시 한 줄에 내 사랑을 내 깜냥껏 적어서 덮습니다. 이제껏 살아오며 누린 사랑을 시로 적고, 오늘 살면서 누리려는 사랑을 시로 적으며, 앞으로 살아갈 길에 새롭게 펼치고픈 사랑을 시로 적습니다.


  장난감이 있어야 놀 수 있는 아이가 아니듯이, 연필하고 지우개가 있어야 시를 쓰는 어른이 아닙니다. 맨손으로도 얼마든지 신나게 노는 아이들이듯이, 맨손으로도 마음자락에 고운 숨결이 흐르는 시를 노래로 적고 읊고 새길 수 있는 어른입니다.



경석아, 빨리 학교 가자 // 내가 그 창을 뒤로하고 있으면 / 우산 높이 들고 곰이 찾아오고 / 청개구리가 달팽이에게로 마중 나가고 / 나뭇잎 타고 Roca란 말도 찾아오고 (봄밤)


그중 제일 위태로운 것 / 엉덩이에서 / 청색 팬티 하나 골라 입고 / 운동장 한가운데로 가 엎드린다 / 엎드려 친구의 고것을 / 가랑이 사이로 만진다 / 만지다가 훑어버린다 / 그러면 텀블렁 탑은 / 함성과 함께 무너지고 / 하늘은 오색 종이로 흩어지고 (좌판에 쌓인 홍옥은)



  지우개를 집어 지우려다가 문득 그만둡니다. 잘 쓴 글이라고 여기지만 문득 지우개로 깨끗이 지웁니다. 지우개를 집어서 지우다가 괜히 지웠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즐겁게 쓰고 나서 즐겁게 지우개질을 합니다.


  삶은 마음에 따라 바뀝니다. 가난한 살림이어도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하면 기쁜 살림입니다. 넉넉한 살림이어도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하면 슬픈 살림입니다. 밥을 두 그릇 먹어야 배부르지 않아요. 기쁘게 먹는 밥 한 그릇일 적에 배불러요. 기쁘게 먹는 밥이라면 반 그릇이나 한 숟갈로도 얼마든지 배불러요.


  파로호는 왜 파로호일까 하고 생각하다가, 처음에는 못이 아니었다가 못으로 바뀌고, 게다가 그 못물에 수많은 사람이 빠져죽었다는 일을 생각하다가, 그 못물을 둘러싸고 남북녘 수많은 젊은이가 아직도 총칼을 움켜쥐고 서로 노려보는 오늘 이 나라를 생각하다가 시집을 조용히 덮습니다. 가을은 저 멀리 가고 겨울 한복판에 들어선 시골집에서 아이들하고 어우러지며 노는 하루를 새롭게 열면서 내 마음속에 아로새길 시를 생각합니다. 여덟 살 큰아이가 ‘된장국’을 어떻게 끓이는가를 궁금하게 여기기에, 된장국 이야기를 내 나름대로 시로 써서 아이하고 읽어 볼까 하고 생각합니다. 낮에 아이들하고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에 나가 능금 몇 알 장만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4348.12.2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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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생태 개념수첩
노인향 지음 / 자연과생태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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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93



숲에서 도롱뇽이 사라지면 사람은 어떻게 될까

― 자연생태 개념수첩

 노인향 글

 자연과생태 펴냄, 2015.9.1. 12000원



  한 해가 저무는 섣달 끝자락에 갈퀴덩굴이 돋습니다. 갈퀴덩굴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많지 않으나, 한겨울에도 푸른 잎사귀를 내놓으면서 고마운 나물이 되어 줍니다. 볕이 안 드는 자리에서는 봄이 되어야 돋지만, 볕이 잘 드는 자리에서는 한겨울에도 씩씩하게 올라와요. 갈퀴덩굴은 무척 보드랍기 때문에 한손으로도 얼마든지 톡톡 훑을 만합니다. 두 손을 써서 훑으면 더 빨리 훑을 수 있습니다. 아침에 밥을 차리면서 냄비에 불을 올린 뒤에라도 가볍게 슥 훑어서 나물 한 접시를 올릴 만합니다.


  그러면 갈퀴덩굴은 무슨 맛일까요? 갈퀴덩굴 맛이지요. 딱히 남다르다 싶은 냄새나 맛까지 나지는 않는다 싶도록 옅은 냄새나 맛입니다. 풀먹기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아주 쉽게 먹을 만한 나물이라고 할 만해요. 무엇보다도 한겨울 밥상을 푸르게 돋보이도록 해 주는 고마운 풀입니다.


  아마 먼 옛날부터 사람뿐 아니라 풀짐승 모두 이 갈퀴덩굴 같은 들풀을 무척 반가이 여기고 고마이 누렸으리라 생각합니다. 볕발라서 눈이 쌓이지 않는 자리에 돋는 이 예쁘장한 풀포기는 수많은 목숨을 고이 살리면서 이 땅에서 씨앗을 퍼뜨렸으리라 생각해요.



곤충은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하늘을 날았고, 전체 동물 수의 80퍼센트를 웃돌며, 지구 생태계 순환을 돕는 데 이바지한다. 또한 먹지 않고도 자랄 수 있으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모습을 바꿀 수도 있다. 이쯤은 되어야 지구의 주인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32쪽)


도롱뇽, 제주도롱뇽, 고리도롱뇽, 꼬리치레도롱뇽, 그리고 이끼도롱뇽. 우리나라에 사는 도룡뇽 무리는 이 아이들이 모두다. 이 중 제주도롱뇽과 고리도롱뇽은 우리나라 고유종이고, 꼬리치레도롱뇽은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산다. (45쪽)



  노인향 님이 쓴 《자연생태 개념수첩》(자연과생태,2015)을 읽습니다. 책이름처럼 ‘자연생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그마한 책입니다. 어린이와 푸름이도 이 책을 수첩처럼 곁에 두고 찬찬히 읽으면서 ‘사람을 둘러싼 숲’을 돌아보도록 돕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가만히 보면 《자연생태 개념수첩》에 깃든 줄거리는 예부터 여느 어버이가 여느 아이한테 삶으로 물려주거나 들려주던 이야기입니다. 옛날에는 ‘책이 없었’으니 그저 삶으로 가르치거나 보여주었을 테지만, 책이 없었어도 누구나 손수 삶을 지었기에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삶을 찬찬히 지켜보면서 배워요. 풀이나 벌레나 짐승한테 붙인 이름도 어버이가 하나하나 알려주고, 풀이나 벌레나 짐승이 사람하고 어떤 사이인가 하는 대목도 어버이가 하나하나 가르칩니다.



관속식물의 전체 종수가 약 23만 종인 것에 비하면 (이끼식물은) 수가 매우 적지만, 지구를 푸릇푸릇하게 유지시켜 주는 데는 관속식물 못지않게 큰 역할을 하는 무리다. (81쪽)


목적 없이 우연히 발생한 돌연변이가 유전되는 것도 진화의 일부다. 사람의 눈에나 ‘발전’ 혹은 ‘퇴화’처럼 보일 뿐, 이유가 있든 없든 세대를 거듭하며 변하는 것은 모두 진화이다. (115쪽)



  도롱뇽 이야기를 다루는 대목에서 한동안 생각에 잠깁니다. 천성산에서 꼬리치레도롱뇽을 보았다고 하는 얘기가 퍼질 무렵, 고작 도롱뇽 한 마리 때문에 고속철도 공사를 멈추거나 공사구간을 바꿀 수 없다는 소리가 여러 매체에서 여러 지식인들 입과 손으로 넘쳐났습니다. 아마 ‘꼬리치레도롱뇽’이라는 이름조차 처음 들은 사람이 많을 테며, 도롱뇽을 두 눈으로 본 사람은 몹시 드물었겠지요. 한국하고 일본에만 산다고 하는 꼬리치레도롱뇽을 왜 지키거나 돌보아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퍽 많지 않았으랴 싶어요.


  그런데 말이지요, 도롱뇽 한 마리가 이 땅에서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이 땅에서 늑대나 이리나 여우나 범이 모조리 사라지고 말았는데, 이러한 숲짐승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회색늑대가 멸절된 (옐로스톤) 공원은 잠시 평화로워진 듯했으나, 이내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공원에서 나무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남아 있는 나무는 대부분 키가 2미터가 넘고 수령이 70년이 넘는 고목들뿐이었다. 이는 초식동물의 공격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키 큰 나무만 생존했고, 회색늑대를 전멸시킨 이후에는 나무가 아예 자라지 않았다는 것을 뜻했다. (130쪽)



  오늘날 시골에서는 멧돼지나 고라니나 노루가 마을까지 내려와서 밭을 헤집는다면서 걱정하거나 푸념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자, 그러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늑대나 이리나 여우나 범이 이 나라에서 ‘사라지지 않았’어도 멧돼지나 고라니나 노루가 함부로 마을까지 내려왔을까요? 숲에서 멧돼지나 고라니나 노루를 틈틈이 잡아서 먹는 짐승이 사라지면서 멧돼지니 고라니니 노루니 함부로 마을까지 내려오지 않을까요? 미국 옐로스톤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이 나라 이 땅에 큰 숲짐승이 사라지면서 숲이 달라집니다. 사람들이 농약을 함부로 치거나 개발을 마구 하기 때문에도 숲이 달라지지만, 숲을 고이 이루는 여러 목숨붙이 가운데 이 아이가 사라지고 저 아이가 사라지면서 그만 먹이사슬이 깨지고, 숲이 시름시름 앓아요.


  꼬리치레도롱뇽뿐 아니라 개구리 한 마리도 섣불리 잡아서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 뱀 한 마리도 함부로 잡아서 죽일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뱀 한 마리가 잡는 쥐가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직도 시골에서는 제비집을 허무는 분들이 많은데, 왜 제비집을 허무느냐 하면 1970년대부터 무시무시하게 불던 새마을운동 때문입니다.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면서 시골이며 도시이며 제비집을 허물어서 ‘집과 마을을 깨끗하게 하라’는 지시와 명령이 퍼졌거든요.


  제비가 사라지는 마을에서 날벌레가 날뜁니다. 제비뿐 아니라 들새나 숲새가 사라지는 곳에서 애벌레가 들끓습니다. 애벌레는 어떤 약으로도 물리치지 못해요. 사람만 괴롭지요.



외래종이 생태계교란생물로 변하는 데는 난개발과 남획 등으로 인해 자연환경이 훼손된 탓도 크다. 아직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잘 보존된 숲이나 산에서는 외래종이 쉽게 터를 잡지 못한다고 한다. (139쪽)



  함께 사는 지구별이기에 함께 즐거운 삶을 누리는 길을 생각할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터전을 이룹니다. 사람만 살 수 없고, 몇몇 힘센 나라만 잘살 수 없습니다. 서로 사이좋게 어우러질 때에 아름다운 삶이고,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손길이 될 때에 사랑스러운 삶입니다.


  이 지구별에서 누구나 똑같은 바람을 마신다는 대목을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나 똑같은 물을 마시고, 누구나 똑같은 흙을 밟으며, 누구나 똑같은 풀을 먹습니다. 누구나 똑같은 햇볕을 쬐고, 누구나 똑같은 비와 눈을 맞이합니다. 사람과 사람도 이웃이고, 사람과 벌레도 이웃입니다. 사람과 물고기도 이웃이고, 사람과 짐승도 이웃이에요. 《자연생태 개념수첩》은 ‘개념을 생각하’도록 도우려 합니다.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줍니다. 너와 내가 저마다 아름다운 숨결이라는 대목을 생각하도록 살며시 이끕니다.



일본어로 자연을 의미하는 ‘시젠’은 “산이나 강, 풀, 나무 등 인간과 인간의 손이 닿은 것을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것”이자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뜻하는데, 순서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국어사전의 정의와 거의 똑같다 할 만큼 비슷한 것 아닌가! (195쪽)


지금 우리가 쓰는 ‘자연’이라는 말은 서양의 ‘네이처’를 일본이 ‘시젠’으로 도입했고, 그것을 우리가 다시 ‘자연’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이라는 단어뿐만 아니라 그 안에 내포된 서구적 자연관도 그대로 흡수한 것이다. (196쪽)



  오늘날 한국에서 흔히 쓰는 ‘자연보호’ 같은 외침말은 일본에서 들어왔습니다. 시골에서는 ‘자연보호’ 같은 외침말이 없었어도, 또 ‘새마을운동’ 같은 바람이 불지 않았어도, 사람들 스스로 쓰레기 없이 정갈하며 아름답고 즐거운 마을살림과 두레살림을 북돋았습니다. 비닐이나 농약이나 비료나 기계가 아니라 구슬땀 흘리는 손길로 알뜰살뜰 흙을 가꾸던 시골살림이었다고 할까요. 자연보호나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기 앞서는 누구나 수수하게 따사로운 손길로 흙이며 숲이며 풀을 사랑하던 나날이었다고 할까요.


  ‘자연’이나 ‘생태’는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자연이든 생태이든 네이처이든, 이런 외국말이 아닌 한국말 숲이든, 모두 이 지구별과 우주에서 서로 어깨동무하는 삶과 사랑을 나타냅니다. 밥을 먹는 사람은 자연을 먹고 생태를 먹으며 네이처나 숲을 먹습니다. 나락 한 톨이 어디에서 나오겠어요? 바로 흙에서 나오지요. 나락 한 톨이 무엇을 받아들이며 자라겠어요? 해님하고 비님하고 흙님을 받아들이지요. 사람뿐 아니라 지구별 모든 목숨붙이가 늘 마시는 바람(공기)이 자연·생태·네이처·숲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마치 ‘자연’이라도 되는 듯이 잘못 알거나 가르치기 때문에, 또 ‘자연보호’는 도시에서 쓰레기를 안 버리거나 줄이는 길이라도 되는 듯이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어른들부터 자연이 무엇이고 숲이 무엇인가부터 처음부터 새롭게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숨이 있는 모두가 자연이고, 다른 목숨(밥)을 받아들이는 모두가 숲입니다. 사람은 사람 손길이 닿은 것도 먹고 다루며 곁에 둘 뿐 아니라, 숲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튼튼합니다. 숲은 숲대로 흐르기도 하지만, 사람이 사랑스레 어루만지는 손길을 받으면서 한결 푸릅니다. 숲을 볼 줄 알 때에 숲을 알고, 숲을 알 때에 숲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사람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느낍니다. 4348.12.2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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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29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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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67



산타 할아버지 월급은 누가 줄까?

― 천재 유교수의 생활 29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1.1.25. 4500원



  아이들은 날마다 자랍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새로운 삶을 지켜보고 바라보고 겪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자랍니다. 어른들도 날마다 자랍니다. 어른은 어른 나름대로 날마다 새로운 일을 하고 살림을 가꾸고 사랑을 나누고 이것저것 보듬으면서 자랍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이런 어른대로 자라고, 아이가 없는 어버이는 이런 삶대로 자랍니다. 아이들도 제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기도 하고, 제 어버이한테서 아무 사랑을 못 받으며 자라기도 합니다.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은 날마다 새롭게 배우면서 새롭게 자라려는 생각으로 사는 유교수 이야기를 다룹니다. 스물아홉째 권을 읽으면, 마을에서 거짓말쟁이라는 소리를 듣는 아이를 마주하는 유교수가 나오고, 대학 건물에서 무척 오랫동안 숨어 지내는 제자를 마주하는 유교수가 나오며, 만년필을 잃어버린 채 허둥거리는 유교수가 나오다가는, 어릴 적에 어머니를 잃은 유교수가 나옵니다. 유교수는 이런 삶을 거치면서 이러한 대목을 배우고, 저러한 삶을 지나는 동안 저러한 대목을 배웁니다.



“근데 그게 말짱 거짓말이었대요!” “그 소년은 왜 거짓말을 해야만 했던 거요?” (7쪽)


“힐끔힐끔 보는 사람은 믿을 수 없죠.” “그건 너의 주관이지. 힐끔 본다고 해도 사람은 저마다 생각이 다르다고 본단다. 그걸 뭉뚱그려 모두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건 너무 폐쇄적인 생각이 아닐까 싶구나.” (15쪽)



  누군가는 고개를 안 돌리고 바라봅니다. 누군가는 고개를 모로 하며 바라봅니다. 누군가는 고개를 홱 돌리고, 누군가는 고개를 가만히 돌립니다. 누군가는 눈을 질끈 감고, 누군가는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저마다 생각과 삶과 마음이 다릅니다. 저마다 다른 생각과 삶과 마음에 따라 이야기도 다릅니다.


  힐끔힐끔 본다고 해서 제대로 못 보지 않습니다. 언뜻 스치면서 본다고 해서 잘못 보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지켜보면서도 제대로 모르기 일쑤이고, 따사로운 눈길로 보는 듯했으나 정작 속으로는 딴 꿍꿍이가 있기도 해요.


  그러니까 겉모습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겉만 살피거나 헤아려서는 어떤 곳에서도 참을 가리지 못하지요.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면 거짓이라는 것을 확실히 입증해야 한다. 증명하려면 공부가 필요하지.” (19쪽)


“나는 이 세상에 완전히 거짓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인간이라는 필터를 통해 걸러지는 거니까. 나는 이 필터를 어떻게 갈고닦을 것인지에 관해 가장 관심이 많지.” (41∼42쪽)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 나오는 유교수는 어떤 천재일까요? 깊이 생각할 줄 알거나 곰곰이 돌아볼 줄 알기에 천재일까요? 오래도록 생각할 줄 알고, 한 번 듣거나 겪은 일은 잊지 않기에 천재일까요?


  그런데 유교수는 집에서 밥을 지으면 설거지를 할 줄 모릅니다. 맨 처음에는 밥조차 지을 줄 몰랐습니다. 유교수는 자동차를 몰 줄 모릅니다. 유교수는 자전거를 타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유교수는 아기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가를 모르고, 아기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도 몰라요.


  유교수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하고 맞부딪힐 적에 내빼지 않습니다. 모르는 일을 해야 하더라도 걱정하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놓고 끝까지 생각합니다. 다만, 혼자 끝까지 생각하느라 아무 일도 못 하기 일쑤요, 둘레에서 그 일을 도맡아서 해치우지요. 답답해 보이니까요.



“혼자서 살 수 없는 것은, 자네도 마찬가지 아닐까? 햇빛 속에서 단순하게 생각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수식도 있다네. 나는 그걸 보고 싶어.” (74∼75쪽)


“아무튼 일단 여기 앉아라. 아직 네 어머니와 제대로 이야기도 못 했잖니. 소리내서 말을 하라는 게 아니야. 그냥 보기만 하면 된다.” (184쪽)



  어느 모로 보면 어리숙한 몸짓이 꽤 많은 유교수이지만, 유교수가 유교수일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삶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유교수한테 가장 걸맞고 알맞으며 들어맞는 길을 스스로 찾아서 씩씩하게 걷기 때문에 유교수한테는 유교수 삶이 가장 즐겁습니다. 그리고 유교수는 ‘새롭게 배우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니 언제나 새롭게 배우기로 나서려고 해요. 새롭게 배우지 않는다면 스스로 이 땅에서 살아갈 뜻이 없다고 느낍니다.


  이리하여 나는 《천재 유교수의 생활》을 읽는 내내 오늘 이곳에서 내가 누리려 하는 ‘새롭게 배우기’란 무엇인가 하고 되새깁니다. 밥 한 그릇을 지어서 아이들하고 먹을 적에 새로운 마음이 되는지, 설거지를 하거나 비질을 하면서 새로운 몸짓이 되는지, 자전거를 타거나 들길을 걸을 적에 새로운 눈길이 되는지 가만히 헤아립니다. 책 한 권을 읽을 적에도 ‘다른 책’만 읽는지, 아니면 똑같은 책을 놓고도 ‘새롭게’ 읽는지 되새깁니다.



“하나코가 열심히 일했으니까 산타 할아버지는 좋은 선물을 많이 주실 거야.” “산타 할아버지는 월급을 누가 줘요? 산타 할아버지는 일 많이 하니까 세상에서 제일 부자여야 하잖아요.” “산타 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자선가인 자선사업가로 미루어 생각해야 할까. 아니, 애초에 …….” “할아버지도 몰라요?” (137∼138쪽)



  그나저나 천재 유교수한테도 때때로 막히는 길이 있습니다. 어느 때인가 하면, 이녁 손녀하고 마주할 때입니다. 손녀는 아직 스스로 잘 몰라서 유교수한테 스스럼없이 묻고, 유교수는 슬기롭게 대꾸하기도 하지만, 여태 한 번도 생각하거나 겪은 적이 없어서 우물쭈물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산타 할아버지는 월급을 누가 줘요?” 같은 말에 유교수는 할 말을 잃습니다. ‘바른대로 논리를 찾으려’고 하니, 그야말로 산타 할아버지라고 하는 넋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놓고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있는가 없는가부터 따져야 할 터인데, 산타 할아버지는 ‘있다’는 쪽으로 생각하기로 한 유교수이기에 손녀한테 “산타 할아버지는 좋은 선물을 많이 주실 거야” 하고 말했는데, 손녀가 되물은 말 “산타 할아버지는 월급을 누가 줘요?”를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가를 놓고 머리가 아파요.


  자, 산타 할아버지한테는 누가 월급을 줄까요? 산타 할아버지가 이녁 스스로 월급을 줄까요? 산타 할아버지가 받을 선물은 산타 할아버지가 스스로 줄까요? 천재 유교수 할아버지는 아마 이 수수께끼를 놓고 논문이나 책 한 권을 써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렇게 물을 적에는 실마리를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유교수 할아버지는 아이를 돌본 적이 없어서 실마리 찾기를 못 합니다.


  아이가 ‘산타 할아버지 월급’ 이야기를 물으면, 아마 웬만한 여느 어버이라면 이렇게 대꾸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게 말야, 산타 할아버지는 누가 월급을 줄까?” 아이한테 이렇게 되물으면 뜻밖에도 아이들은 저마다 다 다른 슬기로운 생각을 열어서 재미난 대꾸를 해 줍니다. 4348.12.2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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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12-25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산타 할아버지는 월급 받지 않는다는 것에 한표합니다. 그분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 거든요. ㅎㅎ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

숲노래 2015-12-26 01:15   좋아요 0 | URL
네, 산타 할아버지한테는 모든 것을 그 자리에서 창조하실 테니 월급이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겠지요. 유교수 님한테는 그러한 개념을 생각하기는 아직 어려울 듯합니다. 그래도 34권을 보면 유교수 님도 이제는 그분 아버님이 `삶에서 사람이 창조하는 사랑`이라는 대목에 한 발자국 다가선 듯도 하지만, 아직 `직관`이라는 세계하고는 좀 떨어져서 지내시니까요 ^^

재는재로 2015-12-25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한표요15년크리스미스도지나가고있네요좋은마스지내시고계신가요 좋은연휴되시기를

숲노래 2015-12-26 01:16   좋아요 0 | URL
아이들하고 놀고 아이들을 재우고 하면서 오늘이, 아니 어제가 25일이었구나 하고 이제 비로소 느낍니다 ^^;;; 하루가 참으로 빨리 지나갔네요. 재는재로 님도 늘 아름다운 하루로 마무리 지으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