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 춤의 영혼을 지닌 여자, 신지아 이야기, 2014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
신지아 지음 / 샨티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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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07



바람을 마시며 걷는 들길에서

―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신지아 글

 샨티 펴냄, 2014.2.3.



  아이들과 대숲을 걷습니다. 드넓은 대숲까지는 아니고 조그마한 대숲입니다. 바람이 조용한 날인데 대숲을 걸으며 댓잎이 바스락바스락 서로 부딪히면서 소리를 냅니다. 나는 이 댓잎 소리를 대나무가 우리를 반기는 노랫말로 듣습니다. 우리가 모처럼 이곳에 왔구나, 요 한동안 뜸했지? 마음으로 대나무한테 말을 겁니다. 대나무는 다시 바스락바스락 잎사귀를 흔들면서 노래합니다.


  대숲 안쪽에 동백나무가 있습니다. 문을 닫은 지 스무 해 가까이 된 시골 초등학교 둘레는 조그맣게 숲을 이룹니다. 나는 아이들과 이곳에서 책터(도서관)를 꾸립니다. 낡은 건물에 책과 책꽂이를 놓았고, 대숲 사이를 걷거나 풀밭을 밟으면서 우리 책터로 마실을 다닙니다. 문을 닫은 지 오래된 시골 초등학교라서, 이곳에 있는 나무는 어떤 사람 손길도 타지 않으면서 그대로 자랍니다. 나뭇줄기 목아지를 치는 사람이 없고, 꽃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무는 언제나 나무답게 하늘을 바라보면서 줄기를 올리고, 해마다 알맞춤한 철이 되면 곱다라니 꽃봉오리를 터뜨립니다.


  대숲 안쪽에서 자라는 동백나무에 동백꽃이 소담스럽습니다. 동백잎도 매우 보드랍고 맑습니다. 이제껏 이 시골에서 수많은 동백나무를 보았는데, 이토록 곱고 보드라운 동백잎은 처음으로 봅니다. 아마 사람 손길이며 눈길을 거의 안 탄 동백나무는 드물 테니까, 그저 나뭇결대로 싱그러이 숨쉬는 동백잎이나 동백꽃을 보기 어렵겠지요.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보는 동백꽃은 참 동백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리저리 가지가 잘리고 줄기가 끊기면서 아파서 끙끙거리는 동백꽃만 보았을 수 있습니다.



..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고 자유롭기 위해 태어났을 텐데 실제로는 아픔이나 괴로움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사는 경우가 많다 … 이제야 내가 얼마나 조율이 안 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소리를 내면 낼수록 내 속에 화가 많이 쌓여 있다는 게 느껴졌다 … 나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였고 내가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마침내 코코넛 속처럼 순수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한갓 욕심이요 본능적인 열등감의 반영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너무 달고 향이 부족하다니, 그것은 마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언젠가는 차이도 잘 만들 수 있기를 바랐지만, 동시에 나 또한 적당한 단맛과 은은한 향기로 가득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  (27, 33, 34, 219쪽)



  아이들과 우리 책터 둘레에 옮겨심은 나무에서도 겨울눈이 터지려고 합니다. 아직 이 나무 이름을 모릅니다. 처음에는 마을 어귀에서 자라던 나무이지만, 군청에서 마을마다 정자를 하나 세워 준다면서, 그동안 잘 자라던 나무를 뿌리째 뽑아서 길바닥에 버렸습니다. 제법 크게 자란 나무가 너무 안쓰럽고 안타깝기에, 아이들과 함께 수레에 싣고 우리 책터 둘레에 심었어요.


  잘 자라렴, 이곳에서 느긋하게 뿌리를 내리렴, 이곳에서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높이높이 솟으렴, 하고 늘 말을 겁니다. 이제 이 나무는 씩씩하게 뿌리를 내려서 겨울눈을 터뜨리려 하는구나 싶습니다. 우리 손길을 받고, 우리 마음길과 이어지면서, 우리 사랑길하고 하나가 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구나 싶어요.


  살그마니 겨울눈을 쓰다듬습니다. 살짝 입술을 댑니다. 어떤 나무이든 다 그러한데, 살그마니 쓰다듬거나 가만히 입술을 대면, 나뭇줄기가 파르르 떠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어요. 도시 한복판에 있는 거리나무도, 목아지가 뎅겅 잘라셔 슬피 우는 나무도, 우리가 곁에 다가가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가만히 안아 주면 파르르 몸을 떨면서 노래를 해요.



.. 무용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눈물과 땀 속에서 견뎌낸 숱한 시련들은 그 순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 춤은 언제 이렇게 나를 귀하고 아름답고 자유롭게 변신시켰는가 … 생각이 없었고, 생각할 수도 없었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이대로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속에 또 눈이 있었다. 그 눈이 바라보는 것은 이미 다른 것이었다 …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절에 다니셨고, 그것 때문에 엄마와 불화가 생긴 일이다. 그래도 할머니는 나를 지리산에 데려간 적도 있었다. 할머니는 지리산에서 천체를 읽는 공부를 하셨다고 했다. 별을 보면 세상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고 했는데, 그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  (44, 58, 66, 79쪽)



  바람이 붑니다. 봄바람은 상큼한 봄내음을 가득 안고 찾아옵니다. 이 봄바람을 느끼면서 아침에 빨래를 하고, 빨래를 마친 뒤 마당에 옷가지를 넙니다. 고운 볕과 상큼한 바람은 옷가지마다 골고루 스밉니다. 보송보송 마르는 동안 새로운 숨결이 옷가지마다 깃드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먼 옛날부터 이 땅 어버이는 하늘을 보면서 빨래를 했을 테고, 해와 바람을 살피면서 옷을 널었을 테며, 아이들은 해와 바람 내음이 그득 밴 옷을 기쁘게 입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봄에는 봄에 젖어드는 옷이요, 여름에는 여름에 감겨드는 옷이며, 가을에는 가을이 스며드는 옷이고, 겨울에는 겨울이 파고드는 옷입니다.


  마당에 가만히 서서 볕과 바람을 누릴라치면 으레 새가 나무에 앉아서 지저귑니다. 마당에 선 우람한 후박나무는 우리 마을을 지나가는 새들이 으레 쉬는 자리입니다. 온갖 새가 후박나무 우듬지에 앉아서 한참 노래합니다. 우리 집 위쪽으로 지나가는 전깃줄에 앉아서도 노래하고, 우리 집 헛간 지붕에 앉아서도 노래하며, 우리 집 뒤꼍 모과나무나 감나무나 매화나무 꼭대기에 앉아서도 노래합니다.


  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면, 언제나 소릿결이 다릅니다. 사람이 읊는 말도 똑같은 적이 없이 늘 다르고, 새가 지저귀는 노래도 똑같은 때가 없이 언제나 다릅니다. 새마다 노랫소리가 다릅니다. 철마다 노랫결이 다릅니다. 아침저녁으로 노랫마디가 다릅니다.



.. “꽃을 보고 풀 냄새를 맡고, 하늘을 가슴에 안고 낮잠을 자면 너무나 좋아요. 학교 가기 싫은 것이 돈 건가요?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요. 저는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재미없어요. 나한테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면서 말을 안 한다고 야단치고, 그리고 왜 나만 여기(정신병원) 있는 거죠?” … 내가 가진 육체로 무얼 할 수 있는지 몰랐다. 그런데 그 몸으로 이렇게 어마어마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니! 가슴이 절로 뛰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내 몸을 느껴 보았다. 몸이란 것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순간 내 몸이 벼락에 맞아 찌릿찌릿 금이 가는 느낌이었다 … “내 기억에 나는 이 땅에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비자 신청을 받아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나를 보세요. 나는 전생에 인도인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나를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  (85, 99, 138쪽)



  신지아 님이 쓴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샨티,2014)를 읽습니다. 한국에서 바알간 살결을 입고 태어난 신지아 님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교보다 인왕산을 사랑했고, 학교를 마친 뒤에 인도로 건너가서 춤을 사랑했으며, 다시 여러 나라를 두루 돌면서 새로운 꿈을 사랑합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신지아 님 살결을 놓고 수술을 해야 한다느니 옷으로 가려야 한다느니 말했다는데, ‘빨강’이라는 빛깔은 여느 빛깔이 아닙니다. 타오르는 사랑이 빨강이요, 꽃이 지면서 맺는 수많은 열매가 빨강이며, 풀과 나무가 맺는 수많은 꽃이 빨강입니다. 우리 몸을 타고 흐르는 핏물이 빨강이고, 말괄량이 삐삐나 푸른지붕 앤도 머리카락이 빨강이에요.


  빨강이라는 빛깔은 우리를 살리는 숨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따뜻하면서 넉넉하게 새로 태어나도록 북돋우는 빛깔이 바로 빨강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두 눈을 고정하고 집중해서 바라보면 대상도 내게 반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춤이란 생각이 아니고 움직임이란 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움직임에 몸을 맡기면 저절로 생성되는 에너지가 춤이라는 것을 그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 내 삶을 통해서 내 몸과 마음 그 자체가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 그것이 내가 갖고 싶은 다이아몬드였다 … 그날 이후로 벌레 소리 말고도 들리는 모든 소리에 심장의 리듬을 맞춰 보는 놀이를 했다. 개들의 울음소리, 사람들이 내는 온갖 소음에도 심장의 리듬을 맞췄다. 그러고 나니 세상이 온통 리듬으로 구성된 완벽한 오케스트라라는 느낌이 들고, 세상에 시끄러운 소리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  (97, 143, 178. 222쪽)



  즐겁게 부는 바람을 쐬는 사람은 즐겁습니다. 신나게 부는 바람을 쐬는 사람은 신납니다. 이리하여, 즐거운 바람이 감도는 보금자리에서는 누구나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워요. 신나는 바람이 넘치는 일터에서는 저마다 신나게 일해요.


  바람이 기운을 빚습니다. 바람 따라 기운이 달라집니다. 그러면, 바람은 어디에서 일어날까요. 바람은 왜 일어날까요.


  내가 읊는 한 마디에서 바람이 새로 솟습니다. 내 말 한 마디가 맑은 바람이 되기도 하고, 슬픈 바람이 되기도 하며, 아픈 바람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너한테 띄우는 말 한 마디는 바람을 타고 훨훨 날면서 온누리에 새로운 빛으로 스며듭니다. 그러니, 내 입에서 나오는 말마디는 바로 내 삶을 바꾸는 말이요, 내 삶을 새로 짓는 말입니다.


  춤을 출 적에도, 빵을 구울 적에도, 빗물로 촉촉히 젖은 들길을 걸을 적에도, 아득하게 높은 곳에 있는 커다란 못물을 만날 적에도, 우리는 언제나 바람과 함께 새로운 기운을 느낍니다. 바람은 이야기꾼입니다. 바람은 개구쟁이입니다. 바람은 장난꾸러기요 말괄량이입니다. 바람은 마법사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도록 도와주고, 바람은 들판에서 온갖 곡식이 알뜰히 익도록 돕습니다.


  내 춤사위는 바람결이 되어 퍼집니다. 내 노랫마디는 바람소리가 되어 흐릅니다. 내 몸짓은 바람이 짓는 웃음이고, 내 말마디는 바람이 베푸는 선물입니다.



.. “저는 오늘을 살고 있어요. 오늘만 생각해요.” … 무용 너머의 다음 단계를 바라보는 느낌이었고, 가야 할 새로운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떨리는 마음 밑으로 벌써 무의식이 진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 내 영혼은 자유롭게 과거의 시간으로 가고 있는 듯했다. 육체를 갖기 이전의 영혼이, 바람이나 안개처럼, 아니 마치 솜사탕 기계에서 올라오는 하얀 솜뭉치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회전하고 있었다. 언어는 없었지만,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었다 … “저는 지아라는 아주 작은 행성입니다. 저 또한 우주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름답고 자유롭고 또한 항상 변화하는 제가 이 자리에서 행성 신들 앞에 꽃과 향을 바칩니다. 우주의 에너지로부터 보호를 받고 싶습니다. 두려움을 완전히 떨칠 수 있도록.” ..  (184. 269, 270∼271, 277쪽)



  신지아 님은 스스로 삶을 지으려 합니다. 남이 이끄는 삶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신지아 님은 스스로 마음소리를 들으려 합니다. 남이 읊는 말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어떤 스승한테서 춤사위를 배우더라도 스승을 곧이곧대로 따라가는 춤사위가 아니라, 춤사위에 깃든 넋과 빛과 고요를 함께 바라봅니다. 길을 걷고 아이를 낳으며 밭을 일구고 빵을 구울 적에도 어떤 틀에 박힌 흐름이 아니라, 스스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여기는 자리로 나아가도록 다스립니다.


  ‘자유’란 무엇일까요. 한자말 ‘자유’를 한국말로 옮기면 ‘홀가분’입니다. 홀가분한 몸짓이 바로 ‘자유로운’ 몸짓이요, 홀가분한 넋이 바로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그러면 ‘홀가분하다’는 무엇일까요. 한국말 ‘홀가분하다’는 “홀로 가볍다”를 나타냅니다. 혼자 똑 떨어지기에 가볍지 아닙니다. 홀로서기를 할 수 있어서 가볍습니다. 손수 삶을 지을 수 있기에 가볍습니다. 손수 삶을 짓는 나날을 늘 누리니, 하늘을 가르는 새처럼 가볍게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껏 노래하고 춤추며 웃습니다.



.. “네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 결혼은 지나간 공연에 불과해. 내가 너처럼 바뀌길 바라는 거야? 격 없는 히피로? 내가 아는 히피란 자유롭게 산다는 건데, 타락하는 것과 자유로운 것은 구분해야 되지 않겠어? … 우리 몸은 우리의 신전이야. 귀하게 여기고 깨끗하고 소중하게 다뤄 줘. 신을 모시는 장소니까.” … 우리는 아이의 탯줄을 땅에 묻고 작은 나무를 심으며 (첫째 아이) 아루나의 탄생을 감사했다 … 병원을 나와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갓다. (둘째 아이) 고빈다를 껴안은 채 말했다. “고빈다, ‘나는 빛이다. 나는 사랑이다. 나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영혼이다’ 따라해 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아니 심장의 소리로 고빈다가 소리를 내었다 ..  (280, 294, 330쪽)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해서 홀가분하거나 자유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홀로서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릅니다. 내 삶을 스스로 바라보는 눈길이 없다면, 스스로 하려는 길대로 가지 않고, 이리저리 휩쓸리니, 이런 몸짓은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닙니다.


  ‘마음대로’ 한다고 해서 홀가분하거나 자유롭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을 내 사랑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면 ‘마음대로’라고 할 수 없어요. 내 마음을 스스로 알지 못하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나 놀이란 없습니다.


  삶을 스스로 짓고, 삶을 스스로 바라보며, 삶을 스스로 알 때에, 비로소 ‘마음’을 찾아서, 이 마음에 내 꿈을 씨앗으로 심습니다. 내 마음에 내 꿈을 지어서 생각이라는 씨앗으로 심기에, 내 마음대로 어떤 일이든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면 스스로 서야 합니다. 마음대로 하고 싶다면 손수 하루를 지어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은 스스로 아름답게 서는 일이고, 마음대로 누리는 놀이는 스스로 사랑스레 춤추는 몸짓입니다.



.. 내 존재가 참으로 신비하고 아름답다고 읊조리면서 하루 종일 내린 비로 축축해진 잔디밭을 하염없이 걸었다 … 보석을 찾기보다는 스스로 보석이 되기로 결심했다 … 나는 모국어에 얼마나 큰 위로의 힘이 있는지 원고를 쓰면서 깨달았다 … 내가 없으면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는 것, 나를 사랑하지 않거나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지 못하면 사랑을 안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다 … “바람이 너를 휘감고 스칠 때, 몸을 움직이기 전에 먼저 느껴 봐. 느끼기 전에 감사하고, 감사하기 전에 존중하는 것이 중요해.” … “지금 새롭게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이 기회를 부정하거나 숨기고 싶지 않아 … 나는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두려워서 그것을 피하거나, 그 결과를 감당하기 힘들어서 참사랑을 잃고 싶진 않아.” ..  (342, 343, 344, 347, 368쪽)



  예부터 지구별 누구나 손수 삶을 지었습니다. 예부터 지구별 누구라도 손수 집을 지어서 보금자리를 이루었고, 손수 밥을 일구어 살림을 꾸렸으며, 손수 옷을 짜서 기쁘게 입었습니다. 집과 밥과 옷을 손수 가꾸어서 나누기에 삶을 손수 가꾸어서 누립니다.


  학교가 있기에 집짓기와 밥짓기와 옷짓기를 배우지 않습니다. 삶이 있어야 집짓기와 밥짓기와 옷짓기를 배웁니다. 오늘날 학교를 보면, 집과 밥과 옷을 가르치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한국에 있는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칠까요? 대학입시 지식만 가르쳐요. 아니, 이마저 가르침이 아닌 들들 볶아서 외우도록 하는 짓입니다. 사람 되는 길을 가르치거나 보여주지 못하는 채, 종이 되어 뒹구는 길을 가르치거나 보여주는 학교입니다. 이런 학교를 다니면서 미치지 않는다면 외려 고개를 갸우뚱할 노릇입니다.


  삶이기에 스스로 노래할 수 있고, 사랑이기에 스스로 꿈꿀 수 있습니다. 삶이기에 내 모든 숨결을 담을 수 있으며, 사랑이기에 내 온 넋을 실을 수 있습니다.



.. 우리는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고 있고, 지난 슬픔과 아픔과 고통도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으로 얼마든지 다시 태어날 수 있다 … 어떤 현실 속에서도 내 꿈을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 ..  (377, 378쪽)



  들길을 걷습니다. 내 모습을 똑똑히 바라보면서 들길을 걷습니다. 들길을 걷는 동안 내가 나한테 가장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숲길을 걷습니다. 내 모습을 제대로 마주하면서 숲길을 걷습니다. 숲길을 걷는 동안 내가 바로 나한테 가장 따스하면서 너그러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내가 나로 서면서 사랑이 자랍니다. 네가 너로 서면서 사랑이 태어납니다. 나와 너는 서로 아름다운 숨결이기에 서로 손을 맞잡고 빙그레 웃습니다. 서로 웃음꽃을 피울 수 있기에 이야기꽃을 함께 피웁니다. 웃음꽃과 이야기꽃이 가득한 이 보금자리에서는 삶이 고운 꽃으로 피어나고, 언제나 파란 하늘 같은 바람이 산들산들 붑니다. 해님이 벙글벙글 노래합니다. 4348.3.2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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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별 세계 거장들의 그림책 1
파블로 네루다 지음, 남진희 옮김, 엘레나 오드리오솔라 그림 / 살림어린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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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92



별은 저 하늘에 있어

― 안녕, 나의 별

 파블로 네루다 글

 엘레나 오드리오솔라 그림

 살림어린이 펴냄, 2010.7.15.



  해가 기울면 별이 돋습니다. 해가 있어도 별은 늘 그곳에 있었지만, 우리한테는 햇빛이 대단히 밝기에 여느 별빛은 햇빛에 가려 낮에 잘 안 보입니다. 밤에 별이 돋을 무렵, 아이들이 외칩니다. 저기 별 있어! 그런데 하나밖에 없네! 아이들을 바라보며 빙긋 웃다가 한 마디 들려줍니다. 네가 별을 보고 싶다고 불러야 별이 나오지. 별이 없다고 여기니까 별이 안 나와. 별더러 얼른 나와서 우리 함께 놀자 하고 부르면 별이 네 목소리를 듣고 하나씩 둘씩 차근차근 반짝반짝 빛나면서 찾아온단다.



.. 높이 솟은 높다란 빌딩 꼭대기 그곳에서 고요한 어두움을 향해 몸을 기울이면 꼭 밤하늘을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아요 ..  (2쪽)



  파랗던 하늘이 보랏빛이 되다가 차츰 까맣게 물들어 온통 새까만 빛이 되면, 바야흐로 별잔치입니다. 낮에는 해님이 알록달록 무지개빛으로 온누리를 밝히고, 밤에는 별님이 반짝반짝 신나는 웃음빛으로 온누리를 적십니다.


  밤에는 별자리를 헤아립니다. 별자리에는 가없고 끝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양에서도 동양에서도 저마다 별자리를 그리면서 이야기를 빚습니다. 나는 나대로 내 별자리를 그리면서 내 이야기를 담습니다. 언제나 새로우면서 즐거운 이야기가 천천히 솟습니다.




.. 수정을 닮은 투명한 별은 수줍게 떨고 있어요. 그런데 이상해요. 갑자기 허리춤에서 얼음보다 서늘한 기운을 느꼈어요. 하늘의 천사가 내게 벌이라도 내리려는 걸까요 ..  (7쪽)



  파블로 네루다 님이 쓴 글에 엘레나 오드리오솔라 님이 그림을 넣은 《안녕, 나의 별》(살림어린이,2010)이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단출하면서 정갈하게 쓴 시에 붙이는 그림은 어떤 숨결이 되어 훨훨 날갯짓을 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노래가 되어 흐르는 싯말에 얹는 그림은 어떤 바람이 되어 하늘을 가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나의 별”이 아닌 “내 별”이나 “우리 별”로 책이름을 붙였어야지 싶어요. “나의 별”이라는 한국말은 없습니다. 어린이와 함께 읽는 그림책인데, 이런 번역이라면 좀 얄궂습니다. “잘 가렴, 내 별아”라든지 “잘 가, 우리 별”처럼 책이름을 다시 헤아려 볼 만합니다.



.. 별은 내게 마치 밤하늘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처럼 깜빡였어요. 별이 내뿜는 맑고 찬란한 빛은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생활을 뒤흔들었죠 ..  (12쪽)




  《안녕, 나의 별》은 내 곁에 두고 싶던 별을 하늘로 돌려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에 눈길도 마음도 온통 사로잡혀서 그만 별 한 송이를 몰래 따서 우리 집에 두었다고 해요. 별빛을 오직 나 혼자 누리려는 마음이었겠지요.


  별은 너른 누리를 골고루 비춥니다. 별은 어느 한 사람한테만 빛을 비추지 않습니다. 해도 별과 같아요. 어느 한두 사람한테만 빛이나 볕을 베풀지 않아요. 모든 사람한테 골고루 빛과 볕을 베풀어요.


  모든 사람과 나무와 풀과 벌레와 짐승한테 따사로우면서 눈부신 숨결로 찾아가던 별은 어느새 풀이 죽습니다. 차가워지고 맙니다. 그러나, 별은 새롭게 기운을 차립니다. 별을 가두면 가둘수록 별은 더욱 밝게 빛납니다. 별은 홀가분하게 하늘을 날고 싶으니 어둡고 외로운 곳에서 훨씬 밝게 빛납니다.



.. 나는 얼음처럼 차가워진 별을 집어 물속에 살며시 놓아 주었어요 ..  (21쪽)



  별 한 송이를 몰래 데려와서 집에 두려던 사람은 부끄럽습니다. 남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습니다. 스스로 부끄럽습니다. 다시 몰래 별을 데리고 집에서 나옵니다. 숲으로 갑니다. 숲에 가서 못에 별을 놓아 줍니다. 별은 못에서 다시 삶을 찾고, 못을 환하게 비춘 뒤 하늘로 돌아갑니다. 이제 별빛은 다시 모든 사람한테 새롭게 빛줄기를 베풉니다. 부끄러웠던 사람한테도 다른 이웃한테도, 풀 한 포기와 벌레 한 마리한테도 별빛이 포근하면서 부드럽게 흐릅니다. 4348.3.2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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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하셨어요? Buonappetito!
야마자키 마리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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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86



함께 먹는 밥 한 그릇

― 식사는 하셨어요?

 야마자키 마리 글·그림

 정은서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3.9.6.



  아이들과 밥을 먹다 보면, 아이들이 얌전히 밥상맡에 앉아서 밥그릇을 비우는 모습을 보기 참 어렵습니다. 참말 그렇게 몸이 근질근질한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면 곧바로 내 어릴 적을 돌아봅니다. 나는 어릴 적에 어떠했는지 생각합니다. 오늘 내 앞에 있는 아이들을 꾸짖거나 나무라지만, 막상 나도 이 아이들만 한 나이에는 밥상맡에서 온몸이 근질거려서 밖에 나가서 뛰놀고 싶지 않았나 하고 돌아봅니다.


  아주 배가 고팠으면 밥술을 뜨느라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참말 아주 빠르게 밥그릇을 비웁니다. 그런데 제법 배가 고프더라도 밥술만 마냥 뜨지 않습니다. 몇 숟갈 먹고 나서 숨을 돌리면, 아 조금 놀아 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나무라지요. 밥을 다 먹고 놀라면서 나무랍니다. 그러면 다시 밥그릇에 고개를 처박지만, 이내 고개를 살며시 들고 놀이를 찾습니다. 이러다가 또 꾸지람을 듣고, 또 놀려 하고, 또 꾸지람을 듣고 …….


  아이들과 밥을 먹으면서 밥상을 치우는 날은 거의 없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제대로 밥에 마음을 못 쓴 탓이라고 할 텐데, 더 생각해 보니, 나부터 어릴 적에 ‘꼼짝없이 밥상맡에 앉아서 밥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움직이지 못하던 일’이 아주 힘들었구나 싶습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우리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놀다가 먹다가 다시 놀다가 먹도록 두는구나 싶습니다.



- ‘몰랐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케첩이 들어가면 요리로 쳐주지도 않는구나. 속는 셈치고 일단 먹어 봐.’ (7쪽)

- ‘이탈리아에서는 ‘쌀’로 만든 도시락이란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물건인 모양이다.’ (19쪽)





  밥을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어도 즐겁습니다. 반가운 이와 함께 있으면, 밥을 함께 먹으면서 아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즐겁습니다. 그저 한자리에 있기만 하면서 즐겁습니다.


  그런데, 안 반가운 이하고 밥을 먹으면, 밥을 먹는 내내 이야기를 나누어도 몸이 고단합니다. 마음이 맞지 않는 이하고 밥을 먹는 자리에 있으면, 그야말로 몸둘 바를 모릅니다. 한입으로는 밥을 먹지만 제대로 씹는지 삼키는지 잘 모릅니다.


  밥상맡에서 으레 생각에 잠깁니다. 왜 반가운 이와 있을 적에는 이야기를 나누어도 즐겁고 안 나누어도 즐거울까요? 왜 안 반가운 이와 있을 적에는 이야기를 안 나누면 답답하고 이야기를 나누어도 답답할까요?



- ‘포르치니가 입에 들어 있는 동안이라면 아마 어떤 악담이나 욕설도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엄마가 늙어서 다 죽어 가면 포르치니를 입 안에 집어넣어! 알았지?” “뭣? 싫어, 진짜 싫어! 쪽팔려서 싫어!” (42∼43쪽)

- ‘하우스메이트였던 비슷한 처지의 고학생들과 주머니를 탈탈 털고, 아이디어를 긁어모아 조금이라도 맛있게 먹으려고 노력했다. 장담했던 대로 티나는 초라한 재료만 가지고도 맛있는 요리를 만들었다. 빈궁한 이탈리아의 식생활에 익숙해지고 10년이 지나 오랜만에 일본에 귀국해 보니(1995년),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 있어서 놀랐다.’ (61쪽)




  야마자키 마리 님이 빚은 만화책 《식사는 하셨어요?》(애니북스,2013)를 가만히 읽습니다. 그린이가 이탈리아에서 가난한 살림을 꾸리면서 그림을 한창 배우던 무렵에 어떻게 지냈는가 하는 이야기를 살짝 우스꽝스레 보여주는 만화입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살림돈이 죄 바닥이 나서 쫄쫄 굶어야 했을 적에 더없이 고단하면서 힘들었을 텐데, 이 만화책으로만 본다면, 고단하고 힘들면서도 서로 웃고 이야기꽃을 피웠구나 싶습니다. 기쁨도 나누고 슬픔도 나눈다고 할까요. 없는 돈으로도 함께 누릴 밥을 짓고, 더 적은 돈으로 더 많이 먹을 밥을 푸짐하게 짓는 길을 자꾸자꾸 생각한다고 할까요.



- ‘《맨발의 겐》의 비참한 내용에 전율하면서도, 페이지를 넘길수록 겐과 똑같은 공복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겐과 똑같은 음식이 먹고 싶어. 얼마 안 되는 쌀을 병에 넣고 몽둥이로 빻은 후, 거의 맹물이나 다름없는 죽을 쑨다.’ “아아, 끝내준다!” ‘돌이켜보면 내가 자극을 받는 건 검소하고 소박한 것들뿐이네. 참으로 신기한 심리다. 호화로운 요리보다 절박한 상황 속의 검소한 요리.’ (70쪽)





  야마자키 마리 님이 가난하지 않았으면 그림을 배웠을까 안 배웠을까 궁금합니다. 가난하지 않았어도 그림을 배웠다면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궁금합니다. 모자라거나 아쉬운 것 하나 없이 이탈리아에서 그림을 배우다가 만화를 그렸다면, 이녁은 우리한테 무엇을 보여주는 만화를 그렸을까 궁금합니다.


  더 헤아려 보면, 열일곱 살 나이에 혼자 이탈리아로 떠나서 그림을 배우겠다고 하는 아이를 둔 이녁 어버이부터 재미있고 대단합니다.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조차 안 마친 나이인데, 이러한 나이에 먼 나라로 열 해 동안 배움마실을 혼자 떠나도록 할 만한 어버이는 얼마나 있을까요. 야마자키 마리 님은 이녁이 겪은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는데, 이녁 어버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만화로 그려 보아도 무척 재미있으면서 남다르리라 느낍니다. 어떻게 배움마실을 떠날 수 있었고, 어떻게 열네 살에 혼자 유럽여행을 떠날 수 있었으며, 어릴 적에는 집에서 어버이한테서 무엇을 보고 듣고 배우고 물려받으면서 삶을 지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그려서 선보일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진작 나왔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 “이거든 저거든 다 똑같은 쌀 아닌가?” “당신은 몰라.” “내는 안다! 이탈리아 요리에서도 자료가 생명인걸! 말해두겠는데, 우리 집도 재료를 까다롭게 따져 가며 먹는다구! 우리 밭만 봐도 알 수 있잖아?” (86쪽)

- ‘리오에서 현지 친구와 합류 … 브라질 여성은 몸매 관리에 무척 신경을 쓴다. 그리고선 끝이 안 보이는 리오의 해안을 몇 km나 파워 워킹 … 그 후 우리는 슈하스코라는 브라질식 스테이크 식당으로 연행되었다 … 슈하스코 다음엔 삼바 그룹의 콘서트로 연행되었다. 2시간 내내 춤 췄을 무렵, 친구가 드디어 복통과 피로로 쓰러졌다. 이런 스케줄이 열흘이나 계속된 덕분에, 코끼리처럼 먹고 마셨어도 내 체중은 확 줄어든 것이었다.’ (123∼125쪽)




  배가 부르게 먹든 배를 곯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엄청난 밥을 먹든 꾀죄죄한 밥을 먹든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함께 먹는 밥이 맛있습니다. 함께 누리는 밥이 즐겁습니다. 함께 지어서 함께 차리고 함께 즐긴 뒤에 함께 치우는 밥상이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요리사가 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으리으리한 식당이나 레스토랑이나 호텔에 가 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류 요리사한테서 대접을 받아 보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사랑을 담은 밥을 즐기면 되고, 우리는 서로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밥을 먹으면 됩니다.


  물 한 잔을 마셔도 웃으면서 마시면 내 몸에 새로운 기운이 샘솟습니다. 밥 한 술을 떠도 웃으면서 먹으면 내 마음에 새로운 사랑이 솟아납니다.


  비싼 밥이 아닌 따스한 밥이 고맙습니다. 멋진 밥이 아니어도 넉넉한 손길로 나누어 주는 밥 한 술이 반갑습니다. ‘밥은 먹었니?’ 하고 건네는 말 한 마디에는 언제나 깊고 너른 사랑이 묻어나기 마련입니다. ‘밥부터 먹고 하자.’ 하고 들려주는 말 한 마디에는 늘 따사롭고 너그러운 숨결이 깃들기 마련입니다. 4348.3.2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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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배운다 - 비틀린 문명과 삶, 교육을 비추는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깊은 지혜와 성찰 나무에게 배운다 1
니시오카 쓰네카즈 구술, 시오노 요네마쓰 엮음, 최성현 옮김 / 상추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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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71



나무와 함께 살기

― 나무에게 배운다

 니시오카 쓰네카즈 글

 최성현 옮김

 상추쌈 펴냄, 2013.4.5.



  나는 나무하고 함께 삽니다. 내가 아이와 심은 나무가 있고, 우리 집 나무에서 가지를 쳐서 옮겨심은 나무가 있습니다. 아직 우리 땅은 그리 넓지 않아서 나무가 몇 그루 없지만, 아침 낮 저녁으로 우리 나무를 돌아봅니다. 아이들도 날마다 나무를 마주하면서 인사를 합니다. 날마다 나무를 들여다보면, 얼마나 자라는지 헤아릴 수 있고, 겨울눈이 날마다 어느 만큼 부풀다가 어느 날 비로소 한꺼번에 터지는지 알 수 있어요.


  우리 집 나무는 마을에서도 좀 늦게 꽃이 피고, 이 고장에서도 좀 늦게 꽃망울이 터집니다. 다른 집이나 마을에서는 훨씬 일찍 동백꽃이 피고 매화꽃이 터지지만, 우리 집은 다른 집이나 마을과 견주면 보름 남짓 늦게 꽃송이가 열려요. 그러나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천천히 피어나는 꽃은 한결 오래도록 꽃내음을 나누어 줍니다. 찬찬히 피어나는 꽃은 더 짙고 깊은 꽃내음을 오래오래 우리한테 베풀어 줍니다.



.. 자연이 가르쳐 주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자연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합니다 … 책을 읽는다거나, 지식을 지나치게 채워 넣게 되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자연이나 자신의 생명에 관해서는 무지해집니다 …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연을 스스로 깨우쳐야 합니다 … 한 그루의 나무라도, 그것이 어떻게 해서 씨앗으로 뿌려지고 어떻게 다른 나무와 겨루며 컸을까, 거기는 어떤 산이었을까, 바람이 심한 곳은 아니었을까, 햇빛은 어느 쪽으로 받았을까, 저라면 이런 생각을 합니다 ..  (20∼21, 22∼23쪽)



  나는 아이들과 함께 이 마을에서 땅을 차츰 넓혀서 나무를 심어서 누릴 자리를 꾸준히 늘릴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나무가 우거진 숲처럼 보금자리를 가꾸면, 우리는 언제나 맑으면서 밝은 바람을 마실 수 있어요. 나무가 잘 자란 보금자리에서는 볕이 더욱 따스하고, 그늘이 더욱 시원하며, 노래도 웃음도 훨씬 싱그럽습니다.


  나무가 있기에 벌과 나비와 새가 함께 어우러집니다. 나무가 있으니 수많은 새가 우리 집을 거쳐서 다리쉼을 하다가 다시 날아갑니다. 나무가 있어서 우리 집은 멀리서 바라보아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나무가 있는 만큼 아이들은 나무를 둘러싸고 놀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먼 옛날부터 나무하고 함께 살았습니다. 나무 열매를 얻기도 하지만,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살림을 짭니다. 나뭇가지를 끊어서 잘 말린 뒤 장작으로 삼습니다. 나무는 사람과 함께 노래하면서 더욱 푸르게 우거지고, 사람은 나무와 함께 춤추면서 더욱 아름답게 보금자리를 가꿉니다.



.. 나무가 살아온 만큼 나무를 살려서 쓴다고 하는 건 자연에 대한 인간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 나무는 대자연이 낳고 기른 생명입니다. 나무는 죽어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생물입니다 … 옮겨 심을 때, 그 나무를 그대로 경쟁시키면 이천 년 이상 자랄지도 모른다는 생각 따위는 아예 하지 않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나무를 키워 조금이라도 더 많은 나무를 키워 내자는 생각이기 때문에 별 수 없는 일이지만 … 오래된 나무는 놀랍게도 만져 보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  (39∼40, 45, 59쪽)



  니시오카 쓰네카즈 님이 나무한테서 배운 이야기를 입으로 들려주어 빚은 《나무에게 배운다》(상추쌈,2013)를 읽습니다. 글쓴이는 나무를 만져서 집(또는 궁궐)을 짓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언제나 나무와 한몸이 되어 움직였고, 늘 나무와 한마음이 되어 삶을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이 책은 일본에서 ‘큰 나무장이’ 한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한국에도 나무장이는 무척 많습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나무장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적이 몹시 드뭅니다. 한국에서는 나무장이뿐 아니라 여느 시골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도 몹시 드물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아이를 낳고 돌보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귀담아서 들으려고 하는 사람도 퍽 드뭅니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살림을 꾸리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책을 짓거나 학교를 세우려고 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 정말로 좋은 연장은 끝까지 사용합니다. 감상용 미술품 따위와는 달리 목수의 연장은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 자연석에 세운 기둥 밑바닥은 모양이 가지각색입니다. 지진이 와서 흔들리더라도 힘을 받는 방향이 다릅니다 … 같은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마음에 들면 소중히 다룹니다 …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쓰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만으로 건물을 짓고자 하는 건 나무의 성깔을 파악하고, 그 성깔을 살려서 쓰라는 구전을 거역하는 일입니다 ..  (69, 76, 101, 133쪽)



  나무장이 니시오카 쓰네카즈 님은 나무만 다루지 않습니다. 손수 흙을 짓습니다. 스스로 먹을 밥을 스스로 얻습니다. 스스로 누리는 집을 스스로 짓습니다. 다만, 옷까지 스스로 짓지는 못하는구나 싶은데, 집과 밥과 옷을 스스로 지을 줄 알 때에, 비로소 삶을 스스로 짓습니다. 집과 밥과 옷을 스스로 짓지 못한다면, 삶을 스스로 짓지 못해요.


  학교를 오래 다닌들 삶을 짓지 않습니다. 교사나 교수가 되어 일을 하기에 삶을 가르치거나 물려주지 않습니다. 농사꾼이 가장 훌륭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흙을 지으면서 살림을 이룰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흙을 지을 적에는 해와 바람과 물을 알아야 하고, 해와 바람과 물이 살찌우는 뭇목숨을 알아야 하며, 해와 바람과 물이 어우러져서 이루는 숲과 들, 이른바 풀과 나무를 알아야 할 테지요.



.. 자기 생각으로 차 있으면 스승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순진한 마음이 아니면 배움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 틀에 맞춰 지식만을 집어넣으며 경쟁을 시키는 방법이 교육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 통째로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 집을 짓는다면 거기 살 사람들의 마음이나 생각을 받아들이고, 그 뜻을 짐작하여 지으라는 것입니다 ..  (93, 112, 119, 184쪽)



  손수 삶을 짓던 옛사람이 ‘나무’라는 낱말을 지었습니다. ‘숲’이라는 낱말과 ‘풀’과 ‘꽃’이라는 낱말도 손수 삶을 짓던 옛사람이 지었습니다. 임금이나 지식인이 이런 낱말을 짓지 않았어요. 임금이나 지식인은 그저 중국에서 한자를 끌어들여 중국을 섬겼을 뿐입니다. 오늘날 대통령이나 권력자나 지식인은 중국 한자말이나 일본 한자말이나 영어나 여러 서양말을 섞어서 지식을 자랑할 뿐입니다.


  삶을 짓기에 말을 짓습니다. 삶을 누리기에 이야기를 누립니다. 나무 한 그루를 만지면서 집을 짓던 나무장이는, 나무가 자라는 숲에 보금자리를 이루어 손수 삶을 가꿀 때에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나무한테서도 배우고, 흙과 물한테서도 배우며, 해와 비와 바람한테서도 배웁니다. 아기한테서도 배우고, 이웃한테서도 배웁니다. 우리는 누구한테서나 삶을 배우고, 누구한테서 사랑을 베풉니다. 함께 짓는 삶이요, 함께 사랑하는 하루입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비롯한 연필과 종이가 예쁘게 만나 책 한 권이 태어납니다. 4348.3.20.쇠.ㅎㄲㅅㄱ



* 군말

‘번역’을 어떻게 손볼 수 없을까? ‘직역’이 아닌 ‘번역’이 되어야 할 텐데. “한 그루의 나무” 같은 안타까운 일본 말투가 너무 자주 나온다. 그리고 누가 누구한테 무엇을 가르친다고 할 적에는 ‘-에게서 배운다’고 한다. ‘-에게 배운다’가 아니다. ‘위’나 ‘속’이라는 말도 너무 잘못 쓴다. “자연석 위에 세운 기둥”이 아니라 “자연석에 세운 기둥”이고, “일본 문화 속에서”가 아니라 “일본 문화에서”이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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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돌사자, 도서관을 지키다 비룡소의 그림동화 232
마거릿 와일드 글, 리트바 부틸라 그림, 김서정 옮김 / 비룡소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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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92



꿈을 생각하고 끝없이 생각하라

― 위대한 돌사자, 도서관을 지키다

 마거릿 와일드 글

 리트바 부틸라 그림

 김서정 옮김

 비룡소 펴냄, 2014.12.11.



  생각이 삶을 짓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이 삶을 알뜰살뜰 짓습니다. 아름답게 생각하는 사람이 삶을 아름답게 짓습니다. 생각을 사랑으로 품어서 가꾸는 사람이 삶을 사랑이 가득한 하루로 따사롭게 짓습니다.


  생각이 없으면 삶을 못 짓습니다. 생각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짓는 삶이 없기에 남이 시키는 일만 합니다. 생각이 없는 채 남이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은, 늘 쳇바퀴를 돌아요. 쳇바퀴를 돌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텐데, 돈이 아무리 많아도 스스로 짓는 삶이 없기 때문에 기쁨이나 즐거움이 없습니다.



.. “책 속에 뭐가 있기에 저러지?” 돌사자가 돌괴물에게 물었어요. “책에는 사람들 사는 얘기가 들어 있어. 벤은 행복이나 슬픔, 절망이나 희망을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거야.” 돌괴물이 대답했지요. 돌사자는 생각했어요. ‘나도 그런 걸 느낄 수 있다면…….’ ..  (6쪽)





  꿈을 생각해야 합니다. 꿈을 생각해야 꿈을 이룹니다. 꿈을 지어야 합니다. 꿈을 먼저 생각으로 지어야 합니다. 꿈을 먼저 생각으로 지어야, 이 꿈을 바라보면서 한 발짝씩 내딛을 수 있습니다. 꿈을 짓지 않는다면, 스스로 나아갈 수 없고, 스스로 나아갈 수 없기에, 스스로 아름답지 못하며 스스로 사랑스럽지 못해요.


  끝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하고 자꾸 생각해야 합니다. 가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을 깊고 넓게 다스리면서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걸어갈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지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우리가 참말 하고 싶은 일과 놀이를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이 삶으로 드러나고, 삶으로 드러난 생각은 새로운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새로운 생각은 다시 새로운 삶으로 나타나고, 새롭게 나타난 삶은 다시금 새로운 생각으로 뻗습니다.



.. 돌사자는 생각했습니다. ‘여기 있으면 큰일 날 텐데.’ 아기가 조그만 주먹을 내두르며 낑낑거렸어요. 그때, 돌사자의 가슴속에서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습니다. ‘사라랑 아기가 금세 딱닥하게 얼어 버릴 거야. 걷지도 뛰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 느끼게 될 거야. 나처럼.’ 돌사자의 마음속에서 뭔가가 펄럭이는 것 같았습니다. ‘저 애들을 따뜻한 도서관으로 데려가고 싶어. 내가 움직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15쪽)




  마거릿 와일드 님이 글을 쓰고, 리트바 부틸라 님이 그림을 그린 《위대한 돌사자, 도서관을 지키다》(비룡소,2014)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돌사자’와 ‘돌괴물’이 나오고, 도서관지기 ‘벤’이 나오며, 길거리에서 떠돌이로 지내는 아이 ‘사라’와 ‘사라네 동생’이 나옵니다. 다섯 숨결은 저마다 다릅니다. 먼저, 돌로 된 숨결은 꼼짝을 못하며 그 자리에 있습니다. 도서관지기는 언제나 도서관을 지킵니다. 사라와 동생은 집과 어버이가 없이 길거리를 떠돌면서 동냥을 하다가, 겨울에 그만 오들오들 떨면서 거의 죽음 문턱에 닿습니다.



.. 그런데 벌써 다리가 뻣뻣해지고 힘줄이 엉키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 할 일이 한 가지 남아 있는데 말이에요 ..  (20쪽)



  돌사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돌괴물은 무엇을 할까요? 돌괴물은 똑똑하거나 슬기롭다고 하지만 스스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돌사자는 아는 것이 없으나 ‘궁금한 것’이 가득합니다. 궁금한 것이 많은 돌사자는 스스로 생각합니다. 아는 것이 많은 돌괴물은 온갖 정보와 지식을 모읍니다. 지식과 정보가 가득한 돌괴물은 스스로 생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지식도 정보도 없는 돌사자는 그저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면서 ‘내 삶’을 스스로 찾고 싶습니다. 돌사자이면서 끝끝내 눈물을 흘리면서 생각을 꽃으로 피웁니다. 돌사자는 아무 새로운 숨결을 스스로 길어올립니다.





.. 몇 년이 지났습니다. 가끔 한 남자아이가 누나와 함께 돌사자를 찾아왔어요. 남자아이가 돌사자에게 뺨을 비비며 말했어요. “누나, 이 돌사자가 내 코에 내린 눈을 핥아 줬어.” 누나가 아이를 안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두 아이는 함께 돌사자를 안았지요. 돌사자도 두 아이를 안고 싶었어요 ..  (29쪽)



  돌사자한테는 ‘가슴(심장)’이 새롭게 생겼습니다. 다만, 가슴이 새로 생겼으되 몸을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마음으로 움직입니다. 마음으로 말을 걸고, 마음으로 바라보며, 마음으로 사랑하지요. 이리하여, 사라와 동생은 ‘떠돌이 삶’을 끝낼 수 있습니다. 떠돌이 삶을 끝낸 사라와 동생은 둘이 어릴 적에 돌사자가 저희를 살려 준 줄 또렷하게 압니다. 지식이나 정보로 알지 않아요. 몸으로 알고 마음으로 알아요.


  앞으로 사라와 동생은 어떤 삶을 지을까요? 틀림없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삶을 짓겠지요? 돌사자는 무엇을 할까요? 사라와 동생을 따사롭게 바라보면서, 사라와 동생이 새로 짓는 삶을 바라볼 테고, 사라와 동생이 새로 낳을 아이들이 새롭게 자라는 모습도 바라볼 테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두 아이를 잇고 잇는 새로운 삶과 사랑과 숨결을 바라볼 테지요. 늘 그곳에서, 도서관 앞에서, 따스한 눈길과 넉넉한 마음과 아름다운 사랑으로. 4348.3.2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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