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마이 로마이 1 테르마이 로마이 1
야마자키 마리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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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88



바라고 찾으며 생각할 때에 온다

― 테르마이 로마이 1

 야마자키 마리 글·그림

 김완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1.3.25.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일만 합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일은 못 하기 마련입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이에요. 생각을 하지 않는데 알 수 없으니까요. 생각을 하지 않아서 알 수 없으면, 코앞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알아채지 못해요. 이를테면, 나비가 번데기를 벗고 깨어나는 줄 모른다면, 코앞에서 번데기가 꼬물거리면서 톡 벌어져서 나비가 나와도 못 알아챕니다. 비행기를 모르면, 비행기가 낮게 날면서 내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릴 적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고 벌벌 떨면서 땅바닥에 납작 엎드리겠지요.



- “그러고 보니 요즘 이 근처에 새 테르마이가 생겼다며?” “아, 베수비우스 화산 벽화가 있는 거기 말이지?” “뭐라더라? 거기서 목욕 마치면 나오는 음료가 이 세상 물건이란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맛있다더군!” (32쪽)

- ‘그때 그 평안족 사내는 무언가 조그만 도구를 써서, 뾱 하고 쉽게 뚜껑을 땄다. 가공할 평안족! 그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아직도 산처럼 쌓여 있겠군!’ (35쪽)




  생각하는 사람이 삽니다.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살면서도 죽은 모습과 같습니다. 바라고 찾으며 생각할 때에 삶이 있습니다. 바라지 않고 찾지 않으며 생각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아무런 삶이 없습니다.


  오늘날 학교교육을 보면, 제도권사회는 우리한테 아무것도 안 가르칩니다. 제도권사회는 사람을 길들이려 할 뿐입니다. 참다운 가르침이란 ‘스스로 생각하기’를 해낼 수 있도록 이끕니다. 참답지 못한 학교교육이요 제도권사회이기 때문에, ‘틀에 박힌 지식’만 달달 외워서 입시지옥에 갇힌 채 생각을 하나도 스스로 안 하도록 내몰기만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생각을 잊거나 잃으면, 정치권력과 사회권력과 경제권력이 시키는 대로 종살이를 하며 쳇바퀴만 뱅뱅 돌 테니까요.



- ‘이렇게 풍광 수려한 곳에 테르마이를 설치하다니. 그리스인들도 혀를 내두를 미적 감각이다. 그래, 이곳이라면 벽으로 에워싸인 인공 테르마이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해방감을 맛볼 수 있겠어. 겉보기에는 우리 로마인보다도 훨씬 하등인 인종인 듯하나, 절대 얕잡아볼 수 없겠는걸.’ (61쪽)

- ‘우리 로마인이 수도니 거대 건축물을 개발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평안족은 원시적 이점의 편리함에도 눈을 돌려 이렇게 획기적인 야외 테르마이를 만들었다니!’ (63쪽)





  야마자키 마리 님이 빚은 만화책 《테르마이 로마이》(애니북스,2011) 첫째 권을 읽습니다. 먼 옛날 로마에서 로마사람이 즐기는 목욕탕과 얽혀 오늘날 일본에서 일본사람이 즐기는 목욕탕을 빗대어 ‘차원 여행’을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먼 옛날 로마사람은 먼 뒷날 일본으로 넘어가서 여러 가지 ‘현대 목욕 시설’을 돌아보고 나서, 이를 옛날 로마에 고스란히 받아들입니다.



- ‘이제 좀더 쓰기 편한 때밀이 도구가 고안되어야 하지 않을까?’ (83쪽)

- ‘아아, 고능하다면 이러한 알 수 없는 것들을 모조리 모아다 로마로 가져가고 싶다. 언뜻 괴상망측한 모습을 하고 있어도 모종의 가공할 요소를 겸비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87쪽)



  먼 옛날 로마에서는 먼 뒷날 일본에서 만든 여러 가지를 배워서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먼 뒷날(오늘날)’이라고 하는 일본은 어떠할까요. 일본은 오늘 바로 이곳에서 모든 것을 처음으로 만들었을까요? 아니면, 오늘날 일본에서도 ‘차원 여행’을 하면서 ‘먼 뒷날’로 날아가서 본 것을 오늘 이곳에 고스란히 옮겼을까요?


  아이들이 널리 읽는 만화책 《도라에몽》을 보면, 도라에몽은 진구 책상서랍으로 들락거리면서 ‘먼 뒷날’ 것을 아무렇지 않게 가져옵니다. 다만, 오늘날 진구는 먼 뒷날 것 가운데 어느 것도 이곳에 받아들여서 새로 가꾸거나 누리지는 않습니다.


  바흐라고 하는 사람은 꿈에서 하늘나라 소리를 듣고는 이를 노래로 지었다고 합니다. 바흐 말고도 수많은 사람이 꿈에서 ‘다른 차원 이야기’를 보고 나서 이곳에서 ‘다른 차원 이야기’를 받아들여서 펼쳤다고 합니다.





- “내 생각에 로마에 가장 필요한 것은 확장보다도 제국 내의 평화유지. 어떻게 그 평화를 유지할지를 생각하기 위해 나는 이 섬을 만든 것일세. 하지만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밖으로 목욕하러 나가기가 귀찮아지거든. 바깥의 대형 테르마이에서는 집중력도 산만해져 사색에 잠길 수가 없네!” (117쪽)

- ‘신께서 무슨 의도로 나를 이 세계에 보내셨는지는 모른다. 허나 겁을 먹고 이 자리에서 물러나선 안 된다는 것은 자명한 노릇.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곳에 있는 것 이상의 테르마이를 폐하게 만들어 드려, 로마를 더 큰 번영으로 이끌어야만 한다!’ (128쪽)



  ‘책’을 처음으로 묶거나, ‘종이’를 처음으로 뜨거나, ‘연필’을 처음으로 깎거나, ‘글’을 처음으로 짓거나, ‘말’을 처음으로 뱉은 사람들은 저마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알아서 펼쳤을까요? 그들은 그저 어느 날 스스로 이 모두를 알아챘을까요, 아니면 꿈에서 보았을까요, 아니면 다른 어느 별에서 이곳에 넌지시 알려주었을까요?


  만화책 《테르마이 로마이》는 그저 그린이 생각으로만 빚은 재미난 책이라고만 느끼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나도 곁님도 아이들도 꿈을 꾸면서 ‘그동안 미처 몰랐던 대목’을 보면서 배웁니다. 우리들 누구나 꿈에서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배웁니다. 꿈이 아니더라도 문득문득 놀라운 이야기가 우리 머릿속에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어떻게 수많은 이야기가 우리한테 왔을까 궁금하면서도, 이 많은 이야기는 우리가 스스로 바라고 생각했기에 차근차근 우리한테 올 수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테르마이 로마이》에 나오는 건축기사도 건축기사 스스로 새로운 목욕탕을 끝없이 생각하고 찾고 살피고 헤아렸기에, 차원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었구나 싶습니다. 4348.3.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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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56. 한자말은 영어처럼 외국말

― 한국말, 우리말, 토박이말, 시골말, 숲말



  ‘한자’로 지은 말을 제대로 살필 줄 아는 학자가 무척 드뭅니다. ‘알파벳’으로 지은 말은 으레 ‘외국말’인 줄 알면서, 막상 ‘한자’로 지은 말이 ‘외국말’인 줄 제대로 느끼거나 바라보는 지식인이 아주 드뭅니다.


  오늘날 한국을 보면, 한자로 지은 말이 퍽 널리 퍼졌습니다. 그러나, 막상 한국사람이 여느 때에 늘 쓰는 말 가운데 ‘한자로 지은 말’은 얼마 안 됩니다.


  한국말사전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일본사람이 지은 일본말사전을 베낀 탓에, 일본에서나 쓰던 한자말이 한국말사전에 아직 꽤 많이 나돕니다. 한국사람이 쓴 일도 쓸 일도 없는 한자말이 한국말사전에 뜬금없이 실리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조선 무렵에 정치권력자가 쓰던 ‘궁중 한자말’이 한국말사전에 지나치게 많이 실렸습니다.


  우리는 슬기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조선 무렵에 정치권력을 거머쥔 사람은 ‘인구 통계로 치면 몇 퍼센트’가 될까요? 1퍼센트는커녕 0.1퍼센트도 안 됩니다. 조선 무렵에 ‘중국글로 쓴 책’을 익히면서 지식인 노릇을 한 사람도 ‘인구 통계로 치면 0.1퍼센트는커녕 0.01퍼센트’조차 안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말사전을 보면 ‘중국글로 쓴 책’에 적힌 한자말이 그대로 나오고, ‘궁중 한자말’도 고스란히 나와요. 이와 달리, 조선 무렵에 이 땅에서 99.9퍼센트나 99.99퍼센트에 이르던 여느 사람이 쓰던 말은 모두 실리지 않습니다. 고장마다 다르게 쓰던 고장말을 한국말사전에 제대로 담지 않아요. 시골마다 다르게 살려서 쓰던 시골말을 한국말사전에 알차게 싣지 못합니다.


  ‘한국말’은 한국사람이 쓰는 말입니다. ‘토박이말’은 한국사람이 예부터 손수 지어서 쓰는 말입니다. ‘우리말’은 ‘토박이말’이나 ‘한국말’을 가리키기도 하고, 둘을 아우르기도 하는 이름입니다. ‘표준말’은 현대 사회나 정치나 문화를 펴면서 나라에서 한 가지 틀로 세운 말입니다. ‘시골말’은 손수 흙을 가꾸면서 삶을 스스로 짓는 사람이 쓰는 말입니다.


  ‘한자말’은 한자로 지은 말입니다. 그러면, 한자말은 어디에 들어갈 만할까요? 한자말은 어디에도 들어갈 만하지 않습니다. 한자말은 한국말도 토박이말도 우리말도 표준말도 시골말도 아닙니다. 한자말은 그저 ‘한자말’입니다. 알파벳으로 지은 ‘영어’는 어떠할까요? 영어도 한국말이 아니고 토박이말이 아니며 우리말이나 표준말이나 시골말이 아닙니다. 영어도 그저 ‘영어’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자말과 영어는 모두 ‘외국말’입니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외국)’에서 쓰는 말이 바로 한자말과 영어입니다.


  조선 무렵 궁중에서 한자말을 썼습니다. 그러면, 궁중에서는 왜 한자말을 썼을까요? 중국 정치를 섬기려는 뜻에서 한자말을 썼고, 조선 무렵 궁중에서는 ‘중국 한자말’을 썼습니다. 궁중에서 쓰던 ‘중국 한자말’을 한국 지식인도 받아들여서 썼습니다. 이들은 ‘중국 한자말’로 정치를 하고 사회를 지키며 문화를 폈습니다. 이들은 손수 흙을 가꾸면서 삶을 짓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느 사람(백성, 시골사람)이 시골에서 삶을 지으면서 ‘풀’이나 ‘나무’나 ‘숲’을 가꿀 적에, 궁중 권력자나 지식인은 ‘草’라든지 ‘木’이라든지 ‘林’ 같은 한자를 썼습니다.


  조선 사회가 일본 제국주의 힘에 무너지면서 일제강점기가 되니, 이때부터 ‘중국 한자말’이 차츰 밀려나면서 ‘일본 한자말’이 이 나라에 들어오고, ‘일본말’까지 뒤따라 들어옵니다. 조선 사회는 마흔 해 가까이 식민지가 되어 짓눌려야 했는데, 식민지에서 풀려난 뒤에 ‘일본 제국주의 부역자’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일본 한자말’과 ‘일본말’을 익히면서 공무원이 되거나 지식인 노릇을 하던 이들은 예전과 똑같이 ‘일본 한자말·일본말’로 글을 쓰거나 신문을 내거나 책을 묶었습니다. 이리하여 ‘조선’에서 ‘한국’으로 이름을 바꾼 이 사회에는 ‘중국 한자말’에다가 ‘일본 한자말’이 두루 퍼집니다. 정치권력자와 지식인은 ‘여느 시골사람이 쓰는 말’은 조금도 안 쓰면서 ‘권력자가 쓰는 한자’로 생각을 펴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조선 무렵뿐 아니라 고려 무렵도 똑같습니다만, 궁중 사회와 지식 사회는 ‘우리말’이라고 할 ‘한국말’을 살피거나 가꾸거나 배우거나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궁중 사회와 지식 사회는 언제나 ‘다른 나라 말(외국말)’인 한자말을 썼고, 이 한자말은 ‘중국 한자말·일본 한자말’ 두 갈래로 나누어집니다. 오늘날 한국말사전을 보면, ‘뜻이 같으나, 다르게 쓰는 한자말’이 몹시 많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궁중 사회와 지식 사회는 이웃 두 나라 정치권력을 섬기던 버릇으로 ‘다른 나라 말(외국말)’로 정치·경제·학문·문화·문학 따위를 펼쳤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는 해방 뒤에 미군정을 거쳤고, 미국 사회와 문화 물결이 다시금 스며듭니다. 이리하여,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은 그만 ‘중국 한자말 + 일본 한자말 + 미국말(영어)’이 되고 맙니다. 여기에다가 한국에서 정치와 지식을 거머쥔 이들이 ‘한국 한자말’을 새로 지어서 씁니다. 한국말이 아닌 외국말인 ‘한자말’인데, 한국에서 쓰는 한자말은 ‘중국 한자말·일본 한자말·한국 한자말’ 이렇게 세 가지로 더 가지를 칩니다.


  여느 사람도 쓸 만한 한자말이 있습니다. 여느 사람도 쓸 만한 영어가 있으니, 외국말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받아들여서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느 사람이 쉽게 쓰는 수수한 한자말은 ‘외국말’에서 ‘들온말(외래어)’로 자리를 바꾸면서 ‘한국말’ 품으로 녹아듭니다. 외국말이기에 모두 손사래를 쳐야 하지 않습니다. ‘버스’나 ‘컴퓨터’나 ‘인터넷’ 같은 외국말을 받아들여서 쓰듯이 ‘학교’나 ‘교과서’나 ‘사회’ 같은 외국말(한자말)도 받아들여서 쓸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외국사람’이 아닌 ‘한국사람’이기에, 한국사람으로서 스스로 우리가 쓸 말을 손수 짓는 넋을 가꿀 줄 알아야 합니다. 외국말을 무턱대고 받아들여서 아무렇게나 쓰는 삶이 아니라, 손수 한국말(우리말)을 새롭게 짓는 슬기로운 마음이 될 수 있어야지요. 오늘 우리가 한국말(우리말)을 새롭게 짓는다면, 이 말은 ‘숲말’입니다. 푸른 바람을 나누어 주면서 스스로 우거지는 숲처럼, 우리 삶과 사회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어 주는 바탕이 되는 말이라는 뜻에서 ‘숲말’입니다. 4348.3.2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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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친구야 웅진 우리그림책 21
강풀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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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96



내 마음동무야 반갑구나

― 안녕, 친구야

 강풀 글·그림

 웅진주니어 펴냄, 2013.1.14.



  씨앗 한 톨한테 말을 걸 수 있습니다. 얘야 얘야 예쁜 씨앗아 너는 아름다운 나무로 자라렴, 하고 말을 걸 수 있습니다. 풀 한 포기한테 말을 걸 수 있습니다. 얘야 얘야 싱그러운 풀포기야 너는 아름다운 밥이 되어 나와 한몸이 되어 주렴, 하고 말을 걸 수 있습니다. 나무 한 그루한테 말을 걸 수 있습니다. 얘야 얘야 우람한 나무야 너는 나한테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렴, 하고 말을 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하고도 말을 나눌 수 있습니다. 돌멩이하고 말을 걸면 돌멩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참새한테 말을 걸면 참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다만, 요새는 씨앗한테 말을 거는 시골지기가 드물고, 참새한테 말을 거는 아이가 드뭅니다. 요새는 어른이나 아이 모두 너무 바쁩니다. 요즈음은 어른이나 아이 모두 놀거리와 볼거리가 아주 많습니다.



..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누군가 말했습니다. 아이는 깜짝 놀라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 “네가 그렇게 울면 사람들이 우리가 우는 줄 알고 싫어한단 말이야.” ..  (4쪽)




  우리가 사귀는 동무는 언제나 마음동무입니다. 소꿉동무나 책동무나 언제나 마음동무입니다. 왜냐하면, 서로 마음으로 아낄 때에 비로소 동무이니까, 모든 동무는 마음동무일밖에 없어요.


  눈빛을 보면 마음을 압니다. 눈빛으로 생각을 주고받습니다. 눈빛을 밝혀 기쁜 이야기를 속삭입니다. 우리는 서로 마음동무이니까요.


  다시 말하자면,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동무가 아닙니다.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면 우리는 서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음으로 만나고, 마음으로 얘기하며, 마음으로 노래하면서 기쁘게 어깨동무를 합니다.



.. 생쥐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지금 쥐한테 고양이가 어디 있는지 묻는 거야?” ..  (23쪽)





  강풀 님이 만화로 빚은 그림책 《안녕, 친구야》(웅진주니어,2013)를 읽습니다. 밤에 혼자 잠들다가 문득 무섭다고 여겨 깨어난 뒤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가다가 문지방에 발가락을 찧고는 아파서 우는 아이가 나오는 그림책입니다.


  이 아이는 누구일까요. 발가락이 아프다며 우는 아이는 누구일까요. 어린 강풀 님일까요, 아니면 강풀 님이 낳은 아이일까요. 이 아이는 왜 밤에 씩씩하게 잠들면서 꿈나라로 가지 못하고 이렇게 아프다며 울어야 할까요.



..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오늘 내 방이 생겼거든. 혼자서도 잘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혼자 자다가 깨니까 너무 무서웠어. 안방을 가려다가 문지방에 엄지발가락이 찧었어.” ..  (34쪽)




  어쩌면 아이는 잠에서 깨어 눈밭나라를 돌아다니지 않고, 꿈나라에서 신나게 돌아다닌다고 할는지 모릅니다. 꿈나라에서 고양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꿈나라에서 개와 쥐하고도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할는지 모릅니다. 문지방에 발가락을 찧고 나서 울다가 어느새 잠이 들고 나서 고양이와 개와 쥐를 만났을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아이는 밤마실을 합니다. 눈송이가 펄펄 날리는 골목을 고양이와 함께 걷습니다. 그러면서 고양이하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고양이는 아이 말을 알아듣고, 아이는 고양이 말을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개와 사람도, 쥐와 사람도, 서로 말을 섞습니다.


  사람은 고양이하고 말을 섞을 수 있을까요? 그럼요, 그렇지요. 서로 말을 섞으려고 마음을 기울이면 말을 섞을 수 있습니다. 쥐와 고양이는 서로 말을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럼요, 그렇지요. 서로 잡고 잡히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 아끼고 돕는 사이가 되면 얼마든지 말을 나눌 수 있습니다.



.. 아이는 한참을 걷다가 검은 고양이가 있는 골목까지 왔습니다. 검은 고양이가 아이를 보고 말했습니다. “길을 잃었니? 넌 아까 저쪽에서 왔어.” “고마워.” ..  (47쪽)




  마음을 활짝 열 때에 이야기꽃이 핍니다. 마음을 밝게 열면 이야기잔치가 됩니다. 마음을 따사로이 여는 동안 이야기밥을 먹습니다. 새끼 고양이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골목길을 걷는 동안 씩씩한 마음으로 거듭납니다. 아이는 새끼 고양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골목길을 걷는 사이 씩씩한 몸짓으로 거듭납니다.


  밤은 무섭지 않습니다. 밤은 그저 밤이라, 모두 새근새근 잠들어 꿈을 꿉니다. 길을 잃을 일이 없습니다. 그저 먼 길을 혼자 나서 보았을 뿐이요, 고양이도 아이도 얼마든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늘이 지켜보면서 길을 다 알려줍니다. 바람이 들여다보고는 길을 살포시 알려주지요. 눈송이가 저마다 조잘조잘 떠들면서 길을 낱낱이 알려주어요. 고양이는 어미 품으로 돌아가고, 아이는 어버이 품으로 돌아갑니다. 4348.3.2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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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문학과지성 시인선 178
김신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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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83



시와 이곳에서

―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김신영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1996.4.25.



  나는 늘 이곳에서 바람을 마십니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도 마시고, 한들한들 부는 바람도 마십니다. 따사롭게 부는 바람도 마시며, 포근하게 부는 바람도 마셔요. 때로는 차갑게 부는 바람을 마시고, 어느 날에는 스산하게 부는 바람을 마십니다.


  어떠한 바람이든 기꺼이 마십니다. 어떤 바람이 불든 씩씩하게 마십니다. 어떻게 부는 바람이라 하더라도 고맙게 마십니다.


  왜냐하면, 나는 바람을 마셔야 살 수 있는 목숨이기 때문입니다. 나한테 밥이나 소금이나 물이 없어도 살 수 있으나, 나한테 바람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나는 밥을 달포쯤 끊거나 소금이나 물을 열흘이건 보름이건 입에도 못 댈 수 있습니다만, 바람 한 줄기는 1초라도 끊을 수 없습니다.



.. 여기 황폐한 문지방이며 무너진 흙담을 / 일으키어 내 출렁이는 바닷과 별들과 / 유성이 되어도 좋은 밤을 맞고 싶다 ..  (가벼운 섬 1)



  꽃이 핀 나무 곁에 서서 꽃바람을 마십니다. 꽃바람을 마시면서 생각합니다. 꽃바람이란 이처럼 향긋하고 놀랍구나. 꽃바람을 마시면서 나뭇줄기를 쓰다듬습니다. 네가 나한테 이렇게 놀라우면서 멋진 바람을 베풀어 주니, 너는 나한테 아름다운 님이로구나.


  꽃바람을 나누어 준 나무한테 입을 맞춥니다. 아직 꽃몽우리가 터지지 않은 나무 옆에도 서서 나뭇줄기를 살살 어루만지다가 입을 맞춥니다. 어떤 나무이든 모두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답거든요.



.. 매일 내분이 이는 종로 오가 / 기독교연합회관 십층에서 나는 책을 만든다고 / 죽을 쑤는데 옆건물 기독농민회에서 머리에 붉은 두건 / 두른 전대협 예수들 연좌농성, 퇴근 시간 다되도록 일렁이고 ..  (개방 압력)



  김신영 님이 선보인 시집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문학과지성사,1996)을 읽습니다. 김신영 님이 선보인 시집에는 김신영 님이 누린 삶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김신영 님이 지은 웃음과 눈물이 드러나고, 김신영 님이 바라본 이웃과 동무가 드러납니다.


  웃음과 눈물은 좋은 웃음이나 나쁜 눈물이 아닙니다. 그저 웃음과 눈물입니다. 이웃과 동무는 좋은 이웃이나 나쁜 동무가 아닙니다. 모두 그대로 이웃과 동무입니다.


  좋은 시가 있을까요? 나쁜 시가 있을까요? 독재부역을 하지 않았으나 맹숭맹숭한 시라면, 이러한 시는 좋은 시일까요? 맛깔스럽게 빚었으나 독재부역을 한 시라면, 이러한 시는 나쁜 시일까요?



.. 소풍 가는 학생들 쏟아져내리고 / 지하철 환승역 나갈 출구가 없다 // 역은 최상의 포화 상태, 긴 줄을 세우는 거대한 / 공포의 특급 놀이시설이 된다 아무도 나갈 수 없다 / 역무원은 목이 쉰 호루라기를 쉭쉭 불어대고 ..  (환승역에서)



  이곳에서 시가 태어납니다. 다른 곳이 아닌 이곳에서 시가 태어납니다. 흔히들, 사진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찍는다고 말하는데, 사진만 바로 오늘 이곳에서 찍지 않습니다. 시도 바로 오늘 이곳에서 태어납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글쓴이 스스로 겪고 느끼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아파하고 한숨쉬고 노래하고 춤추고 짝짓기를 한 모든 이야기가 시라는 옷을 입고 새롭게 태어납니다.



.. 아산만까지 따라온 詩集은 / 산보다 바다보다 넓어 보였다 ..  (復原)



  시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사진을 읽을 줄 압니다. 사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시를 읽을 줄 압니다. 시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만화를 읽을 줄 압니다. 만화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시를 읽을 줄 압니다. 시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동화를 읽을 줄 압니다. 동화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시를 읽을 줄 압니다.


  그러니까, 시는 읽되 사진이나 만화나 동화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시읽기’를 겉훑기로만 한다는 뜻입니다. 사진이나 만화나 동화를 읽을 줄 아는 넋이나 마음이 될 수 있어야, 비로소 시를 읽으면서 아름답게 사랑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 새는 구름을 부르며 하늘에 오르고, / 나는 노래를 부르며 꿈에 오른다 ..  (마른 종자 활동 장치)



  문학평론을 쓰는 이들은 사진을 찍을까요? 문학비평을 하는 이들은 만화책을 읽을까요? 문학평론을 쓰는 이들은 아이를 낳아 말을 가르칠까요? 문학비평을 하는 이들은 갓난쟁이한테 젖을 물리거나 기저귀를 갈거나 하면서 아이와 함께 삶을 지을까요?


  우리는 평론이나 비평을 하기 앞서 삶을 먼저 지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시를 쓰거나 읽기 앞서 삶을 먼저 가꿀 줄 알아야 합니다.


  삶이 없이는 아무런 평론이나 비평이 나올 수 없습니다. 삶을 모른다면 어떠한 시도 쓸 수 없습니다. 삶이 없다면 빈 껍데기일 뿐입니다. 삶을 모른다면 헛소리일 뿐입니다.



.. 고속도로에 들어선다 / 길은 많지만 / 나는 고속도로를 탄다 / 통행료를 지불하고서 / 고속으로 달릴 수 있는 권한 누린다 / 신호등에 걸릴 염려 없는 곳 /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되는 곳 ..  (고속도로)



  좋은 삶은 없습니다. 좋은 시는 없습니다. 그저 삶이 있고, 그예 시가 있습니다. 나쁜 삶은 없습니다. 나쁜 시는 없습니다. 그대로 삶이요, 고스란히 시입니다.


  이곳에서 시가 태어나고, 이곳에서 시를 읽습니다. 이곳에서 시를 노래하고, 이곳에서 시를 사랑합니다. 4348.3.24.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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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코형사 ONE코 9
모리모토 코즈에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84



함께 일하는 사이라면

― 개코형사 ONE코 9

 모리모토 코즈에코 글·그림

 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2.15.



  모리모토 코즈에코 님 만화책 《개코형사 ONE코》(대원씨아이,2015) 아홉째 권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원코’라는 형사는 개코입니다. 개처럼 생긴 코가 아닌, 개처럼 냄새를 맡는 코입니다. 사람이면서 개처럼 냄새를 잘 맡아서, 냄새로 여러 가지 실마리를 풀고, 막히거나 어려운 고비를 넘깁니다. 다만, 냄새는 잘 맡는데, 이래저래 덜렁거리고, 앞을 잘 내다보지 못한 채 섣불리 덤비기도 합니다.



- “아, 그럼 당신이 원코? 어머, 귀여워라.” “네? 아잉 몰라. 선배, 지금 저 말 들으셨어요?” “옷 칭찬이잖아.” (7∼8쪽)

- “전 반장님이 그럴 분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는 거예요! 사모님이 불쌍하잖아요. 반장님의 건강을 그렇게 걱정하시는데.” “그러다가 만약 진짜 바람이라면 어쩌려고? 반장님한테 바람 피우지 말라고 말할 거야?” “당연하죠!” (17쪽)




  ‘개코형사’인 ‘원코’는 제 솜씨를 아낌없이 뽐냅니다. 냄새 하나만으로도 실마리를 잡을 수 있으니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다른 일은 그리 잘 하지 못합니다. 다른 형사도 가만히 보면 저마다 잘 하는 일이 있어요. 그런데 다른 형사도 잘 하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누구한테나 뛰어난 솜씨가 한 가지 있으면서, 조금 어수룩하거나 많이 어설픈 대목이 있습니다. 잘 하는 솜씨는 서로 북돋우고, 어수룩하거나 어설픈 대목은 서로 감싸면서 채워 줍니다. 함께 모임이나 모둠을 이루어 돕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일을 해냅니다.



- “사람이 한 명 죽었어요. 범인은 고작 푼돈 때문에 노인을 죽인 인간이에요. 뭔가 아시면 부디 말씀해 주세요.” (57쪽)

- “아베 유타, 진짜 못 말릴 녀석이구만. 넌 지난 6년 동안 뭔가 하나라도 배운 게 없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던 게냐?” “시끄러! 시끄럽다고! 네놈 때문에 그 망할 여자를 죽이지 못했어! 빌어먹을!” “그거 참 안됐군.” (72∼73쪽)




  아주 솜씨가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혼자 모든 일을 다 풀는지 모릅니다. 아주 빼어난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한테서 도움을 안 받을는지 모릅니다. 깊은 멧골에서 혼자 지내는 사람이라면 밥도 옷도 집고 손수 건사할 테니, 굳이 다른 사람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나, 손수 삶을 지으면서 지내는 사람도 낱낱이 따지면 모든 일을 혼자 해내지는 못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해님이 비추어야 하고, 비가 와야 하며, 바람이 불어야 하고, 풀과 나무가 자라야 하며, 새와 벌레가 있어야 하고, 흙이 기름져야 하는데다가, 냇물과 샘물이 흘러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서 서로 돕고 기대는 삶을 이룹니다. 사람과 사람은 다른 이웃인 숲과 들과 온누리하고 이어지면서 서로 돕고 기대는 삶을 이룹니다.



- “새벽에 정원을 파다니 딱 봐도 이상하잖아요.” “꽃이라도 심으려던 게 아닐까?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까.” (95쪽)

-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원코가 걱정돼서 그냥 둘 수 없었던 거죠? 부럽다.” “아니거든! 너희가 바보라서 그래! 정원에 몰래 들어가서 원코한테 냄새 맡아 보라고 시킬 생각인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116쪽)





  삶을 이루는 바탕은 사랑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웃이 되어 어깨동무를 할 적에는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짝짓기 같은 살섞기가 아닌, 마음과 마음으로 서로 아낄 줄 아는 사랑입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뭇느낌이 아닌, 마음으로 손을 맞잡을 줄 아는 사랑입니다.


  개코형사가 일을 풀 적이든, 다른 형사가 실마리를 찾을 적이든, 사건이나 사고를 풀려는 뜻만으로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웃을 믿고, 나 또한 서로 이웃이 되며, 저마다 살가운 동무가 될 수 있는 마음일 때에 함께 일을 합니다.



- “당연히 너도 원코랑 뜻을 함께하는 줄 알았거든.” “하긴 뭘해요.” “원코는 아직도 혼자서 냄새를 맡고 다니는 모양이던데.” “예?” … “그 녀석은 자신이 맡은 냄새에 확신을 가지고 있잖아? 넌 우리보다 원코와 더 오래 알고 지냈으니 그 녀석의 코를 믿고 함께 행동하는 줄 알았지.” (147∼148쪽)




  운동선수는 운동을 하는 선수입니다. 운동을 할 적에 남몰래 나쁜 짓을 한다든지 꾐수를 쓴다면, 이녁은 운동도 안 하는 셈이요 선수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여느 회사원과 공무원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규칙이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떳떳한 삶으로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규칙이나 원칙이라서 지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왜 나쁜 짓을 굳이 몰래 하려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저마다 착한 마음이 되어 즐겁게 일한다면, 규칙이나 원칙이 있을 까닭이 없어요. 우리는 모두 법 없이 아름다운 삶을 이룰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따로 법이 없어도 아름답게 아끼고 어깨동무를 할 때에 사랑이 싹터요.


  그러니까, 법을 어긴다든지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법을 어긴 잘못’이나 ‘범죄를 저지른 나쁜 일’ 때문에 붙잡혀서 감옥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범죄자 스스로 삶을 아끼지 못하고 사랑이 없는 모습’을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나쁜 짓은 언젠가 들통이 납니다. 나쁜 짓은 냄새가 나기 마련이니, 개코형사 같은 사람이 있어서 이를 샅샅이 찾아내기 마련입니다. 남몰래 숨어서 나쁜 짓을 일삼아서 성적이나 결과나 성과만 내려고 한다면, 이런 껍데기로는 내 삶조차 북돋우지 못합니다.


  꽃내음이 향긋하게 퍼질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을 걸을 노릇입니다. 함께 일하는 사이라면, 함께 삶을 지으려는 이웃이라면, 함께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동무라면, 우리는 아름다운 웃음꽃을 피울 노릇입니다. 4348.3.24.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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