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에서 우리문화찾기 10살부터 읽는 어린이 교양 역사
배유안 지음,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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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29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아온 모습

―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에서 우리 문화 찾기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

 배유안 글

 책과함께어린이 펴냄, 2008.12.5. 11000원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 님은 우리가 일제강점기로 지내야 하던 무렵 이 땅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은 꽤 있었을 텐데, 우리 이야기와 우리 문화를 가만히 살피면서 남긴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아요. 이녁이 일제강점기에 이 땅에서 그려서 남긴 그림은 오늘날 한국에서 지난날 발자취를 되새기도록 도와주는 조촐한 선물과 같습니다.


  어린이 인문책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에서 우리 문화 찾기》(책과함께어린이,2008)를 읽습니다. 엘리자베스 키스 님이 남긴 그림을 놓고, 배유안 님이 살을 붙여서 엮은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이 책은 역사 자료로 들려주는 한국 현대사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나라에서 수수하게 살던 사람들 발자취가 물씬 묻어나는 그림을 새삼스레 바라보면서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어떤 삶을 문화로 아로새겼는가 하는 대목을 들려주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인쇄까지 다 한 크리스마스실을 갑자기 일본이 압수해 간 거야. 산을 크게 그린 것이 군사법에 어긋난다나? 산을 작게 그리고, 또 그림에 1940년이라고 쓰지 말고 일본 연호를 써야 한다는 거야. 엘리자베스는 화가 났지만 좋은 일에 쓸 거니까 참고 다시 그렸대. (15쪽)



  ‘풍속화’라는 이름으로 수수한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를 그림으로 담은 일이 지난날에도 더러 있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수수한 여느 사람들 삶은 그림이나 글이나 책에 거의 나타나지 않아요. 으레 임금님이나 신하나 지식인 모습이나 발자취만 그림이나 글이나 책으로 엿볼 뿐이에요.


  엘리자베스 키스 님이 남긴 그림에도 일제강점기 무렵 꽤 이름이 높거나 정치권력이 센 사람도 나옵니다. 그렇지만 이보다는 여느 시골집이나 살림집에서 수수하게 사는 사람들 모습이 더 자주 나와요. 마당에 멍석을 깔고서 맷돌을 돌리는 사람이 나옵니다. 마을 고샅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나옵니다. 연을 날리는 아이가 나오고, 널을 뛰는 사람하고 널뛰기를 구경하며 아기를 업은 사람이 나와요.





마당에 멍석을 깔아 놓고 그 위에 얇은 천을 펴 놓았지? 맷돌에서 흘러나오는 마른 가루를 받도록 말이야. 삶은 콩이나 불린 쌀같이 젖은 걸 갈 때는 맷돌 아래에 커다란 함지를 받쳐 놓아야 해. (29쪽)


오다가 만나도 이야기 한 소쿠리, 가다가 만나도 이야기 한 소쿠리, 밤에는 바느질감 들고 모여 또 한 소쿠리, 해도 해도 끝도 없는 게 사는 이야기야. (35쪽)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에서 우리 문화 찾기》에 나오는 그림을 살피고, 이 그림에 붙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해방 뒤나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던 무렵이나 오늘날에도,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 눈여겨보는 사람은 ‘수수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는 이들이 눈여겨보는 사람도 ‘수수한 사람’이 아니기 마련이에요.


  이름난 사람을 그리거나 찍어야 뭔가 이야기가 되는 줄 여기곤 해요. 힘(권력)이 있거나 돈이 있거나 내로라하는 자리에 선 사람을 그리거나 찍어야 뭔가 역사가 되거나 기록이 되는 줄 여기곤 하지요.


  수수한 이웃을 그림으로 담거나, 수수한 동무를 사진으로 찍으면서 ‘삶을 짓는 기쁨’을 그림이나 사진으로 드러내는 손길이 아직 퍽 모자라지 않느냐 하고 느낍니다. 수수한 이야기에서 수수한 사랑이 흐른다는 대목을 보여주는 그림이나 사진은 아직 한국에 얼마 없구나 싶어요. 일제강점기에는 외국사람 손길이라도 타면서 수수한 살림살이와 수수한 사랑이 남을 수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우리 손길로도 좀처럼 수수한 살림살이와 수수한 사랑이 남도록 하는 일이 드물구나 싶어요.




말간 하늘에 둥실둥실 연들이 춤추고 있어. 빨간 댕기를 늘어뜨린 여자아이가 얼레를 들고 높이 뜬 연을 올려다보고 있구나. (50쪽)


초가지붕에도 돌담에도 짚을 엮어 얹었어. 돌담 위에 빨래통 같은 걸 엎어 놓았네. 오른쪽에는 줄을 매서 빨래도 널어놓았어. (74쪽)



  임금님 밥상도 문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수수한 사람들 밥상도 문화 가운데 하나예요. 임금님 옷차림도 문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수수한 사람들 옷차림도 문화 가운데 하나이지요. 커다란 궁궐이나 절집도 문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수수한 사람들 풀집이나 흙집도 문화 가운데 하나랍니다.


  문화란 멀리 있지 않다고 느껴요. 오늘 이곳에서 우리가 짓는 살림살이가 모두 문화라고 느껴요. 수수한 살림집에서 수수한 사람(서민이나 시민)이 수수하게 짓는 놀이랑 웃음이랑 이야기가 바로 문화라고 느껴요. 아이들이 그리는 어머니 모습이나 아버지 모습이 바로 문화이고, 어버이가 아이한테 종이접기를 해서 내미는 작은 종잇조각이 늘 문화이지 싶어요. 집집마다 아기자기하게 태어나는 문화이고, 사람들마다 새삼스레 앙증맞게 가꾸는 문화라고 봅니다.





이 초상화는 할아버지가 독립 청원서를 내서 붙잡혔다가 풀려난 뒤에 바로 그렸다고 해. 그러니까 가슴 한쪽을 누르던 부끄러움을 어느 정도는 씻어 내린 뒤의 고단한 얼굴이야. 그림을 그리고 나서 한 달 뒤, 할아버지는 죽었어. (98쪽)


이 사람은 대금의 명인 김계선(1891∼1944)이라고 추정하고 있어. 궁중 음악가로 제례에 나가 연주를 했는데 이제 나라가 멸망해 제례도 치르지 못하고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 그가 창조하는 소리의 세계에는 슬픔이 섞여 있을 것 같아. (114쪽)



  엘리자베스 키스 님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찾아와서 머물며 ‘지구별 이웃’을 새롭게 만났다고 느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한국을 벗어나서 다른 나라로 찾아가서 그림을 그린다면, 우리도 이웃나라에서 ‘이웃나라 수수한 사람’을 살가이 마주하면서 그림 한 점에 담을 만하리라 생각해요. 유명인사나 관광명소를 찾아가서 그림을 그려도 재미있을 테고, 그저 수수한 사람들을 스치고 수수한 골목을 걷다가 그림을 그려도 즐거울 테지요.


  따사로운 눈길로 아이를 보살피면서 따사로운 살림을 짓습니다. 따사로운 눈길로 바라보면서 따사로운 손길로 그림을 그립니다. 따사로운 눈길로 서로 마주하면서 말도 몸짓도 차림새도 다른 사람들이 기쁜 손길이 되어 살가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4349.1.2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어린이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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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맨션 5 토성 맨션 5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송치민 옮김 / 세미콜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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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97



아버지 뒤를 따라 천천히 내딛는 발걸음

― 토성 맨션 5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송치민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5.4.15. 9000원



  일본에서는 2006년에 진작 나왔으나 한국에서는 2012년에 4권까지 나온 뒤 뒤엣권이 더 나오지 않다가 2015년에 비로소 5권이 나온 《토성 맨션》(세미콜론)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에서 주인공이 되는 ‘미쓰’라는 아이는 아버지 뒤를 이어서 ‘창문닦이’ 일을 합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집이나 건물에 붙은 창문을 닦지 않습니다. 지구별에서 떨어진 우주에 지은 커다란 시설물 바깥에 있는 창문입니다.


  만화책이니 우주 이야기라든지 ‘지구가 사람이 살 수 없는 터전이 된 뒤’ 이야기를 그릴 만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오늘날 문명사회를 돌아보더라도 이러한 이야기를 만화로 그릴 만하다고 여길 수 있고요. 전쟁무기를 줄이지 않고, 원자력 발전소도 없애지 않는 문명사회 흐름이라면 틀림없이 지구별을 온통 망가뜨려서 지구에서 사람이고 풀이고 나무이고 짐승이고 벌레이고 아무것도 도무지 살 수 없는 곳으로 바꿀는지 모르니까요.



“자연이란 게 뭘까요? 저는 눈동냥으로 시작해서 잘 모르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만약 남편이 말한 자연이 지상의 식물과 동물과 대지라면, 그렇다면 우리들은 본 적이 없는 거잖아요.” (19쪽)


“그렇게 큰 일은 실감이 잘 안 와서요. 눈앞에 있는 일만으로 벅차지만, 하지만 지금은 굉장히 충실히 살고 있어요.” (94쪽)




  만화책 《토성 행성》을 보면, 지구 바깥에 세운 커다란 시설물은 ‘위(상층)·가운데(중층)·아래(하층)’로 나뉩니다. 이곳에서는 아주 빈틈없이 계급을 나누어서 위층하고 아래층은 서로 오가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이러면서 가운데층을 두어 겉치레로 ‘계급이 없는 사회’인 듯 꾸미지요. 막상 위아래층이 하나되어 움직이지 못하는데 말이지요.


  아래층에 살면서 위층 창문을 닦는 ‘미쓰’라는 아이는 창문닦이를 퍽 보람찬 일로 여깁니다. 다른 창문닦이 일꾼도 미쓰하고 비슷한 마음입니다. 아래층 사람들이 위층 사람들 심부름꾼 노릇밖에 못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어디로도 더 나아갈 수 없는 시설물에 ‘갇히다’시피 사는 사람으로서, 시설물 바깥으로 나가서 우주 바람을 쐬고 지구를 먼발치에서나마 바라볼 수 있기에, 이러한 일은 가슴을 시원스레 뚫어 준다고 여겨요.


  위층 사람들은 위에 있다고 할 테지만, 이들도 시설물 바깥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시설물 바깥에서 살아남을 만한 과학이나 문명이나 솜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위층 사람은 드넓은 우주를 ‘창문으로 바라볼’ 수 있을 뿐이에요. 아래층 사람은 우주고 뭐고 내다볼 틈조차 없이 깜깜한 데에서 전깃불만 밝혀서 살고요.



“굉장하네요. 번쩍번쩍하는데요.” “음? 번쩍번쩍해진 걸 알아본다는 건, 제대로 보고 있다는 거네요.” “예?” “잘못된 것도 알죠? 조금 더 제대로 해 주세요.” “어, 죄송합니다.” (113쪽)


‘어깨가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아버지도 이런 식으로 도움을 받았을까? 나도 언젠가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143쪽)



  창문닦이 일을 하는 아이는 창문닦이 일을 하다가 그만 줄이 끊어져서 죽고 만 아버지를 그리면서도 그저 차분하게 아버지 뒤를 밟습니다. 아니, 이 아이가 짐짓 차분해 보일 수 있고, 가슴에 응어리진 이야기를 좀처럼 바깥으로 못 꺼낸다고도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창문닦이 아이는 ‘창문닦이 동료’인 어른들을 마주하면서 저희 아버지가 예전에 함께 일했을 어른들하고 어떤 마음이 되었고 어떤 삶이 되었으며 어떤 말짓과 몸짓으로 하루를 보냈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서로 돕고 아끼면서 짓는 살림을 가만히 그려요. 도움을 받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면서 천천히 자라는 모습을 깨닫습니다.



“소타, 잃고 나서 알게 되면 늦는다고.” “음.” ‘하지만 지금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게다가 가요는 내가 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해 주니까. 일단 이렇게 생각하지만.’ (153쪽)




  만화책을 읽으면서 내가 걷는 길을 돌아봅니다. 나는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가 걸은 어떤 길을 뒤따라서 걷는다고 할 만한지 되새깁니다. 내가 걷는 길을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즐겁게 바라보면서 배우거나 맞아들일 만한지 되짚습니다. 나는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하고 똑같지 않으니, 내가 걷는 길은 여러모로 다를 만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하고 똑같지 않기에, 아이들이 걸을 길은 여러모로 새로울 만합니다.


  나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받은 사랑으로 오늘을 살면서 내 나름대로 새롭게 사랑을 짓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한테서 받은 사랑으로 오늘을 꿈꾸면서 아이들 나름대로 기쁘게 사랑을 가꿀 테지요.


  잘한다거나 못한다고 하는 모습을 가리는 삶은 아니라고 느껴요. 기쁨인가 아닌가 하는 대목을 살필 삶이라고 느껴요. 내가 우리 어버이한테서 지켜본 모습을 기쁨으로 삭히면서 가다듬을 노릇이고, 오늘은 내가 어버이가 되어 우리 아이들을 마주할 적에 새로운 기쁨하고 웃음하고 노래가 되도록 추스를 노릇이에요. 아름답게 웃고 사랑스레 손을 맞잡으면 넉넉하리라 느껴요.



“다마치 군, 살아 있다면 울어도 되고, 웃어도 돼요. 당신이 당신을 용서해 줘요.” (174쪽)



  만화책 《토성 맨션》에 나오는 ‘다마치’라는 어른은 ‘미쓰네 아버지’가 창문닦이 일을 하다가 그만 줄이 끊어져서 죽던 날에 미처 잡아채지 못했다고 스스로 몹시 괴로워합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다마치라는 어른이 잘못하지 않았다고 여기지만, 아주 아슬아슬하게 손이 닿지 않아서 미쓰네 아버지를 잡아채지 못해서 살리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다마치라는 어른은 늘 머리가 아프고 가위에 눌려요.


  가까운 일벗이 죽었기에 웃지도 울지도 마음을 열지도 못하는 굴레에 빠진 다마치 씨예요. 참말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말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는 채 그대로 머리가 아프고 가위에 눌려야 할까요. 아니면, 다마치 씨도 죽음길로 뛰어들어야 할까요. 아니면, 다마치 씨 스스로 웃음도 울음도 함께 되찾아서 ‘내 곁에 있는 이웃하고 벗님’을 느끼는 길로 가야 할까요.


  어버이 자리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오늘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를 탓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저희를 나무란다고 해서 어버이가 잘못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어버이를 좋아하고 아끼며 사랑합니다. 나도 아이들이 잘못했다고 여기지 않아요. 아이들이 부엌에서 뛰놀다가 물을 쏟든 뭔 말썽을 일으키든 이런 일이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아요. 나도 그저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끼며 사랑할 뿐입니다. 우리한테는 서로 아끼면서 바라보고 돌아보고 ‘봐줄(용서할)’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지 싶어요. 나는 우리 어버이 뒤를 따라서 새롭게 어버이가 되었고, 우리 아이들은 내 뒤를 따라서 새롭게 어른으로 자랍니다. 다 같이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씩씩하게 서야겠다고 새삼스레 다짐합니다. 4349.1.2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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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소와 작은 유산들 - 김지연 사진집
김지연 사진 / 눈빛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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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빈 방에 서다>는 서울과 대구에 있는 작은 마을책방에서만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이라는 책에 이 느낌글(사진비평)을 붙입니다. <빈 방에 서다>뿐 아니라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도 널리 사랑받을 수 있기를 빌어요.


서울 : 책방 치읓(ㅊ) + 테이크아웃드로잉, 유어마인드, 더북소사이어티, 스토리지북앤필름, 비엥북스, 땡스북스
대구 : 더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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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03



‘보금자리’하고 ‘낡고 빈 집’ 사이

― 빈 방에 서다

 김지연 사진

 사월의눈 펴냄, 2015.10.16. 29000원



  제가 큰아이를 낳은 곳은 인천이고, 이무렵 우리 식구가 살던 집은 4층 건물 옥탑이었는데, 1955년에 지었다고 했습니다. 이 4층 건물은 아직 그곳에 그대로 있습니다. 용케 안 헐렸다고 할 수 있지만, 제법 튼튼하게 지었으니 버티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집은 기찻길하고 맞닿은 터라, 인천하고 서울 사이를 오가는 전철이 지나갈 때면 덜덜 떨려요. 전철이 서너 대(여느 전철과 빠른 전철)가 겹쳐서 지나갈 때면 떨림과 소리가 대단했습니다.


  오늘 우리 식구가 사는 집은 전남 고흥 시골에 있습니다. 이 집은 언제 지었는 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른 시골집도 이와 비슷한데, 시골에서는 집을 짓고도 면내나 읍내에 신고를 안 하기 일쑤라 건축대장에 없습니다. 전기를 쓸 적에는 한국전력에 신고해야 하기에 전기를 처음 쓴 때는 알 수 있으니, 우리 식구가 사는 이 시골집은 1986년 7월부터 전기를 썼다고 나와요. 마을 어르신들 말씀을 들으면 이 집에서 살았다는 분이 여럿 계십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꽤 오래된 집이로구나 싶습니다.



사람이 모두 떠나버리고 없는 빈집, 빈방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흡사 관에 들어가는 것 같은 서늘함을 느껴야 했다. (작가 이야기)



  “낡은 방”하고 “빈 방에 서다”가 어우러진 사진책 《빈 방에 서다》(사월의눈,2015)를 읽으면서 집이란 무엇인가 하고 곰곰이 헤아립니다. 이 사진책을 선보인 김지연 님은 전북 전주에서 서학동사진관을 꾸립니다. 《빈 방에 서다》에 나오는 ‘집’은 두 가지로, 하나는 그저 낡고 작은 방이 있는 집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 더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집입니다.


  아직 멀쩡하거나 깨끗해도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차츰 스러집니다. 빈집이 되면 이 집에는 따스한 기운이 사라지는 터라, 아무도 없으나 천장이 주저앉고 비도 새기 마련입니다. 빈집을 따로 돌보는 사람도 없고, 빈집에 불을 때는 사람도 없으니, 이 빈집은 쓸쓸하게 남다가 어느새 흙으로 돌아갑니다. 시골에서는 집을 흙이랑 나무랑 돌로 지으니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지요.


  도시에서는 아직 멀쩡하거나 깨끗한 집이어도 재개발을 한다면서 허뭅니다. 더 오래 살고 싶어도, 따스한 보금자리로 여기면서 알뜰살뜰 아끼고 싶어도, 이러한 집이요 보금자리요 삶터를 하루 아침에 빼앗기기 일쑤입니다. 도시에서는 돈을 앞에 내세우면 그 어느 것도 이 돈을 이기거나 견디지 못해요. 재개발을 하면 돈이 떨어진다 하고, 재개발을 해야 돈이 된다 하며, 재개발을 하기에 돈을 잘 번다고 하지요.



어느 날 산꼭대기 빈집에 들어섰다. 들어서는 현관에 빈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작가 이야기)






  사진책 《빈 방에 서다》는 낡거나 빈 집에 선 사진가 눈길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낡거나 빈 집은 참말 말 그대로 ‘낡’거나 ‘빈’ 집입니다. 그러나, 낡은 집이든 빈 집이든, 오랫동안 사람 살던 곳이요, 사람 살던 자국이 흐르는 곳이요, 사람 살던 이야기가 머물던 곳입니다.


  어린이가 그린 그림이 한쪽 벽에 있습니다. 달력과 사진이 한쪽 벽에 있습니다. 때로는 편지가 벽에 붙고, 때로는 무언가를 적은 쪽종이가 벽에 붙어요. 빈틈이 하나도 없이 벽종이를 바른 낡은 방이 있고, 오랜 나날 묵은 때가 깃든 방이 있습니다. 발신자번호 따위는 뜨지 않는 낡은 전화기가 방 한켠에 얌전히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진책 《빈 방에 서다》에 나오는 집은 문을 살그마니 열면 들이나 숲이 보이는 자리에 있구나 싶습니다. 방에서 문만 빼꼼 열어도 바람이 훅 불지요. 여름에는 더운 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요. 여름에는 빗물 묻은 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눈송이 날리는 바람이 불어요.


  텃밭에 심은 남새에서 풀내음이 흐릅니다. 마당에 선 나무에서 잎내음이 흐르다가, 바람 따라 춤을 추는 잎노래가 흐릅니다. 젊은 날 낳아서 돌본 딸아들은 훌쩍 자라서 도시로 떠났습니다. 도시로 떠난 딸아들은 설이나 한가위가 아니면 고개를 내밀지 않습니다. 한 해 거의 모두 조그맣고 조용한 집에서 늙은 할매와 할배가 온 하루를 보냅니다. 방에 홀로 있기보다는 밭에라도 가고, 아니 방에 홀로 있지 않고 밭으로 가며, 옷을 정갈히 차려입고 읍내 저잣거리로 마실을 갑니다.



어제 사진 찍고 간 빈집이 오늘 헐리는 것을 보는 일은 충격이었다. 건물을 제거하는 것은 사람의 기억과 인격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작가 이야기)



  예부터 집을 지을 적에는 먼저 숲을 가꾸었습니다. 예부터 어느 집이건 나무를 기둥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우람하게 잘 자라서 튼튼한 줄기가 멋스러운 나무가 있어야 기둥으로 삼아서 집을 지어요.


  이백 해를 자란 나무를 베어 집을 지으면, 이 집은 이백 해를 간다고 합니다. 사백 해를 자란 나무를 베어 집을 지으면, 이 집은 사백 해를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 해를 자란 나무를 베어 집을 지으면, 천 해도 가고 다시 천 해를 더 갈 수 있다고도 해요.


  오늘은 그저 ‘낡은 집’이거나 ‘빈 집’으로 보일는지 모르나, 이 모든 낡거나 빈 집은 하루 아침에 지은 집이 아닙니다. 적어도 이백 해는 자란 나무를 베어서 지은 집입니다. 못해도 백 해는 더 자란 나무를 베어서 지은 집이요, 웬만하면 삼백 해나 사백 해는 너끈히 자라던 나무를 베어서 지은 집이에요.


  삼백 해를 자라던 나무를 베어서 지은 집이라면, 이 집은 삼백 해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이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만한 집이라는 뜻입니다. 비록 오늘은 낡은 집이 되어 헐리더라도, 비록 오늘은 빈 집이 되어 조용히 스러지더라도, 비록 오늘은 아무도 안 찾는 외딴 집 쓸쓸한 자리가 되더라도, 이 집에 깃든 노래와 숨결과 웃음과 눈물과 이야기는 애틋하면서 사랑스럽습니다. 이리하여, 사진책 《빈 방에 서다》를 선보인 김지연 님은 바로 이 애틋하면서 사랑스러운 눈길로 마음을 달래면서 한 장 두 장 사진을 찍고, 책으로 꾸려서, 우리한테 다소곳하게 내밉니다.



어느 초여름, 그 빈집 앞에는 유채꽃과 황매화가 만발하고 있었다. (작가 이야기)








  하루 아침(은 아니고 한두 해)에 우지끈 뚝딱 시멘트로 때려집은 집이라고 해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멘트로 이루어진 아파트숲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곳이든 모두 집이요 보금자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시골집이든 도시 아파트이든, 사랑이 흐르고 이야기가 흐를 때에 집이 되고 보금자리가 되리라 느낍니다.


  천 해 된 나무를 베어서 지은 시골집이어도 사랑이 흐르지 않으면 ‘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멋쩍습니다. 오백 해가 된 나무를 베어서 지은 멋스러운 기와집이어도 이야기가 노래처럼 흐르지 않으면 ‘보금자리’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려워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집살림을 곱게 건사하면서 알뜰살뜰 사랑스러운 손길로 돌보는 사람들은 이곳을 아름다운 보금자리로 거듭나도록 북돋웁니다. 오늘은 비고 만 집이어도 유채꽃이 피고 냉이꽃이 핍니다. 어제도 비고 오늘뿐 아니라 모레도 비고 말 집이어도 민들레꽃이 피고 쑥꽃이 핍니다.


  텅텅 비어 사람 그림자가 안 보이는 집이기에 ‘낡거나 빈 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사람 발자국이 없을 뿐, 이곳은 ‘꽃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철마다 새로운 꽃이 흐드러지니 꽃집이에요. 마당에 감나무가 있으면 감나무집이라 할 수 있고, 마당에 배나무가 있으면 배나무집이라 할 수 있어요. 바다를 내다보는 ‘바닷집’이라든지, 멧골에 깃든 ‘멧집’이 될 수 있습니다.


  빈 방 앞에 선, 또 낡은 방 앞에 선 김지연 님은 무엇을 보았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빈 곳과 낡은 곳 앞에 선 김지연 님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둘러보면서 사진 한 장 찍었을까 하고 되새깁니다. 오늘 언뜻 보기에 낡았기에 빨리 허물어서 번듯한 시멘트집이나 아파트로 바꾸어야 하지 않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보아하니 텅 빈 집이기에 얼른 치우거나 밀어내야 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곳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새롭게 살도록 할 집이요 보금자리입니다. 집을 짓는 마음은 삶을 사랑하는 마음일 때에 아름답고, 보금자리를 가꾸는 마음은 사람을 사랑하는 숨결일 때에 싱그럽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집살림을 물려받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어른으로 자랄 아이들은 이 집을 물려받아 한결 이쁘장한 보금자리로 가꿀 수 있고, 다른 터에 새로운 집을 지어 그야말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집자리가 보금자리인 까닭은, 집을 지어서 살림을 이룰 적에 사랑을 꽃피우려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곧, 집자리는 보금자리이면서 사랑자리요, 이야기자리이고, 노래자리이자 꿈자리입니다. 웃음자리이고, 꽃이 피는 자리이며, 삶이 기쁘게 흐르는 자리, 바로 삶자리입니다. 사진은 언제나 삶자리에서 태어나고, 사랑자리에서 자랍니다. 사진책 한 권은 이 삶자리에서 사랑을 가꾸며 웃음과 꿈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빚습니다. 4348.11.15.해.ㅅㄴㄹ


(글에 붙인 사진은 사진가 김지연 님한테서 고맙게 받았습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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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괭이 앞발 권법 - 박경희 동시집 담쟁이 동시집
박경희 지음, 이휘재 그림 / 실천문학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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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78



동시에 욕만 잔뜩 쓰는 아이

― 도둑괭이 앞발 권법

 박경희 글

 이희재 그림

 실천문학사 펴냄, 2015.12.30. 12000원



  충남 보령에서 지내며 아이들한테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박경희 님이 쓴 동시를 묶은 《도둑괭이 앞발 권법》(실천문학사,2015)을 읽습니다. 박경희 님은 시골에서 살며 시골 아이하고 느끼는 하루를 조곤조곤 동시로 묶어요. 시골 아이하고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쓰고, 시골 할매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쓰고, 시골 아지매나 아재하고 부대낀 이야기를 써요.


  아이들하고 시골에서 사는 나도 이 아이들하고 어우러지는 하루를 곧잘 짤막하게 간추려 보곤 합니다. 이를테면, 두 아이가 서로 달리기 놀이를 하면서 겨루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바람을 가르듯이 신나게 달리려 하는데 아무래도 키나 몸집에서 큰아이가 더 크니 작은아이가 뒤로 처져요. 이때에 작은아이는 누나더러 저보다 앞서 달리지 말라고 하기 일쑤인데, 어느 날 배시시 웃으면서 누나 신을 신겠다고 해요. 왜 그러한가 했더니 누나 신을 신으면 저도 누나처럼 잘 달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더군요.



빨간 휴지 줄까? / 파란 휴지 줄까? // 똥꼬에 불났네 / 내 꽁지에 불났네 (뒷간 귀신,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


“아무리 쳐 봐야 대답 안 해유.” // 수박 장사 아저씨 심드렁 심드렁 // 아까부터 수박 머리 두드리는 / 아줌마가 못마땅하다 (수박)



  어버이는 누구나 시인이 됩니다. 아이한테 말을 처음으로 터뜨려서 보여주는 어버이는 언제나 시인이 됩니다. 어버이한테서 말을 처음으로 배우는 아이도 시인이 됩니다. 늘 새롭게 배우는 말로 언제나 즐겁게 말을 터뜨리는 아이는 그야말로 시인이 되어요.


  박경희 님이 쓴 〈빨간 금붕어〉 같은 노래는 박경희 님을 고모로 둔 아이가 어느 날 문득 터뜨린 말일 테지요? 박경희 님은 아이가 터뜨리는 멋지고 사랑스러운 말을 고스란히 옮겨적으면서 새로운 노래로 짓습니다. 아니, 아이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지요.


  여느 날 수수하게 아이하고 어우러져서 놀다가 노래를 부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아이하고 손을 맞잡고 노는 마음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금붕어를 보다가, 매미 울음소리를 듣다가, 바람소리를 듣다가, 또 빗물을 맞고 눈송이를 맞으면서 새삼스레 노래를 부릅니다.



둥치에서 뜨릅매미 / 뜨름 따름 뜨름 따름 // 가지에서 각시매미 / 쯔응 쓰루응 즈응 쯔루응 (매미)


고모! / 내가 자꾸 쳐다보니까 / 물고기가 / 부끄러운가 봐! (빨간 금붕어)



  이 땅에 새로 태어난 아이는 외양간도 소도 처음 마주하기 마련입니다. 눈을 끔뻑거리는 소를 마주보는 아이는 소하고 아마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리라 생각해요. 곁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어른은 소랑 아이가 이루는 삶과 놀이를 가만히 마음으로 담아서 새삼스레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밥찌꺼기를 땅에 묻고 나서 만난 멋진 새싹(참외 싹)을 본 날에도 놀랍고 반가운 노래를 불러요.



외양간에 소를 처음 본 아이가 / 입김을 씩씩 불더니 / 소 눈을 들여다본다 (눈싸움)


음식물을 / 땅에 묻고 돌아선 지 / 일주일 만에 / 우둘투둘 씩씩하게 / 햇빛 뚫고 / 참외 싹이 났다 (참외 싹이 쑤욱!)



  《도둑괭이 앞발 권법》을 읽다 보면, 동시를 쓴 박경희 님이 만난 시골마을 아이들 삶이 찬찬히 함께 흐릅니다. 박경희 님한테서 글쓰기를 배우는 아이들이 ‘동시 쓰기’를 할 적에 욕만 잔뜩 쓰는 삶이 흐르고, 한국으로 시집온 이웃나라 사람들 삶이 흐릅니다.


  시골 아이는 왜 동시 쓰기를 할 적에 욕만 쓸까요? 아무래도 이 아이는 집이나 마을에서 늘 욕만 들었기 때문일 테지요. 이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이 늘 욕을 해대니 아이 마음속에 어느새 욕이 잔뜩 들어왔을 테고, 이 아이는 이 욕을 얼른 털어내고 싶으니 동시 쓰기를 할 적에 이 욕꾸러미를 몽땅 뱉어낼는지 모릅니다. 그야말로 욕 빼고는 들은 소리가 없으니 욕꾸러미만 동시로 쓰는 아이일 텐데, 이 아이가 욕꾸러미를 다 뱉어내고 난 자리에 기쁜 노래가 한 가락이라도 스며들 수 있으면, 다음에는 이 조그마한 기쁜 노래를 동시에 쓸 수 있겠지요.


  한국으로 시집을 온 분들은 한국에서 아이를 낳습니다. 이 아이들은 모두 ‘한국 아이’가 됩니다. 그런데 한국으로 시집을 온 이웃나라 사람들은 아직 ‘한국 어른’으로 대접을 받지 못해요. “그냥 우리 동네 사람”일 텐데, 마을에서도 나라에서도 학교에서도 ‘이주 여성’이라는 눈길로만 바라봅니다.



동시를 쓰는데 / 용석이가 자꾸 욕을 쓴다 / 욕 쓰면 혼난다고 해도 / 자꾸 욕을 쓴다 // 그림도 게임에서 싸우는 / 그림만 그린다 / 칼을 들고 / 불을 내뿜는 용도 그린다 (동시 쓰기)


창준이도 / 배숙이도 / 윤진이도 / 성진이도 / 세환이도 / 다 엄마가 / 다른 나라 사람이다 (그냥 우리 동네 사람)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이 씨앗 한 톨을 손수 심어 볼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박경희 님한테서 글쓰기를 배우는 아이들이 새봄에 저마다 씨앗 한 톨씩, 또는 두 톨씩, 또는 밭고랑 한 줄씩, 또는 밭뙈기 한 가득, 손수 씨앗을 심고서 이 씨앗을 손수 돌보는 여름을 누리고 가을을 맞이할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동시 쓰기를 할 적에 욕만 쓰는 아이도 씨앗 한 톨을 손수 심어서 ‘관찰일기’를 동시로 써 볼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작은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서 꽃이 피고 새로운 씨앗을 품은 열매를 맺어요. 아이들 가슴에 고운 씨앗이 사랑스레 자라서 웃음꽃이 피고 이야기꽃이 흐드러질 수 있기를 빌어요.


  두 손을 모아서 씨앗을 품을 수 있다면, 이 두 손을 모아서 짓는 노랫가락에도 사랑스러운 숨결이 흐를 수 있을 테지요. 두 손 가득 고운 꿈을 품을 수 있다면, 이 두 손을 새롭게 펼쳐서 기쁨으로 어깨동무하는 살림을 지을 수 있을 테지요. 《도둑괭이 앞발 권법》을 빚은 박경희 님이 보령 시골마을에서 앞으로도 새로운 이야기꾸러미를 기쁨으로 지어서 나누어 주시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4349.1.2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동시 읽기/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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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자연 그림책
아라이 마키 글.그림, 사과나무 옮김, 타카하시 히데오 감수 / 크레용하우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12



새봄에 해바라기씨를 심어 보자

― 해바라기

 아라이 마키 글·그림

 사과나무 옮김

 크레용하우스 펴냄, 2015.8.10. 1만 원



  씨앗 한 톨에는 아주 멋진 숨결이 고요히 잠들어서 우리를 기다립니다. 씨앗 한 톨은 우리가 즐겁게 심어 줄 날을 기다리면서 새근새근 자요. 한 해를 자기도 하고, 열 해를 자기도 하는데, 때로는 백 해나 오백 해를 자기도 해요. 다만, 씨앗을 잘 건사해야 오래도록 새근새근 자면서 우리를 기다릴 수 있어요. 씨앗을 아무렇게나 둔다면 이 씨앗은 어느새 썩고 말 테지요.




손바닥에 있는 이것은 해바라기 씨앗이에요. 해바라기 씨앗은 4월에서 6월 사이에 심어요. (1쪽)



  아라이 마키 님이 빚은 그림책 《해바라기》(크레용하우스,2015)를 한겨울에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오면 우리 집 마당이나 밭자락에 어떤 씨앗을 심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림책 《해바라기》에 나오듯이 해바라기씨도 심을 만합니다. 해님을 닮은 해바라기씨를 심어서 아이들하고 함께 언제나 해바라기 노래를 부를 만해요. 상추씨를 심을 수 있고 시금치씨를 심을 수 있어요. 어떤 씨이든 흙은 모두 고이 품어 줍니다. 어떤 씨이든 우리가 건네는 손길을 기다려요.


  햇볕이 씨앗을 포근히 어루만집니다. 빗물이 씨앗을 촉촉히 적십니다. 바람이 씨앗을 맑게 쓰다듬습니다. 여기에 사람들 손길이 살가이 닿으면서 사랑스러운 꿈 하나가 씨앗에 스며들어요.




해처럼 커다란 해바라기꽃이 피어납니다! (18쪽)



  우리가 심은 씨앗에 싹이 트고 뿌리가 내리면서 떡잎이 나오고 난 뒤에는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크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어버이 품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도 아기 티를 벗으면서 그야말로 무럭무럭 자라면서 기다가 서다가 걷다가 뛰다가 달리다가 노래하다가 웃다가 울기도 하면서 씩씩하게 자라요.


  해바라기는 해님을 바라보면서 웃고, 아이는 어버이를 마주보면서 웃습니다. 해바라기는 해님 기운을 받으면서 잘 자라고, 아이는 어버이 사랑을 받으면서 잘 자라요. 해바라기는 이 바람을 기쁘게 맞아들이면서 살랑살랑 춤을 추고, 아이는 따사로운 눈길로 바라보는 어버이 숨결을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덩실덩실 춤을 춰요.


  정갈히 일군 밭에 씨앗 한 톨을 심듯이, 곱게 돌보는 아이 마음자리에 사랑씨 한 톨을 심습니다. 마당에서는 남새도 꽃도 자라고, 아이 마음속에서는 꿈도 기쁨도 자랍니다. 그리고, 이 보금자리를 가꾸고 이 아이를 보살피는 어버이 마음속에서도 새로운 꿈날개가 훨훨 피어납니다.




여러분도 해바라기 씨앗을 심어 보세요. 씨앗이 꽃을 피우고 다시 새로운 씨앗을 얻을 때까지 소중하게 키워 보세요. (32쪽)



  그림책 《해바라기》는 작은 씨앗 한 톨에서 커다란 꽃송이로 거듭나는 해바라기 한살이를 꼼꼼하게 엮은 그림으로 잘 보여줍니다. 어린이뿐 아니라 ‘씨앗심기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어른’도 재미나고 즐겁게 ‘씨앗심기를 배울’ 수 있도록 차분히 알려줍니다. 씨앗 한 톨에 뿌리가 내려서 줄기가 쑥쑥 오르는 모습을 찬찬히 보여주고, 해바라기꽃을 이루는 혀꽃하고 대롱꽃이 저마다 어떻게 바뀌어 새로운 씨앗으로 거듭나는가 하는 대목을 가만히 알려주어요.


  이 그림책을 빚은 아라이 마키 님이 우리한테 씨앗 한 톨을 심어 보라고 넌지시 말씀하듯이, 참말 우리 스스로 곱게 씨앗 한 톨을 심은 뒤 꾸준히 지켜보고 살펴보면서 ‘그림일기’를 써 본다면, 그림책 《해바라기》 곁에 나란히 꽂을 만한 재미나고 신나는 ‘우리 그림책(관찰일기 그림책)’ 한 권을 빚을 만하리라 생각해요.


  씨앗 한 톨이면 돼요. 딱 씨앗 한 톨만 심으면 돼요. 우리 보금자리마다 씨앗 한 톨이 싹을 틔워 꽃을 한 송이씩 피울 수 있으면, 우리 보금자리를 비롯해서 마을에도 나라에도 온누리에도 고운 꽃내음이 흐드러질 수 있어요. 4349.1.2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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