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분 아빠 육아 - 할 일 많은 직장인 아빠의 육아법, "육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자녀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안성진 지음 / 가나북스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배움책 37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아버지가 곱다

― 하루 10분 아빠 육아

 안성진 글

 가나북스 펴냄, 2015.11.25. 13000원



  《하루 10분 아빠 육아》(가나북스,2015)를 쓴 안성진 님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여느 아버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안성진 님은 회사원으로 일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도맡아서 보살피지 못합니다. 다른 회사원도 엇비슷할 텐데, 아침에 일찍 일터로 가서 저녁에 늦게 집으로 돌아오지요.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니거나 학교를 다닌다고 하더라도 아이들한테 밥을 챙겨 준다든지, 아이들 옷을 챙겨 입힌다든지, 아이들이 새롭게 배울 것을 찬찬히 살펴서 알려주기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안성진 님으로서는 ‘하루 10분’을 다짐합니다. 적어도 하루에 10분씩 오롯이 아이하고 얼굴을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놀겠노라 하고 다짐합니다.



지금 중년 세대들의 어릴 적 부모들은 다 살갑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냥 저절로 크는 거라고 믿었다. 그러니 어떻게 키울 것인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문제는 이렇게 훌쩍 크고 나니 부모 자식 간의 사이가 어색하다. (17쪽)


표현이 어색한 아버지들이 단골로 하는 말이 있다. ‘꼭 말로 해야 알겠느냐?’고.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네, 꼭 말로 표현하세요!’라고. (24쪽)



  아이하고 하루 10분 동안 얼굴을 마주하겠노라 하는 다짐은 어떠할까요? ‘고작 10분’일까요? 아니면 ‘10분씩이나’일까요? 안성진 님은 《하루 10분 육아》라는 책을 빌어서 ‘10분’을 말씀하는데, 10분이란 두 가지 뜻입니다. 첫째, 참말로 꼭 10분은 아이하고 두 눈을 마주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자는 뜻이에요. 잔소리나 꾸중을 늘어놓는 10분이 아니라, 살가우면서 따스한 기운이 흐르는 이야기로 10분을 누리자는 뜻이에요. 둘째, 10분은 상징입니다. 아이하고 날마다 10분씩 살가이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놀이를 즐길 줄 안다면, 10분이 아닌 한 시간이나 두 시간도 얼마든지 이야기꽃을 피울 만합니다. 온 하루를 마음껏 누릴 수 있어요.


  이를테면 설이나 한가위에 모처럼 ‘회사일을 안 하고 쉰다’고 한다면, 이때에 이 나라 수많은 여느 아버지는 아이하고 어떤 나날을 보낼까요? 회사 걱정을 안 해도 되는 며칠 동안 아이하고 얼마나 재미있는 하루를 지을까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몹시 바쁘기에 주말에만 놀자고 아이를 달랜다면 ‘한집에 살아도 주말 아버지’가 될 텐데, 아이를 낳고도 ‘주말 아버지’로 산다면, 이러한 삶은 얼마나 기쁠 만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바쁘거나 힘들더라도 ‘하루 10분’은 꼭 아이를 바라보고 아이만 생각하며 아이하고 함께 짓는 보금자리 살림살이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하루 10분 육아》라고 할 만합니다.



심신이 지쳐 힘들 때도 아이들과 놀아 줄 수 있어야 하고 기분이 다운되어 있어도 아이들과는 즐겁게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30쪽)


평소 아이와 대화가 없는 아빠라면 아이의 마음을 읽을 기회를 갖지 않는 것과 같다. (48쪽)


정작 중요한 것은 아이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과 사랑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여기에 소홀하면 실패하는 육아를 하는 것과 같다. (61쪽)



  아침이 되면 마당으로 내려가서 나무를 바라보며 아침 인사를 합니다. 저녁을 지나 밤이 가까우면 손발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 다시 마당으로 내려와서 하늘을 바라보며 별한테 밤 인사를 합니다.


  나는 온 하루를 아이들하고 함께 보냅니다. 나는 시골집에서 밥짓고 빨래하고 집안일을 도맡는 아버지로 지냅니다. 이러면서 집살림을 건사하는 일을 합니다. 한 해에 몇 차례쯤 혼자 바깥일을 보러 시골집을 떠나는 날이 있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늘 아이들 곁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나는 아이들하고 ‘하루 10분’이 아닌 ‘하루 내내’ 지낸다고 할 텐데, ‘때와 곳(시간과 공간)’을 함께 보낸다고 해서 ‘아이 마음 읽기’를 늘 한다고는 여길 수 없습니다. 밥상맡에 함께 둘러앉는다고 해서 ‘하루 10분’이 아니라, 밥상맡이 아이들한테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누릴 자리’가 되도록 북돋울 때에 비로소 ‘하루 10분’인 셈이에요.


  나무한테 인사를 하든, 별한테 손을 흔들든, 달과 해를 함께 바라보든, 흙과 풀을 함께 만지든, 자전거를 함께 달리든, ‘같이 있다’를 넘어서 ‘같이 짓는다’는 이야기가 있어야 비로소 ‘하루 10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은 아이들도 즐겁고 부모인 나도 즐거운 일이다. (73쪽)


아이와 함께 나가게 되면 이렇게 한 번 해 보기 바란다. 아이가 집에 가자고 할 때까지 아무 말 않고 그냥 놀아 주는 것이다. (115쪽)


이제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인 아이들에게 저녁이면 책을 읽어 준다. 결심한 대로 매일 읽어 주기가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162쪽)



  안성진 님은 《하루 10분 아빠 육아》라는 책 겉그림에 “육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자녀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같은 글월을 뚜렷하고 새겨 넣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몫은 어머니한테 넘길 일이 아닐 뿐 아니라, 돌봄이 아줌마를 쓴다고 될 일이 아니요, 아이들을 시설이나 학교나 학원에 보내면 끝이 나는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배우려고 태어나니까요. 아이들은 어버이하고 함께 살면서 생각을 키우고 사랑을 받으려고 태어나니까요. 아이들은 어버이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이 삶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꿈을 품으려고 태어나니까요.


  《하루 10분 아빠 육아》를 읽으면, 안성진 님은 ‘아이 아버지’인 이 땅 ‘이웃 아버지’들한테 ‘육아책’을 바지런히 챙겨서 읽자는 이야기를 힘주어 밝히기도 합니다. 오늘날 아버지로 사는 수많은 한국 사내는 어려서부터 ‘아이 돌보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아이를 낳은 뒤에라도 아이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가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우자고 이야기해요. 이제껏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집일이나 아이한테 등을 돌리면서 회사일이나 바깥일만 챙기는 몸짓이 되지 말고, 아이가 모든 삶을 새롭게 배우듯이 아버지도 모든 집일이나 돌봄을 새롭게 배울 노릇이기도 합니다.



어떤 일이든 즐거워야만 오래 꾸준히 할 수 있다. 즐겁지 않은 일을 의지만 가지고 해내기란 쉽지 않다 … 사랑하게 되면 대상에 대해 알고 싶어진다. 반대로, 알게 되면 더 좋아지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 익숙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더 배우고 싶어한다. (190쪽)



  우리는 모두 아기로 이 땅에 태어났어요. 나도 곁님도 아이들도 모두 아기로 태어났어요. 나는 어릴 적에 우리 어버이한테서 넉넉히 사랑받았을 수 있고,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을 수 있어요. 나는 어릴 적에 어떤 나날을 보냈든, 오늘 이곳에서 아이들하고 새롭게 보금자리를 지으면서 살림을 가꾸는 어버이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릴 적에 기쁘게 사랑받은 아이로 자랐으면, 오늘 이곳에서 우리 아이들한테 기쁘게 사랑을 물려주는 살림을 꾸리면 돼요. 내가 어릴 적에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로 자라야 했으면,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사랑을 길어올려서 우리 아이들한테 새로 짓는 사랑을 나누어 주는 살림을 꾸리면 되고요.


  아이는 언제나 사랑을 바란다고 느낍니다. 아이는 저희한테 돈을 달라 하지 않아요. 아이는 늘 사랑을 바라지요. 아이는 저희한테 장난감을 달라 하지 않아요. 때로는 장난감을 놓고 투정을 할 테지만, 아이는 ‘사랑’하고 ‘장난감’ 사이에서 늘 사랑을 손에 쥐고 싶어요. 그러면 우리 어버이들은, 우리 아버지들은, ‘사랑’하고 ‘일’ 사이에서 어느 쪽 길을 걸을 때에 즐거울까요? 삶을 곱게 짓는 슬기로운 숨결은 어떻게 가꿀 만할까요?


  하루 10분이 어렵다면 하루 1분이라도 아이하고 웃음으로 노래하고 춤추면서 이야기하는 몸짓이 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하루 10분을 누린다면 하루 11분, 하루 12분, 하루 13분 …… 이렇게 시간을 늘리면서 더욱 재미나면서 알찬 나날을 짓는 몸짓이 될 수 있어야지 싶어요.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아버지가 고운 어른으로 일어서리라 생각해요.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아버지가 착한 어른으로 우뚝 서리라 생각해요. 아이를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아버지가 참다운 슬기로움을 가슴에 품는 어른으로 살아가리라 생각해요. 4349.2.1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학의 수학 - 옥스퍼드대 김민형 교수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 강의
김민형.김태경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 삶읽기 230



과자 한 조각을 넷으로 나누려는 셈놀이

― 수학의 수학

 김민형·김태경 글

 은행나무 펴냄, 2016.1.13. 12000원



  작은아이가 “동그란 과자 하나 먹어도 돼요?” 하고 묻습니다. “하나만?” “응. 하나만.” 아이는 동그랗게 생긴 모습으로 하나를 먹고 싶다 말합니다. 그러면 동그란 모습을 작게 잘라낸 조각은 그대로 하나일까요, 아닐까요?


  동그란 과자가 하나만 있을 적에 아이한테 되묻습니다. “하나만 있는데 어떻게 하지? 네 사람이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넷을 알맞게 잘라서 조각을 내면, 넷이 ‘모두 하나씩’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넷이 됩니다. 또는 두 사람이 안 먹고 두 조각으로 내면 둘이서 ‘저마다 하나씩’ 받습니다. 하나는 하나이면서 넷이 되다가 둘이 되지만 늘 하나입니다.



수가 무엇인지에 대한 피타고라스의 대답은 “모든 것이 수이다”라는 피타고라스의 유명한 언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의 모호한 질문에 대해서 우주의 모든 삼라만상을 이루는 기본 요소가 바로 수라는 답을 준 것이다. (15쪽)


물리학자들은 힘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제쳐두고 먼저 적절히 수학적으로 공식화한 다음, 그것의 성질을 공부하기 위해 힘을 측정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관련된 이론을 전개해 나갈 뿐이다. (19쪽)



  김민형 님과 김태경 님이 함께 쓴 《수학의 수학》(은행나무,2016)을 읽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 강의’라는 이름이 붙은 책입니다. 우리 삶을 둘러싼 수(숫자)를 수식과 이야기로 풀어내는 책이니, 어느 만큼 수식이 익숙할 때에 이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만하리라 봅니다.


  아이들은 아직 수식을 모르니 이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수식을 알 만한 청소년이나 어른이라면 혼자서 읽을 만할 테고, 아이들한테는 어른이 먼저 읽고서 이야기를 들려줄 만하리라 생각해요.


  《수학의 수학》에 나오는 피타고라스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구고 정리’를 떠올립니다. 나는 고등학교를 마치도록 ‘구고 정리’ 이야기를 듣거나 배우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 《한국수학사》(김용운·김용국 씀)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때에 ‘구고 정리’를 처음으로 알았어요. 피타고라스보다 훨씬 앞서 중국에서 갈무리했다는 수학 이야기예요. 《한국수학사》를 읽으면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수학을 가르치거나 배웠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러나 학교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가르치거나 알려주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수학은 모두 서양 수학이고 서양 이야기였어요.



처음에 제기되었을 때는 너무나도 어려웠던 개념들, 어려운 연산들이 인류가 점점 이해의 폭을 넓혀 오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결국 집단의 미성년들에게 지식으로서 전달하게 되는 일은 위와 같이 너무나 흔한 일이다. (32쪽)


어려워 보이는 문제를 일시적으로 더 어렵게 만든 것이 쉬운 답을 이끌어내는 실마리가 된 것이다. (44쪽)



  내가 학교에 다닐 무렵을 돌아보다가, 우리 아이들하고 함께 공부를 하는 요즈음을 헤아립니다. 수학을 익히든 철학을 배우든, 서양 수학이거나 한국 철학이거나 대수롭지는 않다고 느껴요. 우리는 그저 수학을 익히거나 철학을 배울 뿐이니까요. 누가 먼저 찾아낸 연산이나 수식이든, 이러한 연산이나 수식을 삶에 받아들이면서 살림을 가꾸는 길에 쓸 수 있을 때에 ‘아름다움’을 이루지 싶어요. 《수학의 수학》에서도 말하듯이 “집단의 미성년들에게 지식으로서 전달(32쪽)”하는 일은 어른이자 어버이로서 기쁨이면서 아름다운 보람이 된다고 느껴요.


  아이들한테 수(숫자)를 가르치고 말을 가르치며 살림살이를 가르치는 동안 생각을 북돋우거나 가꿉니다. 하나부터 백까지 모든 숫자를 더하는 길을 아주 쉽게 풀어낸 가우스 이야기는 바로 생각을 가꾸고 살림을 북돋우는 길을 밝히는 숱한 보기 가운데 하나예요. 이른바 “어려워 보이는 문제를 살짝 더 어렵게 바꾸어 외려 쉽게 풀이법을 찾는” 길이 나오거든요.


  이를테면 이런 보기를 들 만해요. 가우스는 ‘(1+100) + (2+99) + …… (50 + 51)’을 묶음으로 바라보았다면, 짐을 나를 적에도 ‘하나부터 백에 이르기까지’ 따로따로 들어서 나르기보다는, 알맞은 부피와 무게를 살펴서 함께 들어서 나를 수 있어요. 때로는 수레를 빌어 짐을 나를 수 있지요. 수레를 쓰든 어깨에 짐을 얹든, 왼쪽과 오른쪽이 무게가 어우러져야 하고, 앞과 뒤에도 무게를 골고루 나누어야 해요. 이러한 일이나 살림도 모두 수(숫자)라고 할 만합니다.



‘수가 무엇이냐’에 대한 답을 주려고 할 때 어떤 것이 ‘수’라는 성질이 그 물체 자체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처음에는 수와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 곡면이나 곡선, 반도체에도 연산을 줄 수 있었다. 그것보다는 수 체계를 이루는 자연스러운 집합 속에 들어가는 것이 수라는 것이 답이다. (73쪽)



  과자 한 조각을 넷으로 나누면 네 조각입니다. 네 조각을 붙이면 한 조각입니다. 하나는 넷이 될 수 있고, 넷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한 조각씩 받은 네 사람은 이 조각을 둘로 나누어 모두 여덟 조각이 되도록 할 수 있는데, 여덟 조각을 나란히 붙이면 다시 하나가 됩니다. 작은 조각은 더 작은 조각으로 쪼갤 수 있고, 그야말로 수없이 작은 조각으로 가를 수 있으니, 작은아이가 “과자 하나만?” 하고 물을 적에 잘게 자른 조각을 건네면서 “자, 여기 ‘하나’야.” 하고 말할 수 있어요. 또는 “아까 네가 먹어서 뱃속에 있는 ‘하나’가 있는걸?”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밥 한 그릇에 쌀알이 몇이 들어갈까 하고 헤아리는 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나락 한 알에서 볍씨를 몇 알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살피는 놀이를 할 수 있어요. 이 두 가지를 해 본다면, 네 사람이 한 해 동안 먹는 쌀알 숫자를 가늠하면서, 네 사람이 논을 부칠 적에 나락을 몇 포기 심어야 하고, 논을 얼마만한 넓이로 가꾸어야 하는가를 셈할 수 있습니다.



복소수가 진정한 수 체계로 받아들여진 것은 복소수가 자연계에서 발견된 20세기부터가 아닌가 싶다. 특히 물질의 미세 구조를 묘사하는 양자역학은 복소수 없이는 불가능한 이론이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물리적인 시스템의 물리량들은 확실하게 값이 정해지지 않고 그것의 어떤 확률적인 분포밖에 알 수 없다고 한다. (150쪽)



  《수학의 수학》이라는 책을 덮으면서 ‘수(數)’라는 낱말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이 한자는 ‘세다’를 뜻합니다. ‘세다’에서 ‘셈’이 나오고, 컴퓨터를 가리켜 ‘셈틀’이라 일컫기도 합니다. ‘세다’는 ‘헤다’와 같은 낱말이며, ‘헤다’에서 ‘헤아리다’가 나왔으며, ‘헤아리다’는 ‘생각하다’와 같은 낱말이기도 합니다. 한국말사전에서 ‘수’를 찾아보면 “1. 셀 수 있는 사물을 세어서 나타낸 값 2. [수학] 자연수, 정수, 분수, 유리수, 무리수, 실수, 허수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합니다. “세어서 나타낸 값”이니 ‘셈값’이 ‘수’라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날을 세면서 ‘하루 이틀 사흘’ 같은 말이 태어나고, 얼마나 있느냐를 세면서 ‘하나 둘 셋’ 같은 말이 태어납니다. 우리가 서로 나누는 꿈이나 사랑은 ‘셀’ 수는 없습니다만,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도표나 통계로 꿈이나 사랑을 나타낼 수는 없어도 마음속에 그림으로 그려 보일 수 있어요.


  ‘1 2 3’처럼 적는 글씨는 상징처럼 적는 기호입니다. ‘ㄱ ㄴ ㄷ’ 같은 글씨도 상징과 같은 기호이고요. 수학을 익히거나 배운다고 할 적에는 ‘삶자리에 있는 것’을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나타내 보이려고 한다는 뜻이리라 느낍니다. 삶자리에 있는 것을 글씨(한글 같은 글씨)라는 기호로 옮겨서 마음을 나타내듯이, ‘1 2 3’이든 ‘하나 둘 셋’이든 ‘하루 이틀 사흘’이든, 이러한 기호를 빌어서 우리가 누리거나 이루는 삶을 그려서 나타내는구나 싶어요.


  모든 것은 셀 수 있고, 모든 것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 모든 것은 ‘세면’서 우리 앞에 나타나고, 모든 것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우리가 느끼거나 알 수 있구나 싶어요. 어버이자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수학을 가르치고 함께 배운다고 할 때에는 바로 이 대목 ‘세는 힘’과 ‘생각하는 슬기’를 북돋우려는 뜻이지 싶습니다. ‘세는 놀이’를 하면서 수학을 익히고, ‘생각하는 즐거움’을 헤아리면서 수학을 배웁니다. 4349.2.1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재 유교수의 생활 30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09



웃는 마음과 우는 마음을 배운다

― 천재 유교수의 생활 30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1.6.25. 4500원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빚은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11) 서른째 권에서는 두 가지 마음하고 얽힌 이야기가 흐릅니다. 하나는 ‘우는 마음’을 어떻게 나타내야 하는가를 놓고 오랫동안 생각에 잠긴 유교수 모습이 흐르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웃는 마음’을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가를 놓고 그야말로 오래도록 생각에 잠긴 유교수 모습이 흐르는 이야기예요. 그리고, 두 마음을 함께 펼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되씹으며 지낸 삶이 흐르는 이야기입니다.



“딸이 결혼한다 해서 아버지가 슬프다거나 서운하다거나 허전하독 느끼는 감정을, 저는 이해할 수가 없군요.” (6쪽)


“세츠코가 결혼해도 그러실 겁니까?” “당연하지. 히로마츠 군이 세츠코와 결혼한대 해도 본인들의 자유인 이상 나는 반대하지 않겠네.” “그, 그게 아니죠. 그건 너무 무관심한 것 아닙니까?” “어째서?” (8∼9쪽)



  눈물이 나오면 눈물을 흘리면 됩니다. 웃음이 나오면 웃음을 지으면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느낌을 마음으로 드러내어 본 일이 드물거나 없다면,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도무지 알 수 없겠지요.


  유교수는 다른 사람을 따라하거나 흉내내지 않습니다. 아니,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언제나 유교수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세 딸이 시집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유교수 마음을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가’를 놓고 늘 망설이거나 생각에만 빠졌다고 해요.



“하나코한테만 할아버지, 아니 아빠 노릇을 하고 있어요. 언니들에게 못해 준 만큼. 우리는 그래도 아빠 성격상 아빠는 아빠니까 당연한 거고,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아빠 스타일이고 멋지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왜 이제 와서 그런 얼굴을 하세요? 우리가 결혼하면 아무렇지도 않고, 하나코가 그러면 슬퍼요?” (20쪽)


“나츠코가 결혼했을 때도 빈 나츠코의 방에 억지로 책장을 들여놨잖아? 아마 허전했던 게지. 너희들이 태어날 때부터 쭈욱 보고 있었는걸. 온갖 생각이 다 나실 거야. 그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것뿐이지. 그게 네 아버지니까.” (29쪽)



  모르기 때문에 알려고 하는 유교수입니다. ‘모른다’고 하는 느낌을 아주 잘 알아채면서, ‘알자’라든지 ‘배우자’ 같은 마음이 되는 유교수입니다. 남들이 웃으니까 따라 웃는 삶이 아니라, 왜 웃음이 나오는가를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스스로 실마리를 풀고 나서야 웃는 유교수예요. 남들이 우니까 같이 웃는 삶이 아니라, 왜 눈물이 나와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면서 스스로 실타래를 풀고 나서야 눈물을 짓는 유교수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빛날 때, 그것이 결과적으로 반드시 행복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잠자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63쪽)


“하나코가 버릇없이 굴더냐?” “아니. 그냥 내가, 또 미움 살 짓을 한 것 같네요.” “걱정 마라. 노리코는 언제나 조금 먼 길을 오는 것뿐이니까.” (84쪽)



  유교수가 보이는 몸짓은 여러모로 엉뚱하거나 생뚱맞을 수 있습니다. 다만, 엉뚱하든 생뚱맞든, 이런 느낌은 ‘남이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유교수 스스로는 늘 스스로 가야 하는 길을 갈 뿐입니다. 유교수가 걷는 길은 ‘유교수 삶’입니다. 이 땅에 태어나서 ‘스스로 겪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하고’ ‘스스로 누리고’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굳이 다른 사람이 하듯이 따라할 까닭이 없습니다. 유교수는 모든 일을, 그러니까 아주 조그마한 느낌 하나까지도 스스로 겪거나 보거나 하거나 누리면서 기쁨으로 맞아들이려 합니다.



“2년간 수험공부를 했다고?” “정확하게는 1년요. 아빠가 돌아가셔서 알바해야 했거든요.” “그렇군. 잘 왔네. 마음껏 면학에 힘쓰기 바라네.” (106쪽)


“요즘 자주 눈에 띄긴 하지만 유지 관리하기가 어렵지 않나?” “아뇨, 간단해요! 가발이거든요.” “가발?” “저 지금 암 치료중이라서, 머리가 다 빠졌거든요. 항암제 부작용이죠. 그랬더니 오히려 이것저것 과감한 스타일에 도전할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116쪽)



  언제나 배울 수 있는 사람은 늙지 않습니다. 언제나 배우는 사람은 늘 새로운 숨결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늙지 않습니다. 늙는 사람은 배우지 않는 사람입니다. 늙는 까닭은 새롭게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먹는 밥도 우리 몸을 살찌우는 ‘새로운 숨결’입니다. 흐르는 냇물도, 하늘을 가득 채운 바람도, 언제나 모두 ‘새로운 숨결’이에요. 숨쉬기조차 늘 ‘새로운 바람 마시기’인데, 이를 깨닫거나 헤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숨조차 숨답게 쉬지 않는다고 할 만합니다.


  유교수라면 숨쉬기도 스스로 모두 생각하겠지요. 어떤 바람을 마시는가를 늘 생각하고, 스스로 제 몸을 살찌우고 살리며 북돋우는 바람 한 줄기를 받아들이는구나 하고 늘 깨달을 테지요.


  예순 살이 되고 일흔 살이 되어도 웃음과 눈물을 언제나 새롭게 돌아보면서 배우려고 하는 몸짓이기에, 유교수는 늘 유교수답게 하루를 짓습니다. 4349.2.1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굴을 더듬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01
유종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말하는 시 112



시와 주름살

― 얼굴을 더듬다

 유종인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2.9.19.



  아이들 손이나 볼을 살살 쓰다듬다가 문득 놀랍니다. 아이 손이나 볼이란 이렇게 보드랍구나 하고. 그렇다고 어른인 내 손이나 불은 꺼칠하거나 울퉁불퉁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근심이나 걱정을 담지 않으면서 밝게 웃으면서 삶을 짓는 사람이라면 나이가 많이 들어도 살결이 보드랍기 마련이라고 느껴요. 늘 물이나 흙을 만지는 할매나 할배여도 마음 가득 기쁨이 흐르는 웃음이라면, 주름살이 아닌 보드라운 살결이 되지 싶습니다.



하루는 눈물 글썽한 상거지가 다녀갔다 // 또 하루는 꽃도 없이 바위가 그늘졌다 / 오늘은 술이나 받게 (마음)


땅이야 나눈다지만 하늘을 나눌 순 없어 // 성북동 옛집 담장에 화분들이 올라 있다 (경계의 꽃밭)



  인천에서 나고 자라며 시를 쓰는 유종인 님이 빚은 《얼굴을 더듬다》(실천문학사,2012)를 읽습니다. 잠자리 이불깃을 여미면서 아이들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이 시집을 떠올리고, 밤에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찰 적에 주섬주섬 이불을 끌어모아 다시 덮어 주면서 이 시집을 돌아봅니다.


  ‘얼굴 더듬기’는 사람마다 달라요. 그냥 얼굴을 더듬어 볼 수 있고, 떠오르지 않는 모습을 더듬듯 그릴 수 있습니다. 따스한 손길로 살그마니 더듬을 수 있고, 아무 느낌이나 생각이 없이 그저 더듬을 수 있어요. 내가 내 얼굴을 문지르거나 비빌 적에도 아무 생각 없이 문지를 수 있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손길로 비빌 수 있습니다.



징검돌을 건너가는 여름 아이의 발뒤꿈치, / 바람에 멱을 감는 미루나무 휘인 허리를 / 저 해는 지지도 않고 첫날밤처럼 붉게 샜다 (이발소 그림을 보다)


꽃게에 물린 손가락 가만히 들여다보니 // 새만금 변산 앞바다 // 내 떠날 줄 미리 알고 // 썰물로 // 빠질 리 없는 // 이정표를 박았구나 (꽃게에 물린 자국)



  《얼굴을 더듬다》를 다 읽고 나서 보니, 이 책에 깃든 노래는 ‘시조’라고 합니다. 《얼굴을 더듬다》는 시조집이라 하는군요. 문득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시인들 시조인들 그리 대수로울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시도 시조도 모두 우리 삶을 기쁨으로 노래하고 슬픔으로 달래면서 빚는 글일 테니까요. 글 한 줄에 웃음을 싣고, 글 두 줄에 슬픔을 담으면서, 글 석 줄에 이야기꽃이 피어나도록 하는 시요 노래라고 느낍니다.



싸락눈이 내리치니 // 겹처마가 떠올랐다 // 싸락눈이 쳐대니 // 나막신이 걸어왔다 (싸락눈)



  겨울에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을 때에는 손을 빠르게 문지릅니다. 아무래도 겨울에는 손이 곱기 때문입니다. 곱은 손을 비빔질로 녹인 뒤 불을 올리고 도마질을 합니다. 뜨거운 물을 틀어서 틈틈이 손을 녹이면서 푸성귀를 다듬고 국을 끓입니다. 행주로 밥상을 훔치고 수저를 올립니다. 바야흐로 밥을 다 차리면 큰 소리로 아이들을 부르지요.


  이제 아이들은 의젓하게 자라서 깔개도 스스로 놓고 손도 스스로 씻습니다. 한두 해 앞서까지만 해도 아이들 손이랑 낯을 모두 씻겨야 했으나, 이제는 말로만 타일러도 되어요.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아이들 몸짓을 바꿉니다. 내 손에서 태어나는 밥 한 그릇이 아이들 몸으로 스며듭니다.


  밥상맡에 다 같이 둘러앉은 뒤 국그릇을 두 손으로 고이 감쌉니다. 따스한 기운이 손바닥으로 들어와서 온몸으로 퍼집니다. 나는 이 두 손으로 일을 하고, 바람을 어루만지며, 기저귀를 빨았고, 이불을 건사하고, 살림을 돌봅니다. 귀가 간지럽다 하면 귀를 파 주고, 손톱이 자라면 손톱을 깎습니다. 나이에 따라 손에도 낯에도 몸에도 주름이 질는지 모르지만, 온누리 모든 어버이는 주름살마다 아이들하고 누린 삶이 사랑스러운 결로 깃들리라 느껴요.



아파트 육 층까지 비질 소리 올라온다 // 귀뚜리가 // 지구 위에 두 줄 수염을 내려놓고, // 뭘 쓸까 // 고민하다가 // 빈 마당에 // 소스라친다 (비질 소리)


누군가 내다 놓은 깨진 거울 속으로 // 문짝을 두드리듯 가만히 눈발 친다 (들판의 거울)



  새롭게 하루를 열면서 《얼굴을 더듬다》에 흐르는 노랫가락을 가만히 읊어 봅니다. 이제 겨울이 저물려 하고 봄이 오려 합니다. 아침에 마당에서 노는 작은아이가 묻습니다. “아버지, 이제 봄이야?” “음, 아니. 아직 겨울이고, 봄이 오는 문턱이야.”


  아이한테 ‘봄이 오는 문턱’이라고 말하다가 불현듯이 놀랍니다. 나는 이 말을 아주 오랜 옛날부터 들었다고 느껴요. 아마 내가 아기였을 무렵 둘레 어른들이, 또 우리 어버이가 ‘봄이 오는 문턱’이라고 말했을 테지요. 그냥 ‘봄이 온다’고 할 수 있는데, 누군가 ‘봄이 오는 문턱’이라 말했고, ‘봄이 문지방을 타고 넘는다’ 같은 말꽃을 피웁니다. ‘봄바람이 귀를 간질인다’라든지 ‘봄볕에 옷섶이 짧아진다’고도 해요.


  유종인 님이 아파트 육 층에서 비질 소리를 노랫소리로 듣듯이, 슥슥거리는 소리가 온 지구를 쩌렁쩌렁 울린다고 느끼듯이, 우리 삶자락은 온통 시로 태어날 소리요 결이요 무늬요 사랑이며 살림이지 싶습니다. 시골집 마루문을 때리는 눈발은 사라지고, 길게 드러눕던 겨울 그림자도 짧아집니다. 낮에는 처마 밑으로 햇볕이 들지 않아요. 해가 차츰 높아집니다. 나무마다 겨울눈이 봉긋봉긋 이쁘게 돋는 겨울 끝자락입니다. 4349.2.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워거즐튼무아 알맹이 그림책 30
마츠오카 쿄오코 글, 오오코소 레이코 그림, 송영숙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23



우리는 늘 “아무튼 즐거워” 노래하지요

― 워거즐튼무아

 마츠오카 쿄오코 글

 오오코소 레이코 그림

 송영숙 옮김

 바람의아이들 펴냄, 2013.5.20. 9000원



  아홉 살이 된 큰아이가 저녁에 일기를 씁니다. 큰아이한테 ‘일기’는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글’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오늘 큰아이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로는 마당에서 아버지가 웃몸을 안고서 빙글빙글 돌려 준 놀이입니다. 저랑 동생을 마당에서 갈마들며 빙글빙글 돌려 준 놀이가 오늘 하루 놀이 가운데 가장 크게 남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어제는 흙놀이를 한 일이 남길 만한 이야기였다고 적습니다. 이제 하룻밤을 자고 새로운 날이 찾아오면 어떤 이야기를 일기에 적을까요? 오늘이나 어제하고 똑같은 놀이를 누린 이야기를 적을 수 있고, 다르거나 새로운 놀이를 누린 이야기를 적을 수 있겠지요.



땅을 파고 씨앗을 심는 내내, 아줌마의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나팔꽃이랑 맛 좋은 수박이 번갈아 가며 떠올랐습니다. ‘나팔꽃일까, 수박일까? 아무튼 즐거운 일이야. 씨앗을 심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구 말구.’ 하고 아줌마는 생각했습니다. (17쪽)




  마츠오카 쿄오코 님이 글을 쓰고, 오오코소 레이코 님이 그림을 그린 《워거즐튼무아》(바람의아이들,2013)를 읽습니다. ‘워거즐튼무아’는 ‘아무튼 즐거워’를 거꾸로 적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놀이라고 할까요. 말장난일 수 있고요. ‘어싫튼무아’라 하면 ‘아무튼 싫어’일 테고, ‘네밌재튼무아’라 하면 ‘아무튼 재밌네’예요.


  나는 집에서 아이들한테 곧잘 ‘거꾸로 말하기’를 해 봅니다. 그러면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어리둥절해 합니다. 이러다가 큰아이가 먼저 눈치를 채고 ‘아하, 또 뒤집어서 말하네?’ 하면서 웃어요. 이를테면, 나물을 먹을 적에 ‘물나’라 말한다든지, 수박을 먹자고 하면서 ‘박수’ 먹으라 한다든지, 고기를 차린 저녁밥을 ‘밥기고’라 해요.



왕자님도 모르는 것이 있었답니다. 왕자님이 모르는 것은, 성 밖에 사는 왕자님 또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것들이지요. 성 밖에서는 아이들이 하루 종일 놀고 있습니다. 봄이 오고 사과나무에 꽃이 피면, 아이들은 나무 밑에서 술래잡기를 하기도 하고 숨바꼭질을 하기도 합니다. 여름이 되면, 아이들은 벌거벗고 시냇물에서 헤엄도 칩니다. 가을에도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있어요. 낙엽을 모아서 산처럼 쌓아 놓고 그 가운데로 풀쩍 뛰어들어 낙엽 속에 파묻히는 것이에요. (22쪽)




  아무튼, 《워거즐튼무아》에는 ‘뚱보 아줌마’하고 ‘왕자’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뚱보 아줌마는 어느 날 부엌을 치우다가 묵은 씨앗을 찾아냈고, 이 묵은 씨앗을 밭에 심기로 합니다. 밭을 갈아서 씨앗을 심으려는 뚱보 아줌마를 본 이웃사람은 그 씨앗이 ‘나팔꽃’ 씨앗이라고도 하고, ‘수박’ 씨앗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막상 씨앗을 심고 보니 호박이 나왔다지요.


  뚱보 아줌마는 씨앗을 심은 뒤 푯말을 세웠대요. ‘라몰도지일꽃팔나’, ‘라몰도지일박수’, ‘워거즐튼무아’ 이렇게 세 마디를 적은 푯말이에요. 그러나, 거꾸로 읽으니 이런 말일 뿐, 뚱보 아줌마는 ‘나팔꽃일지도몰라’하고 ‘수박일지도몰라’하고 ‘아무튼즐거워’라 적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나팔꽃 씨앗하고 수박 씨앗을 모를 수 있을까요? 호박 씨앗하고 수박 씨앗은 크기부터 많이 다른데, 이 대목을 모를 수 있을까요? 뭐, 아무튼 모를 수 있겠지요. 이 그림책은 아무튼 이런 줄거리로 흐르니까요.



“이제부터 요리를 해 드리려고 합니다만, 이것을 먹을 때는 몇 가지 꼭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사옵니다. 우선 이 ‘라몰도지일꽃팔나’이옵니다만,” 하고 아줌마는 첫 번째 호박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것을 먹으려면 바깥에서, 그것도 시냇물가의 풀밭에서 먹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외의 장소에서 먹는다면, 목구멍이 막혀서 죽게 될 것입니다.” (51쪽)




  그림책 《워거즐튼무아》에 나오는 왕자님은 궁궐에서 공부만 해야 합니다. 공부만 하느라 지칩니다. 공부 빼고는 할 수 있는 일도 놀이도 없기에 머리가 아픕니다. 이러던 어느 날 마차를 타고 어느 마을을 지나가다가 뚱보 아줌마가 세운 푯말을 보아요. 왕자님은 푯말에 적힌 글을 거꾸로 읽었기에 ‘라몰도지일꽃팔나’가 뭔 소리인지 알 길이 없지만 무척 재미난 주문이라고 여깁니다. 공부에 공부만 거듭하는 나날이 이어지니 그만 꽝 터지면서 ‘라몰도지일꽃팔나’라든지 ‘라몰도지일박수’ 같은 말을 마구 읊었다고 해요. 이러면서 ‘워거즐튼무아’를 주지 않으면 밥을 굶겠다고 외쳤다고 하는군요.


  궁궐에서 왕자님을 가르치거나 모시는 이들은 어쩔 줄 몰라 하지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요. 이러다가 왕자님이 읊은 말은 ‘어떤 아줌마가 세운 푯말에 적힌 글을 거꾸로 외웠을 뿐’인 줄 알아냅니다. 그러나 차마 그 대목을 왕자님한테 밝히지 못합니다. 이때에 뚱보 아줌마는 좋은 생각을 하나 내놓아요. ‘워거즐튼무아’이든 ‘라몰도지일꽃팔나’이든 모두 ‘여느 호박’일 뿐이지만, 왕자님한테 재미있게 ‘호박 요리’를 베풀어 주자고 생각합니다.



임금님은 “공부는 잘 하고 있었나?” 말씀하시고, 왕자님에게 여러 가지를 질문하셨어요. 그러자 왕자님은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오히려 임금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시냇가의 풀밭에는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가 어디에 있으며 물이 흐르는 구멍이 어디에 있을까, 또 성 옆 밀가루 가게의 처마 밑에 있는 제비집에는 새끼가 몇 마리가 있는지, 거미는 무엇을 먹고 사는지 등의 질문이었지요. 물론 임금님은 그 어떤 질문에도 만족스럽게 대답하지 못했지요. 그러자 왕자님은 자랑스럽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임금님에게 가르쳐 주었답니다. (61쪽)




  뚱보 아줌마는 왕자님한테 호박 요리를 줄 적에 늘 토를 붙입니다. 그냥 먹어서는 안 되고, 냇가에 가서 풀밭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먹어야 한다고 토를 붙여요. 그리고 혼자 먹으면 안 되고 시골마을 아이들하고 함께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토를 붙입니다. 왕자님 곁에서 심부름을 하는 신하는 이런 토달기, 그러니까 궁궐 바깥에서 햇볕을 쬐면서 ‘워거즐튼무아’를 먹도록 하는 일이 못마땅합니다. 더군다나 뚱보 아줌마는 왕자님한테 입힌 거추장한 옷을 모두 벗긴 뒤 가벼운 차림새가 되어서 ‘왕자님 또래인 시골아이’하고 신나게 뛰놀기를 바라고, 이대로 하도록 북돋웁니다.


  자, 이제부터 왕자님은 어떻게 될까요?


  ‘워거즐튼무아’를 맛나게 먹은 왕자님은 공부가 아닌 놀이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립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수많은 또래 아이들하고 뒤섞여서 온갖 놀이를 처음으로 겪으면서 웃습니다. 허옇던 살갗하고 얼굴은 까무잡잡하게 탑니다. 신하들은 이런 일을 몹시 못마땅해 하는데, 공부에 등을 돌릴까 봐 걱정하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실컷 놀면서 ‘모든 짜증과 괴로움’을 풀어낸 왕자님은 온마음을 바쳐서 공부를 해요. 공부만 시킬 적에는 공부가 죽도록 싫었다면, 실컷 놀면서 바깥바람이랑 햇볕을 쐬도록 한 뒤에는 공부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그림책 《워거즐튼무아》를 살며시 덮으며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어린이와 푸름이는 얼마나 마음껏 뛰어놀 만할까요?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은 햇볕은커녕 비도 눈도 제대로 맞지 못하면서 입시지옥에서 허덕여야 하지 않나요? 입시지옥을 지나갔어도 어떤 대학교에 들어가거나 떨어졌느냐에 따라 또 고단한 길이 이어져요.


  아이들은 공부만 해야 할까요? 아이들은 삶을 모르는 채 공부만 해야 할까요? 아이들은 동무나 이웃조차 없이 공부만 해야 할까요? 나팔꽃도 수박꽃도 호박꽃도 모르는 채 공부만 한 아이들이 국회의원이나 판사나 의사가 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요? 동무도 이웃도 없이 ‘궁궐 울타리’에서만 자란 왕자님은 어떤 임금님 노릇을 할까요? 한국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선 분들은 반지하도 옥탑방도 버스삯도 모르기 일쑤였어요. 대통령 자리에 앉은 분들은 어떤 이웃을 두거나 어떤 동무를 사귀면서 어린 나날을 보냈을까요? 아무튼 《워거즐튼무아》라는 그림책을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읽으면서 “아무튼 즐거워”가 온누리에 가득 퍼질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4349.2.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