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천재적


 천재적 소질 → 뛰어난 바탕 / 타고난 바탕

 천재적 화가 → 뛰어난 화가 / 타고난 화가

 천재적인 두뇌 → 빼어난 머리 / 훌륭한 머리

 천재적인 예술가 → 빼어난 예술가 / 타고난 예술가


  ‘천재적(天才的)’은 “천재와 같이 뛰어난 재주를 가진”을 뜻한다고 합니다. ‘천재(天才)’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남보다 훨씬 뛰어난 재주”를 뜻한다고 해요. ‘선천적(先天的)’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을 뜻합니다. 그러니, ‘천재’를 풀이하면서 “선천적으로 타고난”처럼 적으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꼴이 됩니다. 겹말이 되는 엉성한 풀이말입니다.


  천재와 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니 “천재와 같다”고 말합니다. 천재라는 생각이 드니까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합니다. 천재란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리하여 “뛰어나다”나 “대단하다”나 “훌륭하다” 같은 말을 넣어서 가리킬 수 있습니다. 꾸밈말을 앞에 붙여서 “아주 뛰어나다”나 “몹시 대단하다”나 “그지없이 훌륭하다”라고 가리켜도 됩니다.


  천재는 ‘천재’일 뿐입니다. 또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나 재주입니다. “저 사람은 천재 화가입니다”가 아닌 “저 사람은 하늘이 내린 화가입니다”나 “저 사람은 하늘이 내린 재주를 뽐내는 그림쟁이입니다”라 말하면 됩니다. 4348.11.26.나무.ㅅㄴㄹ



천재적 시인임에 틀림없다

→ 천재 시인이 틀림없다

→ 훌륭한 시인이 틀림없다

→ 타고난 시인이 틀림없다

《전형대-이규보의 삶과 문학》(홍성사,1983) 31쪽


수법은 천재적이었다

→ 수법은 천재와 같았다

→ 수법은 대단히 놀라웠다

→ 수법은 아주 훌륭했다

《조지 오웰/권자인 옮김-하얀구름 외길》(행림각,1990) 63쪽


천재적인 작가다

→ 천재 작가다

→ 천재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 뛰어난 사람이다

→ 대단한 사람이다

→ 글을 아주 잘 쓰는 사람이다

《타르코프스키/김창우 옮김-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두레,1997) 30쪽


천재적인 감각

→ 천재라 할 감각

→ 타고난 손맛

→ 훌륭한 손길

→ 혀를 내두를 손매

→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손 움직임

→ 하늘이 내린 손놀림

《테라사와 다이수케/서현아 옮김-미스터 초밥왕 13》(학산문화사,2003) 221쪽


임희수의 천재적인 재능을 말해 주는 일화가 있어

→ 임희수는 뛰어난 재주를 말해 주는 얘기가 있어

→ 임희수가 재주가 빼어났음을 말해 주는 얘기가 있어

→ 임희수가 타고난 솜씨를 말해 주는 얘기가 있어

《최석조-조선시대 초상화에 숨은 비밀 찾기》(책과함께어린이,2013) 132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알량한 말 바로잡기

 물론 勿論


 상용이는 물론이고, 갑례도 영칠이도 → 상용이뿐 아니라, 갑례도 영칠이도

 아사달을 위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 아사달을 생각할 뿐 아니라

 아이들은 남녀를 물론하고 → 아이들은 남녀를 비롯하여

 이유와 조건의 어떠함을 물론하고 → 까닭과 조건이 어떠하든

 물론 월급은 현금으로 지급될 것이다 → 마땅히 월급은 현금으로 준다

 재산과 명성을 물론 원했었다 → 돈과 이름을 마땅히 바랐다


  ‘물론(勿論)’은 “[이름씨] 말할 것도 없음 [어찌씨] 말할 것도 없이”를 뜻한다고 합니다. 자, 그러면 실마리를 쉽게 풀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물론’이라는 한자말을 쓸 까닭이 없이 ‘말할 것도 없이’라고 쓰면 됩니다. 보기글을 살펴서, ‘-를 비롯하여’나 ‘-와 함께’를 넣어도 되고, ‘-부터’를 넣을 만합니다. “영화는 물론 책도 좋아해요”는 “영화를 비롯하여 책도 좋아해요”나 “영화와 함께 책도 좋아해요”나 “영화부터 책까지도 좋아해요”로 손질할 수 있어요. “그야 물론”은 “그야 말할 것도 없이”나 “그야 그렇지만”이나 “그야 그렇고”로 손질해 줍니다. “물론입니다”나 “물론이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나 “말할 것도 없지”로 손질하고, “그렇습니다”나 “그렇지”로 손질할 만하지요. 4348.11.26.나무.ㅅㄴㄹ



물론 나보다야 못하지만요

→ 다만 나보다야 못하지만요

→ 그러나 나보다야 못하지만요

→ 그래도 나보다야 못하지만요

→ 그렇더라도 나보다야 못하지만요

→ 뭐, 나보다야 못하지만요

→ 말할 것도 없이 나보다야 못하지만요

《이억배·이호백-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재미마주,1997) 24쪽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물론이요

→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비롯하여

→ 어떻게 살아왔는가부터

→ 어떻게 살아왔는가와 함께

→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말할 것도 없이

《유미리/김난주 옮김-물가의 요람》(고려원,1998) 100쪽


“제가 먹여 봐도 돼요?” “물론. 하지만 아직은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 “제가 먹여 봐도 돼요?” “응. 그렇지만 아직은 살살 다뤄야 한다.”

→ “제가 먹여 봐도 돼요?” “그럼. 그렇지만 아직은 살살 다뤄야 한다.”

→ “제가 먹여 봐도 돼요?” “그래. 그렇지만 아직은 살살 다뤄야 한다.”

《박형권-돼지 오월이》(낮은산,2012) 23쪽


물론 사람을 그렸다고 다 초상화는 아니야

→ 다만 사람을 그렸다고 다 초상화는 아니야

→ 그러나 사람을 그렸다고 다 초상그림은 아니야

→ 그런데 사람을 그렸다고 다 얼굴그림은 아니야

《최석조-조선시대 초상화에 숨은 비밀 찾기》(책과함께어린이,2013) 8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이랑 놀자 157] 구름다리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찻길이 있을 적에, 이 찻길 위쪽으로 다리를 놓곤 합니다. 찻길에는 자동차가 다니고, 찻길 위쪽으로 놓은 다리에는 사람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다녀요. 자동차하고 사람이 따로 떨어져서 다니니 서로 나쁘지 않다고 할 만하지만, 아기나 많이 어린 아이나 다리가 아픈 할머니 할아버지한테는 몹시 힘겨운 다리이지요. 젊고 튼튼한 어른도 다리가 다쳐서 목발을 짚으며 걸으면, 찻길 위쪽으로 드리운 다리는 몹시 고달픕니다. 찻길 위쪽으로 높다랗게 놓은 다리이기에, 이 다리에 올라서면 먼 곳까지 내다볼 만하고 자동차 물결을 내려다보면서 구경할 수 있어요. 제가 어릴 적에 다닌 학교 앞에 이 다리가 하나 있었고, 우리는 이 다리를 건너면서 마치 ‘구름을 밟고 건너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으레 다리에서 콩콩 뛰거나 달리면서 놀았습니다. 그래서 이 다리를 가리켜 ‘구름다리’라 해요. 참말 구름을 밟고 건너는 느낌이니까요. 골짜기와 골짜기 사이를 잇는 다리도 구름다리예요. 높은 곳을 지나는 바람을 쐬고 먼 곳을 내다보면서 시원합니다. 이 구름다리를 한자말로 ‘육교’라고도 하지요. 4348.11.25.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놀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말·넋·삶 90 밥끊기, 단식



  때가 되어 밥을 끊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몸은 밥을 넣어 주어야 몸에 기운이 새롭게 돈다고 하지만, 애써 밥을 몸에 넣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자말로는 ‘단식(斷食)’을 한다고 합니다. 이 한자말은 “일정 기간 동안 의식적으로 음식을 먹지 아니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밥끊기’ 또는 ‘단식’은 왜 할까요? 몸에 밥을 더 넣지 않으면서, 몸을 가볍게 바꾸고, 몸에 따라 마음도 가볍게 다시 태어나도록 하려는 뜻입니다. 몸과 마음이 밥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고, 몸에 쌓였을 찌꺼기를 찬찬히 내보내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몸은 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 줄 느끼려는 뜻입니다.


  밥을 끊는 사람은 밥을 안 먹습니다. 이때에 물을 마실 수 있고, 국을 마실 수 있으며, 어떤 단것을 먹을 수 있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밥끊기란 밥을 끊는 일입니다.


  밥끊기는 하루를 할 수 있고, 이레를 할 수 있습니다. 보름이라든지 달포 동안 밥을 끊을 수 있고, 때로는 온날(백일)을 끊거나 몇 해 동안 밥을 끊어도 됩니다. 사람은 밥을 끊는다고 해서 죽지 않습니다. 물을 마셔도 죽지 않으며, 밥이 아닌 풀만 먹어도 죽지 않습니다. 국만 끓여서 먹어도 죽지 않아요.


  밥을 한동안 끊으려 하는 사람은, 내 삶에서 내가 대수롭게 여기면서 바라보아야 할 것을 제대로 바라보려는 마음이 됩니다. 그동안 나 스스로 내 삶에서 무엇이 대수로운가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고 여겨서 밥을 끊습니다. 밥을 먹어야 몸이 산다고 하는 생각을 끊고, 밥이 아니면 몸에 기운이 돌지 않는다고 하는 생각을 끊으려 합니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도 똑같은데, 목숨 있는 것은 밥을 먹어야 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풀과 꽃과 나무도 밥(양분)을 먹어야 살지 않습니다. 그러면, 뭇목숨은 ‘숨을 살리’려면 무엇을 먹을까요?


  바로 ‘바람’을 먹습니다. 밥끊기란 무엇인가 하면, 바로 “바람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먹으려는 삶”으로 나아가려는 몸짓입니다. 늘 마시지만 늘 마시는 줄 제대로 못 느낀 탓에 제대로 못 보고 제대로 모르던 ‘바람’을 제대로 알아내려고 밥을 끊습니다.


  밥은 온날이나 여러 해를 끊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밥은 얼마든지 끊을 만합니다. 그런데, 밥을 오랫동안 끊으면 ‘몸 많이 쓰는 일’은 하기 어렵습니다. 왜 못 할까요? 스스로 즐겁게 삶을 짓는 일이라면, ‘밥을 안 먹어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이 시키는 일을 종(노예)이 되어서 해야 한다면 ‘밥을 많이 먹어야 남이 시키는 일을 할’ 수 있어요. 이리하여, 사회의식에서는 사람들이 밥끊기를 못 하게 막으려 합니다. 사회의식에서는 사람들한테 도시락조차 못 먹이게 하려 듭니다. 왜냐하면, 도시락은 ‘내 몸을 생각해서 스스로 지은 밥’이거든요. 학교나 회사나 감옥이나 군대에서 왜 ‘도시락’을 못 먹게 하고 집단급식만 시키려 하는가를 제대로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집단급식은 사람을 살리지 않습니다. 집단급식은 사람을 죽입니다. 어떻게 죽이느냐 하면, 몸을 죽여서 마음도 몸을 따라서 죽도록 길들입니다. 사회의식에서는 집단급식을 사람들이 먹도록 내몹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밥을 먹으면서 똑같은 몸이 되고 똑같은 생각만 물려받으면서 똑같은 일을 하는 톱니바퀴(부속품)가 되도록 내몹니다.


  밥끊기는 바로 이 같은 사회의식을 끊는 몸짓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왜 남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바로 내 삶을 짓는 내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바로 내 삶을 바라보면서 내 길을 걸어야 합니다.


  밥을 끊을 줄 아는 사람은, 바람을 맛봅니다. 바람맛을 처음으로 보면서,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기릅니다. 이리하여, 밥을 끊은 뒤 다시 밥을 마주하는 사람은, 이제부터 ‘밥한테 휘둘리지 않’고, ‘밥을 내가 다스리는’ 손길을 익힐 수 있어요. 그러니까, 밥끊기를 제대로 해서 바람을 제대로 바라보고 깨달은 사람은, 사회의식에서 집단급식을 시켜도, 이 집단급식을 ‘새롭게 바꾸’는 기운이 생깁니다.


  밥은 많이 먹거나 적게 먹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밥은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먹으면 됩니다.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먹는 밥일 때에는 언제나 아름답고 사랑스럽습니다. 스스로 짓지 않고 스스로 먹지 않는 밥이라면 언제나 괴롭고 고단합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푸나무이든 ‘바람이 없’으면 바로 죽습니다. 바람이 없는 지구별은 아무런 목숨(생명)이 없는 죽음터입니다. 그래서, 사회의식에서는 자꾸 공장을 지으려 하고, 자꾸 지하자원을 캐내어 바람을 더럽히려 합니다. 아무리 ‘무공해 에너지’가 있고 ‘무한동력 장치’가 있더라도 사회의식은 이를 안 받아들입니다. 돈을 벌려는 권력자가 있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사회의식이 시키는 짓대로 따르기를 바랄 뿐 아니라, 사람들이 ‘사회 제도’에 길들면서 ‘새로운 것을 꿈꾸지 못하는 멍청이’가 되도록 내몰려 하기 때문입니다.


  밥을 끊으려 하는 사람은 밥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몸을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다른 것은 다 잊고, 오직 바람을 생각해야 합니다. 밥을 끊는 까닭은, 오직 바람을 나한테 제대로 맞아들이려 하는 몸짓인 만큼, 나를 둘러싼 바람이 어떠한 결인가 하고 느껴야 합니다. 내가 들이마시는 바람을 어떤 숨결로 녹여서 내 몸으로 태우려는가 하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바람결이 나한테 깃들면서 숨결이 되고, 이 숨결은 살결로 나타납니다. 바람결은 ‘너’이고, 숨결은 ‘나’입니다. 숨결은 ‘마음’이 되고, 살결은 ‘몸’이 됩니다. 이제, 내가 받아들인 바람은 내 몸에 새로운 씨앗으로 드리워서 내 마음에 새삼스레 깃듭니다. 바람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삭일 수 있는 넋이라면, 새로운 생각을 마음에 심을 수 있습니다. 바람결은 숨결을 거쳐 마음결로 거듭납니다. 새로운 마음결이 될 수 있으면, 내 눈은 바람결을 언제 어디에서나 늘 알아볼 수 있는 실마리를 얻습니다. 빛결을 헤아리는 눈결이 되어요. 이때부터 나는 귓결로 흘리는 소리가 없습니다. 모든 소리가 노래인 줄 깨달을 수 있는 생각을 바람결에 새롭게 실어서 날립니다.


  바람을 제대로 먹으려고 밥을 끊습니다. 바람을 제대로 먹는 몸이 되도록 밥을 끊습니다. 바람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몸으로 거듭나면, 이제 어떤 밥을 어디에서 어느 만큼 먹더라도, 나는 내 몸을 따사롭게 보살피면서, 내 마음을 언제나 넉넉하게 돌봅니다.


  바람이 있어야 물이 흐릅니다. 바람이 있어야 불이 탑니다. 바람이 있어야 숲이 푸릅니다. 바람이 있어야 하늘이 파랗습니다. 바람이 있어야 지구별에서 온 목숨이 깨어납니다. 바람이 있어야 온별누리(모든 은하계)에 이야기가 자랍니다. 바람을 바람대로 바라보면서 받아들이는 사람은, 바람으로 몸과 마음을 함께 씻습니다. 바람이 우리 몸과 마음을 고루 씻어 주면서, 우리는 새롭게 태어납니다. 바람을 들이켜서 내 몸과 마음을 구석구석 씻는 동안 내 넋은 기쁘게 웃고 노래합니다. 4348.3.11.물.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숲말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알량한 말 바로잡기

 식사 食事


 식사가 끝나다

→ 밥을 다 먹다 

 저녁 식사로 국수를 먹었다

→ 저녁으로 국수를 먹었다

→ 저녁밥으로 국수를 먹었다

 친구와 식사 약속을 하였다

→ 친구와 밥을 먹기로 하였다

→ 친구와 밥을 먹자고 하였다


  한자말 ‘식사(食事)’는 “끼니로 음식을 먹음”을 뜻하고, ‘음식(飮食)’은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밥이나 국 따위의 물건”을 뜻합니다. 한국말 ‘밥’은 “쌀, 보리 따위의 곡식을 씻어서 솥 따위의 용기에 넣고 물을 알맞게 부어, 낟알이 풀어지지 않고 물기가 잦아들게 끓여 익힌 음식”을 가리켜요. 한국말사전은 ‘음식 = 밥’으로 풀이하고, ‘밥 = 음식’으로 풀이하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음식’하고 ‘밥’은 같은 낱말이라는 뜻이며, 한국사람이 쓸 한국말은 바로 ‘밥’이라는 소리입니다. 영어로 하자면 ‘푸드(food)’일 테지요.


 아침 식사 → 아침밥 / 아침

 식사 예절 → 밥 예절 / 밥 버릇

 식사 관리 → 밥 관리 / 밥 다스리기


  밥을 먹습니다. 밥먹기를 두고 “밥을 즐긴다”고 하거나 “밥을 누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밥을 먹는다면 “밥을 나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밥을 짓기에 ‘밥짓기’입니다. 밥을 하기에 ‘밥하기’입니다. 밥을 먹으면 어떻게 가리키면 될까요? 네, ‘밥먹기’입니다. 밥을 차린 모습을 두고 ‘밥차림’이라 합니다. 밥을 먹으며 느끼는 맛은 ‘밥맛’입니다.

  “아침을 먹는” 우리들은 “아침밥을 먹는다”고도 말합니다. 이처럼 말하면 됩니다. “식사 당번”이 아닌 “밥 당번”이요, “식사 시간”이 아니라 “밥때”요 “밥 먹는 때”입니다. 4348.11.21.흙.ㅅㄴㄹ



아침식사를 하고

→ 아침밥을 먹고

→ 아침을 먹고

→ 아침밥을 즐기고

→ 아침을 누리고

《헬렌 니어링/권도희 옮김-헬렌 니어링의 지혜의 말들》(씨앗을뿌리는사람,2004) 184쪽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 저녁 때였다

→ 저녁 먹을 때였다

→ 저녁을 먹는 때였다

→ 저녁밥 때였다

《박채란-까매서 안 더워?》(파란자전거,2007) 46쪽


식사 더 안 하세요?

→ 진지 더 안 드세요?

→ 진지 더 안 자세요?

→ 밥 더 안 드세요?

《강윤중-카메라, 편견을 부탁해》(서해문집,2015) 106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