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61] 살갑다



  서로 손을 잡으면 두 손이 따스합니다. 추운 날에도 더운 날에도 맞잡은 손에는 따스한 기운이 흐릅니다. 서로 부둥켜안으면 따스합니다. 무릎에 누워도 따스한 기운이 퍼지고, 어깨동무를 해도 따스한 기운이 넘쳐요. 서로 살을 맞대기 때문에 따스할까요? 이리하여 ‘살갑다’라는 낱말은 살내음이 물씬 흐르면서 사랑스러운 결을 나타낸다고 할 만합니다. 다만, ‘살갑다’는 ‘슬겁다’에서 비롯한 낱말이라 하고, ‘슬겁다’는 ‘슬기롭다’에서 비롯했다고 해요. 그런데, 꼭 이렇게만 볼 수는 없어요. 부드럽거나 상냥하거나 너른 마음을 나타낼 적에 쓰는 ‘살갑다’는 따로 ‘살·살갗’을 떠올리면서 새로 지을 수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헤아리면 ‘곰살맞다’하고 ‘곰살궂다’ 같은 낱말이 있어요. 이 낱말도 부드럽거나 따스한 마음결을 나타냅니다. 그나저나 요즈음 어른들은 ‘마음’이라는 한국말보다 ‘정(情)’이라는 한자를 빌어 ‘정답다·정겹다’ 같은 말을 쓰기도 합니다. ‘마음 다스리기’라 말하지 않고 영어를 빌어 ‘마인드(mind) 컨트롤’을 말하기도 하고요. 4348.12.7.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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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60] 버선, 발싸개, 양말



  발을 감싸는 천을 가리키는 이름이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한겨레 누구나 이를 ‘버선’이라는 이름으로 가리켰어요. 위에 걸치면 ‘웃옷’이고, 아래에 걸치면 ‘아랫도리’이며, 다리에 끼면 ‘바지’이고, 아랫도리에 두르면 ‘치마’이듯이, 발에 꿰는 옷이기에 버선입니다. 그런데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서양 물건이 들어오면서, 서양사람이 서양옷에 맞추어 발에 두르거나 싸는 천을 가리켜 ‘양말(洋襪)’이라는 한자를 지었습니다. ‘양(洋)’은 서양을 가리키고, ‘말(襪)’은 버선을 가리켜요. 그러니까 ‘양말 = 서양 버선’을 나타냅니다. 예부터 한겨레가 입는 옷을 한복이라고 하는데, 한복으로 갖추는 바지나 치마이든 서양 치마나 청바지이든 오늘날에도 그냥 ‘바지’하고 ‘치마’라고 가리켜요. 이와 달리 “발을 싸는 천”은 ‘버선’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양말’이라고만 씁니다. 남녘 사회에서는 이리 쓰지요. 북녘 사회에서는 ‘발싸개’라고 써요. 발을 싸니까 ‘발싸개’라 하는데, 똑같은 옷을 놓고 우리 겨레는 세 가지 말을 쓰는 셈입니다. 앞으로 남북이 하나가 되면 어떤 말을 써야 할까요? 4348.12.5.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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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59] 바닥조각



  인형을 선물로 얻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이모네 집에 놀러가서 마루 한쪽에 놓인 인형을 보았고, 이 인형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면서 갖고 놀았어요. 이모하고 이모부는 이 인형을 서글서글하게 두 아이한테 선물로 내주었어요. 이모하고 이모부는 그 인형을 모으려고 여러모로 애썼다는데, 다시 모으면 된다면서 선물로 줍니다. 기쁘게 웃으며 선물하는 아이들 이모랑 이모부를 마주하면서 ‘선물하는 마음’을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알뜰히 모았기에 선물할 수 있고, 기쁘게 건사한 살림이기에 선물할 수 있습니다. 남아돌기에 주는 선물이 아니라, 스스로 아끼는 살림을 선물합니다. 아이들은 이모와 이모한테서 인형을 선물로 받으면서 ‘인형받침’도 함께 챙깁니다. “이 인형을 가져가려면 밑에 있는 나뭇잎도 가져가야지!” 하고 노래합니다. 여러 가지 인형은 저마다 다르게 생긴 조각을 받침으로 삼아서 서는데, 이 조각을 찬찬히 모아서 붙이면 커다란 나뭇잎이 돼요. 그래서 ‘나뭇잎 받침’이라 할 만하고, 받침이 조각조각 나뉘었으니 ‘바닥조각’이기도 합니다. “그래, ‘바닥조각’도 챙겨야지.” “‘바닥조각’? 바닥조각이 뭐야?” “네가 챙기려는 것이 인형이 서도록 바닥에 있는 조각이니까 바닥조각이지.” “아하, 그렇구나.” 4348.12.5.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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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논하다 論


 인생을 논하다 → 삶을 얘기하다 / 삶을 말하다 / 삶을 읊다

 국내외 정세를 논하면서 → 나라 안팎 정세를 말하면서

 시비를 논하다 → 옳고 그름을 말하다 / 옳고 그름을 따지다

 남의 잘못에 대해 논하기 전에 → 남이 한 잘못을 말하기 앞서


  ‘논(論)하다’는 “1. 의견이나 이론을 조리 있게 말하다 2. 옳고 그름 따위를 따져 말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한국말로는 ‘말하다’를 ‘論하다’ 같은 외마디 한자말로도 적는 셈입니다. 그런데 “대선을 논하다”라든지 “문학을 논하다”라든지 “예술을 논하다”처럼 ‘論’이라는 한자를 쓰려고 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시론(時論)’이나 ‘정론(正論)’이나 ‘여론(輿論)’이나 ‘언론(言論)’ 같은 자리에 ‘論’이라는 한자가 깃듭니다. 더군다나 옥편에서 ‘論’을 살피면 첫째 풀이가 “논할 논”이에요. 이래서야 한국말을 제대로 알 수 없는데, 옥편을 더 들여다보면 “3. 말하다 5. 따지다 6. 문제 삼다” 같은 풀이를 더 엿볼 수 있습니다.


  바탕은 ‘말하다’입니다. 이 다음으로는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수수하게 ‘말하다’로만 적어도 될는지, ‘따지다’나 ‘살피다’나 ‘가리다’를 넣으면 될는지, ‘이야기하다·얘기하다’를 넣으면 될는지, ‘짚다’나 ‘다루다’나 ‘읊다’를 넣으면 될는지 헤아려 줍니다.


  대선이나 문학이나 예술은 말할 수 있고, 밝힐 수 있으며 따질 수 있습니다. 짚을 수 있고 얘기할 수 있으며, 살필 수 있어요. ‘시론·정론·여론·언론’ 같은 낱말은 즐겁게 쓸 수 있기도 하고, 저마다 나름대로 새로운 이름을 붙여 볼 수도 있습니다. ‘시론’이라면 ‘오늘 말’이나 ‘밝은 말’로 쓰면 재미있고, ‘정론’이라면 ‘옳은 말’이나 ‘곧은 말’로 써도 재미있습니다. 4348.12.5.흙.ㅅㄴㄹ



사랑을 논할 자격이 없어요

→ 사랑을 말할 자격이 없어요

→ 사랑을 말할 만하지 않아요

→ 사랑을 말할 수 없어요

《서갑숙-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중앙엠엔비,1999) 272쪽


구체적으로 논할 때

→ 하나하나 말할 때

→ 낱낱이 살필 때

→ 꼼꼼히 이야기할 때

《존 아일리프/이한규·강인황 옮김-아프리카의 역사》(이산,2002) 230쪽


이 문제를 논했는데

→ 이 문제를 말했는데

→ 이 일을 얘기했는데

→ 이 일을 살폈는데

→ 이를 다뤘는데

→ 이를 따졌는데

《오다 마코토/양현혜·이규태 옮김-전쟁인가 평화인가》(녹색평론사,2004) 44쪽


담배가 흡연자에게 끼치는 영향을 논했는데

→ 담배가 흡연자한테 끼치는 영향을 말했는데

→ 담배가 흡연자한테 끼치는 영향을 따졌는데

《에릭 번스/박중서 옮김-신들의 연기, 담배》(책세상,2015) 96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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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이전의


 이전의 잘못을 뉘우치다 → 예전 잘못을 뉘우치다

 공룡 이전의 생명체 → 공룡 이전 생명체 / 공룡에 앞선 생명체

 1960년대 이전의 산업 → 1960년대 이전 산업

 빅뱅 이전의 우주 → 빅뱅에 앞선 우주 / 빅뱅 이전 우주


  ‘이전(以前)’이라는 한자말은 “1. 이제보다 전 2. 기준이 되는 때를 포함하여 그 전”을 뜻한다고 합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이전부터 그래 온 관습이었다”, “이전에는 참 살기 좋은 곳이었다”, “산업 혁명 이전”, “서양에선 유사 이전부터 완구가 있었고” 같은 보기글이 나옵니다. 이 같은 글월은 “예전부터 그래 온 관습이었다”나 “예전에는 참 살기 좋은 곳이었다”로 손볼 수 있고, “산업 혁명에 앞서”나 “서양에선 먼 옛날(유사 이전)부터 장난감이 있었고”로 손볼 수 있습니다.


  ‘이전’ 같은 낱말을 꼭 써야 하는 자리라면 쓸 수 있습니다. “공룡 이전 생명체”라든지 “빅뱅 이전 우주”처럼 쓸 만해요. 그러나 ‘-에 앞선’을 넣어서 손볼 만하지요. ‘-의’만 덜어도 되고, ‘-의’가 달라붙는 한자말을 말끔히 털어도 됩니다. 4348.12.5.흙.ㅅㄴㄹ



이전의 나를 둘러싸고 있던 껍질

→ 어제까지 살던 나를 둘러싸던 껍질

→ 지난날 나를 둘러싸던 껍질

→ 예전 내 모습을 둘러싸던 껍질

《김영갑-섬에 홀로 필름에 미쳐》(하날오름,1996) 129쪽


이전의 어떤 선거에서도

→ 이제까지 어떤 선거에서도

→ 지난 어떤 선거에서도

→ 지난날 어떤 선거에서도

→ 그동안 어떤 선거에서도

→ 여태껏 어떤 선거에서도

《니콜라 윌로 재단 환경감시위원회/편집부 옮김-자연과 사람을 생각하는 환경 선언문》(북갤럽,2003) 17쪽


좋은 장비가 있느냐 없느냐 이전의 문제다

→ 좋은 장비가 있느냐 없느냐에 앞서는 문제다

→ 좋은 장비가 있느냐 없느냐보다 큰 문제다

→ 좋은 장비가 있느냐 없느냐보다 먼저 생각할 일이다

《편해문-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소나무,2007) 154쪽


세금을 낮추었지만 이전의 수준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 세금을 낮추었지만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 세금을 낮추었지만 옛날처럼 돌아가지는 않았다

《에릭 번스/박중서 옮김-신들의 연기, 담배》(책세상,2015) 99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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