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68] 푸르르다



  하늘이 파랗게 빛납니다. 이 파란 빛깔이 더없이 빛나는구나 싶어서 “파란 하늘”이라고만 말하지 않고 “파아란 하늘”이나 “파아아란 하늘”처럼 말을 늘이기도 합니다. 노란 꽃송이가 곱습니다. 이 노란 꽃송이가 가없이 곱구나 싶어서 “노오란 꽃송이”라든지 “노오오란 꽃송이”처럼 외치기도 합니다. 숲에 깃들이 숲빛을 헤아리니 이 푸른 숨결이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구나 싶어서 “푸르은 숲”이나 “푸르으은 숲”이라고도 노래합니다. 가을잎이 누르게 물드는 모습이 예쁘구나 싶어서 “누르은 잎”이나 “누르으은 잎”이라고도 속삭입니다. 느낌을 외칠 적에는 낱말을 얼마든지 길게 늘일 수 있어요. “우와, 재미있다”를 “우우와, 재애애애미 있다”처럼 늘여도 재미있고, “어라, 놀랐잖아”를 “어어라, 노올랐잖아”처럼 늘여서 놀아요. 다만, ‘파란 → 파아란’, ‘노란 → 노오란’, ‘푸른 → 푸으른’, ‘누른 → 누으른’처럼 늘여서 말하거나 글을 쓰더라도 ‘파랗다·노랗다·푸르다·누르다’가 바탕꼴입니다. ‘파라라다(파아랗다)·노라라다(노오랗다)·푸르르다(푸르으다)’가 바탕꼴이지 않아요. ‘파랗다’와 ‘노랗다’가 있기에 이 말을 바탕으로 ‘파아랗다’이든 ‘노오랗다’이든 잇달아 태어나고, ‘푸르다’와 ‘누르다’가 있기에 이 말을 바탕으로 삼아서 ‘푸르르다’라든지 ‘누르르르르다’처럼 재미나게 말놀이를 합니다. 4348.12.1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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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67] 콩물·콩젖



  서양 문화가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올 적에 ‘우유(牛乳)’라는 한자말이 생깁니다. 이제는 누구나 널리 쓰는 ‘우유’이지만 예전에는 ‘타락(駝酪)’이라는 무척 어려운 한자말을 썼고, ‘타락죽’이라는 먹을거리가 있다고 해요. 그러나 소라는 짐승한테서 얻은 젖은 ‘소젖’이에요. 염소한테서 얻은 젖은 ‘염소젖’이고, 양한테서 얻은 젖은 ‘양젖’입니다. 짐승한테 붙인 이름을 앞에 달고서 ‘-젖’이라고 씁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낳아 물리는 젖은 ‘어머니젖(엄마젖)’이요 ‘사람젖’이에요. 마실거리 한 가지를 공장에서 다루어 가게에 내놓고 팔면서 ‘우유·분유’ 같은 말을 쓰기도 하고, ‘두유’ 같은 말도 나타나요. ‘분유(粉乳)’는 한국말로 ‘가루젖’을 가리키고, ‘두유(豆乳)’는 한국말로 ‘콩젖’을 가리켜요. 그런데 한겨레는 먼 옛날부터 콩을 갈아서 나오는 물을 따로 마셨습니다. 콩을 간 ‘콩물’로 ‘콩국수’도 삶지요. 콩은 소나 말이나 돼지처럼 짐승이 아닌 풀이기 때문에 ‘젖’이라는 말이 안 어울릴 만한데, 콩을 갈아서 얻은 ‘콩물’하고는 다르게 빚은 마실거리이기에 다른 이름을 붙여야 어울린다면 ‘콩젖’으로 따로 갈라서 써도 재미있어요. 4348.12.1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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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중의


 선물 중의 선물

→ 선물 가운데 선물

→ 돋보이는 선물

→ 손꼽히는 선물

→ 가장 나은 선물

→ 가장 훌륭한 선물

→ 가장 멋진 선물


  한자 ‘중(中)’에 ‘-의’를 붙인 ‘중의’는 번역 말투하고 일본 말투가 섞인 어지러운 말투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국말로는 그냥 ‘가운데’로 적으면 되고, “선물 가운데 선물”이나 “보물 가운데 보물”이라면, 첫손으로 꼽는다거나 으뜸으로 뽑을 만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가장 나은”이나 “가장 좋은”이나 “가장 훌륭한”이나 “가장 나쁜” 어느 것을 가리키지요. 4348.12.16.물.ㅅㄴㄹ



셰익스피어의 창조한 인물중의 걸작으로서

→ 세익스피어가 지어 낸 인물 가운데 걸작으로

→ 세익스피어가 지은 매우 훌륭한 인물로

→ 세익스피어가 빚은 매우 훌륭한 사람으로

《편집부 엮음-셰익스피어명언집》(동원출판사,1969) 25쪽


도심 중의 도심이었지만

→ 도심 가운데 도심이었지만

→ 도심에서도 도심이었지만

→ 도심에서도 한복판이었지만

《손석희-풀종다리의 노래》(역사비평사,1993) 21쪽


대기 중의 오존은

→ 대기에 있는 오존은

→ 바람에 섞이는 오존은

→ 오존은

《도로시 맥켄지/이경아 옮김-환경을 위한 그린 디자인》(도서출판 국제,1996) 26쪽


가장 고역 중의 고역이다

→ 가장 힘들고도 힘들었다

→ 가장 힘든 일이다

→ 가장 힘들었다

→ 가장 괴롭고 힘들었다

《다카노 마사오/편집부 옮김-마음의 조국, 한국》(범우사,2002) 202쪽


이유 중의 하나인 것이다

→ 까닭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 까닭 가운데 하나이다

《존 버거,장 모르/차미례 옮김-제7의 인간》(눈빛,2004) 28쪽


보물 중의 보물이다

→ 보물 가운데 보물이다

→ 으뜸 가는 보물이다

→ 가장 빼어난 보물이다

《손관승-그림 형제의 길》(바다출판사,2015) 185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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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박봉의


 박봉에 시달리다 → 쥐꼬리만 한 일삯에 시달리다

 박봉을 쪼개 적금을 부었다 → 적은 일삯을 쪼개 적금을 부었다

 박봉을 털어서 → 얼마 안 되는 일삯을 털어서


  ‘박봉(薄俸)’은 “적은 봉급”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박봉의 월급”이나 “박봉의 봉급”처럼 쓰면 겹말이 될 테지요. 한자말 ‘박봉’을 쓰기보다는 ‘적은’을 쓰면 되고, ‘얼마 안 되는’이나 ‘쥐꼬리만 한’이나 ‘아주 적은’이라 쓰면 돼요. 4348.12.16.물.ㅅㄴㄹ



박봉의 월급마저

→ 적은 월급마저

→ 얼마 안 되는 달삯마저

→ 조금밖에 안 되는 달삯마저

→ 쥐꼬리만 한 달삯마저

《삶이보이는창》 48호(2006.1∼2.) 133쪽


박봉의 일자리가 나타났다

→ 적은 봉급 일자리가 나타났다

→ 일삯이 적은 일자리가 나타났다

《손관승-그림 형제의 길》(바다출판사,2015) 93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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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이상 以上


 키 158cm 이상 → 키 158cm 넘음

 만 20세 이상 → 만 20세 넘음

 주 3회 이상 → 주 3회 넘게

 보통 이상의 관계 → 보통을 넘는 사이

 평균 이상의 실력 → 평균을 웃도는 솜씨

 십 년 이상 근무하다 → 열 해 넘게 일하다

 이상에서 살핀 바를 → 여기에서 살핀 바를 / 이제까지 살핀 바를

 이상이 내가 알고 있는 → 여기가 내가 아는 / 이것이 내가 아는

 이상으로 중계방송을 마치겠습니다 → 이제 중계방송을 마치겠습니다

 시작한 이상 → 하기로 한 만큼 / 손을 댄 만큼

 그 일을 맡은 이상 → 그 일을 맡은 만큼 / 그 일을 맡았으니

 어쨌든 아비인 이상 → 어쨌든 아비인 만큼 / 어쨌든 아비이니까

 이것으로 훈시를 마친다. 이상 → 이제 훈시를 마친다. 그만


  ‘이상(以上)’은 “1. 수량이나 정도가 일정한 기준보다 더 많거나 나음 2. 순서나 위치가 일정한 기준보다 앞이나 위 3. 이미 그렇게 된 바에는 4. 서류나 강연 등의 마지막에 써서 ‘끝’의 뜻을 나타내는 말”을 뜻한다고 합니다. 말뜻으로만 본다면 여러모로 쓸 만하다고 여길 테지만, ‘이상’이라는 한자말을 쓴 자리를 살피면 ‘넘다’나 ‘웃돌다’로 손질할 만하고, ‘여기·이제·이것’으로 손질할 만하며, ‘만큼’이나 ‘-으니/-이니까’로 손질 만한데다가, ‘그만·끝·마침’으로 손질할 만합니다.



이 이상 더 할 말이 없지만

→ 여기서 더 할 말이 없지만

→ 이제 더 할 말이 없지만

→ 이제는 더 할 말이 없지만

《페스탈로찌/홍순명 옮김-린하르트와 겔트루트》(광개토,1987) 5쪽


솜씨가 취미 이상이었다

→ 솜씨가 취미를 넘어섰다

→ 솜씨가 취미를 훌쩍 넘었다

→ 솜씨가 취미라고 하기 어려울 만큼 훌륭했다

→ 솜씨가 그저 취미라고 할 수 없었다

《하이데마리 슈베르머/장혜경 옮김-소유와의 이별》(여성신문사,2002) 22쪽


나한테 걸린 이상, 너는 도망치지 못한다

→ 나한테 걸린 만큼, 너는 내빼지 못한다

→ 나한테 걸렸으니, 너는 꽁지를 빼지 못한다

→ 나한테 걸렸구나, 너는 아무 데도 못 가

→ 나한테 걸렸지, 너는 이제 끝장이야

→ 나한테 걸린 너는 내 밥이 되어야겠어

《기무라 유이치/박이엽 옮김-늑대의 돼지꿈》(현암사,2002) 2쪽


4반세기 이상을

→ 4반세기가 넘도록

→ 4반세기 넘게

→ 4반세기 지나도록

《엘리엇 고온/이건일 옮김-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마더 존스》(녹두,2002) 25쪽


인간인 이상

→ 사람이라면

→ 사람인 만큼

→ 사람이기 때문에

《가와이 에이지로/이은미 옮김-대학인, 그들은 대학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유원,2003) 17쪽


이상이 〈브레멘 음악대〉의 줄거리다

→ 여기까지 〈브레멘 음악대〉 줄거리다

→ 여기까지가 〈브레멘 음악대〉 줄거리다

《손관승-그림 형제의 길》(바다출판사,2015) 172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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