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92 물불, 불물



  한국말사전에서 ‘물불’을 찾아보면, 요즈음 사전에는 이 낱말이 나오지만, 옛날 사전에는 이 낱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자사전이나 일본말사전에는 ‘水火’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말사전에도 ‘수화(水火)’가 나오는데, “1. = 물불 2. = 물불 3. 일상생활에서 필요 불가결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4. 큰 재난을 일으키는 물이나 불처럼 그 기세가 대단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5. 물과 불처럼 서로 상극이 되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물불’ 뜻풀이는 “물과 불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어려움이나 위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나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물불’이라는 낱말을 “물과 불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는 잘 안 씁니다. 물과 불을 나타내려고 하면 ‘물과 불’처럼 씁니다. 거의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꼴로 씁니다. 이 쓰임새를 곰곰이 살피면, 한국말사전에서 ‘물불’로 적기는 합니다만, 일제강점기에 일본 한자말 ‘水火’를 ‘수화’처럼 적다가, 해방 언저리부터 ‘물불’로 고쳐서 썼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물과 불은 언뜻 보자면 서로 다르다 할 만합니다. 물이 있으니 불이 꺼지고, 불이 있으니 물이 마릅니다. 그러나, 곰곰이 살피면, 물을 불로 끓여서 따뜻하게 마십니다. 불을 물로 다스리면서 여러 가지 살림이나 기계를 씁니다. 둘은 어긋나서 부딪히는(상극) 것이 아니라, ‘몸(모습)’이 다를 뿐인 하나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사람들 넋이 깃드는 몸에는 늘 피가 흐릅니다. 피는 ‘물’입니다. 그런데, 피는 그냥 물이 아닙니다. ‘불을 담은 물’입니다. 피는 먼저 따스한 기운이 있어서 ‘불’과 같습니다. 그리고, 피는 빨간 빛으로 이루어져서 ‘불’과 같아요. 다시 말하자면, ‘피 = 불물’이라고 할 만합니다. ‘불로 이루어진 물’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몸은 ‘불물’이라고 할 피가 흘러야 몸입니다. 우리 몸에 흐르는 피에서 ‘불과 같은 따스한 기운’이 사라진다면, 몸이 식습니다. 몸이 식으면 어떻게 될까요? 죽지요. 죽으면 어찌 될까요? ‘불물’이던 ‘피’는 곧바로 마르고 굳어서 사라집니다. 물에서 ‘불 기운’이 없으면 물이 아닌 셈입니다.


  물이 얼음으로 바뀌는 까닭도, 물에서 ‘불과 같은 따스한 기운’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물이 김(아지랑이, 수증기)으로 바뀌는 까닭은, 물에서 ‘불과 같은 따스한 기운’이 너무 뜨겁게 달라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곁에서 사람들 삶을 아름답게 돌보도록 하는 ‘피(불물)’가 되거나 ‘물(마시는 물)’이 되자면, ‘고르게 따스한 기운’이어야 합니다. 빗물이든 냇물이든 바닷물이든 모두 ‘한결같이 따스하게 흐르는 기운’이어야 ‘물’로 있을 수 있습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같은 말은 왜 생겼을까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수화(물불)’이었을 텐데, 한국에서는 ‘불물’입니다. 그러니까, ‘내 피를 따지지 않는’ 셈입니다. ‘내 목숨(숨결)을 가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내 피가 어떻게 되든 뛰어들기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같은 말을 쓸 수 있습니다.


  물만 넘치거나 불만 넘치면, 끔찍하다는 일이 터집니다. 우리 누리는 온(모든) 것이 오롯이 있을 때에 ‘온누리’입니다. 온누리가 아니라면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곧, ‘물누리·불누리’라 한다면, 물바다와 불바다가 될 테니, 한쪽으로만 치달은 셈입니다. 물로만 치닫거나 불로만 치달으면 어찌 될까요? 모두 죽어요. 어느 쪽으로 치닫든 모두 죽음입니다. 이쪽이 맞거나 옳거나 좋지 않습니다. 저쪽이 맞거나 옳거나 좋지 않습니다. 우리한테는 둘 모두 아름답게 있어야 합니다. 어정쩡하게 ‘가운데(중도, 중립)’에 있어야 하지 않아요. 둘이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기쁘고 살갑게 나란히 있어야 합니다. 4348.3.13.쇠.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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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사소 些少


 사소한 문제 → 작은 문제 / 자잘한 일

 사소한 행복 → 작은 기쁨 / 수수한 기쁨

 사소한 행동 → 작은 행동 / 작은 몸짓

 사소히 여기지 마라 → 작게 여기지 마라 / 소홀히 여기지 마라


  ‘사소(些少)하다’는 “보잘것없이 작거나 적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보잘것없다’는 “볼만한 가치가 없을 정도로 하찮다”를 뜻한다 하고, ‘하찮다’는 “1. 그다지 훌륭하지 아니하다 2. 대수롭지 아니하다”를 뜻한다 해요. 그러니 처음부터 ‘보잘것없다’나 ‘작다·적다’나 ‘하찮다’를 쓰면 될 일이고, ‘훌륭하지 않다’나 ‘대수롭지 않다’라 말하면 됩니다.


  ‘사소하다’ 뜻풀이를 제대로 살핀다면 “작고 사소한”처럼 적는 말마디는 겹말인 줄 알아챌 수 있습니다. 4348.12.11.쇠.ㅅㄴㄹ



작고 사소한 것들이 거듭되다 보면

→ 작고 작은 것들이 거듭되다 보면

→ 작고 하찮은 것들이 거듭되다 보면

→ 작은 것들이 거듭되다 보면

《정숙영·심우장·김경희·이흥우·조선영-옛이야기 속에서 생각 찾기》(책과함께어린이,2013) 14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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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의 소재 所在


 그 책의 소재를 찾는다 → 그 책이 있는 곳을 찾는다

 동생의 소재를 모른다 → 동생이 있는 곳을 모른다


  한자말 ‘소재(所在)’는 “1. 어떤 곳에 있음. 또는 있는 곳 2. = 소재지”를 뜻한다고 합니다. ‘소재지(所在地)’는 “주요 건물이나 기관 따위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을 뜻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소재지’도 “있는 곳”을 가리키고, ‘소재’도 “있는 곳”을 가리켜요. 처음부터 한국말로 쉽게 “있는 곳”이라고 적으면 됩니다. 4348.12.10.물.ㅅㄴㄹ



그 아이에게 항상 자신의 소재와 여행 일정을 알려 달라고

→ 그 아이에게 늘 어디에 있는지와 여행 일정을 알려 달라고

→ 그 아이한테 늘 어디로 가는지와 여행 일정을 알려 달라고

→ 그 아이한테 늘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는지를 알려 달라고

→ 그 아이한테 늘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를 알려 달라고

→ 그 아이한테 늘 어느 곳을 돌아보고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려 달라고

→ 그 아이한테 늘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를 알려 달라고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이재석 옮김-체 게바라의 라틴 여행 일기》(이후,2000) 21쪽


타카시의 소재도 파악해 둬야겠군

→ 타카시가 어디 있는지도 알아 둬야겠군

→ 타카시가 있는 곳도 알아 둬야겠군

《이와아키 히토시/서현아 옮김-칠석의 나라 2》(학산문화사,2014) 137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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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사무적


 사무적인 능력 → 일솜씨

 사무적 지원을 받았다 → 사무 지원을 받았다 / 하는 일에 도움을 받았다

 사무적인 말투 → 딱딱한 말투 / 회사원(공무원) 말투

 사무적 태도로 대해 → 딱딱한 몸짓으로 마주해 / 차가운 몸짓으로 마주해


  ‘사무적(事務的)’은 “1. 사무에 관한 2. 행동이나 태도가 진심이나 성의가 없고 기계적이거나 형식적인”을 뜻한다고 합니다. ‘사무(事務)’는 “자신이 맡은 직책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일. 주로 책상에서 문서 따위를 다루는 일을 이른다”고 합니다. ‘사무 = 일’이거나 ‘사무 = 책상맡 일’인 셈입니다. 그런데 ‘사무직’이나 ‘사무실’이나 ‘사무원’ 같은 말이 널리 쓰입니다. 써야 하는 자리라면 쓸 노릇이지만 ‘일’이라고 말하면 되는 자리는 쉽고 알맞게 ‘일’이라고 하면 됩니다. 그리고, “기계적이거나 형식적인”을 가리키는 ‘사무적’은 기계와 같은 모습이거나 겉치레인 느낌을 나타낼 테니, ‘딱딱하다’나 ‘차갑다’나 ‘메마르다’나 ‘매몰차다’ 같은 낱말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4348.12.10.나무.ㅅㄴㄹ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일이 이처럼 사무적이며

→ 사람 목숨을 빼앗는 일이 이처럼 착착 이루어지며

→ 사람 목숨을 빼앗는 일이 이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지며

→ 사람 목숨을 빼앗는 일이 이처럼 서류 한 장으로 이루어지며

→ 사람 목숨을 빼앗는 일이 이처럼 책상맡에서 이루어지며

→ 사람 목숨을 빼앗는 일이 이처럼 차갑게 이루어지며

→ 사람 목숨을 빼앗는 일이 이처럼 손쉽게 이루어지며

→ 사람 목숨을 빼앗는 일이 이처럼 가볍게 이루어지며

《랠프 랩/표문태 옮김-핵전쟁》(현암사,1970) 50쪽


사무적인 타산으로 이루어지는 기계적인 표현

→ 차디찬 꿍꿍이셈으로 이루어지는 딱딱한 말

→ 메마른 셈속으로 이루어지는 차가운 말

→ 제 뱃속만 챙기며 이루어지는 매몰찬 말

→ 차가운 꿍꿍이로 이루어지는 덧없는 말

→ 싸늘한 셈속으로 이루어지는 부질없는 말

→ 핏기 없이 주판알 굴리듯 이루어지는 굳어 버린 말

《신동엽-젊은 시인의 사랑》(실천문학사,1988) 169쪽


너무 사무적이지도 않게 마흔의 냄새가 살짝 나야 한다

→ 너무 딱딱하지도 않게 마흔 냄새가 살짝 나야 한다

→ 너무 차갑지도 않게 마흔 냄새가 살짝 나야 한다

《김천영·임덕연-산책》(삶이보이는창,2007) 61쪽


사무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 딱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 으레 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 차갑게 고개를 끄덕이며

《안미선-내 날개 옷은 어디 갔지?》(철수와영희,2009) 51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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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처량 凄凉


 벌레 우는 소리는 처량하기만 하다 → 벌레 우는 소리는 쓸쓸하기만 하다

 처량하게 서러운 듯한 → 외롭게 서러운 듯한

 처량한 신세 → 초라한 몸 / 가엾은 몸

 처량한 모습 → 초라한 모습 / 가엾은 모습


  ‘처량(凄凉)하다’는 “1. 마음이 구슬퍼질 정도로 외롭거나 쓸쓸하다 2. 초라하고 가엾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한 가지 한자말이 네 가지 뜻을 나타낸다고 합니다만, 이 한 가지 한자말은 네 가지 한국말을 알맞게 쓸 자리에 끼어든 셈이지 싶습니다. 외로우면 ‘외롭다’ 하고, 쓸쓸하면 ‘쓸쓸하다’ 하며, 초라하면 ‘초라하다’ 하고, 가엾으면 ‘가엾다’고 할 노릇입니다. 더군다나 외로움과 쓸쓸함은 뜻이 비슷해도 느낌이 다른 낱말입니다. 4348.12.10.나무.ㅅㄴㄹ



처량하게 우는 청개구리

→ 구슬피 우는 청개구리

→ 쓸쓸히 우는 풀개구리

→ 애틋이 우는 풀개구리

《김천영·임덕연-산책》(삶이보이는창,2007) 25쪽


내 꼴이 처량해

→ 내 꼴이 불쌍해

→ 내 꼴이 가여워

→ 내 꼴이 구슬퍼

→ 내 꼴이 쓸쓸해

《김은영-ㄹ받침 한 글자》(사계절,2008) 33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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