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역할役割


 역할 분담 → 할 일 나누기 / 몫 나누기 / 맡은 일 함께하기

 중대한 역할을 한다 → 크나큰 노릇을 한다 / 큰일을 한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 → 제 할 일을 잘하다 / 제몫을 다하다

 비서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 비서 노릇까지 한다 / 비서 일까지 한다


  한자말 ‘역할(役割)’은 “(1) 자기가 마땅히 하여야 할 맡은 바 직책이나 임무. ‘구실’, ‘소임’, ‘할 일’로 순화 (2) 역(役)”, 이렇게 두 가지 뜻으로 씁니다. 그런데 이 한자말은 ‘일본 한자말’이기에 다른 낱말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자주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막상 ‘역할’이라는 일본 한자말은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교과서에도, 문학책에도, 신문글에도 이 한자말은 자꾸자꾸 나타납니다.


  한국말사전을 보면 “각자 맡은 바 역할을 다하다” 같은 보기글이 나옵니다. 이 글월은 “저마다 맡은 몫을 다하다”나 “모두들 맡은 일을 다하다”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부장의 역할을 대신할 사람” 같은 보기글은 “부장이 하는 일을 맡아 할 사람”이나 “부장 일을 맡아 줄 사람”으로 손질할 수 있어요.


  일본 한자말이기 때문에 고쳐써야 하지 않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우리들이 넉넉히 쓰던 말이 있으니, 오늘날에도 이 말을 즐겁게 쓰면 됩니다. 쉬우면서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한국말을 가다듬고 아낄 수 있으면 됩니다. 4348.10.26.달.ㅅㄴㄹ



선생님의 역할이 참으로 크다

→ 선생님 몫이 참으로 크다

→ 선생님 자리가 참으로 크다

→ 선생님이 할 일이 참으로 많다

→ 선생님이 큰일을 맡는다

→ 선생님이 큰일을 해야 한다

→ 선생님이 큰일을 하는 자리에 있다

《정창교-마이너리티의 희망노래》(한울림,2004) 97쪽


여자 친구 노릇은 힘든 역할일 거라는 예감이 든다

→ 여자 친구 노릇은 힘들리라는 생각이 든다

→ 여자 친구 노릇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 여자 친구로 있자면 힘들겠구나 싶다

→ 여자 친구로 지내기면 힘들겠네 싶다

《김옥-청소녀 백과사전》(낮은산,2006) 125쪽


그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역할에 충실했고

→ 그분 이야기를 들어 주는 일을 했고

→ 그분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 주었고

→ 그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차분히 들었고

→ 그분이 하는 이야기를 찬찬히 들었고

《오쓰카 노부카즈/송태욱 옮김-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한길사,2007) 58쪽


가장의 역할을 하게 되는 남성

→ 가장 구실을 하는 남성

→ 한 집안 기둥이 되는 남성

→ 한 집안 버팀나무가 되는 남성

→ 집안에서 기둥 구실 하는 남성

《안미선-내 날개 옷은 어디 갔지?》(철수와영희,2009) 156쪽


도망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 도망자 노릇을 하는 줄

→ 도망자처럼 노는 줄

→ 도망자가 된 줄

《수잔 크렐러/함미라 옮김-코끼리는 보이지 않아》(양철북,2013) 82쪽


덕분에 내 역할은 영어를 가르치는 역할에서 계속해서 에어럴이 요구하는 참고 도서들을 찾아서 가져다 주는 배달 역할로 바뀌어 버렸지요

→ 그래서 내 일은 영어를 가르치는 일에서 이제 에어럴이 보고 싶다는 책들을 찾아서 가져다주는 심부름꾼 노릇으로 바뀌어 버렸지요

→ 이리하여 나는 영어 가르치기에서 이제부터 에어럴이 보고 싶다고 하는 책들을 찾아서 가져다주는 심부름으로 바뀌어 버렸지요

《로렌스 R.스펜서/유리타 옮김-외계인 인터뷰》(아이커넥,2013) 87쪽


연료 펌프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그냥 ‘펌프’일 뿐이다

→ 연료 펌프와 비슷한 구실을 하는 그냥 ‘펌프’일 뿐이다

→ 연료 펌프와 비슷한 일을 하는 그냥 ‘펌프’일 뿐이다

→ 연료 펌프와 비슷하게 움직이는 그냥 ‘펌프’일 뿐이다

《스콧 새비지 엮음/강경이 옮김-그들이 사는 마을》(느린걸음,2015) 108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말 좀 생각합시다 14


 농땡이·땡땡이


  ‘농땡이’가 일본말이고, ‘땡땡이’까지 일본말인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한국말로는 ‘노닥거리다’하고 ‘빼먹다’인 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일본말이기에 안 써야 하지 않습니다. 일본말이기에 샅샅이 털어내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쯤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왜 구태여 일본말을 끌어들여서 내 마음이나 뜻이나 생각을 나타내려고 하는가를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왜 굳이 영어나 한자말을 빌어서 내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는가를 살필 수 있어야지요.


  ‘농땡이’는 ‘油を賣る(あぶらをうる)’라는 일본말에서 왔어요. ‘땡땡이’는 ‘でんでん’이라는 일본말에서 왔고요. 그런데, 한국말사전을 보면 이런 말밑을 밝히지 못합니다. ‘농땡이’랑 ‘땡땡이’ 모두 마치 한국말이기라도 되는듯이 다루지요. 그리고, 어른문학이나 인문학을 하는 분도 이런 일본말을 그냥 쓰고, 어린이책을 쓰거나 어린이문학을 하는 분도 이런 일본말을 버젓이 씁니다.


  어떤 말을 가리거나 골라서 쓰느냐에 따라 내 넋이 달라집니다. 어떤 말을 살피거나 헤아려서 쓰느냐에 따라 내 마음이 바뀝니다. 생각이 없이 아무 말이나 쓸 적에는 내 넋이나 마음도 ‘생각이 없는 채 흐르’기 마련입니다. 말 한 마디에 깃드는 숨결을 찬찬히 살피거나 헤아릴 때에는 내 모든 몸짓에 ‘생각이 깊고 너르게 흐르’지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한국말다운 한국말을 안 가르쳐 주었다고 탓하지 말고, 바로 오늘부터 한국말을 모두 새롭게 배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0.25.해.ㅅㄴㄹ



저게 아직도 농땡이네

→ 저게 아직도 노네

→ 저게 아직도 노닥거리네

《금현진·손정혜·이우일-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사회평론,2012) 122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의 : 동안의 귀여운 스타일



동안의 귀여운 스타일? 난 별로야

→ 앳되고 귀여운 얼굴? 난 됐어

→ 어려 보이고 귀여운 얼굴? 난 싫어

《모리모토 코즈에코/이지혜 옮김-개코형사 ONE코 11》(대원씨아이,2015) 39쪽


  ‘동안(童顔)’은 ‘어린아이 얼굴’을 가리킵니다. ’스타일(style)’은 ‘맵시’나 ‘품’으로 고쳐쓰라고 한국말사전에 나오지만, 이 대목에서는 “앳된 얼굴”이나 “어려 보이는 얼굴”로 손볼 만합니다. “난 별(別)로야”는 “난 마음에 안 들어”나 “난 싫어”로 손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문장으로 길게 이야기할 수 있어도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 아무리 글월로 길게 이야기할 수 있어도 상대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 아무리 긴 말로 이야기할 수 있어도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김수연-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예담프렌즈,2015) 4쪽


  ‘문장(文章)’은 ‘글월’로 손보면 되는데, 이 대목에서는 ‘말’이나 ‘긴 말’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상대방(相對方)’은 ‘상대편(相對便)’을 뜻한다 하고, ‘상대편’은 “짝을 이루는 사람”을 뜻한다 합니다. “상대방의 말”은 “상대가 하는 말”이나 “옆사람 말”이나 “다른 사람이 하는 말”로 손질합니다. ‘이해(理解)하다’는 ‘알아듣다’나 ‘알아차리다’로 손봅니다.


0∼5세 아이는 아직 문장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 0∼5세 아이는 아직 말뜻을 제대로 헤아리기 어려우므로

→ 0∼5세 아이는 아직 말뜻을 똑똑히 알기 어려우므로

《김수연-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예담프렌즈,2015) 4쪽


  “문장(文章)의 의미(意味)”는 일본 말투입니다. 한국말은 이렇게 안 쓰지요. 한국말은 ‘말뜻’이나 ‘글뜻’이라고 쓰지요. “정확(精確)하게 파악(把握)하기”는 “제대로 알기”나 “똑똑히 살피기”나 “낱낱이 헤아리기”나 “오롯이 알아차리기”로 손질해 줍니다.


여름의 길이가 / 꽤 길었나 봅니다

→ 여름이 / 꽤 길었나 봅니다

→ 여름은 길이가 / 꽤 길었나 봅니다

《김철순-사과의 길》(문학동네,2014) 32쪽


  이 글월을 보면 “길이가 길었나” 꼴입니다. 이처럼 써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여름이 꽤 길었나 봅니다”처럼 쓰면 한결 단출하면서 뜻이 또렷합니다. 이러면서 ‘-의’는 저절로 사라지지요. 4348.10.25.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말 좀 생각합시다 13


 준비 땅


  요즈음은 ‘요이 땅(ようい どん)’ 같은 일본말을 함부로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준비(準備) 땅’으로 고쳐서 쓰니까요. 그렇지만, ‘준비 땅’이라는 말마디도 아직 한국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일본말 ‘요이’를 일본사람이 즐겨쓰는 한자말 ‘준비’로 바꾸기만 했을 뿐이니까요.


  일본사람은 총소리를 ‘땅’으로 적습니다. 한국사람은 총소리를 ‘탕’으로 적지요. 일본 사회나 학교에서 운동회나 경기나 대회를 하면서 총을 쏘며 퍼진 말투인 “요이 땅(준비 땅)”인데요, 막상 육상 경기를 지켜보면, 몸짓을 세 번으로 나눕니다. “준비이이, 땅!”이라 하지 않고, “하나, 둘, 셋!”이라 합니다.


  달리기를 하는 자리에서 숫자를 셋 세면서 함께 첫발을 뗀다면, 한국말로는 “하나 둘 셋”이라 하면 딱 어울립니다. 숫자를 셋 세지 않고 둘만 센다면, “자, 가자”라든지 “자, 달려”라 할 수 있어요.


  한국말에서 ‘자’라고 하는 느낌씨는 여러 사람 눈길이나 마음을 모으는 노릇을 합니다. “자, 이제 가 볼까”라든지 “자, 오늘은 이만 마치지요”라든지 “자, 기다려 보라고”라든지 “자, 요놈 보게나”처럼 써요.


  그런데 사람들이 입으로는 으레 ‘자’를 써도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문학에서는 좀처럼 ‘자’라는 말을 못 쓰는 듯합니다. 어린이를 가르치는 어른이라면, 또 어린이가 읽을 글을 쓰는 어른이라면, 어린이가 말을 슬기롭게 배워서 아름답게 쓰도록 한국말을 좀 찬찬히 살피고 생각해서 알맞게 써야지 싶습니다. 4348.10.24.흙.ㅅㄴㄹ



내가 태어날 때도 “준비 땅” 하고 수억 마리 정자가 달리기 시합을 했는데요

→ 내가 태어날 때도 “자 달려” 하고 수억 마리 정자가 달리기를 겨루었는데요

《박상우-불량 꽃게》(문학동네,2008) 44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얼결에 물든 미국말

 베이비 사인baby sign



  ‘베이비 사인’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baby sign’이라는 영어입니다. 이런 말은 한국말사전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 영어를 ‘아기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가 알아야 할 전문 낱말’인 듯 여기는 바람이 붑니다. 이 영어를 한국말로 옮기지 않고 그냥 ‘베이비 사인’으로 쓰는데, ‘baby’는 ‘아기’를 가리키고, ‘sign’은 ‘몸짓’을 가리켜요. 그러니 우리는 ‘아기 몸짓’이라는 말을 새롭게 지어서 쓸 만합니다.


 아기 몸짓 . 아깃짓 . 배냇짓


  아기가 자면서 짓는 얼굴짓을 놓고 ‘배냇짓’이라 합니다. 날 때부터 몸에 깃든 무엇을 가리키는 ‘배내’라는 말이 있어요. 여기에 ‘배내똥·배내옷’이라는 말하고 ‘배냇냄새·배냇니·배냇머리·배냇버릇·배냇저고리’ 같은 말이 있지요.


  ‘배냇짓’을 잘 적에 짓는 얼굴짓만 나타내는 낱말로 쓰지만, 아기가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닌 ‘몸을 움직여서 제 뜻을 나타내는 짓’을 가리키는 자리에 넉넉히 쓸 만합니다. ‘아깃짓(아기 짓)’처럼 새말을 지어도 됩니다. 4348.10.24.쇠.ㅅㄴㄹ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는 상호작용을 위해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베이비 사인Baby sign’을 사용합니다

→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는 이야기를 나누려고 몸으로 제 뜻을 나타내는 ‘배냇짓(아기 몸짓)’을 씁니다

《김수연-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예담프렌즈,2015) 110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