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4.4.


《시인 할머니의 거짓 않는 자연》

 황보출 글·그림, 푸른어머니학교, 2020.9.



셋이서 바깥마루에 앉아서 〈책숲 12〉을 글자루에 담는다. 두 사람 손길을 받아서 일하니 무척 수월하게 마친다. 책숲 이웃님한테 노래꽃(동시)을 미처 다 드리지 못했는데, 오늘 한 분 한 분 챙겨서 띄우려고 한다. 꾸러미가 묵직하다. 등짐을 짊어지고 자전거로 씽 면소재지 우체국으로 간다. 마을들은 노란물결이다. 땀을 한 줄기 빼고서 집으로 돌아온 뒤, 오늘도 모과꽃을 훑는다. 땀내음은 꽃내음으로 씻어야지. 봄볕을 쬐며 모과나무 곁에 서면 꽃그늘을 받으면서 즐겁다. 《시인 할머니의 거짓 않는 자연》을 읽었다. 아이들도 재미나게 읽어 주었다. 두껍지도 얇지도 않게, 크지도 작지도 않게, 단출하면서 곱게 나왔다. 다만 “시인 할머니”보다는 “노래 할머니”라 하면 어울리리라 본다. 할머니는 ‘시라는 문학’이 아니라 ‘노래라는 사랑’을 들려주려 하니까. 이렇게 “노래 할머니”가 곳곳에서 새롭게 빛난다. “노래 할아버지”도 틀림없이 있을 텐데, 어디 계시려나? 삶이며 숲이며 사랑으로 돌보며 수수하게 살아온 할아버지도 투박하게 글빛을 가꾸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기를 빈다. 오늘 우리가 지으면서 물려줄 살림빛이란 바로 노래이다. 시끌벅적 보임틀(텔레비전)에 흐르는 꾸밈짓이 아닌, 삶노래 말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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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4.3.


《개정판 우리말의 상상력》

 정호완 글, 지문당, 2014.1.10.



작은아이가 부른다. 마당을 내다본다. 비둘기가 동백나무 곁에 내려앉았다. 동백꽃을 톡톡 쪼다가 마당으로 내려서고, 쪼르르 걷다가 나무 곁으로 올라가고, 다시 내려와서 가볍게 걷는다. 작은아이는 슬슬 비둘기한테 다가가고, 비둘기는 눈치를 채고 천천히 비켜선다. 모과꽃송이를 훑으면 손에 배는 모과꽃내음이 짙다. 꽃송이 하나를 아이한테 건네고, 나도 가만히 혀에 얹고서 꽃내음이며 꽃꿀을 헤아린다. 낮에 읍내마실을 하는데, 읍내 한복판에 우뚝 선 높다란 잿빛집이 드리우는 시커먼 그늘이 서늘하다. 논밭을 까뒤집고서 잿빛집을 밀어붙인 벼슬아치(군수·공무원)는 이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리라. 이 고장을 사랑한다면 잿더미가 아닌 푸른숲을 바라볼 테지. 냇가 풀숲에서 자는 깜고양이를 본다. 넌 아늑히 지낼 곳을 아는구나. 《개정판 우리말의 상상력》을 읽었다. 처음 나온 판하고 사뭇 다르겠지. 그동안 새로 읽어낸 말결을 담으려 하셨을 테고. 여러모로 돌아볼 이야기를 다루는구나 싶으면서도 “우리말 생각”이나 “우리말을 생각하다”처럼 붙이지 못 한 책이름이 아쉽다. 우리말 ‘생각’이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글님 스스로 읽었다면 책이름을 이내 바꾸었겠지. 새롭게 밝혀서 가는 길을 품는 ‘생각’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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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4.2.


《카지카》

 토리야마 아키라 글·그림/오경화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2.1.30.



어제 큰아이랑 읍내를 다녀오면서 버스나루에 놓고 떡이랑 빵을 그대로 놓고 왔다. 큰아이가 모처럼 읍내 빵집에서 빵을 고르셨는데 상자째 놓고 오다니! 이튿날인 오늘 다시 읍내를 다녀올 일이 있어 나왔으나 우리가 짐을 놓고 온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다. 잘 되었다. 먹을거리가 하루를 넘기면 곰팡이가 피지 않겠나. 누가 가져가서 즐거이 누렸기를 빈다. 오늘 드디어 《곁책》에 이은 《곁말》 꾸러미(원고)를 매듭짓고 애벌글를 추슬러서 펴냄터로 보낸다. 숨을 돌린다. 요새 둘레에서는 벚꽃을 본다면서 왁자지껄할 텐데, 우리 집에서는 모과꽃을 기쁘게 맞이한다. 그래, 4월로 들어서는 이맘때는 모과꽃이지. 거리마다 모과꽃이 잔치를 이루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모과잎도 훑어서 ‘모과잎물(모과차)’을 우린다. 모과꽃이나 모과잎으로 잎물을 마셔 보면 다들 깜짝 놀란다. 모과알만 쓰는 줄 알았다고들 하지. 가벼이 일렁이는 바람하고 봄볕 사이로 새잎이 돋는다. 《카지카》는 토리야마 아키라 그림꽃 가운데 딱 하나 ‘푸름이한테 읽힐 만한’ 눈금이라고 느낀다. 이이는 왜 진작 이렇게 안 그렸을까? 얄딱구리한 그림은 좀 집어치우고, 오직 줄거리에 마음을 기울이면 이만큼 잘 그릴 수 있는데 말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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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4.1.


《작은 풀꽃의 이름은》

 나가오 레이코 글·그림/강방화 옮김, 웅진주니어, 2019.2.25.



큰아이하고 읍내마실을 가려고 시골버스를 기다린다. “어, 여기에도 흰민들레 있네?” 큰아이 말에 쳐다보니, 우리가 선 곁에 조그맣게 피었다. 2011년에 처음 이 마을에 깃들고 몇 해쯤 마을 할매는 자루 가득 흰민들레를 캐서 내다팔았다. 그때는 읍내 저잣거리에서 흰민들레를 봄나물로 쉽게 보았으나, 이제는 싹 사라졌고, 무엇보다 마을에서 흰민들레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할매들 호미질에 못 살아남기도 했고, 논둑이며 도랑을 온통 잿빛(시멘트)으로 덮느라 엄청 죽었고, 흰민들레가 자랄 만한 빈터에 커다란 헛간이 갑자기 들어서기도 했다. 옆에서 꼬르르르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리니 고라니가 논을 가로지른다. ‘고라니’는 ‘송곳니’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 말하는 분도 있으나, 오늘로 열아홉 해째 고라니를 만날 적마다 ‘고르르 꼬르르’ 같은 울음소리를 먼저 들었다. 곰곰이 생각하면 ‘고라라’거린다고도 할 만하다. 《작은 풀꽃의 이름은》은 무척 아름답다. 그저 아름답다. 다만 옮김말은 바보같다. 아름책을 왜 바보스럽게 옮겼을까? 무엇보다 이 책은 ‘잣나물’을 다루는데, 일본 풀이름인 ‘별꽃’을 그냥 쓰고 만다. 얼마나 서운한지. 옮긴이(번역가)도 엮는이(편집자)도 서울서만 사니 이런 일이 불거진다.


#ざっそうの名前 

#ぼくの草のなまえ

#長尾玲子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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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3.31.


《조선과 일본에 살다

 김시종 글/윤여일 옮김, 돌베개, 2016.4.3.



오늘 날씨는 놀랍고 재미있다. 아침에는 해, 낮에는 구름, 저녁에는 별이다. 비는 오지 않되 춤추는 날씨로 하루가 흐른다. 우리는 하늘을 보면서 무엇을 읽을까? ‘우리’라고 했으나, 이 ‘우리’는 누구일까? 시골하고 서울을 ‘우리’로 묶을 만할까? 남·북녘을 나란히 ‘우리’로 묶으면 될까? 한겨레란 이름을 모두 ‘우리’라 하면 되나? 싸움짓에 미친 이들도 ‘우리’라고 할 만할까? 《조선과 일본에 살다》를 천천히 읽는다. 글쓴이는 어릴 적에 얼마나 ‘일본 우두머리한테 미친 아이’였는지 낱낱이 보여준다. 글쓴이를 비롯해 숱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일본바라기(친일부역)를 했다.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도 수두룩했다. 어릴 적에 얼마나 철딱서니가 없었는지 스스로 밝히는 어른은 몇이나 있을까? 창피한 어린날을 밝힐 수 있기에 비로소 씩씩한 어른으로 선다. 부끄럽던 어린날을 말할 수 있기에 드디어 어질며 참한 어른으로 살림을 꾸릴 생각을 세운다. 잘못이란, 너희만 아니라 우리도 잘못이다. 참이란, 우리만 아니라 너희도 참이다. 무엇보다 ‘너희·우리’를 가르는 틀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낱낱이 다시 들여다볼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푸른별(지구)을 이루는 사람인가? 우리는 숲 곁에 있는 사람인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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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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