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2.25.


《크리스마스트리》

 미셸 게 글·그림/강경화 옮김, 시공주니어, 2002.11.25.



밤부터 바람이 휭휭. 낮에도 바람이 휭휭. 겨울이 겨울답도록 새삼스레 추위가 닥치는구나. 한 해 내내 빛날(생일)로 여기고, 언제나 꽃날(기념일)로 삼으니, 12월 25일이라고 해서 다를 일이 없다. 빛나고 꽃다운 삼백예순닷새 가운데 하루이다. 바람을 실컷 마시고서 다시 맞이하는 저녁에는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누린다. 별이 돋으면 슬금슬금 아이들한테 다가가서 묻는다. “별 보러 걷지 않을래?” 여름에 만나는 여름별, 겨울에 마주하는 겨울별, 봄가을에 어우러지는 봄가을별은 늘 새롭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푸른별도 스스로 돌기에 가만히 보는 별길은 천천히 흐르는 빛줄기이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어머니하고 딸이 상냥하면서 오붓이 짓는 살림길을 들려준다. 굳이 아버지를 안 그렸을 수 있지만, 꼭 다 그려야 하지 않지. 어이딸 살림길도, 어비딸 살림빛도, 어이아들 살림꽃도, 어비아들 살림노래도 아름답다. 섣달꽃(크리스마스)을 기리거나 반기는 그림책이기에 뭘 주고받는 얼거리나 ‘산타’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 숲에 들어가서 나무를 베거나 얻어서 집까지 실어나르는 줄거리로도 알차다. 스스로 사랑하기에 스스로 빛나고, 스스로 짓기에 스스로 즐겁고, 스스로 꿈꾸기에 스스로 춤추며 노래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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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2.24.


《영등할망 제주에 오다》

 이승원 글·그림, 한림출판사, 2021.11.5.



작은아이하고 순천마실을 한다. 읍내 우체국에 먼저 들렀고, 순천으로 가는 버스때에 맞추어 바지런히 걸었다. 사람들이 돌림앓이로 두려움하고 걱정을 흩뿌리기 앞서는 곧잘 순천마실을 했다만, 요새는 뜸했다. 틈새두기도 미리맞기도 엄청난 호들갑인 줄 알아차리는 이웃이 늘지만, 먹고살아야 한다는 말을 앞세워 나라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다. 으뜸길(헌법)하고 어긋날 뿐 아니라 사람길(인권)을 깡그리 짓밟는데, 목소리를 안 내고 그저 숨죽이고 구경하는 판이다. 참소리를 내는 글바치나 길잡이는 어디 있는가? 어느새 박정희·전두환 때처럼 ‘국민신고 + 허수아비 + 갈라치기’가 춤춘다. 《영등할망 제주에 오다》를 읽고서 두 달쯤 책상맡에 두었다. 땀흘려 일군 그림책인 줄 느끼면서도 여러모로 아쉽다. ‘인문지식백과’ 같은 그림책이 아닌, ‘이웃이 조곤조곤 일구는 마을이랑 어깨동무하는’ 그림책으로 길을 잡으면 어땠을까? 어버이가 아이랑 제주마실을 하는 틀로 ‘이곳은 어떻고 저곳은 저떻고’ 하고 풀이하는 줄거리는 나쁘지 않되, 그저 가만히 바람을 쐬고 나무 곁에 서고 바다랑 한몸이 되고 구름을 타고 노니는 하루를 살며시 담으면 아름다웠으리라 생각한다. 삶은 삶일 뿐 역사도 문화도 인문도 예술도 아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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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2.23.


《수어》

 이미화 글, 인디고, 2021.8.1.



읍내 우체국에 다녀온다. 가벼운 바람하고 포근한 볕을 누린다. 일찍 해가 지기에 오래오래 일렁이는 별을 누린다. 날이면 날마다 밤빛을 누리다가 생각한다. ‘왜 여름별보다 겨울별이 훨씬 반짝인다고 느낄까?’ 밤이 깊으니 별빛이 오래오래 반짝이고, 밤이 얕으니 별빛이 덜 반짝일 테지. 겨울밤에 별을 보면 그야말로 쏟아진다. 다만 고흥 같은 두멧시골에서나 별이 쏟아진다. 어릴 적 인천에서는 일곱별(북두칠성)을 가까스로 어림했는데, 오늘 이곳 고흥에서는 일곱별 둘레나 사이에 얼마나 다른 별이 함께 반짝이는지 모른다. 《수어》를 장만할 적에 ‘이 두께에 손말을 어떻게 담았을까?’ 싶었고, 다 읽고 덮으면서 여러모로 아쉬웠다. 무엇보다 손말을 누가 왜 어떻게 쓰는가 하는 줄거리가 없고, 이웃을 바라보는 눈망울을 느끼기 어렵다. 어쩌다가 손말을 배운 글님 이야기를 조금 쓰기는 했되, 이렁저렁 흐르다가 맺었다. 짧고 굵게 어느 글감을 다루려는 듯 책을 묶었구나 싶으나, 겉보기일 뿐이다. 손말을 훌륭히 할 줄 알고, 손말을 오랫동안 쓴 사람만 책을 써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으나, 이렇게 엮어서 종이에 얹는다면, 손말을 모르는 사람이 손말을 어떻게 품을까? 손말을 쓰는 사람이 이 책을 반길 만할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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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2.22.


《방귀야 부탁해》

 황현희 글·유진아 그림, 섬집아이, 2021.10.25.



큰아이가 도와 ‘책숲 꽃종이(소식지)’를 글자루에 넣고 여민다. 고맙구나. 다달이 책숲 꽃종이를 여밀 적마다 지난일을 떠올린다. 아이들이 모두 어릴 적에는 집안일을 하다가 조금, 아이들하고 놀다가 조금, 밥벌이를 하다가 조금, 빨래를 하다가 조금, 밤에 아이들을 재우고서 쪽틈을 내어 조금 …… 이렁저렁 이레나 열흘에 걸쳐 겨우 부쳤다. 이제 아이들이 부쩍 자라서 손이 덜 가기에, 아이들이 거들지 않으면 이틀이나 사흘이면 다 부치고, 아이들이 거들면 한나절에 마친다.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가른다. 올해는 맞바람이 적다. 이토록 고마운 바람인가 하고 느끼면서 이따금 두 손을 놓고서 바람을 쐰다. 어릴 적에는 멋부리며 두 손을 놓다가 와장창 엎어져 자전거도 몸도 깨졌으나, 어른인 오늘은 가볍게 두 손을 놓고 천천히 몰며 바람을 누린다. 《방귀야 부탁해》는 어린이스러운 그림책이다. 조금 더 어린이스러워도 아름다웠으리라 생각하지만 이만큼도 훌륭하다. 우리나라도 ‘창작 그림책’이 꽤 쏟아지는구나 싶은데 꽤나 붓멋을 들이기 일쑤이다. 너무 서울스럽고 어른스럽기까지 하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그림책은 ‘어른스럽지 않’을 뿐더러 ‘서울스럽지도 않’다. 그림님도 글님도 이 대목을 좀 눈여겨보기를 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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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2.21.


《월간토마토 vol.172》

 이용원 엮음, 월간토마토, 2021.11.1.



읍내 법무사에 간다. ‘글뭉치(등기 서류)’ 두 가지를 받는다. 참말로 끝난 땅종이(토지문서). 우리 집이 고스란히 우리 집이로구나. 시골에는 ‘등기’가 안 된 땅이 수두룩하다. 곰곰이 보면 굳이 ‘등기’를 할 까닭은 없다. ‘등기 = 세금’일 뿐이다. 또한 ‘등기 = 개발’하고 잇닿는다. 숲에 깃들어 조용히 살아가는 길이 아름다운데, 숲을 누리려면 오늘날에는 이 땅종이를 늘려서 부릉이나 풀죽음물(농약)이나 도둑이 얼씬거리지 않도록 둘러야 한다. 그런데 막상 시골에서 살면서 지켜보니, 땅종이가 있어도 우두머리(군수)가 뒷돈을 챙겨서 어디에다 막삽질을 하려고 나서면 삽차로 싹 쓸더라. 푸른터(국립공원)조차 아랑곳하지 않더군. 《월간토마토 vol.172》을 대전마실을 하며 장만했고 다달이 받기로 했다. 고장마다 펴내는 책에는 애써 대단하다 싶은 이야기를 안 실어도 된다. 엄청난 ‘문화·예술·역사·건축’은 엄청난 분들이 하라고 맡기고, 마을책은 마을살림을 수수하게 여미면 즐겁다. 요새는 눈뜨는 이웃이 조금씩 늘어나는데 ‘취재’를 하면 글이 망가진다. ‘취재’는 집어치우고 ‘함께살’면 된다. 스스로 마을사람이자 시골사람으로 살림을 짓고 놀고 노래하면 모든 이야기는 저절로 신나게 샘솟는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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