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2.23.


《수어》

 이미화 글, 인디고, 2021.8.1.



읍내 우체국에 다녀온다. 가벼운 바람하고 포근한 볕을 누린다. 일찍 해가 지기에 오래오래 일렁이는 별을 누린다. 날이면 날마다 밤빛을 누리다가 생각한다. ‘왜 여름별보다 겨울별이 훨씬 반짝인다고 느낄까?’ 밤이 깊으니 별빛이 오래오래 반짝이고, 밤이 얕으니 별빛이 덜 반짝일 테지. 겨울밤에 별을 보면 그야말로 쏟아진다. 다만 고흥 같은 두멧시골에서나 별이 쏟아진다. 어릴 적 인천에서는 일곱별(북두칠성)을 가까스로 어림했는데, 오늘 이곳 고흥에서는 일곱별 둘레나 사이에 얼마나 다른 별이 함께 반짝이는지 모른다. 《수어》를 장만할 적에 ‘이 두께에 손말을 어떻게 담았을까?’ 싶었고, 다 읽고 덮으면서 여러모로 아쉬웠다. 무엇보다 손말을 누가 왜 어떻게 쓰는가 하는 줄거리가 없고, 이웃을 바라보는 눈망울을 느끼기 어렵다. 어쩌다가 손말을 배운 글님 이야기를 조금 쓰기는 했되, 이렁저렁 흐르다가 맺었다. 짧고 굵게 어느 글감을 다루려는 듯 책을 묶었구나 싶으나, 겉보기일 뿐이다. 손말을 훌륭히 할 줄 알고, 손말을 오랫동안 쓴 사람만 책을 써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으나, 이렇게 엮어서 종이에 얹는다면, 손말을 모르는 사람이 손말을 어떻게 품을까? 손말을 쓰는 사람이 이 책을 반길 만할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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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2.22.


《방귀야 부탁해》

 황현희 글·유진아 그림, 섬집아이, 2021.10.25.



큰아이가 도와 ‘책숲 꽃종이(소식지)’를 글자루에 넣고 여민다. 고맙구나. 다달이 책숲 꽃종이를 여밀 적마다 지난일을 떠올린다. 아이들이 모두 어릴 적에는 집안일을 하다가 조금, 아이들하고 놀다가 조금, 밥벌이를 하다가 조금, 빨래를 하다가 조금, 밤에 아이들을 재우고서 쪽틈을 내어 조금 …… 이렁저렁 이레나 열흘에 걸쳐 겨우 부쳤다. 이제 아이들이 부쩍 자라서 손이 덜 가기에, 아이들이 거들지 않으면 이틀이나 사흘이면 다 부치고, 아이들이 거들면 한나절에 마친다.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가른다. 올해는 맞바람이 적다. 이토록 고마운 바람인가 하고 느끼면서 이따금 두 손을 놓고서 바람을 쐰다. 어릴 적에는 멋부리며 두 손을 놓다가 와장창 엎어져 자전거도 몸도 깨졌으나, 어른인 오늘은 가볍게 두 손을 놓고 천천히 몰며 바람을 누린다. 《방귀야 부탁해》는 어린이스러운 그림책이다. 조금 더 어린이스러워도 아름다웠으리라 생각하지만 이만큼도 훌륭하다. 우리나라도 ‘창작 그림책’이 꽤 쏟아지는구나 싶은데 꽤나 붓멋을 들이기 일쑤이다. 너무 서울스럽고 어른스럽기까지 하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그림책은 ‘어른스럽지 않’을 뿐더러 ‘서울스럽지도 않’다. 그림님도 글님도 이 대목을 좀 눈여겨보기를 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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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2.21.


《월간토마토 vol.172》

 이용원 엮음, 월간토마토, 2021.11.1.



읍내 법무사에 간다. ‘글뭉치(등기 서류)’ 두 가지를 받는다. 참말로 끝난 땅종이(토지문서). 우리 집이 고스란히 우리 집이로구나. 시골에는 ‘등기’가 안 된 땅이 수두룩하다. 곰곰이 보면 굳이 ‘등기’를 할 까닭은 없다. ‘등기 = 세금’일 뿐이다. 또한 ‘등기 = 개발’하고 잇닿는다. 숲에 깃들어 조용히 살아가는 길이 아름다운데, 숲을 누리려면 오늘날에는 이 땅종이를 늘려서 부릉이나 풀죽음물(농약)이나 도둑이 얼씬거리지 않도록 둘러야 한다. 그런데 막상 시골에서 살면서 지켜보니, 땅종이가 있어도 우두머리(군수)가 뒷돈을 챙겨서 어디에다 막삽질을 하려고 나서면 삽차로 싹 쓸더라. 푸른터(국립공원)조차 아랑곳하지 않더군. 《월간토마토 vol.172》을 대전마실을 하며 장만했고 다달이 받기로 했다. 고장마다 펴내는 책에는 애써 대단하다 싶은 이야기를 안 실어도 된다. 엄청난 ‘문화·예술·역사·건축’은 엄청난 분들이 하라고 맡기고, 마을책은 마을살림을 수수하게 여미면 즐겁다. 요새는 눈뜨는 이웃이 조금씩 늘어나는데 ‘취재’를 하면 글이 망가진다. ‘취재’는 집어치우고 ‘함께살’면 된다. 스스로 마을사람이자 시골사람으로 살림을 짓고 놀고 노래하면 모든 이야기는 저절로 신나게 샘솟는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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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2.20.


《마리와 양》

 프랑소아즈 글·그림/정경임 옮김, 지양사, 2004.1.5.



아침 일찍 우체국에 간다. 서울에 서둘러 보낼 글꾸러미가 있다. 이 때문에 서울마실을 생각해 보았는데, 작은아이가 “서울 가지 말고 우체국으로 가요.” 하고 말하기에 우체국으로 간다. 일찌감치 우체국 일을 보고서 어떻게 할까 생각하며 순천으로 가려다가 벌교로 시골버스를 타고 간다. 돌림앓이를 핑계로 시외버스가 엄청 줄어서, 고흥·순천을 오가는 시외버스를 타기가 까다롭다. 순천 낙안에는 〈형설서점〉이 있다. 낙안도 순천이니 그곳에 가자. 나는 책을 읽고, 작은아이는 책집 앞 너른터를 달리거나 걸으면서 해바라기를 한다. 해질녘에는 다시 시골버스로 고흥으로 돌아오는데, 사람도 부릉이도 드문 외진 시골길을 까뒤집고 넓히는 삽질이 한창이더라. 돈을 이렇게 퍼붓는구나. 삽질나라에서는 삽질로 뒷돈을 챙기는 짓이 끝없이 넘치는구나. 《마리와 양》을 읽었다. 상냥하면서 따스하게 흐르는 줄거리이다. 가만히 보면 온누리 어느 곳이나 수수한 어버이는 수수한 아이들한테 수수한 살림빛으로 말을 가르치고 셈을 물려주었다. 외우도록 닦달하지 않고, 부드러이 이야기를 지어 아이랑 노래하는 나날이었다. 오늘 우리는 아이들을 배움터에 몰아넣지만 무엇보다 ‘사랑’이 빠졌다. 사랑이 없으면 모두 눈가림에 눈속임이다.


#JeanneMarieCountsHerSheep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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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2.19.


《이치고다 씨 이야기 1》

 오자와 마리 글·그림/정효진 옮김, 학산문화사, 2010.10.25.



다시 낮볕은 포근하고 하늘은 맑고 바람은 싱그럽다. 해마다 포근한 겨울이 되는지 아닌지는 안 쳐다보기로 했다. 포근하면 포근한 대로 반기고, 얼어붙으면 얼어붙는 대로 즐기는 겨울을 맞이한다. 읍내를 다녀오는 해날(일요일)이다. 우리 집은 부릉이를 건사하지 않고 시골버스를 타기에, 시골버스에서 시골 푸름이를 스칠 적마다 이 아이들 입에서 쏟아져나오는 막말(욕)에 귀가 아프다. 푸른돌이도 푸른손이도 말끝마다 막말이다. 곁님하고 이 대목을 얘기해 보는데, “그 아이들은 아마 욕인 줄 모르고 그냥 입에 붙은 말 아닐까요?” 하는 말에 “아, 그렇겠네.” 하고 느꼈다. 어른이나 아이 모두 ‘식빵 굽기’를 늘 하는 우리나라인걸. 《이치고다 씨 이야기 1》를 새삼스레 읽었다. 홍성에 사는 이웃님 큰아이한테 건네고 싶어서 헌책을 어렵사리 장만했다. 그러나 여섯걸음 가운데 석걸음만 겨우 찾았다. 뭐, 석걸음이라도 ‘착하고 참한 그림꽃책’을 누릴 수 있기를 빈다. 오자와 마리 님 그림꽃책이 우리말로 다 나오지는 않았으나, 몇 가지 나온 책만 보아도 이토록 ‘착한 이야기·그림·말’을 담을 수 있나 싶어 늘 놀란다. 누리그림꽃(웹툰)이 그렇게 잘 팔리고 돈이 된다는데, 우리나라 누리그림꽃을 보면 숨이 막히고 끔찍하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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