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박나무 빨래 2


 후박나무 빨랫줄에 빨래를 널 때마다 흐뭇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신나게 해대는 빨래랑 낮에 힘겹게 졸음 참으며 하는 빨래는 모두 후박나무 빨랫줄에 넙니다. 타카도노 호오코 님 그림책 《내 머리가 길게 자란다면》(한림출판사,2003)을 날마다 떠올립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짧은머리 아이는 머리가 길게 자란다면 두 갈래로 땋아 나뭇가지에 묶고는 어머니가 한 빨래를 주렁주렁 매달아 몇 시간 꼼짝 않고 앉아 책읽기를 하면 책도 많이 읽고 어머니한테서 칭찬을 들으리라고 꿈을 꿉니다. 나뭇가지 하나 내주어 빨랫줄을 걸치도록 하는 후박나무는 우리 집에 얼마나 고마운 벗님일까요.

 바람이 불어 빨래가 나부낍니다. 첫째 아이가 빨래널기를 거듭니다. 후박나무 빨랫줄만으로는 널 빨래가 꽤 많아 빨랫대 하나 들고 나와 펼칩니다. 아이는 후박나무 잎사귀와 새 꽃송이 사이로 스미는 햇살을 받으면서 아버지랑 빨래널이를 합니다. (4344.12.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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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박나무 빨래


 사람들은 으레 ‘내 집 갖고 싶어’ 하고 말하지만, 정작 ‘내 집 갖기’를 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오늘날 여느 사람들이 장만한다는 ‘내 집’이란 거의 다 ‘아파트’이면서 ‘부동산’이기 때문이다. 아이들하고 오래오래 함께 살아가면서, 내 아이들이 저희 아이들을 낳아 두고두고 살아갈 만한 보금자리를 ‘내 집 갖기’라는 꿈으로 꽃피우는 사람을 만나기란 너무 힘들다.

 우리 네 식구는 ‘우리 집’을 장만했다. 우리한테 있는 돈으로 장만한 집은 아니다. 우리 네 식구가 살아오며 쓴 글과 찍은 사진으로 일구는 책이 밑힘이 되어 둘레에서 도움을 받아 장만한 집이다. 살림집과 책터가 아직 함께하지는 못한다. 우리한테 알맞춤한 책터이면서 살림집을 제대로 꿈꾸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겨우 살림집만 우리 집으로 마련했다. 앞으로 참답고 예쁘면서 착하게 책터를 함께 꿈꾸어서, 이 고운 살림집과 마주할 어여쁜 책터를 일구자고 생각한다.

 네 식구 살림집에는 마당 한켠에 후박나무 예쁘게 자랐다. 몸무게 이십 킬로그램이 안 되는 첫째 아이는 나무타기를 하며 오를 만하다 싶지만, 제대로 나무타기를 하자면 우리 아이 때까지는 힘들고, 우리 아이가 어른이 되어 낳을 아이 때는 되어야지 싶다.

 이 후박나무를 날마다 바라보면서 생각에 젖는다. 후박나무를 이만큼 돌본 할머님이 고맙고, 이 고마운 할머님 손길처럼 나와 옆지기가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나무를 물려주면서 아이들이 저희 삶을 사랑하도록 이끄는 어버이 손길이 될 만한가 하고 생각에 젖는다. 나는 살구나무를 좋아하고 옆지기는 잣나무를 좋아하는데, 따스한 날씨인 이곳 보금자리에 잣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 궁금하지만, 잣나무 몇 그루 우리 집터에 심고 싶다. 살구나무는 꼭 두 그루만 우리 집에 심고 싶다. 살구꽃과 잣꽃이 어우러지는 내음은 어떤 느낌일까.

 볕이 좋던 며칠 앞서, 무거운 빨랫대를 밖에 내놓고 다시 들이고 하다가, 비로소 빨랫줄 걸어야지 하고 느끼면서 후박나무 가지 사이에 줄을 엮는다. 나무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스럽고, 나무에 한쪽을 건다 하면 다른 한쪽은 처마에 박힌 못에 걸어야 하는데 집이 견딜 만한가 근심스러웠다. 틀림없이 이불을 널기는 벅차겠지. 그러나 둘째 기저귀 빨래는 얼마든지 널 만하다고 느낀다. 아니, 이제서야 느낀다. 가벼운 빨래를 널면 되잖아.

 새 보금자리에 깃든 지 한 달 보름만에 빨랫줄을 건다. 일찍부터 걸고는 싶었으나 미처 못 건 빨랫줄을 후박나무 가지에 걸친다. 오늘 비가 뿌리겠네 하고 생각했으나 비오기 앞서 조금이라도 바람에 마르라며 새벽빨래를 해서 기저귀를 내놓는다. 바람을 맞으며 팔랑거리는 기저귀는 햇살과 구름과 바람에다가 후박나무 기운이랑 동백꽃 내음을 함께 맞아들이겠지.

 빽빽히 걸면 기저귀 여섯 장을 널 만한 후박나무 빨래줄을 바라보면 나 혼자 그저 즐겁다. 빨래를 널 때에도, 빨래를 걷을 때에도, 빈 빨랫줄을 쓰다듬을 때에도 즐겁다. 후박나무야, 우리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네 아이들한테도 곱게 사랑을 나누어 주렴. (4344.1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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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에 일어나서 빨래하기


 새벽에 일어나서 빨래를 해야 한다. 새벽에 빨래를 한두 차례 하지 않으면 아침에 너무 바쁘다. 아침 일찌감치 밥차림을 헤아려야 하고 이부자리 개고 뭐를 하노라면 한두 시간 아닌 서너 시간 홀라당 지나간다. 새벽에 둘째 오줌기저귀를 갈거나 보일러를 한 시간쯤 돌리고 끌 무렵 기지개 켜고 일어나 빨래를 해 놓아야 비로소 아침에 느긋하다.

 고요히 잠든 마을 한켠에서 새벽빨래를 하며 새벽소리를 듣는다. 빨래를 비비고 헹구는 복작복작 소리를 낸다. 새까만 바깥을 바라본다. 다 마친 빨래를 한손에 걸치고 어두운 방을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다 마른 빨래는 방바닥에 미리 깐다. 빨래는 따뜻하게 올라오는 기운을 받아들인다. 옷걸이에 기저귀랑 옷가지를 하나씩 건다. 방마다 알맞게 나누어 넌다. 글조각 조금 매만지다가, 방바닥에 드러누워 허리를 펴다가, 다시금 기지개를 켠 다음 빨래를 갠다.

 밤빨래나 새벽빨래는 나 혼자 아무도 몰래 하는 집일. 옆지기도 아이도 모른다. 어쩌면 옆지기나 아이는 알아챌는지 모른다. 이부자리 한쪽에 있어야 할 아버지가 없으니까. 뒹굴며 자는 아이가 아버지 쪽으로 뒹굴며 발을 뻗거나 손을 휘두르며 아무것도 채이거나 만져지지 않으니까.

 아이가 뒹구는 소리가 나면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 깃을 여민다. 빨래를 다 개고 나면 바야흐로 홀가분하게 글조각 붙잡을 수 있다. 하루 스물네 시간 가운데 나한테 주어진 아주 고마운 두 시간. 새벽 네 시부터 새벽 여섯 시까지 바지런히 글을 빚는다. 새벽 한 시나 두 시에 빨래를 했으면 새벽 너덧 시 무렵까지 글조각을 붙잡다가 졸음에 겨워 드러눕는다. (4344.1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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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놀이 어린이


 빨래널대에 빨래집게를 가지런히 꽂는 아이는 이듬날 아침 아버지가 빨래널대에 빨래를 널고 난 다음 혼자서 빨래널대를 끌어서 세우고는 빨래를 옮겨 넌다. 빨래마다 빨래집게를 꽂는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바깥에 세우지 않고 집안에 두니까 빨래집게는 안 집어도 되지만, 아이는 이렇게 집으면서 빨래놀이를 한다. 이제 여느 날 빨래를 널러 마당으로 나가면 아이는 금세 따라 나오면서 아버지 일을 거든다. 젖은 빨래를 흙땅에 떨어뜨리는 일이 때때로 있지만, 아이 스스로 집어 아버지한테 건네거나 아이 스스로 옷걸이에 꿰어 빨래널대에 널기를 더 좋아한다. 아이 키에 맞는 조그마한 빨래널대가 있으면 하나 더 장만해서 아이 옷가지만 따로 널도록 하고 싶다. (4344.1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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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삿날 걸레 빨기


 어제 낮, 충청북도 충주 멧골집 살림짐 꾸리기를 마무리짓는다. 여태껏 숱하게 살림집을 옮기면서 짐차 들어오기 앞서 모든 짐을 다 꾸린 적은 처음이다. 언제나 이삿날까지 짐을 다 꾸리지 못해 허둥지둥했다. 이제 처음으로 아주 느긋하게 이삿날을 맞이한다.

 내가 더 많이 땀흘리고 더 많이 품을 들였으니까 살림짐 꾸리기를 마무리지었다고 할 수 없다. 먼저, 옆지기가 아이들하고 새 보금자리에서 씩씩하고 즐거이 여러 날 지낸다. 다음으로, 옆지기 아버님과 어머님이 자잘하며 손 많이 가는 일을 기꺼이 해 주셨다. 내 둘레 좋은 사람들이 크고작은 손길을 보태어 우리 도서관 새로 여는 일에 큰힘이 되어 주었다. 이 모두가 어우러지기에 나는 아주 홀가분하게 책짐과 살림짐을 꾸렸고, 오늘 새벽 드디어 이 짐꾸러미를 커다란 짐차에 가득 싣고 새 보금자리로 떠날 수 있다.

 옛 멧골집에서는 물을 쓰지 못한다. 물을 쓸 수 있으면 걸레를 바지런히 빨아 집 청소를 할 텐데, 물을 쓸 수 없으니 먼지만 얼추 훔치고 만다. 나중에는 흙먼지를 한쪽으로 몰아 놓기만 한다. 여관으로 걸레 여덟 장을 챙겨 온다. 여관에서 몸을 씻으며 걸레 여덟 장을 빤다. 짐을 꾸리며 한 번도 못 빨며 쓰던 걸레였기에 시커먼 구정물이 끝없이 나온다. 한참을 빨아 구정물이 거의 안 나오도록 한다. 여관 방바닥에 가지런히 펼친다. 걸레들은 금세 마른다.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담는다. 이제 이 걸레들은 새터에서 짐을 끌르며 다시 제몫을 해 주겠지. 고맙다. (4344.1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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