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빨래


 아기 기저귀를 마당에 넌다. 아침에 빨아서 마당에 넌 기저귀 빨래는 다 마른다. 다 마른 빨래를 걷고 새 빨래를 넌다. 다 마른 빨래를 걷을 때에 눈이 부시다. 하얗게 잘 마른 빛깔에 눈이 부시고, 기저귀로 비치는 햇빛에 눈이 부시다.

 인천에서 살던 때, 옥상마당에 기저귀를 널면서도 늘 눈이 부셨다. 기저귀 빨래란 언제나 눈부신 빨래이다. 갓난쟁이는 날마다 서른 장쯤 기저귀 빨래를 내놓으니까, 하루 내내 눈 붙일 겨를이 없이 빨래를 해야 하지만, 이 기저귀 빨래를 다 마치고 해바라기 하듯이 빨래줄에 널면, 차츰차츰 보송보송 마르는 기운이 내 마음까지 산뜻하게 비추는 눈부신 빛깔이다. 햇볕을 올려다보면서 빨래를 말릴 수 있는 집이란 참 좋구나. 게다가, 온통 시멘트 건물 숲이 아닌, 흙에 뿌리를 내린 나무로 이루어진 숲 한 귀퉁이에서 햇볕과 나무와 바람 기운을 듬뿍 맞아들이면서 금세 마르는 기저귀 빨래는 한결 눈부시다.

 이 좋은 기저귀 빨래를 기계한테 맡길 수 없다. 옆지기가 몸이 워낙 아파 기저귀 빨래이건 옆지기 빨래이건 엄두를 못 내지만, 옆지기가 안 아프더라도 옆지기 몫 빨래까지 손수 하면서 이 눈부신 빛깔을 듬뿍 맞아들이는 날이란 참으로 즐거우며 아름답다. (4344.5.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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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얼얼 빨래


 집에서 먹는 쌀이 다 떨어져서 자전거를 타고 마을 어귀 보리밥집으로 가서 4.5킬로그램을 사다. 쌀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씻는다. 씻으면서 민소매 웃옷하고 아기 똥기저귀 한 벌을 빤다. 겨울에는 뼛마디가 꽁꽁 얼어붙는다고 느끼도록 차갑던 물은 이른여름을 앞둔 오월 끝무렵에는 손가락이 얼얼하다고 느낄 만큼 시원하다. 똥기저귀는 따순 물로 빨아야 하는데, 차디찬 물로 몸을 씻으면서 그냥 찬물로 북북 비벼서 빤다. 다른 똥기저귀가 두 벌 더 나오면 삶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제 곧 여름이니 여름답게 차디찬 물로 손이 시리도록 빨래를 한 번쯤 해 보고 싶기도 하다. 아니, 이렇게 찬물로 몸을 씻을 때에는 내 몸에서 튕기는 차디찬 물이 똥기저귀로 후두둑 떨어지면서 저절로 헹구어지는 느낌이 좋다. 도시에서 살던 때에는 언제 어디에서나 수도물이니까 여름이든 겨울이든 물온도가 엇비슷하다. 시골에서도 여름이든 겨울이든 물온도가 엇비슷하다 할 만한데, 시골물은 쓰면 쓸수록 물이 더 차갑다. 땅밑에서 길어올리는 물로 신나게 씻고 빨래를 하고 나면 몇 시간쯤 더위란 오간 데 없다. (4344.5.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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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핏물 기저귀 빨래


 종이달거리가 아니라 천달거리를 쓰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난다. 그렇지만, 기계빨래를 벗고 손빨래로 돌아오는 사람은 그닥 안 늘어나는 듯하다.

 모든 사람이 손빨래를 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면 참 좋으리라 생각하지만, 몸이 아프거나 힘든 사람이라면 기계힘을 빌 수 있다고 느낀다. 아프고 힘드니까.

 바쁜 사람들도 기계힘을 빌 만하다고 여기지만, 바쁜 사람들이라 한다면 더더욱 손힘을 누리며 빨래를 맞아들일 노릇이 아닌가 하고 느낀다. 바쁘니까.

 바쁘니까 바쁜 겨를을 쪼개어 책을 읽는다. 바쁜데, 바쁜 틈을 나누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꿈을 북돋운다. 바쁘기 때문에 내 손과 몸과 일과 삶을 아끼는 길을 걸어간다.

 요즈음 사람들은 기계힘을 빌면서 “빨래를 한다”고 이야기한다. 기계힘을 빌리는데 빨래를 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옳게 말하자면 빨래를 하는 삶이 아니라 “기계를 쓰는” 삶이라 해야겠지.

 기계빨래라고 손쉽다고 느끼지 않는다. 기계빨래를 한대서 집일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느낀다. 집일은 늘 고만큼 있다. 집일이란 내가 살아가는 만큼 나 스스로 해야 하기 마련이다. 손을 써서 빨래를 하는 동안 내 손을 더욱 사랑할 수 있고, 손을 놀려 빨래를 하기에 내 옷과 빨래를 한결 사랑할 수 있다.

 옆지기 핏물 기저귀 빨래를 한다. 첫째를 낳은 지난 2008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핏물 기저귀 빨래를 신나게 했다. 핏물 기저귀 빨래를 마감한다 했더니, 이때부터는 천달거리 빨래가 이어졌다. 2010년 가을에 둘째를 밴 뒤로는 천달거리 빨래가 그친다. 2011년 오월에 둘째가 태어났으니 이제부터 핏물 기저귀 빨래가 다시 생긴다.

 핏물 기저귀이든 천달거리이든 북북 문지른대서 핏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핏물 기저귀는 그때그때 빨아 말려야 하니 늘 삶을 수는 없지만, 아침부터 낮까지 나오는 핏물 기저귀라면 두어 장 모아 삶을 수 있고, 아기 보랴 집일 하랴 눈코 뜰 사이 없으면 목초물 뿌린 물에 담가 둔다. 처음에 물을 조금씩 뿌리며 한손으로 핏자국을 살살 문지르면 제법 핏기가 빠지는데, 이렇게 핏기를 뺀 기저귀를 목초물 뿌린 물에 담근다고 하겠다. 삶을 때에도 목초물 뿌린 물에 한동안 담고 나서 삶으면 핏기는 더 잘 빠진다.

 집식구들 몸에서 나온 때를 내 손으로 느낀다. 살붙이 몸에서 나온 피를 내 손으로 받아들인다. (4344.5.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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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를 하지 않은 날


 요즈음 들어 아이 옷가지 빨래가 크게 줄었다. 벌써 닷새 남짓인가, 밤나절 아이 오줌기저귀 빨래가 나오지 않는다. 아이 오줌기저귀 빨래가 나오지 않으니 빨래할 일이 크게 줄어든다. 옆지기 빨래라든지 아이 겉옷 빨래야 하루쯤 미루어 몰아서 해도 되니까, 요사이는 빨래를 안 하고 건너뛰는 날이 곧잘 있다. 나는 내 옷을 더디 빤다. 식구들 빨래가 적은 날 내 옷을 한두 점쯤 끼워서 빤다.

 얼마 앞서까지만 하더라도 날마다 한 시간 즈음 빨래를 하지 않으면 하루치 빨래라 하더라도 잔뜩 쌓이는 나날이었는데, 아이가 밤에 오줌을 잘 가리니까 이렇게도 빨래가 줄어드는구나. 놀라우면서 새삼스럽고, 반가우면서 고맙다. 그렇지만 다음달에 둘째가 태어나면 다시금 빨래쟁이 나날을 맞이할 테지. 어쩌면 우리 첫째는 제 어버이가 그동안 빨래살이로 몹시 고되었으니 한동안 쉬게 해 주는지 모른다. 둘째가 태어나면 날이면 날마다 기저귀이며 배냇저고리이며 똥옷 오줌옷, 여기에 이부자리와 물막이깔개까지, 빨래가 넘치고 넘치리라. 첫째와 함께 살아오며 실컷 겪었으니까.

 날마다 빨래살이를 하는 동안 ‘이다지도 많은 빨래를 언제까지나 이렇게 해야 하나. 우리 아이는 언제쯤 혼자서 제 옷을 빨래할 날을 맞이하려나.’ 하고 노래를 했다. 아이가 커서 스스로 제 옷을 빨래할 즈음 된다면, 아이가 더 커서 제 어버이만큼 자라나 사랑하는 짝꿍을 만나고 혼인을 하거나 제금을 나서 제 아이를 낳아 키우며 제 아이 옷가지를 빨래한다면 제 어버이가 저를 낳아 키울 때에 어떠한 빨래살이를 치러야 했는지 몸으로 느낄 테지.

 머리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오로지 몸으로 알 뿐이다. 책을 수없이 읽는달지라도 알 수 없다. 오직 스스로 몸을 바쳐 겪을 때에 알 뿐이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는 책으로 낼 수 없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는 스스로 하루하루 보내는 나날이 주름살과 꾸덕살에 아로새겨질 뿐이다. (4344.4.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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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이불 빨래


 아이가 사흘째 속이 몹시 안 좋은 듯하다. 사흘 내리 물똥을 싼다. 처음 물똥을 싸던 날 기저귀랑 바지랑 이불에 잔뜩 똥을 발랐다.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었기에 참지 못해서 그만 싸고 말았겠지. 아이가 아무쪼록 속을 잘 달래야 할 텐데, 어버이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몫은 무엇일까.

 아이가 똥을 바른 이불과 깔개 석 점을 걷는다. 겉만 묻고 속솜에는 스미지 않았다. 얼마나 고마운 노릇이냐고 생각하며 이불과 깔개를 빤다. 어른이 덮는 이불이나 깔개라면 꽤나 힘들지만, 그나마 아이 이불이요 깔개인 만큼 품이 덜 든다.

 그렇지만 아이 이불과 깔개 석 점이니까 어른 이불 한 채만큼 된다고 할까. 한창 추운 날이 거의 물러가고 제법 따사로운 날씨이니까 빨래하면서 그리 힘들지 않고, 빨래도 이틀 만에 다 마른다. 아이 아버지는 빨래하느라 등허리가 휘지만, 똥을 질러댔기에 그동안 오줌을 질러대어 그냥 말려서 다시 쓰던 이 이불이랑 깔개를 말끔히 빨아서 덮거나 깔 수 있다. 앞으로는 겨우내 덮고 깔던 이불을 하나씩 빨아야 할 테니까, 먼저 아이 이불과 깔개를 빨도록 해 준 셈일까.

 참으로 일거리가 그치지 않는 나날이라 눈알이 핑핑 돈다. 힘든 데에 더 고된 일거리가 쌓인다고 여기면 그야말로 몸이 무너지고 마음이 버겁다. 잘 생각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책을 읽을 때에도 언제나 책을 읽는 사람 몫이지, 책을 쓴 사람 몫이 아니다. 책을 쓴 사람이 엉터리로 썼대도 읽는 사람이 잘 읽으면 훌륭하다. 책을 쓴 사람이 훌륭히 썼어도 읽는 사람이 엉터리라면 젬병이다. 아이하고 복닥이는 나날을 아이 아버지로서 어찌 받아들이거나 맞아들여야 즐거우면서 아름다울까를 찬찬히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한 번 더 쓰다듬고, 다시금 껴안으며, 조금 더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어버이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저녁이 되면 픽픽 쓰러지지만, 새벽에 다시 기운을 차리며 일어난다. 오늘은 오늘 꾸릴 삶과 오늘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며 맞이할 새날을 생각하자. 오늘 하루 내 마음을 북돋우며 도와줄 책을 헤아리자. 옆지기는 밤새 아이 옷가지 하나를 뜨개질로 짓는다. (4344.2.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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