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똥빨래

 


 새벽 세 시 이십 분. 둘째 갓난쟁이가 똥을 푸지게 눈다. 밤 새벽 내내 칭얼거리며 옳게 잠을 못 드는 아이가 똥을 오지게 눈다. 밤 열두 시 조금 넘어 일어나 엊저녁 밀린 오줌기저귀 빨래 석 장이랑 똥기저귀 빨래 석 장을 해치운 아버지는 새벽 세 시에 똥기저귀 한 벌(기저귀 하나, 기저귀싸개 하나, 바지 하나)을 다시금 해치운다. 새해 첫날 엊저녁 일찌감치 몸이 힘들어 자리에 누운 보람인가. 일찍 잠자리에 들어 밤 열두 시에 깨어났기에 이렇게 밀린 빨래를 하고 밤에 똥을 실컷 눈 아이 뒤치닥거리를 할 수 있는가.

 

 둘째 밤똥빨래는 오랜만이라고 느낀다. 둘째며 첫째며, 여기에 옆지기에다가 나까지, 네 식구가 몸이 영 시원찮다. 나는 시원찮은 몸으로 집일 이것저것 돌본다. 이것저것 돌보다 보면 이내 지쳐, 밥을 먹고 나서 곧바로 드러눕고야 만다. 드러누워 한 시간쯤 허리를 펴면 다시금 이것저것 일손을 붙잡는다. 그런데, 몸이 힘들다고 생각하다 보니 자꾸 골을 부린다. 아이한테 골을 낸다. 내 몸이 아이들 칭얼거림이나 투정을 받아주기 어렵다 할 만큼 참으로 삐걱거리기 때문일까. 삐걱거리는 몸뚱이로도 얼마든지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아니, 삐걱거리는 몸뚱이인 만큼 한결 따사로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둘째가 왕창 눈 똥에는 땅콩 반 알이 섞인다. 너 언제 땅콩을 주워먹었니. 용하게 이 녀석이 똥과 함께 나와 주었구나. 이제 속이 조금 시원하니. 네 똥기저귀를 빨며, 네 아버지가 이틀째 똥을 못 눈 채 보냈다고 느낀다. 그러고 보니, 어제 아침에 네 손발톱을 깎으면서 아버지 손발톱은 아직 몇 주째 못 깎는구나. (4345.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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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는 쉴 수 없구나

 


 아침 빨래를 마치고 나서, 밥을 차리려고 부산을 떤다. 한창 바삐 손을 놀려 밥과 국과 고구마떡볶음을 마무리지어 밥상에 올리기만 하면 끝인데, 이장님 마을 방송이 흐른다. 마을회관에 낮밥을 차렸으니 마을 분들 모두 나와서 드시라고 이야기한다. 오늘 무슨 날이기에 마을회관에 모여서 밥을? 아이 둘한테 옷을 입히느라 한참 걸린다. 첫째는 머리도 제대로 안 빗은 채 이 바람 드센 날 엉터리로 옷을 입겠다고 억지이고, 둘째는 기저귀를 가는데 끝없이 울어대서 골이 띵하다. 어찌저찌 옷을 입히고 둘째를 안아서 마을회관으로 간다. 어르신들은 일찌감치 모이셨다. 할아버지들은 벌써 다 드시고 두 분만 남고, 할머니들만 남았다. 마을회관에 모이라는 방송이 나오면 언제나 우리 집이 꼴찌.

 

 할머니들이 오늘 동짓날이라 함께 팥죽을 먹는다며 어여 자리에 앉으라 말씀하신다. 그렇구나. 동짓날이라 다 함께 팥죽을 드시는구나.

 

 팥죽을 세 그릇 먹고 둘째를 다시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들하고 복닥거리느라, 또 아침부터 쉴 새 없이 몰아치듯 집일을 한 터라, 졸음이 가득한 두 아이를 재우면서 나도 자고 싶다. 그런데, 둘째가 똥을 눈다. 그래, 똥을 누었으면 똥을 치워야지. 아침에 두 차례 누고 낮에 한 차례 더 누네. 젖을 먹으면 젖 먹은 대로 똥이 나오겠지. 따순 물을 받아 밑을 씻긴다. 낯도 씻긴다. 똥기저귀는 바로바로 빨아야 똥물이 빠진다. 똥기저귀를 빨래한다. 빨래하는 김에 옆지기 두툼한 옷가지도 빨래한다. 옆지기 옷가지를 빨래하는 김에 아침부터 낮까지 나온 둘째 오줌기저귀도 빨래하고, 첫째 옷가지 여러 벌을 함께 빨래한다.

 

 바람이 드세고 온도가 똑 떨어진 탓에, 후박나무 빨래줄에 건 빨래는 얼어붙는다. 구름이 지나가 햇살이 나면 바람에 날아갈 듯 펄럭거리던 얼어붙은 빨래가 사르르 녹는다. 고흥은 겨울에 그닥 춥지 않지만, 겨울바람은 되게 드세구나.

 

 어제 해 놓고 다 말렸으나 아직 안 갠 빨래를 갠다. 첫째 아이가 곁에서 거든다. 아침에 해 놓고 다 마른 빨래를 갠다. 첫째는 노래를 틀고 춤을 추며 논다. 나 혼자서 갠다. 그예 저녁까지 내처 집일을 한다. 열 시에 곯아떨어진다. (4344.12.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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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무장갑 빨래

 


 옆지기 말을 들어 고무장갑 빨래를 하기로 한다. 네 식구 손빨래를 하자니 하루에 서너 차례를 해도 금세 다음 빨래가 쌓다. 집에서 빨래만 하지 않으니 손에 물기 마를 새가 없다. 이러다가 손이 너무 트고 갈라지고 뻣뻣해지고 거칠어질 테니까 빨래를 할 때만큼 고무장갑을 끼어 보기로 한다. 1995년에 홀살이를 할 때부터 손빨래를 했으니까, 열여섯 해 만에 맨손 빨래 아닌 고무장갑 빨래를 하는 셈.

 

 그렇지만, 둘째가 똥을 누어 밑을 씻기고 나서 똥기저귀를 빨래할 때에는 으레 맨손 빨래가 된다. 둘째 밑을 고무장갑 끼며 씻길 수 없으니까. 부엌일을 하다가 빨래를 하거나, 첫째를 씻기고 나서 빨래를 할 때에도 으레 맨손 빨래가 된다. 손에서 물기를 말릴 몇 분이 아까우니 그냥 맨손 빨래가 된다.

 

 요 며칠 두 차례쯤 고무장갑 빨래를 한다. 그러니까, 요 며칠 예닐곱 차례는 그냥 맨손 빨래가 되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빨래를 하면, 물이 찬지 뜨거운지 잘 못 느끼겠다. 옷가지가 잘 비벼지는지, 때는 잘 빠지는지, 잘 모르겠다. 오래도록 맨손 빨래를 한 나머지,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는 아직 느낌이 와닿지 않는다.

 

 먼먼 옛날 사람들한테는 고무장갑이 없었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 내 어머니 젊을 적까지도 고무장갑이란 있을 수 없다. 빨래기계는커녕 고무장갑조차 없던 나날 집일을 도맡던 어머니들은 빨래를 하며 손이 까칠까칠해지고 트고 갈라지고 꾸덕살투성이가 되면서 어떤 마음 어떤 생각 어떤 꿈이었을까.

 

 내가 아주 어렸을 적, ‘남자가 여자한테 빨래기계 사 줄 돈은 없어 고무장갑 겨우 사 주며 미안하다’고 하는 이야기가 만화책에 곧잘 실리곤 했고, ‘고무장갑 사 줄 돈조차 없어 미안하다’고 하는 이야기가 만화책이나 동화책에 가끔 실리곤 했다고 떠오른다. 빨래기계 안 사 주어도 되고, 고무장갑 안 사 주어도 되니까, 좋은 보금자리 꾸려 살아가는 아버지들이 함께 손빨래를 하면 즐거웠을 텐데. 집일을 서로 도우면서 하고, 아이를 함께 사랑하면서 보살피면 참으로 아름다웠을 텐데.

 

 나는 네 식구 빨래를 도맡으면서, 네 식구 빨래하며 쓸 고무장갑도 내가 가게로 자전거 타고 마실하면서 장만한다. (4344.12.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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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꽃 빨래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널 때면 으레 대문 옆 동백나무를 바라본다. 참말 천천히 한 송이 두 송이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를 바라보며 가까이 서면, 먼저 곁에 있는 뒷간 똥내음이 나지만, 동백꽃에서 살그마니 퍼지는 꽃내음을 함께 느낀다. 뒷간 치우는 일꾼을 불러야 하는데 늘 깜빡 잊는다. 얼른 뒷간을 치우고 집손질도 마무리해야 하지 않나.

 

 집식구 옷가지가 햇살과 동백꽃 내음 함께 마시기를 바란다. 집식구 옷가지에 내 까끌까끌한 손길을 거쳐 스밀 사랑이 깃들기를 꿈꾼다. 집식구 옷가지가 시골마을 예쁘게 일구는 할매 할배 이야기를 조곤조곤 맞아들이기를 빈다. 집식구 옷가지에 이 보금자리에서 꽃피울 보배로운 열매가 녹아들기를 기다린다. (4344.12.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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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2-15 16:47   좋아요 0 | URL
아, 동백꽃이 피었나요.... 예쁘네.

숲노래 2011-12-15 18:18   좋아요 0 | URL
우리 집이 가장 늦게 피던데 ^^;;
가장 오래까지 피리라 생각해요~ ^__^
 


 빨래를 해 주는 사람

 


 하룻밤만 묵고 서울을 다녀오느라 집을 비운 사이 둘째 옷가지랑 기저귀 빨래는 옆지기가 맡는다. 하루만에 고흥집으로 돌아오지만, 고속버스와 고속철도에서 너무 시달린 나머지 온몸이 찌뿌둥하고 눈을 뜨기조차 버겁다. 이튿날 빨래까지 옆지기가 맡는다. 나는 밤새 잠을 못 들어 아침까지 깬 채 있는 둘째를 안고 어르다가는 업는다. 둘째를 업고 바깥으로 나와 논둑에 선다. 바람이 좀 세다. 날은 따뜻하지만 바람이 차갑기에 얼마 있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시원하지만 아이한테는 추울 테니까. 옆지기는 아직 빨래를 한다. 내가 서울을 다녀오며 입던 옷을 모조리 빨아야 하니, 내 옷가지 빨래까지 하자면 더 오래 걸리리라.

 

 아직 뜨기 힘든 눈을 뜨고는 아이한테 노래를 불러 준다. 아이를 한참 업다가 내린다. 등허리가 좀 결린다. 아이를 안는다. 팔이 후들거린다. 힘이 많이 빠졌는가 보다. 이런 몸으로 빨래를 할 수야 없겠지. 아마, 내가 여느 날 여느 때 여느 빨래를 하는 동안 내 옆지기도 이와 같은 몸이면서 마음이 아니었을까 헤아린다.

 

 빨래를 하고 집일을 맡는 사람이 고단할까. 빨래를 할 수 없고 집일을 맡을 수 없는 사람이 고될까. 누가 더 고되다든지 누가 덜 고단하다 할 수 없다. 누구는 한갓지거나 느긋하다 갈라 말할 수 없다. 빨래를 해 주는 사람이 있기에 고마우면서, 나 스스로 빨래를 할 만큼 힘을 북돋우고 몸을 추슬러야 한다고 느낀다. 나는 내 살붙이한테 고맙고, 나는 바로 나한테 고마운 사람으로 살아야지. (4344.1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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