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순 품 바라는 마음

 


  이른새벽에 잠에서 깬 작은아이가 어머니 품을 찾습니다. 아이들 어머니는 그제부터 마음닦기 하는 곳에 갔습니다. 앞으로 너덧새 뒤에나 어머니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작은아이를 품에 안고 달래며 재우지만, 아이는 아쉬운 눈빛으로 어머니를 찾습니다. 설마 싶어 벌떡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부엌으로도 가고 바깥도 내다 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안 보입니다. 아버지가 다시 품습니다. 아이는 입을 실쭉거리다가도 살며시 눈을 감습니다. 이윽고 다시 눈을 뜹니다. 다시 눈을 감습니다. 또 눈을 뜹니다. 한 시간 남짓 입을 쪽쪽 다시다가 스르르 곯아떨어집니다. 그런데 드르릉 코 고는 소리까지 내며 잠들다가도 눈을 번쩍 뜹니다.


  이 어린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닌다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글쎄’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으나, 다른 말은 선뜻 떠오르지 않고 ‘글쎄’ 한 마디만 떠오릅니다. 그러면, 이 어린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보내면 무엇을 잃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어머니 따순 품을 잃고, 어버이 보드라운 사랑을 잃으며, 보금자리 너그러운 이야기를 잃겠지요. 숲에서 노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아니라 한다면, 숲에서 뛰놀며 삶을 익히는 초등학교가 아니라면, 숲에서 땀흘려 일하기도 하고, 나무와 풀을 한껏 껴안는 중학교가 아니라면, 숲을 이루는 흙과 햇살과 바람과 물을 곰곰이 살피며 배우는 고등학교가 아니라면, 이 아이들이 학교라는 데를 다닐 뜻이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어머니 품에서 젖을 빨고 만지면서 사랑과 삶과 꿈을 물려받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면서 믿음과 삶과 이야기를 이어받습니다. 아이들은 숲으로 둘러싸인 보금자리에서 무럭무럭 크면서 생각과 꿈과 마음을 추스릅니다.


  가을 새 아침이 밝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더 느긋하게 자다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곡식을 먹는 작은 새들은 나락을 한창 베는 들판 곳곳을 날아다니며 부산합니다. 집 안팎으로 작은 새들 노랫소리가 한가득 감돕니다. (4345.10.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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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10-05 17:59   좋아요 0 | URL
아내분께서 어딜 가셨나봐요?
마음닦기 하는 곳이 어딜까 일순 궁금해집니다... ^^

숲노래 2012-10-05 18:17   좋아요 0 | URL
'람타' 비기닝 이벤트...라고 하던가 그래요 ^^;;;
아주 고되게 마음닦기를 시켜 주는 곳입니다.
그래도, 마음을 열고, 양자물리학을 이해하면,
아주 쉽게(몸은 힘들지만) 알아들으면서
삶을 스스로 창조하도록 이끌어 준다고 해요.

지식이나 정보가 아닌,
모든 사람들 마음에 있는 '하느님'을 깨우쳐
스스로 밝은 숨결이 되도록 하는 일이에요.

아무튼, 아이들이 여러 날 씩씩하게 잘 놀기를 빌 뿐입니다~
 


 버스·기차에서 풀려난 마음

 


  고흥에서 음성까지 아홉 시간 즈음, 다시 음성에서 고흥까지 아홉 시간 즈음, 아이들은 버스와 기차와 택시를 갈아타고 움직여야 한다. 어른도 만만하지 않은 길을 아이들은 참 잘 따라와 준다. 길이 막혀서도 아니요, 차가 없어서도 아니나, 오늘날 뻥뻥 잘 뚫렸다 하는 길이란 큰도시에서 다른 큰도시로 잇는 길일 뿐, 시골에서 다른 시골로 잇는 길은 거의 엉터리라 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시골과 시골을 잇는 길이 뻥뻥 뚫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시골과 시골은 앞으로도 시골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온 나라에 고속도로가 뚫리거나 고속철도가 놓여야 경제발전이나 사회발전이 아닐 뿐더러, 좋은 삶이나 즐거운 삶이 아니기도 하다. 좋은 숲을 누리면서 좋은 꿈을 키울 때에 좋은 삶이요, 즐거운 마실을 천천히 걸어서 다니며 즐거운 사랑을 오순도순 나눌 때에 즐거운 삶이다.


  버스에서도 기차에서도 풀려난 아이들은 홀가분하다. 기차를 내리고 나서 아이들은 마음대로 달리든 걷든 뛰든 노래하든 할 수 있다. 한가위 버스와 기차라 하지만, 아이들이 저희 마음껏 소리지르거나 뛸 수 없다. 어른들은 고속버스에서도 춤추고 노래하는데, 아이들이 고속버스나 시외버스에서 아이답게 쉬거나 놀 만한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는다. 어른들은 손전화 기계를 들여다보든 술을 마시든 무어를 하든 한다지만, 아이들이 기차에서 아이답게 뛰거나 놀거나 노래할 만한 틈을 마련해 놓지 않는다.


  곰곰이 돌아본다. 여러 시간 달리는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나 기차에서 어린 아기들은 똥이든 오줌이든 눌 수 있다. 기차에는 뒷간이 딸리지만 어느 기차에서도 어른이 똥오줌 누기 좋도록 시설을 갖추지, 아이들이 똥오줌 누기 좋도록 시설을 갖추지 않는다. 어린이 눈높이로 된 시설이란 어디에도 드물다. 곧, 어린이처럼 여린 할머니나 할아버지나 장애인이 즐거이 누릴 시설이 없다고 할 만하다. 외국 손님을 헤아리는 안내글이나 안내방송이 있다지만, 외국 일꾼(그러니까 이주노동자)을 헤아리는 안내글이나 안내방송은 없다.


  어쨌든, 여덟 시간 먼길을 달린 끝에 아이들이 버스에서도 기차에서도 풀려난다. 마지막으로 택시 탈 일만 남는다. 이제 홀가분하게 뛰고 달리며 소리지른다. 아이들이 두 다리로 걷는다.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마음이랄까, 더는 몸을 옥죄이지 않아도 되는 마음이랄까, 우리는 우리 가고픈 대로 간다. 우리는 우리 하고픈 대로 한다. (4345.10.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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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을 누리는 마음

 


  아침이나 낮에 아이들과 마을길 걷는 일이 즐겁습니다. 바람을 쐬고 햇살을 쬐며 풀잎 나부끼는 소리가 좋구나 싶어요. 저녁이 되어 어스름이 깔릴 무렵 아이들과 천천히 마을길 걷는 일도 즐겁습니다. 따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늘 저녁길을 걷다가 개똥벌레를 만납니다. 개똥벌레는 예부터 이곳에서 살았으니 저녁마실을 하며 만날 텐데, 개똥벌레가 살아가는 곳이기에 나도 옆지기도 아이들도 이 마을에서 호젓하게 살아갈 만하겠다고 느낍니다. 거꾸로 보면, 개똥벌레가 살아갈 만하지 못한 터라면, 나도 옆지기도 아이들도 그닥 살아갈 만하지 못한 데가 아니랴 싶어요.


  땅강아지를 만납니다. 방아깨비와 메뚜기를 봅니다. 흙사마귀랑 풀사마귀를 봅니다. 아주 빨간 고추잠자리를 봅니다. 말잠자리며 실잠자리를 보고, 풀개구리와 미꾸라지를 봅니다. 내가 바라보는 숨결이란 내가 생각하는 목숨결입니다. 내가 마주하는 이웃이란 내가 사랑하는 꿈결입니다.


  옆지기가 곧잘 “내가 처음부터 시골에서 태어났더라면” 하고 읊는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옆지기는 아마 옛날 삶으로는 시골에서 태어났겠지요. 오늘 삶에서는 도시에서 태어났겠지요. 나도 아마 옛날 삶으로는 시골에서 태어났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나도 오늘 삶에서는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우리 집 큰아이도 도시에서 태어났는데, 작은아이는 시골에서 태어났어요. 그러나 두 아이 모두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시골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을 누립니다. 시골마을 감싸는 별빛과 바람과 어둠과 달무리를 누립니다. 저마다 무엇을 누리느냐에 따라 넋과 삶이 달라지겠지요. 스스로 무엇을 받아안느냐에 따라 꿈과 사랑이 달라지겠지요. (4345.9.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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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개구리 살아가는 마음

 


  풀개구리는 풀숲에서도 살고, 논에서도 살며, 샘가에서도 삽니다. 그리고 사람들 살림집 한켠 물꼭지 둘레에서도 삽니다. 집 바깥에 있는 물꼭지 둘레는 촉촉하면서 풀숲을 작게 이룹니다. 조그마한 풀개구리는 고무통에 들어가 물놀이도 하고, 길다란 물호스에 앉거나 물꼭지에 올라앉아 쉬기도 합니다. 내가 물꼭지를 틀러 다가가면 가만히 있다가 시멘트벽으로 폴짝 뛰어 꼼짝을 않기도 하고, 때로는 안쪽으로 깊이 내빼기도 합니다. 물이 있고 풀이 있으며 집이 있으니, 풀개구리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보금자리가 됩니다. (4345.9.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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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밤 누리는 마음

 


  밤이 하얗습니다. 티끌 하나 없이 하얀 밤입니다. 두 차례 거센 비바람이 지나간 시골마을 밤하늘은 몹시 하얗습니다. 이제 보름이 두 차례 지나면 한가위입니다. 한가위를 코앞에 둔 보름달은 매우 밝습니다. 저녁에 불을 모두 끄고 잠자리에 들려 해도 방으로 환한 달빛이 스며듭니다.


  아직 잠잘 생각이 없는 큰아이를 업습니다. 몸앓이를 하느라 지친 몸이지만, 큰아이를 업고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마을을 한 바퀴 휘 돕니다. 구름 거의 없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군데군데 남은 구름은 달빛을 받으며 눈부신 보배처럼 빛납니다. 나즈막한 멧봉우리 위로도 커다란 별이 보이고 하늘 꼭대기로도 커다란 별이 보입니다. 동그란 달은 들판을 골고루 비춥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흔들리기만 할 뿐 드러눕지 않은 벼가 달빛을 찬찬히 받습니다. 큰아이와 함께 들판 한켠에서 밤벌레 노랫소리를 듣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들판에서 자라는 곡식은 낮에 햇볕을 받으면서도 자라지만, 밤에 달볕을 받으면서도 자라겠구나 싶어요. 낮에는 휘잉휘잉 바람소리를 들으면서도 크고, 밤에는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으면서도 크겠지요.


  다 다른 벌레들 다 다른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같은 귀뚜라미라 하더라도 다른 노랫소리입니다. 같은 방울벌레인들 다른 노랫소리입니다. 하얗고 고요한 밤을 가슴에 담뿍 안고는 집으로 들어옵니다. 큰아이 쉬를 누이고 함께 잠자리에 듭니다. 큰아이는 이내 새근새근 잠듭니다. (4345.8.3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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