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듣는 마음

 


  졸린 아이들을 재울 무렵, 아버지는 이것저것 할 일이 많습니다. 아이들 오줌그릇 비우고, 설거지 마무리지은 뒤, 냄비에 남은 국이나 밥이 있는가를 살피며, 마당에 넌 빨래 다 걷었는지 돌아봅니다. 부엌과 방과 마루를 한 번 슥 둘러보면서 ‘이제 다 되었네’ 싶으면 잠자리에 들 수 있습니다. 잠자리에 들 적에도 아이들 베개와 이불을 살피고, 이것저것 더 건사한 뒤에, 부채를 한 손에 하나씩 들고 두 아이한테 찬찬히 부쳐 주면서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오늘과 어제와 그제 저녁, 큰아이가 아버지를 부릅니다. 집살림 마무리짓고 잠자리에 들기 앞서, “아버지 빨리 와요. 아버지 같이 누워요.” 하고 부릅니다. 그래, 너희 곁에 곧 갈게. 그런데 아버지는 이모저모 집살림을 다 건사하면서 마무리를 지어야 가지. 그동안 너희끼리 놀든지 먼저 잠들든지 하렴.


  아이들끼리 먼저 잠드는 일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함께 눕거나 곁에 있으면서 자장노래 불러 주기를 바라요. 이리하여, 나는 큰아이 이야기대로 얼른 집일을 마무리짓습니다. 아이들 곁에 누워 조곤조곤 자장노래 부르면서 다 함께 즐겁게 잠들며 새롭게 꿈나라에서 놀다가 이튿날 씩씩하게 일어나자고 생각합니다. 4346.8.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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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남기는 마음

 


  ‘어린이 우리 말 이야기책’에 넣을 낱말풀이 마지막 두 낱말을 남깁니다. 원고지 420장에 이르는 글을 비로소 끝맺는구나 싶으며, 살짝 셈틀을 끄고는 마당에서 아이들하고 함께 뛰놀다가 들어와 빨래를 합니다. 아까 작은아이가 똥을 눈 바지를 빨고, 어제 큰아이가 벗은 여름치마 한 벌을 빨래합니다. 이러면서 걸레 한 장을 함께 빨래합니다. 빨래를 하면서 찬물을 한 모금 입에 물고는 한참 생각합니다. 이 차고 시원한 물이 내 몸으로 깃들어 하나되면서 내 마음 또한 맑으며 시원한 빛이 되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빨래를 하다가 몸을 씻습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로 땀을 찬찬히 씻습니다. 빨래를 헹구고 물기를 쪼옥 짠 뒤, 마당으로 내려와 널어 놓습니다. 원고지 420장에 이르는 글을 이레만에 마무리짓습니다. 한 줄 두 줄 이어 420장이 되었고, 마지막 한 줄 두 줄 붙여 420장으로 끝날 테지요. 걸음 하나를 모아 먼길을 나서고, 자전거 발판 한 번 두 번 구르며 이웃마을로 나들이를 떠납니다. 작은 손길 한 번 내밀어 아이들 볼을 어루만지고, 두고두고 이은 작은 손길은 사랑이라는 꽃으로 태어납니다. 4346.8.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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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개구리 생각하는 마음

 


  보름 앞서 마을에 항공방제 쳐들어오니 여러 날 개구리 밤노래 싹 죽었어요. 그러더니 나흘 지나고부터 개구리 밤노래 가늘게 몇 가락 살아났어요. 이럭저럭 개구리 밤노래 날마다 조금씩 더 살아난다 싶더니, 어느 날 갑자기 모조리 사라지데요. 아하, 항공방제 지나갔어도 마을 할배와 할매 낮에 논밭에 농약 뿌리느라 개구리 모조리 숨을 거두는군요.


  오늘까지 닷새째 논개구리 밤노래 한 가락조차 안 들려요. 오늘은 퍽 느즈막한 때에 자전거를 타고 여러 이웃마을 돌았는데, 이웃마을에서도 개구리 노랫소리 한 가락도 못 들었습니다.


  도시라면 어쩔 수 없을 테지만, 시골에서 개구리가 여름날에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면, 이러한 시골에서 거두는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가 사람들 몸에 도움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마을 어르신들 농약 치는 횟수 늘 적마다 마을에 제비 숫자 부쩍 줄어듭니다. 우리 집 제비도 이제 다시 안 찾아옵니다. 우리 집 처마에서 지난해에 알을 깬 다섯 마리하고, 어미 두 마리, 요 달포 남짓 한 차례도 못 보았어요. 마을 이웃집 처마에 제비집 만든 다른 제비들도 거의 만나지 못해요.


  개구리만 죽나요. 개구리가 죽어서 사라진 시골에 개구리만 없어지나요. 시골에 개구리 죽어 없어지면, 시골에 누가 남을 테며, 시골에 남는 사람 싹 사라지면, 이 나라에 어떤 사람들 남아 어떤 일을 하려나요. 4346.7.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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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7-29 03:25   좋아요 0 | URL
지난번에 올리신 글 읽을 때도 그랬지만, 마음이 참 울적하네요.

숲노래 2013-07-29 08:39   좋아요 0 | URL
하는 수 없어요.
오늘날 사회에서는...
그래도... 이 모습을 모른 척할 수 없어
자꾸 글로 쓰고야 마네요...
 

아이가 되는 마음

 


  초등학생 마음이나 유치원 마음이 아닌 어린이 마음이 되면 누구나 마음을 보여주는 글을 쓸 수 있어요. 중학생 마음이나 고등학생 마음이 아닌 푸름이 마음이 되면 언제나 마음을 빛내는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학교교육에 얽매이지 않으면 누구나 마음을 담는 그림을 그려요. 마음을 담는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누구나 그림을 다 잘 그린다는 뜻이에요. 나타내고픈 마음을 그리고, 이야기하고픈 마음을 그리니, 그림 솜씨나 재주가 어떻다 하더라도 잘 그린 그림이 돼요.


  학교에서는 ‘서양미술 흐름’에 맞추어 아이들을 길들여요. 아이들이 그림을 즐기도록 이끌지 않는 학교교육이에요.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그림을 그리며 놀도록 풀어놓지 않는 학교교육이에요. 초등학교나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는 아이들 그림에 점수를 매겨요. 아이들이 스스로 마음을 밝히는 그림을 그리도록 돕지 않고, 이런 기법이나 저런 수법으로 흉내내기 하도록 이끌고 말아요.


  꿈을 꾸듯이 즐겁게 쓸 때에 아름다운 글이 돼요. 꿈을 꾸면서 즐겁게 그릴 적에 아름다운 그림이 돼요. 꿈을 함께 나누려는 뜻으로 사진기를 손에 쥐면 아름다운 사진이 돼요.


  다 함께 아이가 되어요.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 아닌 아이가 되어요. 우리 모두 어린이가 되어요. 나이가 마흔이건 예순이건, 사랑스러운 어버이 품을 한껏 누리는 어린이 마음이 되어요. 어린이 마음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요. 어린이 마음 되어 노래를 부르고 어깨동무를 해요. 4346.7.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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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사랑하는 마음

 


  시골에서는 들판에 그늘 드리운다며 나무를 다 베어요. 그런데 시골길 어둡다면서 길가에 전기로 등불을 밝혀 밤에도 들판이 못 쉬게 해요.


  도시에서는 전깃줄 건드린다며 나뭇가지를 뭉텅 자르거나 아예 나무를 베어요. 자동차 댈 자리가 모자란다든지 건물 새로 지을 적에는 나무를 아낌없이 베어요. 그러면서 공원을 만든다며 시골에서 나무를 비싸게 사들이고, 건물 다 지으면 건물 둘레에 또 나무를 비싸게 사서 심어요.


  나무도 사람하고 같아요. 나무도 풀도 꽃도 사람하고 같아요. 사람들 누구나 잠을 자고 몸을 쉬며 기운을 차리듯, 나무도 풀도 꽃도 잠을 자요. 나무도 몸을 쉬어야 하고, 풀과 꽃도 느긋하게 쉬면서 기운을 차려야 해요. 잠을 자는 사람 곁에 전기로 등불 밝히면 잠을 제대로 못 자듯, 나무 곁에 등불 환히 밝히면 나무는 몸살을 앓아요. 자동차 끝없이 달리는 찻길에 아이를 하루 내내 세워 보셔요. 아이는 숨이 막히고 눈이 따가우며 귀가 멍할 테지요. 찻길에 심은 나무들이 자동차 때문에 얼마나 시달리거나 들볶이는가를 헤아리셔요. 아이한테 못할 짓이라면 나무한테도 함부로 할 수 없어요.


  열매를 손쉽게 따자면서 가지를 휘어 놓으면 나무는 어떻게 될까요. 굵다란 열매 맺도록 비료 듬뿍 주고 열매마다 농약을 뿌려 벌레가 못 먹도록 하면 나무는 어떻게 될까요. 능금나무·배나무·포도나무가 열 해를 제대로 못 채우고 죽는다고 해요. 열매 얻으려는 사람들이 나무를 너무 괴롭히고 들볶으니, 열매나무는 고작 열 해 즈음 열매를 맺고는 말라죽는다고 해요. 우리들은 멋모른 채 알 굵고 달달한 열매를 사다 먹지만, 정작 이 열매는 열 해조차 제대로 못 살며 시달리던 나무가 내어준 살점일 수 있어요.


  능금나무도 배나무도 백 해 오백 해 천 해를 살아야지요. 열매를 딸 때에 사다리를 받쳐 천천히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멀리 내다보기도 하고, 하늘 저 끝을 바라보기도 해야지요. 우듬지에 맺는 열매는 멧새 몫으로 두면 돼요. 또는 다람쥐가 먹으라 해도 돼요. 백 해 이백 해 삼백 해를 살아낸 능금나무라면 우람하게 가지를 뻗고 열매 또한 잔뜩 매달 테니, 사람한테뿐 아니라 들짐승과 멧새한테도 좋은 밥을 베풀 수 있어요.


  나무를 사랑한다면, 이들 나무가 사람한테만 선물을 주기를 바라지 말아요.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마시려고 태어난 목숨이 아니에요. 나무는 종이가 되거나 옷장이 되려고 태어난 목숨이 아니에요. 나무는 구경거리가 아니고, 전시품이 아니에요. 나무는 돈으로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고, 함부로 베어서 죽여도 되지 않아요.


  나무 한 그루 있어 흙이 살아나요. 흙이 살아나며 풀이 돋고 꽃이 피어요. 풀과 꽃이 자라면서 들을 이루고, 천천히 숲이 태어나요. 사람도 짐승도 벌레도 숲이 있을 때에 목숨을 이어요. 나무 한 그루에서 비롯하는 숲을 슬기롭게 헤아리면서 보드라운 손길로 나뭇줄기 쓰다듬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6.7.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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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24 09:34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글을 읽으니, 톨게이트 옆에서 콩농사를 짓는 할머니가 불빛에 콩이 잠을 못 잔다고 하루가 멀다하고 가로등을 깨버리시는..김종옥 시인의 <잠에 대한 보고서>가 문득 떠오릅니다.
그렇지요..밤에는 들판도 나무도 다 잠을 자야지요. 어항의 불도 밤에는 꺼야 물고기들도 편히 잠을 자요..
정말 나무든 자연이듯 다 함께 아껴가며 사랑스러운 삶 일구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보는 아침입니다..

숲노래 2013-07-24 10:17   좋아요 0 | URL
사람들 스스로 밤에 조용하고 느긋하게 잘 때에
이웃을 살가이 바라볼 수 있으리라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