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시골들 마음

 


  따스한 남녘땅 시골마을 논은 거의 다 빕니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빈논에 여러 풀싹이 돋습니다. 논둑에는 온갖 풀꽃이 피어납니다. 사람이 씨앗을 심어도 풀줄기가 오르고, 사람이 씨앗을 심지 않아도 풀꽃송이 피어납니다.


  풀잎은 햇살을 먹고 바람을 마십니다. 풀꽃은 사랑을 먹고 꿈을 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실까요. 사람은 어디에서 어떤 삶을 일굴 때에 가장 맑고 환하게 빛날까요.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마음 됩니다. 풀을 바라보며 풀마음 됩니다. 가을을 느낄 적에 가을마음 됩니다. 너른 들판에 한 포기 두 송이 올라오는 빛깔을 느끼며 새로운 마음 됩니다. 두 팔 활짝 벌려 큰숨을 들이켭니다. (4345.11.1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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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 보는 마음

 


  가을이에요. 하늘을 봐요. 시골에서 살든 도시에서 살든 다 함께 하늘을 봐요. 파랗게 눈부신 하늘이 우리한테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파랗디파란 하늘이 우리와 함께 추고 싶은 춤을 가만히 느껴 봐요.


  걷다가 하늘을 봐요. 자동차를 타고 달리다가 신호등에 걸릴 적에 하늘을 봐요. 버스를 타고 가다가 하늘을 봐요. 아침에 집을 나서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봐요.


  뿌연 하늘도 하늘이에요. 티없는 하늘도 하늘이에요. 티벳이나 네팔에 가야만 볼 수 있는 하늘이 아니에요. 몽골이나 칠레에서도 밤하늘은 아름답겠지요. 온통 전깃불빛만 있다 하지만, 두 손으로 전깃불빛을 살며시 가리면서 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봐요.


  가을이니 하늘을 봐요. 그리고, 겨울에 새롭게 하늘을 봐요. 봄과 여름에도 즐겁게 하늘을 봐요. 하늘을 등에 지고, 하늘바람을 쐬면서, 하늘 같은 마음이 되어 오늘 하루를 누려요. (4345.10.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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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꺾는 마음

 


  큰아이는 꽃을 꺾습니다. 꽃을 꺾으면 네 목아지나 팔뚝을 꺾는 일과 같다고 이야기를 해 본 적 있으나, 아직 아이한테는 씨알이 안 먹히지 싶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아버지나 어머니는 밥으로 먹으려고 풀을 뜯습니다. 풀 목아지를 뎅겅뎅겅 꺾어요. 때로는 칼로 석석 베고요. 풀줄기를 꺾는 일이나 꽃줄기를 꺾는 일이나 서로 매한가지로 여길 만합니다. 아이한테 달리 할 말이 없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생각하기를, 풀줄기를 꺾으면 내 숨결을 이으려고 밥으로 삼지만, 꽃줄기를 꺾으면 눈으로 바라보고 몇 차례 만지며 한두 시간 즈음 지나면 시들어서 그만 내팽개치게 돼요. 그예 눈으로 바라보고 지나가도 즐거우며, 마음속에 담으며 오래오래 떠올려도 기쁠 텐데, 꽃줄기를 꺾으면 꽃 한 송이 숨결을 끊는 셈이 돼요.


  언제나 꽃이 가득 피어나는 시골마을에서 함께 살던 네 식구가 부산으로 여러 날 마실을 다녀왔습니다. 부산은 서울 못지않게 커다란 도시요, 길거리에는 나무가 드물고 풀이나 꽃도 드뭅니다. 관청에서 돈을 들여 심은 눈부셔 보이는 꽃이 있지만, 이 꽃은 함부로 꺾을 수 없습니다. 큰아이는 예뻐 보이는 꽃이 잔뜩 보이니 이 꽃들을 꺾으려 하는데, 차마 이 꽃은 꺾으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시골에서는 꽃을 꺾을 때에 안 말렸지만(아니, 못 말렸지만), 도시에서는 말립니다. 그런데, 계단이 가파른 골목동네를 오르내리며 조그마한 골목집에서 조그마한 꽃그릇에 심어 기르는 조그마한 꽃을 보고는, 아이가 스스로 “이 꽃은 안 꺾을래.” 하고 말해요.


  아이가 문득 읊은 말마디를 듣고는 퍼뜩 새 생각이 샘솟습니다. 그래, 시골에서는 어디에서나 흐드러진 꽃을 꺾고 놀다가 흙에 내려놓으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도시에서는 골목꽃 한 송이를 꺾으면 이제 더 꽃이 없어요. 도시에서는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꽃이요, 시골에서는 손으로 만지며 하루 내내 즐기는 꽃이에요. 입에 넣어 냠냠 하고 씹어도 밥이지만, 눈으로 바라보다가 손으로 쓰다듬고 머리에 꽂을 때에도 밥이에요. 몸밥도 밥이요 마음밥도 밥이니까요.


  꽃을 꺾고 싶은 아이더러 나긋나긋 말합니다. 꽃송이 하나만 꺾자. 네 몫 하나랑 동생 몫 하나, 이렇게 두 송이만 꺾자.


  가을이 무르익어 겨울이 찾아들고, 바야흐로 겨울을 지나고 새봄이 찾아들면, 이제 온 들판에 새 봄꽃이 가득하겠지요. 그때가 되면 큰아이도 나도 ‘가을날 주고받던 얘기’를 몽땅 잊고는 들꽃을 꺾으며 풀숲에서 뒹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저러나 오늘도 아이는 꽃 한 송이를 꺾어서 놉니다. 밥상에도 올려놓고 머리에도 꽂습니다. 이러다가 꽃송이는 잊고 다른 데에서 놀고 흙을 뒤집으며 놉니다. 마당이며 텃밭이며 논둑이며 들판이며 마을이며 온통 꽃누리입니다. 꽃이 나요, 내가 꽃이고, 아이가 꽃이면서, 꽃이 아이입니다. 그래, 꽃꺾기를 놓고 무어라 할 까닭이 없겠구나. 내 모습이 꽃송이로 나타나고, 꽃송이가 나한테 스미잖아. (4345.10.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자전거 이야기하는 글에 이 사진을 썼지만, 꽃 든 아이 모습이 좋아 다시금 이 사진을 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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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릎에 누이는 마음

 


  큰아이를 재우려고 두 시간 즈음 품에 안고 노래를 부른 적 있습니다만, 몇 차례 떠올리지 못합니다. 큰아이를 처음으로 만나 함께 살아가던 그무렵, 나로서는 아이들을 재울 때에 얼마나 따사롭고 느긋하게 품에 안아야 하는지, 또 자장노래를 부른다면 얼마나 나긋나긋 찬찬히 불러야 할는지 제대로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작은아이가 우리한테 새삼스레 찾아와 네 식구 살림이 되고부터, 이 아이들을 품에 안는 겨를과 이 아이들하고 나누는 노래결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아이들은 까무룩 잠들 수 있으나, 오래도록 잠이 못 들 수 있습니다. 개구지게 놀고 난 아이는 내 무릎에 누이기 무섭게 잠이 들기도 하지만, 개구지게 놀고서도 칭얼거리기만 할 뿐 좀처럼 잠이 못 들기도 합니다. 참 잘 놀았기에 새근새근 잠들고, 너무 많이 논 나머지 몸이 힘들기도 합니다.


  잘 놀고서 까무룩 잠든 아이는 이듬날 개운하게 일어납니다. 잘 놀았으나 몸이 힘들도록 뛰논 아이는 이듬날 좀 느즈막하게 일어납니다. 아무튼, 새 아침을 맞이해 새롭게 놀고픈 아이들을 마주하며 새삼스레 하루를 엽니다. 오늘도 이 아이들은 얼마나 개구지게 온 집안과 마당을 휘저을까 헤아립니다. 큰아이는 낮잠을 자꾸 건너뛰려 하지만, 작은아이는 아직 낮잠을 잘 자는데, 작은아이를 재우며 자장노래를 부를 적에 큰아이도 함께 낮잠을 누리면 얼마나 반가우랴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 작은아이를 낮과 밤에 재우며 퍽 오래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자장노래를 부르다가 목이 아프고 졸음이 쏟아져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곯아떨어지는 날도 있는데, 오늘은 작은아이가 아버지 무릎과 품을 갈마들면서 여러 시간 밤잠을 못 이룹니다. 낮잠을 재울 적에는 삼십 분쯤 노래를 부르며 새근새근 잠들도록 했는데, 밤잠을 재울 적에는 한 시간 남짓 노래를 부르며 재웠는데에도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달라붙습니다.


  아이들을 무릎에 누이거나 품에 안으면 따스하고 보드랍습니다. 아이들 몸에서 이런 따순 숨결이 흐르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아이들 몸이 이토록 보드랍구나 하고 느낍니다. 내 무릎은 얼마나 보드라울까요. 내 가슴은 얼마나 따스할까요.


  초승달이 아주 이울며 사라집니다. 깊은 밤은 아주 깜깜합니다. 아주 깜깜한 밤이 되니 별빛은 한결 밝습니다. 바야흐로 두 아이 깊이 잠들고, 아버지도 아이들 곁에서 드러눕고 싶습니다. (4345.10.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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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싶은 마음

 


  하늘을 보고 싶습니다. 나무를 보고 싶습니다. 숲을 보고 싶습니다. 냇물을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보고 싶은 아름다움이 깃든 곳을 보금자리로 삼아 살아갑니다.


  이웃을 보고 싶습니다. 동무를 보고 싶습니다. 반가운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살가운 터전을 보고 싶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내가 보고 싶은 아름다움 머금은 사람들 살아가는 곳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내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싶을까요. 내 옆지기는 무엇을 보고 싶을까요. 참말 나는 무엇을 보고 싶을까요.


  낮에는 구름과 파랗디파란 하늘을 보고 싶습니다. 낮에는 해와 새와 들과 메를 보고 싶습니다. 밤에는 별과 달을 보고 싶습니다. 밤에는 개똥벌레를 보고 싶고, 들판에서 웅숭깊게 노래하는 풀벌레를 보고 싶습니다.


  삶을 이야기하는 책을 보고 싶습니다. 삶을 노래하는 사람을 보고 싶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손길을 보고 싶습니다. 지식을 이야기하는 책은 따분합니다. 낯간지러운 노래는 그예 낯간지럽습니다. 돈만 바라보는 손길은 고약합니다.


  색색 고르게 울리는 아이들 숨소리를 듣는 깊은 새벽녘, 나는 이 고운 소리를 한귀로 예쁘게 들으면서 글 한 줄 적어 봅니다. 아이들 숨소리가 참 즐겁고 반갑구나 싶어, 이러한 숨소리를 내 글 한 줄에 담고 싶습니다. 어쩌면, 내가 보고 싶은 모습이란, 나 스스로 가장 아름답게 꿈꾸는 맑은 웃음빛이 아니랴 싶어요. (4345.10.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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