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나누는 마음

 


  부산으로 먼길 마실을 다녀오면서 고흥으로 돌아갈 시외버스를 기다리는 순천역에서, 큰아이가 “나 과자 먹고 싶어.” 하고 말합니다. 그래, 이 늦은저녁까지 애 많이 썼지, 버스에서 김밥 먹기로 하고 과자 한 봉지 주마.


  큰아이하고 과자 한 봉지 나누어 먹습니다. 이윽고 큰아이 혼자 다 먹으라 하고 나는 손을 뗍니다. 큰아이는 혼자서 과자를 먹다가 손바닥에 두 알 남습니다. 큰아이는 문득 “저기 언니들 줘도 돼?” 하고 묻습니다. 응? 너는 안 먹고? 그래, 주고 싶으면 주면 되지. 큰아이는 시외버스 기다리는 언니 둘한테 웃으며 다가가서는 과자 한 알씩 나누어 줍니다.


  곱네. 고운 마음으로 씩씩하게 잘 살아가는구나. 네 고운 마음은 네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왔을 테고, 네 어머니와 아버지 마음은, 네 어머니와 아버지를 낳은 어머니랑 아버지한테서 왔을 테며, 네 어머니와 아버지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 마음은, 또 네 어머니와 아버지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 마음에서 왔을 테지.


  고운 마음은 오랜 옛날부터 차근차근 이어지고, 착한 마음은 먼 옛날부터 솔솔 이어지며, 즐거운 마음은 아스라한 옛날부터 하나하나 이어지겠지. 그리고, 이 마음은 너와 네 아이와 네 아이가 낳을 아이한테 새삼스레 곱게 이어지겠지. 4346.1.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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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쓰는 마음

 


  ‘동시’라는 낱말은 누가 먼저 썼을까 궁금하지 않지만, 또 이 낱말이 얼마나 알맞거나 좋거나 얄궂거나 나쁜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하고 먼저 나누고 싶은 마음에 동시를 씁니다. 꼭 동시라는 이름으로 쓰는 글은 아니고, 두 아이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누리는 빛과 사랑을 내 나름대로 웃음으로 삭혀서 찬찬히 길어올리는 이야기입니다.


  큰아이를 무릎에 앉히면서 동시를 씁니다. 다만, 종이에 연필 놀려 글을 적바림할 틈은 없습니다. 큰아이는 쉴 틈을 안 주면서 종알종알 노래를 하고, 나는 아이 노래를 받아 대꾸해야 합니다.


  작은아이를 품에 안으면서 동시를 씁니다. 다만, 빈책을 꺼내 연필 움직여 글을 남길 겨를은 없습니다. 졸린 작은아이는 이리저리 칭얼거리고, 칭얼거리는 아이를 살살 토닥이면서 자장노래 부르며 저녁을 마감합니다.


  두 아이 보살피고 집살림 건사하는 틈이나 겨를을 내어 글 한 줄 적는 일이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만큼 틈을 내고 겨를을 내는구나 싶어요. 두 아이를 안 쳐다보면서 살아간다면, 내가 이 아이들과 나누는 사랑을 이야기꽃으로 피울 수 있을까요. 두 아이와 복닥거리며 바빠맞은 하루가 없으면, 이 아이들이 나한테 속삭이는 숱한 노래꽃과 삶빛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아이들 밥을 먹이고, 아이들 밑을 씻기고, 아이들 옷을 빨고, 아이들 새옷을 입히고, 아이들 놀이를 함께 하고, 아이들 잠을 재우면서 하루가 흐릅니다. 동시란, 아이들과 예쁘게 살아가는 어버이 마음을 살포시 담는 꿈과 같은 말그릇이요, 아이들은 이 말그릇을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으며 저희 말을 살찌운다고 느낍니다. 그러니, 나는 날마다 조금씩 말미를 내어 동시를 씁니다. 내 말을 살리고 싶고, 아이들 말을 살찌우고 싶어요. 434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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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기대는 마음

 


  힘든 누군가 등을 기댑니다. 힘이 없는 누군가 팔이나 어깨를 잡고 기댑니다. 힘이 들고 힘이 빠지니 그예 기댑니다. 기댈 만한 등이나 팔이나 어깨가 되어 주는 이가 고맙습니다. 그런데, 기댄다고 할 때에는 힘이 없거나 적거나 모자라거나 빠진 쪽만 기대지는 않는구나 싶어요. 힘이 있거나 많거나 넉넉하거나 넘치는 쪽도 나란히 기대는구나 싶어요. 둘이 서로 만나기에 서로 기대겠지요. 한쪽은 받으면서 기대고, 한쪽은 주면서 기대요. 한쪽은 받으면서 새 기운을 돋우고, 한쪽은 주면서 새 기운을 차려요.


  물이 흐릅니다. 판판한 곳에서는 물이 고이지만, 조금 기울어진 데에서는 물이 흐릅니다. 물은 땅밑에서 천천히 솟아서 높은 곳에서 터지고, 높은 곳부터 낮은 자리까지 다시금 천천히 흐릅니다.
  물은 흐르기에 맑습니다. 물은 고이기에 썩습니다. 사람은 서로 기대어 기운을 나누기에 맑습니다. 사람은 서로 기대지 않거나 기운을 주고받지 못할 적에는 스스로 어두워집니다.


  나는 누군가한테 기댈 수 있어 즐겁습니다. 누군가 나한테 좋은 ‘비빌 언덕’ 되어 주니, 이녁한테도 새 기운 샘솟도록 북돋우는 구실을 하리라 느낍니다. 거꾸로, 나는 글 한 꼭지 쓰면서 누군가한테 ‘비빌 언덕’이 됩니다. 집에서 살림 꾸리고 밥을 차리면서, 아이들한테 ‘비빌 언덕’이 되고, 나는 내 지친 마음을 아이들 웃음소리와 노랫소리 들으며 달래니까, 아이들은 나한테 새삼스러운 ‘비빌 언덕’입니다. 4346.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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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차리는 마음

 


  내가 먹을 밥을 차리려고 밥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옆지기와 아이들이 함께 먹을 밥을 차리고 보면, 바로 이 밥이란 내가 먹을 밥입니다. 옆지기와 아이들이 맛나게 먹기를 바라며 밥을 차리고 보면, 바로 이 밥이란 내가 맛나게 먹을 밥입니다.


  내가 스스로 맛나게 먹자고 생각하며 밥을 차리면, 이 밥은 새삼스레 옆지기와 아이들이 맛나게 먹을 밥입니다. 내 온 사랑과 꿈을 실어 스스로 즐거이 누릴 밥을 지으면, 바로 이 밥은 온식구 흐뭇하게 웃으며 누릴 밥이 됩니다.


  함께 밥을 먹는 삶이란 참 즐겁구나 하고 느낍니다. 한솥밥 먹는 살붙이란 참 어여쁜 사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서로 밥그릇을 나누기에 예부터 싸움이나 미움이란 낱말조차 모르면서, 다 함께 두레랑 품앗이랑 울력을 할 수 있었구나 싶습니다. 오늘날 도시에서는 서로 밥그릇을 안 나누거나 못 나누는 나머지, 자꾸 싸움이나 미움 같은 낱말이 쓰이고, 때로는 따돌림이나 괴롭힘이나 들볶음 같은 낱말마저 불거지는구나 싶습니다.


  사랑하려 할 때에 사랑이 깃들며 먹는 밥입니다. 아끼려 할 때에 아끼는 손길이 살포시 담기며 나누는 밥입니다. 우리 밥 같이 먹어요. 우리 땀 같이 흘려요. 우리 이 숲길 거닐며 즐겁게 웃도 놀아요. 4345.12.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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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12-24 14:14   좋아요 0 | URL
참 좋네요...
추운 겨울날, 마음이 따스해지는 글과 사진 감사드려요. ^^

편안한 연말되셔요.

숲노래 2012-12-24 16:25   좋아요 0 | URL
하루하루 즐거이 누리셔요~
모든 일은 잘 풀리리라 믿어요

북극곰 2012-12-24 15:43   좋아요 0 | URL
아아.. 밥 먹고 싶어요!

편안한 연말되세요~ ^^

숲노래 2012-12-24 16:26   좋아요 0 | URL
밥 드셔요~ ^^
모두 사랑스러운 하루 누리소서~
 

씨앗 얻는 마음

 


  내가 씨앗을 맨 처음 본 때가 언제인지 또렷하게 떠오르지는 않습니다만, 국민학교 1학년 적에 학교 관찰일기 숙제를 내려고 콩을 심어 돌본 일은 환하게 떠올라요. 관찰일기 숙제를 해야 하기에 어머니한테 “콩알 주셔요.” 하고 말씀드리니, 밥으로 지어 먹는 콩을 석 알쯤 주셨어요. 나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속 비치는 동그란 그릇에 솜 깔고 물 적셔 콩알을 놓고 볕 잘 드는 자리에 두었어요. 날마다 신나게 오래오래 들여다보는데, 자고 일어난 석 밤째던가, 콩알 한쪽에 살짝 비져나온 꼬리가 보였어요. 뿌리라 할는지 싹이라 할는지 조금 돋았어요. 손가락으로 살살 만지는데 얼마나 보드랍고 앙증맞든지요. 이렇게 싹이 튼 콩을 꽃그릇에 흙 담고 하나하나 손가락 복복 눌러 심었고, 언제 흙 위로 삐죽 돋을까 하고 기다렸어요. 그리고 이 콩이 자라는 모습을 바지런히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써서 관찰일기를 다 꾸렸지요. 관찰일기는 담임선생이 거두어서 돌려주지 않아 이제 나한테는 없는데, 내가 어머니한테서 얻어 심은 콩 몇 알로 밥그릇 수북하게 담을 만한 열매(콩알)가 맺히고, 이 열매로 저녁에 소담스레 밥을 차려서 먹으니 얼마나 맛났는지 몰라요.


  그 뒤, 어머니는 동네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자, 여기 나팔꽃씨.” 하고는 몇 알 내 손바닥에 올려놓았어요. 작은 손바닥에 작은 꽃씨. 누르면 톡 터질 듯한 누런 알맹이 안쪽에는 새까만 꽃씨가 여럿 깃들었는데, 이 꽃씨 두서너 알 심고 나머지는 책상맡에 두고는 늘 바라보며 좋아했어요. 예쁘고 예쁘니까요.


  가을이 되어 나팔꽃 모두 지고 씨알을 맺으면, 씨주머니 터뜨리지 않게 곱게 건사해서 빈 필름통에 담아요. 그러고는 학교에 가져가서 동무들한테 보여주지요. 그러면 동무들은 저마다 저희 집이나 동네에서 건사한 ‘다른 꽃씨’를 이듬날 가지고 와서 보여줍니다. “나도 나팔꽃씨 있다! 너네는 이런 꽃시 없지?” 하고 으쓱대던 동무들이 많았어요. 그러면 나는 어머니한테 달려가서 ‘다른 꽃씨’도 찾아 달라고 조릅니다. 어머니는 이런 꽃씨 저런 꽃씨를 찾아서 줍니다. 해바라기씨를 받고, 민들레씨는 살살 떼어서 건사해 봅니다. 이동안, 씨 한 알이란 참 놀랍다고 느낍니다. 이 작은 씨앗에서 얼마나 고운 꽃 태어나 한 해 내내 즐거운 웃음꽃 피워내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곡식 씨앗은 따사로운 밥이 되고, 꽃 씨앗은 해맑은 마음이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씨앗으로 왜 장사를 하려 들까요. 왜 씨앗을 자꾸 이리 고치고 저리 바꾸면서 ‘개량·변형·조작’을 하려 드나요. 풀씨를 바꾸듯 사람씨도 바꾸려는 뜻은 아닌가요. 꽃씨를 고치듯 사람씨까지 고치려는 뜻은 아닌가요. 나무씨를 건드리지 않기를 빌어요. 살구씨는 살구씨대로 좋아요. 잣씨는 잣씨대로 좋아요. 볍씨는 볍씨대로 좋고, 이 좋은 기운 살포시 담아 내 사랑씨를 정갈히 다스릴 때에 아름답구나 싶어요.


  믿음씨를 서로 마음밭에 심어 고운 마음씨 될 때에 이 지구별에 밝은 햇살 드리우겠지요. 글을 쓰는 사람은 글씨를 심습니다. 글씨가 담겨 책씨가 됩니다. 책씨에는 생각씨가 깃들고, 생각씨가 모여 슬기씨로 이어집니다. 나는 아이들한테 꿈씨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시골마을에서 별바라기를 하며 별씨와 달씨를 아이들이랑 나누고 싶습니다. 흙을 보듬어 씨앗 하나 건사하니, 이웃이랑 즐거움을 나눕니다. 4345.12.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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