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꽃에 앉은 나비 마음

 


  비바람이 드세게 몰아치는데 조그마한 부전나비 두 마리 부추꽃에 앉는다. 앉아서 쉰 지 오래되었을까. 비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부추 꽃대에 앉은 부전나비 두 마리는 꼭 부추꽃잎이랑 하나된 듯하다. 이렇게 꽃잎이랑 살가이 붙었으니 바람이 몰아쳐도 이리 흔들리거나 저리 살랑이더라도 안 떨어지겠지.


  참으로 작아 눈여겨보아야 알아볼 만한 부전나비인데, 그러고 보면 부추꽃잎 하얀 빛깔도 참으로 작기에 눈여겨보아야 알아볼 만하다. 작은 꽃잎에 작은 나비이다. 서로서로 기대며 서로서로 동무가 된다. 한참 지그시 바라본다. 내 눈썰미는 언제나 내 모습이되, 내 마음이 아이들한테 살가이 닿을 때에 비로소 서로 말문을 열며 생각을 나눌 수 있다. 옆지기하고 마주할 적에도 이와 같다. 내 눈결을 늘 내 모습으로 아끼면서, 내 마음이 옆지기한테 사랑스레 닿도록 예쁘게 살아갈 나날이라고 느낀다.


  비바람이 그예 드세게 몰아치기에 우산을 접고 집으로 들어간다. 부전나비 두 마리는 비바람 몰아치는 바깥에서 부추꽃잎이랑 잘 쉴 수 있을까. 비바람을 씩씩하게 맞아들이고서 이듬날 찾아올 맑은 햇살을 실컷 누릴 수 있을까. (4345.8.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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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이 책 읽는 마음

 


  집식구 저녁밥을 차려서 함께 먹고 또 먹이고 나서 설거지를 합니다. 이 다음으로 아이들을 씻겨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잠자리에 들기 앞서 마지막 빨래를 합니다. 아침과 낮에 한 빨래가 얼마나 말랐는가 살펴 하나하나 갭니다. 후유, 한숨을 돌리며 기지개를 켤 즈음 두 눈은 천천히 감깁니다. 눈꺼풀이 이리 무거웠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하는데, 아이들은 아직 잠들 낌새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이러할 때에 옆지기가 그림책을 펼쳐 두 아이한테 찬찬히 읽어 줍니다. 어쩜 이리 예쁠까. 아이들도 옆지기도 참 예쁘구나 하고 느낍니다. 내가 한 번 더 기운을 내어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 그림책까지 읽히고서 드러누우면 더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서로서로 한결 예쁜 하루를 누리고, 저마다 고운 이야기를 나누면 활짝 웃으며 빛나는 저녁이 되겠구나 싶습니다. 이 땅 아버지들은 즐겁게 할 일이 참 많아요. (4345.8.1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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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추꽃 터지는 마음

 


  몽우리를 맺은 부추풀은 천천히 꽃봉오리로 터뜨립니다. 날마다 아주 천천히 하나씩 꽃봉오리를 터뜨리면서 조그맣고 하얀 꽃잎을 보여줍니다. 따사로운 여름 햇살은 부추풀 푸른 잎사귀로 내려앉고, 따스한 여름 볕살은 부추꽃 하얀 잎새로 스며듭니다.


  작은 꽃봉오리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차츰차츰 늘어날 테지요. 꽃을 보려고 심는 꽃부추도 있대서 꽃부추는 꽃잎이 아주 큽니다. 가느다란 꽃대에서 가없이 하얀 빛으로 널다랗게 피어나는 꽃부추 흰꽃 봉오리는 더할 나위 없이 맑습니다.


  부추풀에서 이런 꽃이 피는 줄 누가 알았을까요. 부추풀에서 피어나는 꽃송이를 기쁘게 맞이하면서 예쁘게 쓰다듬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온누리 모든 먹는 풀은 사람들이 누리는 푸성귀이기 앞서 들풀입니다. 온누리 모든 들풀은 뿌리를 내리고 새잎을 틔우고 줄기를 올려서 꽃을 피웁니다. 꽃이 지면 열매를 맺고 씨앗을 내어 이듬해 새봄에 새로 피어날 밑바탕을 흙에 내려놓습니다.


  부추꽃은 하얗게 터집니다. 내 마음 사랑꽃도 부추꽃과 함께 즐겁게 봉오리를 터뜨립니다. 부추꽃 둘레 돌울타리 언저리에는 호박꽃이 노랗게 터집니다. 내 마음 믿음꽃도 호박꽃과 함께 기쁘게 봉오리를 터뜨립니다. 내 마음에서 샘솟는 사랑과 믿음이 꽃송이 말간 빛깔로 드러납니다. 꽃송이 말간 빛깔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밭에서 터지기를 기다리는 숱한 사랑과 믿음 씨앗을 떠올립니다. (4345.8.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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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만 손과 마음

 


  개구지게 노는 아이들은 손이고 발이고 낯이고 몸이고 흙빛을 닮든 무엇을 닮든 까매집니다. 먼지가 묻고 때가 타며 갖가지 것을 손이나 발이나 낯이나 몸에 묻힙니다. 아이들은 이것저것 스스로 만지고 굴리고 넘어지고 쓰러지고 자빠지고 하면서 큰다지요. 어디 좀 지저분해지면 씻기면 됩니다. 다치거나 찢어지거나 할 것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참말 홀가분하게 놀거나 뒹굴거나 달리다가 시원한 물을 듬뿍 뿌리면서 씻도록 하면 돼요.

  나도 어린 날 온통 흙투성이가 된 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고, 땀을 훔친 흙손을 옷섶에 슥 문지르며 닦았어요. 땀을 훔친 흙손에 침을 묻혀 무언가를 하고, 이런 손으로 밥을 먹고, 이런 손으로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이런 손인 줄 잊은 채 스르르 잠들기도 했어요.


  스스로 만지니 스스로 깨닫습니다. 스스로 하니 스스로 압니다. 스스로 겪으니 스스로 살아갑니다.


  아이도 어른도 스스로 삶을 누리면서 앎이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스스로 삶을 빚으면서 꿈이 어떠한가를 그립니다. 아이도 어른도 스스로 삶을 빛내면서 사랑이 얼마나 맑거나 예쁜가를 느낍니다. (4345.8.1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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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하는 마음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마실을 합니다. 혼자 자전거를 달리면 무척 홀가분합니다. 아이 하나를 자전거수레에 태우니 꽤 힘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둘이 되어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니 더욱 힘이 듭니다. 그러나 나는 이러거나 저러거나 자전거를 잘 몹니다. 혼자 달릴 때하고 견주면 무척 느리고 더딘 자전거이지만, 씩씩하게 잘 달립니다.


  수레에 탄 아이들은 끝없이 조잘거립니다. 졸릴 적에는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다가 한쪽으로 픽 쓰러집니다. 서로서로 머리를 기대어 잠듭니다. 마실을 나갈 때에는 으레 종알종알 떠들고, 마실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는 으레 조용조용 잠듭니다.


  아이들이 잠든 모습을 뒷거울로 바라봅니다. 자전거 빠르기를 늦춥니다. 아니, 오늘은 마실을 나갈 적부터 빠르기를 늦추었습니다. 천천히 달렸습니다. 천천히 달린대서 땀이 안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빨리 달릴 때를 생각하면 땀이 하나도 안 난다 할 만합니다.


  아이들이 잠든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떤 마음이 일어나, 목청을 가다듬습니다. 천천히 자전거 발판을 밟고, 천천히 노래를 부릅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엊그제 자전거마실을 할 적에 첫째 아이가 〈미래소년 코난〉 노래를 불러 달라 해서 부르는데, 숨이 가쁘더군요. 여느 때처럼 자전거 발판을 밟으면 노래를 부르기 힘들어요. 발판을 조금 한갓지게 느긋하게 밟으면 노래를 부를 만하리라 생각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자동차는 지나가지 않습니다. 들바람이 붑니다. 멧자락마다 구름이 깔립니다. 나는 들바람을 쐬고 들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과 잠자리에 누워 부르던 자장노래를 자전거를 달리면서 똑같이 부릅니다. 바람에 따라 들풀이 눕고 논마다 볏포기가 눕습니다. 내 목소리는 들풀과 볏포기 사이로 흐릅니다. 아이들은 아버지 노랫소리를 들으며 서로 고개를 기대어 새근새근 잡니다. 노래 여섯 가락쯤 부를 무렵 천천히 집에 닿습니다.


  이제 아이들을 방으로 옮기는 일이 남았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둘째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쳇, 수레에서는 잘만 자더니 집에 와서 깨네. 그래, 더 놀고 다시 자라. (4345.7.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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