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깨는 마음


 낮잠 없이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놀고 나서, 밤새 손을 잡자며 아버지를 깨우고 어머니를 깨우며 뒤척이다가는 이듬날 새벽같이 일어나는 아이를 어떻게 돌보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도무지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고단한 아침나절, 아이가 함께 안 놀아 준다며 훌쩍훌쩍대는 낑낑 소리를 듣다가 게슴츠레하며 무거운 눈을 억지로 뜨고 일어서다. 능금 한 알을 씻어 칼로 껍질을 깎는데 자꾸 칼이 빗나간다. 무딘 칼이라 손을 안 베었지 잘 드는 칼이었다면 손을 몇 번 베었겠다. 아이 아빠는 능금을 껍질째 먹는데 아이한테 먹이자면 아직 껍질을 벗겨야 하니, 칼질 못하는 이 사람이 능금 깎기에 조금은 익숙해질 수 있을까.

 아빠가 부시시 일어나니 아이는 홀짝임을 그친다. 금세 방실방실 웃는다. 그렇지만 아이 아빠는 시무룩한 얼굴로 아이한테 이래라 저래라 한다. 아이는 그래도 좋댄다. 아빠 등에 기대어 뭔가를 아빠 목 둘레에 얹어 놓더니 엄마 웃옷을 입겠다면서 칭얼대고, 입혀 놓았더니 조금 뒤에 단추를 끌러 달라 하고, 얼마 뒤에 다시 입겠다고 비비댄다. 아이한테는 놀이가 일이라 하는데, 아이가 십 분쯤만 놀아도 온 집안은 어질러진다. 십 분 늘어놓은 갖가지 물건을 이십 분 동안 치워야 한다.

 갓난쟁이일 때에는 갓난쟁이일 때대로 아이하고 복닥이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조금 크며 첫 돌을 지나고 두 돌을 지나니 이때에는 이때대로 부대끼며 잠을 들기 힘들다. 한 해가 저물며 네 살이 될 아이는 새해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제 아버지랑 어머니 잠을 앗아 먹으려나. 어쩔 수 없이 아이는 제 어버이 살과 마음과 몸을 나누어 먹으며 무럭무럭 자란다. 나 또한 내 어버이 살과 마음과 몸을 신나게 얻어 먹으며 자라 왔고, 아직까지 내 어버이한테서 살과 마음과 몸을 얻어 먹는다고 느낀다. 아마 우리 딸아이 또한 열 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되며 서른 살이 된달지라도, 오늘 하루와 매한가지로 내 살과 마음과 몸을 살뜰히 앗아 먹을 테지.

 그러면 아이한테 더욱 기쁘게 내 살을 나누어 주어야 하려나. 아이한테 내 마음과 몸을 더 거리끼지 말며 신나게 도려내어 주어야 하려나. 그야말로 말괄돼지답게 춤추고 노래하며 놀다가 잠든 얼굴을 보면 ‘이 돼지 녀석!’ 하면서도 살며시 볼을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어루만질밖에 없다. 잠을 깨야지. 잠이 오면 눈을 비비고, 비척비척 비틀비틀 해롱해롱이라면 한 번 더 기운을 내야지. 아빠가 홀로 책상맡에 앉아 글을 쓰니까 아이가 고맙게 혼자 노래하며 놀다가 책꽂이에서 그림책 몇 꺼내어 아빠 곁으로 와서 얌전히 앉아 책을 펼쳐 읽어 준다. (4343.1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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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빛 보는 마음


 도시에서는 별빛을 볼 수 없다. 도시라는 곳은 처음부터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별빛을 볼 수 없도록 가로막았는지 모른다. 도시에서는 오로지 한 가지만 보도록 꽁꽁 틀어막았는지 모른다.

 도시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도시에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니까 사람을 보라는 도시일까? 글쎄, 도시에 가 보면 사람은 몹시 많다. 큰 도시로 갈수록 사람이 훨씬 많으며, 이 나라에서는 서울에 사람이 가장 많고 부산이 둘째로 많다. 그렇지만 이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나와 같은 사람’으로 바라보는지는 잘 모르겠다.

 도시에는 자동차가 참 많다. 자동차들도 작은 차는 드물고 커다란 차가 많다. 어쩌면, 도시라는 곳은 자동차를 보라는 곳일까. 그러나 다들 ‘내 차’를 자랑하거나 뽐낼 뿐, 다른 사람 차는 바라보지 않는다. 다른 차들은 처음부터 없는 양 마구 휘젓거나 내달리기 일쑤이다.

 도시에는 높은 건물이 매우 많다. 어디를 가든 건물이다. 놀고 있는 땅이 없다. 놀고 있는 땅이 있는 데는 도시라 하더라도 어딘지 시골스럽다 할 만하다. 그러나저러나, 높은 건물 가득한 도시에서는 새로운 높은 건물이 끊임없이 들어선다. 오늘까지 무척 높거나 으리으리하던 건물도 이듬날 새로 들어서는 높은 건물에 대면 보잘것없다.

 도시에는 예쁘거나 멋나다는 차림으로 다니는 사람이 많다. 값비싼 옷에 신에 노리개에 목걸이에 …… 손전화까지. 그러나 이런 옷차림이나 매무새 또한 서로서로 보아주는 옷차림이나 매무새라 하기 어렵다. 서로서로 내 모습을 뽐낼 뿐이다.

 도시에는 극장도 많고 책방도 많으며 도서관도 많다. 가게도 많고 술집도 많으며 밥집 또한 많다. 도시에는 우체국이 번쩍번쩍하고 동사무소 건물만 해도 몹시 크다. 새로 짓는 아파트는 어마어마한 마을을 이룬다. 하기는, 아파트라는 집은 ‘마을’이 될 수 없으나, 모든 아파트는 ‘무슨 마을’이라는 이름이 달라붙는다.

 볼일을 보러 도시로 나갈 때면 으레 숨이 막힌다. 도시에서 살아가던 때에는 우리 동네를 벗어나서 시내라든지 중심거리로 가까워질수록 숨이 갑갑했다. 볼일을 마치고 시골집으로 돌아올 때면 차츰 마음이 풀리고 숨이 고르다. 문화라든지 여가라든지 시골에서 무엇을 즐기느냐고들 하지만, 시골에서는 하루하루가 늘 문화이고 여가이다. 사람들은 도시에서 살아가며 주말을 맞이해 바다라든지 산이라든지 숲이라든지 공원이라든지 찾아가는데, 시골사람한테는 시골 보금자리가 바다이거나 산이거나 숲이거나 들판이다. 굳이 주말을 맞이해 ‘자연을 찾아 몸과 마음을 쉴’ 까닭이 없다. 시골 들판이나 멧자락에서 일할 때에는 도시사람이 일할 때처럼 땀을 흠씬 쏟았어도 일이면서 놀이가 된다. 일이면서 쉼인 셈이다. 장날에 맞추어 가끔 읍내에 나가 바깥구경을 한다 할 만한데, 읍내에 나가 장마당을 휘 돌아보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모처럼 ‘택시 같은 시골버스’ 타는 맛을 즐긴다고 할까.

 저녁부터 이듬날 새벽까지 밤하늘 별을 본다. 오늘은 밤안개가 짙게 깔려 별을 올려다보지 못한다. 그러나 밤안개를 느낄 수 있어 좋다. 별이 보이면 별을 보고, 별을 가리는 구름이 가득하면 구름을 본다. 밤안개가 짙으면 밤안개를 본다. 다만, 미리내만큼은 찾아보지 못한다. 제아무리 한국땅 시골이 정갈하거나 말끔하다 하더라도 온나라가 공장과 아파트와 고속도로와 고속철도와 재개발과 관광단지 들로 시끌벅적한데, 미리내를 예쁘게 즐길 만한 곳이 얼마나 되겠는가.

 낮나절 무지개를 즐길 수 있을 때에 밤나절 미리내를 즐긴다. 자동차가 아닌 두 다리나 자전거를 사랑하면서 내 삶터와 내 보금자리를 고이 건사할 수 있을 때에 무지개와 미리내를 맞아들인다. 차소리 아닌 새소리를 들으며 맹꽁이와 개구리 우는 소리를 받아들일 때에 무지개와 미리내를 받아들인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선다면 미리내와 무지개는커녕 개구리와 잠자리까지 씨가 말라 버린다. 국민소득은 5천 달러로도 넉넉하며 1천 달러라 할지라도 모자라지 않다. 국민소득이 100만 달러가 된달지라도 미리내와 무지개는 사들이지 못한다.

 아는가? 100억 원을 벌어들이는 사람이 100만 권에 이르는 책을 읽는가? 10억 원을 벌어들인 사람이 10만 권에 이르는 책을 읽었는가? 1억 원을 벌고자 애쓰는 동안 1만 권에 이르는 책을 읽을 겨를을 낼 수 있는가? 고작 1천만 원 번다며 아둥바둥하는 동안 기껏 1천 권에 이르는 책조차 손에 쥐지 못한다. (4343.1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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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두르는 마음


 아이가 낮잠을 잔다. 만화책을 보는 아빠 팔을 베고 한참 놀다가, 아빠 팔을 베고 엄마 뜨개질 바늘을 셋 쥐고 놀다가 어느새 스르로 잠이 든다. 낮잠을 안 자면 자전거 수레에 태워 살짝 마을 한 바퀴 돌까 했는데, 용케 고이 잠들어 준다. 한동안 그대로 있다가 팔을 빼어 아이 자리에 눕힌다. 아이가 살짝 응응거린다. 조금 기다린 뒤 기저귀를 채우려 하는데 퍼뜩 깬다. 울면서 엄마를 찾는다. 조용히 기다리니 엄마 품에서 다시 새근새근 잠이 든다. 아이가 잠이 든 이때에 무언가 좀 해 보려 하는데 잘 안 된다. 아이가 잠이 들었으니 이 틈을 살리자고 하는 생각에 매여 외려 아무것도 못한다. 그저 아이도 엄마도 모두 잠든 깜깜한 새벽나절에 일찌감치 일어나 글을 쓴다고 바스락거리며 일감을 붙잡아야 하는가 보다.

 히유 하고 한숨을 내쉰다. 도시에서 시골로 들어온 까닭은 더 느긋하며 즐겁게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즐거이 장만한 책들을 더 느긋하게 나누면서, 이 고마운 책들 이야기를 한결 신나게 쓰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이가 잠들었다 하더라도 이 느긋한 때에 더 알차게 책이야기를 쓸 수는 없겠지. 이런 때에는 아빠도 아이 곁에 누워서 모자란 잠을 자든지, 마당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책을 읽는다든지,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읍내에 가서 능금 몇 알이나 포도 몇 송이를 사 올 때가 나을까 싶다.

 아이랑 아이 엄마랑 곱게 잠든 낮나절, 겨울을 코앞에 둔 산골마을 해는 일찍 떨어진다. 이제 빨래를 집으로 들여야겠고, 저녁에 무엇을 끓여 먹을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야겠다. 찬바람을 쐬며 머리를 식히자. (4343.1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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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하는 마음


 이 옷을 누가 입는가 헤아리며 손빨래를 한다. 이 옷을 입는 사람이 사는 터전은 어떠해야 좋을까 곱씹으며 비빔질을 한다. 빨래할 때뿐 아니라 밥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밥을 누가 먹는가 생각한다. 이 밥을 먹는 사람은 어떻게 기운을 얻으며 살아가면 좋은가 돌아본다. 내가 쓰는 글은 누가 읽으라고 쓰는 글인가를 되뇌어 본다. 내 어줍잖은 글 하나를 읽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무슨 일을 어떤 생각으로 펼쳐 나가면 좋은가를 가만히 톺아본다. 빨래하는 마음은 밥하는 마음이고, 밥하는 마음은 걸레질하는 마음이며, 걸레질하는 마음은 아이를 안고 동네마실을 하는 마음이요, 아기수레 아닌 어버이 품으로 아이를 보듬는 마음은 좋은 책 하나 찾아서 읽으려는 마음이다. 좋은 책 하나 찾아서 읽으려는 마음은 애써 글 한 줄 쓰려는 마음이고, 애써 글 한 줄 쓰려는 마음은 호미질 하는 마음이다. 호미질 하는 마음은 바느질 하는 마음이고, 바느질 하는 마음은 설거지를 하고 내 어버이 등과 허리를 부드러이 주무르는 마음이다. (4343.5.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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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재우는 마음


 더 놀고 싶어 하며 졸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아이를 재우기란 몹시 힘들다. 불을 다 끄고 아이한테 기저귀를 채우고 이불을 덮은 다음 토닥거리더라도 아이는 잠들지 않기 일쑤이다. 온 하루 아이하고 부대끼며 지친 아빠가 먼저 곯아떨어질 때가 있고, 아이는 어두운 방에서 홀로 깨어 옹알거리며 놀다가 잠투정을 하곤 한다. 그래도 어찌어찌 아이가 가까스로 잠들고, 간밤에 오줌 기저귀를 한 번 갈고 다시 토닥이며 재울 때 아이 잠든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렇게 고되고 지치고 벅찬 아이키우기란 더없이 힘든 보람이라고 새삼스레 느낀다. 힘드니까 보람이 있다 할 수는 없고,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동안 시나브로 보람이 샘솟는다. 아이하고 부대낀 하루하루란 날마다 책 몇 권어치 이야기 넘치는 삶결이다. (4343.5.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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