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 하는 마음

 


  아버지가 삽질을 하면 금세 끝낼 일인데, 아이가 곁에서 삽질을 하겠다고 달라붙으면 오래오래 지켜보면서 기다립니다. 아버지가 한 번 떠서 붓는 삽질 할 겨를이면 아이로서는 열 번쯤 떠야 합니다. 삽 한 자루로 마당 일을 하다가 삽을 아이가 슬쩍 쥐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생각합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진 몇 장 찍으며 생각합니다. 나는 일을 빨리 끝내고 싶은가. 나는 혼자 집 안팎 온갖 일을 다 치르고 싶은가. 나는 아이들과 예쁘게 살아가고 싶은가. 우리 아이들이 어여쁜 몸짓으로 어여쁜 삶을 누리도록 이끌고 싶은가. 손을 움직여 삶을 일구는 나날을 아이 스스로 기쁘게 맞아들이기를 바라는가.


  삽질은 얼른 끝내야 하기에 아이한테 다른 일을 맡기려 할 무렵, 아이가 삽질이 힘들다며 삽을 내려놓고 다른 ‘일거리’라기보다 ‘놀이거리’를 찾아 달려갑니다. 아이는 여기에 붙으며 이 일을 살피며 부대끼면서 배웁니다. 아이는 저기에 붙어 저 일을 들여다보며 복닥이면서 사랑합니다. (4345.5.28.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손가락 짚는 마음

 


  둘째 아이는 어머니 품에 안겨 그림책을 보다가 콕콕 손가락으로 짚습니다. 둘째 아이는 꽃잎을 앞에 두고 만질 때에도 손가락을 하나 내밀어 짚습니다. 돌떡을 맞추어 둘째 앞에 놓을 때에도 손가락 하나 쏘옥 내밀어 꾸욱 누릅니다.


  손가락만 짚어도 알 만하니까 손가락을 짚을까요. 손바닥으로 쓰다듬을 때에 알 만하면 손바닥으로 살살 쓰다듬을까요. 눈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알 만할 때에는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까요. 마음으로 느껴 알 만하다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을까요.


  둘째는 손가락을 입에 물곤 합니다. 손가락 하나 입에 물며 무언가 깊이 생각합니다. 맛을 보고 냄새를 맡이며 느낌을 맞아들입니다. 손끝으로 온누리 별과 빛과 꿈이 스며듭니다.


  나는 빨래를 하며 옷가지와 비누와 물을 만질 때에 손끝으로 모든 삶을 느낍니다. 나는 밥을 차리며 칼을 쥐어 푸성귀를 썰거나 국거리를 다질 때에 손끝으로 모든 삶을 헤아립니다.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글을 쓴다고 자판을 또닥이며, 책을 읽는다며 종잇장 만지며, 물건값 치른다며 지갑을 열어 돈을 꺼내며, 밭에 물을 주고는 흙을 토닥이며, 풀잎 꽃잎 나뭇잎 살살 어루만지며, 언제나 솥끝으로 온 하루를 가만히 아로새깁니다. (4345.5.22.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람 보는 마음

 


  사람을 볼 때에는 이름표를 보지 않습니다. 누군가 당신 이름표에 어떤 이름을 적어 넣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누군가 당신 이름표에 ‘진보’나 ‘혁명’이라는 낱말을 적어 넣었대서 대단하지 않습니다. ‘평화’나 ‘자유’나 ‘민주’라는 낱말을 당신 이름표에 적어 넣었기에 훌륭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볼 때에 주민등록증을 보지 않습니다. 누군가 나보다 한 해 일찍 태어났대서 우러를 만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나보다 한 해 늦게 태어났대서 얕볼 만하지 않습니다. 띠가 같은 웃나이라 하든 아랫나이라 하든 조금도 남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을 볼 때에 주름살이나 눈썹을 보지 않습니다. 사람을 볼 때에 종아리나 목덜미를 보지 않습니다. 사람을 볼 때에 귓불이나 발가락을 보지 않습니다. 그저 그 사람을 오롯이 봅니다. 그예 그 사람 삶과 넋과 사랑을 봅니다.


  어떤 졸업장이나 자격증이 어느 한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력서나 소개서가 어느 한 사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든 이녁이 들려주는 말마디마다 삶이 묻어나고 사랑이 깃들며 꿈이 드러납니다. 어느 한 사람이든 이녁이 보여주는 몸짓마다 생각이 샘솟고 믿음이 퍼지며 빛이 번집니다.


  경기도 일산에 있는 킨텍스에서 모임을 하건, 전남 고흥 시골마을 밭둑에서 모임을 하건, 사람들 스스로 살아가는 매무새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도시 한복판 커다란 시멘트 건물에서 모임을 하기에 더 나쁘지 않습니다. 시골 한복판 들자락에서 모임을 하기에 더 좋지 않습니다. 생각을 하는 사람일 때에 생각이 빛납니다.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일 때에 마음이 빛납니다. 사랑을 나누려는 사람일 때에 사랑이 따스합니다.


  입으로 이루어지는 진보는 없다고 느낍니다. 땀방울로 이루어지는 진보가 있을 뿐이요, 온몸으로 흙내음 누리며 빚는 진보가 있을 뿐이라고 느낍니다. 이 나라에는 온통 기름밥 진보와 아스팔트 진보만 판칩니다만, 기름밥이건 아스팔트이건 날마다 몸속에 밥 한 그릇 넣어 주지 않으면 목숨을 건사하지 못합니다. 책상물림이건 노동조합이건 햇볕을 누리고 바람·물·흙이 없을 때에는 삶을 거느리지 못합니다.


  아름답다고 느낄 때에 무엇이든 이루어집니다. 아름답다고 느끼며 바라볼 때에 내가 좋아하며 사귀는 사람이구나 싶습니다.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나 스스로 내 살림집을 마련할 마을을 찾습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동안 내 하루 내 온 기운 쏟아 예쁘게 돌봅니다. 밤새 내 가슴에 엎디어 자던 아이가 새벽부터 내 무릎에 누워 잡니다. 이 아름다운 잠보 얼굴을 살살 어루만집니다. 새벽을 부르는 들새와 멧새는 우리 집 둘레에서 기쁘게 노래합니다. 새날 새 볕살이 스밉니다. 따스한 기운이 집안으로 깃듭니다. 진보운동이든 평화운동이든 민주운동이든 하는 분들이 도시에서 더 많은 사람을 일깨워 더 빨리 온누리를 바꾸려고 땀흘리는 일도 좋으리라 느끼지만, 이에 앞서 진보와 평화와 민주를 바라는 꿈 그대로 이녁 스스로 날마다 좋게 누릴 삶을 빛낼 삶터를 찾아 호젓하게 웃음꽃 피울 수 있기를 빕니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슬픈 일 되풀이되는 데에서는 진보도 평화도 민주도 없습니다. 자가용을 버리고 두 다리와 자전거로 예쁜 이웃이랑 오순도순 살아갈 만한 데에서, 진보모임이나 평화모임이나 민주모임을 꾸린다면 참 홀가분할 텐데 싶습니다. (4345.5.15.불.ㅎㄲㅅㄱ)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2-05-15 07:03   좋아요 0 | URL
좋은 글이네요. 오늘따라 마음에 와닿습니다.

숲노래 2012-05-15 10:14   좋아요 0 | URL
통합진보당인지 진보통합당인지... 쳇바퀴 도는 모습이 온갖 매체에 시끌벅적한 모습을 떠올리면서 쓴 글이에요... 이분들이 부디 입으로 떠드는 진보 굴레를 털어낼 수 있기를 빌어요.

고흥 옆 순천에서 진보당 국회의원이 된 분조차 '당권파'로 막말과 폭력을 한몫 거든 모습이 참 안쓰럽습니다...

pourquoi28 2012-06-11 16:5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인사 드립니다.
된장님의 서재 드나들며 아껴가며 글 잘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
그날 실황중계 지켜보며 느꼈던 아픔이 아직도 아물지 않은거 같은데..
마음의 상처에 약이 되는 글, 너무 잘 읽고 갑니다.

숲노래 2012-06-11 18:03   좋아요 0 | URL
우리 스스로 좋은 삶을 사랑하며
재미나게 살아가면
가장 좋은 길이라고 느껴요.

언제나 좋은 날 누리시기를 빌어요
 


 노래하며 재우는 마음

 


  두 아이를 재우려고 하나는 가슴에 얹고 하나는 한 팔로 감싸면서 한 시간 반 즈음 노래를 부르자면 힘들기는 꽤 힘들다. 그런데, 이렇게 두 아이를 달래면서 목이 살짝 쉴락 말락 노래를 하다 보면 내 마음이 따사롭게 달라진다. 내 마음이 넉넉하게 바뀐다. 내 마음이 차분하게 거듭난다.


  아이들이 제아무리 짓궂거나 얄궂다 싶은 짓을 일삼았어도 이 아이들 곁에 끼고 노래를 부르며 재우다 보면, 그래 그래, 아이들이잖아, 예쁜 아이들이잖아, 예쁜 아이들이 더 놀고 싶고, 더 얼크러지고 싶고, 더 살을 부비고 싶어 이렇게 나한테 말을 걸거나 눈길을 보내며 하루를 보냈겠지. 고맙다, 사랑한다, 좋아한다, 오래오래 한결같이 서로 아끼면서 어깨동무하자, 하는 마음이 되어 노래를 부른다.


  오늘 저녁, 옆지기가 두 아이한테 노래를 불러 주며 재운다. 쳇, 오늘은 두 아이랑 노래하며 재우는 즐거움을 혼자 차지하는구나. 그러나, 옆지기가 두 아이를 재워 주면서 나로서는 저녁나절 일거리를 홀가분하게 끝마칠 수 있다. 우리 두 어버이 노래가 아이들 가슴으로 차곡차곡 스며들기를 빈다. (4345.5.9.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두 아이 보는 마음

 


  다섯 해 앞서까지 내가 두 아이 어버이로 살아가는 나날을 따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았다기보다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해야 옳다고 느낍니다. 나는 모든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생각하니까요. 생각은 하지만 늘 마음을 기울이지는 못하고, 때로는 마음을 기울이다가 그만 다른 데에 바쁘게 몸을 쓰며 깜빡 잊기까지 합니다.

 

  처음 우리한테 찾아온 아이를 보살피는 나날을 보내며, 이 어린 아기를 어떻게 재우고 먹여야 하는가 하는 대목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살피지 못했다는 말은 옳지 않아요.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해야 옳아요.


  두 아이를 홀로 씻기고 달래고 재우고 하며 옆에 나란히 눕습니다. 나는 왜 이 아이들이 날마다 더 즐겁고 더 신나며 더 예쁘게 하루를 누리는 데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가 하고 생각하다가는 어느새 곯아떨어집니다.


  내 가슴에 포개어진 채 자던 둘째는 내 팔베개를 하다가 내 바로 옆에 누워 잡니다. 한두 시간 가슴에 얹고 자다 보면 숨이 막혀 살짝 옆으로 누여 팔베개를 시키고 얼마쯤 지나 팔이 저리면 슬슬 한팔을 뺍니다. 이렇게 조금 있자면 둘째가 잠꼬대나 잠투정을 하며 나를 깨웁니다. 둘째를 다시 팔베개 하거나 가슴에 얹으며 첫째 때를 돌이킵니다. 첫째가 갓난쟁이로 보내던 나날을 곱씹으면 둘째는 참 수월한 셈입니다. 그러나, 둘째가 무얼 바라고 첫째가 무얼 받아먹으며 자랐는가 하는 대목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내가 어느 만큼 어버이 몫과 구실과 자리를 사랑했느냐 싶어 부끄럽습니다.

 

  자장노래를 열 가락쯤 부르는 동안 첫째는 깊이 잠듭니다. 둘째는 더 기다려야 합니다. 둘째를 가까스로 깊이 재우고서는 가슴에 머리를 댑니다. 아이들을 깊이 재우자면 가슴맡을 지긋이 눌러 주어야 한다고 옆지기한테서 배웠습니다. 곰곰이 생각할 수 있다면, 나부터 누군가 곁에서 이렇게 재워 준다면 한결 잘 잘 테고, 나 또한 어린 나날 이렇게 잠들었을 테니, 내가 생각해 낼 수 있으면 나도 모르는 일이 아니에요. 다만, 나는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던 삶인 나머지, 미처 되새기거나 떠올리거나 알아채거나 느끼거나 몸을 먼저 쓰지 못합니다.


  아이 어머니는 어떻게 아이한테 젖을 물리고 사랑스레 쓰다듬으며 곱게 자장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요. 꼭 어느 학교를 다니거나 누구한테서 배워야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줄 수 있나요. 따로 학교를 다니지 않거나 누구한테서 배우지 않았다면 아이한테 사랑을 먹일 수 없나요.


  콩닥콩닥콩닥 뛰는 둘째 숨결을 느낍니다. 자다 깨고 또 자다 깨고 하면 마당으로 나와 밤하늘을 나란히 느끼고는 다시 집으로 들어옵니다. 내가 어버이로서 마음을 기울이면 아이들은 하루하루 느긋합니다. 내가 집식구로서 마음을 기울이면 옆지기는 날마다 좋은 삶입니다. 내가 좋은 넋이라고 스스로 마음을 기울이면 내가 다스리는 내 일놀이는 늘 아름다운 꿈입니다. 두 아이를 보고 옆지기를 보며 나를 보는 눈길은 내가 피우고 싶은 꽃송이입니다. (4345.4.13.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