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마음

 


  지난 봄날, 어느 출판단체에 글꾸러미를 하나 보냈다. 어느 출판단체에서 작가와 출판사한테 ‘책 펴낼 돈’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데, 내가 보낸 글꾸러미가 뽑힐 수 있는지 손꼽아 기다린다. 좋은 마음으로 쓴 글을 좋은 마음으로 엮어 보냈기에 좋은 마음으로 살펴 좋은 마음으로 뽑아 주리라 믿고 기다린다.


  아이들 잠든 깊은 밤, 긴글 하나를 마무리짓는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 한켠에 대기업에서 화력발전소를 짓겠다고 나서기에, 이 일을 놓고 어느 신문에 보낼 글을 썼다. 내 글을 실어 주겠다 하는 신문에서는 한 쪽을 통틀어 글과 사진으로 꾸미겠다고 말씀해 주었기에 고맙고 즐겁게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다만, 내가 쓴 글은 이제껏 수많은 환경운동과 시민운동 글하고 아주 다르다. 나는 이론이나 지식이나 논리나 정보를 갖고 글을 쓰지 않았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가장 아름다운 꿈을 생각하면서 글을 썼다. 나한테 글을 써서 보내 달라 하는 신문은 여느 일간신문이 아니라 두 주에 한 차례 나오는 신문이기에 내가 쓴 글도 예쁘게 받아들여 주리라 믿는다. 나는 그저 기다릴 뿐이다. 믿고 기다릴 뿐이다.


  나와 이웃한 사람들이 겉치레나 돈벌이에 휘둘리거나 휩쓸리지 않기를 믿으면서 기다린다. 나부터 즐겁게 생각하고 예쁘게 말하면서 착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으면서 하루하루 좋은 꿈을 기다린다. 내 마음속에서 산뜻하게 피어날 좋은 글꽃을 믿으면서 기다린다. 내 가슴속에서 해맑게 자라날 어여쁜 사랑열매를 믿으면서 기다린다.


  그냥 기다리지 않는다. 믿으면서 기다린다. 싱긋 웃으면서 기다린다. 가장 예쁜 생각을 가다듬으면서 기다린다. 개구리 노랫소리와 살랑이는 밤바람 소리에 마음 한 자락 실으면서 기다린다. (4345.7.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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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2-07-06 02:18   좋아요 0 | URL
저도 같이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숲노래 2012-07-06 07:3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모두 잘 되리라 믿어요~
 


 바다를 혼자 차지하는 마음

 


  면소재지에서 택시삯 고작 오천 원 들여 오 킬로미터 떨어진 발포 바닷가로 마실을 갈 수 있습니다. 걸어서 찾아간다든지 늘 집 앞에서 창문만 열면 바라볼 수 있다든지 하지는 않으나, 이렇게 가까운 곳에 다도해국립공원 바다를 만날 길이 있으니 좋습니다. 마땅한 일이기는 한데, 우리 식구는 이렇게 시골 터전을 신나게 즐기고 싶기에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이제껏 따로 꿈꾸지는 못했지만, 이제부터 우리 또다른 보금자리가 바닷가에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고 꿈꿉니다. 고즈넉한 멧자락 사이에 포근하게 안긴 호젓한 보금자리에서 살다가, 때때로 바다가 그리우면 바닷가에 건사한 좋은 보금자리로 옮겨 며칠이고 지낸다면 무척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바닷마을 한켠에 저희 보금자리를 따로 마련할 수 있어요. 이렇게 되면, 우리는 서로서로 오가면서 좋은 삶을 가없이 누릴 수 있겠지요.


  그리 이르지 않은 아침이지만, 발포 바닷가에 아무도 없습니다. 택시에서 내리니 오직 우리들만 있습니다. 사람도 없고 자동차도 없습니다. 물결이 일렁이며 내는 솨솨 촤르르 소리만 가득합니다. 바다를 우리 네 식구만 한껏 누리네, 하고 생각합니다. 이 둘레에서 바다를 누리는 사람은 우리뿐이네, 하고 생각합니다.


  바닷가 모래밭을 따라 빙 두룬 후박나무와 소나무도 언제나 이 바다를 누리겠지요. 논밭 가득한 마을 한복판에서는 바람이 거의 안 불지만, 바닷가에서는 바닷바람이 그치지 않습니다. 낮밥을 먹으며 후박나무를 올려다봅니다. 열매가 까맣게 잘 익었습니다. 바닷가 둘레에서 살아가는 멧새는 틈틈이 후박나무로 찾아들어 까만 열매를 맛나게 먹겠지요. 새들도 후박열매를 먹는 동안 기쁘게 바다를 누릴 테지요.


  신을 벗습니다. 맨발로 모래밭을 걷습니다. 바닷물 앞에 섭니다. 스스럼없이 발을 담급니다. 찌르르 시원한 바닷물 느낌이 발가락 끄트머리부터 머리카락 끄트머리까지 올라옵니다. 이 바닷물은 이곳부터 어디까지 이어졌을까요. 이 바닷물은 지구별을 어떠한 품으로 곱게 안아 줄까요. 이 바닷물에 깃들어 숨을 쉬는 목숨은 얼마나 많을까요.


  너른 바다는 사람들 누구나 너른 넋이 되고 너른 사랑이 되어 너른 꿈을 빚으라고 속삭입니다. 따순 바다는 사람들 모두 따순 얼이 되고 따순 마음이 되어 따순 이야기를 나누라고 노래합니다.


  내 좋은 이웃과 동무들이 좋은 바다를 가까이할 수 있기를 빕니다. 내 좋은 곁사람들이 텔레비전이나 셈틀이나 보고서나 자동차나 고속도로나 높은 건물이나 아파트만 들여다보지 말고, 상큼하고 해맑으며 파랗게 빛나 하늘과 하나되는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기를 빕니다. (4345.6.2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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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과 밤을 이야기하는 마음

 


  인천에서 태어나 살던 나는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다른 동무들과 비슷하게 인천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으레 시골사람만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시골 고향을 떠나 서울로 몰려들거나 도시에 빨려들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일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한국에서는 서울이나 부산에서 살지 않으면 모두 고향을 떠나기 마련이라고 느끼며, 부산에서 사는 사람조차 서울로 가려고 한다고 느껴요.


  인천에서 살던 어린 날과 서울로 가서 지내던 젊은 날, 여름날 저녁이나 밤은 몹시 후덥지근했습니다. 끈끈하고 무더운 여름날을 견디기란 힘들었어요. 도시사람한테 여름저녁과 여름밤이란 ‘잠 못 이루는 밤’일 뿐입니다.


  도시에서 꾸리던 살림을 2010년부터 접고 시골로 옮겨 살아갑니다. 시골에서 저녁과 밤을 맞이하면서, 나는 시골사람으로서 생각합니다. 시골 저녁은 시원합니다. 시골 밤은 서늘합니다. 도시에서 살 적에도 선풍기를 안 쓰기는 했으나, 부채 없이 아이를 재우기란 힘겨웠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부채를 쥘 일조차 드뭅니다. 바람은 알맞게 불어, 낮에는 시원하고 저녁에는 선선합니다. 아이들 모두 잠드는 깊은 밤에는 그야말로 서늘합니다. 갓 잠이 들 무렵에는 이불을 안 덮다가도 새벽 무렵에는 어김없이 이불깃을 여며야 합니다.


  도시에서 살던 때에는 따로 집에서 신문을 받아보지 않아도 둘레에서 신문을 손쉽게 살 수 있고 얻어 읽을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신문 한 장 사서 읽기란 매우 힘들 뿐더러, 애써 신문을 찾아 읽을 만한 일이 없습니다. 곰곰이 마음을 기울이고 보면, 도시사람은 스스로 신문을 만들어야 하고 신문을 읽어야 합니다. 시골사람은 따로 신문을 안 만들어도 되며 신문을 안 읽어도 됩니다. 도시를 이루는 밑틀은 온갖 지식과 정보이기에, 도시에서는 신문과 방송과 책이 출렁출렁 물결칩니다. 시골을 이루는 밑바탕은 흙과 숲과 풀과 새와 벌레이기에, 시골에서는 풀내음과 들바람과 햇살과 흙기운이 널리 감돕니다.


  도시사람은 정치읽기를 하고 사회읽기를 하며 문화읽기를 합니다. 시골사람은 하늘읽기와 흙읽기와 풀읽기를 합니다.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자면 자격증과 졸업장이 있어야 합니다. 시골에서 일거리를 얻자면 스스로 몸을 움직여 땀을 흘려야 합니다.


  문득 돌아보면, 먼먼 옛날부터 후덥지근한 여름밤은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다만, 자연을 밀어내고 사람들만 꾸역꾸역 모인 서울이라든지 궁궐에서는 후덥지근한 여름밤이 있었겠지요. 풀과 나무가 마음껏 자라지 못하고, 흙이 제대로 풀과 나무를 살찌울 수 없던 옛 서울이라면 오늘 서울하고 서로 마찬가지였겠지요. 먼먼 옛날부터 여느 마을 여느 사람들은 시원한 저녁과 서늘한 밤을 누렸으리라 생각합니다. 흙을 먹고 흙을 사랑하는 삶일 때에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알뜰살뜰 누리며 고운 꿈을 여밀 만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서울이나 크고작은 도시 여름저녁과 여름밤이 후덥지근하다면, 아스팔트 찻길을 줄여 숲길을 마련해 보셔요. 여름저녁과 여름밤을 시원하게 누리고 싶으면, 시멘트 건물 빽빽하게 세우지 말고, 건물 사이사이 건물 넓이만큼 조그맣게 숲을 일구어 보셔요. 여름밤이 너무 더워 선풍기와 에어컨을 돌리느라 전기가 모자라니까 발전소를 새로 지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지 마셔요. 아스팔트와 시멘트를 흙과 나무로 돌려 놓으면, 서울에서도 크고작은 도시에서도, 여름날 저녁과 밤에 상큼하며 보드랍고 싱그러운 숲바람을 누릴 수 있어요. (4345.6.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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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화과나무 이야기하는 마음

 


  무화과나무 밑에 선 어머니와 아이. 무화과잎이 어떤 모양이며 어떤 무늬인가 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무화과나무는 제 그늘 밑에서 저를 놓고 요로콩고로콩 이야기 나누는 두 사람을 바라본다. 두 사람은 무화과나무를 바라보고, 무화과나무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무화과나무를 이야기하고, 무화과나무는 저를 놓고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늘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흙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흙을 손에 쥐며 쓰다듬는다. 바다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바닷물에 손과 발과 몸과 마음을 담그며 생각에 잠긴다. 아이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이를 사랑으로 낳고 믿음으로 보살피며 꿈으로 가르친다. 꽃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작은 씨앗 곱다라니 심어 정갈한 눈길로 맑게 바라본다. 책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나무결에 아로새긴 사람들 살아가는 발자국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내 오늘 하루를 되짚는다.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마음으로 생각을 살찌운다. 마음으로 사랑씨앗 심어 지구별을 따뜻하게 얼싸안는다. (4345.6.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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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을 주는 마음

 


  아버지가 뒷밭에 물을 주러 가는 줄 첫째 아이가 금세 알아챈다. 따로 아이를 부르지 않아도, 아이 스스로 조용조용 따라온다. 큰 스텐통에 물을 받아 작은 바가지에 물을 담아 감자줄기나 토마토줄기 밑둥에 대고 천천히 물을 붓는다. 첫째 아이는 큰 스텐통에 담긴 조그마한 물바가지를 들고 조그마한 손으로 조금씩 조금씩 물을 붓는다.


  아이를 불러 함께 물을 줄 때에도 즐겁다고 느끼지만, 아이를 따로 부르지 않을 때에 아이가 스스로 따라와서 물을 줄 때에도 즐겁다고 느낀다. 이제 나는 조용히 물을 떠서 조용히 물을 들고 조용히 뒷밭으로 간다. 한창 물을 주면서 언제쯤 아이가 뒷밭으로 따라올까 하고 가늠한다. (4345.5.3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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