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속삭이는 마음

 


  살아가는 밑힘이란 무엇일까 하고 문득 생각합니다.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지내는 시골집을 떠나 서울이라는 커다란 도시로 찾아와 볼일을 보다가 문득, 내가 살아가는 밑힘은 어디에서 샘솟는가 하고 헤아립니다. 어마어마하다 싶은 사람들 쏟아지는 신도림역에서 전철을 갈아탑니다. 이 많은 사람들은 모두 인천이나 부천에서 찾아왔을 텐데, 서울로 일하러 드나드는 사람은 참말 얼마나 많을까 하고 바라보다가, 아하 이 많은 사람들 가슴에는 어떤 밑힘이 있어 이렇게 복닥이며 살아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충청북도 멧골자락에서 조그마한 배움터 일구는 할아버지를 뵙습니다. 인천 골목동네 조그마한 집에서 혼자 살아가는 형을 만납니다. 인천 배다리 조그마한 가게에서 문화와 삶을 아끼려고 힘쓰는 여러 이웃하고 어우러지며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오늘 하루 살아가도록 이끄는 밑힘은 무엇일까요.


  서울 지하상가를 걷다가 떡집을 보고는 떡 몇 점 장만합니다.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지만, 서울에서 고흥으로 돌아갈 길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안 먹어야 버스에서 안 시달린다고 생각하며, 이 떡을 시골집에서 아버지 기다릴 아이들 가져다주자고 다짐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뱃속 꼬르륵 소리가 잦아들고, 내 마음은 한결 푸근합니다. 그런데, 떡집에서 내가 돈을 치르려 할 즈음 갑자기 내 앞으로 끼어들어 새채기하려는 바쁜 사람이 하나 둘 셋, 모두 세 사람 있습니다. 1초조차 기다릴 수 없을까 싶고, 아마 이들 세 사람한테는 내가 안 보였겠구나 싶어요. 이분들은 책방에서 책을 살 적에도 ‘내 돈 먼저 받아요!’ 하면서 새치기를 할까요. 이분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적에도 ‘내 접수 먼저 받아요!’ 하면서 새치기를 할까요.


  그런데, 나는 시골집 옆지기랑 아이들부터, 서울 신도림역이나 인천 골목동네나 충청북도 멧골자락이나 서울 지하상가 골골샅샅에서 마주하는 사람들 모두 사랑할밖에 없습니다. 모두 아름다운 숨결 가슴속에 건사하는 이웃입니다. 따지고 보면, ‘살인마’ 소리 듣는 전두환 같은 사람도 내 이웃입니다. 슬프더라도 내 이웃입니다. 아니, 슬픈 이웃이겠지요.


  아무래도 전두환 같은 사람은 틀림없이 ‘살인마’라 할 만하겠지요. 그래서 더 생각을 기울여 봅니다. 살인마 전두환이기 앞서, 육군 소장 전두환이기 앞서, 어린이 전두환은, 갓난쟁이 전두환은, 아직 어머니 몸속에서 발을 톡톡 차며 막 태어나려고 하는 조그마한 살덩이 전두환은, 어떤 숨결이었을까 생각을 기울입니다. 전두환이라고 하는 숨결 하나는 왜 사랑을 듬뿍 누리지 못했고, 왜 사랑을 가득 펼치지 못했으며, 왜 사랑을 따사로이 주고받지 못할까요.


  사랑을 속삭이고 싶습니다. 사랑을 속삭일 때에 얼마나 즐거우며 힘이 솟는가 떠올립니다. 누군가 나를 아끼면서 내 귀에 대고 조곤조곤 사랑을 속삭일 때에 내 마음은 얼마나 날아오르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아끼며 이녁 귀에 대고 살몃살몃 사랑을 속삭일 때에 이녁 마음은 얼마나 달아오를까 하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자라기를 빌어요. 사랑이 피어나기를 빌어요. 사랑으로 서로 어깨동무하기를 빌어요. 사랑을 담아 글을 쓰고, 사랑을 품으며 글을 읽는 이웃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 4346.1.3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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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다니는 마음

 


  서울이나 부산하고는 한참 멀고, 다른 시골이나 도시하고도 매우 먼 고흥에서 살아갑니다. 어디로 마실을 하든 머니까, 애써 마실을 다닐 생각을 안 합니다. 집에서만 지내고, 면소재지나 읍내를 가끔 드나듭니다. 시골집에 있다 보면, 굳이 마실을 다니지 않아도 즐거이 삶을 누릴 만하구나 싶습니다.


  마음이 즐거우면서 몸이 즐겁습니다. 마음과 몸이 즐거우면서 삶이 즐겁습니다. 마음과 몸 따라 삶이 즐거우면서 생각과 사랑과 꿈을 즐겁게 키웁니다.


  누군가 부르면 스스럼없이 찾아갑니다. 다만, 가까운 시골이나 도시를 찾아가더라도 하루를 통째로 써야 합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기차로 두 시간이고, 서울에서 해남이나 장흥이나 강진까지도 네 시간이면 달릴 만하겠지요. 그런데, 네 시간이건 다섯 시간이건 읍내까지 달리는 길이지, 두멧시골을 오가는 길을 치면 훨씬 오래 걸려요.


  시골집을 나서면 둘레 모습이 아주 다릅니다. 조용하고 푸르며 싱그러운 바람을 누리다가, 슬슬 시끄러우며 매캐하고 먼지 많은 바람을 맞아야 합니다.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고흥을 벗어날 무렵부터는 골프장과 공장과 기찻길과 고속도로와 온갖 아파트와 건물을 만납니다. 물결치는 자동차 사이로 깃듭니다. 멧새 노랫소리가 잦아들면서 자동차 바퀴소리 커집니다. 풀벌레 울음소리 들을 수 없으면서 사람들 손전화 만지는 소리 늘어납니다. 풀내음과 나무내음이 사그라들면서 시멘트와 아스팔트 가루가 흩날립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시골은 뭇목숨이 푸르게 노래하는 소리가 어우러진다면, 서울은 뭇목숨이 슬프게 아파하는 소리가 얼크러지는구나 싶습니다. 시골에서 옆지기와 아이들하고 지내며 마음을 따사로이 추스를 수 있는 까닭은 나 스스로 차분하게 생각하고 밥을 지으며 살림을 꾸리기 때문이요, 서울로 마실을 하며 몸이 고단하고 마음이 지치는 까닭은 나 스스로 차분하게 생각을 가다듬더라도 물과 밥과 바람이 매캐하면서 정갈하지 못하기 때문이로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서울이 매캐하고 어지러우면, 시골서 살아가며 누린 즐거움과 웃음을 살며시 나누어 주면 되겠지요. 내가 한껏 꽃피우는 이야기와 노래를 하나둘 들려주면 되겠지요. 4346.1.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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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즐거운 마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 책들이 그저 종이에 찍힌 글씨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겉보기로는 종이꾸러미요, 글씨모임이라 할 테고, 돈으로 사고파는 물건이라 여길 수 있지만, 나는 책을 ‘내 이웃과 사귀는 즐거움’이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내 이웃이 나를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적바림한 이야기꾸러미가 바로 책이라고 느낍니다.


  아마, 이 책 하나 쓴 분은 내 얼굴도 이름도 모를 테지요. 그러나 이 책 하나 쓴 분은 나와 같이 ‘얼굴도 이름도 모를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서로 즐겁게 사귀고픈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지구별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고픈 마음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온누리를 따사롭게 밝히고 싶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을 찾으면서 책 하나 빚습니다. 환하게 웃음꽃 피우는 삶을 누리고 싶어 책 하나 책방 책시렁에 꽂습니다. 맑게 노래하면서 춤추는 마을잔치 이루고 싶어 주머니를 털어 책을 장만하고, 읽고, 아로새기고, 되새기면서 하루를 돌아봅니다.


  이웃과 즐거운 마음 나누는 책읽기입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 마당 후박나무 줄기를 어루만지면서 나무책을 읽습니다. 후박나무 잎사귀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고, 눈발 흩날리는 예쁘장한 구름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책과 구름책을 읽습니다. 눈을 감고 바람을 느낍니다. 작은아이는 아버지 품에서 고개를 살며시 기대고는 아버지랑 나란히 눈을 감고, 마당에서 눈을 맞으며 바람을 느낍니다. 바람아, 바람아, 너도 하느님이지? 우리 아이도 하느님이고, 나도 하느님이며,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과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 모두 하느님이지? 모든 목숨은 책이고, 모든 책은 푸른 숨결이라고 느낍니다. 4346.1.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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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살아가는 마음

 


  아이들이 밤잠을 잘 자다가 꼭 깹니다. 밤오줌을 누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꿈을 꾸다가 깹니다. 이때에 가슴을 잘 토닥이면 다시 새근새근 숨을 고르면서 깊이 잠듭니다. 그러나, 그예 깨어 품에 안거나 무릎잠을 재워야 하곤 합니다.


  아이 하나를 무릎에 누입니다. 아이 하나를 옆에 누입니다. 아이들 곁에 누워 아이들을 품에 안습니다. 아이가 아버지 품에 바싹 달라붙습니다. 아이가 손을 뻗어 아버지 얼굴이나 몸이나 팔이나 허리나 가슴이나 이곳저곳 만지다가 스르르 힘이 빠지며 곯아떨어집니다.


  무릎잠 자던 아이를 살며시 안아 잠자리로 옮기면 내 몸은 홀가분한데, 막상 이렇게 홀가분한 몸이 되고 나면, 밤에 하는 글쓰기가 되레 재미없습니다. 왜 그럴까, 왜 이 홀가분한 몸일 때에 더 바지런히 글쓰기를 하지 못할까, 생각하다가, 방문 조용히 열고 마당으로 내려서서 별을 바라봅니다. 아마, 나는 집일 아무것 안 하고 집식구하고 하나도 안 얽히면서, 어떤 글방 하나 얻어 호젓하게 글쓰기에만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 할 적에는 글쓰기를 못하는 사람 아닌가 싶습니다. 복닥복닥 어수선하고 어지러우며 고단한 나날을 잇는다 하더라도, 아이들 노랫소리랑 웃음소리랑 이야깃소리 들으면서 글빛을 북돋우는 사람이지 싶습니다.


  언제부터 이런 내 삶일까요. 어떻게 이러한 내 삶이 되었을까요.


  그런데, 아이들과 살아가며 글을 쓰니, 아이들과 함께 읽을 글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며 글을 엮으니, 앞으로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이 아이들 스스로 글을 읽을 때에는 저희 아버지 글을 가만히 들여다보겠구나 싶습니다. 곧, 내 글은 내 글만이 아니라 아이들 글이요, 내 글에 깃드는 넋은 내 넋만이 아닌 아이들 넋입니다. 내 글은 내 이름으로만 쓰는 글이 아니라, 내 옆지기 이름으로도 함께 쓰는 글이요, 내 어버이와 이웃과 동무 이름이 함께 감돌며 쓰는 글입니다.


  내 벗은 누구인가요. 풀이요, 나무요, 새요, 벌레요, 구름이요, 멧자락이요, 숲이요, 논이요, 바다요, 하늘이요, 해요, 별이요, 달이요, …… 모두모두 벗입니다. 고흥 시골마을에도 살아가는 벗이요, 인천이나 서울에도 살아가는 벗입니다. 벗이 누구인가 하고 생각하기에 글을 쓰는 매무새가 달라지고, 내가 누구하고 살아가는 사람인가 하고 돌아보기에 글뿐 아니라 살림 꾸리는 몸가짐이 바뀝니다. 이제 나는 아이들 곁에 누워 내 손으로 아이들 머리카락 살살 쓸어넘기며 새벽을 맞이해야겠습니다.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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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는 마음

 


  태어날 적부터 ‘눈’이 없다면, 꿈누리에서 어떤 이야기로 생각날개를 펼까요. 태어날 적부터 ‘귀’가 없다면, 새를 바라보면서 어떤 이야기로 노래날개를 펼까요. 태어날 적부터 ‘코’가 없다면, 풀을 뜯어 혀에 올려 살살 씹으며 어떤 이야기로 맛날개를 펼까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눈과 귀와 코가 있는 채 태어납니다. 그런데, 이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은 눈을 눈대로 못 쓰고 귀를 귀대로 못 쓰며 코를 코대로 못 쓰기 일쑤예요. 아름다움을 바라보지 못하고, 아름다움을 듣지 못하며, 아름다움을 맡지 못해요.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으며, 무엇을 맡는가요. 머리에 지식은 많이 쌓지만, 정작 눈을 못 쓰고 귀를 못 쓰며 코를 못 쓰지 않나요.

 

  학교에서 눈·귀·코 쓰는 길을 가르치지 않으니, 배운 적 없어 눈·귀·코를 못 쓰나요. 신문에서 눈·귀·코 쓰는 길을 들려주지 않으니, 들은 적 없어 눈·귀·코를 못 쓰나요. 텔레비전에서 눈·귀·코 쓰는 길을 보여주지 않으니, 책에서 눈·귀·코 쓰는 길을 다루지 않으니, 우리들은 눈·귀·코 쓰는 슬기롭고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지 못하나요. 4346.1.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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