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루는 마음

 


  서울 불광3동에 있는 헌책방에 여러 해만에 찾아갑니다. 인천을 떠나 충청북도 멧골집에서 지내다가, 다시 전라남도 고흥 시골집에서 살아가니, 서울에 있는 크고작은 헌책방 가운데 몇 해에 한 차례라도 나들이할 수 있는 곳은 드뭅니다. 인천에서 살거나 서울에서 지낼 적에는 꾸준히 찾아들던 곳인데, 이제는 마음으로만 ‘책살림 즐거이 꾸리시겠지요?’ 하는 인사를 보냅니다.


  옆지기 동생 시집잔치가 있기에 경기 일산으로 찾아와서 사흘째 지내다가 택시를 불러 혼자서 불광3동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두 시간 남짓 책을 살핍니다. 헌책방 일꾼 삶 이야기를 조곤조곤 듣습니다. 책값을 셈하고서 책방 문을 나설 즈음, 헌책방 일꾼이 한 마디 들려줍니다. “여기에 있는 책들 80%는 내 마음에 있는 책들이에요.” 당신이 마음으로 아끼거나 읽거나 좋아하는 책들이 80%라는 뜻입니다. 다른 20%는 당신 마음에 없더라도 책손 마음에 들 만하리라 여기는 책이라는 뜻입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다른 20%도 헌책방 일꾼 마음이 닿은 책이겠지요. 교과서 진도에 맞추어 대학입학시험에 얽매이는 학습만화라 하더라도, 서울에서 주식투자 잘 하는 길을 들려주는 자기계발책이라 하더라도, 아이들 자습서나 교과서 한 권이라 하더라도, 헌책방 일꾼으로서는 당신 밥벌이만 헤아려서는 책을 사서 갖출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 팔릴 만한 책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가 닿아 ‘이만 한 책이라 한다면 책 다루는 일 하는 즐거움과 보람을 누리겠구나.’ 하고 느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 마음으로 살포시 찾아와서 곱게 닿는 책을 손에 쥐어 펼칩니다. 내 마음을 짠하게 움직이는 책을 주머니를 뒤져 돈이 얼마 있나 어림한 다음 장만합니다. 천 원 만 원 십만 원 ……과 같은 돈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내가 마음을 들여 읽을 만한가를 살핍니다. 내가 마음을 기울여 사랑할 만한가를 헤아립니다. 내가 마음을 쏟아 아끼면서 빛낼 만한가를 돌아봅니다.


  책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내리고는 문득 고개를 들어 보꾹을 올려다봅니다. 마음이 있을 때에 밥을 맛나게 짓고, 마음이 있을 적에 아이들이랑 살가이 노래노래 부르며, 마음이 있기에 비로소 책방마실을 합니다. 모든 책을 빠짐없이 갖추어야 할 도서관이나 책방이 아니에요. 책방 일꾼 스스로 마음으로 아낄 만한 책을 갖추어야 할 책방이에요. 도서관 또한 도서관을 지키는 일꾼 스스로 마음으로 보듬을 만한 책을 건사해야 할 노릇이로구나 싶어요. 내가 큰 새책방이나 숱한 도서관으로 나들이를 가지 않는 까닭을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온갖 책을 수없이 갖춘대서 나들이를 할 만하지 않아요. 도서관이나 새책방을 지키는 일꾼들 마음이 하나하나 묻어난 어여쁜 책이 있을 때에 신나게 나들이를 할 만합니다. 나는 한국땅 골골샅샅 예쁘게 살림을 일구는 크고작은 헌책방을 아름답다고 여깁니다. 참말 그러한데, 모두들 이녁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보살피는 책을 알뜰살뜰 건사하니 이들 아름다운 헌책방에서 내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을 아름답게 살찌우고 싶어 씩씩하게 아이들 이끌고 헌책방마실을 누립니다. 4345.1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5)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카스피 2012-12-02 21:14   좋아요 0 | URL
불광 3동의 헌책방이면 어디 인가요? 예전 동명여고인가 그 부근에 헌책방이 하나 있었던것 같은데 문을 닫은것 같고 그 부근 헌책방이면 연신내역 부근에 한 2군데 있던것 같더군요.

숲노래 2012-12-02 21:39   좋아요 0 | URL
불광3동 연산초등학교 둘레 큰길에 있는 <작은우리> 헌책방입니다.
이곳도 아름다운 헌책방이랍니다~

카스피 2012-12-03 11:52   좋아요 0 | URL
작은우리라 이름을 들어보니 예전에 몇번 갔던곳인것 같네요^^

분꽃 2012-12-18 15:06   좋아요 0 | URL
저희동네에도 헌책방이 하나 생겼어요. 이름이 <아직숨은책방>인데요, 퓨전헌책방이라고 해야 할까??? 아주 조그만 옛날집을 얻어서 꾸몄는데 책이 아직은 많지는 않고요, 간단하게 차도 마실 수 있고 책구경도 하는....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랍니다~~

숲노래 2012-12-18 18:57   좋아요 0 | URL
재미있는 데가 문을 열었군요.
분꽃 님 바람처럼 오래오래 자리를 지키는
예쁜 책쉼터로 이어가면 좋겠어요~
 


 시를 드리는 마음

 


  드리고 싶어 시를 쓴다. 서로 마음이 맞아 살가이 이야기를 도란도란 꽃송이처럼 피울 수 있는 사람하고 있으면, 가슴속에서 싯말이 싯노래 되어 찬찬히 울린다. 나는 하얀 종이 하나 꺼내어 이 싯말을 싯노래로 흥얼거리며 옮겨적는다. 나는 시를 하나 적어서 내민다. 내 시를 받는 이는 나한테서 선물을 받는다 할 테지만, 알고 보면, 그이가 내 마음을 건드려 싯가락이 자라도록 도왔으니, 그이 스스로 그이가 받고픈 사랑말을 길어올린 셈이다. 4345.11.2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을 쓰는 마음

 


  두 아이가 닷새째 아픕니다. 아침에 일어날 적에는 조금 나을 듯하더니 저녁에 해가 질 무렵부터 끙끙 앓기를 닷새째입니다. 올해에는 아이들만 아프고 아직 내 몸은 안 아픕니다. 지난해까지 돌아보면, 아이들이 다 나을 즈음부터 내가 아팠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는 동안 참 용하게 아이들 고뿔이나 재채기가 나한테 조금도 안 옮더니, 아이들이 말끔하게 나은 뒤에는 내가 하루나 이틀 때로는 사흘 즈음 모질게 몸앓이를 하곤 했습니다.


  꼭 내가 아파야 아이들이 낫는다고는 여기지 않아요. 아이들이 나아도 나는 안 아플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지난해까지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아플 적마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너희가 아픈 꼴을 어떻게 보니. 내가 아파야지. 너희들은 아프지 말거라.’ 그리고, 이 생각 그대로 아이들이 나으면서 내가 아팠습니다.


  올해에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너희는 씩씩하게 일어서라. 튼튼하게 아픔을 털고 일어서라. 개구지게 뛰놀고 신나게 날아올라라.’


  두 아이를 나란히 재우며 틈틈이 글을 씁니다. 아이들을 생각하며 글을 씁니다. 한 아이를 재우면 다른 아이가 깨서 칭얼거리는군요.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서 다시 재우면 다른 아이가 깨서 칭얼거려요. 서로 갈마들며 아버지 품에 안기며 쉽니다. 얘들아, 이러면 나는 언제 쉬니? 하기는, 너희 아버지는 ‘쉼’을 생각하지 않아. 너희 아버지도 너희와 똑같이 하루를 온통 누리며 즐기는 사람이라서, 굳이 쉰다거나 따로 일한다거나 생각하지 않아. 얼마든지 안기렴. 너희를 안느라 허벅지가 터질 듯하던데, 아프다며 달라붙는 너희 둘을 열 시간 즈음 안자니 엉덩이까지 방바닥에 눌러붙을 듯한데, 이러거나 저러거나 다 좋아. 다 좋아. 재미나게 웃자. 방긋 웃자. 개운하게 웃자. 너희 아버지는 너희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하루를 글로 써서, 이 글을 묶어 책을 내놓는단다. 두 아이 아버지 책쓰기란, 시골살림 꾸리는 하루살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삶쓰기란다. (4345.11.1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두 아이 재우는 마음

 


  옆지기가 집에 있어도 집일을 도맡고, 옆지기가 집에 없어도 집일을 도맡는다. 다만, 옆지기가 집에 있으면 아이들이 어머니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지만, 옆지기가 집에 없으면 아이들이 아버지 옷자락을 잡고 늘어진다. 두 아이를 혼자 건사하면서 집일을 하고 글쓰기를 하자면 등허리가 휘고 팔다리가 늘어진다. 아이 하나를 안고 설거지를 해 보아라. 아이 하나를 업고 빨래를 해 보아라. 아이 하나를 무릎에 누여 재우며 옷가지를 개 보아라. 아이 하나를 안고 밥을 짓고 국을 끓여 보아라. 아이 하나를 업고 방바닥을 쓸고 닦아 보아라.


  집일은 가시내가 할 일이 아니요, 사내가 나누어 할 일이 아니다. 집일은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할 일인 한편,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누구나 옳고 바르며 예쁘고 슬기롭게 할 줄 알아야 하는 일이다.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넋 또한, 어머니만 건사할 마음이 아니라, 아버지도 함께 가꾸며 살찌울 마음이다.


  시골에서는 젊은 아빠들 볼 일이 없어 모르겠는데, 도시에서 지낼 적에 만난 젊은 아빠들이 으레 ‘애들 똥은 도무지 못 치우겠다’고들 말하던데, 애들은 스스로 밑을 닦거나 씻을 수 있을 때까지 어버이가 밑을 닦거나 씻겨야 한다. 애들이 부끄럼을 타니까 혼자 씻겠다고 하지 않는다. 이제 혼자 씻을 만한 나이가 되었으니 혼자 씻을 뿐이다. 이때까지 어버이는 아이들을 정갈히 씻기고 알뜰히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옆지기가 집에 없는 동안 두 아이를 입히고 먹이고 씻기고 재운다. 두 아이랑 함께 놀고 코를 훔치고 투정을 받고 안아 주고 주전부리를 준다. 이마를 쓸어넘이고 이불깃을 여미고 자장노래를 부르고 옷을 갈아입힌다. 용케 두 아이가 나란히 곯아떨어진다. 참말 같은 때에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다가 색색 잠든다.


  비로소 한숨을 돌리며 물 한 잔 마신다. 나도 같이 누울까 하다가 조금 일어나서 버텨 본다. 이 아이들 저녁에 무엇을 차려서 함께 먹으면 즐거울까 어림해 본다. 이제 가을햇살 뉘엿뉘엿 기울 테니까 빨래를 걷어야지. 걷은 빨래는 큰아이하고 함께 갤까. 그러나 큰아이가 여러 날 몸앓이를 하는걸.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씩씩하게 훌훌 털고 일어나 여느 때처럼 개구지게 온 마을 휘휘 젓고 뛰놀기를 빈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자. (4345.11.1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빨래순이 아버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멸치를 말리는 마음

 


  멸치 말리기를 구경한다. 우리 네 식구를 자동차에 태워 고흥마실을 시켜 주는 분이 소록도 다리를 지나고 거금도 다리를 지난 다음, 금산면(거금) 금진마을에서 살짝 멈춘다. 거금다리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자리라 해서 살짝 멈추는데, 다리보다 다리 곁 작은 집에서 멸치를 삶아 햇볕에 말리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내 눈에 환하게 들어온다. 그동안 멸치는 많이 먹기는 했어도 멸치를 어떻게 말리는지 곁에서 지켜본 적은 없다. 바닷마을 아저씨는 가마솥에 물을 펄펄 끓이고 소금을 부은 다음 소금물에 멸치를 삶는단다. 그냥 말린다든지 소금물에 삶지 않고 말리면 멸치가 다 바스라진단다. 아저씨는 ‘값싼 중국 소금’을 안 쓰고 ‘비싼 무안 소금’을 쓴단다. 아저씨 스스로 멸치를 삶아서 먹어 볼 때에 맛이 다르니, 아무 소금이나 쓸 수 없겠지. 내다 팔기만 하는 멸치가 아니라, 집에서도 먹고 이웃한테도 주며 즐겁게 나눌 먹을거리로 여기니까, 스스로 좋다고 여기는 소금을 찾아서 쓸 테지.

  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상큼하다. 바다는 파랗고 멸치는 반짝반짝 빛난다. 햇살은 보드랍고 햇볕은 따스하다. 바다에서 건져 막 삶아 말리는 멸치는 반들반들 어여삐 빛난다. 바람이 실어 나르는 바다내음 사이사이 멸치내음이 섞인다. 큰아이가 멸치 하나 슬쩍 집어 입에 넣고는 살살 씹더니 “맛없어!” 하고는 아버지더러 먹으라고 내민다. 아버지가 입에 넣고 천천히 씹는다. 씹지 않아도 입에서 녹는다. 바다 한 모금 먹으며 파랗게 젖는다. (4345.11.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