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맞이하는 마음

 


  잠들었다가 깨어 자리에서 일어나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생각하니 어느새 사월입니다. 사월이로구나. 사월 첫날이네.


  이제 삼월 지나 사월이라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몇 해 앞서 살던 충청북도 멧골집에서는 십이월 첫머리에 얼어붙은 물이 사월이 되도록 녹지 않았어요. 사월 한복판 되어서야 겨우 물이 녹았어요. 겨우내 이웃집 샘터에서 언손 녹이면서 손빨래 했어요. 여러 해 지난 일이면서 바로 엊그제 같은 일이라고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면, 내가 갓 스무 살이던 때에 혼자 살겠다며 내 어버이 집에서 뛰쳐나와 신문사지국에서 밥해 먹고 신물 돌리며 지내던 때에, 한겨울에도 찬물로 바지를 빨고 겉옷 빨던 일 아스라이 떠오릅니다. 군대에서도 겉옷이며 속옷이며 늘 얼음 깬 찬물로 빨아서 입던 일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어느새 스무 해나 묵은 일이면서, 이 또한 바로 엊그제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라도 고흥에서 지내며, 삼월이 아직 안 된 이월에도 찬물로 손빨래를 했습니다. 이월 끝자락조차 참 따스해 찬물로 손빨래를 하면서 ‘즐겁다’ 소리 절로 튀어나와 노래노래 부르며 손빨래 했어요. 나는 빨래로 봄을 느껴요. 찬물에 손을 담그면서 손이 시리지 않으면, 그래 봄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그리고, 바로 이러한 날을 맞이할 무렵, 들판에 풀이 파릇파릇 돋고, 갓 돋은 풀을 뜯으면서, 이제 우리 밥상 푸르게 빛나겠네, 하는 소리 시나브로 튀어나오면서 두 팔 번쩍 치켜듭니다. 야호, 아이들아, 우리 풀밥 먹자.


  사월입니다. 삼월 첫머리에 개구리 울음소리 한 번 들었는데, 이제부터 개구리들 무논에 알을 낳고 하나둘 새로 깨어나 온 고을 울려퍼질 노래잔치 베풀겠지요. 개구리 잡아먹는다며 큰새 논자락마다 내려앉을 테고, 제비들도 새끼 먹이 물어다 나르려고 바지런을 떨 테지요.


  사월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달인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사월에 못난 짓 저질렀고, 이 못난 짓을 거꾸러뜨리려고 숱한 사람들 가랑잎처럼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아름다운 달에 아름다운 삶 누리면서 나누면 참 기쁠 텐데요. 왜 혼자 힘과 돈과 이름을 거머쥐려 할까요. 왜 힘을 나누어 두레를 못하나요. 왜 돈을 나누어 어깨동무를 안 하지요. 왜 이름을 나누어 품앗이를 손사래치고 말까요.


  종달새처럼 즐거운 노래 함께 불러요. 소쩍새처럼 그윽한 노래 함께 불러요. 봄나물 함께 뜯어서 먹어요. 그리고, 봄나물 뜯어서 먹자면 논이나 밭에 농약 뿌리면 안 돼요. 우리, 손으로 풀 뜯고, 손으로 밭 일구어요. 우리, 다 함께 숲을 돌보고, 숲을 누려요. 4346.4.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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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01 09:17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의 4월을 맞이하는 마음,에서 푸른 생기 가득 담아 갑니다~^^
감사드리며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

숲노래 2013-04-01 09:45   좋아요 0 | URL
좋으며 즐거운 새 아침처럼
언제나 웃음 묻어나는
하루 누리소서~
 

고깃살 바르는 마음

 


  갈치를 굽습니다. 고등어를 굽습니다. 밥상에 올려 아이들과 함께 먹습니다. 여섯 살 큰아이도 세 살 작은아이도 물고기 살점 발라서 먹을 줄 아직 모릅니다. 집에서 내가 물고기구이를 곧잘 했으면 여섯 살 큰아이도 이럭저럭 살 발라 스스로 먹을 수 있었을까요.


  내 어린 날 어머니가 으레 물고기 살점 큼직하게 발라서 밥그릇에 얹었습니다. 두 아이 어버이로 살아가며, 나는 우리 아이들 밥그릇에 물고기 살점 하나하나 발라서 얹습니다. 내 어머니는 물고기 보드라운 살점을 아이들 밥그릇에 얹으시면서 끄트러미를 집어먹었고, 나도 물고기 보드라운 살점을 아이들 밥그릇에 얹으면서 끄트머리를 조금 집어먹습니다. 내 어머니는 뼈다귀 살점을 입으로 훑어 드셨고, 나도 뼈다귀에서 마지막 살점 바르며 입으로 훑어서 마무리합니다.


  나는 어머니 살점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내 살점을 먹으며 자랍니다. 우리 아이들이 크면 우리 아이들도 저마다 사랑하는 숨결한테 저희 살점 먹이며 즐겁게 하루 누릴 테지요. 4346.3.1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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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 끓이는 마음

 


  하루나 이틀 집을 비우고 바깥마실을 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바깥마실 하는 날은 퍽 먼 곳에서 강의를 와 달라고 할 때입니다. 큰아이가 아직 많이 어릴 적이랑, 또 작은아이가 태어나서 퍽 어릴 적에는, 따로 강의나 먼 바깥마실을 잘 안 다녔습니다. 거의 안 다녔다고 할 만합니다. 강의 한 번 다녀오면 살림돈 이럭저럭 벌 수 있지만, 그동안 아이하고 하루나 이틀쯤 떨어져 얼굴도 못 보고 목소리도 못 들으며 집일 못 하는 흐름이 내키지 않아요. 고작 하루나 이틀이라 여길 사람이 많을까 싶은데, 바로 하루나 이틀 떨어져 버릇하면서 아이하고 어버이가 쌓을 사랑이 조금씩 흐려지곤 합니다.


  어른들은 아침에 바깥 일터로 떠나 저녁에 돌아오면 아이들 볼 수 있다 여기곤 하는데, 아침저녁 사이에 아이들과 오래도록 떨어져 지낼수록 아이들하고 멀어질밖에 없습니다. 거꾸로 헤아려도 쉬 알 수 있어요. 입시공부를 해야 한다며 중·고등학생 적에 새벽밥 먹고 학교에 가서 밤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온다면, ‘수험생인 나’와 ‘집에 있는 어버이’하고 어떤 사이가 될까요. 서로 어떤 말을 얼마나 섞을까요. 어버이와 아이 사이라 하지만, 나날이 멀어지기만 합니다. 대학교에 붙었다며 대학생 되어 집을 오래도록 비우면, 또 어머니 아버지하고 나 사이는 훨씬 멀어집니다. 함께 나눌 생각이 사라지고, 함께 바라보는 곳이 줄어들며, 함께 속삭이는 이야기가 옅어집니다.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맡기는 일이 아이들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시설이나 기관에 맡기는 어버이부터 스스로 얼마나 삶이 즐거울는지 모릅니다. 아이가 자라 일고여덟 살 되어 초등학교에 넣는다 할 때에도, 우리네 초등 교육기관이 얼마나 초등 교육기관다운가 모르겠어요. 아이들을 학교에 넣는 일이란, 어버이 스스로 아이하고 ‘등을 지겠다’는 뜻이 되는 한국 사회 아닌가 싶어요. 아이들하고 더 살가이 지내고, 아이들하고 더 가까이 어울리면서, 어른들부터 새 일거리 새 보금자리 새 터전 새 삶을 생각하고 찾을 노릇이지 싶어요.


  이제 아이들이 제법 자랐기에, 아이들을 믿고 가끔 바깥마실을 합니다. 강의할 이야기 챙기랴 짐 꾸리랴 바쁘기도 하지만, 기찻길이나 버스길에서 이런저런 이야깃거리 챙기자고 생각하면서, 바쁜 새벽나절에 밥거리 꾸리고 미역국 끓입니다. 미역국은 끓이면 끓일수록 더 구수하며 맛나기에 한 솥 가득 끓입니다. 한 솥 가득 끓일 미역을 미리 불려 헹구고 볶자면, 여느 때에 먹는 미역국보다 품과 겨를을 더 들여야 합니다. 큰길까지 이십 분 즈음 걸어가서 아침 여덟 시 군내버스를 잡아타고 읍내로 가야 하는 만큼, 일곱 시 반까지 모든 일 마무리짓고 집을 나서야 합니다.


  아이들아, 어머니하고 미역국 먹으면서 네 아버지가 먼 바깥마실 홀가분히 일구기를 빌어 다오. 미역국에 담은 마음을 읽어 다오. 즐겁게 놀고, 씩씩하게 놀며, 하루를 맑게 웃음으로 채우며 지내 다오. 노래와 이야기로 흐드러지는 어여쁜 시골집 삶자락 보듬어 다오. 4346.3.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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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증 안 딴 마음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3년 가을, 학교에서 동무들은 운전면허증 딴다며 부산하게 굽니다. 교사들은 대입시험 끝난 마당에 ‘앞날을 생각해서 요즈음처럼 학교 공부 없이 놀기’만 할 때에 운전면허증이라도 따라고 이야기합니다. 웬만한 동무들은 모두 운전면허 문제집을 들여다보며 시험문제를 외웁니다. 한 번이나 두 번쯤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웬만한 동무들은 고등학교 마칠 무렵 운전면허증을 땁니다.


  나는 그때에나 오늘에나 운전면허증을 안 땁니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운전면허증 딸 마음 없습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기름 먹는 자동차를 몰 생각 없다’고 말하며, 운전면허증 시험부터 안 치릅니다. 기름 안 먹고 배기가스나 쓰레기 내놓지 않는 자동차가 나올 때에는 운전면허증 따는 시험을 치러 볼까 말까 하고 생각합니다. 공해도 쓰레기도 없이 기름이나 전기조차 안 먹는 자동차가 나온다 하더라도 딱히 자동차를 몰고픈 마음 없어요.


  왜냐하면, 나는 두 다리로 걸을 때가 즐거워요. 천천히 걷고, 때로는 신나게 달리며, 어느 때는 자전거를 탑니다. 들내음 맡고, 구름빛 즐기며, 햇살바람 마십니다. 들풀 쓰다듬고, 나뭇줄기에 귀를 대며, 별바라기 합니다.


  삶을 누리고 싶어 자동차하고 사귀지 않습니다. 책을 손에 잡고 싶어 자동차하고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들새 노랫소리 듣고 싶어 자동차를 곁에 안 둡니다. 4346.2.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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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2-26 22:24   좋아요 0 | URL
ㅎㅎ 함께살기님은 저전거파셨죠.헌책방을 다닐적에 자전거로 이동하신걸 본 기억이 나네요.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뚜벅이파죠^^

숲노래 2013-02-27 06:17   좋아요 0 | URL
저는 자전거도 다리도 모두 좋아합니다~
 

새로 쓰는 마음

 


  이야기를 새로 씁니다. 날마다 내 마음속에서 새로 태어나는 이야기를 늘 쓰고 또 씁니다. 오늘 하루 이 이야기를 쓰면서 즐겁습니다. 어제 하루는 그 이야기를 쓰며 즐겁지요. 다시 하루 살아내어 이듬날 찾아오면 이듬날에는 저 이야기를 쓸 수 있어 즐겁습니다.


  이야기는 새로 자랍니다. 이야기 한 자락 쏟아내면 다른 이야기 한 자락 몽실몽실 자랍니다. 이야기 한 자락 꺼내었대서 내 마음자리가 비지 않아요. 사랑 한 자락 펼친대서 내 마음자리가 허전하지 않듯, 펼치거나 꺼낼수록 새롭게 자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꿈도 늘 새로 자랄 테지요. 마음속으로 품은 꿈 하나 이루어지면, 어느새 다른 꿈 한 가지 새록새록 자라리라 느껴요. 풀 한 포기 뜯어서 먹으면, 이내 다른 풀이 돋듯, 꿈 또한 즐겁게 이루면서 새롭게 일구는구나 싶어요.


  노래도 언제나 새롭게 피어납니다. 새로운 노래를 지으며 새롭게 즐기고, 늘 부르는 노래를 다시 부르며 새삼스레 즐깁니다. 삶을 즐기는 노래요, 삶을 누리는 노래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으로 태어나 날마다 새롭게 밥을 차리는 일도 즐거움이 될 만할까요. 사랑을 담아 밥을 차리고, 사랑을 실어 밥을 누리니까요. 사랑을 받는 밥을 받아들여, 사랑을 나누는 숨결을 얻으니까요.


  다만, 내 마음속에 어떤 이야기 하나 늘 맴돌아요. 하느님을 바라보며 왜 나는 이슬과 바람만 먹으며 살아가지 못하고 예쁜 풀을 뜯어서 먹어야 하느냐며 눈물지은 토끼가 있는데, 사람들 누구나 이슬과 바람을 먹으며 살아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날마다 여러 시간 품을 들여 밥을 차리고 치우고 먹고 하는 일이란, 말 그대로 ‘일’이 되면서, 스스로 아름다움을 찾는 길하고 동떨어지는 셈은 아닐까 싶어요. 사람이라는 목숨, 또 수많은 새와 짐승과 물고기라는 목숨, 모두들 처음 이 땅에 태어났을 적에는 ‘약육강식’이 아닌 이슬과 바람을 누리면서 삶을 즐겁게 짓지 않았을까 싶어요. 누구는 풀을 먹고 누구는 고기를 먹는 짐승이 아니라, 어떤 짐승이라 하더라도 ‘고운 사랑으로 이루어진 숨결’로서 맑은 바람과 이슬로 목숨을 지켰으리라 생각해요.


  바람이 돌고 돌아요. 물이 돌고 돌아요. 사람들은 공장을 짓고 자가용을 굴리며 발전소를 움직이지만, 매캐해지거나 더러워진 바람이 어느새 다시금 정갈한 기운 그득 담아요. 사람들은 고속도로를 닦고 아파트를 세우며 전쟁무기를 휘두르지만, 무너지거나 망가진 물이 어느덧 새롭게 맑은 기운 듬뿍 실어요.


  내 몸으로 들어온 바람이 내 몸에서 밖으로 나와 지구별 샅샅이 돌아요. 내 몸으로 들어온 물이 내 몸에서 밖으로 나와 지구별 곳곳을 흘러요. 내 몸으로 들어온 사랑이 내 몸 밖으로 나와 이웃과 동무한테 퍼져요. 내 손으로 쓴 즐거운 글 하나는 내 살가운 이웃과 동무가 읽으며 서로서로 아름다운 생각을 빚어요. 4346.2.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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