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읽는 마음

 


  나는 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봅니다. 깜깜한 시골 밤하늘은 온통 별잔치입니다. 멀리 내다볼 수 있다는 망원경이 있으면 별을 한결 잘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굳이 망원경을 써서 쳐다보지 않아도 별빛을 누리고 별내음을 맡습니다.


  지구별에서 1만 광년이나 10만 광년, 또는 100만 광년쯤 떨어졌다는 저 먼 별에서도 지구를 ‘별’로 여겨 바라볼까 헤아려 보곤 합니다. 지구사람은 큼지막한 망원경으로 다른 별을 바라보며 ‘천체과학자’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는데, 지구별에서 바라보는 다른 별 모습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저 먼 별에서 지구를 바라볼 적에는 ‘지구라는 별 모습에서 어떤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을까요.


  이웃별 사람들은 지구별 사람들이 복닥거리는 삶을 들여다볼까요. 이웃별 사람들은 지구별 빛깔을 지구에서 아우성대는 사람들 목소리로 느낄까요.


  별을 바라보는 과학자는 별무늬와 별자리를 살핍니다. 이웃별을 구경합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학자도 여느 사람들 삶이나 정치꾼 삶을 구경합니다. 곁에서 구경하면서 학문을 밝히고 학설을 펼칩니다. ‘별 과학자’는 이웃별로 찾아가서 ‘살아내’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인문학자이든 역사학자이든 문화인류학자이든 이웃집에 깃들어 ‘함께 살아가’면서 이야기를 엮지 않습니다. ‘학자가 되자’면 어느 만큼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해요. 학자가 되는 이들은 ‘이웃’이 되지 않고 ‘구경꾼’이 되어요.


  4월혁명을 역사로 밝히는 이들은 4월혁명 한복판에서 함께 거친 숨을 들이쉬던 이들인가요. 동학혁명을 역사로 그리는 이들은 동학혁명 한복판에서 함께 멧골 넘으며 못난 관리를 꾸짖은 이들인가요.


  아이를 품에 안고 마당에서 별바라기를 하며 생각합니다. 나한테 망원경이 없더라도, 나는 아이들과 별바라기를 합니다. 나는 아이들이랑 별을 바라볼 적에 망원경으로 구경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 별에 깃든 사람들은 어떤 넋 어떤 삶 어떤 사랑일까를 그리고 싶습니다. 이 별 지구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은 어떤 숨 어떤 꿈 어떤 빛깔일까를 헤아리고 싶습니다.


  망원경 아니어도 읽는 별입니다. 학문이나 학설 아니어도 읽는 사람살이입니다. 책 아니어도 읽는 역사요 문화이며 교육이고 예술입니다. 아이들 마음밭은 따순 손길로 보듬는 사랑일 때에 읽습니다. 구수한 밥은 요리책 아닌 너그러운 손길로 목숨을 짓는 믿음일 때에 읽습니다. 4345.12.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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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보는 마음

 


  집에 있을 적에는 아이 뒷모습을 볼 일이 매우 드물다. 집에서는 아이가 언제나 나(어버이)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늘 아이 앞모습만 본다. 나한테 붙고 나한테 달려오며 나한테 안긴다.


  집 바깥으로 나가면 아이들은 으레 뒷모습만 보여준다. 너른 누리를 바라보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푸른 들판을 내다보기 때문이다. 집 바깥에서는 언제나 아이 꽁무니를 좇듯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나는 내 뒷머리를 한 갈래로 묶는 일조차 어설피 한다. 어설피 한다기보다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 긴 머리카락을 그냥 묶을 뿐이다. 흘러내리지 않기만을 바란다. 이런 마음으로 살다가 큰아이 긴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묶자니, 좀 힘든 일이 아니었다. 묶고 묶고 또 묶고 자꾸 묶으며 천천히 솜씨가 는다. 어떻게 빗질을 하고, 어떻게 머리끈을 돌려서 매듭을 지어야 하는가를 손과 몸과 눈으로 알아챈다. 큰아이가 일곱 살쯤 된다면, 또 열 살쯤 된다면, 어버이로 함께 살아가는 내 손매는 퍽 야무지면서 단단하게 거듭나리라 생각한다. 아이 뒷모습이 정갈해지는 만큼 내 뒷자리도 정갈해지리라 본다. 4345.12.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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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즐기는 마음

 


  시골에서 아이들과 살아가며 즐길 수 있는 놀이는 많습니다. 집안에서 놀아도 되고, 집밖에서 놀아도 됩니다. 집안에서는 그림책을 갖고 놀 수 있지만, 이밖에도 모든 것을 갖고 놀 수 있으며, 손가락이나 눈짓이나 목소리로도 놀 수 있어요. 집밖에서는 마냥 뛰면서 놀 수 있고, 풀밭에 드러눕거나 하늘바라기를 하거나 천천히 거닐며 놀 수 있어요.


  아이들과 살아가며 놀고 누린 이야기를 틈틈이 사진으로 찍습니다. 나는 아이들이랑 책으로 노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이렁저렁 그러모아 봅니다. 그림책 겉모습이나 속모습을 보여주어도 즐거우리라 생각하지만, 그림책은 저마다 스스로 아이들과 함께 책방마실을 즐기면서 몸소 느낄 때에 한결 아름다우리라 느껴요.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시골에서 뛰놀다가 때때로 ‘책이랑 부대끼며 노는’ 모습을 찬찬히 보여주어도 ‘그림책 함께 읽기’를 이룰 수 있다고 느껴요.


  아이들과 책을 읽으며 늘 생각하는데, 책에는 아무런 길이 없어요. 길은 나 스스로 누리는 삶에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 어떠한 넋으로 어떠한 사랑을 나누고 싶은가 하고 생각하면서 비로소 길을 열어요. 책 하나란, 나 스스로 여는 삶길을 함께 걸어가는 슬기로운 벗님입니다. 이를테면 ‘책벗’이나 ‘책동무’라 할 만해요.


  이 나라 시골에서 살아가거나 서울에서 살아가거나, 모두들, 그림책을 비롯해 동화책이랑 동시집이랑 청소년문학이랑 어른문학이랑 인문책이랑 환경책이랑 사진책이랑 모든 이야기책을 사랑스레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삶으로 빛내는 사랑이 책 하나 읽으면서 환하게 피어날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과 얼크러지며 키우는 꿈을 책 하나 길동무 삼아 씩씩하게 한삶을 누리면서 언제 어디에서라도 살찌울 수 있기를 빌어요. 4345.1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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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마음

 


  고흥집을 이레 비우고, 여드레째 비로소 돌아온다. 여드레만에 돌아온 고흥집은 조용히 잘 있다. 다만, 택배 일꾼 두 사람이 책 상자를 마당에 덩그러니 놓고 간 바람에 빗물에 흠뻑 젖었다. 왜 처마 밑에 놓지 않았을까. 왜 비가 들이치는 대문 안쪽에 휙 던져 놓고 갔을까. 집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성가셨을까. 몇 미터 더 걸어가서 빗물 들이치지 않을 자리에 놓기가 힘들었을까.


  장인 어른이 짐차에 이런 짐 저런 짐 그득 실어 일산에서 고흥까지 열 시간 즈음 달렸다. 천안을 지나기까지 눈발이 퍼부어 쌓였고, 공주 들판을 지날 무렵 눈송이는 땅에 닿자마자 녹는다. 익산을 지나 임실 멧골을 지날 적에는 다시 눈발이 퍼부으며 쌓인다. 날줄이 낮더라도 멧골은 멧골이라 눈발이 드세다. 오수를 지나 구례로 접어드니 다시금 눈송이가 녹아 길이 덜 미끄럽다. 순천으로 들어서니 길은 여느 빗길과 같고, 벌교 지나 고흥군 어귀부터는 길이 가뿐하다.


  참말 고흥은 따스하구나, 겨울에도 포근하구나, 따뜻하고 아늑하게 지낼 만하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낀다. 작은아이는 신나게 놀다가 밤 열 시 사십 분 무렵 비로소 똥을 푸지게 눈다. 아침부터 길을 나서느라 차에서는 똥을 참아 주었고, 집에 닿아 이래저래 뛰놀면서 속을 다스려 똥을 누어 준다. 작은아이 밑을 씻기며 바지를 갈아입히고, 큰아이는 무릎에 누여 다독이며 재운다. 큰아이가 곯아떨어질 무렵 천천히 안아 잠자리로 옮긴다. 이윽고 작은아이도 품에 안아 잠자리에 눕히고 곁에 나란히 누워 가만가만 자장노래 부른다. 먼 마실 마치고 돌아온 두 아이가 저희 집에서 느긋하게 잠든다. 겨울에도 따사로운 고흥집 잠을 잔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마당으로 내려선다. 늦은밤이 되니 고흥에도 진눈깨비 같은 눈발이 날린다. 가느다란 눈발은 땅에 닿자마자 거의 녹지만, 띄엄띄엄 논이랑 밭에 하얀 자국을 남긴다. 마당 평상에도 눈이 살짝 덮인다. 세 시, 작은아이가 쉬를 하며 깬 깊은 새벽에 기저귀랑 바지를 갈며 다시 마당으로 내려서 바깥을 내다보니, 구름 모두 걷혀 달빛과 별빛 초롱초롱 빛난다. 드문드문 흰구름 밤하늘 가로지른다. 밤빛 고운 고흥집으로 돌아왔구나. 너희 밤빛을 살뜰히 느낄 고흥집에서 여러 날만에 고요한 바람을 누리는구나. 동이 틀 때까지 얇고 하얀 눈이불 고스란히 남아 사진 몇 장 찍을 수 있기를 빈다. 4345.1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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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는 기쁜 마음

 


  책 한 권 살 때에는 이 책을 쓴 사람이 지나온 삶자국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내 오늘과 어제를 되짚는 길벗이 되기에 기쁩니다. 책방에 서서 책 한 권 살살 어루만지는 동안 이 책을 쓴 사람이 책을 막 내놓을 무렵 얼마나 부푼 가슴과 너른 넋이었을까를 헤아립니다. 널리 사랑받던 책이든 거의 사랑받지 못한 책이든, 이 책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나와 길벗이 됩니다. 씩씩하게 살아가는 책이요, 즐겁게 이야기를 빚는 책입니다. 내 삶자리를 차분히 되새기도록 돕는 책이면서, 나와 곱게 보금자리를 돌보는 옆지기랑 아이들 꿈자리를 예쁘게 얼싸안도록 이끄는 책입니다. 책값을 치르면서 빙긋 웃습니다. 4345.1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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